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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어떤 음계에서"의 암시투성이다...
2016년 08월 22일 19시 04분  조회:4303  추천:0  작성자: 죽림
[39강] 시와 상징.2 

강사/김영천 


3)암시성 
상징의 특성으로 일체성, 복합성에 이어서 암시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상징언어는 보조관념으로 표현되어 원관념을 암시 
함으로써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일체화합니다. 

이 원섭님의 <秘密(비밀)>을 읽어보겠습니다. 

머언 어느 나라로 가자 
例(예)를 들자면 모로코나 에치오피아 같은 곳, 
나의 형제나 친구가 아무도 없는, 
될 수 있으면 專制(전제)하는 王이 있고 
봄 가을이면 人肉市場(인육시장)이 장엄히 벌어지는 
그러한 나라에 가 
나는 한 마리 奴隸(노예)가 되자. 
이 거추장한 옷일랑 벗어 동댕이치고 
개모양 陳列(진열)되어 
商人(상인)들이 내 값을 흥정하게 내버려두자. 
나는 나를 時價(시가)대로 판 다음 
어느 主人(주인)을 개처럼 섬기자. 
가실 뉘 없는 한 조각 丹心(단심)! 
피 튀는 채찍도 은혜로 받자 
어느날 나는 죽자. 나의 筋力(근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主人에게 바친 다음 
늙어빠진 개모양 고요히 눈을 감자. 
그리하여 아무의 기억에도 남지 말자. 
永遠(영원)히 내 이름 숨긴채로 

노창선 교수의 해설을 옮겨봅니다. 
"이 시에서 우린 시적 화자의 매우 비밀스러운 내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마음 그 자체가 이 시를 통하여 
시인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 
머언 나라'라든지 '거추장스러운 옷일랑 벗어 동댕이치고', 
'형제나 친구나 아무도 없는'곳이라는 등의 시어는 시적화자 
의 현실이탈 의욕을 통하여 초월적 의지를 암시한다고 본다" 

즉 현실을 벗어나려는 화자의 마음이 암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학과 구속, 어떤 이념에 대한 순응이나 굴종을 
의식하는 시어들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상징이란 존재 양식이 본래적으로 원관념이 숨고 
보조관념만 제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춤(concealment)과 
드러냄(revealation)의 양면성을 필연적으로 지닌다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상징에서는 침묵과 담화가 함께 작용해서 2중의 
의의를 가져 옵니다. 

신동집님의 <오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며 
오렌지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가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아직 잘은 몰라도. 

상징은 감춤의 성질만도 아니고 드러냄의 성질 만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상징의 양면성 자체를 테마로 한 것을 보입니다. 오렌지 
에 대한 화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감추어진 작가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화자는 <마음만 낸다면>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있고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수도>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미 
오렌지으로 껍질을 벗겨 그 속살을 깔려고 손을 대면 그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라고 두려워 합니다. 여기에서 오렌지는 무엇일까 
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작가의 설명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김준오 같은 분은 인간의 지적 욕구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욕구는 모든 사물의 내면을 다 들추어 내어 밝히려고 하지만 그 결과 
는 사물에 대한 흥미도 가치감도 다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자는 이 지적 욕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오렌지를 새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연인으로 정할 수도 있겠지요. 사람은 적당히 모를 때 존경하다가도 
너무 친해져 단점까지 다 알게 되면 그 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흠모의 
정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 수도 있어 두렵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이 오렌지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무엇을 암시하였을까? 
궁리하여 보십시오. 
그 것이 우리에게 다가온 삶을 뜻하는 것인지, 또는 알지못할 미래에 
대한 상징은 아닌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약속대로 이런 것 있다고만 알고 
마지막으로 긴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4)긴장성 
여러분들이 위의 시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파악 
하기위해서 무척 긴장하셨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징의 감춤과 드러냄, 복합성, 암시성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적 긴장감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를 한 편 소개해보겠습니다. 

김명수님의 <月蝕(월식)>을 읽겠습니다.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 놓은 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 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은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주던 저녁 


상징의 언어가 긴장의 언어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시의 언어가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문맥과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의 시에서 달은 어둠에 대한 빛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삶 
의 애환과 고통의 분위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잠들어 빈 듯 
한 마을과 다시는 짖지 않는 외로운 개와 말이 없어진 누님의 
이미지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상시키면서 이 시의 
내용의 중요한 암시적 모티프가 되고 있습니다. 비밀스런 분 
위기를 배경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내의 정체와 누님의 관계 
는 어떤 사건을 암시할 뿐이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습 
니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무슨 역사적 상황 아닌가 하면서도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압축되어버립니다. 

