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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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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먹이사슬" 댓글:  조회:3728  추천:0  2018-05-16
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 (ZOGLO) 2018년5월16일 [한겨레] [애니멀피플] 한국표범은 주로 사슴 사냥…두만강 건너 중국 동북부 조사 결과 멧돼지와 사슴 주 먹이지만 호랑이는 반달곰, 표범은 수달도 사냥 아무르호랑이가 대륙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을 재현한 이탈리아 밀라노 자연사박물관의 디오라마. 중국 동북부에서 실제로 호랑이는 멧돼지 사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한 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3000마리 이상이 살았던 아무르호랑이(백두산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는 현재 500여 마리만 야생에 살아남았다. 가장 큰 야생집단은 러시아 연해주로 415∼490마리가 서식한다. 이와 분리된 다른 한 집단은 두만강 건너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로 약 20여 마리의 백두산호랑이와 세계에 100마리 미만이 남은 아무르표범(한국표범)이 함께 산다. 중국이 대규모 호랑이 국립공원을 조성 중인 이 지역은 연해주의 호랑이 서식지가 이미 포화상태여서 또 다른 서식지가 필요한 데다 백두산 생태계의 일부로서 장차 한반도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으로 주목받는 지역이다(▶관련 기사: 중국에 지리산 2배 ‘호랑이 국립공원’ 생긴다). 특히 이 지역은 대형 포식자인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분포해 먹이를 둘러싼 이들의 경쟁 관계가 관심을 끄는 곳이다. 두만강 건너 중국과 러시아 국경 지대의 중국쪽 호랑이·표범 서식지(붉은 격자). 세모는 무인 카메라 위치, 점은 마을을 나타낸다. 양하이타오 외 ‘사이언티픽 리포트’(2018) 제공.중국 연구자들이 이 지역 호랑이와 표범의 배설물을 통해 먹이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와, 두 포식자가 언제 어떤 먹이를 잡아먹으며 상호관계를 맺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연구자들은 2014∼2016년 동안 중국 지린 성 동부와 헤이룽장 성 남동부인 러시아 국경 지역 보호구역에 483개의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호랑이와 표범의 배설물 각 217개와 115개를 수거해 먹이를 분석했다.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2일 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두 대형 포식자의 주요 먹이는 멧돼지와 두 종의 사슴으로 이들이 전체 먹이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그러나 포식자가 선호하는 먹이는 종마다 계절마다 약간씩 달랐다. 멧돼지는 호랑이의 가장 중요한 먹이로 전체 마릿수의 37%를 차지했지만 표범에게는 붉은사슴(누렁이, 백두산사슴, 말사슴)이 전체의 38%였다. 먹이의 양으로는 멧돼지가 호랑이 먹이의 46%였고 대륙사슴(꽃사슴)은 표범 먹이 양의 34%였다. 겨울철 눈이 쌓인 곳에서 활동이 민첩하지 않은 멧돼지는 호랑이의 주요 먹이가 된다. 김봉규 기자연구자들은 “호랑이는 특히 겨울에 멧돼지를 선호했지만 표범은 여름에 멧돼지 비중이 높았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실제로 겨울에 호랑이 먹이의 비중(마릿수)은 46%에 이르렀지만, 표범은 4%에 그쳤다. 반대로 여름에 멧돼지를 먹이로 삼은 비율은 호랑이 3%, 표범 11%였다. 이런 현상은 표범이 큰 멧돼지를 피해 봄에 태어난 어린 개체가 많은 여름에 멧돼지 사냥을 주로 했지만 호랑이는 사냥 노력에 견줘 에너지 확보량이 많은 다 큰 멧돼지 사냥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멧돼지는 사슴보다 키가 작고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 빨리 달아나지 못해 호랑이의 표적이 되는 측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호랑이의 기본 식량은 사슴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동북부 호랑이와 표범의 먹이동물 목록. 양하이타오 외 ‘사이언티픽 리포트’(2018) 제공.이들 대형 포식자의 먹이에는 모두 11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형 발굽 동물 말고도 중형 포식자와 소형 포유류, 가축 등이 포함돼 있었다. 호랑이의 먹잇감으로는 너구리가 8%로 멧돼지와 사슴 다음으로 많았으며, 이어 오소리, 여우, 반달가슴곰, 산토끼, 개, 소, 사향노루 순으로 자주 먹이 목록에 올랐다. 표범은 사슴과 멧돼지에 이어 오소리가 7%로 많았고, 이어 여우, 소, 너구리와 산토끼, 수달과 사향노루, 개 순으로 자주 잡아먹었다. 연구자들은 “호랑이와 표범이 모두 잠복사냥을 해 먹이가 중복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실제로는 먹이의 크기에 따라 선호하는 종이 달라 한 서식지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5월18일 저녁 허난 롼촨(欒川) 라오쥔(老君)산 ‘만 명 두부연, 만 명 공짜로 두부 먹기’행사가 열였다. 3.5톤에 이르는 ‘팔괘(八卦)’ 두부를 현장에 모인 수천 만 명이 나눠먹는 모습은 장관을 이뤘다./// 신화사 
227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그물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342  추천:0  2018-05-16
거제 앞바다서 '백상아리'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 이경구 기자 2018.05.16.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길이4m, 무게300kg..정치망에 걸려 거제 앞바다에서 죽은채 발견된 백상아리(독자제공)© News1 (부산ㆍ경남=뉴스1) 이경구 기자 = 영화 '죠스'로 유명해진 바다의 포식자, 백상아리가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지난달 27일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앞 해상에서 거창수산 정치망 그물에 백상아리 한마리가 걸려 죽은 채 발견된 사실이 16일 뒤늦게 알려졌다. 이 백상아리는 길이 4m, 무게 300kg정도로, 발견된 장소는 육지에서 300여m 떨어진 곳으로 알려졌다. 백상아리를 발견 할 당시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오전 5시쯤 어장을 찾았을 때 그물 3곳이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며 "가끔 수달이 들오는데 수달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길이 4m, 무게 300kg정도의 백상아리(독자제공)© News1 그리고 "1시간뒤 백상아리가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물 위에 떠 오른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물이 심하게 망가진 것으로 보아 백상아리가 전날 저녁쯤 그물에 갖힌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망에서 탈출을 시도 하다 탈진해 죽은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빨이 그물에 감겨 있었고 심하게 상처를 입어 상당히 오랜동안 탈출을 하려고 발버둥친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치망은 자루모양의 그물을 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설치해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렵다. 이 백상아리는 통영위판장으로 넘겨져 팔려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 [포토] 4.5m 밍크고래         그물에 걸려 2018.05.16.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16일 전남 완도군 보길면 보옥항 인근 해상에서 4.5m 크기의 밍크고래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돼 해양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전남 완도해양경찰서 제공
2275    [타산지석] -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댓글:  조회:3334  추천:0  2018-05-16
우리 민족 매체는 서로 경쟁적수가 아니다 (ZOGLO) 2018년5월11일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홍길남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홍길남 1. 매체의 합작에 대하여 문득 연변일보사와 길림신문사에서 선후로 부총편으로 계시던 고 정경락선생의 글이 떠오른다. 6년전에 그가 쓴 칼럼인데 제목은 “민족언론 존재의 가치”이다. 그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은 교류와 합작으로 약점을 극복하고 강점을 발휘하면서 발전을 도모하는 시대다. 한번의 합작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좀 더 대담히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로 손잡고 조선족사회의 열점문제를 다루어가길 바란다. 좋은 자원을 공유해야만이 그 영향범위를 넓힐 수 있고 독자들의 수요에도 만족을 줄 수 있게 된다. 지당한 말씀이다. 우리끼리의 합작에는 조건이 없다고 본다. 각자가 저작권을 존중하는 전제하에서 진행하는 활발한 뉴스정보공유는 어디까지나 가능하다. 중국의 조선문 여러 매체는 서로 합작파트너관계이지 경쟁적수가 아니기에 반드시 서로 안아주고 리해해주고 믿어주어야 한다. 우리의 합작은 어디까지나 창조력으로 차넘치는 합작이여야 한다. 우리는 당당한 주류매체이다. 청화대학 맑스주의학원의 교수이며 박사생도사인 추광문(邹广文)은 주류문화는 중국공산당이 창도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문화로서 한족문화만이 곧 주류문화라는 설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피력한 적이 있다. 추광문의 관점에 따르면 한족매체만이 주류매체인것은 아니며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소수민족매체도 중국 주류매체의 한 부분에 속한다. 매체사이에 서로 대화, 교류, 합작기제를 이루는 것은 아주 필요하다. 전국 조선문매체 협동(协作)회의는 가히 치하할 만하다. 이번 회의는 우리끼리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은 글로벌시대이기에 우리는 마땅히 지역을 벗어나 전국과 세계에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이 우리의 매체가 진정 글로벌시대에 발맞출 수 있고 진정 세계가 중국을 알게 하고 중국을 세계에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집단보도의 수요에 따라 중국조선문매체 협동취재팀이란 락관(落款)을 만들 필요도 있다. 2.조선족 관련 선전에 대하여 우리의 민족신문은 반드시 중국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주로 다루어야 한다. 민족신문이 볼거리가 없는 주되는 원인의 하나가 조선족과 조선족사회에 대한 반영이 미비한데 있다. 조선족사회의 관심사로 되고 있는 새로운 현상, 새로운 문제, 새로운 사건, 새로운 인물들이 폭 넓고도 깊이있게 발굴되지 못하거나 미래발전대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되고 있다. 지금 중국조선족들은 력사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다.이때 우리 매체의 옳바른 리드가 중요하다. 이럴 때일 수록 우리는 우리 민족의 렬근성에 대해 꼬집을 것이 아니라 민족의 우수성에 대해 많이 말하며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재기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거론해야 할 것이다. 농촌의 황페화만 아직도 부르짖거나 인구대이동을 무조건 부정해버리는 페단을 이젠 삼가해야 한다. 황페화와 인구대이동은 개혁개방의 산물로서 우리는 이를 정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건은 그런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는 로무송출도 제창해야 하거니와 젊은 세대들이 ‘일대일로’에도 궐기하도록 권장해야 하며 동시에 귀향창업의 붐도 일으킬 수 있도록 보다 긍정적인 여론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일정한 비판을 통한 긍정적선전을 제창한다. 국부만 보고 전반을 부정하는 부정적선전은 제창할바가 아니다. 조선족들더러 직업농민의식을 갖게 하고 산업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책적으로 많이 제시해주고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매체마다 제각기 자기의 특색에 알맞는 조선족발전 관련 아이템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문자+도안+영상’의 립체적보도방식과 전통매체와 뉴미디어의 융합선전방식을 도입함이 십분 중요하다. 3.지역선전에 대하여 선전부의 지도하에 국내외 매체와 손잡고 특정한 지역에서 집단취재활동을 벌림으로써 지역의 지명도를 높여야 한다. 동북아 여러 나라들에 대한 선전력도를 강화해야 한다. 동북아지역 여러 나라들사이의 경제무역협동 새 모습을 포착할 만단의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글 최화기자 ///길림신문 ============================ 문화지능 향상은 민족번영의 포석(布石) 2018년 05월 15일 작성자: 김인섭 무심히 책장을 뒤적거리다 어느 기업의 인재공모 문안에 ‘문화지능이 높은 자’가 우선이란 조건이 명시되었는데 ‘최우선 참작’이라는 포인트까지 돌출시켜 눈길이 끌렸다.문화지능이란 술어는 말글에 아주 드물게 쓰이는 신조어인데 오늘 행간에 떠오르니 시대를 선도하는 어느 선각자의 발빠른 고급동작으로 랭철히 받아들였다. 문화지능이란 한 문화에 대하여 언어로부터 력사 연원과 특성까지 심각히 리해하고 그 세계의 사람들과 원활한 융화를 이뤄가는 능력을 가리킨다.세부적으로 말하면 다른 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장애나 격의 없이 어울리는 문화 수준이다.현재 일반적으로 타문화와의 의사 교류 능력을 언어로 가늠하는데 오늘은 언어의 장악부터 문화 습득과 소통 기능을 일괄하여 문화지능으로 표술하고 있다.이것은 시대 발전상이 언어에 투영된 것이며 그는 기업뿐이 아닌 어느 민족이나 단체 혹은 개체의 불가피적 소질로 부상한다는 표지이기도 하다. 세계화 조류와 과학의 발전은 여러 민족 간의 교류 필요성과 기회를 대대적으로 증가시킴으로서 타문화와 어울리는 더욱 높은 기량을 수요하고 있다.이리하여 국제시장을 겨냥하는 회사들은 자연히 직원들의 문화 적응 능력에 눈을 박게 된다.사회 관리의 행정사무에서 국제적 경제문화 교류의 요소가 부단히 늘면서 타문화와의 접촉이 상시화되고 있다.그러므로 모든 민족과 개인의 발전에 있어서 문화지능은 불가피적 요소 혹은 상황에 따라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인식이 산생하는 것이다.  오늘 조선족사회는 인구 이동,인구 격감,공동체 해체,교육 위축, 문화 쇠락 등등 부작용으로 고초를 겪고 있지만 이것은 ‘청소년 생장기’의 성장통으로서 광의적 시각에서 보면 민족사회에 일어난 합법칙적 변화이다.조선족은 이 과정에서 낡은 체제의 구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생업 구조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였고 중국의 사회발전에 기여하면서 개혁개방의 선두주자로서 참신한 이미지를 육성하여 왔다.조선족은 이미 개혁개방 초기의 문화적 혼돈의 단계를 넘어 이질 문화와 슬기롭게 융합하는 탄탄대로에 들어섰다.오늘의 민족사회에서 나타난 성과는 결국 민족의 문화지능이 이룩한 결과물이라 리해해야 한다. 조선족사회는 과거 20,30년 전에 대비하여 이미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고이젠 한국과 일분을 중심으로 이국 땅과 국내의 주요 경제 지역에서 공동체를 고착해 나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이것은 조선족사회가 새 발전을 이룩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자원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역시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우수 민족으로 발돋음하고 세계 한민족과 중국의 우호적 교류를 추진하는 새 발판이며 도약대인 것이다.우리는 이 새로운 출발선에서 고차원의 민족 문화지능 향상에 주마가편(走马加鞭)이란 박차를 가해야 한다.    조선족사회의 전통적 문화지리와 경제지리가 구조적으로 달라지고 인구 감소도 현재 진행형이고, 민족문화도 그냥 난국에 물려있고, 교육도 여전히 불안의 고전을 겪고 있다.그러나 민족문화 가치는 상승하고, 민족인재의 수요가 박절하며, 민족문화 부흥의 대중 의지가 높아지는 새 형세가 이루어지고 있다.이것은 민족문화 발전에 새 희망과 재생에너지를 부여하고 있다.우리는 이 시류를 타고 새로운 문화지능의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하는 추진방향과 실천방침을 기치선명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문화는 그 민족의 언어,생활양식,가치관념,풍속습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물질문명와 정신문명의 종합체이다.조선족문화는 중한 두 민족문화가 융합되어 선명한 중국특색을 가지게 되는바 이것은 조선족의 생존,발전과 사회공헌의 기본적 자본이 된다.우리는 력사를 총화하고 현실에 립각하여 새로운 문화륭성으로 번영의  도로를 개척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조선족 문화지능의 근간이다. 조선족에게는 문화지능으로 국제화 교류의 선두주자로 되었고 중국과 세계 한민족의 우호교류를 발전시켰다는 력사 증명이 있다.우리는 지속하여 자신을 일류의 문화지능을 소유한 문화민족으로 건설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닥쳐오는 지능화시대에 민족사회를 꽃피우는 불가결의 포석이다. ///연변일보 2018-05-10
2274    [그것이 알고싶다] - "5달러 건물"?... 댓글:  조회:5157  추천:0  2018-05-15
일제가 5달러에 뺏은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113년만에 태극기 신보영 기자  2018.05.1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다시 문 여는 自主외교의 상징 : 1889년 미국 워싱턴에 세워졌다가 최근 복원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외관(왼쪽 사진)과 접견실(오른쪽) 모습. 복원이 완료된 대한제국 공사관은 오는 22일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개방될 예정이다. 문화재청 제공 - 22일 美 워싱턴서 재개관 日帝, 1905년 외교권 강탈해 1910년 단돈 10달러에 처분 문화재청, 2012년 되찾은 뒤 6년간 원형 그대로 고증·복원 韓美 수교 136주년 맞춰 오픈 이위종 특사 어릴적 사진 첫공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이 한·미 수교 136주년인 오는 22일 다시 문을 연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폐쇄됐던 공사관에 태극기도 113년 만에 다시 걸리게 됐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측은 “오는 22일 오전 10시 30분 공사관이 위치한 워싱턴 로건 서클의 역사지구 공원에서 김종진 문화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사관 개관식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14일 밝혔다. 행사에서는 국기 게양식도 함께 열리는데, 1889년 개관 당시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독립유공자 월남 이상재 선생의 증손이 참여할 예정이다. 공사관은 1877년 남북전쟁에도 참전했던 정치인 세스 펠프스가 자택으로 건립했던 건물로, 대한제국은 1889년 2월 2만5000달러에 매입한 뒤 구한말 대미 외교의 본거지로 집중 활용해 왔다. 하지만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 폐쇄됐고, 1910년 한일 합병 직후 일제가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 미국인에게 10달러에 처분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잊혔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공사관 건물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3년 한국인의 미국 이민 100년을 계기로 한인 사회에서 공사관 매입 움직임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이에 문화재청은 정부 차원의 매입 필요성을 느끼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을 통해 2012년 10월 당시 소유자였던 변호사 티머시 젱킨스로부터 350만 달러(39억5000만 원)에 매입한 뒤 6년간 고증·복원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빅토리아 양식에 걸맞게 책상·의자·침실 등 각종 집기와 꽃무늬 카펫, 벽지까지 특별 주문했다. 고증·복원 비용도 총 100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오수동 사무총장은 “철저한 복원을 위해 한국 규장각뿐 아니라 미국 언론의 마이크로필름까지 뒤졌다”고 말했다. 특히 공사관에는 초대 공사였던 박정양, 최초의 주러시아 공사를 지내기도 했던 이범진 등의 외교활동 사진도 진열돼 있다. 또 1907년 고종이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비밀 파견했던 ‘헤이그 특사’ 3인방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이위종 선생의 어린 시절 사진도 처음으로 발굴돼 전시돼 있다. 이위종 선생은 이범진 공사의 차남으로, 영어·러시아어에 능통해 ‘헤이그 특사’의 통역을 도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종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장은 “이채연 공사의 경우 귀국 뒤 한성(서울) 부시장을 하면서 공사관 앞 로건 서클에 착안해 서울시청 앞에도 유사한 서클을 만들었을 정도로, 공사관의 역사가 한국 근대사와 많이 엮여 있다”고 말했다. 공사관 1층은 객당(접객실)과 식당, 2층은 공사 집무실과 침실, 서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침실이나 연회장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은 공사관 및 한·미 관계 역사를 홍보하는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공사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게 공개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워싱턴 = 신보영 특파원 /이경택 기자 
