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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배고픈 철학자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
2017년 09월 09일 00시 53분  조회:4508  추천:0  작성자: 죽림
마광수(66)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떠났다.
작년 8월 연세대 강단에서 퇴임한 지 1여 년 만이다.
지난 5일 그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마 전 교수는 살아생전 '시대를 앞서간 천재 혹은 이단아'라는 평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마 전 교수는 4년 내내 올 A+을 받는 장학생이었다. 졸업 후에는 20대에 최연소 교수가 됐다. 시인 윤동주를 국내에 알린 것도 마 전 교수였다. 그는 윤동주 연구로 국내 첫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마 전 교수가 명성을 잃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평생을 보낸 이유는 그가 낸 책 때문이었다. 
 
1998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낸 후 교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6개월 징계를 받았다. 1991년 출간한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로 분류돼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 교수로 복직됐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동료 교수들에게 따돌림을, 대중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했다. 
 
마 전 교수는 자신의 작품들이 단지 야하고 외설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문학 전반에 흐르는 권위주의에 반발했다. 오히려 여성을 주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고, 또 비판했던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소개한다. 
 
 
1.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이하 각 출판사
 
 
마광수 교수의 첫 에세이다. 성과 사랑, 시, 문학에 대한 마 교수의 관심사가 다양하게 드러나 있다.  1989년 출간 당시 100만부가 팔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2. 즐거운 사라
 
 
 
마광수 교수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유로운 성 의식을 가진 여대생 사라가 대학교수와 쾌락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1992년 출간되자마자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책은 자진 수거와 판매금지 됐다. 마 교수와 즐거운 사라를 출판한 출판사 대표는 함께 구속됐다.  
 
마 교수는 그해 12월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 가자 장미여관으로 
 
 
 
마 교수가 발표한 시집이다. 동명의 연극에 배우 이파니가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시들이 그저 야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 속에서 마 교수가 가진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적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장미여관'은 본인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4. 윤동주 연구 
 
 
 
마 교수는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논문에서 국문학 역사상 처음으로 윤 시인의 모든 시를 분석했다. 
 
윤동주 시에 나타난 '부끄러움'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다고 밝힌 이도 마 교수였다. 
 
마 교수는 이 논문에서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하면 윤 시인은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한다"라고 밝혔다. 
 
 
5. 광마일기 
 
 
 
열 가지 에피소드가 연작형태로 묶인 소설이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몽환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작품들이다. 
 
열 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7편은 저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3편은 친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꽃의 요정, 처녀 귀신, 신선 등의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6. 성애론 
 
 
 
사랑과 성에 대한 상상력이 가득 담긴 책이다. 성애에 대한 원론적 성찰과 작가의 솔직한 고찰이 드러나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추천평에서 "독자들은 사랑과 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성을 '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7. 마광수의 뇌구조
 
 
 
 
마 교수가 늘 머리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은 크게 마 교수의 세계관, 여성관, 섹스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책에서 "육체가 배고플 때 정신이 맑아질 수는 없다. 육체가 배부르면 느긋해지고 객관적이고 철학적이 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가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로 가치관이 바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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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 9일 대법원은 염재만의 소설 「반노」에 나오는 남녀 간의 변태적인 성생활 묘사에 대해 정상적인 성적 정서를 해칠 정도로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 볼 수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 소설은 1969년 7월 30일 서울지검에 기소된 지 1년여 만인 1970년 6월 11일 제1심에서 벌금 3만 원의 유죄 선고를 받고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었다. 항소심에서 무죄가 판결된 후에도 원고인 검찰 측은 2차에 걸쳐 불복 상고했으나 그때마다 기각되었고, 결국 1975년 12월 9일 대법원은 최종심에서 역시 무죄를 확정했다.

이 판결의 의의는 문학작품에 대한 음란성 여부는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판단해야 하며 어느 한 부분만 떼어놓고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남녀 성교를 직접 묘사해 문제가 되었지만 당시 문제가 되었던 표현은 지금 기준으론 소박하기까지 한데, 그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날쌔게 내 볼에 입 맞추고 내 얼굴을 온통 핥습니다. ······ 자신의 옷도 벗고 내 옷도 익숙하게 벗깁니다. 서로의 나체만이 남습니다.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산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동이 요동쳐 감깁니다. ······ 나는 옷을 벗었습니다. 그가 하라는 대로 그의 등 뒤에 올라타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려 바둥대기도 했습니다. ······ 막 발버둥치는 그를 억지로 안아도 이불 위에 눕히고 힘을 다해 타고 누르면서 입술을 빨고 어깨며 허리를 사정없이 쥐어 비틀면서 힘차게 애무했습니다."
한병구, 『언론과 윤리법제』 증정판(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209쪽.

