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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꽃말"의 상징성을 발견할줄 알아야...
2016년 11월 15일 20시 58분  조회:3405  추천:0  작성자: 죽림
 
‘꽃’의 상징성





결혼식장이나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 장례식장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행사장만이 아니라 옛 건축물이나 조형물에는 연화, 당초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꽃은 이렇듯 우리들의 생활, 역사, 문화 속에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런 꽃들은 사실적인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단순화시킨 것이 ‘꽃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꽃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를 두고 화신(花信) 문화라 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화신학(花信學, selamographie)’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신 문화’라고 하면 으레 서양 문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서양 문화만의 아닌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강릉 단오제⌋나 ⌈동해안 별신굿⌋ 또는 ⌈오구굿⌋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꽃굿’, ‘꽃맞이굿’, ‘꽃노래’ 등으로 불리고 있는 ⌈꽃노래굿⌋이 있으며, 제주도의 무가에서도 ‘생불꽃’ 등 신화마다 거기에 알맞은 여러 가지 꽃들이 등장한다. 또 자진모리 장단의 신민요로 일컬어지는 ⌈꽃타령⌋도 있고, ⌈꽃노래⌋라는 이름으로 각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게 불려지는 굿거리 장단의 민요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자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신라 시대의 ⌈도솔가⌋, ⌈헌화가⌋, ⌈화왕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내방가사인 ⌈꽃노래⌋도 있다.

꽃노래굿은 동해안 지역의 굿 가운데 가장 예술성이 돋보인다고 하는데, 한국 토속 신들은 꽃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도 꽃필 무렵이 되면 자기네 집의 신단(神檀)에 봉안된 무신에게 정기적으로 제의를 올리는 꽃맞이굿을 한다. 또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무대가 되는 평안도 영변에는 풍년을 기약하는 굿으로 ‘꽃요람굿’이 있다. 이 굿은 구경꾼들이 광장에 세워진 그네줄에 꽃으로 요란스럽게 꾸민 화람(花籃)을 달아매면서 절정을 이루는데, 꽃요람에 무녀들이 올라타고 그네줄을 높이 끌어올리면 꽃요람 속에서 무녀들이 춤을 춘다. 꽃요람굿의 상징적인 의미는 생식력을 가진 땅의 표상인 음력(陰力)을 태양 가까이에 접근시킴으로써 가뭄의 원인인 강한 양력(陽力)을 약화시켜 풍년을 기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우리 화신 문화도 서양화되어 버렸다. 서양의 경우 “영화의 30% 가량이 여러 가지 형식으로 꽃의 의미를 바탕으로 전개되며, 그 꽃의 의미를 모르고 보면 그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여운의 15%를 맛보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이다. 이 말은 잉그마르 베이르만이라는 영화감독의 말이지만 … . 영화에서 그러하듯이 서양 사람의 일상에서는 꽃을 주고받는 빈도가 대단히 많다. 이렇게 꽃을 주고받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꽃의 특징과 성질에 따라 그 의미를 부여하여 꽃말로 쓰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꽃말을 ‘우의(寓意)의 꽃다발’, ‘무언(無言)의 말’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꽃말을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라고 할 것이다.

이런 꽃말에 따르면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백합은 ‘순결함’을, 제비꽃은 ‘겸손’을, 월계수는 ‘영광’을, 올리브는 ‘평화’를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꽃말은 꽃의 특질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붙인 경우도 있지만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처럼 민족과 국가의 신화나 역사에 따라 상징하는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다.

