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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 살아있을 때 리해하기와 죽어서 겨우 리해하기
2017년 09월 09일 00시 48분  조회:3092  추천:0  작성자: 죽림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서해성 “남성권력, 국가권력이 공모해서 마광수를 처단했다”

내용 인용시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7. 9. 8. (금) 18:00~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 김종배 : 우리 시대의 지식광대입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며칠 전에, 저도 소식 듣고 깜짝 놀랐는데 마광수 교수께서 세상을 등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참 가슴 아픈 소식입니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특별한 사고를 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직업이 작가였고 교수보다는 알려진 건 작가로 알려진 거죠. 작가였고, 작가라는 건 상상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상상력을 글로 옮겼다는 이유 때문에 사실 평생 동안 그 멍의 낙인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했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그때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났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 서해성 : 21년, 20몇 년 된 거죠.

▶ 김종배 : 하나하나 짚어갔으면 좋겠는데 일단 고인 마광수 교수는 어떤 분이었는지부터 정리 좀 해주시죠.

▷ 서해성 : 간명하게 말씀드려서 그 사람은 지식인이었고, 그런데 그냥 지식인이 아니었고 도전적 지식인이었죠. 대개 지식인이라는 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기존에 있던 지식들을 잘 정리하는 지식인이 있죠. 데이터 중심의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마광수는 그런 쪽보다는 거기에 상상력을 더 얹는 지식인이었죠. 그러니까 위험한 사람이죠. 그게 위험한 겁니다. 왜냐면 도전적이니까요.

▶ 김종배 : 그렇죠. 상상력이라는 그 단어는 지금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 깔려있는 거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사실 역사에 남는 지식인이라는 것은 데이터를 잘 모으는 편집자가 남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를 더 얹으려고 도전했던 사람들인데 그 도전이라는 것이 기성권력에서 보면, 특히 윤리적인 문제에서는 기성 윤리권력에서 보면 그건 퇴폐이고 용납하기 어려운 것인 거죠.


▶ 김종배 : 알겠습니다. 박사논문을 윤동주론으로 썼다고요?

▷ 서해성 : 네, 연세대학교 국문과 출신이기도 하고 연희전문 영문과 출신이지 않습니까? 윤동주라는 시인이요. 그러니까 연세대학교에서 윤동주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죠. 그 논문 어디를 봐도 거기에 이상하거나 예컨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데 외설스럽거나 기이한 문장이 있다든지 그런 것보다 논문치고는 서정적인 문장이 많이 들어있는, 논문은 그러기가 어렵잖습니까? 

▶ 김종배 : 논문하고 서정적인 문장은 뭔가 조금 안 맞는데?

▷ 서해성 : 안 맞죠. 이 양반은 기본적으로 감성이 넘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보통사람 같으면 대학교수가 되면, 홍익대학교 교수를 하다가 연세대학교 모교 교수가 되었죠, 그러면 대개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분의 상상력은 강단을 넘어서버린 거죠. 이럴 때 쓰는 말이 자기 상상력이 자기 집 지붕을 뚫고 위로 나간 거죠. 그러니까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 당시 한국이라는 게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성에 관한, 영어로 에로틱, 에로티즘, 그런 것들을 굉장히 금기시하는 태도가 한국에 있습니다.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것을 가령 페미니즘, 그렇게 해서 싸운 게 아니라 이분 혼자서 그걸 돌파하려고 했거든요. 

▶ 김종배 : 그래서 결국은 수사까지 받고 사법의 칼날이 겨눠졌던 것 아니겠습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또 하나 이 양반이 재밌는 게 기본적으로 개인으로 태어나서 개인으로 살다가 개인으로 죽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70년대 대학을 다녔지 않습니까? 그러면 70년대, 80년대에는 흔히 말하는 그 많은 서클, 동아리, 내지는 그런 습성이 잘 훈련되어 있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이분은 그런 것들을 통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어젠다를 세팅한 게 아니고 이분은 혼자서 그것을 짊어지고 한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보수적 장벽을 부딪쳤던 사람인 거죠. 

