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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은 절대로 포기할수 없다...
2017년 03월 23일 19시 33분  조회:6002  추천:0  작성자: 죽림
습근평총서기께 장고춤을 선보인 23세 조선족청년
(ZOGLO) 2017년3월22일 
인물이름 : 박경무

“춤은 내 운명”, 습근평총서기께 장고춤을 선보인 23세 조선족 청년

지난 2월 24일,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제3채널 “무용세계” 프로에서 소고춤을 추는 한 청년의 무대를 우연히 접했다. 조선족인듯한 모습에 이끌려 자막정보에 따라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을 찾았다. 그리고 취재중에 알게 된 또 한가지 빅뉴스! 수소문 끝에 찾아간 TV속 주인공이 지난해 8월 중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때 우리민족 무용의 상징 장고춤으로 클로징무대 한가운데를 근사하게 채웠던 출연자와 동일 인물이였던 것!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디선가 잔잔한 위안이 일었다.

그 이야기속으로 안내한다.

▲ CCTV 3채널에서 방송된 중앙민족대학교 졸업공연 독무 흥소리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에 재학중인 박경무군, 그가 바로 지난해 8월 “조선족 출연진”의 명찰을 달고 중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 참가했던 23세 남무용수다.

중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준비를 앞두고 장고춤 안무를 짜달라는 교수님의 요청을 받고 박경무군은 민족가무단을 찾았다. 현장에 가보니 함께 무대에 올라야했던 상황, 그렇게 박경무군에게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을 대표해 소수민족 최대의 문예공연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들었다.

▲ 제5회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개막식

《幸福鼓·中国梦》

여러민족 솔로 무용수들과 함께 박경무 (우)

▲ 제5회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페막식

《阿里郎随想》 박경무 (좌)

북경에서 가장 무더운 시기인 8월, 박경무군은 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을 위해 학교체육관에서 전국의 민족대학 학생 800여명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50일간의 집중 연습에 돌입했다. 땀으로 질퍽한 체육관 바닥에 미끌어 넘어져도 다른 출연자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밟고 지나갈 정도로 방대한 수의 출연진이였다. 대형 공연인지라 넘어져도 아파도 지체할 시간없이 재빨리 대오에 합류해 동작의 순서를 따라야 했고 그속에서 박경무군도 례외는 아니였다. 연습이 끝난뒤 퍼렇게 멍들고 찢겨 피자국이 남은 다리를 보며 연습중에는 그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박경무군 자신도 놀랐다.


▲ 제5회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페막식 박경무 (좌)

총서기의 앞에서, 그것도 어린 나이에 대선배와 호흡을 맞추며 조선족의 대표적 무용인 장고춤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뿌듯한듯 경무군은 그때의 설레임을 어조에 그대로 담아냈다.

“총서기의 앞에서 춤을 춘 것도 엄청난 영광이였지만 전국적인 큰 무대에서 저의 구상을 입힌 장고춤을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졸업공연 때 아버지랑

아버지는 연변오동팀 전 축구선수 박문호씨

지금은 아들의 무용수 삶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 하는 아버지다

춤에 대한 박경무군의 열정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천생 춤꾼”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릴 것 같았다. 축구선수 출신의 아버지는 아들 역시도 무용수가 아닌 축구선수로 키우려했지만 공이 멀리 굴러가면 주어오길 그렇게도 싫어하던 아들을 보며 마음을 접었다. 아버지가 무용을 반대했던 리유도 그랬다. “공도 줍기 싫어하는 애가 무슨 무용을 한다고!”

▲ 졸업공연때 고모와 함게

연변대학예술학원 무용계 박설화교수 (우)

“경무가 11살의 나이에 저를 찾아와

무용을 배우겠다고 할 때 한사코 말렸습니다.

지금은 경무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항상 이끌어주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빗나갔다. 현재 연변대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고모의 모습이 어린 경무군에겐 가장 근사하고 아름다워 보였단다. 고모의 무용수 인생은 경무군에게 나침반으로 작용했다.

춤에 일가견이 있었던 친할머니의 장단을 들으며 자라온터라 그 친숙함이 무용을 시작할 때 경무군에게 큰 도움이 되였단다. 그래서인지 대중가요나 팝댄스에 열광하는 90년대이후 출생자 답지않게 우리 민요를 들으면 괜스레 흥이나고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는 박경무군이다.

▲ 2015년 1월 《天天向上》프로그램 록화 현장


▲ 2015년 연변TV음력설문예야회 박경무 (가운데)

전통무용의 매력에 사로잡힌 후엔 정규적인 리론과 실기수업을 받고 싶어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에 지원했다. 연변예술학교에서 4년, 중앙민족대학교에서 보낸 4년의 시간까지 합치면 경무군이 무용의 길을 걸은지도 올해로 8년철에 접어든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무용에 뛰여들었들 땐 우리민족의 전통무용이 이렇게 힘든줄을 몰랐다는 박경무군, 멋모르고 애착으로만 시작했을 때는 호흡법도, 정서도 모른채 무작정 모방만 했었다. 하지만 8년의 연습시절을 지나온 지금의 박경무군에겐 나름의 소신이 생겼다.