2273    [타산지석] - "중화 제일 거룡" 댓글:  조회:4676  추천:0  2018-05-15
  [촬영: 중국신문사 우쥔제(武俊杰)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8일] 5월 2일, 산시(山西, 산서) 타이위안(太原, 태원)의 펀허(汾河) 관광지구의 ‘대형 용’이 새 단장을 했다. ‘중화 제일 거룡(中華第一巨龍)’이라 불리는 이 경관등 조형물의 총길이는 126미터, ‘용머리’는 16미터에 이르며 겉표면의 방수 실크는 약 3000평방미터에 달한다. (번역: 박지연)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촬영: 중국신문사 우쥔제(武俊杰) 기자]   [촬영: 중국신문사 우쥔제(武俊杰) 기자]   [촬영: 중국신문사 우쥔제(武俊杰) 기자] ================================   [촬영: 중국신문사 류신(劉新)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4일] 5월 12일 신장(新疆, 신강) 연협회 회원들과 현지 시민들이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스런거우(石人溝, 석인구) 관광지 산골짜기에서 화려한 연날리기 쇼를 펼쳤다. 꼬리 부분이 길게 늘어진 삼각연, 문어 모양 연, 경극(京劇) 롄푸(臉譜: 중국 전통극에서 일부 배역들의 얼굴 분장) 모양 연, 길이가 50m에 달하는 용 모양 연 등이 산골짜기를 지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촬영: 중국신문사 류신(劉新) 기자] ================================= ////////////////////////////////////////////////////////////////////// =================================   [촬영: 중국신문사 자톈융(賈天勇)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0일] 5월 7일, 베이징(北京, 북경)시 펑타이(豐臺)구의 한 입체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중 화장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공중 화장실의 벽면은 크기가 각기 다른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안에는 해당화와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화장실은 ‘입체식 화원’으로 재탄생했다. (번역: 박지연)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   프랑수아랑구르 ‘샤오샤오(笑笑)’와 새끼들의 모습이다. [촬영/신화사 류다웨이(劉大偉)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4일] 5월 13일, 광저우(廣州, 광주) 창룽(長隆)동물원에 살고 있는 프랑수아랑구르 ‘샤오샤오(笑笑)’와 그녀의 이란성 쌍둥이 새끼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미 ‘샤오샤오’는 4월 19일과 20일 새끼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란성 쌍둥이 새끼는 24시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났는데 이는 영장류 동물에게서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다. 갓 태어난 프랑수아랑구르의 색깔은 황금색이며 3개월 후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한다. 중국 국가 1급 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는 프랑수아랑구르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종인 ‘레드리스트’에 올라와 있고 현재 광저우 창룽동물원에는 2개 군체 14마리의 프랑수아랑구르가 살고 있다. (번역: 은진호) ///신화사(新華社) ===========================   이리마(伊犁馬)들이 강에서 유희를 즐기고 있다. [촬영: 리원우(李文武)] 신장(新疆, 신강) 자오쑤(昭蘇)현은 ‘중국 천마(天馬)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사육되고 있는 말만 10만 필이 넘으며 대부분 이리마(伊犁馬)이다. 이리마는 외관이 출중하고 신체 조건이 뛰어나며 면역력이 강해 현지 목축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은 이리마들이 강에서 ‘목욕’을 즐기는 모습이다.                                                                                                                      [인민망 한국어판 5월 8일] 5월 초 신장(新疆, 신강) 자오쑤(昭蘇)현 터커쓰허(特克斯河)강 부근에 ‘천마(天馬)’들이 목욕을 즐기는 기의한 풍경이 펼쳐졌다. 초여름 자오쑤 대초원에 수초가 풍성하게 자라면서 매일 정오 이리마(伊犁馬: 중국 말의 일종으로 ‘천마’라고 불리기도 한다)들이 강가로 모여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말들은 서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   양 떼, 초원, 애플나무숲이 서로 잘 어울리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촬영: 리볜장(李邊疆)]                                                                                     [인민망 한국어판 5월 14일] 5월의 신장(新疆, 신강) 퉈리(托裏)현 궈쯔거우(果子溝) 관광지에는 항상 초록이 무성하다. 다양한 품종의 야생화가 피어나고 그 모습은 마치 수려한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바람소리와 환상적인 경치는 한 편의 시구(詩句)와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궈쯔거우는 퉈리현 이북 2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 산천에 크랩애플이 널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궈쯔거우의 여름은 다양한 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향긋한 꽃향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2272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시인의 길"을 조성했으면... 댓글:  조회:5179  추천:0  2018-05-15
어느 봄날, 김용택 시인과 거닌 섬진강 길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2018.05.13.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마음이 치유되는 섬진강 문학마을길 섬진강 길을 걷고 있는 김용택 시인© News1 윤슬빈 기자 (전북=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봄날, 섬진강 길은 연둣빛으로 그득하다. 매화와 벚꽃이 지고 난 자리엔 싱그러운 녹색잎이 무성해지고 온갖 야생화들이 길섶을 수놓고 있다. 녹음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햇볕에 반짝반짝 은빛을 낸다. 그 풍경 속 걷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구간이 있다. 전북 임실의 '섬진강 문학마을길'이다. 섬진강 500리 중 약 8km 길이의 '진뫼마을~구담마을'까지 이어지는 길로 이곳의 소박한 자연 속엔 순박한 김용택 시인이 살고 있다. 마을 주민과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김용택 시인의 옛 집© News1 옛집에 부착된 김용택 시인의 이름표© News1 시인의 마을은 섬진강 길을 걷다가, 잠시 땀을 식히기 좋은 길목에 자리해 있다. 이름은 진메 마을. '진메'는 마을 앞에 긴 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진뫼', '장산마을'로도 불린다. 시인의 옛집은 진메 마을 내에서 전망으로는 으뜸이다. 돌담에 작은 마당이 있는 옛집에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섬진강과 산을 바로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풍경을 김용택 시인은 70평생을 보면서 살고 있다. 그는 1978년 덕치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해 지난 2008년까지 38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재직 중 1982년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21인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걷는 중간에 만나게 되는 봄 풍경© News1 또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 섬진강 주변을 부지런히 오고 간다. 새벽 6시에 천담마을까지 약 40분을 걷는데, 바로 이 구간이 시인이 '서럽도록 아름답다'고 했던 바로 그곳이다. "남들은 좋은 풍경도 하루 이틀이지 섬진강에서 사는 것이 지루하지 않냐고 하는데, 매일 똑같이 흐르는 강물이 어딨겠냐. 새들의 지저귐도 유심히 들으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가 걷는 이 구간은 봄에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렁이는 섬진강은 보기만 해도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야생초를 뜯어서 맛을 보는 김용택 시인© News1 섬진강 풍경© News1 시인처럼 강변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자연이 길동무가 되어 준다. "어린 산이 따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리 오거라'라고 어린 산을 불러두고. 같이 바위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땀을 식힌다" 그가 말하는 어린 산은 정확한 실체는 없지만, 아마 섬진강 주변 자연의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주변엔 때 묻지 않은 자연만이 펼쳐진다. 걷다 보면, 자연이 주는 선물도 받게 된다. 봄이면 맛과 향이 일품인 두릅이 올라오면 하나둘 따고, 여름이면 입가심용으로 산딸기를 따서 먹으며, 길을 거닌다. 천담마을에 다다른 김용택 시인© News1 그가 매일 천담마을을 목적지로 둔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섬진강변에 귀농·귀촌인들의 제자를 두고 있어서다. 최근 농촌으로 정착하려는 도시민들이 느는 추세이지만, 대부분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대개 1년을 못 버티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섬진강의 '강변사리'의 경우 그런 면에서 성공적인 귀농·귀촌인 모임이다. 이들은 섬진강 마을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가꾸어 나가고 있다. 주기적으로 모여 영화 이야기, 기타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중 하나가 김용택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 캠프다. 김용택 시인에 따르면 글 쓰고 시를 짓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연을 관찰만 해도 너무 재미있다. 봄이 되면 꽃을 피워주니 얼마나 재밌나. 자연이 하는 말은 받아쓰기만 해도 곧 시가 된다. 나무만큼 시를 잘 쓰는 사람도 없을 것" 섬진강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에 새겨진 김용택 시인의 시들을 볼 수 있다. © News1  
2271    [이런저런] - "장돌뱅이" 고양이 댓글:  조회:4906  추천:0  2018-05-15
베트남서 생선 파는 고양이 '개'                                  SNS서 인기몰이 2018.03.13.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베트남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의 한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듯한 모습을 한 고양이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몰이하고 있다. 스코티시 폴드(스코틀랜드산으로 털이 짧고 귀가 접힌 고양이 품종)종인 세 살배기 고양이 사진이다. 이 고양이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재래시장에서 생선, 채소 등을 팔거나 선글라스를 비롯한 각종 소품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이 지난 7일부터 트위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베트남서 생선 파는 고양이 [트위터 화면 캡처] 이를 본 누리꾼이 앞다퉈 공유해 13일 현재 5만2천여 명이 리트윗(재전송)했고, 10만7천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 고양이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도 이미 6만6천100명을 넘어섰다. 미국 인터넷매체 버즈피드뉴스에 따르면 고양이의 주인은 레 꾸옥 퐁(25)이다. 재래시장과 가까이 살면서 익살스러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퐁은 고양이에 옷을 입혀 생선 등을 파는 상인을 돕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채소 파는 고양이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덕분에 고양이는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베트남어로 '쪼'(cho)로 개를 뜻한다. 퐁은 정말 더운 날 이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마치 개처럼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 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생선 파는 고양이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퐁은 "'개'를 홍보해서 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대해 알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2270    [동네방네] - "어머니, 사랑합니다"... 댓글:  조회:3655  추천:0  2018-05-15
커시안의 밤 -“어머니 사랑”최경호 음악회 북경서 [ 2018년 05월 13일 ]     어머니,사랑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 정에 취해 웃고 우는 커시안의 밤- 《어머니 사랑》최경호 음악회가 동방가무단 주최, 커시안그릅의 협찬으로 5월13일 저녁 7시,북경국가도서관예술중심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당문견(唐文娟)이 총연출을 맡은 이번 음악회는 지난 2015년 조선족기업가들을 주축으로 한 조선족사회가 일궈낸 최경호가수생애 30주년《동방의 정》음악회에 이어 3년만에 펼쳐진 최경호가수의 두번째로 되는 대형음악회이다. 음악회는 최경호가수의 대표작 하나인 “어머니 사랑합니다”로 서막을 알렸고 제1편장 《따스한 세월》을 주제로 《그가 바로 나》,《어머니의 마음》,《어머니 생각》,《어머니와의 대창》등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에 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노래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제2편장 《전진의 동력》에서는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초불속의 어머니》,《내 마음속의 이야기》등 노래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마음속의 깊이 담겨진 애정을 그대로 감미로운 목소리와 순수한 감성으로 표현해 관중들의 마음을 설레이는 감동속에 푹~빠지게 했다. 이어서 제3편 《잊지못할 은정》에서 《잎과 뿌리의 얽힌 정》,《어머니 고마워요》,《어머니의 입맞춤》,《전생의 부모와 래세의 아들딸》,《떠날수 없는 당신》,《사랑의 기적》등 노래는 관중들로 하여금 어머니 소중한 사랑을 영원히 명기하고 내일의 꿈을 아름답게 밝혀나가려는 가수의 뜨거운 열정에 취해 음악회를 고조에로 이끌면서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최경호가수한테는 두분의 어머니가 있다. 한분은 낳아서 성인으로 애지중지 키워준 고인으로 된 자애로운 어머니, 다른 한분은 음악의 전당에서 거룩한 존재로 최경호가수를 친자식처럼 열심히 가르쳐주고 정확하게 인도해주면서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중국음악계의 원로 곡건분 선생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바로 어머니이다. 이날은 바로 어머니날로서,어머니를 주제로 하는 음악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더욱 따스함에 젖어 느끼고 추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의미깊은 자리로 되였다.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연길적 정녀사는 음악회가 끝난후 《조선족으로서 어머니날에 어머니를 노래하는 최경호가수의 음악회를 감상할수 있어 무척 행운이다》면서 《부모를 존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조선민족의 미풍량속으로서 향후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것으로 녀성과 어머니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이 살겠다》고 말했다. 커시안의 밤-“어머니 사랑”최경호 음악회를 위해 동방가무단의 배우들뿐만 아니라 연변의 예술인들도 무대에 함께 동참해 음악회 성공에 한몫 했다. 지난 최경호가수의 가수생애 30주년음악회 총연출을 맡은 오향옥감독이 제1편에서 《어머니와의 대창》 연출을 맡아 무대를 빛내였다. 뿐만안니라 연변가무단의 초청가수 김학준,김선희가수의 노래와 마효령,박경무 배우의 장고춤은 관중석으로부터 박수갈채로 이어졌다. 동방연예그룹의 국가1급배우이자 저명한 가수인 최경호는 가수생애 지난 33년동안 국내외에서 13차의 독창음악회를 개최할만큼 실력파 가수이다. 최경호는 흑룡강성 경박호반의 순박한 조선족 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1981년 부대생활을 시작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타 전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문예회보공연에 참가해 음악에서 천부적인 자질을 보여주며 많은 영예도 안았다. 1984년 제대한후 선후로 흑룡강성 목단강시 목릉현문공단,할빈시조선족예술관,중국가무단배우로 있으면서 전국《가왕가후》성악콩클,전국 《화흥》컵 성악콩클,전국소수민족성악콩클 등에서 1등상을 차지했다. 이 기간 그는 국내 유명한 작곡가인 곡건분,서패동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예술수양면에서 지도를 받아 예술에서 질적인 비약을 가져왔으며 30여부 드라마의 주제곡과 삽입곡을 부르기도 했다. 최경호는 가수생애 지난 33년동안 사회각계와 청중들로부터 수많은 생화와 영예,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아왔지만 한 저명한 가수로서 사회공익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시종 잊지 않았다. 그는 수차례나 공익음악회를 열어 빈곤학생들과 독거로인 및 재해구에 300여만원에 달하는 의연금을 지원했다. 현재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최경호가수생애 30주년 성공과 함께 연변대학객원교수로 초빙되였다. 최근년간 최경호는 전국 각지의 조선족사회의 각종 행사에 발벗고 나서 노래로서 응원하고 흥을 돋구면서 대중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즐거움을 전달했다. 최경호 가수생애 33주년은 그가 더욱 성숙한 명가수로 중국가요계의 찬란한 별로 떠오른 과정이였고 수많은 사람들한테 본보기로 살아온 삶의 로정이였다. 커시안의 밤-“어머니 사랑”최경호 음악회는 이날 공연에 이어 5월14일 오후 7시 북경국가도서관예술중심에서 두번째공연을 하게 되며 총 두차례의 공연으로 전부 마무리하게 된다. 길림신문 글 강동춘 특파기자/ 사진:허문학