▶ 김종배 : 그 말씀을 풀면 군부독재하고 항거하다 보니까 전투적이 되고 오히려 그런 군사문화 비슷하게 가버리는, 

▷ 서해성 : 적을 닮아가는 거죠.

▶ 김종배 : 그렇죠.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그런데 마광수 교수 같은 경우 그게 아니라 철저한 개인이었다. 이런 말씀이시죠?

▷ 서해성 : 그렇죠. 그러다보니까 가령 보십시오. 제가 여기 나와서 얘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개인적 행위 같지만 어떤 면에서 동료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 김종배 : 작가시고, 

▷ 서해성 : 아니. 무슨 얘기냐면 사람들 설득하고 같이 가려고 하는, 마광수 교수는 그것보다는 자기가 생각한 나름대로 선언문을 먼저 발표해버리는 거죠. 사람들 뜻을 모아서 간다기보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 김종배 : 주변에서 같이 어울리면서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먼저 앞에 걸어가는, 스타일이, 

▷ 서해성 : 그렇죠. 우리가 가령 어떤 사드문제다,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러 명이 모여서 얘기하려고 하고 그런데 이분은 그런 계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성, 존엄성을 스스로 믿었고 타인에게도 그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마광수 교수 이야기하면 성의 담론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결국 소설 때문에 처벌받은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될 것 같은데,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이분이 갑자기 ‘즐거운 사라’를 썼던 것은 아니고요. 이분이 그전부터 그런 작업을 해왔거든요. ‘권태’, ‘광마일기’, 이런 경로를 거쳐서 이 양반이 흥분해서 일시적으로 자기의 성적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예컨대 그런 것 때문에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2천년 역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역사동안 성의 담론은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금기시대에 있는,

▶ 김종배 : 보수적이기보다는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 서해성 : 아주 이중적이죠. 보수적인 사회는 이중적입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통해서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이죠. 그런데 단지 성 노출만 했던 게 아니라 여자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자기가 갖는 거예요. 그전의 한국여성들은 성적, 설령 남자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대개 남성에 대해서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적극적인 거죠. 자기선택을 하고 그것을 마치 공부하듯이 그렇게 추구하는 행태를 보이게 된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못견뎌했던 것이고 여러 가지 사회적 고발, 법률적 고발까지 이어졌는데 이 양반은 자기가 쓴 소설에, 저도 그 당시에 읽어봤습니다만 문학에 대한 엄숙주의적 태도를 경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요. 또 제가 보기에는 거의 고의적으로 언어를 잘 세련되게 다루려고 하는, 왜냐면 제가 논문을 읽어봤는데 논문은 그렇지 않은데 외려 소설에서 이른바 세련미, 문학적 엄숙주의에 입각한 세련미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더욱 더 가볍게 쓰려고 하는 태도가 있었는데 그것도 이 양반이 생각할 때 제가 보기에는 한 문체방식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김종배 : 그런데 이때 나왔던 얘기가 저는 지금도 기억나는데, 외설 아니냐? 외설에 대해서는 사법적으로 칼을 들이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일각의 주장이 있지 않았습니까? 

▷ 서해성 : 물론입니다. 외설이 아무리 외설스럽다하더라도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무슨 얘기냐면,

▶ 김종배 : 우리는 보통 예술과 외설을 나눠서 보잖아요. 예술은 허용이 되는데 외설은 안된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 서해성 : 그게 큰 오해입니다. 외설이라는 것은 당대 통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 김종배 : 그 한마디로 정리해주시네.

▷ 서해성 : 그렇죠, 당대의 통념이죠. 지금 우리가 이 방송에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얘기는 조선시대 때는 금기였을 겁니다. 당대의 통속적 윤리에 기초하는 것이 외설이거든요. 신윤복의 그림들 같은 경우 그 시대에 정상적으로 유통이 되었을까요? 

▶ 김종배 : 진짜 그렇네.

▷ 서해성 : 지금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여줄 수 없잖습니까? 신윤복의 에로틱한 그림들은, 지금도 보여줄 수 없는데요. 

▶ 김종배 : 신윤복이 있었구나.