유죄를 선고한 원심에 대해 항소심은 「반노」가 "그 주제나 표현에 있어서 선정적인 작품이라고 인정되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를 음란 문서라 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음란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반노」는 인간의 성에 대한 본능을 그 주제로 하고 군데군데 성교 장면이 나오기는 하나 남녀 간의 성교에서 향락적이고 유희적인 면을 탈피해버리고 본능에 의해 맹목적인 성교와 그 뒤에 오는 허망함을 반복 묘사함으로써 인간에 내재하는 성에 대한 권태와 허무를 깨닫게 하고 권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자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그 주제나 표현에 있어서 음란성 즉 선정적인 면이 없다고 인정된다."
팽원순, 『언론법제신론』(나남, 1989), 190쪽.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5년 6월 16일 대법원이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해 내린 판결은 20년 전에 비해 오히려 표현의 자유 보장에서 후퇴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검찰에 의해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전격 구속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 10월 31일자 사설은 "작가의 창작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상충하는 과제는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시대 상황과 인간의식의 변화에 따라 예술과 외설의 거리를 재는 작업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문학작품이 해금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린 외국의 적지 않은 사례들이 보여주듯, 예술과 외설, 그리고 인간의 미의식에 대한 사법적 재단이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뜻에서 엊그제 검찰이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연세대 교수 마광수 씨와 이 책을 펴낸 도서출판 청하 대표 장석주 씨를 구속한 처사는 이러한 '신중함'이 모자랐다는 걱정부터 앞세우게 된다. ······ 검찰이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도무지 없는 대학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덜컥 구속부터 시켜버린 과잉 조처에 있다. ······ 더 근본적으로 문학과 예술의 성 표현 문제에 공권력이 사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것이 시위하는 창작 활동에 대한 잠재적 제약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님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외설' 구속은 지나치다」, 『한겨레』, 1992년 10월 31일, 2면.

마광수는 1992년 12월 28일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요지는 "이 사건 소설은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져 그 주조를 이루고 있고 ······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병적이고 동물적인 차원에서 통속적으로 형성화되어 있을 뿐 건강하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를 서술함으로써 인간의 성적 욕구의 본질을 제시하거나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비전을 제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등이었다.1)

마광수는 1995년 6월 16일 대법원에서도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문학작품이라고 하여 무한정의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2) 판결의 법리적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형법 제243조의 음화 등의 반포 등 죄 및 형법 제244조의 음화 등의 제조 등 죄에 규정한 음란한 문서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키고, 문서의 음란성의 판단에 있어서는 당해 문서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묘사 서술의 정도와 그 수법, 묘사 서술이 문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문서에 표현된 사상 등과 묘사 서술과의 관련성, 문서의 구성이나 전개 또는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의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문서를 전체로서 보았을 때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의 여러 점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2000 소법전』(법전출판사, 2000), 1630쪽.

마광수는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온 지 약 보름 후인 6월 말 연세대학교에서 면직 처분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과 관련해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최상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즐거운 사라』 사건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횡포라는 측면에서만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의 민주주의 인식에 대한 수준도 마찬가지로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언론의 수준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니 만큼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상당수의 진보적인 지식인이 『즐거운 사라』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최상천, 「'즐거운 사라가'증언하는 누더기 '자유민주주의」', 『사회평론 길』, 1995년 8월호,175쪽.

