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신동립 기자 =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잡초는 몹시 예쁘기도 한데 왜 잡초이기에 뽑혀 나가야 하는지요? 잡초는 아무 도움 없이 잘만 자라주는데 사람들은 단지 잡초라는 이유로 계속 뽑아 버리고만 있습니다’- 마광수 ‘잡초’
마광수(66) 전 연세대 교수(현대문학)가 5일 낮 1시51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1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 후 1년여 만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 마 교수는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해 왔다. 필화 탓에 1990년대 장기간 허송세월을 하면서 얻은 마음의 병이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라는 책을 낸 뒤 교수들의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소설 ‘즐거운 사라’(1992)가 야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 당해 수감되는 바람에 해직되기도 했다. 2000년 같은 과 동료교수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우울증이 심해져 3년6개월 동안 휴직했다.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입원했다. 2002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해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 다시 휴직했다. 2004년 건강을 겨우 회복하고 연세대로 복직했다.
마 교수는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 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점점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갈 거고 따라서 병도 많아지고 몸은 더 쇠약해갈 것이고, 논 기간이 아주 길어 아주 적은 연금 몇 푼 갖고 살려면 생활고도 찾아올 거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 작가 등 사이에서 고통받은 것이 너무나 억울해지는 요즘이다. 그냥 한숨만 나온다“고 털어놓았었다. “파란만장, 지쳤다. 애썼지만 한국 문화풍토의 이중성은 안 없어졌다. 동지가 없다. 나 같은 작가가 안 나오고 있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마 교수는 13년째 운영해온 홈페이지 ‘광마클럽’마저 최근 비공개로 전환시키며 독자와 팬들의 소통로를 스스로 차단했다.
우울증은 정신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큰 질환이다. 술자의 축문 독경, 무(巫) 의식, 기도, 부적 등의 효험을 보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약물은 더 잘 듣고, 위안을 주는 유사 종교도 지천으로 널렸다.그러나 마 교수에게는 신앙이 없었다. 자작 사자성어 ‘이허수명(以虛受命)’을 좌우명 삼았다. 마음을 비우고 천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마 교수는 “그 천명이 기독교의 여호와 신이든, 불교의 부처님이든, 아니면 그저 막연히 하늘의 뜻이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그저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자연쯤 되겠다”며 초연해하기도 했다.
자살은 근로를 두려워한다. 우울증은 일에 몰두케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일은 생의 리듬을 되찾아주고 성취감까지 안긴다. 하지만 마 교수는 “출판사들이 예전같지 않다. 경제 문제도 걱정이다. 앞으로 빈 시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오호 통재라, 이 고통을 어찌하리오”라고 하소연했었다.
지난 2일 동부이촌동 마 교수의 아파트 근처 빵집에서 고인을 만난 연극제작자 강철웅씨는 “충격이다. 11월 공연예정인 마 교수 원작 ‘즐거운 사라’ 극본을 전달했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듯해 상당한 로열티도 약속했다. ‘즐거운 사라’를 이후 영화로도 만들기로 합의했었다”며 슬퍼했다.
사흘 전 그 자리에서 마 교수는 우유를 마셨다. 치아가 많이 빠진 데다가 신경성 복통으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할 일이 없어서···”라며 담배를 연신 피웠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65)와 결혼한 마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마광수 ‘자살자를 위하여’
◆마광수(馬光洙·1951~2017)
◇서울 생. 청계 초등학교 졸업, 대광 중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한양대, 강원대 등 여러 대학 강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교수(1979~1983),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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