▷ 서해성 : 신윤복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있었죠. 일본 같으면 많은 그림들이 여자의 신체, 물론 그 신체들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의 부분도 있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관점이겠습니다만, 그랬던 거죠. 혹시라도 외설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생각은 바꾸시는 게 좋습니다. 외설이라고 하는 것은 당대의 기준치일 뿐인 거고 예술성은 사실상 거의 무관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광수의 문제는 어디 있었냐면 방금 제가 신윤복을 얘기한 것처럼 신윤복의 그림이 당시 정상적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고 사람들이 돌려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른바 그것을 춘화첩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포르노그래피를 얘기하는 겁니다. 하나로 보면 재미없기 때문에 첩으로 만들었다는 거죠. 책으로 만들어서 돌려보는 것을, 그림만을 묶으면 대개 그걸 첩이라고 그러는데 그렇게 했던 거죠. 가령 마광수가 청계천이나 그 당시 표현으로 세운상가를 통해서 유통시켰다고 한다면 법률적으로 재단 받지 않았을 겁니다. 

▶ 김종배 : 그냥 그렇게 취급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 서해성 : 네. 그냥 마치 하수도 취급을 하는 거죠. 그런데 마광수는 직업이 그냥 교수가 아니고 한국의 유명한 이름 있는 대학의 국문과 교수이고, 강사도 아니에요. 정식교수죠. 출판사도 정식출판사에서 책을 냈거든요, 당당하게. 그러니까 국가권력을 포함해서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적, 유교적 태도를 갖고 있는, 기독교적 엄숙주의를 갖고 있는 남성권력들인데요. 이른바 남근주의적 권력과 국가권력이 같이 공모를 하는 거죠. 공모를 해서 마광수를 처단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마광수를 마치 전염병 균을 보듯이 처리한 것이죠. 이런 생각에 대한 종자는 멸종시켜야 된다. 그런 식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어찌 본다면 대한민국의 금기라고 할까요, 이중성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을 했던, 그렇게 정리를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아주 간명하게 말하면 마광수가 왜 도대체 이런 짓을 했는가?

▶ 김종배 : 그러니까 더 되돌아오는 반정이 컸던 거라고도 읽을 수 있는 거죠. 구속까지 되었었죠? 

▷ 서해성 : 그렇죠, 감옥을 살았죠. 마광수 교수가 왜 그렇게 지탄을 받았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지금 털보선생이 얘기한 것과 똑같습니다. 정면으로 돌파했기 때문입니다. 청계천으로 유통되었으면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않았을 거예요. 공식적 출판, 그리고 누가 봐도 아는 사람, 요즘 말로 검색만 해도 나오는 명문대학 교수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거예요. 주류담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가차 없이 용서하면 안 되는 그런 성질이었다고 할까요?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같이 동조해준 거죠.

▶ 김종배 : 예를 들면? 

▷ 서해성 : 보통사람들이죠. 예를 들면 너무 많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왜 대중들은 그렇게 빨리 거기에 동의했는가, 언론도 같이 물론 동조했고요. 그 당시 노태우 정권 시기였거든요.

▶ 김종배 : 92년이었나?

▷ 서해성 : 네. 지금 그냥 말씀드려보죠. 대개 이렇게 외설문제가 나올 때는 권력이 위기에 있을 때입니다. 

▶ 김종배 : 그런가요? 

▷ 서해성 : 네.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권력이 자기의 외설을 가리기 위하고자 할 때, 그럴 때마다 나오게 되는데 생각해보십시오. 92년도는 어떤 때입니까? 91년도가 어떤 때입니까?

▶ 김종배 : 그렇죠. 그때 군신정권,

▷ 서해성 : 강경대 학생을, 명지대 학생을 전경이 때려죽이면서, 사실은 그때 노태우 정권 중대한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만들어냈던 것이 이른바 김기설 전민련 유서대필 조작사건이었죠. 명백하게 조작으로 밝혀졌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일반인 누구나 다 조작으로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유서도 문자로 만드는 텍스트일진데 그렇게 보면 문학의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거야말로 권력의 외설, 권력의 폭력을 가리기 위해서 만들어냈던 조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런 시기에, 노태우 정권 자체가 중대한 위기에 있었던 거죠. 그럴 시기에는 바로 자신들의 외설과 자신들의 폭력성을 감추기 위해서,

▶ 김종배 :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다른 외설 사건을 꺼내든다?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권력에 위신이 서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너무 손쉽게 거기에 동의해줍니다. 자유로운 시대보다도 억압시대에 빨리 동의하냐면요,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디론가 배출하고 싶고 배설하고 싶고 분출하고 싶었습니다.