226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단표절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002  추천:0  2018-05-15
표절·외설·#미투.. 문단 30년, 마침표 없었던 논쟁  2018.05.1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 논쟁으로 본 문학 30 [한겨레] 왼쪽부터 작가 마광수, 조정래. ‘현상’으로까지 일컬어진 하루키 소설의 인기는 한국 작가들 사이에 크고 작은 표절 논란을 낳았다. 이인화의 소설 (1992)에 대한 글에서 작고한 평론가 이성욱이 더 큰 혐의를 둔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와 공지영 소설에 대한 표절이었지만, 하루키 소설의 문장과 문체 역시 표절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하루키를 흉내 내거나 베낀 것이 이인화만은 아니어서, 90년대 초 한국 작가들은 경쟁적으로 ‘하루키풍’ 소설을 선보였다. 장정일과 박일문은 서로가 하루키를 표절했다며 공방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세계관의 표절’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하루키 베끼기’로 시끌했던 90년대 조정래 ‘이적성’ 고발에 11년 고초 ‘외설 시비’ 마광수 창살에 갇혀 문화권력·성폭력 논란 한창 은 완간 5년 뒤인 1994년 우익 단체들의 새삼스러운 고발로 검찰에 의해 이적성 여부를 조사받았다. 작가는 후속 작품인 과 을 쓰는 도중에 검찰에 불려가고 해명 자료를 준비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얼굴 없는 이들의 전화 협박도 이어졌다. 이 고발 사건은 11년이나 시간을 끌다가 2005년에야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되었다. 마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1992년 10월 음란물 제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두달 만에 집행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가 쓴 소설 때문이었다. 여자 대학생 사라의 자유분방한 성 편력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을 두고 외설이냐 표현의 자유냐 하는 논란이 펼쳐졌다. 장정일도 1996년에 출간한 소설 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다. 유부남 조각가와 여고생의 온갖 변태적 성행위를 다룬 이 소설로 장정일은 법정 구속된 뒤 두달 가까이 형을 살았으며 보석 상태에서 열린 항소심과 최종심에서도 유죄 판결(집행유예)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문학 전문 출판사 문학동네가 출현한 뒤 한국의 문학출판은 기존의 창비와 문학과지성사 양립 체제에서 문학동네가 추가된 삼분할 체제로 재편되었다. 문학동네는 단지 삼분할 체제에 만족하지 않고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출판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출판사는 적극적인 기획과 공격적 마케팅으로 문단과 독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주례사비평과 문학권력 논쟁이 이 삼분할 체제를 대상으로 펼쳐졌다. 김명인·김진석·권성우·고명철 등 ‘비주류’ 평론가들이 필자로 참여한 책 (2002)는 “출판 자본과 문단 미시권력의 결합으로 점차 폐쇄적 기득권 구조 속에 안주해가는 한국문학장에 대한 비주류 비평가들의 광야의 외침과 같은 경고의 목소리”(김명인)로서 “문학비평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의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 공감을 얻었다.”(서영인) 2015년에 불거진 신경숙 표절 사건은 문단 권력의 자족적 폐쇄성에 대한 이들의 경고가 근거 없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 여파로 출판사들은 잡지 편집위원을 교체하거나 아예 새로운 문예지를 창간하는 등 변신의 몸부림을 보였다. 그러나 2016년에는 시인들을 중심으로 한 기성 문인들이 연루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고 2018년에는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과거 성폭력을 고발하고 나선 데 이어 소설가 하일지 역시 ‘미투’ 캠페인의 대상이 되는 등 문인들의 언어적·신체적 성폭력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재봉 기자
226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장벽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709  추천:0  2018-05-14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그려진 그림들 2018.05.1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라말라
226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공공조형물관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315  추천:0  2018-05-09
낙서에 방뇨까지..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한 '공공미술' 노동규 기자  2018.05.09.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도심에 있는 대형 건물 주위에서는 큰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연면적 1만㎡를 넘는 건물을 지을 때는 면적에 비례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거나 공공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인데, 사실 설치만 했을 뿐 관리는 부실해 흉물이 되버린 작품들이 많습니다. 노동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 상가건물 앞 공공미술 조각품입니다. 작품 주변에 담배꽁초와 캔이 굴러다니고, 표면에는 때가 들러붙어 있습니다. 광고지가 붙었던 흔적도 눈에 띕니다. [공공미술품 주변 상인 : 진짜 '고철 덩어리'인데다가, 여기서 노숙자들이고 남자들이고 저기서 오줌 눠서, 저기 나무 밑에 서 있어 봐요, 지린내 얼마나 나는지…애물단지예요.] 이 상가 앞 조형물은 일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욕설이나 보기 민망한 낙서로 얼룩진 조각상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공공미술품 3천400여 개 중 지난 한 해에만 183개가 이런 식으로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장주영/경기 파주시 야당동 : 낙서도 해 놓고…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 한 그런…] 거리 판매대에 포위돼 제대로 보이지 않는가 하면, 노점 천막에 가려져 푸대접받는 공공미술품도 있습니다. 여기 벽에 있는 이 부조작품도 공공미술이지만 술집 광고판이 이렇게 버티고 있어서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는 훼손된 공공미술품에 대해 지자체장이 건축주에게 원상회복을 명령하게 돼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흉물로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겁니다.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건축주가) '준공 검사 받았으니까 끝났다'. 이렇게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유지관리 하고, 기왕에 돈이 들어간 거니까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민에게는 예술을 즐길 기회를, 작가에게는 창작 의욕을 북돋기 위한 공공 미술. 함께 공유하겠다는 시민 의식과 함께,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는 건축주에게는 세제혜택 같은 지원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영상편집 : 황지영, VJ : 김형진)  /노동규 기자
226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백두산공동연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122  추천:0  2018-05-09
'하와이 화산 10만 배' 백두산..                      남북 과학 협력 물꼬? 신방실  2018.05.09.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앵커] 미국 하와이에서 화산 폭발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백두산은 하와이 화산보다 폭발력이 10만 배나 강할 것으로 추정돼 남북 공동 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신방실 기상전문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울창한 수풀 사이로 시뻘건 용암이 뿜어져 나옵니다.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무암으로 이뤄진 하와이 화산은 용암의 점성이 낮고 흐르는 성질이 있어 대피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반면 백두산은 점성이 높은 유문암 성분으로 가스가 축적됐다 한 번에 대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942년 '밀레니엄 대분화' 당시 백두산의 분화지수는 최고 수준인 7, 현재 하와이 화산보다 10만 배나 폭발력이 강했습니다. 2002년 무렵부터는 지진이 급증하는 등 화산 활동 재개 움직임이 감지됐습니다. [이덕기/기상청 지진화산연구과장 : "화산 분화가 임박하면 화산성 지진이 증가하고 화산성 가스의 성분이 변하고 지각이 부풀어 오르는 등 전조현상이 일어납니다."] 이후 평양지진국은 영국 연구팀과 백두산 하부 지각이 일부 녹아 변형됐다는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백두산 분화가 시작되면 남한까지도 피해가 예상되지만 현재로선 자료 접근이 어렵습니다. [윤성효/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 "남북한 회담에 의해서 백두산에 우리 장비를 설치할 수 있으면 데이터를 북한에도 주고 우리도 가져와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경우 남북 과학 협력을 통해 백두산을 공동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방실입니다.
2265    [동네방네] - 윤동주, 이육사 친필원고 문화재 되다... 댓글:  조회:4314  추천:0  2018-05-08
시인 윤동주·이육사 친필원고' 등 항일유산 6건 문화재 됐다 (ZOGLO) 2018년5월8일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문화재청 제공)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와 저항시인 윤동주와 이육사의 친필원고 등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조일관계사료집', '윤동주 친필원고',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장효근 일기' 등 5건과 근대 건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1건 등 총 6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8일 밝혔다. 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본관, 헨리관, 식당동' 등 2건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등록문화재 제710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는 3·1운동 이후인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 1945년 8월17일까지 개최한 정기회와 임시회 회의록 등이 포함된 자료이다. 이 문서들은 임시의정원 의장을 네 차례 역임한 홍진(1877~1946)이 해방 이후인 1945년 12월1일 환국할 때 국내로 가지고 들어왔고 별세한 후 유족들이 보관하다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했다. 등록문화재 제711호 '조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로, 조선총독부 등에서 발간하는 일제의 선전물이 식민통치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100질이 만들어졌으나 현재 국내에서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 소장본이 유일하다.  윤동주 친필원고.(문화재청 제공) 등록문화재 제712호 '윤동주 친필원고'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유일한 친필원고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와 같이 개별 원고를 하나로 묶은 시집 3책과 산문집 1책, 낱장 원고 등으로 구성돼 있다. 등록문화재 제713호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이원록, 1904~1944)가 남긴 시 편복의 친필원고로,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대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형상화했다.   등록문화재 제714호 '장효근 일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장효근(1867~1946)이 1916년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거의 매일 기록한 한문체의 일기이다. 등록문화재 제715호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은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소(牛) 막사(幕舍)'를 주거시설로 바꾼 것으로 당시 피난민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등록 예고된 문화재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48년에 착공돼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에 완공된 후 광주의과대학 본관과 전남대 본부로 쓰이다 현재는 전남대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청-본관, 헨리관, 식당동'은 지난 2017년 등록문화재 제681호로 등록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과 함께 1961년 대건신학교 건물로 건립됐다. 본관을 중심으로 브레디관, 헨리관, 식당동 등 4동 건물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지하에서도 상호 연결돼 있는 점 등은 다른 건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문화재청 제공)   뉴스1 =============================== 일제 저항시인 윤동주 이육사의 친필원고, 문화재가 됐다 도재기 선임기자     2018.05.08  문화재로 등록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의 ‘ 윤동주 친필원고’.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와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의 친필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윤동주 친필원고’와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를 비롯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등 항일독립 문화유산 5건과 근대 건축유산 1건 등 모두 6건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등 2건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윤동주 친필원고’는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담긴 유일한 육필원고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와 같이 개별 원고들을 하나로 묶은 시집 3책과 산문집 1책, 낱장 원고 등으로 구성됐다. 이 친필원고는 윤동주의 유고·유품을 가지고 있던 친지들이 해방 직후 동생 윤일주에게 전해준 것에 여동생 윤혜원의 소장품이 합해진 것이다. 이렇게 모인 원고 등 유품들을 윤일주(1985년 작고) 가족이 보관하고 있다가 2013년 2월 윤동주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기증했다. 문화재로 등록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의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은 이육사의 시 ‘편복’의 친필원고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작품이다. ‘편복’은 탈고 당시에는 일제의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으나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되면서 알려졌다. 이육사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 ‘편복’ 원고는 유족들이 소장해오다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에 기증했다.   두 시인의 친필원고와 함께 항일독립 문화유산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조일관계사료집’, ‘장효근 일기’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 1945년 8월 17일까지 개최한 정기회·임시회 회의록 등이 포함된 자료다.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홍진(1877~1946)이 1945년 12월 국내로 갖고 들어왔고, 유족들이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서는 임시의정원의 원본 자료일 뿐아니라 당시 임시의정원, 임시정부의 활동내용 등을 알 수 있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조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다. 조선총독부 등에서 발간하는 일제의 선전물이 식민통치의 실상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연맹에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총 4책이며, 당시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완질은 독립기념관 소장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효근 일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장효근(1867~1946)이 1916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한문체의 일기다. 제국신문(帝國新聞), 만세보(萬歲報) 등의 창간과 발행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 장효근은 3.1운동이 추진되던 1919년 2월말 독립선언서 2만여장을 인쇄·배포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일기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상과 국내외 정세, 독립운동에 대한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또 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건축문화유산인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은 피난민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소(牛) 막사를 주거시설로 바꾼 것으로 당시 피난민의 삶, 이후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밖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헨리관·식당동’ 등 2건은 문화재로 등록예고됐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48년에 착공, 1951년에 완공된 후 광주의과대학 본관과 전남대학교 본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전남대 의학박물관 건물이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헨리관·식당동’은 지난해 문화재로 등록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과 함께 1961년 건립됐다. 이들 건축물은 근대 건축물로 역사적·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 등록이 예고됐다.  ========================   ​ ​ 문화재청이 시인 윤동주와 이육사가 쓴 친필 원고를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작가가 쓴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동주 친필 원고는 고인이 남긴 유일한 원고로, 개작한 작품을 포함해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담겼으며, 이육사의 '편복'은 당시 일제의 사전 검열로 발표하지 못했지만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돼 일반에 알려졌다.   