2008년 3월 13일 대법원은 음란물의 판단 기준을 획기적으로 변경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그간 일관되게 성욕을 자극해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고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것을 음란물 판단으로 기준으로 채택해왔는데, 해당 판결에서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성적인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을 음란물로 규정한 것이다. 『즐거운 사라』는 '하등의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었을까? 그 판단을 어떻게 하건 마광수가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비전을 제시한 흔적'이나 '사회적 가치'로 간주될 수도 있는 현학적인 요소를 『즐거운 사라』에 넣지 않은 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마광수는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린 혐의로 약식기소 되어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992년 마광수를 구속시켰던 검찰이 15년 후에는 약식기소한 점을 놓고 "사회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3)

2015년 9월 마광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즐거운 사라』 발표 후 24년이 지났다. 변화를 느끼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음란 문서 배포 혐의로 검찰에 잡혀갈 때 '이 사건은 10년만 지나도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틀렸다. 성의 이중성은 더 고착화됐다. 바뀐 것도 있다. 내가 30년 전부터 주장한 화려한 네일아트가 널리 퍼졌고, 아무도 못 알아듣던 페티시(fetish, 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도 흔한 단어가 됐다. 섹시하다는 말이 이젠 칭찬이 됐지않나." 그는 "죽기 전에 대한민국이 솔직해지는 걸 보고 싶다"며 "한국 사회 위선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성 문학을 통한 창조적 불복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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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자 작가인 마광수(馬光洙, 1951~2017)는 집에서 검찰 수사관에게 연행되어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영장이 청구되어 그날로 전격 구속된다. 마광수는 형법 244조 음란물 제조 혐의로 기소되어, 1992년 12월 28일의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다. 작가가 구속되면서 그의 특정 소설에 구현된 게 외설인지 표현의 자유인지를 둘러싸고 온 나라를 뒤흔들 만큼 전례 없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며, 텔레비전 · 라디오와 주요 일간지 · 주간지 · 월간지 등 거의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그 일을 집중 취재해 보도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음란한 싸움”이라는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의 개요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의 주인공 마광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의 주인공 마광수

“경건과 금욕으로 강제된 한국 문학사에서 희귀하고 소중한 예”에 해당하는 마광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광중학교와 대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연세대 · 한양대 · 강원대 등의 강사를 거친 그는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홍익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한다. 그는 1984년부터 모교인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 「망나니의 노래」 등의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온 마광수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 소설 『권태』를 연재하며 소설가를 겸업하게 된다. 이제까지 그는 시집 『광마집』(1980) · 『귀골』(1985) ·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장편 소설 『권태』(1990) · 『광마 일기』(1990) · 『즐거운 사라』(1992) · 『자궁 속으로』(1998) · 『신기한 알라딘의 램프』(2000), 문학 이론서 『상징 시학』(1985) · 『마광수 문학론집』(1987) 등을 펴낸 바 있다.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작가를 구속에 이르게 한 성애 소설 〈즐거운 사라〉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작가를 구속에 이르게 한 성애 소설 〈즐거운 사라〉

『즐거운 사라』는 상상과 허구를 전제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얼리즘 문체를 활용해 사회의 조감도를 그려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라’라는 여성이 만들어진 것은 이런 인물이 우리 사회에 적든 많든 실존할 수 있는 개연성이 큰 인물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라』에서 작가는 한 젊은 여성이 전환기의 성윤리에 혼돈을 느끼며 여러 남자를 거치는 동안 겪는 내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 묘사의 결은 직정적이고 도발적이며, 그래서 “경건과 금욕으로 강제된 한국 문학사에서 희귀하고 소중한 예”라는 평가를 받는다.

『즐거운 사라』의 사라는 오히려 이 시대의 사고의 이중 구조와 경직성을 비웃고 통박하는 인물로 더욱 뚜렷이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인 마광수는 그런 의도에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가치 체계에 대항하는 반파르마코스적 인물로 사라를 내세워, 여전히 위선적 성의식과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이 사회의 의식적 모순을 정화하려 했다고 해석된다. 이것은 주인공인 사라가 우리 문학사에선 드물게 많은 남성들을 체험하면서도 그런 행동에 대해 어떤 윤리적인 죄의식이나 위선적 이중성을 갖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또한 결말에서 흔히 보이는 여주인공의 죽음이나 반성 혹은 회개의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의 주인공 사라는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개성적 인물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회, 「마광수의 소설 세계」, 『마광수는 옳다』(사회평론, 1995)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내기 전에 이미 『권태』와 『광마 일기』 같은 소설을 펴낸 적이 있다. 이 두 소설은 모두 관능적 상상력의 해방을 그리고 있다. 다만 『권태』가 현대를 배경으로 육체를 성적 매재로 삼아 페티시즘과 마조히즘―사디즘을 그려내고 있다면, 『광마 일기』는 신괴(神怪) · 염정(艶情) · 우언(寓言) · 호협(豪俠)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기 소설(傳奇小說)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작가가 말하는 ‘가벼움’의 소설 미학을 성취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가벼운 소설’은 또한 도덕적 당위성이나 작가의 도의적 책임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창작된다. ‘무거운 소설’이 다소 위선적인 태도를 밑바탕에 깔고서 제작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가벼운 소설’은 다소 위악적(僞惡的)인 태도를 밑바탕에 깔고서 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무거운 소설은 작가가 철학자나 사제(司祭) 같은 태도로 창작에 임하는 것이요, 가벼운 소설은 작가가 단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평범한 인간의 입장으로 창작에 임하는 것이다.
마광수, 「내 소설 ‘광마 일기’에 대하여」, 『사라를 위한 변명』(열음사, 1994)
전기 소설 형식으로 관능적 상상력의 해방을 그리고 있는 〈광마 일기〉
전기 소설 형식으로 관능적 상상력의 해방을 그리고 있는 〈광마 일기〉