▶ 김종배 : 작가님이 그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약간 샛길로 빠져서 갑자기 이 생각 퍼뜩 드는데 인터넷이나 이런 데에서 많은 회자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권력이 코너에 몰리면 꼭 스캔들이 터진다. 연예인 스캔들이나, 음모론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 어떻게 보세요?

▷ 서해성 : 음모론으로도 맞고요. 음모론이 아니어도 맞습니다. 왜 그러냐면 너무 손쉬운 겁니다. 억압상태에 있을 적에 내지는 권력이 위기상황에 있을 적에 그것이 실제로는 우연히 났다 하더라도 그럴 때 대중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리기 때문입니다. 그게 음모론이 등장하는 것이 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 김종배 : 한 이슈를 다른 이슈로 덮어버린다는 거죠.

▷ 서해성 : 이것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외설 문제는 그것보다 조금 다릅니다. 외설은 사실 사람들이 외설이라고 할 적에는 거기에 누구도 따지지 않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이거든요.

▶ 김종배 : 바로 그게 대중들의 동조잖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적과 동지의 구분 없이 다 거기 한쪽을 향하는 거예요. 어떤 뉴스로 어떤 뉴스를 덮는 것은 적과 동지가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 외설문제는, 한국사회 특성이 그런 건데 외설문제는 이른바 파시스트하고 최고 진보주의자가 순간적으로 같이 동조하는 겁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거죠.

▶ 김종배 : 지금부터는 마광수 교수의 이야기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야 할 것 같은데 우리들의 뭐라고 할까요, 성의 담론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요. 필화사건이라고 하는, 흔히 그러지 않습니까? 필화나 금서라고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국가권력의 긴장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거든요. 그 역사의 몇 가지만 짚어보도록 해보겠습니다. 1952년도에 김광주라는 소설가가 ‘나는 너를 싫어한다’라는 어떤 글을 썼어요.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소설속의 설정이죠. 선전부 장관의 부인이 성악가인 청년을 유혹한다, 그런 내용입니다. 별게 아니지 않습니까? 유부녀가 청년을 유혹한다. 이 설정이 당시는 충격적이었나 봐요. 그런데 당시 이철원 공보처장, 지금 문화부장관입니다. 부인이 ‘이건 내 얘기다, 나를 모델로 삼아서 만든 거다’, 이렇게 한 거예요.

▶ 김종배 : 본인이 그렇게 나섰다고요? 

▷ 서해성 : 네. 더구나 그게 피난시절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 김종배 : 50몇 년도라고요?

▷ 서해성 : 52년도요. 작가를 직접 테러한 일이에요. 그때 그 보좌관이 작가를 두들겨 패는 거예요. 그러고는 사과서까지 쓰라고, 사과문을 쓴 거예요. 이게 팩트에요. 

▶ 김종배 : 이 사건은 또 처음 듣네.

▷ 서해성 : 이분이 누구냐면 김광주 작가가 바로 소설가 김훈 작가의 아버지입니다. 

▶ 김종배 : 그분이구나.

▷ 서해성 :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거예요.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고요, 백주에.

▶ 김종배 : 이건 무슨 법 절차 거쳐 간 것도 아니고 끌고 가서,

▷ 서해성 : 자기가 더 높으니까,

▶ 김종배 : 그냥 두들겨 팬 거잖아요.

▷ 서해성 : 네. 그리고 유명한 게 54년도에 정비석 작가가 쓴 ‘자유부인’이죠. 

▶ 김종배 : 그건 유명한 사건이죠.

▷ 서해성 : 그때 이게 사건이 어떻게 난 거냐면요. 고매한 국문과 대학교수 부인이 바람이 나서 가출했다. 그런데 이걸 누가 문제를 제기했냐? 당시 서울법대 교수였던 황산덕이라는 사람의 공격으로 시작이 된 겁니다. 

