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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재료 공급자, 독자는 그 퍼즐맞추는 려행자
2017년 02월 19일 10시 03분  조회:2278  추천:0  작성자: 죽림

그리려는 시쓰기 

강사/윤석산 


둘째로, 말하려는 시와 달리 리듬화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듬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려는 시를 쓸 때는 독자들이 시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려면 무엇보다 리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지는 곰곰이 생각하며 읽을 때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리듬을 강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아, 그럼 이미지화 방법을 쓴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이런 시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까요? 

여울목에 몰린 은어(銀魚) 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애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뚸어나 보자 
강강수월래. 
- 이동주(李東柱), [강강술래] 중에서 

이 작품에는 <언제>·<어디서>에 해당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 연 모두가 시각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지만, 첫째 연은 정적(靜的)이고, 둘째 연은 동적(動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셋째 연은 청각과 시각을 결합시킨 공감각적 이미지로서 둘째 연보다 더 빠른 동적 이미지로 짜여져 있고, 넷째 연은 후각적인 이미지와 셋째 연보다 더 빠른 이미지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달 밝은 밤 반짝이는 잔물결을 헤살대며 오르는 은어떼가 보이고,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마주 잡은 손들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시각 : 청각 : 후각>, <정적 : 동적>인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언어로 자기 밖의 대상을 그리는 작품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이 있습니다. 파운드(E. Pound)가 이미지즘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자기 동료들을 비판했듯이,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로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시인의 생각을 추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을 그릴 때는 되도록 낯선 것을 보조관념으로 택해야 한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자면 이미지스트들이 시에서 추방했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사상과 감정은 보여줄 수 없는 관념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과 유사한 어떤 사물을 비유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에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원관념(tenor)>, 바꾸어 말하는 것은 <보조관념(vehicle)>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원관념을 , 보조관념을 라고 할 경우, 서로 다른 것을 동정화(同定化)하면서 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의 유형은 와 의 관계에 따라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형으로는 우리가 흔히 은유(metaphor)라고 부르는 <치환은유(epi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유형으로는 상징(symbol)이라고 부르는 <확장은유(extensive metaphor)>, 세 째 유형으로는 원관념을 숨긴 여러 개의 치환은유를 비인과적으로 나열한 <병치은유(diaphor)>를 꼽을 수 있습니다. 종래 시론(詩論)에서 별개 유형으로 꼽아온 <직유>·<의인법>·<대유>·<제유>는 치환은유의 하위 유형에 속하고, 알레고리(allegory)는 치환은유와 확장은유의 중간 유형에 속합니다. 

치환은유는 다시 보조관념이 하나냐 여러 개냐에 따라 <단순치환은유>와 <복합치환은유>로 나누고,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났느냐 숨겨졌느냐에 따라 <현시형 치환은유>와 <잠재형 치환은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어떤 성질을 매개개념으로 삼아 연결하느냐에 따라 <개인적 상징>, <자연적 상징>, <문화적 상징>, <원형적 상징>으로, 병치은유는 병치한 자질들의 속성에 따라 <리듬 병치>, <이미지 병치>, <에피소드 병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확장은유는 보조관념으로 내세운 사물의 의미 가운데 시인이 말하려는 것과 같은 것을 골라 쓰는 방법으로서 치환은유의 기법만 터득하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치은유는 시인이 제시한 모티프들을 독자 스스로 연결하여 의미를 창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서, 앞의 두 유형과 전혀 다른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병치은유에 대해서는 언어로써 사물을 창조하는 방식을 논의할 때 설명하기로 하고 이 강의에서는 치환은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비유가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서, 보조관념은 원관념보다 더 쉽고 평범하며 구체적이고 유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원관념과 비슷하되, <관념→사물>·<추상→구상>·<특수→보편>으로 바꿔야 한다고 믿습니다. 관념보다는 사물이,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특수한 것보다는 보편적인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다음 작품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광화문(光化門)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 서정주(徐廷柱), [광화문]에서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 김춘수(金春洙), [나의 하나님]에서 

