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의 삶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엉망’이 되었다. 우울증이 왔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20여년의 시간 속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마광수 문학’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지난해 시집 <일평생 연애주의>(문학세계사)와 올해 들어 <불안>(1996)을 개작한 <페티시 오르가즘>(아트블루)을 낸 데 이어 이달 중에 신작 소설 <돌아온 사라>(아트블루)를 낼 예정이다. 작가에게 <돌아온 사라>는 <즐거운 사라>의 ‘복권’을 의미한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소설 <돌아온 사라>는 제목이 야유적이다.
“<즐거운 사라>가 감옥에 갇혀 있는 지 20년이다. 그래서 이제 그만 사라를 돌아오게 하라. 그런 거지.”
-그때 왜 잡혀갔는지 아는가?
“나중에 <문화일보>가 취재한 걸 보니 당시 현승종이라는 법학자 출신의 국무총리가 특별지시를 했대. 날 잡아넣으라고. 영장도 없이 강의실에 쳐들어와 잡아갔어. 그걸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어. 감옥살이에 연금 박탈에 교수 면직에 정신병, 우울증, 그 많던 머리칼 다 빠지고, 젠장….”
-<돌아온 사라>엔 선생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그래, 나다, 어쩔래?다.”
-19금 소설은 팔기 어려울 텐데.
“출판사 잡는 데만 1년 걸렸다. 이해하면서도 이상해. 한국 사회가 분명 더 야해지긴 야해졌는데 겉으로는 왜 20년 전과 똑같지? 높으신 분들, 하느님 찾는 분들, 엘리트님들 낮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마광수 죽여라 해놓고 밤에는 룸살롱 가는 것도 똑같아.”
-이참에 <즐거운 사라> 해금운동을 해볼 생각은 없나?
“한승헌 변호사님한테 여쭤봤어. 그분 말씀이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죽어도 안 될 거라고. 2007년엔 홈피에 내 팬 한분이 <즐거운 사라>를 올리는 바람에 또 기소가 됐어.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판검사님들은 왜 그리 유치해? 똑같이 물어보는 말 ‘이 책을 딸한테 읽힐 수 있느냐’고. 내가 그랬어. 아니, 왜 아드님 걱정은 안 하시냐고. 솔직히 <즐거운 철수>였으면 날 잡아갔겠냐고.”
-작가로서 문학이론가로서 성에 주목한 특별한 계기라도?
“난 조숙했어. 어릴 적부터 엄청 책을 읽었지. 서구 문학을 읽다 보니 사랑 없는 문학은 시체더라. 물론 <노인과 바다>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럼 사랑은 뭐냐? 핵심은 성욕이었어. 사랑의 목적은 성욕의 해소야.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과 사랑을 억지로 분리시켜. 사랑도 거룩해야만 사랑이고. 웃기고 있네, 싶더라. 그래서 처음엔 이론으로 주장하다가 욕심이 나서 아예 창작으로 나선 거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이고 공개적인 성담론이란 평을 받았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를 내니까 많은 엄숙주의자들이 날 무지하게 욕하더군. 문학도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야한…>은 내가 쓴 시 제목에서 따온 거야. 28살 때 우리나라 최고 지성의 문학지라고 했던 <문학과 지성>에 발표한.”
41살 ‘즐거운 사라’로 감옥살이·우울증 겪어
20년만에 새책 들고 한국사회 ‘터부’ 재도전“
사회는 더 야해졌는데 겉은 그때와 똑같아”
-학창시절은 범생이였을 것 같은데, 아닌가?
“대광고가 예능교육을 참 잘 시켰어. 나는 시를 쓰면서 그림도 잘 그려 미술반 했고, 연극 했고, 교지 편집 했고, 성가대원이기도 했지. 졸업할 때 주는 상 3개를 모두 다 받은 건 나뿐이었어. 공부 잘했다고 우등상, 결석 안 했다고 개근상, 각종 학원문학상, 백일장, 미술대회상을 휩쓸어 학교를 빛냈다고 주는 공로상. 연대 들어갈 때도 내가 톱이었어. 4년 장학금을 받았지. 서울대는 내가 싫어 안 갔어. 거기 출신 중에 괜찮은 작가 봤어? 그렇다고 범생만은 아니었어. 내 별명이 광마잖아? 그거 고교 때 선생님들이 붙여준 거야. 내가 그때부터 좀 독특한 시를 쓰고 그림도 다르니까 선생님들이 날 보면 니가 미친 말이란 녀석이냐? 그랬어. 그때부터 마광수 별명이 광마가 된 거야. 전시회 출품작으로 아담과 이브를 그렸는데 에덴동산이니 당연히 올누드로 그렸지. 그랬더니 미술선생님이 물감으로 치부를 다 가렸어. 이건 그리면 안 된다. 난 정말이지 그게 더 이상했어. 진짜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독서의 힘 아니면 가정환경 영향?
