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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세계속에는 지상과 천상이 한 울타리에 있다...
2016년 10월 20일 19시 27분  조회:3548  추천:0  작성자: 죽림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시집「겨울날」(창작과비평사刊·1975년) / <월간 중앙>

 

 

 

■ 핵심 정리

✴지은이 : 김광섭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관조적, 사색적, 미래지향적, 명상적

✴어조 :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사색적 어조

✴제재 : 별

✴구성 : 선경후정의 방식(1,2연에서 별의 모습을, 3연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

1연 : 별과 나와의 친밀한 교감

2연 : 친밀한 관계의 소멸과 인간의 고독

3연 : 다시 만나고 싶은 소망

✴주제 :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성찰, 친밀한 인간 관계에 대한 소망,

             생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생의 의미의 새로운 발견

✴표현 : 대응 구조(별 하나 - 나, 밝음 - 어둠, 천상 - 지상)

✴출전 : '겨울날'(창작과비평사刊·1975년)

 

 

■ 내용 정리

저렇게('저렇게'라는 원칭을 써서 '별'과 '나'가 떨어져 있는 거리감을 말함)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주체와 객체의 전도 → 별 하나와 '나'의 관계는 선택적임)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별'과 '나'의 특별한 관계로 서로 의미 있는 존재로 변함)

1연 : 저녁의 하늘에서 빛나는 '별'과 인간인 '내'가 서로 만나 교감하는 모습을 ‘내려다본다’와 ‘쳐다본다’라는 대구적 표현으로 제시 → 이러한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존재를 서로 위로하고 이끌어 주면서 삶을 계속해서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인간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밤(평화와 외로움)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새벽에 별이 흐려지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친밀한 관계가 소멸됨을 의미한다)

나는 어둠 속(삶의 역경과 시련 )에 사라진다.(늙고 죽는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으로, 인간의 숙명적 비극성을 표출하고 있다)

2연 :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존재인 별은 날이 밝으면 사라지고, 인간은 '어둠 속'이라는 시어가 보여 주듯이 삶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늙고 죽는 숙명적인 고독을 지니고 살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임 → 대구, 대조법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3연 : 시적 화자는 정다운 별과 나의 인연이 이어져 다시만나게 되기를 기대, 희망하고 있다. → 둘 사이에 영원한 거리가 개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분명 존재의 고절함을 환기시키지만 나를 내려다 보는 ‘별 하나’와 그 별을 하나를 쳐다 보는 ‘나’의 지향에 의해 둘은 하나로 묶인다. 그리하여 밝음과 어둠의 양극단이 화해와 결속감으로 유지되어, 마침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까지 만날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불교 인연설의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작품의 이해와 감상

이산(怡山) 김광섭(金光燮)은 오염되어가는 지상의 문명을 고발한「성북동 비둘기」의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천상의 별을 노래한「저녁에」의 시인이기도 하다. 지상과 천상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의 세계에서는 한 울타리 속에 있다. 인간은 땅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영어로 컨시더(consider)라고 하지만 원래의 뜻은「별을 바라다본다」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실제의 바다든 삶의 바다든 별을 보고 건너갔다. 점성술과 항해술은 근본적으로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천문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이 세상에서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밤 하늘의 별이요, 마음 속의 시(도덕률)」라는 칸트의 경이(驚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러니까 어둠이 와야 비로소 그 정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로 시작되는 그 詩題가「저녁에」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시의 의미를 더 깊이 따져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해서「저녁에」의 시를 이끌어가는 언술은「별」(천상)도「나」(지상)도 아니다.「별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라는 언술의 주체는「나」가 아니라「별」이다. 나는「보다」의 목적어로 별의 피사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하나를 쳐다본다」의 다음 시구에서는 지상의 사람이, 그리고「나」가 언술의 주체로 바뀌어 있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 별과 사람, 그리고「내려다 보다」와 「쳐다보다」가 완벽한 대구를 이루며 동시적으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달리 언어로 표현할 때는 불가피하게 말을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그 순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저녁에」의 경우도「별」이「나」보다 먼저 나와 있다. 즉 별이 먼저 나를 내려다 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선에 있어서 나는 수동적이다. 첫행의 경우 시점과 발신자가 별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점의 거리를 결정하는「이」,「그」,「저」의 지시 대명사를 보면 별의 경우에는「저렇게 많은 것」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의 경우는「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점 거리가「저렇게(별)」보다「이렇게(사람)」가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처럼 본다는 것은 대상을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보고 남이 나를 본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격렬한 싸움인 것이며, 인간의 삶과 존재란 결국 이러한 눈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명제「타자(他子)는 지옥」이란 말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러한 눈싸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정다운 것이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저렇게 많은 별중에」라고 불렸던 별이 나중에 오면「이렇게 정다운 별하나」로 바뀌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렇게에서 이렇게로 변화하게 만든 그 시점은 누구의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저녁에」라는 시 읽기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답안을 퀴즈 문제처럼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펼쳐보면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시의 제목처럼「저녁」이라는 그 시간이다. 별이 나를 내려다본 것이나 내가 별을 쳐다본 것이나 그 이전에 저녁이 먼저 있었다. 저녁이 없었다면, 어둠이라는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내려다보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진다.