▲ 취재를 받고 있는 박경무군

“우리민족 전통무용의 정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갈수록 많은 대학의 무용학원들에서 조선족 전통춤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민족의 춤이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우리춤에는 우리 민족만의 멋과 맛이 있습니다. 춤을 추는 사람이 지닌 마음과 생각, 흥과 신명이 어우러져서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민족무용을 하면서 아무리 본따도 완전히 소화할 수 없는 게 바로 우리민족의 전통춤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민족의 춤은 모방한다고 해서, 따라서 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무대활동을 많이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족의 전통무용이란 이런것이다! 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 2014년 제1회중국조선족무용대회 금상

▲ 중앙민족대학교 건교 65주년 기념무대에 선 박경무군

남들보다 빼여나게 잘해서가 아니라 조선족이기 때문에 그 정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사랑받고 더 “애용”되고 있으며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박경무군, 대학에 와서 여러 민족, 여러 쟝르의 춤을 접한 뒤로 조선족 전통무용의 진미를 더 깊이 알게 되였고 그만큼 전통무용에 대한 박경무군의 사랑도 날이 갈수록 애틋해져갔다.

▲ 조선족 무용가 지복자 교수님으로부터 교습을 받고 있는 박경무군

▲ 경무군의 하루 일과

대회 준비를 앞둔 2개월간은 아침 6시에 눈을 떠 운동장 15바퀴를 시작으로 잠들기 전까지 연습한다. 아무리 아파도 연습에는 빠지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과도한 연습 때문에 인대를 다치기도 했었다. 해외 공연때면 시차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야한다. 실수없는 무대 위 화려한 모습뒤에는 경무군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이 있고 우직한 의지가 있었다.

“무용수란 그런것 같습니다. 힘이 빠지다가도 무대에 오르면 열정이 솟구쳐요!”

그 열정의 한모퉁이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깊숙히 자리해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머니는 경무군을 위해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계신다. “밥은 먹고 연습하니? 시간날 때 영상통화 할가?” 긴 시간의 연습에 아들의 몸이 축날가 항상 걱정인 어머니다. 지난해 서울국제무용대회에 오른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처음으로 무대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감상평은 특별히 없었지만 공연후 아들의 공연 사진을 지인들에게 돌리는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경무군에겐 큰 기쁨이였다. 경무군에게 그 무대는 어머니께 드리는 보답이자 지난 7년간 아들에게 몰부어온 어머니의 정성과 수고에 대한 보상이였다.

▲ 서울국제무용대회 때 어머니와 함께

“민족무용은 항상 저의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하루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걸로 보아 저에게 춤은 ‘밥’과 같은 존재라고 할가요? 하하! 전통무용 하면 보통은 녀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떠올리실텐데요, 그건 아마 남성 무용수들이 적어서일거에요. 전통에 현대미를 입힌 남무용수의 박력있는 춤을 보시면 색다른 멋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박경무군은 지금까지 한번도 포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활발한 무대활동으로 우리민족 전통무용의 정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로써 우리민족의 더 많은 남무용수 지망생들에게 힘을 주고싶은 것이 현재 경무군의 바람이다. 그가 제시하는 “꿈의 로드맵”에는 민족무용의 발전과 계승이 늘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 최월매 교수 (좌)  안무가 김영삼 선생님 (우)

▲ 소고춤 작품을 준비중인 박경무군

현재 경무군은 전통과 현대미가 어우러진 “소고춤”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경험을 많이 쌓아 향후에는 단독 작품활동도 하고싶다며 작품창작에 대한 욕심도 살짝 내비쳤다. 우리민족의 젊은층 남무용수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많은 대학교에서 민족무용 전공을 설치하고 있지만 전공자 대부분이 타민족 학생이다. 취재를 마치고 다시 연습에 몰입하는 경무군의 모습을 창문너머로 들여다보노라니 어떤 든든함과 위안, 희망의 감정들이 창문틈으로 전해져왔다.

중앙인민방송국 구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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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새납소리 어찌 취하지 않으리...
(ZOGLO) 2017년3월23일 16시34분    
인물이름 : 김호윤
나의 새납도 새 주인 찾아야 할텐데.
문화예술이 빠르고도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이제 누군가는 전통을 외면한다. 전통 자체가 현대인의 정서에 공감을 주지 못하기때문이란다. 또 누군가는 가슴 한가득 그 외면받은 전통을 그러안고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쏟아낸다.

 

“나는 새납에 미쳤다!”

여기, 이 빠른 시대의 변화에서 잠시 비켜선 한 새납연주자의 이야기로 우리의 전통악기인 새납이 만들어내는 가락에 귀를 기울여 본다.

연변가무단에서 장새납 연주자로 있는 김호윤(59살)씨는 자신의 40년 새납연주인생에 대해 매일매일이 “설렘”이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새납이 그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산전수전 다 겪으며 반세기 넘게 살아온 사람이 매일 설렜을가.