▶ 김종배 : 아니. 대학교수 부인은, 반박하는 이야기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네.

▷ 서해성 : 최초의 공격지점이 현역 서울대 법대교수 황산덕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겁니다. 

▶ 김종배 : 네가 지금 우리를 어떻게 보고 이따위 소설을 쓰냐? 이런 거잖아요,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 서해성 :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그럴 무렵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겁니다. 국가권력이 왜 그러면 도대체 정비석까지 다스리고 이렇게 했을까 하는 문제지 않습니까? 56년도에 조봉암이라고 하는 정치인이 이승만의 중요한 도전자로 나타나서 말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상당한 표를 얻습니다. 이승만이 어떤 위기를 느낍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럴 즈음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영화 ‘7인의 여 포로’, 7명의 여자포로라는 거죠. 

▶ 김종배 : 이런 영화가 있었어요?

▷ 서해성 : 그런데 이 영화가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이 영화감독이 구속되었어요. 

▶ 김종배 : 어떻게 묘사를 했길래?

▷ 서해성 : 모르죠. 내용만 알고 있는 거죠.

▶ 김종배 : 그냥 북한군이면 무조건 총 갈겨서 사람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이런 것만 해야 되는데 뭔가 고민하는 이런 게 있었나?

▷ 서해성 : 그러고는 그해 여름에 불온서적하고 불온영화를 단속하는 대 붐이 일어납니다. 당시 상영 중이었던 미국영화들조차도 불온영화라고 내렸습니다. 

▶ 김종배 : 미국영화도요?

▷ 서해성 : 그렇습니다. 그리고 책들도 이승만을 비판한 책들을 불온서적이라고 해서 서점가에서 다 걷어 들이고 그런데 그 책들이 한글이 아니었고 일본어책들이었습니다. 

▶ 김종배 : 잠깐만, 일본어책이라고요?

▷ 서해성 : 일본어를 하는 사람이 그 당시에는 많았죠, 50년대니까.

▶ 김종배 : 그때는 국내출판사가 책을 냈는데도,

▷ 서해성 : 아니요. 일본에서 수입해온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 수입해온, 일본에서 낸 책인데 이승만을 비판한 게 뭐가 있어요?

▷ 서해성 : 한국인들이 망명해가지고 쓴 책들,

▶ 김종배 : 교포들이나 교민들이,

▷ 서해성 : 아니. 여기서 이승만 정권 때 한국에서 동아일보 기자였던 분이 가서 가령 일본어로 쓴다든지,

▶ 김종배 : 그래서 일본에서 출판한 게 국내로 수입이 되어서 서점을 돌면 그걸 단속했다는 얘기군요.

▷ 서해성 : 그렇게 해서 서점 주인을 구속했어요. 왜냐면 가져오려면 일본에 살던 사람이어야 될 것 아닙니까? 서점 주인이 일본에 살던 사람이었어요. 그걸 조총련계라고 분류했고 조총련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테면 이렇게 하고 무슨 이야기냐면 국가권력이, 이승만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 외설이나 출판에 대한 단속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유명한 또 하나의 필화사건이 남정현 작가가 쓴, 65년도에 ‘분지’라는, 분지가 똥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미군과 관련된 얘기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별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북한에 있는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가 된 거예요. 남정현 작가가 북한에 실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북한이 알아서 실어버린 거예요.

▶ 김종배 : 이게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하고 스토리가 똑같네.

▷ 서해성 : 그런데 작가가 그걸 알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중앙정보부가 끌고 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작가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북의 누군가가 너한테 써준 거지?’ 물어본 주로 핵심이 그거였어요. 

▶ 김종배 : ‘이게 네 작품이 아니고 사실은 북괴가 쓴 건데 네가 네 이름으로 해서 낸 거지?’, 이런 거죠? ‘너 북한하고 내통했지?’, 이렇게 된 거죠?