“물론 독서의 힘이지. 나는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남들 같은 부권의 억압이 없었다는 것, 그 점도 내 자아 형성에 작용하긴 했을 거야, 아마.”
-기질적으로 남다른 면이라도?
“특별히 남다른 기질은 없고, 있다면 몸이 많이 약했어. 그래서인지 내가 제일 무서웠던 건 폭력. 동네 애들에게 늘 가진 걸 빼앗기고, 얻어맞았어. 내가 겁이 많으니까 뱀을 잡아다가 놀리고 내가 울면서 도망치면 그러는 내가 재밌어서 더 쫓아오고. 아이들 세계는 사디즘의 세상이야. 나중에 <즐거운 사라>로 잡혀갔더니 조사실에 욕조가 있어. 물고문할까 싶어 덜덜 떨었다.”
-종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관심이야 지대했지. 종교 책도 많이 읽었고. 그런데 결론은 반종교야. 나는 허무맹랑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읽어봐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특히 기독교는 교리도 합리적이란 생각이 안 들었어. 그런데 왜 한국의 권력층들은 다 큰 교회에 다니는 거지?”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게 특이했다.
“나도 그랬다. 그분 정말 철저한 퓨리턴이잖아? 술·담배는 물론 커피도 안 마시는. 그런 분이 내 시가 유니크하다고 뽑아줬어. ‘배꼽이 섹시해’ 뭐 그런 시였는데.”
-마광수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를 했다는 건 더욱 의외였다.
“윤동주로 박사 한 게 내가 처음이다. 그의 쉽고 어린애 같은 시세계가 좋았어. 나는 이상이 제일 싫어. 천재라고 떠받드는 사람은 더욱 싫고. 그냥 똥폼이야. 윤동주에겐 그런 똥폼이 없어. 쉽고 순수하고 똥폼 안 잡는 점에서 나와 윤동주는 같아.”
-유미주의를 문학적 모토로 삼고 있는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마광수에게 아름다움은 인공미다. 자연미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잘 꾸미는 인공미의 시대이고, 대표적인 것이 페티시이다. 누구는 나더러 외모지상주의자라고 하는데 내 주장은 타고난 외모 비관하지 말고 페티시를 통한 인공미로 자연미를 뛰어넘자야. 얼마 전 내가 가수 산다라 박을 위한 시를 썼어. 긴 가발을 쓴 걸 보니 무지막지하게 섹시하다, 그런 내용인데 누가 포털에 실어날라 유명해졌지. 연대 애들한테 물어보니 9만5000원짜리 가발이래. 그거 투자해 대박났잖아?”
-요즘 세대는 성형을 화장술의 하나쯤으로 여길 정도다. 그것도 페티시?
“마구잡이 성형만 조심하면 그건 일종의 심리치료야. 남자고 여자고 외모 신경 안 쓰는 사람 어딨어? 이쁜 여자가 좋다고 하면 페미니스트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서는데, 요즘 미국 페미니즘은 개혁운동이 한창이야. ‘립스틱 페미니즘’. 화장하고 이쁘게 가꾸면서도 얼마든지 페미니즘 외칠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100만부 팔리는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에 별의별 성담론, 성정보가 범람한다. 이런 시대에 20년 전과 같은 성애문학이 필요할까?
“한마디로 잘못된 관점이다. 야동이 더 야하니 야한 소설은 그만두라? 소설은 영화가 할 수 없는 독자의 상상적 참여가 가능한 장르다. 서구에서는 그래서 에로티카 장르가 존재한다. 문학의 장점이다.”
-마광수 문학의 특징으로 경박함을 꼽는데?
“의도된 경박함이다. 나는 늘 제발 쉽게 쓰자, 어려운 글은 못 쓴 글이지 심오한 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우린 너무 무거워. 우리나라 신간 소설 반이 일본 건데 그거 다 가볍거든. 그래도 가벼운 일본은 노벨상 2명, 무거운 우리는 한 명도 없어.”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지나친 엄숙주의인 건 맞다. 왜 그렇다고 보나?
“종교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 기독교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대통령도 무릎 꿇리는 나라잖아? 종교, 특히 기독교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섹스는 절대 낮의 담론이 되면 안 돼. 그러니 낮에는 교수, 밤에는 야수. 허허.”
-한국 사회가 이중적인 건 다 아는 바 아닌가? 일정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라? 그것 참 어려운 주문이다. 그런데 타협의 기준이라도 있는가? 주먹구구, 건수 올리기, 아니면 괘씸죄. 왜?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마광수이기 때문이다. ‘교수란 새끼가 어떻게 제자 따먹는 얘기를 써?’ 그거지. 그거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욕먹어라, 사서 고생 마라 하는 권유를 한다면?
“하긴 어머니 간병비만 수천만원인데 책만 쓰면 19금 딱지를 붙이니, 나도 고민이긴 고민이야. 아, 차라리 표준검열표라도 있어서 그걸 핑계 삼아 교양소설로 적당히 둔갑할 수 있다면… 그러면 두가지 반응 나오겠지? 마광수가 이젠 좀 정신을 차렸구나, 아니면 항복했구나. 장정일은 그렇게 항복했잖아?”