ⓒ내 침실(寢室)이 부활의 동굴(洞窟)임을 
너는 알련만 
- 이상화(李相和), [나의 침실로]에서 

ⓐ에서는 "광화문"이라는 구체물을 "종교"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비애"라는 추상적인 관념과 "살점"이라는 구체물로, ⓒ에서는 "침실"이라는 구체물을 "동굴"이라는 구체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①<추상→구상>, ②<구상→추상>, ③<추상→추상>, ④<구상→구상> 등 가능한 경우를 모두 택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유사하되 전체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바꾸는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상대가 내 말을 유의해 듣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법을 가지고 따져보기로 합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지나가는 소리로 요구해도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한 십년쯤 지난 뒤에는 "여보! 나 힘들어 죽겠어, 도와줘."해도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하고 건성으로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닙니다. 아내가 늘 잔소리를 하여 남편에게는 자동화(自動化)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소연 대신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얗게 웃다가 빤히 쳐다본다고 합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놀라 "왜? 왜?"하고 물을 것입니다. 남편이 이와 같이 놀라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에 한 사람인 쉬클로프스키(V. klovski)가 말했듯이, 늘 같은 방법으로 말하면 <자동화>되어 그냥 넘어가지만, 하이얗게 웃으며 침묵할 때는 <낯설게 만들어(defamilarization)> 긴장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유형은 <산문적 비유(prosodic metaphor)>와 <시적 비유(poetic metaphor)>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산문에서는 <어려운 것→쉬운 것>으로, <추상적인 것→구체적인 것>으로 바꾸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시에서는 습관적으로 반응(stocked response)하지 못하도록 잘 아는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시적 비유를 택해야 합니다. 위의 작품에서 채택한 비유들은 모두 시적 비유로서, 독자들의 원활한 독서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장치(deliberately impeded contrivances)입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비유가 모두 알기 쉬운 것을 난해한 것으로 부꾸는 것이라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구요? 그럼 다음 문장들을 비교해 보세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빨갛게 핀 한 송이 꽃이다. 
ⓒ그 여자는 아스라한 꿈길의 능선(稜線), 가뭇가뭇 내리는 어스름을 타고 하늘하늘 피어나는 한 송이 산나리이다. 

어떼요? ⓐ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저 아름답다는 의미 이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지요? 그리고 정신이 아름답다는 건지 외모가 아름답다는 건지, 젊은 여자인지 나이든 여자인지 알 수 없지요? 

그러나 ⓑ는 좀 젊은 여자같다는 느낌이 들지요?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구요. 그리고 ⓒ는 신비롭고, 가냘프며,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여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면 될 것을 "꽃"이라고 바꾸고, 그리고 어둠이 내리는 꿈길 속의 산등성이에서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은 누구나 생각해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낯설게 만드느냐구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생각할 자료만 제공할 테니 내 생각을 알아 맞춰보라는 식으로 말하면 돼요.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구요? 그럼 위 예문을 이용하여 제가 쓰는 비결을 알려드릴 테니 그대로 해보세요. 우선 <아름다운 여인→꽃>으로 바꿔 보세요. 이 정도는 누구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겠지요? 그럼 다시 한번 바꿔보세요.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꽃→어둠 속에 하늘하늘 피어나는 산나리꽃>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그 무엇으로 바꾸고, 그래도 부족하면 또 바꾸는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으로 계속 치환하면서, 독자가 시인이 말하려는 원관념을 파악할 둥 말 둥 한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제 방식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유의할 게 있어요. "그녀의 눈은 호수 같고, 입은 앵두 같다"는 식으로 각 부분을 따로따로 바꾸지 말고, "그녀는 호수다"라든지, "그녀는 앵두다"라는 식으로 전체를 그 무엇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장식적 비유(decorative metaphor)>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나면 나머지는 다시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전체를 바꾸는 <본질적 비유(essential metaphor)>는 이야기 전체가 낯설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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