마광수는 심심찮게 매체를 타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 교수이자 작가다. 그런데 소설 한 편 때문에 그는 구속되고, 이 일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검찰에서 작성한 공소장을 보면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마광수 교수에 대해 제재한 내용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 공소장은 “피고인 마광수”의 신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984년경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문이나 잡지 또는 단행본 등을 통하여 시, 소설, 수필 등을 발표하여 온 자로서, 소설 『광마 일기』에 대하여 음란성을 이유로 1990. 7. 26.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결정을, 1991년 서울문화사에서 출판한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하여 같은 이유로 1991. 9. 3. 위 위원회로부터 ‘관계 당국에 제재 결정’을, 여성 잡지 『여원』에 연재한 소설 「절망보다 더 두려운 희망」에 대하여 같은 이유로 1991. 11. 19. 및 1991. 12. 10. 등 2회에 걸쳐 위 위원회로부터 ‘경고’ 결정을, 1991. 5. 4. 불교방송 F.M.의 「밤의 창가에서」 프로에서의 외설스러운 발언을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 결정을, 1992년 청하에서 출판한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하여 ‘음란성’을 이유로 1992. 9. 1.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관계 당국에 제재 결정’을 각 받은 사실이 있는 자

‘간행물윤리위원회’는 1989년 문화공보부에 등록된 임의 단체이던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의 조직을 재편해 발족시킨 사단 법인체다. 간행물들에 대해 심의 · 검열 등을 하는 이 위원회는 자율 단체라고 저희 스스로 주장하지만 한국방송광고공사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배정받고 위원의 선임이나 그 비용 일체를 정부에서 관장하는 등 사실상 정부의 산하 기구다. 1992년 당시 이 ‘윤리위’에 소속된 심의 위원은 24명이었는데, 대학 교수 16명, 일간지 논설 위원 2명, 변호사 1명, 고등 학교 교장 1명, 출판문화협회와 잡지협회 이사 각 1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사저널』 1992년 11월 12일치에 따르면 윤리위 소속 16명의 교수는 강성위 · 김대환 · 김형배 · 이용필 · 장원종 · 한승조 · 나학진 · 윤병로 · 이태동 · 이현희 · 손봉호 · 김재은 · 서정우 · 이원복 등이다. 그 밖의 심의 위원들은 이중한 · 김형덕 · 백현구 · 유경환 · 정희경 · 황수원 · 허광수 · 이택규 등이다. 어쨌든 1980년대에는 주로 진보적 사회 과학 서적들에 대해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리는 데 주력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념 서적들이 줄어들자 이른바 ‘음란물’의 단속 쪽으로 방향을 튼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반문화적 전횡의 실체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다.

