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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목화씨"가 호랑이를 먹어버리다...
2017년 02월 18일 18시 18분  조회:3916  추천:0  작성자: 죽림

한반도 생태, 조선시대 크게 변화… 경작지 개발로 호랑이 살 곳 잃어
야생동물 수 줄고 가축 수는 증가, 급증한 소 때문에 전염병 돌기도
"과거 알아야 환경 위기 극복 가능"
 

조선의 생태환경사 책 사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 푸른역사 | 364쪽 | 


"이제부터 한 사람이라도 호랑이 때문에 상하는 백성이 있다면 너희에게 죄를 묻겠다!" 1402년, 지방 수령들에게 호통을 치는 조선 태종의 목소리엔 위급함이 담겨 있었다. '마마' '전쟁'과 더불어 옛날 어린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던 '호환(虎患·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은 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경작지를 넓히려는 인간이 서식지를 지키려는 호랑이에게 역습당하는 사고가 수시로 생겨났던 것이다.

조선 왕조는 태종 때부터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문 군사를 양성해서 호랑이 잡기에 나섰다. 호랑이 입장에선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사실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 말 문익점이 가져 온 목화씨 때문에 면포 수요가 늘어나면서 빈 땅들이 속속 밭으로 변신했다. 야생동물이 어슬렁거리던 냇가 무너미(범람원)는 15~16세기에 점차 경작지로 바뀌었고, 17~19세기엔 고산지대의 평탄지와 완경사 지역이 화전(火田)으로 개발됐다. 야생동물이 마음놓고 살 만한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17세기 초까지는 전국에서 매년 1000마리 정도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할 수 있었다. 출산 주기와 증식률을 따져 계산해 보면 당시까지 호랑이와 표범은 4000~6000마리 정도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서 영조 즉위년인 1724년에는 각 군현에서 호피와 표피를 바치게 하던 제도를 폐지한다. 호랑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의미다. 호랑이 없는 골에 새로 왕노릇하는 동물도 출현하는데, 18세기 후반에는 주로 몽골 초원 지대에 살던 늑대가 한반도 곳곳에 많이 나타난다. 20세기 초 한반도의 호랑이는 약 20마리에 불과했고, 지금은 절멸했다.
 
20세기 초 조선 포수가 포획한 호랑이를 깔고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호환을 막기 위해 호랑이 사냥 전문가를 국가 차원에서 양성했고, 이는 호랑이 개체 수 감소의 한 원인이 됐다.
20세기 초 조선 포수가 포획한 호랑이를 깔고 앉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호환을 막기 위해 호랑이 사냥 전문가를 국가 차원에서 양성했고,
이는 호랑이 개체 수 감소의 한 원인이 됐다. /푸른역사

조선시대를 다룬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이 연구서는 무척 새롭다. 사람 대신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중심에 놓은 저작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사 연구로 한국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서울대에서 수의과학·역사학 학제 간 연구에 참여했고, 생태환경사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그는 이 책에서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산업화가 시작된 20세기에 들어와 망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에 쐐기를 박는다. 이미 15~19세기 조선시대에 이 땅의 생태 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는 얘기다.

사람 때문에 바뀐 환경은 또 다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한번 환경이 바뀌면 이전과 같은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연구의 근거 중 대부분이 '기록의 왕국'이라 할 조선의 각종 문헌인 점도 흥미롭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공식 기록은 물론 '임하필기' '산림경제' '수운잡방' 같은 개인 저술이 다양하게 응용된다.

예를 들어 15세기의 임목 축적량(단위 면적당 살아있는 나무의 부피)을 추산하기 위해 저자는 '경국대전'을 조사한다. 관청인 사재감·선공감에서 1년에 거둬들인 땔감의 양과 이 관청들이 나무를 가꿔 벌채하던 시장(柴場)의 면적을 따지고 땔감 채취 주기를 60년으로 했다. 그 결과 임목 축적량은 1㏊당 600㎥ 이상이었던 것으로 계산됐는데, 2010년의 임목 축적량이 1㏊당 125㎥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풍성한 산림이 존재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 1910년 조사에서는 15세기의 7%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환경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했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줄어든 반면, 농사에 꼭 필요한 가축은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선 초만 해도 2만~3만 마리 정도였던 소는 16세기에는 40만 마리가 됐고, 17세기엔 100만 마리에 이르게 된다(2010년 현재 국내 소는 268만 마리). 소는 누가 키우나? 농민이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소는 부와 권력의 상징에서 보편적 농업의 동반자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가축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미생물계에도 변화가 생겨나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소 때문에 번성한 홍역과 천연두는 숱한 인간을 고통에 빠뜨렸다, 저자는 기후변화, 종(種) 다양성의 감소, 바이러스 변이 등 현재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과거 생태 환경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위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현대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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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중농 정책으로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절멸의 길로 들어섰고 반대로 소의 수는 늘었다. 생태와 삶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은 맹호도. 자료사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 김동진 지음 / 푸른역사 