226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명태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261  추천:0  2018-05-08
  대한민국 거제 앞바다서 '귀한 몸' 명태 잡혀…어민들 "난생처음"     지난 17일 경남 거제시 덕포 앞바다에 설치된 연안자망에 잡힌 길이 50㎝ 짜리 명태 1마리 2018.4.24 [거제수협 제공=연합뉴스]  
2263    [그것이 알고싶다] - 맑스는 워낙 기자였다... 댓글:  조회:4408  추천:0  2018-05-07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고학력자·기자·애주가 마르크스의 개인사 영국 망명 미국신문 유럽특파원으로 일해 경제사정·질병 7자녀 중 4명 어려서 잃어   카를 마르크스(뒷줄 오른쪽)가 후원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뒷줄 왼쪽) 및 세 딸과 함께 망명지인 영국 런던에서 찍은 사진. 5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철학자·경제학자·정치이론가·역사학자·사회학자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문을 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과 마오쩌둥 등이 그의 사상을 차용하면서 20세기를 뒤흔들었다.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소련과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중화인민공화국이 마르크스 사상을 이념적 토대로 삼았다.      미국 신문 유럽 특파원 마르크스 마르크스에게 유럽 특파원 자리를 주고 생활비를 벌게 해준 미국 신문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지면. 당시 20만 부를 발행해 세계 최대 부수를 자랑했다. 마르크스는 미국 독자를 위해 영어로 기사를 써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혁명의 시대가 오기 전인 1883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거의 일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 일부 혁명 조직의 설립에 관여했지만 아무래도 그의 주 임무는 글쓰기였다. 1849년 6월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던 마르크스는 미국 신문인 뉴욕 데일리 트리뷴의 유럽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30세이던 1848년부터 1862년까지 14년 동안 영어로 기사를 써서 보냈다. 그 사이 마르크스는 독일 쾰른에서 영국 런던으로 주거를 옮겼다.   이 신문은 당시 20만의 독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 매체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럽 특파원 마르크스에게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원고료를 줄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런던 망명 생활 초기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에서 받는 원고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 마르크스가 가장 많은 기사를 쓴 매체도 이 미국 신문이다. 이 기간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기명 기사 350건, 엥겔스 명의 기사 125건, 공동 집필 12건 등 모두 487건의 기사를 이 신문에 실었다. 주제도 노예제도, 제국주의, 혁명과 전쟁, 세계의 사회와 정치, 세계 경제와 금융 등 폭이 넓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등을 쓴 학자이자 저술가이면서 동시에 기자였다.      7자녀 중 세 딸만 성인까지 생존 마르크스의 큰딸 예니 카롤리네(왼쪽)와 둘째딸 예니 라우라의 1865년 모습. 마르크스의 원고료 수입은 상당액이 가족 부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부인 예니와 사이에 일곱 자녀를 뒀다. 가정적으로는 힘들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온갖 고난이 계속돼 살아서 살아서 '무간도(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하나로 괴로움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곳)'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녀 중 넷을 어려서 잃었고 세 딸만 성인까지 성장했다. 당시 높은 영아사망률을 생각하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19세기에만 해도 출산한 모든 자녀가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부족해 의사도 부르지 못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일도 있었으니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생전에 부인 및 딸 중 한 명을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는 간암으로 투병하다 1881년 12월 숨졌다. 큰딸은 아버지 마르크스가 숨지기 두 달 전에 방광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런 불행을 연속으로 당하면서 마르크스는 심신이 쇠약해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담배와 술도 육체가 허물어지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1883년 3월 감기 등으로 코와 목의 점막에 염증이 생기는 카타르가 악화해 기관지염과 늑막염으로 번지면서 숨졌다. 마르크스의 장례식에는 둘째와 막내 딸, 그리고 평생 친구 엥겔스, 첫째와 둘째 사위, 독일 혁명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등 9~12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로운 최후였다.     첫 딸 먼저 보내고 두 딸은 자살   자식은 누구에게도 살가운 존재다. 마르크스는 어려서 숨진 네 자녀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딸 세 사람만 성인까지 살아남았다. 이들은 모두 혁명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모든 딸에게 부인의 이름인 예니(영어로 제니)를 붙였다. 첫째인 예니 카롤리네(영어 제니 캐롤라인, 1844~1883)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성인까지 성장해 1872년 프랑스 혁명가 샤를 롱게(1839~1903)와 결혼했다. 아버지의 글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등 활동을 하다 간암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인까지 성장한 마르크스의 세 딸 중 유일하게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이자 병으로 숨진 유일한 딸이다.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의 1830년대 모습. 마르크스는 부인을 고향 트리어 최고의 미인이라고 말했다. 둘째 예니 라우라(영어 제니 로라, 1845~1911)는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성인까지 성장해 프랑스 혁명가이자 의사인 파울 라파르그(1842~1911)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해 활동하다가 1911년 부부 동반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자 마르크스의 외손자인 장 롱게(1876~1938)는 프랑스 사회당원으로 활동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넷째 딸이자 여섯째 자녀인 예니 율리아 엘라아노르(제니 줄리아 엘레노어, 1855~1898)는 혁명가로 활동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엘레노어는 사회주의 활동가로 일하면서 동료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영국인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애블링(1849~1898)과 사귀었다. 하지만 애블링은 1897년 6월 엘레노어와 헤어지고 여배우 에바 프라이와 몰래 결혼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신장병이 발병하자 엘레노어에게 돌아갔다. 엘레노어는 애블링을 간호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4개월 뒤 애블링도 숨졌다. 애블링의 장례식에 동료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가정부와 사이에 아들 출산설도 나머지 자녀는 성년까지 성장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의 첫아들인 셋째 에드가(1847~1855)는 브뤼셀에서 태어났는데 8살 때 런던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마르크스가 제대로 의사를 구할 수 없어 숨졌다는 주장이 있다. 마르크스의 처남 에드가의 이름을 땄다.    둘째 아들이자 넷째인 헨리 에드워드 가이(1849~1850)는 런던에서 태어나 유아 때 숨졌다. 집에서는 ‘귀도’라는 독일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모든 자녀는 런던에서 태어났다. 셋째 딸이자 다섯째인 예니 에벨리네 프란치스카(영어 제니 에블린 프랜시스, 1851~1852)도 유아 시절에 사망했다. 우유값도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굶어 죽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도는 이유다.    마르크스의 일곱째 아이가 1857년 태어났지만 이름도 짓기 전 유아기에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막내였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삶은 살면서 세상에 대한 증오가 생긴 게 아니냐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개인적인 처지와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철학·경제학을 연구하며 자신의 사상 체계를 닦아왔다.      마르크스의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 그가 1851년 낳은 아들 프레데릭이 마르크스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는데 후견인 엥겔스는 자신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며 마르크스를 감쌌다. 진위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엥겔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마르크스의 독일 출신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1820~1890)가 1851년 출산한 프레데릭 루이스 데무트(1851~1929)가 마르크스의 자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독신이던 엥겔스는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면서 친구인 마르크스를 감쌌다. 진위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프레데릭은 야금공으로 살다 런던에서 사망했다. 평생 '예언자의 아들' 소리를 들었다.      자신은 맥주·포도주 마시며 토론 마르크스의 일생을 학자이자 저술가이자 기자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기자로서의 수입과 엥겔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품위는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포도주와 맥주를 좋아했고 친구들과 한잔 마시며 토론하기를 즐겼다. 아버지의 유산을 탐내기도 했다. 19세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중산층 남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저서는 그렇게 평범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그의 사생활이 아닌 저서와 주장으로 평가돼야 한다. 그의 저서와 주장을 입맛대로 해석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도용한 수많은 후세인들이 있다.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불순물을 빼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마르크스(왼쪽)와 엥겔스의 동상.    23세에 철학박사 받은 고학력자 마르크스의 삶을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고학력자’다. 마르크스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가방끈이 무척이나 길다. 17세에 대학에 들어가 23세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일 서부 트리어 출신이다.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였던 트리어는 프로이센, 그리고 독일의 서쪽 끝이었다. 룩셈부르크와의 국경에서 10㎞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1835년 트리어에서 110㎞쯤 떨어진 도시인 본의 본 대학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당시 프로이센 수도 베를린의 베를린 대학 법학부로 옮겼다. 마르크스가 법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아버지인 하인리히 마르크스(1777~1838년)의 영향 또는 요구 때문으로 보인다. 하인리히는 헤르셸 레비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마르크스의 할아버지인 마르크스 레비 모르데차이(1743~1804)는 유대인 성직자인 랍비였다. 할아버지의 랍비 자리는 마르크스의 백부에게 대물림됐다. 결혼 전 이름이 에바 리보프(1753~1823)였던 마르크스의 할머니는 결혼 전 이름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의 리보프에서 독일로 이주한 유대인의 후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인 변호사 헤르셸은 1814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지만, 이듬해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된 프로이센의 절대 왕정은 유대인이 법률가를 맡지 못하도록 했다. 프로이센 왕국은 1812년 3월 13일 칙령을 내려 유대인에게도 국적과 시민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부여했다. 하지만 법률가는 유대인에게 한동안 허용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에게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프로이센 법무부는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헤르셸은 1817~1818년 무렵에 이름을 독일식인 하인리히 마르크스로 바꾸고 종교도 유대교에서 개신교인 루터교로 개종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1824~1825쯤 세례를 받고 개종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르크스도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부친의 뜻에 따라 기독교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서부 트리어의 브뤼켄 슈트라세 10번지에 있는 마르크스의 생가. 중산층 변호사였던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1층의 방 2개와 2층의 방 3개를 사용했다. 부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마르크스는 23세 때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는 부친의 뜻과 달리 철학에 관심을 쏟았다. 결국 1841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10㎞ 떨어진 예나의 예나 대학에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 차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3세 때의 일이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본에서 25㎞쯤 떨어진 쾰른에서 창간된 라인 신문에 기고하다 이 신문에서 일하게 됐으며 편집국장을 맡았다. 하지만 지역 주민의 여론에 맞춰 베를린의 중앙정부를 비난하는 논조를 유지하던 라인 신문은 1843년 3월 프로이센 당국의 검열과 탄압으로 폐간됐다. 마르크스는 라인 신문 폐간을 맞아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로 묘사한 시사만평을 신문에 실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가혹한 언론 탄압을 계기로 마르크스는 혁명 없이도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버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 뒤 그는 전제군주제를 타도할 수단은 혁명밖에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게 된다.     독일 쾰른에서 발행하던 라인 신문이 프로이센 왕국의 언론 탄압으로 발행이 중지될 처지가 되자 편집장인 마르크스는 이런 만평을 지면에 게재하게 했다. 마르크스 자신을 인간에게 불을 넘겨준 죄로 독수리에 심장을 쪼이는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로 묘사한 내용이다. 그전까지 개혁으로 입헌군주제 국가를 꿈꿨던 마르크스는 이를 계기로 혁명만이 전제군주제를 극복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게된 것으로 보인다. 신문이 폐간되자 마르크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했다. 1843년 6월 19일 고향 트리어 출신으로 네 살 연상인 약혼녀 예니 폰 베스트팔렌(1814~1881)이 상대였다. 예니는 마르크스의 학교 동급생인 에드가 폰 베스트팔렌(1819~1890)의 누나였다. 마르크스는 아버지 친구의 딸이자, 자신의 친구 누나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836년 부모 몰래 약혼했으며 이듬해 예니의 아버지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1770~1842)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마르크스의 장인인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은 남작에 해당하는 프로이센의 귀족으로 공직자였다. 자유주의적인 성향이던 루트비히는 마르크스의 아버지인 하인리히의 친구였다. 루트비히는 마르크스가 사위가 되기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어렸을 때부터 서로 잘 알았으며, 청소년 시기의 마르크스와 산책하며 철학과 영국 시를 주제로 대화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루트비히의 아버지이자 예니의 할아버지, 즉 마르크스의 처할아버지인 크리스티안 필립 하인리히 폰 베스트팔렌(1723~1792)은 프로이센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7년전쟁 기간 동안 프로이센 육군원수였던 페르디난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1721~1792)의 측근이었다. 페르디난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은 당시 프로이센 국왕인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으로 불림. 1712~1786년, 재위 1740~1786년)의 매제로 정부와 군대의 실세였다. 마르크스의 처할머니인 지니 위샤트(1742~1811)는 종교 문제로 독일로 망명한 스코틀랜드 귀족의 후손이다.    언론탄압으로 입헌군주제에서 혁명으로 돌아서 마르크스는 결혼 직후 부인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마르크스는 1844년 2월 파리에서 독불연보(Deutsch–Französische Jahrbücher)라는 매체를 창간했지만 단 1회만 내고 더는 발행하지 못했다. 독일로 몰래 들여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1845년 2월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한 마르크스는 1845년 7월 중순 영국 사회주의 활동가들인 차티스트 운동가들을 만나기 위해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영국을 방문했다. 엥겔스는 독일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아버지가 지분을 보유한 영국 맨체스터의 방직 공장에서 2년간 일한 적이 있어 영어가 가능했고 영국 사정에 밝았다.   마르크스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혔던 1848년 4월 독일로 돌아가 쾰른으로 향했다. 그는 과거 일했던 라인 신문이라는 제호에 애정과 애착을 보였다. 그래서 1848년 6월 1일 라인 신문의 맥을 잇는 신라인신문(Neue Rheinische Zeitung)을 재창간했다. 급진적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1849년 5월 19일까지 계속 발행했다. 하지만 혁명의 열기는 이내 반동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마르크스는 1849년 6월 브뤼셀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영국에 망명한 마르크스는 1850년 1월 ‘신라인 신문-정치경제 리뷰(Neue Rheinische Zeitung: Politsch-ökonomische Revue)’라는 이름의 월간지를 창간했다. 영국 런던에서 편집하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인쇄하는 형식이었다. 이 월간지는 6호를 내고 폐간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스스로 운영한 마지막 매체다. 이후 그는 미국 신문 특파원으로서 기사를 쓰면서 자신만의 저서를 쓰는 저술 작업에 몰두했다. 무간도에 살면서 쓴 마르크스의 저서들은 21세기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자본론』남긴 마르크스, 사생활은 거의 ‘무간도’였다
2262    [이런저런] - 착오나 결점을 알고 제때에 시정하는것이 더 좋다 댓글:  조회:4541  추천:0  2018-05-07