2.상징의 유형 
이 과목은 제목만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1)개인상징 
2)집단상징 
3)원형상징 
참고로 노드롭 프라이란 학자는 묵시적, 악마적, 로만스적, 
사실적, 상위모방적으로 다섯 개로 분류하였습니다. 



이형기님의 <그해 겨울의 눈>입니다. 

그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렸다 

희부옇게 한밤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디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으로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영화 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맥스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중 바다에 내린 
그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도 화려한 낭비였다 

(참고로 제가 올리는 시들은 띄여쓰기나 부호 등, 책에 
나온대로 옮기니 맞춤법과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유안진님의 <가을>을 읽어볼까요?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도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이가람님의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을 읽어보겠습니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기어이 끊어 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은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 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마지막으로 김후란님의 <강물소리>를 읽어보겠습니다. 

산이 산을 
에워싸고 
비켜 가라네 강보고 

지난 가을 
끝내 불질러 버렸던 상처에 
기나긴 겨울 
참회하는 침묵뿐이더니 

저 강 
뫼뿌리에 잠든 언어 
다 깨워 놓고 

깊은 산 
가슴에 
강물소리 절로 
차오르네 

============================================================

 

 

 

어떤 음계에서 
―문동만 (1969∼ )

 

 

자주 자는 집은 컨테이너이거나 달세를 주는 여관방,
자주 먹는 밥은 함바집의 백반이었던 그가
삼십년 객짓밥으로 얻은 만년 셋방에 곰팡이꽃을 피워놓고 
밥상을 차려 기다렸다
늘 막막했던 그가 용돈까지 쥐어준다 
‘아무려면 혼자 사는 내가 낫지’가 그의 잠언
창을 열면 집 밖도 실내인 작은 집
소소한 몇 개의 반찬 냄새는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빗방울은 허공에 걸린 거미줄을 튕긴다
이십오년 된 창고형 상가를 털어 칸칸이
허술한 담을 쌓고 그것을 아파트라 부르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 그는 살 수 있었다
그가 만든 수많은 집들의 바깥에서만
빗방울을 견디는 거미줄, 오로지 가볍고 질긴 장력으로
살았던 탁음이 깊은 말라깽이 사내의 집
복도엔 그만그만한 사람들의 생이 얽힌 물발자국
발바닥으로 부르는 노동가, 따라 부르기 버거워
어떤 음계에서 나는 미끄러지고 만다


건축 공사장 컨테이너나 달세 여관방을 전전하던 그 사내, 삼십년 만에 드디어 ‘만년 셋방’ 거주자가 됐다. 그래서 처음으로 제 집에 밥상을 차려놓고 친구인 화자를 초대한 날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 나이 든 이가 노숙의 공포에서 벗어난 형편이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기쁘게 축하하러 찾아간 화자, 그러나 반찬냄새 진동하는 좁은 방이며 천장에서 벽으로 흘러내리는 곰팡이꽃이며, ‘창을 열면 집 밖도 실내인’ 듯 바투 옆집 담벼락이 붙어 있는 꼴이며, 마음이 먹먹해진다. 마침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 열린 창밖으로 거미줄에 빗방울 튕기고. 거미들은 자기 집이나 짓고 살았지, 이 친구는 평생 수많은 집들을 짓는 일손이었건만 그 집들의 바깥에서만 살 수 있구나. 그러면서도 마음씨는 어찌 그리 곱고 넉넉한지! ‘아무래도 혼자 사는 내가 낫지’, 식솔을 거느린 화자한테 용돈까지 쥐여준다. 아, 당신이나 나나, 왜 이렇게 살지? 우리가 게을렀던가? 방탕했던가? 화자의 삐치고 미끄러지는 마음이 만져질 듯하다.

시 속에 비가 내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비 오는 날이 노는 날이다. 물론 급료는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 오는 날이면 공(空)치는 날’인 것이다. ‘일용직 근로자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근로자의 날’에서도 소외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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