『즐거운 사라』는 1992년 8월 20일께 서점에 배포된다. ‘서울문화사’에서 내놓았을 때 ‘검열’을 의식해 누락시킨 부분들을 다시 보완하고 개작해서 ‘완성도’를 높인 상태로 소설이 출간된 것이다. 『즐거운 사라』 출간에 즈음해 몇몇 신문에 관련 기사가 나가자 윤리위에서 발끈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대중 매체들은 표현의 자유와 한계, 그리고 이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정당한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다룬다. 격주간지 『출판저널』이 특집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시사 주간지 『시사저널』도 지면을 크게 할당한다. 『한국일보』에서는 「성 표현의 한계에 대한 문단의 뜨거운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윤리위 소속의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이태동과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청하의 대표이자 문학 평론가인 장석주에게 똑같이 할애된 지면을 주고 글을 쓰게 한다. 이어 KBS 1 텔레비전의 「여의도 법정」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생방송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

한 작가의 작품의 윤리성 문제에 대한 논쟁과 토의는 열린 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마광수 교수의 장편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와 청하출판사 사이의 공방전은 한 작품의 문학성이나 윤리성에 관한 ‘논쟁과 토의’가 아니라 문학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억압과 침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작가의 권리이자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을 타율적으로 규제해야 된다는 생각은 대단히 권위주의적이고 월권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 소설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마저 당국의 타율적 규제에 맡겨야 한다면 우리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더 많은 자유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즐거운 사라』는 윤리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토대를 뒤흔들 만큼 위험한 외설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즐거운 사라』에 대한 “한 여대생의 시각을 통해 전환기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를 조망하고 은폐된 성 문제를 과감하게 토론의 장에 올려 놓고 있다”(『동아일보』 1992. 9. 17.)거나, “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시사저널』 1992. 10. 1.)이라는 평가를 보라. 윤리위의 판단은 이 작품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여러 의견과 비판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심의 위원들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그대로 행정 조치로 이어져 책의 판금, 출판 등록 취소 등과 같은 공권력을 발동시키는 행위는 분명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민주화, 개방화, 자유화의 물결을 거스르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자유의 확대의 역사이다. 역사는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지 거꾸로 흘러가지 않는다. 1980년대가 우리 삶의 정치적, 사회적 족쇄를 벗으려는 싸움의 연대였다면, 『즐거운 사라』의 문제는 오랫동안 억압되어 왔던 성적 욕망에 대한 여러 문화적 억압과 굴레를 벗으려는 1990년대의 싸움인 것이다.

독자들은 윤리위에서 골라 준 책만 읽어야 할 정도로 판단 능력이 결여된 바보들이 아니다. 윤리위의 결정은 사실상 독자들을 깔보고 얕잡아 보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근본적으로 문학의 문제는 문단에서 논의되고 걸러져야 하며, 최종적으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
장석주, 「‘즐거운 사라’의 제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 침해」, 『한국일보』(1992. 9. 30.)

위의 글은 『즐거운 사라』에 대한 제재 건의 결정에 항의해 장석주가 1992년 9월 30일치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이처럼 『즐거운 사라』를 두고 문학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란이 문단과 대중 매체에서 한동안 이어지는데 느닷없이 검찰이 개입하고 나선다. 1992년 10월 28일치 거의 모든 중앙 일간지에는 「‘문학’ 포장된 음란물 법적 제재」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린다. 기사들은 “검찰이 소설 『즐거운 사라』가 미풍 양속을 해치는 음란 도서라고 결론짓고 수사에 나섰다.”고 밝힌다. 아울러 검찰은 “이 작품을 변태성 행위, 여성간의 동성애 행위, 교수와 제자간의 성 행위 등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묘사,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는 ‘성애 행각’의 수준을 넘어 문학이 아니라 음란물”이라고 단정짓고 있다고 보도한다.

검찰은 특히 “사회 윤리를 정면으로 파괴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행동을 다룬 이 같은 사실상의 포르노물을 ‘마광수 신드롬’이란 유행어 속에 그냥 방치해 두는 것은 일부 매스컴의 선정주의에 영합하는 것으로 사회 전반에 해악을 미칠 소지가 크다.”고 강조하고, 『즐거운 사라』에 대한 ‘법적 제재’의 움직임을 기정 사실화한다. 한 신문은 검찰이 법적 제재에까지 나서게 된 배경과 관련해 “최근 들어 주간지 소설 스포츠신문의 일부 내용이 음란 퇴폐적이어서 이처럼 ‘법적’ 음란 개념을 축소할 경우 사회 윤리의 마지노선을 포기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이의 척결에 나섰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특히 마 교수라는 공인의 신분으로 사회 도덕적 책임까지 망각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교육 및 관리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낳고 있기 때문에 사법적으로 단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쓰고 있다.