중학 교과서용 한자 잘못 읽은 베이징대 총장의 사과문 [중앙일보]  2018.05.06    기자 신경진 기자 SNS 공유 및 댓글 SNS리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베이징대 린젠화(林建華) 총장이 지난 4일 열린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 중학생용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인 홍곡(鴻鵠·큰 기러기와 고니)을 홍호(鴻浩)로 잘못 읽어 구설에 올랐다. 파문이 커지자 린 총장은 5일 베이징대 인트라넷에 사과문을 올려 학생 시절 경험한 극좌 정치투쟁인 문화대혁명(1966~76)으로 기초 어휘가 부족하다며 진솔하게 사과했다.  홍곡→홍호로 잘못 읽어 네티즌 비난 직면 문혁 탓에 기초 실력 낮다며 진솔하게 사과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    이번 사건은 지난 4일 베이징대 교정의 추더바(邱德拔) 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린 총장의 축사 초반에 벌어졌다. 린 총장은 지난 2일 베이징대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당대 청년은 홍곡의 뜻을 세우고 분투하는 사람으로 전투 정신을 배양해야한다”는 발언을 인용했다. 그는 “베이징대 학생은 스스로 분발하고 홍곡(鴻鵠·중국식 발음 훙후[hónghú])의 뜻을 세워야한다”고 말할 시점에서 1~2초 가량 머뭇거린 뒤 “홍호(鴻浩·중국식 발음 훙하오[hónghào])”라고 읽어내려갔다. 린 총장은 연설 중 또한 “많은 학생”이란 뜻의 “신신학자(莘莘學子·선선쉐즈[shēnshēnxuézǐ])”까지 “근근학자(斤斤學子·진진쉐즈[jīnjīnxuézǐ])”로 잘못 읽었다. 그러자 중국 네티즌들은 ‘글자도 모르는 총장’이란 뜻의 “백자교장(白字校長)”란 별명을 붙이며 비난했고, 인터넷 쇼핑몰에는 “베이징대학, 홍호지지(鴻浩之志)”라 적힌 티셔츠까지 등장했다.             큰 기러기와 고니라는 뜻의 홍곡(鴻鵠)은 중국 중학생용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단어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한자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중 ‘진섭세가(陳涉世家)’의 고사에 나온다. 진(秦)제국을 무너뜨리는 농민 반란을 주도한 진승(陳勝)이 같이 일하던 농부에게 “제비나 참새 따위가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燕雀安知鴻鵠之志·연작안지홍곡지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다.     5일 중국 베이징대 도서관 앞에 세워진 개교 120주년 기념 엠블럼에서 졸업생과 자녀가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신경진 기자]       반전은 다음날 일어났다. 린 총장이 교내 인트라넷인 미명(未名·베이징대 교정의 호수 이름) 게시판에 ‘동학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리면서다. 편지에서 린 총장은 “매우 미안하다. 개교 기념 행사 치사 중 홍곡의 발음을 잘못 읽었다”며 “솔직히 정말로 이 글자의 발음을 숙지하지 못했다. 이번에 배웠지만 비용이 무척 비싸다”고 한탄했다. 그는 초중 시절 문혁을 겪으며 정상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며 1977년 대학 입학고사에서 어휘와 어법에서 20점을 맞았지만 운이 좋아 베이징대에 합격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과 편지를 쓴 목적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적었다. 문혁 10년 동안 베이징의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이 펼쳐졌고 초·중·고·대학 등 모든 교육 과정은 중지됐다.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의 축사 오독 파문 직후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한 풍자 티셔츠. ‘홍곡지지’ 대신 ‘홍호지지’라는 글자가 북경대학이란 글자와 함께 인쇄했다. [사진=홍콩 명보]    린 총장의 해당 축사 영상은 파문이 커지자 중국의 각종 동영상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SNS)에서 모두 삭제됐다. 하지만 6일 오후부터 문제된 발언이 편집돼 잘린 21분8초 분량의 연설 전체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린 총장은 1978년 베이징대 화학과에 입학해 1986년 베이징대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독일과 미국 등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93년부터 베이징대 화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0년 충칭(重慶)대 총장에 취임한 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근무했던 저장(浙江)성의 명문대학인 저장대 총장을 거쳐 2015년 베이징대 총장에 취임했다.     후싱더우(胡星鬪) 베이징이공대 교수는 “지금의 베이징대는 옛날의 베이징대가 아니다”라며 “이런 저급한 잘못은 중국 지식분자의 문화적 소양의 단층과 시대의 비극을 반영한다. 1949년 전과 같이 박학하며 기품있는 학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개탄했다.           다음은 린젠화 총장의 사과문 전문           친애하는 동학 여러분  매우 미안합니다. 개교 기념 행사에서 축하 연설 중 ‘홍곡’의 발음을 잘못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정말로 이 글자의 발음을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배웠지만, 비용은 확실히 무척 비싸네요.  이번 잘못이 많은 동학과 친구를 실망하게 했습니다. 베이징대 총장으로 어휘 기초가 이렇게 낮아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내 문자 기초는 좋지 않습니다. 이번 잘못으로 이 문제가 폭로됐을 뿐입니다.  나의 초중 시절에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교육이 멈췄습니다. 시작된 몇 해 동안 교과서도 없었고 이후 교과서는 있었지만, 무척 단순했습니다. 내가 받은 기초 교육은 완전하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네이멍구(內蒙古)의 수십 가구에 불과한 작은 농장에서 지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당시 불편함을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농장은 도시에서 수십 ㎞ 떨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는 마차를 타고 온종일 나가야 할 정도로 멀었습니다. 당시는 지금 같이 발달한 인터넷도 없었고 책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최근 나는 『총장관념-대학의 개혁과 미래』란 책을 냈습니다. 책에서 당시 상황을 언급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됐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수년간 교과서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마오쩌둥) 어록과 노삼편(老三篇·마오쩌둥의 저술 세 편으로 “배쑨을 기념하여”(纪念白求恩), “우공이산”(愚公移山),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爲人民服務)”)만 외우도록 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욕심이 가장 강렬하던 십 대에 다른 책은 없었습니다. 마오쩌둥 선집과 당시 간부 교육용 소비에트 사회주의 교과서만 반복해 읽었습니다. 중국 근현대사 지식도 처음에는 모두 마오쩌둥 선집과 주석에서 얻은 것입니다. 모순론과 실천론을 읽은 뒤 중학교 정치 과목에서 다른 한 편을 배웠을 뿐입니다. 하나가 나뉘어 둘이 되고 대립을 통일하고, 주요모순과 2차 모순 등, 이들 개념은 줄줄 외웠고 우리 세대의 사상과 관념에 깊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는 운이 좋아 1977년 대입 어문 과목 중 작문에서 80점을 받았지만, 단어와 어법은 20점에 불과했습니다. 아니었다면 베이징대에 합격하지 못했을 겁니다. 시험 며칠 전에 어법 책 한 권을 읽고 주어와 서술어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어법 개념은 분명하지 않았고 대학 입학 뒤에야 영어를 배우며 무척 고생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에게 말하려는 점은 내 무지나 실수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진짜 나를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의 총장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결점이 있고 부족하며 잘못을 범한 사람입니다. 또 여러분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책을 포함해 모두 내가 쓴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내용과 사상은 모두 여러분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나는 노력하겠지만 이후 이런 잘못이 또 출현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문자 수련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내 나이의 사람은 짧은 시간 안에 문자 수준에서 큰 진보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진정 나를 실망하게 하고 부끄럽게 한 것은 나의 잘못에만 관심을 불러 치사를 통해 여러분께 알리려던 사상을 홀시하게 만든 것입니다. “간절함과 질의는 가치를 만들지 못합니다. 반대로 미래를 향한 걸음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미래로 향하게 하는 것은 확고한 믿음, 현실에 직면할 용기와 미래와 직면할 행동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총장 린젠화.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2261    [동네방네] - 절친의 죽음을 아는 돼지 댓글:  조회:5111  추천:0  2018-05-07
'안녕 내 사랑'.. 절친의 죽음에 슬퍼하는 돼지 2018.05.03.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스팟이 두눈을 살며시 감은채, 먼저 세상을 떠난 신쳬를 애도하고 있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에 대한 반응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나이에 만난 '소울메이트'를 먼저 떠나보낸 돼지도 그 아픔은 마찬가지 였다. 현재 벨기에 아우벨 지역에 사는 돼지 스팟은 생후 8개월 때, 레이첼 보스 가족에게 입양됐다. 그리고 새 가정에서 조그만 새끼돼지 신쳬를 처음 만났다. 레이첼은 둘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린 나이에 입양돼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난 스팟. 레이첼의 예상처럼, 이후 13년 동안 스팟과 신쳬는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목초지에서 풀을 뜯을 때도 햇볕 아래 누워 선탠을 즐길 때도 스팟은 신쳬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바짝 뒤따랐다. 어디든 항상 함께 였던 신쳬와 스팟. 스팟의 헌신은 신쳬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여전했다. 당시 신쳬는 심각한 골관절염을 앓고 있었는데, 증세가 심해져 보스 가족들은 ‘안락사’라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했다. 신쳬가 얼마나 고통 속에 있는지, 스팟이 신쳬 없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잘 알고 있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10월 운명의 날은 결국 찾아왔고, 가족들은 신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담요로 신쳬의 몸을 감싸주었다. 신쳬 몸 주위에 밝은 색 꽃도 흩뿌렸다. 후에 소울메이트가 자신을 떠난 것을 뒤늦게 안 스팟은 언제나 그랬듯 신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스팟은 그저 신쳬 옆을 오랫동안 지키고 섰다. 자신의 얼굴을 신쳬의 몸에 올린 채 두 눈을 감았고, 신체의 얼굴에 코를 비벼댔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코를 신쳬에게 가져다 대고 잠시 묵념하는 듯한 스팟. 스팟은 신쳬가 떠나고 나서 가족들과 애완견의 도움으로 아픔을 극복 중이다. 레이첼은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못하는 스팟을 보며 울음이 멎질 않았다. 그들은 항상 함께였다”며 슬퍼했다. 이어 “신쳬가 죽은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스팟은 여전히 슬픔에 빠져있다. 명랑한 스팟으로 돌아오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더도도 //안정은 기자
226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산림방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173  추천:0  2018-05-07
[슬라이드 포토] 강릉·삼척 대형 산불 1년..                          그래도 봄은 온다  2018.05.06.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6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는 강원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이 죽음의 숲으로 변해 있다. 강릉 성산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이 나흘 동안 계속되면서 울창했던 소나무 숲 252㏊가 숯덩이로 변했다.  6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는 강원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에서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내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의 1천424배에 달하는 산림 1천17㏊가 잿더미로 변했다.  6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에서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내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의 1천424배에 달하는 산림 1천17㏊가 잿더미로 변했다.  6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은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에서 불에 타 죽은 소나무 주변으로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있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의 1천424배에 달하는 산림 1천17㏊가 잿더미로 변했다.  6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은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에서 어린나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의 1천424배에 달하는 산림 1천17㏊가 잿더미로 변했다.  ☞ SBS뉴스 (SBS 뉴미디어부/사진=연합뉴스)  
2259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한복축제"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5496  추천:0  2018-05-06
  [촬영: 우융빙(吳勇兵)]                                                                                     [인민망 한국어판 5월 4일] 5월 3일 후난(湖南, 호남) 장자제(張家界, 장가계) 우링위안(武陵源, 무릉원) 황룽둥(黃龍洞, 황룡동) 관광지의 젊은 직원들이 5월 4일 청년절(靑年節)을 기념하기 위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묘족두건(苗族頭帕)쇼를 펼쳤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장자제(張家界, 장가계) 우링위안(武陵源, 무릉원)에서 펼쳐진 묘족두건(苗族頭帕)쇼 [촬영: 우융빙(吳勇兵)]   젊은 직원들이 혈기왕성한 묘족두건(苗族頭帕)쇼를 펼치는 모습 [촬영: 우융빙(吳勇兵)]   길고 화려한 묘족두건(苗族頭帕) [촬영: 우융빙(吳勇兵)]   젊은 직원들이 묘족두건(苗族頭帕)을 가지고 대형 원을 만든 모습 [촬영: 우융빙(吳勇兵)]
2258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모내기축제"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4702  추천:0  2018-05-06
  계단식밭에 관개하는 것은 룽지(龍脊) 계단식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절호의 시기이다. 층층이 이어진 광활한 밭은 장관을 이룬다. [촬영/중국신문사 우성빈(吳生斌)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4일] ‘5•1’ 노동절 연휴 기간, 광시(廣西, 광서) 룽성(龍勝) 각족(各族)자치현 룽지(龍脊) 구좡자이(古壯寨)에서 전통 농사 활동 ‘개경절(開耕節)’을 개최했다. 현지 장족(壯族) 촌민들이 전통 풍습에 따라 용춤을 추고 북을 치며 개경절을 축하하고, 밭을 가는 시험 보이기, 계단식밭 오르기, 닭과 오리 잡기 등의 다채로운 민속 활동을 진행했다. 새로운 한 해의 풍년, 국가의 태평와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활동들은 중국과 외국 관광객 모두를 끌어 구경 및 체험의 장을 제공했다. ‘개경절’이 다가옴은 룽지(龍脊) 계단식밭에 관개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올 해의 봄 밭갈이가 시작된다. (번역: 박지연)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   현지 장족(壯族) 촌민들이 단체로 밭을 가는 시험을 보이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우성빈(吳生斌) 기자]   현지 장족(壯族) 촌민들이 민속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관광객과 현지 촌민들이 함께 밭에서 닭과 오리를 잡는 활동을 하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우성빈(吳生斌) 기자]   현지 장족(壯族) 촌민들이 민속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우성빈(吳生斌) 기자]   4월 30일, 광시(廣西) 룽성(龍勝) 룽지(龍脊) 구좡자이(古壯寨)의 계단식밭을 찾은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출처: 신화사/촬영: 왕쯔촹(王滋創)]
2257    [그것이 알고싶다] - 코뿔소의 뿔은 약재 아니다... 댓글:  조회:4754  추천:0  2018-05-06
코뿔소의 뿔은 뼈의 성분이 아닌 케라틴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왜 코뿔소의 뿔을 탐내는 걸까요? 왜 코뿔소를 멸종위기로 몰아넣고 있을까요? 출처 : pixabay 코뿔소 (Rhinoceros) / Part 2 출처 : Baran Reznik ▶ 검은 코뿔소와 흰 코뿔소 - 신경이 예민하고 잘 놀라는 검은 코뿔소에 비해 비교적 사교적이고 덜 공격적인 흰 코뿔소는 둔하고 느린 편이여서 보다 인간들에게 서식지를 위협받고 있다.   검은 코뿔소는 미모사와 들소가시와 같은 낮게 자라는 덤불의 어린 새싹과 잔가지를 먹으며 마른 가시나무를 먹을 때는 돌출된 윗 입으로 잡아 뜯는다. 이들은 대개 해가 진 저녁에 식사를 한다. 검은 코뿔소는 신경이 매우 예민한 동물인 탓에 잘 놀라는데,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해서 흠칫 놀라지만, 알고 보면 길을 잘못 든 다른 동물들이 달리면서 내는 소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처 : Arno Meintjes Wildlife 그럼에도 다른 동물들이 뛰는 소리에 바로 상상의 침입자를 향해 머리를 들고 뿔로 받아칠 준비를 하곤 한다. 검은 코뿔소는 힘껏 달리면 시속 35마일로 내달리지만 보통은 20마일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 출처 : US Department of State 반면 흰 코뿔소는 검은 코뿔소에 비해 훨씬 사교적이면서 덜 공격적이다. 하지만 흰 코뿔소 암컷은 새끼를 낳아 양육하는 시기에는 예민해지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새끼를 키우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2마리 이상의 무리를 지어 함께 돌아다니곤 한다. 출처 : audi-insperation 흰 코뿔소는 저지대의 평원에서 주로 생활하며, 이들은 오로지 풀만 먹고 성격도 부주의한 편이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인간에 의해 자신들의 서식지역을 잠식당하고 있다.   흰 코뿔소들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꼬리를 엉덩이 위쪽으로 둥글게 말아 올리고 시속 18마일로 속도를 높이기까지 둔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이 빠르게 달릴 때는 시속 25마일까지 낼 수 있다. 출처 : pixabay ▶ 아시아 코뿔소 - 풀숲에서 생활하는 인도 코뿔소는 자신의 체취를 남기기 위해 앞발의 땀샘을 이용한다. 깊은 숲에서 사는 자바 코뿔소는 저지대를 선호하고 수마트라 코뿔소는 건기 때는 고지대, 우기가 끝날 무렵에는 저지대로 이동한다.   인도 코뿔소는 12피트 높이의 코끼리 풀이 자라는 풀숲에 이동터널을 만들어 생활한다. 물에 잠긴 목초지와 늪지는 코뿔소의 영역과 공용지역으로 나뉜다. 인도 코뿔소들은 같은 시간대에 암, 수 구분 없이 공동 목욕장에 모여 함께 뒹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출처 : Rita Willaert 이런 수렁이나 목욕장의 근처에는 입구를 표시하기 위한 배설물 더미가 있게 마련이다. 아프리카 코뿔소와는 달리 인도 코뿔소는 앞발에 땀샘이 있어 배설물 이외에도 자신의 체취를 남기는 도구로 이용한다. 인도 코뿔소는 어린 풀, 잔 가시나무와 수생식물, 특히 목욕장 위를 카펫처럼 뒤덮은 "부레옥잠"을 즐겨 먹는다. 출처 : Traveller-Reini 인도 코뿔소는 시속 25마일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달릴 때에는 꼬리를 내리고 달린다. 주로 낮 동안에는 활발히 움직이며 한밤부터 새벽녘 까지는 높은 지역에 위치한 풀숲에 숨어서 잠을 잔다. 출처 : Soggy 자바 코뿔소는 깊은 숲에서 살며 주로 쌍떡잎 식물이 자라는 지역을 좋아한다. 이들은 주로 어린 묘목을 먹는데, 나무에 힘을 주어 가지를 부러뜨리고는 줄기와 잎 부분을 먹는다. 자바 코뿔소 중 특히 수컷은 매일 어슬렁거릴 만한 넓은 자기만의 구역을 확보하고 있다. 출처 : Soggy 자바 코뿔소는 우기 때 흐르는 강물에 목욕을 하거나 뒹굴곤 한다. 하지만 건기가 되면 축축한 저지대의 강 어귀와 바다를 이용하곤 한다. 배설물은 인도 코뿔소처럼 커다란 더미에 쌓아두기도 하는데 종종 넓게 흩어놓거나 흐르는 물에서 볼일을 보기도 한다. 