-소설가 장정일씨를 만난 적이 있나?
“3~4년 전인가 대구에서 그림 전시회를 했는데 거길 와서는 진지하게 충고하는 거야. 이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한국이란 나라에선 안 되니 단념하라는 건지, 자기가 해보니 가치가 없더라는 뜻인 건지, 하여간 깜짝 놀랐어….”
-당신 문학은 한국 사회에 뭘 기여할까?
“꼭 뭘 기여해야 하나? 아무튼 기여한다고 치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나라 소설이 소설다워지는 데로 돌아가는 데 기여한 거지. 나는 이문열처럼 많이 팔리는 대중작가는 아니지만 나야말로 민중작가라고 자부해. 민중들에게 소설은 밤에 심심할 때 읽는 거야. 문화의 효용에 교훈설과 쾌락설이 있는데 나는 철저히 쾌락설 쪽이야. 나는 쾌락설로 한국 문화를 잠에서 깨운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런 따위의 구분을 믿지 않아. 내가 보기에 진보나 보수나 둘 다 비슷해. 그거 따지는 사람들은 다 권력추구 집단이야. 내가 말하는 문학적 문화적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검열의 완전 철폐, 표현의 자유의 완전한 보장, 그런 데 기여하는 사람들이야. 프랑스 68혁명의 모토가 뭐야? 모든 상상력에 권력을! 아냐?”
사랑 목적은 성욕해소…‘쾌락설’ 철저 옹호
표현자유·검열철폐 ‘모든 상상력에 권력을!’
“똥폼잡은 이상보다 쉽고 순수한 윤동주 좋아”
-쾌락주의를 지지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는 부정적인데.
“나는 사랑을 극단적으로는 정신병으로 본다. 플라토닉 러브는 솔직하지 못하다. 프로이트를 빌려 말하면 핵심은 성욕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란 말보다 성애라는 말을 쓴다. 사랑은 굳이 말한다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을 말할 때는 통하지만, 인간 남녀 사이에 사랑이란 말은 뭐랄까 간사스러운 말이다. 하하.”
-그래도 남녀가 만나 40~50년 사랑하며 함께 살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이지만 이건 명언이야. ‘사랑해서 섹스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추상적이야. 연대 애들도 들어보니까, 다 자보고 나서 살지 말지 결정한다는 쪽이더라.”
-하긴 요즘 젊은 세대는 성에 대해 훨씬 자유롭긴 하다. 프리섹스를 지지하나?
“준비중인 수필집에 이렇게 썼다. ‘부담 없이 즐기는 섹스 파트너가 좋다.’ 그게 원나잇스탠드잖아.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리고 빠이빠이. ‘그 어떤 집착과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난 섹스’ 그런 점에서라면 나는 프리섹스주의자야.”
-결혼은 왜 했고 이혼은 왜 했나?
“결혼은 좋아해서 했고 이혼은 궁합이 안 맞아서. 내가 그 뒤로 쓰는 말이 있어. ‘겉만 야한 여자한테 속지 말자’, 으하하.”
-요즘 사귀는 여성은?
“4년 전에 공을 들여 쫓아다닌 여자가 있었는데 결국 나이 땜에 안 됐어. 그놈의 나이. 2년 전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내가 동거하자고 했더니 싫다고 도망갔어. 38살 여자였는데 죽어도 안 된대. 그러더니 얼마 있다가 9살 연하 남자한테 시집가더라구. 그러니 내가 상대가 되겠어, 아홉살 연하, 허, 아홉살….”
-노후대책은 있나?
“진짜로 걱정된다. 책 내기도 어렵고, 연금도 없고…내 소망은 오직 한가지다. 어느날 갑자기 단번에 죽는 거.”
그는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의 한 빌라에서 아흔의 노모와 간병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눈으로도 섬약해 보였다. 부실한 듯한 치아 사이로 새나오는 쉰 목소리, 숱이 부족한 백발, 구부정한 허리… 거실에 진열된 2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젊은 마광수의 사진들은 자신감 넘치는 모더니스트의 전형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노마 진 시절에 찍은 빨간 비로드 위의 누드가 그 사이에서 아름답기보다는 애처로웠다.
아무리 근엄한 사회더라도 어쩌면 얼마간은 있어야 오히려 좋은 ‘유쾌한 이단아’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빛내줄 수도 있었던 한 영혼에게 우리 사회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남자는 비치 의자에 누워 여전히 계속 눈을 감고 있다. 남자는 백일몽의 환상에 빠져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잠을 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꿈도 없는 잠, 그저 피곤하기만 한 잠, 재미없는 잠이다. 그가 살고 있는 나라,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도 같은 그런 죽어 있는 잠이다.”
(<페티시 오르가즘>의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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