『국민일보』가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피상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면, 피상적 사실을 벗어버리고 좀더 깊이 있게 ‘기자의 주관’이 들어간 기사를 내보낸 신문은 『문화일보』다. 엄주엽 기자는 1992년 10월 28일치 『문화일보』에 실린 관련 기사의 말미에서 ‘사라’를 자기애에 충실한 하나의 발랄한 개성이며, 그것의 직접적인 노출은 ‘충격’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숨겨진 현실’이라고 쓰고 있다.

마광수 교수(연세대)의 일련의 소설들이 그러했듯이 『즐거운 사라』는 또 한번의 충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음란’ ‘외설’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름이나 공연물이 많았지만 『즐거운 사라』가 검찰에서 문제삼을 정도로 클로스업 된 것은 우선 문학이 갖는 깊고 집요한 의식에의 침투력 때문이다. 더욱이 이 소설은 마씨의 기왕의 소설이 쓰고 있던 가면을 모두 벗어 버렸다. 즉 『권태』가 환상을 『광마 일기』가 실제와 공상을 넘나들었다면 『즐거운 사라』는 세태를 리얼하게 배경에 깔고 대화와 행동으로써 놀랄 만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사라』에 대한 사법 처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객관적 준거가 없다. 이것은 이성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차원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외국에서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북회귀선』 등이 모두 외설물로 조치를 당했다가 시간과 더불어 풀어진 것도 ‘시대의 감정’밖에 기준이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 작품이 자연스레 수용되기는 아직 어렵다는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따라서 검찰이 상식의 선으로 음란 도서에 해당하는 형법 위반으로 보는 것은 이해될 만하다. 하지만 문화의 선도적 기능을 중시하는 문화계 인사들은 대부분 사법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연극 평론가 유민영 씨는 ‘최근 범람하는 상업적인 에로티시즘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사회 여론의 수렴 과정 없이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이름을 내건 성의 상품화는 분명 불건전하고 법의 제동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즐거운 사라』의 경우 단순한 상업주의 에로스 소설일까. 그 거리낌없는 표현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자기애에 충실한 하나의 개성이다. 이 개성의 적나라한 노출이 충격일지라도 그것은 숨겨진 하나의 현실이 아닐까.

곧 검찰청사 앞에서 문화인들이 작가 구속에 항의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고, 문단에서는 ‘문학 작품 표현의 자유 침해와 출판 탄압 대책위원회’가 조직되는가 하면, 김주영 · 김병익 · 문덕수 · 반경환 등 217명의 문인이 서명한 ‘마광수 교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가 발표된다. 한편 신문과 주간지 · 월간지 등에 마광수 구속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글들이 실리는데, 하일지 · 장정일 · 최일남 · 임헌영 · 김병익 · 반경환 · 박범신 · 강준만 등 50여 명이 나서고, 독자 투고까지 합치면 100편이 넘는 글들이 실린다. 1992년 11월 5일에는 흥사단 강당에서 ‘외설 시비에 대한 공청회’가 열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침해하는 검찰과 정부의 문화 정책을 규탄한다. 이 공청회에서는 김수경 · 문형렬 · 한승헌 · 하재봉 등이 나서 주제 발표를 한다. 이런 와중에 구속 적부심 재판이 열린다.

7일 오전 11시경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 2부(재판장 이홍복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마광수 교수(41. 연세대)와 장석주씨(37. 청하출판사 대표)에 대한 구속 적부심은 마치 대학 강의실에서의 세미나를 연상케 했다. 마교수와 장씨는 차림새만 죄수복에 고무신을 신었을 뿐 2시간 가까이 계속된 심리에서 시종일관 여유있는 자세로 자신들의 문학 이론을 굽힘없이 진술했다. “문학의 목적은 예로부터 교훈과 쾌락 두 가지로 나눕니다. 저의 경우 후자를 지향하지요. 독자들은 작품 속의 주인공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게 되며 이는 독자들의 사회적 일탈을 방지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며 그 동안 억제돼온 성에 대한 표현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줄거리의 개연성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합니다. 제 작품의 경우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과 형태를 플로베르식 리얼리즘 형식으로 묘사했을 뿐입니다. 현실은 소설 내용보다 앞서가고 있어요.”