수컷은 배설물을 이용한 영역표시 이외에,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소변을 덤불에 뿌려 영역을 표시하기도 한다. 출처 : David 수마트라 코뿔소의 습성 역시 자바 코뿔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나뭇가지와 싹, 잎, 과실, 이끼류, 그리고 버섯류를 먹는다. 또한 이들은 산을 잘 타기로 유명한데, 8000피트가 넘는 높이의 산에서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출처 : David 수마트라 코뿔소가 발견되는 곳에서는 종종 자바 코뿔소도 볼 수 있는데, 차이점은 자바 코뿔소의 경우 저지대를 보다 선호하는 편이고, 반면 수마트라 코뿔소는 건기 때에는 고지대에서 주로 생활하며 우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저지대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출처 : digitalvision ▶ 코뿔소의 번식과 양육기간   - 수컷들의 몸숨을 건 혈투 끝에 승리한 코끼리가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검은 코뿔소의 임신기간은 약 455일, 인도 코뿔소는 486일이 평균이다. 암컷은 성숙하는데 3년 정도가 걸리고 수컷은 7년이 되면 완전히 성숙한다. 출처 : Capella Boltiador 대부분의 코뿔소들은 짝짓기를 하기 전, 수컷들은 암컷을 사이에 두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다. 특히 성격이 가장 공격적인 검은 코뿔소는 상대로부터 갑자기 5야드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서며 결투를 벌이는데, 둘은 서로 빠르게 마주쳐 달려 두 뿔로 들이 받는다. 흰 코뿔소는 대부분 검은 코뿔소 보다는 덜 공격적이지만 이들의 결투도 목숨을 건 싸움이 되곤 한다. 출처 : sozaijiten 검은 코뿔소의 임신기간은 약 455일이며, 인도 코뿔소는 486일이 평균이고 흰 코뿔소는 547일이나 된다. 출산은 약 15분 정도의 시간동안에 이루어지고 갓 태어난 새끼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혼자서 일어설 수 있다. 코뿔소 중에서 쌍둥이를 낳은 기록은 오직 흰 코뿔소만이 가지고 있다. 어린 코뿔소의 새끼는 일주일이 지나면 풀을 뜯을 수 있지만 젖을 완전히 떼는 데는 1년 이상이 걸린다. 출처 : Missud 보통 갓 태어난 아프리카 코뿔소의 새끼는 51cm의 키에 20~22kg의 체중이 나가며 아시아 코뿔소의 새끼는 60cm의 키에 23kg 정도의 체중이 나간다. 앞 뿔이 자라기 위한 자리가 낳을 때부터 눈에 띄며, 뿔은 태어난 지 5주내부터 자라기 시작한다.    5개월 정도가 지나면 3.81cm 정도의 길이로 뿔이 자란다. 대부분 코뿔소의 암컷이 성숙하는 데에는 3년 정도가 걸리고, 수컷은 7년이 되면 완전히 성숙하게 된다. 코뿔소들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45년 정도를 산다. 출처 : Aussie Active ▶ 이빨과 뿔을 이용한 공격 - 대부분의 아프리카 코뿔소는 주로 뿔을 이용해 공격하고, 아프리카 코뿔소들의 경우는 뿔이 아닌 턱을 이용해 싸운다. 수마트라 코뿔소는 이빨로 공격하기도 한다.   코뿔소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인간이며 오랜 세월동안 많은 위협을 받아왔다. 아시아 코뿔소의 경우 과거 100여년동안 많은 수가 격감되었으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 환경도 인구의 증가로 인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약재로 쓰이는 뿔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획되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코뿔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총기의 출현 이후 유럽의 식민지화가 되면서, 사냥과 아시아 지역에서 약재로 쓰이는 뿔을 수출하기 위해 최근까지도 밀렵꾼들에 의해 남획되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 richard evea 인간 외에 코뿔소들은 거의 적수가 없으나, 가끔은 아프리카에서 어린 코뿔소들이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며 먹이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아프리카 코뿔소는 자신의 긴 뿔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고 몇 차례 상대를 높이 들어 던지기도 한다. 아시아 코뿔소들의 경우는 뿔이 아닌 주로 턱을 이용해서 싸우며 턱의 강한 힘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출처 : jeaneeem 특히 수마트라 코뿔소는 자신의 이빨을 사용하기도 하며 적을 던져 올리고 짓밟는 것이 최대의 공격 무기이다. 아프리카의 검은 코뿔소와 아시아의 수마트라 코뿔소는 매우 공격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원주민들에게 오랜 세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출처 : gazzat ▶ 코뿔소의 뿔 - 아시아 지역에서 코뿔소의 뿔은 최음제, 두통제, 질병과 피부병의 치료약으로 여겨지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는 없다. 중동 부유층 남성의 권위를 뜻하는 상징적인 단검의 자루로 이용되고 있어 코뿔소들을 멸종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코뿔소의 뿔은 관 모양의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코의 피부로부터 분비된 섬유질이 단단하게 굳어진 것이다. 최근까지도 코뿔소의 수가 감소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뿔의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코뿔소의 뿔은 인도에서는 최음제로 중국을 비롯 극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두통제나 심장이나 간장의 질병, 피부병의 치료약으로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동양의학에서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약리작용이 코뿔소의 뿔에는 없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출처 : digitalvision 이처럼 동양에서는 심리적인 이유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코뿔소의 뿔이 치료제로 오랜 세월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중동의 예맨에서 코뿔소의 뿔이 부유층의 남성들에게 있어 지위의 상징적인 단검의 자루로서도 이용되어 뿔의 수요를 급등하게 만들고 있으며, 더욱 코뿔소들을 멸종의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digitalvision 예맨의 1인당 소득이 석유자원으로 인해 높아지면서 지위를 상징하는 단검 (잠비아라고 불림) 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8000마리의 코뿔소들이 밀렵꾼들에 의해 도살 되었다. 이처럼 코뿔소의 뿔의 교역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검은 코뿔소와 수마트라 코뿔소, 자바 코뿔소, 인도 코뿔소는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출처 : pixabay 이들 4종과 다르게 흰 코뿔소의 상황은 1920년대부터 남아프리카의 보호정책이 효과를 거두며 유일하게 멸종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밀렵꾼들의 불법 코뿔소 사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사냥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은, 국제적인 협력이 이루어져 약재나 장신구로 이용되는 뿔의 수요를 차단해야만 코뿔소들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pixabay 남아프리카의 보호정책으로 간신히 작은 안전을 보장받은 흰 코뿔소처럼, 국제적인 협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225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비닐쓰레기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041  추천:0  2018-05-06
플라스틱 링에 끼인 채 자란 물개.. 헤엄도 제대로 못 쳐  2018.05.0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목에 플라스틱 링을 끼고 살아온 물개 한 마리가 질식사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고 영국 BBC가 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물개는 영국 노퍽 해안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엔 이미 플라스틱 링으로 인해 목 주변에 깊은 상처가 생긴 상태였다. 물개는 어릴 때부터 링에 갇혀 살아온 것으로 보였다. 몸집이 점점 커지면서 링이 숨통을 점점 조여왔기 때문에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질식해가던 중 구조대에 발견됐다. 또 이 물개는 링으로 인한 압박 때문에 다른 물개들처럼 수영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물에 들어가면 가만히 휴식을 취하거나 거꾸로 누워 등으로 헤엄쳤다. 물개를 구조한 영국 '시 라이프 헌스탄톤'(Sea Life Hunstanton)은 소설 해리포터 속 주문인 '렐라시오'(Relashio)라는 이름을 물개에게 붙여줬다. 렐라시오의 치료를 담당한 수의사 크리스토퍼 탠슬리(Christopher Tansley)는 "이렇게 심하게 상처 난 물개는 본 적이 없다"며 "원형 플라스틱 링은 공기 필터 조각 일부인데, 렐라시오의 목 주변 살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시 라이프 헌스탄톤 직원은 "렐라시오가 상처로 인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등으로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며 "다른 물개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서서히 정자세로 수영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2255    [그것이 알고싶다] - 표준시?... 댓글:  조회:8578  추천:0  2018-05-06
표준시 standard time , 標準時   요약 법규 또는 일반적인 관례에 의해 상용시로 확립되어 있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시간. 1884년 27개 국가 대표들이 현재의 체계를 사용하는 데 합의한 이후, 국가별로 경도 자오선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한국의 경도를 기준으로 국제표준시(UTC)+ 08:30을 표준시로 정한 이후 1961년 UTC+ 09:00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2015년 UTC + 08:30을 '평양시간'이라 하여 표준시로 채택했으나,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5월 5일부터 UTC+ 09:00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차 개요 역사 각국의 사례 한국의 표준시 일광 절약 시간제 개요 한 지역이나 국가의 공식적인 시간. 1884년 각국의 국가대표들이 모여 현재의 기본체계의 합의하면서 표준시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표준시는 영국 그리니치를 지나는 경도를 기준으로 15˚간격으로 구성된 표준 경도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국가와 지역에 따라 사용의 편의를 위해 더 세분되거나 여러 경도의 지역이 한 표준시에 통합된다. 한국은 동경 135.00을 지나는 국제표준시(UTC)+09:00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경도와는 차이가 있으나 1시간 단위의 표준시가 국제적 시차 계산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표준시 역사 표준시의 개념은 각 사회에서 자체의 태양시를 사용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에 채택되었다. 철도의 발달로 서로 떨어진 지역에서 서로 다른 지방시(地方時)를 기록해서 생기는 철도시간표의 혼란 때문에 표준시의 필요성이 증가하게 되었다(지방시는 경도가 변함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함). 표준시의 채택은 특히 지방시가 수시간씩 다른 지역들을 여러 개의 대규모 철도가 통과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절실했다. 캐나다 철도계획 수립자이며 공학자인 샌드퍼드 플레밍은 1870년대 후반에 전세계 표준시를 위한 계획의 윤곽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1884년 27개 국가의 대표들이 워싱턴 D. C.에 모여 현재 사용되는 것과 같은 기본체계에 합의했다. 현재의 표준시 체계는 영국 그리니치를 통과하는 주(主)자오선에서부터 각각 15˚씩 떨어져 있는 24개의 표준 경도 자오선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 자오선은 이론적으로 24개 표준시간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각국의 사례 실제적으로 표준시간대들은 여러 경우에 더 세분되고 지역 주민들의 편의에 따라 모양이 변경되기도 한다. 시간은 각 시간대 내에서는 같으나 국제적인 법적·과학적 기본시인 협정세계시로는 1시간 단위로 서로 다르다. 그러나 분과 초는 통일하는 것이 상례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법적 시간이 30분 또는 15분 차이가 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24개 표준시간대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영토가 넓어 전국적으로 다섯 개 시간대에 걸쳐 있는 중국의 경우, 강력한 중앙행정의 편의성을 위해서 수도인 베이징 지역의 경도를 기준으로 한 UTC+08:00을 표준시로 채택하고, 전 지역에서 이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베이징에서는 정오인 12시에 해가 정남향에 위치하지만,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오후 3시 경이 되어야 해가 정남향에 위치하게 된다. 역시 영토가 넓은 미국은 절충안을 채택하여 경도에 따라 태평양표준시, 산악표준시, 중부표준시, 동부표준시의 네 가지 표준시를 택하되, 사용 지역을 해당 지역에 포함된 주의 경계선에 맞추어 주별로는 한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표준시 한국에서 근대적 개념의 표준시 개념이 시행된 것은 대한제국 시대이다. 대한제국은 1908년 4월 1일 한반도를 기준으로 동경 127.50에 해당하는 국제표준시(UTC)+08:30을 표준시로 삼았다(칙령 제5호, 관보 제3994호). 이보다 앞선 세종대왕 대에 해시계를 만들어 서울 광화문과 종묘 앞에 설치하여 일종의 표준시 개념을 정했는데, 이 지역의 경도는 동경 126.98~127.00이므로 당시의 표준시는 UTC+ 08:28에 해당하여, UTC + 08:30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1월 1일, 일본 표준시에 맞추어 한국의 표준시도 변경되었는데(고시 제338호, 조선총독부 관보 제367호), 일본의 표준시는 동경 135.00 기준으로 UTC+ 09:00이었으며, 이 표준시는 6.25전쟁 이후인 1954년까지 유지되었다. 1954년 3월 21일 이승만 정부가 한국의 경도를 기준으로 UTC+08:30으로 표준시를 변경했으나(대통령령 제876호),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에서 일본 표준시에 맞추어 1961년 8월 10일 다시 UTC+09:00으로 바꾸었다(법률 제676호).  이후 이 표준시는 오랫동안 북한을 포함한 한국의 표준시로 시행되었다. 북한은 2015년 8월 15일 동경 127.50 기준, UTC+08:30으로 표준시를 변경하고, '평양시간'이라고 이름붙였다. 한국에서도 한반도의 경도를 기준으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생활 리듬을 반영한 UTC+08:30으로 복귀하자는 제안이 없지 않았으나, 1시간 단위의 표준시가 다른 나라와의 시차 계산에 용이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편 북한에서는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의 시차가 가져올 혼란을 우려하여 5월 5일부터 다시 UTC+09:00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광 절약 시간제 미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몇몇 나라에서는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 생체 리듬을 맞추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하여 일광 절약 시간제(흔히 '서머 타임'이라고 한다)를 실시하기도 한다. 일광 절약 시간제는 국가별로 시행하는 시기가 다르며, 시행하는 날 1시간을 당겨서 표시하고, 해제하는 날 다시 복원시키는 방식으로 시행한다. 한국에서는 1948~1951년, 1955~1960년, 1987~1988년에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실시했으나, 이후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 표준시가 이미 한국의 경도에 비해 +30 빨리 책정되어 있으므로, 그만큼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시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도 채택하지 않는 이유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   한국 표준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ST 한국 표준시(韓國標準時, KST, Korea Standard Time)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표준시이다. UTC보다 9시간 빠른 동경 135도를 기준(UTC+09:00)으로 하고 있다. 일광 절약 시간제는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일본 표준시(UTC+09:00)와 같은 시간대이다. 서울의 경도는 동경 127도로,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이 표준시를 첫 시행할 때는 한반도의 중앙을 지나는 동경 127도 30분(UTC+08:30)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1월 1일 조선총독부가 동경 135도(UTC+09:00) 기준인 일본 표준시에 맞춰 표준시를 변경하였고, 대한민국에서는 1954년 3월 21일 이승만 정부가 동경 127도 30분(UTC+08:30) 기준으로 되돌렸다가 1961년 8월 10일 박정희 군사정부가 동경 135도(UTC+09:00) 기준으로 다시 변경하였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5년 8월 15일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UTC+08:30) 기준으로 변경하여 평양시간을 따로 정해[1] 2018년 5월 4일까지 이를 사용하였다. 목차  [숨기기]  1역사 1.1표준시 기준 자오선의 변화 1.2표준시 기준 자오선의 논란 1.3일광 절약 시간제(서머 타임) 실시 역사 1.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표준시 변경 2협정세계시와 한국표준시의 대조표 3같이 보기 4각주 5외부 링크 역사[편집] 표준시 기준 자오선의 변화[편집] 한국 표준시는 동경 135도 기준인 UTC+09:00와 동경 127도 30분 기준인 UTC+08:30을 과거 몇 차례 오갔으며, 현재 대한민국은 UTC+09:00을 쓰고 있다. "); color: rgb(34, 34, 34); font-family: sans-serif;"> 1434년 11월 2일(세종 16년 음력 10월 2일): 세종대왕이 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들어 서울 혜정교(현 광화문우체국 북쪽)와 종묘 앞에 설치함. 표준시라는 개념이 필요 없었던 시대로 한성(서울)의 시각은 오늘날의 UTC+08:28.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이 동경 127도 30분 기준인 UTC+08:30을 한국 표준시로 첫 시행. 관보 제3994호(칙령 제5호).[2][3][4] 1912년 1월 1일: 일본 제국의 조선총독부가 동경 135도 기준인 일본 표준시(UTC+09:00)로 변경. 조선총독부 관보 제367호(고시 제338호).[5] 1954년 3월 21일 :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정전 후 첫 춘분(春分)에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 기준인 UTC+08:30으로 변경. 대통령령 제876호(1954년 3월 17일). 1961년 8월 10일 : 대한민국의 박정희 군사정부가 5·16 군사 정변 3개월 후 표준시를 동경 135도 기준인 일본 표준시(UTC+09:00)로 변경. 법률 제676호(1961년 8월 7일).[6] 2015년 8월 15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 기준인 UTC+08:30으로 변경하고 이를 평양시간으로 명명.[1] 2018년 5월 5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양시간을 폐지하고 한국 표준시를 다시 채택. 표준시 기준 자오선의 논란[편집] "); color: rgb(34, 34, 34); font-family: sans-serif;"> 2000년 8월: 조순형 의원 등 여야 의원 20여 명이 한국인의 생활 리듬에 맞는 표준시(동경 127도 30분 기준)로 변경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당 법안을 반대하였다.[7] 대부분의 국가가 국제 표준시(UTC)에서 1시간 단위의 시차를 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동경 135도를 쓰고 있으므로 통일 후에나 변경을 고려하여야 한다. (2015년 8월 15일 이후로는 해당 주장 무효) "); color: rgb(34, 34, 34); font-family: sans-serif;"> 2008년 7월: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 등이 한국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다.[8] 2013년 11월 21일: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등이 한국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다.