왕의 이름만 외던 역사 공부가 당대를 살아냈던 다양한 인물 군상으로, 다시 그 시대를 만들어낸 정치·사회 풍경을 재조명하는 방향으로 깊어졌고 넓어졌다.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정치·사회를 포괄하는 더 큰 개념인 ‘생태환경’의 관점으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보는, 깊고 넓어진 역사서다. 생태환경 관점으로 조선을 봐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공유된 역사 전통 중 대다수는 15∼19세기에 새롭게 창조된 기억”이며 “필요한 자원의 대부분을 주변 자연환경에서 얻어야 했던 사람들이 창조한 문화”가 생태환경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생태환경을 이해하면 조선을, 하여 오늘 우리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환경사를 통해 한국사회경제사를 재정립”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역사학자 김동진은 프롤로그에서 고려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가 조선과 동아시아 역사를 바꾸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힌다. “바람이 잘 통하면서도 질긴 면포로 만든 옷”은 남자들의 활동성을 높였고, 바느질과 씨름하는 여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였다. 돈 많은 자들은 기능성·보존성이 뛰어난 면포로 부를 축적했다. 면포로 더 넓고 큰 돛을 만들면서 조선의 배는 커졌고 해상교역을 확대했다. “일본과 여진은 국가적 자원이 된 조선의 면포를 구하는 데 사활”을 걸 정도였다. 여진과 일본을 제어하는 외교력의 원천은 면포였다. 면포 수요가 확대되자 한반도의 생태환경은 일대 변화를 맞았다. 하삼도의 산림지대 중 목화를 재배하기 적당한 곳은 모두 밭으로 바뀌었고, 함경도에서는 논에 목화를 재배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야생동물들은 서식처를 잃어버렸고, 이에 따라 사람·가축·야생동물의 접촉이 증가하면서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다. 목화씨로 인한 조선의 생태환경 변화 외에도 이제껏 몰랐던 숱한 비밀들이 ‘조선의 생태환경사’에 담겨 있다. 

저자는 먼저 야생동물과 가축으로 조선의 생태환경을 조망하는데, 애초 한반도는 “범과 표범의 땅”이었다. 인간을 제외한 최상위 포식자로서 산천을 누빈 것이 범과 표범이지만 조선 개국 후 이들은 “절멸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조선은 “백성은 하늘이었고,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은 먹을거리”라는 인식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농사와 가축 사육이라는 생산경제 체제”, 즉 중농정책을 추진했다. 논밭 면적을 늘리면서 “황무지 혹은 산림천택”은 줄어들었다. 은거할 곳이 사라진, 하여 먹이마저 줄어든 범과 표범은 민가로 내려와 소 등을 잡아먹었다. 조선이 국초부터 포호(捕虎) 정책을 실행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범과 표범이 “죽어서 남긴 가죽”을 탐한 권세자들로 인해 산천을 주름잡던 두 동물의 절멸은 앞당겨졌다. 반대로 노동력의 상징인 소는 대폭 늘어났다. 15세기 초 2만∼3만 마리였던 소의 사육 마릿수는 18세기 후반 100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났다. 소의 증가는 농업의 변천사와도 밀접한데, 500년 조선의 생태환경은 물론 최근 구제역 사태에서 보듯 21세기 한국의 생태환경사에도 큰 영향을 준 셈이다. 

생태환경의 변화는 곧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내포한다. 그런 점에서 한 장을 헐어 미시생태, 곧 우리 선조들의 먹거리 변화와 전염병 등의 양상을 다룬 것은 의미 있는 구성이다. 누룩과 김치, 간장과 된장, 고추장, 식초의 변화와 쓰임새, 그것에 얽힌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연이어 다룬 전염병도 관심을 둘 만하다. ‘무너미’ 땅 개간은 부작용도 상당했는데 습한 토양 조건에서 모기류가 집단 서식하며 말라리아를 일으켰다. 수인성 세균인 병원성 살모넬라균과 시겔라균은 장티푸스와 이질의 발병률을 크게 높였다. 가족과 진배없었던 소는 홍역과 천연두를 사람에게 옮겼는데, 기록에 따르면 숙종 33년 함경도에서만 홍역으로 “1만 수천 명”이 죽었다. 이처럼 생태환경의 변화는 인간을 포함해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에 크고 작은 이익과 손해를 주었다. 기록을 꼼꼼히 살펴 생태환경을 통해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는 조선의 실제 풍경을 소개하고 있어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여타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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