마교수는 피고인석에 비스듬이 앉아 특유의 화려한 어휘 구사로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변호인의 신문에 답해나갔다. 방청석을 메운 학생들과 출판 관계자 중엔 마교수의 ‘법정 강의’를 노트에 꼼꼼히 필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성해방이 아니라 성에 관한 논의의 해방입니다. 그래야 음성적인 성문제가 해결됩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따라서 독자들에게 맡겨야 해요.” 마교수는 시종일관 검찰이 문학 작품인 자신의 소설을 문제삼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현직 교수로, 강의는 물론 학생들의 성적 처리도 해야 하는데 학기중에 덜컥 구속한 데 대해 몹시 불만스런 기색이었다. 수사 검사인 서울지검 특수2부 김진태 검사는 마교수측의 항변이 계속되는 동안 냉소적인 미소로 답했다.

문제가 된 소설 『즐거운 사라』는 기존 문인들조차 “문학이라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고 평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구속 조치에 대해선 재론이 필요없다는 표정이었다. 김검사는 그러나 이례적으로 마교수에 대한 반대 신문을 하지 않아 한 차례 법정 공방을 기대했던 방청객들을 아쉽게 했다. 변호인인 한승헌 변호사는 “형법상 음란물에 대한 판단 기준이 대단히 모호한 데다 사회 통념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어 재판부의 새로운 시각이 요구된다.”며 “동서고금을 통해 작가와 출판사 대표가 작품의 외설 때문에 구속된 것은 전례가 없는 만큼 두 사람의 구속은 취소돼야 한다.”고 강조한 뒤 변론을 마쳤다. 오는 9일 오전중에 내려질 이들에 대한 구속 적부심 결과가 주목된다.
『동아일보』(1992. 11. 8.)

성애 소설의 정당성의 세 근거, 공격성 · 매혹성 · 철학성

결국 1992년 12월 28일, 『즐거운 사라』의 출판과 관련해 마광수는 서울지방법원(판사 석호철)으로부터 ‘음란 문서 제조와 판매’ 혐의로 징역 8월의 유죄 선고를 받고 집행 유예로 풀려난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61일 만이었다. 한 편의 소설이 ‘음란 문서’로 위조되고, 수십 년 동안 사문화되어 있던 법을 적용해, 작가와 출판인의 전격적인 구속 수감에 이어 ‘유죄 선고’까지 내린 ‘즐거운 사라 재판’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 소설 『즐거운 사라』는 미대생인 여주인공 ‘사라’가 벌이는 자유분방하고 괴벽스러운 섹스 행각 묘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성희의 대상도 미술학도, 처음 만난 남자, 여중 시절 동창생 및 그녀의 기둥서방, 동료 대학생 및 스승 등으로 여러 유형의 남녀를 포괄하고 있고, 그 성애의 장면도 자위 행위에서부터 오랄 섹스, 동성 연애, 그룹 섹스, 카 섹스, 비디오 섹스, 에이널 섹스 등으로 아주 다양하며, 그 묘사 방법도 매우 적나라하고 장황하게, 구체적, 사실적으로 또한 자극적, 선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위 소설은 위와 같이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각종의 난잡하고 변태적인 성 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 상세,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다 나아가 그러한 묘사 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는바,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밖에 인정되지 아니하는바,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하여 고찰하여 볼 때 위 소설은 문학 작품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명제와 오늘날의 개방된 성 문화 및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고 해도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서 말하는 음란한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 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이 판결문은 음란서의 여부는 “건전한 사회 통념에 따른 지배적인 성 문화관”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음란’의 개념을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비추어서 그것이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어서 건전한 성 풍속이나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사가 자인하고 있듯이, 이것은 너무나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대로 이를 정리해보면, 서울형사지방법원이 말하는 ‘음란’의 범위는 첫째,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는 것, 둘째,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흥분되어서도 안 되고, 자극되어서도 안 되는, 오, 그토록 불길한 성욕! 그러나 살아 있는 건강한 사람의 성욕이란 활동하는 에너지이고,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개방적인 문화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거의 매순간 성욕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개방적인 문화’들과 접촉하며 살아간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마구 퍼부어지는 온갖 광고, 심지어 뉴스 화면, 비디오, 영화 같은 여러 영상 매체, 신문, 잡지, 책, 지하철 전동차에 부착된 광고······. 특히 생산된 재화의 잠재 소비를 창출하기 위한 소비 사회에서 많은 광고가 ‘육감적인 육체의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매개로 상품에 기호와 환영을 부여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식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육체를 감추고 옥죄던 유교 문화적 윤리의 지배를 받는 사회에서 살지 않는다. 오늘의 육체들은 권력과 제도의 담론에 짓눌려 은폐되거나 하지 않는다. 육체들은 감추기보다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를 과시한다. 우리의 “성욕을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이 모든 개방적인 문화의 주체들을 그 추상적인 ‘음란’의 법 개념을 적용해 다 구속할 수 있는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한 가지 사실만 보아도 ‘『즐거운 사라』 재판’에 적용된 법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사문화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성적으로 흥분되는 것, 자극되는 것은 죄악이 아니며, 살아 있는 인간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명 충동의 활동이다.