[9] 일광 절약 시간제(서머 타임) 실시 역사[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일광 절약 시간제#한반도의 일광 절약 시간제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1951년, 1955년~1960년, 1987년~1988년에 표준시를 한 시간 앞당기는 일광 절약 시간제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1987년과 1988년의 일광 절약 시간제는 서울 올림픽 TV중계를 위해 실시한 제도로, 국민들의 생활 리듬을 깨고 혼란만 야기시킨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쳐[10][11]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시행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일광 절약 시간제 실시 시기 1948. 06. 01. 00:00 ~ 1948. 09. 13. 00:00 1949. 04. 03. 00:00 ~ 1949. 09. 11. 00:00 1950. 04. 01. 00:00 ~ 1950. 09. 10. 00:00 1951. 05. 06. 00:00 ~ 1951. 09. 09. 00:00 1955. 05. 05. 00:00 ~ 1955. 09. 09. 00:00 1956. 05. 20. 00:00 ~ 1956. 09. 30. 00:00 1957. 05. 05. 00:00 ~ 1957. 09. 22. 00:00 1958. 05. 04. 00:00 ~ 1958. 09. 21. 00:00 1959. 05. 03. 00:00 ~ 1959. 09. 20. 00:00 1960. 05. 01. 00:00 ~ 1960. 09. 18. 00:00 1987. 05. 10. 02:00 ~ 1987. 10. 11. 03:00 1988. 05. 08. 02:00 ~ 1988. 10. 09. 03:0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표준시 변경[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평양시간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8년부터 2015년 8월 14일까지 줄곧 현재의 한국 표준시와 같은 UTC+09:00 시간대를 표준시로 써왔다. 그러나 2015년 8월 15일부터 기존 시간대보다 30분 늦은 동경 127도 30분(UTC+08:30)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변경하고 이를 평양시간으로 명명하였다. 평양시간은 한국 표준시로 8월 15일 오전 12시 30분부터 적용되었고, 이날 12시 30분은 자정으로 변경되었다.[12] 이후 2018년 5월 5일에 다시 UTC+09:00 시간대를 채택하고 당해 5월 5일 자정을 12시 30분으로 변경하였다. 협정세계시와 한국표준시의 대조표[편집] UTC+09 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UTC 전날 15 전날 16 전날 17 전날 18 전날 19 전날 20 전날 21 전날 22 전날 23 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같이 보기[편집] 시간대 협정 세계시(UTC) 그리니치 평균시(GMT) 한국표준과학연구원 UTC+09:00 평양시간 각주[편집] ↑ 이동:가 나 연합뉴스, 2015.8.15. 이동↑ 칙령 제5호, 〈대한국(大韓國) 표준시에 관한 건〉을 재가하여 반포하였다.【종래에 써오던 경성(서울)의 시각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자오선을 중심으로 동경 127도 30분의 평시(平時)였다. 대한국의 표준시는 1908년(융희 2년) 4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 순종실록 1908년(융희 2) 2월 7일 2번째기사 이동↑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이동↑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홈페이지. 이동↑ 디지털타임스, 2004.9.2. 이동↑ 경향닷컴, 2010.8.9. 이동↑ [책갈피 속의 오늘] 1954년 표준시 동경 127.5도로 변경, 동아일보, 2007.3.21. 이동↑ 부산일보, 2008.7.16. 이동↑ 연합뉴스, 2013.11.21. 이동↑ 경향신문, 1988.5.9. 이동↑ 동아일보, 1988.5.6. 이동↑   ==================================   세계시간 비교 전체 대륙 국가 케이프타운07:21pm 서울02:21am 모스크바08:21pm 멕시코시티12:21pm썸머타임 뉴욕01:21pm썸머타임 로스앤젤레스10:21am썸머타임 리우데자네이루02:21pm 싱가포르01:21am 런던06:21pm썸머타임 뉴델리10:51pm 도쿄02:21am 베이징01:21am 밴쿠버10:21am썸머타임 파리07:21pm썸머타임 시드니03:21am     =================================== 요약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경선.   한국, 중국, 일본의 표준 경선 표준 경선은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경선으로, 우리나라는 동경 135°를 표준 경선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앙 경선은 동경 127°30′이다. 대한제국 시기와 1950년대에는 이 선을 표준 경선으로 사용하였으나, 1961년 이후 동경 135°를 표준 경선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제로 동경 135°를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시각보다 약 30분가량 이른 시간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표준 경선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국의 영토를 지나지 않는 경선을 표준 경선으로 정하고 있는 국가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있다. 영국을 지나가는 본초 자오선이 프랑스와 스페인도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과 동일한 시간대를 사용하지 않고 영국보다 한 시간 빠른 시간대를 사용한다. 이는 영국, 포르투갈 등을 제외한 독일, 이탈리아 등의 중부와 남부 유럽 국가들과 동일한 시간대를 사용하기 위해서 자국의 영토를 지나지 않는 경선을 표준 경선으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경 15°선이 지나가는 서아프리카의 세네갈, 감비아 등이 있다. 이들은 본초 자오선을 표준 경선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주변국보다 1시간 늦은 시간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주변 국가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와 동일한 표준 경선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 야쿠츠크 지역, 몽골 동부 지역,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 등이 있다. ========================== 날짜변경선 international date line 폰트확대 요약 북극과 남극을 이어 두 지역의 역일(曆日)을 임의로 구분하는 가상의 선. 날짜선이라고도 함.   이 선은 경도상의 180번째 자오선과 거의 일치하지만, 시베리아를 둘로 나누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오선에서 동쪽으로 벗어나 베링 해협을 지나도록 했고 알류샨 열도를 알래스카와 같은 지역으로 묶기 위해 서쪽으로 벗어나도록 정했다. 날짜변경선(International date line) 적도 남쪽에서 다시 한번 동쪽으로 벗어나 몇몇 특정 섬을 뉴질랜드와 같은 날짜로 묶어주었다. 날짜선은 대략 태양이 그 지방 경도의 자오선을 지날 때(→ 표준시) 지방시로 정오가 되도록 정하는 시간법을 전세계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생겨났다.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도는 여행자가 새로운 시간대로 들어갈 때마다 자기 시계를 1시간 앞당기거나 늦추고 그 시계가 자정을 알릴 때마다 하루가 지나는 것으로 계산하면서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 자신의 날짜와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날짜가 하루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같은 경우 시간을 다시 조정할 필요가 생기는데, 날짜선이 그 기준이 된다. 날짜선을 지나 동쪽으로 여행하면 날짜를 하루 늦추고, 반대로 서쪽으로 여행하는 경우는 하루 앞당긴다(→ 표준시). =========================   [경향신문] 6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사무실의 직원이 북한 시간을 고친 벽시계를 걸고 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쪽보다 30분 늦은 북쪽 표준 시각을 지난 5일 남쪽에 맞춰 조정했다. ///강윤중 기자     
225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위조지폐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387  추천:0  2018-05-05
"위안화 위조지폐 대량 유통, 무역 분쟁 가능성" 김남희 기자  2018.05.0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북한에서 만들어진 중국 위안화 위조지폐가 대량 유통되면서 중국 무역업자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4일 보도했다. RFA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최근 북한과 거래를 하는 중국 무역업자들이 북한인이 위안화로 무역대금을 결제할 때 위조지폐 가능성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단둥의 한 무역업자는 RFA에 “북한에 위조지폐가 많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며 “하지만 최근 북한에서 제작된 위조지폐가 미국 달러화가 아닌 중국 위안화라는 점과 규모가 수백억위안에 달한다는 점에서 기존 북한 위조지폐와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위안화 위조지폐는 정교하게 만들어져 위조지폐 감식기도 쉽게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했다. RFA가 공개한 중국 100위안 지폐 진짜(위)와 가짜(아래). /RFA 단둥의 또 다른 소식통은 RFA에 “실제 위안화 위조지폐가 유통되고 있는지 사실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는 없다”며 “일단 이런 얘기가 돌면 중국 무역업자와 북한인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수출계약서에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한 상황에서 많은 중국 무역업자가 위안화 위조지폐를 염려해 미 달러화로 결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북한 수입 회사와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또 “북한에서 나온 가짜 위안화 관련 소문은 아직 국경지역에 국한돼 있지만 파급 속도가 빨라 앞으로 중국 내륙지방까지 퍼질 것 같다”며 “북한 당국이 서둘러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앞으로 북·중 무역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2253    [믿거나말거나] - 피카소 그림 한장 = 2만 5천명 = 4만 쪼각 댓글:  조회:4841  추천:0  2018-05-05
[핵잼 라이프] 피카소의 그림, 2만 5000명이 나눠 갖다  2018.05.0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소셜커머스에 나온 명화 공동구매 [서울신문] 피카소의 작품을 자신의 거실에 걸어 둘 수는 없지만 소유권은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공동구매가 등장했다. 피카소의 ‘소총병의 흉상’AFP 연합뉴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스위스의 유명 소셜 커머스 업체 ‘코카’가 피카소의 유명 작품을 공동구매로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피카소의 이 작품은 1968년 작인 ‘소총병의 흉상’으로, 가격은 200만 스위스프랑, 우리 돈으로 21억 6860만원에 달한다. 소셜 커머스 업체에서 내놓은 피카소의 작품을 사겠다고 나선 사람은 무려 2만 5000명이며, 이 작품은 총 4만 조각으로 나눠 판매됐다. 한 조각당 가격은 50스위스프랑(약 5만 4300원) 정도다. 즉 이번 공동구매에 참여한 2만 5000명은 조각당 5만 4300원을 지불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공동 소유하게 됐다. 코카 측은 “유명 화가의 작품을 공동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포기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두 배 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공동구매는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작품이 진품이 맞는지를 전문가를 통해 확인했으며 유럽의 한 소장가로부터 구입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작품은 현재 제네바의 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번에 공동구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인 아이디 카드를 소장하고 해당 박물관을 찾으면 무료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제네바에서 전시가 끝나면 다음 전시 장소를 정할 때에도 공동구매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코카 측은 밝혔다. ///송혜민 기자
2252    [동네방네] - "피카소" = "추상화가"돼지 댓글:  조회:5441  추천:0  2018-05-05
바비큐 될 운명의 암퇘지.. 그림으로 주인에게 '보답' 이동준  2018.05.0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양돈 농가에서 인수한 암컷 돼지가 추상화로 돈벌이하는 등 주인에게 작은 보답을 하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림 그리는 돼지 '피카소' 4일(현지시간) 요미우리 등 외신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부 웨스턴케이프에는 ‘화가 돼지‘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피카소’라는 이름의 이 돼지는 지난 2016년 양돈 농가에서 생후 1개월쯤 됐을 때 동물보호 활동을 펼치는 조안(46) 씨가 인수했다. 돼지의 뜻밖의 재능은 놀이를 위해 붓을 주면서 시작됐다. 돼지는 붓을 입에 물고 다니며 벽에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등 독특한 행동을 했다고 전해졌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조안 씨는 물감과 캔버스를 준비하며 돼지의 그림을 옮겨 담아 지금까지 약 90여 개의 추상화 작품이 모였다. 그중 70개 작품이 수집가에게 팔렸다. 조안 씨는 돼지가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여 ‘추상화 그리는 암퇘지’라는 별칭으로 유명해졌다. 또 이러한 유명세에 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는 홍보영상에 돼지 그림을 채택하며 고액을 지급하는 등 돼지는 그림으로 주인에게 보답하고 있다. 조안 씨는 “돼지가 그린 그림이라는 독특함에 경매에서 3만 600랜드(약 307만원)에 낙찰되는 등 큰 인기를 누린다”며 “돼지가 그린 ‘선 컬렉션’을 유럽에서 전시회를 열고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돼지의 추상화를 모아둔 화실. 우연한 기회에 입양한 돼지가 주인에게 기쁨을 전하는 모습이다. /이동준 기자  /사진= 요미우리신문 캡처
225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개똥처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577  추천:0  2018-05-04
안녕하세요! 해피펫 에디터 정글베리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 '강아지 똥'입니다.   (지금 식사하시는 분들께는 죄송;;;) 출처 : pixabay 강아지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반려견의 대소변 처리는 즐거움보단 의무인데요.   일부 무책임한 반려인들에 의해 길거리에 방치된 배설물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특히나 잡초가 무성한 인도 외곽이나 공원의 풀숲, 동네 뒷산의 산책로 주변에 반려견의 배설물을 방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름이 되니 괜찮다'는 믿음인데요. 강아지 배설물 1g에는 대장균 2,300만 개가 서식한다고 합니다. 출처 : Marcus cramer on Unsplash 이 외에도 강아지 배설물에 서식하는 수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들은   빗물 등에 쓸려 대지와 상수도원을 오염시키며   이를 섭취 시 경련, 설사, 장 질환 및 심각한 신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적절한 퇴비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은 토양에 유해하며 거름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강아지 배설물이 거름으로 사용되려면   질소와 탄소 등의 물질과 섞여 약 60'C의 환경에서 모든 유기물질이 분해 되고 모든 균주가 사멸할 때까지 발효되어야 하며   이 과정은 최소 4주에서 8주가 소요됩니다. 게다가 퇴비화 과정을 거쳤더라도 잠재적인 병원균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어 식용작물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관상식물에 한해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따라서 강아지의 배설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만약 배변봉투가 플라스틱 백이라면? 출처 : Matt nelson on Unsplash 반려동물 천만가구 시대.   모두가 일회용 비닐봉지를 쓴다면 한 해 강아지 배변처리에만도 엄청난 양이 소비되는 셈인데요. 2015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일회용 비닐봉지는 연간 총 216억 개. 1인 소비량은 420개로 4개에 불과한 핀란드의 100배에 달합니다. 비닐의 소재인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되지 않아 매립해도 썩지 않고   소각 시에도 완전연소가 어려우며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데다   소각 후에도 중금속 잔재가 남기 때문에 2차적인 환경오염을 일으킵니다. 또한 비닐이 분해 되며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며    바다에 버려지는 비닐은 수많은 어종과 해양생물, 조류의 생명을 빼앗고 해양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렇다면, 좀 더 친환경적인 배변처리 방법은 정말 없을까요? 출처 : Nic Fleming on The Guardian 강아지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은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인데요.   영국의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인  브라이언 하퍼(Brian Harper)는 수거된 강아지 배설물을 메탄가스로 변환, 가로등을 밝히는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 공원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225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아기코끼리야, 잘 자라거라... 댓글:  조회:5304  추천:0  2018-05-04
'23년만의 경사' 어린이대공원 아기코끼리 백일잔치 손대선  2018.05.0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뉴시스】23년만에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난 아기코끼리. (사진 = 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원 45주년을 맞아 23년만에 탄생한 아기코끼리 백일 기념 공개행사를 갖는다고 4일 밝혔다. 어린이대공원 최초의 코끼리는 1975년 동국제강에서 기증한 태국 코끼리 한쌍이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이들 부부 사이에 4마리의 아기코끼리가 태어났지만 1996년 암컷이 사망한 이후 아기코끼리의 대가 끊겼다. 현재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캄돌이(수컷, 28세)와 캄순이(암컷, 34세)는 2010년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기증받아 오게 됐다. 2014년 한 차례 사산의 아픔이 있었지만 2018년 1월 27일 두 번째 아기 코끼리가 태어났다. 서울 땅을 밟은 이후 8년 만이다. 엄미 캄순이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태어날 당시 100㎏으로 추정되던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는 백일만에 150㎏이 될 정도로 무럭무럭 자랐다.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동화축제와 함께 아기 코끼리 탄생 백일을 기념하는 공개행사가 열린다. 오전 11시 코끼리사에서 사육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과일케이크와 함께 조심스럽게 시민 앞에 첫발을 내딛는 엄마와 아기 코끼리를 만나볼 수 있다. 아기코끼리의 건강을 기원하는 메시지 쓰기와 코끼리 이름공모 현장접수도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서울어린이대공원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아기코끼리 이름공모'를 5월 5일부터 18일까지 3주간 진행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공모 게시글에 댓글로 아기코끼리 이름과 의미를 남기면 된다. 이지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개원 45주년을 맞은 서울어린이대공원의 오늘은 많은 시민과 함께 만들어 온 것이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 운영과 쾌적하고 안전한 공원 만들기에 힘쓰겠다"며 "23년 만에 탄생한 귀한 아기코끼리가 건강하게 자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249    [동네방네] - 올해 "노벨문학상" 있다?... 없다!... 댓글:  조회:5426  추천:0  2018-05-04