▷ 서해성 : 네. 그건 기본적으로 뭐로 보냐면 박정희라는 정치인 자체가 미국으로부터 늘 의심받고 있었잖아요. 혹시 좌익 활동 전적 때문에 그런 혐의들이 이런 것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기소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는가 보고 있고요. 69년도에는 염재만이라는 별로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쓴 ‘반노’라고 하는, 

▶ 김종배 : 이것도 유명한,

▷ 서해성 : 이게 돈 3만 원에, 그 당시 기준이니까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검찰의 기소내용은 이겁니다. 변태적인 남녀가 동거하며 성교하는 장면을 묘사함에 있어서 성에 대해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부분을 묘사했다. 그러면 어떻게 쓰죠, 소설? 구체적인 부분을 묘사해야지. 그럼 이 시기가 언제이냐? 바로 69년도가 삼선개헌을 추진한 때입니다. 똑같습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정부가 발표했던 게 뭐냐면 지금 현재 만연한 퇴폐풍조에 철퇴를 가하여 사회분위기를 맑고 밝게 쇄신하겠다.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 김종배 : 그러면서 공포분위기 조성을 하고 찍소리 못하게 만들어놓고,

▷ 서해성 :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문학이 피해자로 사용되었다는 겁니다. 왜냐면 작가는 힘이 없거든요. 독자 앞에서만 힘이 있는 거지,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개인이기 때문에, 그러자 검찰이 이에 응해서 외설단속을 장기적으로 연장할 방침이다. 이렇게 말을 했어요. 거기에 만만한 소설이 걸려든 거죠. 사실 소설이 걸려들었다기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소설이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국가를 공안정국으로 바꾸는 거죠. ‘외설문제가 나오는 것은 바로 공안정국을 사실상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술수다’라는 말씀을 제가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던 작품들은 외려 차라리 낫죠. 가령 김지하의 오적, 이건 처음부터 정면으로 박정희 정권하고 전투를 벌이겠다고 쓴, 

▶ 김종배 : 대표적인 필화사건으로,

▷ 서해성 : 그렇죠. 외설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사상계라는 잡지가 완전히 없어졌던 거죠. 그 뒤로 80년대는 이산하 시인이 쓴 ‘한라산’이라든지 오봉옥 시인이 쓴 ‘붉은 산 검은 피’,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오다가 80년대는 너무 많은 금서와 필화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없는, 

▶ 김종배 : 80년대는 사실은 서점 주인도 많이 끌려갔어요. 왜냐면 불온서적 팔았다고,

▷ 서해성 : 그자체가 금서시대였고 그자체가 필화로 온통 얼룩져있기 때문에 더 말할 게 없는 거고요.

▶ 김종배 : 아마 제일 가짓수가 많았던 사건은 80년 전두환 정권 때일 거예요.

▷ 서해성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거대한 금서와 필화사건 권력이었으니까,

▶ 김종배 : 그러고 나서 87년 민주화 이후에 나타났던 최초의 필화사건이 마광수 교수, 

▷ 서해성 : 그렇습니다. 노태우 정권의 위기가,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기설이라는 사람이 유서를 조작했다고 강기훈이라는 한 청년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했지 않습니까? 지금은 재심을 통해서 국가가 완전히 패배했는데, 그 검찰과 마광수를 기소한 검찰은 같은 검찰입니다. 국가권력이 서로 다른 권력이 아니라고요. 그 권력의 위기가 심화될 때 국가는 뭐라고 분장하고 나타나느냐면 바로 윤리경찰로 분장하고 나타납니다. 가령 지난 정권에 많이 했던 게 뭐였습니까? 주폭 단속이었거든요. 4대 무슨 폭력, 

▶ 김종배 : 4대악.

