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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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무궁화
2009년 02월 11일 15시 29분  조회:783  추천:21  작성자: 허무궁

   몸을 비틀어 짜내도 이렇게까진 많은 땀이 나오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하루종일 밖에 다니면 이렇게도 많은 땀이 흘러내린다. 이 몸속에 얼마만큼이나 물이 들어찼길기에 이렇게도 많이 나올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서 기분이 아주 나쁜 불여름이다.
    오늘엔 옛사무소를 실험실로 꾸려놓느라 땀도 많이 흘렸다. 오후 세시경까지 다 끝내고 나는 동료인 노구치와 함께 남은 시간을 리용하여 새로 이사간 사무소의 베란다에 놓을 화분통을 사러 갔다. 넓은 베란다가 너무 썰렁하여  큼직한 화분통을 몇개 사다놓으려고 며칠전부터 벼르고있던참이였다.
    노구치와 나는 도이토라는 큰 홈센터에 가서 마음에 드는 화분을 골랐다. 노구치가 행복의 나무라는 좋은 이름을 가진 화분 하나 고르고 난 유달리 나의 눈을 끄는 무궁화를 골랐다. 가지 세개밖에 나지 않은 어린 나무인데 그 여린 가지에 꽃봉오리가 가득 매달려있었다. 파아란 잎에 분홍색꽃이파리가 속살을 드러낸 꽃봉오리가 귀엽다.
    이튿날 베란다에서 무궁화는 꽃 두개를 피워주었다.
사무실 동료들의 얼굴도 꽃과 함께 웃음꽃 활짝 피게 되였다.
삼일째 되는날엔 아쉽게도 하나도 피여주지 않았다. 한송이는 오후에 피리라고 우리 모두가 서로 자기가 아는척 하면서 추측을 했는데 오후에도 피여주질 않았다. 필가말가 한것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피는 과정까지도 볼수 있을것만 같아서 자주 내다보았다. 어제 저녁 퇴근하고 베란다에서 중화료리를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며 베란다에 새식구들이 들어온 환영 파티セ를 열었었다. 콩크리트수림에 눌리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듯 갑갑한 대도시에서는 이렇게 푸름 한포기라도 모이면 감격에 목이 메일 정도다. 단 두송이의 무궁화였지만 장장 두시간동안의 화제를 만들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필가말가 하더니 끝내 피지 않았다. 금요일이고 또 다음주 월요일이 바다의 날이라 주말 삼련휴로 되였다. 나와 노구치는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낭아노켄에 있는 공장에 출장 가게 되였으나 그 출장준비보다 나는 그기간 고열의 베란다에서 고생할 무궁화가 근심되여 견딜수가 없었다. 작은 화분통에 부식토를 담아놓은것이 아마도 하루만 물을 주지 않으면 인차 말라버릴것 같아 나는 저녁에 물을 듬뿍 주고 인터넷으로 이틀후 비가 옴을 확인하고서야 조금은 안심되였다.
    밤새 외롭게 홀로 필 꽃을 이쁘게 괴로워하며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련휴가 끝나 부랴부랴 출근하니 사무원인 영선씨가 울상이 되여있었다.
   다_ 말라버렸어요.»
    묻지도 않은 말 꺼냈지만 난 무궁화를 말한다는것을 즉시 알았다.
   그래요_? 어디 보자.»
    베란다로 가보니 바싹 말라버린 잎들이 가지에 힘없이 매달려있었고 활짝 핀 꽃도 마른 이파리를 간신히 붙들고 달려있었다. 다행이라 할가 꽃망울만은 통통한대로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작은 화분통을 큰 화분통으로 바꾸어 부식토도 듬뿍듬뿍 담아놓고 허약해진 무궁화를 조심조심 옮겨놓고 물 가득 주었다. 그리고나서야 흐르는 땀을 훔치며 베란다의 걸상에 앉아서 불쌍한 무궁화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푸르싱싱하던 가지가 메말라 맨 끝머리는 시들어버린 머리를 떨어뜨렸다. 파아란 잎도 누렇게 늦가을 나무잎처럼 생기를 잃었다. 한참이나 태양의 불결에 타있는 꽃을 바라보다가 나는 가위를 집어들고 말라버린 가지를 끊어버리려고 했다. 시들어버린 가지를 되살리려고 하기보다는 시원히 잘라주면 식물은 용케도 새로 가지를 뽑아내는것이다. 그러나 나의 손은 인차 멎고말았다. 다치기만 해도 부시시 떨어질것만 같던 시든 꽃이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고 마른 잎만 맥없이 떨어졌던것이다. 순간 메마른 체구에 애써 피워온 꽃만을 지꿎게 붙들고 놓지 않는 무궁화의 굳은 마음이 전달되여 온다. 그 모습 름름하기까지 돋보여 가위를 든 나의 손이 다 떨리였다.
    내 어찌 그러는 무궁화에게 함부로 가위질 할수 있단말인가! 수분이 모자라니 온 몸의 수분을 모두 집결하여 꽃망울에 공급을 한 모양이였다. 새 생명의 탄생만을 기원하며 말라든 이파리여! 가을에만 지는 락엽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서는 한여름이라도 선뜻이 헌신하는 이파리의 갸륵함이여! 이미 지워버린 꽃들도 새 생명을 위하여서 수분을 탐내지 않고 희생하였다. 아, 오로지 이제 곧 피여날 꽃망울만을 위한 무궁화의 가족들이여!
    가지에서 용감하게 갈증과 싸우는 생의 부르짖음이 들려온다.
    밑뿌리에서 생에 대한 의욕의 힘찬 맥동이 진동한다.

    저녁 퇴근하며 다시 살펴보았더니 시든 잎과 가지사이로 새파아란 애어린 잎을 뾰족 내밀고있었다. 정말 거짓말 같이 시든 잎 모두가 떨어지고 그 시든 잎과 가지사이로 이렇게 합창이나 하듯 새이파리를 내밀고 캐득캐득 웃고있었다. 너무도 희한하고 감동이 되여 눈물이 찔끔 나왔다.
   무궁화는 사랑만 있으면 얼마든지 억세게 살아갈수 있는법이라고 무슨 큰 철학 적오성이라도 얻은듯한 기분으로, 나의 가슴에도 무궁화 한송이 피여나고있었다.

                                            2005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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