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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짧고 슬픔은 길다. 생(生)의 대부분은 그 짧았던 사랑의 후일담이다. 사랑은 생의 가장 높은 곳까지 치솟았다가 슬픔의 가장 깊은 바닥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비극적 운명에 닿아 있다. 한순간 불꽃처럼 확 타오르는 것, 그 뜨거움에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것, 그 짧은 순간에 전 생애를 걸고 싶은 것, 그 간절하고 아름다운 '헛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취해 우린 덧없고 가여운 이승을 겨우 건너간다.
가수는 노래한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난다"고. 그렇다. 사랑이 지나간 뒤에 도대체 무엇이 남을 것인가. 목젖이 뜨거워지는 이 처연한 고백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비루하고 너절한 일상을 견딜 수 없을 때, 문득 구원처럼 사랑은 온다. 그때 세상은 은밀히 숨겨둔 황금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른다. 사소했던 모든 풍경이 "날 위해 빛나기" 시작하며, 사랑의 힘으로 세상은 재구축된다. 그러므로 사랑과 혁명의 낭만성은 같은 것이다. 실패한 혁명가처럼, 사랑이 끝난 뒤엔 찬란했던 영지(領地)를 잃고 망명객이 되어 떠돈다. 그 눈물겨운 폐허 위에서 가수는 탄식한다. "모든 것이 그 빛을 잃어버렸다"고. 사랑은 전부(全部)이거나 전무(全無)다.
양희은이 나이 마흔에 발표한 이 불후의 연가는, 처연하나 슬픔을 터뜨리지 않고 꾹꾹 눌러 노래한다. 음악 평론가 강헌의 표현대로 "청승의 습기가 제거된" 목소리로 사랑의 황홀함과 허망함, 그리고 사랑이 남긴 폐허의 쓸쓸함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노래는 귀로 들어와 가슴 한쪽에 슬픔의 웅덩이를 남긴다. 그것을 들여다보며 우린 밤새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
이 노래의 주인공 또 한 명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이병우다. 양희은의 가사와 노래도 아름답지만, 이병우의 고전적 멜로디와 유려한 연주는 단연 발군이다. 지금은 영화 음악가로 더 유명하지만, 조동익과 함께 결성했던 '어떤날' 시절부터 보여준 그의 작곡·연주 능력은 시대를 앞서간 비범한 것이었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이뤄진 미니멀한 편곡이지만 노래는 더없이 충만하다. 기타가 음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으면 보컬은 그 속으로 침잠한다. 보컬이 격정으로 치달으면 기타가 그 슬픔을 앞질러 가 공간을 넓힌다. 둘의 조밀한 대화로 만들어 낸 이 음악적 비경(秘境)은 깊고도 아늑하다. 이후에 많은 일급 가수와 성악가가 앞다퉈 리메이크 버전을 발표했지만, 그 누구도 원곡의 성채 근처에 이르지 못했다.
이 노래가 실린 양희은의 앨범 '1991'은 발표한 해를 제목으로 삼았다. 그때 양희은은 성공의 정점을 지나 세속의 기대와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마흔 나이였고, '어떤날'의 음악적 성과를 뒤로하고 해외 유학 중이었던 이병우는 거칠 것 없던 스물일곱 나이였다.
발라드와 댄스뮤직이 음악 시장을 양분하던 그해에,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단 두 소리만으로 채운, 시대를 역행한 명반 하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모든 트랙이 투명한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이 음반은, 노래의 본령이 쇼가 아니라 자기 성찰임을 새삼 일깨웠다.
사랑은 영원히 치정이다. 학습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막무가내의 것이다. 노래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이르는 길은 아득하고 멀다. 누군가의 곁에 있어도 외롭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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