▷ 서해성 : 이런 게 바로 윤리경찰 노릇을 하는 거거든요. 사실은 그건 경찰이 일상적으로 당연히 늘 해야 되는 일이죠.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해야 될 일을 그때 윤리경찰을 자임하고 나설 때, 바로 그때가 권력이 위기에 있을 때 대중통제 술책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해방 이후에 있었던 외설문제의 대부분은 정권의 위기, 국가라는 표현은 잘못되었습니다. 자기 정권의 위기가 처해있을 때 그것을 돌파하는 것으로 그때는 적과 동지가 없이 전 국민이 나서서 사실상 한쪽으로 손가락질하는, 작가는 소수이기 때문에 그 작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모델로서 주로 사용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김종배 : 그렇죠. 그렇게 작가님이 정리해주시니까 일목요연하게 딱 정리가 되는데 정리하신 말씀 듣다보니까 참 기만적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게 박정희 정권 때만 하더라도 이른바 잡지 중에 ‘옐로저널리즘’에 해당되는 잡지가 여러 개가 있었고 거기에 예를 들어서 외설이라고 하면서 몇 개 예를 들었던, 그것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묘사와 사진이 나오는 잡지가 많이 있었잖아요. 

▷ 서해성 : 그건 일부러 유통시킵니다.

▶ 김종배 : 그것 단속했다는 얘기 못 들어봤는데,

▷ 서해성 : 일부러 유통시키는, 어느 한 부분에 배설공간을 주는 거죠. 그렇지 않고 본격적으로 사회문제에 도전하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그 팔을 꺾으면서 비명소리를 통해서 대중을 통제하는, 

▶ 김종배 : 전두환 정권 때 3S가 또,

▷ 서해성 : 그렇죠. 전두환 정권 때 정작 철저하게 더 하수도 부분을 넓혀주면서 실제로는,

▶ 김종배 : 최소한의 일관성이 있던지 앞뒤가 맞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전혀 아니잖아요. 

▷ 서해성 : 그러니까 민주정부가 나오고 나면 이런 필화사건이 거의 없죠. 외설사건도 거의 없죠. 그리고 사실은 외설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담론으로 삼아서 서로 논의하면 되는 거죠. 독자가 선택할 일이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낙인찍힌 사람은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침내 스스로 자기 삶을 거두어들이는 비극적인 과정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죠.

▶ 김종배 : 그때 당시 노태우 정권 때 권력과 검찰은 일회성으로 마광수 교수를 활용을 했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 것 아니에요?

▷ 서해성 : 네.

▶ 김종배 : 활용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한 인생은 평생 간 것 아닙니까? 

▷ 서해성 : 그렇죠. 그런데 마광수 교수가 더 외로웠던 것은 그 뒤로 자기를 옹호해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그 당시 파시즘 권력하고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남근주의 권력이 공모했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전 세계에서 한국에 룸살롱이 제일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종교인이 제일 많습니다. 그 말은 무슨 얘기죠. 철저한 변태사회인 거죠. 다른 한 편 철저한 윤리를 위장하는 거죠.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세력들이 같은 세력들이거든요. 그런 남근주의적 권력들, 남성주의적 권력들이 그것을 공모하는 거죠. 왜죠? 실제로는 자기의 진짜 더러운 부분을 폭로하고, 거기에 맞짱뜨는 것하고 똑같은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 김종배 : 그러니까요. 어찌 보면 그게 마광수 교수의 소설이 문제가 아니라 소설 속의 묘사된 이런 게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의 치부일 수도 있다.

▷ 서해성 : 그럼요. 다른 한편 그런 것이죠. 이른바 허리띠 아래에 일은 언급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독재 권력과 말하자면 꼰대진보도 같이 동조해서 한 사람에게 공격을 퍼부은 거죠. 

▶ 김종배 : 꼰대진보? 

▷ 서해성 : 네. 무슨 얘기냐면 유교주의적 태도, 내지는 원리주의적 기독교적 태도, 이런 것들이 같이 해서 마치 그를 사탄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거죠.

▶ 김종배 :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오늘은 작가님께서 질타를 해주셨습니다. 특정 친일, 앞잡이, 이런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되겠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이중성이 되는 거죠.

▷ 서해성 : 이 말씀만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마광수를 용서하는데 20년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죽어서 겨우 이해를 했습니다. 정말 우리는 비겁한 위로를 하고 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 올리버 홈즈라는 분이 있는데 미국 연방대법원 사상 가장 많은 소수의견을 내신 분인데 너무 유명한 얘기 한 줄 읽어드리고 마무리해드릴까 합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 김종배 : 멋있는 말이네요. 이렇게 하면서 박학다설 마무리하겠습니다. 서해성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해성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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