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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시어때문에 몇달간 고민 고민해야"...
2017년 08월 17일 02시 54분  조회:2140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즐겨 거닐던 서강(西江) 일대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창냇벌을 꿰뚫고 흐르던 창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릴 만큼, 오늘날 신촌(新村)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인 정병욱씨가 1976년 《나라 사랑》23호에 발표한 회고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 가운데 시인의 시작 태도에 대한 언급이 문득 눈길을 끈다. 

"그는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또 다른 고향>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하지를 않았다." 

국어 사전에는 '풍화 작용'의 뜻을 "지표의 암석이 공기·물·온도 따위에 의해 차츰 부서지는 작용. 결정수(結晶水)가 있는 결정 따위가 공기 중에서 차츰 수분을 잃고 부서져 가루로 변하는 작용"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십대 청년 시인으로서 과학에 주로 사용되는 말인 '풍화작용'이 지닌 미약한 정서의 함축성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이 충분히 짐작된다. 그는 단지 시에서 그 말 한 마디만 고쳐보려 하다가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 그 시어 하나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가령 그 한 줄의 시행을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으로 바꿔 썼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검은 바람'이 '어둠'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풍화작용의 의미에도 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울러 '검은 바람'과 '백골'의 색채 이미지의 선명한 대비도 본질적 자아를 상징하는 백골과 현실적 존재인 '나'와의 갈등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데도 도움이 될 법하지 않을까.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쳐 써 본 「또 다른 고향」 

윤동주의 대표시 중의 하나인 <간>의 마지막 연에서도 역시 미숙한 시어 하나가 눈에 걸린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은 "액체 속에 섞인 작은 고체가 밑바닥에 가라앉음, 또는 그 앙금"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푸로메디어쓰가 그렇게 작은 고체 덩어리밖에 안 될까. 
이십대 청년 윤동주가 <또 다른 고향>, <간> 두 편을 요즘의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잡지의 신인상에 응모한다면… 아마 낙선하고 말 것이다. '풍화작용', '침전'과 같은 적확성(的確性)이 결여된 표현이 치명적 결점으로 지적되었을 게 뻔하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맷돌을 지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푸로메디어쓰. 

라고 퇴고해 볼 것을 청년 윤동주에게 나는 권하고 싶다. 



현대시는 문자의 옷을 입어야만 그 생명을 얻는다. 
구어(口語)가 아니라 문어(文語)로 표현되는 점이 고대의 시가와 현대시가 다른 차이점일 것이다. 
문장의 규칙이 현대시에서도 올바르게 지켜져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바른 문장 표현이 언어 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근래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에서도 비문(非文)과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경계하는 문제를 매년 출제하고 있다. 요즘 세인들에게 회자(膾炙)되는 널리 알려진 시에서도 그런 어설픈 문장이 이따금 발견된다. 

①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②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①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로 고쳐져야 바르고, 
②에서의 '群'이라는 한자는 '대열' 혹은 '무리'로 바뀌어졌으면 싶다. 

이 시 전체는 모두 한글로 쓰여졌는데 굳이 '群'만 한자로 쓴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시가 발표된 시대상과 관련해서 혹시 '軍'이라는 이음동의어를 연상시키기 위한 시인의 조심스런 배려였을까. 
이 시는 한두 군데의 작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눈물 나게 통쾌한 시임에는 틀림없다.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상영하며 애국심을 강요하던 그 시절에 특히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라고 한 냉소적 베이소스(bathos) 표현 기법은 감히 당대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으리만큼 훌륭하다. 

유명한 시가 단지 유명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신성 불가침의 턱없이 높은 평가와 옹호를 받는 일은 이제 재고돼야 한다. 좋은 점은 장양되어야 하며 좋지 않은 결점은 제대로 바로잡는 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시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어떠한 선입견도 배제하고 거울같이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작품을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시의 어법도 결국은 합리적, 보편적 상식과 바른 문장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기본을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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