저녁이란 어둠의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하나와 나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異次元)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너하나 나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둘째연의 시구이다. 만남은 곧 헤어짐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그 진부한 주제가 여전히 이 시에서 시효를 상실하지 않고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시적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에서 볼 수 있듯이 빛과 어둠의 정반대 되는 것이 그 사라짐의 명제 속에 교차되어 있다. 그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이면서도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는 빛과 어둠이라는 합칠 수 없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저녁의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다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 이것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이다.

그러나 김광섭은 한국의 시인인 것이다. 사람들은 멀고 먼 하늘에 자신의 별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고 믿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천문학의 별을 배우기 전에 멍석 위에서 별하나 나하나를 외우던 한국의 어린이였다. 그러기 때문에 별의 패러독스는「타자(他子)는 지옥이다」가 아니라「타자(他子)는 정(情)이다」로 변한다. 그리고 그 한국인은 윤회의 길고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 다시 만나는 또하나의 저녁을 기다린다.

그것이 한국인의 가슴 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있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이다. 그 시구가 화가와 만나면 한폭의 그림이 되고, 극작가와 만나면 한편의 드라마가, 그리고 춤추는 무희와 만나면 노래와 춤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만나서는「정다운 너하나 나하나」의 만남이 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의 하나와 마주보듯이 박모(薄暮)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상의 별하나와 만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운명의 만남을…….

그리고 그렇게나 먼 빛과 어둠의 두 세계로 사라진다해도 우리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시구를 잊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만나랴」라는 의문형으로 끝나있지만 그러한 시적 상상력이 존재하는 한「정다운 너하나 나하나」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과 따의 몇광년의 먼 거리를 소멸시키고 영원히 마주 보는 시선을 어떤 시간도 멸하지 못한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수직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싸는 저녁의 시간……. 그 순 간의 만남을 영원한 순환의 시선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시가 맡은 소중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이어령 교수>

 

 

 

▣ 시간적 배경의 상징적 의미

'밤'은 고단한 일상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안식과 평안함을 주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고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밤'을 대표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나는 별과 이와 대조되는 인간의 현실적 고독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위안을 삼고, 그 위안 속에서 새로운 삶을 계속해 나가는 인간사의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 '저녁에'에 나타난 '저녁'의 이미지

저녁이라는 어둠의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 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 하나와 '나' 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二次元)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희망의 문학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naver에서

 

 

 

 

 

 

 
 

 김광섭의 시에서 얻은 모티브를 바탕으로 1970년에 제작한 점화로, 그 해 한국 일보에서 주최한 제 1회 한국 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붙인 그의 작품은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오묘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향과 친구를 생각하는 매우 동양적인 사고와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국내 미술인들의 놀라움과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희망의 문학 이 시처럼 별을 제재로 한 다름 작품을 찾아보고, 시인의 '별'을 노래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김광섭의 '저녁에'처럼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별'을 통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환기하고 있는 시이다. '저녁에'의 화자는 '별'과의 교감을 통해 고독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길 기원하고 있다. 한편 '별을 헤는 밤'의 화자는 '별' 하나 하나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새겨 넣으면서 자신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어린 시절처럼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아름다웠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순수한 이상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롭고 괴로운 세계로 변해 버린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언덕 위에 쓴 이름자를 흙으로 덮어 버린다.

 

 

희망의 문학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 (전략) 
김광섭의 이 시엔 별과 내가 교통하는 시적 공간이 있다.
그 시적 공간은 한없이 밝으면서 또 한없이 어두운 그런 공간이다.
모든 인공적인 문명은 사라지고, 시간도 사라진, 그러나 깊디깊은,
맑은 샘물이 출렁이는 그런 원초적 공간이다.
우리는 순간 상상력이 된다. 온몸이 귀가 되어 소리들을 듣는다.
아니 온몸이 눈이 되어 형상들을 본다. 별의 눈썹들과 교통하는 
상상력이 된다. 모은 공간이 상상력이 된 당신들은 풍선처럼 떠오른다.
둥실 떠오른 당신들은 만난다.
잘디잘게 짓뭉개진 정신에 스스로 정신이 깨끗해지는 '시치료'를 하면서 말이다.

시적 공간은 시적 인식을 하게 하는 순간의 공간이다.
시적 인식의 순간, 공간은 우리 자신에게 우리 자신을 특별하게 보게 하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특별하게 보게 한다.
시적 인식의 순간, 공간은 당신에게 집히며 순간, 시간과 시간 사이의 
하늘에 둥그러니 걸린다.
그순간 우리는  특별한 자신의 모습과 특별한 너의 모습과 특별한 추억의 모습,
그리고 특별한 자기 미래의 모습도 본다.
우리는 그런 것 때문에 산다. 그 순간 때문에 산다.
모든, 먹이를 먹는 다른 동물들과 우리를 다르게 하는 바로
그 어떤 것 - 인식의 순간의 공간이다.
시적 인식의 순간의 공간,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가득 별로 차는 것을  본다.
당신은 결코 사라지는 별이 아니다.
다시 뜨는 저 구름 뒤에 있는 별이다.
부재하므로 존재하는 얼굴들.
시에는 분명 '그런 것'이 있다.
그런 상상의 내밀한 커튼이.
그 커튼이 있으므로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략) [출처 :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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