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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예전 반도에서도 노벨상 후보?...
2017년 11월 01일 10시 19분  조회:3471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양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남한에서는 이태규를, 북한에서는 리승기를 화학계의 원조로 기리고 있지만, 김양하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가을이 되면 과학담당 기자들은 바빠진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스웨덴 왕립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면 매체들은 앞다퉈 그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는가’ 같은 토론회를 연다(행여 수상자 가운데 일본인이 있으면 토론회의 분위기는 한층 더 비장해진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 이처럼 노벨상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도성장기 개발주의의 잔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타당한 분석이지만, 노벨상에 대한 집착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한국인 ‘노벨상 후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혁명적 변화를 겪고 있던 해외의 과학계 소식이 보도되었고, 노벨상은 그 변화의 대열에서 어느 나라의 누가 앞서 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일본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기 전까지 몇 명의 후보만 물망에 올랐을 뿐 수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김양하를 노벨상 후보로 꼽은 「동아일보」 기사. ‘비타민 E 결정 발견: 세계 학계에 대충동’이라는 제목에 ‘노벨상 후보 김씨’라는 부제목을 달아 소개했다. / 「동아일보」 1939년 1월 10일자 석간

비타민 E와 ‘킴즈 메소드’

그런데 193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는 일본이 그토록 바라던 노벨상을 가져올 후보가 다름아닌 한국인이라는 주장을 폈다. 한국인 과학자와 기술자의 활동을 소개하는 연재기사 중 하나에서 “일본 학계에서 ‘노벨상’의 후보자로 추천한다면 단연 우리의 김씨를 꼽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 넘치는 논평을 실은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하기로는 이것이 한국 언론이 한국인을 노벨상 후보로 지칭한 가장 이른 예다.

여기서 김씨는 화학자 김양하(1901∼?)를 가리킨다. 그리고 노벨상까지 거론하며 김양하의 주요 업적으로 소개한 ‘킴즈 메소드’, 즉 ‘김씨 방법’이란 그가 고안한 비타민 E의 결정을 분리하는 공정을 일컫는다.

김양하는 함경남도 출신으로,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제국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일본 과학계의 핵심 기관 중 하나인 이화학연구소(리켄)의 스즈키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취직하였다. 스즈키 우메타로(1874∼1943)는 비타민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1910년 쌀눈 추출물이 각기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유효성분을 분리하여 ‘오리자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벼의 라틴어 학명 ‘오리자 사티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리자닌은 서양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다른 미량영양소들과 함께 뒷날 ‘비타민’이라는 갈래로 묶이면서 ‘비타민 B’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 스즈키는 오늘날의 비타민 B(티아민)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리켄의 스즈키 연구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비타민 연구집단 중 하나였다.

김양하는 스즈키 연구실의 일원으로 여러 가지 비타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야흐로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비타민 E의 정체를 밝히고 그 순수한 결정을 분리해 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1935년 리켄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쌀눈에서 비타민 E 결정을 추출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발표했다. 이것이 일본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한반도에도 전해졌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한국계 언론들은 1935년 말부터 김양하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김양하의 연구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네 번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일간지에서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그대로 싣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동아일보가 김양하의 연구를 매우 높이 평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타민 연구는 20세기 초반 노벨상이 쏟아져나온 분야다. 서양에서 각종 비타민을 최초로 발견하고 분리해낸 이들은 대부분 노벨상을 받았다. 더욱이 스즈키 우메타로는 비타민 B에 해당하는 물질을 서양보다 먼저 발견하고도 그 연구 결과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벨상 공동 수상에서는 빠졌고, 많은 일본인들이 그것을 아쉽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양하가 비타민 연구에서 중요한 성과를 내자 다시 일본이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일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양하를 ‘노벨상 후보’로 거명한 동아일보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당시 비타민 연구를 둘러싼 세계 생물학계의 경쟁은 너무도 치열하여 김양하의 연구를 넘어서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비타민의 가짓수도 점점 늘어나면서 한 종류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해도, 한국인 과학자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전세계의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운 것이었다. 김양하는 이태규나 리승기 등과 함께 ‘과학조선의 파이오니어’로 이름을 높였다. 한편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43년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농화학 전공)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왜 이리도 낯선가

그러나 김양하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남한에서는 이태규를, 북한에서는 리승기를 화학계의 원조로 기리고 있지만 김양하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기억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물론 그의 과학 연구가 모자라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김양하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에 가린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리켄을 떠나 한반도로 돌아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생화학을 가르치다가 광복을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였으므로 조선학술원의 서기장과 부산수산전문학교의 교장 등 조국 재건을 위한 여러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미 군정의 고등교육 개편안이 서울에서 이른바 ‘국대안 파동’으로 이어지던 와중에, 부산에서도 국립부산대학교 설치에 반대하는 ‘부산 국대안 파동’이 일어났다. 부산수산전문학교는 통·폐합의 대상 중 하나였으므로 김양하는 부산대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고, 학교에서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학술원 활동 또한 결과적으로는 김양하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국대안 파동을 계기로 미 군정과 지식인 사회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조선학술원 원장이었던 백남운을 비롯한 학술원 주도 인사들은 하나둘씩 월북길에 오르고 말았다. 김양하는 여운형과도 교분이 깊었고 김성수의 한국민주당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유연했지만 결국 북으로 떠났다(월북과 납북 여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북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은 갑자기 끊기고 만다. 1952년 북한 과학원 창립 기록 등에서 김양하의 이름이 보이지만, 1950년대 후반 숙청의 바람이 불면서 김양하의 이름도 북한의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고, 우리는 그의 생몰연도를 물음표로 끝낼 수밖에 없다. 최초로 노벨상을 기대했던 한국인 과학자는 그렇게 희미한 사진만을 남기고 잊혀 갔다. 역사에 대한 기억 대신 노벨상에 대한 아쉬움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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