덧붙여서, 판결문은 문학 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논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작품의 전체 내용과 관련해 판단해야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학 작품이 부분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관련 속에서 하나의 총체를 이루는 예술 양식이기 때문에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한 편의 소설 중에서 어느 특정 부분을 따로 떼어 문제로 삼으면 논리적인 과장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법원의 판결문도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점을 명시해놓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사와 판사는 기소장과 판결문 뒤에 “『즐거운 사라』 중 성 행위 등 성 관계를 노골적이며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라고 『즐거운 사라』의 여기저기서 따온 대목들을 열한 쪽에 걸쳐 적시해 별지로 붙이는 모순을 저지른다. 그들은 성 행위 등이 “노골적이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부분들만을 적시해 드러냄으로써, 문학 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논할 수 없다.”는 저희의 논리를 스스로 거스른다.

『즐거운 사라』는 작가를 구속해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릴 만큼 위험한 소설일까? 문학의 역사를 조금만 돌아보아도 그것이 탈억압을 위한 끝없는 싸움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키 드 사드는 감옥에서 죽었고, 보들레르는 저 유명한 『악의 꽃』에 씌워진 ‘풍기 문란’ 혐의 때문에 법정에 서야 했고, 『보봐리 부인』의 플로베르가 그랬고,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D. H. 로렌스가 그랬고,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가 그랬고, 『벌거벗은 점심』의 윌리엄 버로즈가 그랬다.

『즐거운 사라』는 성 해방을 꿈꾸는 작가 자신의 성에 관한 사상과 논리를 보여주기 위한 ‘소설적 실천의 행위’다. 따라서 『즐거운 사라』에 성적 담론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성애 소설’은 성을 여느 통속 소설들과 달리 결코 달콤하거나 호색적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다. 이 소설의 문체는 직설적이고, 거칠고, 생략적이고, 건조하다. 이는 『즐거운 사라』가 노골적인 성애를 다루고 있는 어떤 통속 소설들과 달리 독자들의 호색적인 쾌락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씌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마이클 퍼킨스는 현대의 성애 소설이 세 가지 근거, 즉 공격적인 측면, 매혹적인 측면, 철학적인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에로티시즘 저작의 공격적인 형태에서는, 에로티시즘을 통해 무정부적인 충동을 자아내는 극단적인 표현을 포함한다. 그것의 공격적이고 잔인한 이미지들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억압되어 있는 성적 감정의 파괴적 측면을 자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매혹적인 형태에서는 성적 공감의 정서를 끌어내서 독자의 성적 본성을 비춰주며, 철학적인 형태에서는 에로티시즘의 본질을 탐색하고, 특히 에로티시즘을 통해 죽음의 의미나 자아의 초월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적 · 무의식적 충동을 고찰한다는 것이다.1)

『즐거운 사라』 파문이 일어났을 때 보수적 기득권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들은, 성애 소설이 무정부적 충동을 자아내는 공격적인 측면이 있다는 마이클 퍼킨스의 지적을 생각나게 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적 기득권층은 저희의 그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흔히 ‘현상 유지’를 원한다. 그들은 결코 저희의 삶의 토대인 현실이 ‘무정부적’ 상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즐거운 사라』 같은 성애 소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지니고 있는 성적 본성을 통찰하게 할 뿐 아니라, 기존의 도덕 체계를 뒤흔들고 더 나아가 급진적인 현실 변화를 초래할 만큼 위험한 ‘뇌관’을 가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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