꽃의 특징에 따른 것으로는, 향기 좋은 꽃의 대명사인 라일락은 ‘젊은 날의 추억’을, 달콤하고 관능적인 향기의 쟈스민은 ‘당신은 나의 것’을, 어버이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빨간색 카네이션은 ‘건강을 비는 사랑’을, 꽃다발을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안개꽃은 ‘간절한 기쁨’과 ‘밝은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또 계절에 따라 초봄에 피는 꽃에는 ‘희망’이나 ‘행복’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많으며, 가을에 피는 꽃에는 ‘과거의 기쁨’이나 ‘추억’ 등의 의미를 부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늦가을이나 겨울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는 매화나 난초, 국화(菊花)를 비롯하여,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와 소나무 등을 ‘절개’와 ‘지조’가 있는 강인한 성품으로 여겨 그 정신을 숭상하는 뜻에서 선비들이 즐겨 그리기도 하고 완상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들의 생활에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꽃을 생활화하여 이를 주고받는다거나 또 사무실이나 거실의 분위기를 위해 장식하기도 한다. 그 좋아하는 꽃으로는 장미가 으뜸이고 다음으로 국화(菊花), 난초, 백합(百合)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꽃은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도 많다. 현대시의 경우만 보더라도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또 김춘수의 ⌈꽃⌋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유는 꽃의 상징성이 바로 우리 생활 정서와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꽃들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꽃은 생활 속에서 우리들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있는 이성으로부터 꽃다발을 선물 받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는 분명 꽃의 힘일 것이다. 신라시대의 월명사는 꽃을 뿌려 두 개의 해가 뜨는 괴변을 해결하기도 했으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는 서정적 자아가 꽃을 뿌려 가시는 님과 또다른 정서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또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던진 부케를 받은 여자는 또다른 기대와 설렘으로 부푼 나날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꽃은 우리들의 정서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꽃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징적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이러한 꽃의 의미는 ‘생명’과 ‘영원성’에 관련을 둘 때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꽃의 의미도 그렇거니와 죽음을 위로하는 꽃에서도 생명의 또다른 의미인 ‘부활’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은 시들어도 그 열매가 남아서 순환하기 때문일까. 이러한 상징적 의미의 사용이 현대에 이르면서 서양의 경우에 동화되어버리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다음 자진모리장단의 신민요인 ⌈꽃타령⌋을 한 번 감상하면서 꽃의 의미를 새겨 보자.

< 후렴>
꽃사시오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에 꽃이로구나

1절  
꽃바구니 울러메고 꽃 팔러 나왔소
붉은 꽃 파란 꽃 노리고도 하얀 꽃
남색 자색에 연분홍 울긋불긋
빛난 꽃 아롱다롱이 고운 꽃

2절  
봉울봉울 맺은 꽃 숭얼숭얼 달린 꽃
방실방실 웃는 꽃 활짝 피였네 다 핀 꽃
벌 모아 노래한 꽃나비 앉어 춤춘 꽃

3절  
이 송이 저 송이 각 꽃송이 향기가 풍겨 나온다.
이꽃 저꽃 이꽃 해당화 모란화
난초 지초 왼갓 향초 작약목단에 장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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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 신달자(1943∼ )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많은 사람들이 신달자 시인을 안다. 좋아하는 이도 참 많다. 언젠가 한 지역에서 토크 콘서트를 연 일이 있었는데 그를 보러 몇백 명의 청중이 자리를 채워주셨다. 대중의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알고 ‘등잔’이라는 시를 읽으면 원래 의미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 ‘인사동에서 등잔을 사 왔는데 한동안 방치하다가 나중에 불을 붙여 보았다. 그랬더니 잘 켜지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시를 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본래 시란 남들이 못 보았던 것, 나에게 안 보였던 것을 발견하는 일인데, 이 시도 정말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발견의 대상은 돈 주고 산 ‘등잔’이 아니다. 시인이 발견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시인은 어린 나이에 화려하게 등단했고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힘든 세월을 견뎌야 했다. 20년이 넘게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 했고, 10년 가까이 아픈 시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경제적으로 가장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삶의 모든 책임이 그녀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 자신을 잊었다. 시의 한 구절처럼 나 자신은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그런데 버린 등잔의 묵은 먼지를 닦고 어여쁘다 만져주는 사이 그 속에 갇혔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 느낀 ‘황홀’이란 등잔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가엾고도 어여쁜 나를 향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는 눈부시게 읽는 것이 아니라 목이 메어 읽는 것이 맞다. 나조차 방치했던 나를 다시 찾으니 절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 전에, 나부터 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유하자면 이 시가 꽃이라면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소중한 나여, 나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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