“그냥 놀러만 오세요. 아이고, 인터뷰는 안할래요. 새납 부는 사람이 새납만으로 말하면 됐지, 뭔 다른 할말이 있겠어요.”

인터뷰하려고 전화를 넣었더니 무작정 사양을 하던 그가 그의 작업실을 찾은 기자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한다. 그가 꿈에서도 잊지않는다는 새납을 꼭 부여잡은채로 말이다. 거절은 했지만 전통악기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뭐라도 해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차라 기자의 방문이 내심 반가웠던 눈치다.

고향이 왕청인 그의 새납인생 40년은 한번의 우연에서 출발했다.

그저 그의 고향으로 연변가무단이 공연을 왔던 그날,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석산선생의 새납연주를 들은 그 한번이 그를 지금의 새납 “미치광이”로 묶어두는 “끈”이 됐다.

“그 수많은 악기가 내는 가락들중 오로지 새납소리만이 제 귀를 파고들었답니다. 날아갈듯 가벼우면서도 애절했고 또 신명나는 독특한 음색이였죠. 그 가락을 뭐라고 말할가. 피를 토하듯 외친다고 할가? 애간장이 끊어질듯 아팠다고 할가?”

그 이후부터 어린 김호윤은 기차로 왕청에서 도문으로, 도문에서 다시 연길로 오고가면서 새납을 배우기 시작하다 연변예술학교 대학반에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연변가무단에 몸을 담그면서 전국 방방곡곡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납은 오롯이 그의 삶이 되여 그동안의 세월을 견뎌왔다.

 

우리가 접하고있는 “장새납”

우리 민족의 전통새납은 “태평소”라고도 불리는데 목관부류에 속하며 리드를 가진 세로 부는 취주악기이다. “태평소”는 조선반도에서 주로 궁중음악에 쓰일 때 부르던 이름이고 민간에서는 “호적”, “새납”, “쇄나”, “철적”, “랄라리” 등으로 불리웠다.

지금 우리가 접하고있는 새납은 바로 장새납, 조선에서 개량한 새납이다. 초창기에 사용했던 전통새납은 음색이 예리하고 짙으며 음량이 크고 통제가 힘들었다. 전통새납은 음량이 큰 장점으로 인해 농악, 무당음악, 군악 등 실외음악에서는 빠질수없는 악기로 사용되였지만 실내에서는 다른 악기들과의 조합이 어려워서 독주곡을 제외하고 일반합주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이러한 전통새납의 단점들을 극복하고저 1972년에 김석산을 위수로 한 민족예술인들은 12평균률로 조률되고 전통새납과 조선장새납의 장점을 보완하고 단점은 극복시킨 연변개량새납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연변새납은 리드가 크므로 공기량의 차이가 크고 또 악기의 음공도 크기때문에 연주에서 가까운 음들의 진행은 쉬우나 4도조약의 진행에서부터는 음의 정확도를 확보하기 힘든 문제가 존재했다.

그 단점때문에 연변새납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고 현재 보급된 새납은 바로 날로 발전하는 현대음악의 수요에 의해 조선에서 1970년대에 전면적인 민족악기개량을 시작해 만들어낸 장새납이다. 장새납은 전통새납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개량악기로서 12평균률로 조률되였을뿐만아니라 음역도 크게 확대됐다.

우리 전통악기 대부분이 국가급, 성급 및 주급 무형문화재에 등록되여있지만 장새납은 개량새납이라는 리유로 등록이 거부됐다.

 

장새납의 미래는 청춘들에게

서양악기의 습격으로 우리의 전통악기는 이미 저만치 밀려난 상황, 서운함이 몰려올 때도 많다는 김호윤씨이다.

“전통악기중에서도 특히 새납은 불고싶어도 시장수요가 많지 않다보니 아무리 악기시장을 둘러봐도 제대로 된 새납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김호윤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민속악기가 내는 소리에 공감할수 있는 정서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소리와 함께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새납연주자들이 설만한 무대가 점점 좁혀지면서 “밥벌이”도 안된다고 점점 외면을 받고있다.

현재 현역으로 뛰고있는 기성세대 새납연주자는 김효윤씨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통을 이으려는 청춘들의 발걸음도 뜸해진지 오래다. 지금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새납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단 3명뿐, 그들마저도 어려운 상황에 이길을 계속 걸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우리 전통음악문화의 미래는 우리 청춘들이 얼만큼 관심을 갖고 이어가는지에 달려있어요. 전통을 잇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이 이어져야죠.”

결코 소박하지 않은 김호윤씨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내 그는 혼자말을 하듯 나지막이 얘기를 이어간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수 없는거예요. 언젠가는 고음을 내던 내 새납소리도 점점 약해져 숨이 차 더이상 연주를 할수 없게 되는 날이 올거예요. 그때에는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제 이 새납이 새 주인을 찾아야 할텐데…”.


연변일보 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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