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 "화학조미료"같은 관념어 절대 "반입금지 명령"!...
8. 관념어를 버린다
위의 시를 인용한 김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시에서 관념어는 될 수 있는 대로 넣지 말아야 한다. 시에 관념어가 들어가면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넣은 것처럼 느끼해진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전문
이 시에는 이별, 서러움, 고독, 외로움, 서러움, 슬픔, 고통, 그리움 등 우리가 알아야 할 관념어 전시장 같다.
시에서 좋은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시에서는 부분의 좋은 표현을 희생시켜 전체를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분의 좋은 표현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면 시 전체가 실패하는 아픔을 맛본다. 아무리 좋은 표현이라도 시 전체를 위해서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관념어는 풀어서 써야 한다. 이를테면 ‘고독하다’ ‘외롭다’ 라는 표현 보다는 고독한 것을, 외로운 것을 비유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시에서 감칠맛이 난다.
관념어를 어떻게 풀어 쓸까? 사랑에 대한 시 한 편을 보자.
누가 몰래
내 마음을 훔쳐갔다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
토끼같이 귀여운
내 짝꿍이
훔쳐간 게 틀림없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신천희 동시 -『도둑』전문
이 시를 보면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한 마디도 안 들어갔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있다.
이번에는 이별의 아픔을 풀어 써보자.
서울에서
부산이 아무리 멀다지만
나하고
다툰 뒤 등을 돌려버린
짝꿍 얼굴보다야 더 멀까
돌아 선
짝꿍 얼굴을 마주보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걸
신천희 동시 -『흥!』전문
이 시에서도 헤어져서 아프다 이런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 헤어진 것이 얼마나 아픈지 드러난다. 관념어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풀어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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