노벨문학상도 '미투 쇼크'.. 한림원 "올해 선정 안한다" 강혜란 2018.05.04.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한림원 "내년에 수상자 2명 선정하기로"   1982년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수여됐던 노벨문학상 메달을 2015년 보고타 국립도서관 직원이 들어보이고 있다. '미투' 성추문의 불똥이 튄 스웨덴 한림원은 2018년 노벨문학상 선정을 취소했다.[AP=연합뉴스]   유명 사진작가의 성추문과 관련해 호된 홍역을 치른 스웨덴 한림원(swedish academy)이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과 시상을 취소하기로 했다. 대신 내년 2019년도에 두명을 선정하기로 했다. 노벨문학상 시상이 수상자의 거부가 아니라 선정위원회 측 이유로 불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이후 75년 만에 처음이다. 한림원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올 가을 예정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는 취소됐으며, 2019년 두 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18명의 종신위원으로 구성된 한림원은 매년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해 왔다. 비활동 회원 2명에다 최근 성추문 사태 이후 6명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활동위원이 현재 10명뿐이다.    지난해 12월2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구증권거래소 건물에서 열린 한림원(Swedish Academy) 연례 행사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파문은 지난해 11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중 여성 18명이 프랑스계 스웨덴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에게 10여년 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아르노는 한림원 종신위원인 아내 카타리나 프로텐손과 함께 스웨덴 문화계 및 한림원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문화계 파워맨으로 활약해 왔다. 아르노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들 부부에 대한 부당한 재정 지원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한림원의 위상이 삽시간에 추락했다. 한림원의 미온적 대응에 항의해 종신위원들이 잇따라 사의를 밝히고 사라 다니우스 종신 사무총장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등 총 6명이 자리를 내놨다. 1786년 설립된 한림원에서 종신위원의 이 같은 집단 사퇴는 유례없는 일이다. 나아가 지난달 29일엔 아르노가 2006년 한림원의 한 행사에서 스웨덴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몸을 더듬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나왔다. 때문에 올해 문학상 시상이 예년처럼 진행되긴 어려울 거란 관측이 일찌감치 제기됐다. 저명한 페미니스트이자 문학 연구가인 에바 위트 브랫스트롬은 CNN 인터뷰에서 “올해 노벨상 시상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어떤 작가가 이런 조직에서 상을 받고 싶어 하겠느냐”고 개탄했다.    스웨덴 한림원에까지 파문이 번진 성추문의 당사자 장 클로드 아르노(오른쪽)는 지난 2006년 한림원의 행사에서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왕세녀를 더듬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일단 노벨상 선정을 취소하면서 한림원은 조직 정비부터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저명한 문학가·학자들로 구성되는 한림원 종신위원은 규정상에는 사퇴라는 개념이 없다. 하지만 이번 파문이 불거진 뒤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는 종신 위원의 사퇴를 허용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 사태는 문학상에만 관계된 것으로 나머지 물리·생리의학·화학·경제학상과 노르웨이에서 수여하는 평화상은 예정대로 오는 10월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강혜란·홍주희 기자 =================   '미투' 파문 여파 "올해 노벨문학상 없다"… 내년으로 미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않기로 결정 (PG) '미온 대처 도마' 스웨덴 한림원 "대중 신뢰 회복 시간 필요" 문학상 지금까지 7차례 시상 못 해…1949년 이후 69년 만에 처음 (브뤼셀·서울=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박인영 기자 = 최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논란에 휘말린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시상하지 않고 내년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지 않는 것은 1949년 이후 69년 만에 처음이다. 2016년 노벨문학상 발표 장면 자료사진[EPA=연합뉴스]   한림원은 이날 성명에서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에 한림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결정했다"며 올해 노벨문학상을 시상하지 않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11월 종신위원 18명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인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클로드 아르노에게서 과거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 18명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다가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 명단을 사전에 유출한 혐의까지 드러나자 종신위원 3명이 그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무산되면서 이에 반발한 위원 6명의 집단 사직으로 이어졌다.   아르노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했지만, 한림원은 이후 "용납할 수 없는 행위가 강요된 형태로 서열관계에서 발생했다"고 성폭행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한림원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훼손됐다. 급기야 스웨덴 한림원의 첫 여성 종신 사무총장이었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까지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프로스텐손도 뒤이어 사퇴하면서 올해 노벨문학상 시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18명으로 구성되는 스웨덴 한림원은 12명 이상이 있어야 운영되도록 규정돼 있으나 8명이 사실상 한림원 활동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이다. 전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종신제로 운영되는 한림원에선 사실상 사임이 불가능하지만, 한림원의 후견인인 스웨덴의 왕인 칼 구스타프 16세가 금주 초에 위원의 사퇴를 허용하도록 규정을 바꾸는 것을 승인했다. 스웨덴 왕궁은 "구스타프 국왕이 노벨문학상 시상을 연기하기로 한 한림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면서 "이번 결정은 한림원이 명성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시상 장면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앤더스 올슨 사무총장 대행은 "(아직) 활동 중인 한림원 멤버들은 현재 처한 신뢰 위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다음 수상자가 발표될 수 있을 때까지 한림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슨 대행은 또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시상을 연기하는 데 대해 완전한 합의가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면서 "최근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신뢰의 추락이 시상을 연기하기로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새로운 멤버를 찾기 위해 안팎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올슨 대행은 덧붙였다. 노벨재단도 스웨덴 한림원의 올해 노벨문학상 시상 연기 결정과 관련, 성명을 내고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시상자로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현재 취하고 있는 구체적인 조치들에 관해 알려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스웨덴 한림원은 전쟁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이 시상되지 않은 해는 1915년, 1919년, 1925년, 1926년, 1927년, 1936년, 1949년 등 모두 일곱 차례라고 밝혔다. 다만 이 가운데 5번은 수상자가 없던 해의 다음 해에, 당해 수상자와 전해 수상자에게 동시에 상이 수여됐다. 노벨상을 창안한 알프레드 노벨의 흉상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최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파문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논란에 휘말린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시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고 내년에 시상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11월 종신위원 18명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인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에게서 과거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 18명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 명단을 사전에 유출한 혐의까지 드러나자 종신위원 3명이 그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무산되면서 이에 반발한 해당 위원들의 집단 사직으로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종신 사무총장까지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프로스텐손도 뒤이어 사퇴하면서 올해 노벨문학상 시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습니다. /// SBS 뉴스 /조민성 기자 =======================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성폭행 고발 캠페인인 '미투' 파문에 휩싸여 제 기능이 어려운 가운데 올해 수상자 선정 여부가 현지시간으로 4일 최종 결정됩니다. 내년에 2명의 수상자를 발표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올해 문학상 수상자를 낼 수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림원 행정책임자인 루이즈 헤드베르그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올해 문학상 수상자 선정 여부를 4일 발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헤드베르그는 이어 "기자회견은 없고, 발표문이 배부될 것"이라며 한림원 위원들이 만난 뒤 가능한 한 일찍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림원을 강타한 미투는 지난해 11월 여성 18명이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클로드 아르노로부터 1996년부터 최근까지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아르노는 카타리나 프로스텐손 당시 종신위원의 남편으로, 한림원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톡홀름에서 문화센터도 운영했습니다. 논란이 불거진 뒤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 명단을 사전에 유출한 혐의까지 받았습니다. 프로스텐손은 사임하지 않았고, 결국 다른 종신위원 3명이 물러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이후 미온적 대처로 비난을 받은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도 물러났고 결국 프로스텐손도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SBS 뉴스  / 류희준 기자 ====================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림원은 발표문을 통해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로 한림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밝히고, 보완과 회복과정을 거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2019년 수상자와 함께 발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한림원 종신위원의 남편인 장클로드 아르노가 18명의 여성을 성폭력한 사실이 밝혀 지면서 한림원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림원 사무총장이 사퇴하고,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종신위원 18명 가운데 6명이 사퇴하면서 사실상 수상이 힘들어 졌습니다.    ///SBS 뉴스 / 배재학 기자  
224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아기곰들아, 잘 자라거라... 댓글:  조회:4901  추천:0  2018-05-04
어미는 어디에?.. 아기곰 3마리, 산길서 발견 2018.04.26.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그리스 국경과 인접한 불가리아 로도페 산길을 배회하던 아기곰 세 마리가 마을 주민들에게 발견돼 현재 동물보호소에 있는 것을 확인됐다. 불가리아 환경당국은 21일(현지시간) 어미가 없는 아기 곰 3마리가 발견돼 현지 동물보호단체가 보호 중이라고 밝혔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로 구성된 이 아기곰들은 생후 3개월 정도로 체중은 2~3킬로다. 현재 스트레스에 시달리고는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수의사들의 진단. 사육사들은 아기 곰들에게 염소 젖과 비타민을 먹이고 있는 한편, 현지 당국은 어미 곰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아기곰들을 보호 중인 디미타르 이바노브는 "야생상태에서 새끼 곰만 발견된 경우, 어미는 밀렵꾼들에게 잡혀갔거나 사살됐을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끝내 어미 곰이 발견되지 않으면, 아기곰들은 인근 그리스 아르투로스 곰 전용 보호소로 이송돼 야생상태로 돌아가는 훈련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불가리아 동물원에는 약 800마리의 갈색 곰이 있는데, 이는 동종의 개체 중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다. ///장관섭 프리랜서 기자 ========================   에버랜드 '판다'월드 오픈 2년 만에 입장객 500만명 돌파 한재영 기자 2018.05.0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경제]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은 3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내에 있는 ‘판다월드’가 개관 2년여 만인 지난 2일 에버랜드 단일 시설로는 최단 기간 만에 입장객 5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멸종 위기 희귀동물 판다를 볼 수 있는 판다월드는 2016년 4월20일 개장 이후 742일 만에 입장객 500만명을 넘겼다. 판다월드 하루 평균 입장객은 6,700여명으로, 같은 기간 에버랜드 전체 이용객 10명 중 약 4명이 이 곳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사진제공=에버랜드        
224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물보호반환",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075  추천:0  2018-05-04
[단독]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인장’ 찾았다  2018.05.03 인터넷 뉴스 VI     미국 경매 사이트 ‘크리스티’에 올라온 덕온공주 인장 [연관 기사] [뉴스9/단독] ‘조선 마지막 공주’ 인장 되찾기 비밀작전…고국 품으로 미국 경매에 나온 덕온공주 인장 지난달 18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눈길을 끄는 유물 하나가 출품됐습니다. 조선 시대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1822년~1844년)의 인장이었죠. 공주 인장의 화려한 실물이 공개되자 경매장에선 해외 수집가들의 치열한 응찰이 시작됐습니다. 경매 시작가는 약 2만 달러였지만 금방 10배 가까이 가격이 뛰어올랐는데요. 최종 낙찰 가격은 23만 7천5백 달러. 낙찰을 알리는 경쾌한 망치 소리가 경매장에 울려 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덕온공주 인장 ■ 문화재청 관계자에 낙찰…조선 마지막 공주 인장 환수  KBS 취재 결과 덕온공주 인장의 낙찰자는 우리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였습니다. 재단 측은 지난 2월 덕온공주 인장이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어 고미술 전문가와 함께 미국에 가서 직접 실물 검증을 진행해 우리 문화재임을 확인했죠. 다만 공주의 인장은 혼례를 치르고 궁궐을 나가면서 사가(私家)에 가지고 가는 물건이기 때문에 왕실 소유, 즉 국가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경매업체 측에 거래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할 근거가 부족했는데요. 결국 문화재청은 경매에서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인장을 환수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던 중 덕온공주 인장이 미국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요.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하던 문화재청 측에선 조금 난감했다고 합니다. 인장을 입수하기 전에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우리 정부가 공식 확인하면 해외 수집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경매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휘공주 인장(좌)와 정명공주 인장(우). 덕온공주 인장과 정교함에서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 출처 : 고려대 박물관 ■ 정교한 공예 기법…"공주 신분 보증하는 핵심 물건" 다행스럽게도, 경매장에서 크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덕온공주 인장이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죠. 인장은 구리 재질로 가로 8.9㎝, 세로 8.9㎝, 높이 8.6㎝ 크기입니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동물은 해태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사자입니다. 왕과 왕후의 어보(御寶)에 쓰이는 동물은 거북이, 후궁과 공주의 인장에 쓰이는 동물은 사자라고 하네요. 덕온공주 인장은 공예 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미 고려대 박물관에 숙휘공주와 정명공주의 인장이 있지만, 국가가 소유한 공주 인장은 덕온공주 인장이 유일합니다. 최응천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덕온공주는 입었던 당의(唐衣)가 국가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인장은 공주의 왕실 신분을 보증하는 핵심 물품이기 때문에 이번 문화재 환수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덕온공주가 입었던 당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호. / 출처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 인장 반출 경위는 불투명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유물을 왜 미국인이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일단 반출 경위는 오리무중입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무단으로 가져갔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문화재청은 덕온공주의 인장을 도난 문화재로 따로 분류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덕온공주의 후손들이 한국전쟁 때 공주의 소지품을 일부 분실했다고 하는 만큼, 인장도 그 시기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는데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에서 이미 거래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반출 경위를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덕온공주의 혼수품을 작성한 ‘혼수발기’ / 출처 : 국립한글박물관 ■ 요절한 비운의 공주…이달 내 인장 들여올 듯 덕온공주는 조선 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의 셋째 딸입니다. 2016년 방영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이 연기한 효명세자의 실제 여동생이기도 하죠. 궁궐의 막내라 어머니 순원왕후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하는데요. 1837년 혼례를 치렀는데 당시 왕실에서 혼수품 목록을 적은 종이의 길이만 5m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순원왕후는 시집 보낸 막내딸 덕온공주를 늘 걱정하며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글 편지만 수십 점에 달할 정도인데요. 몸이 약했던 덕온공주는 안타깝게도 22살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덕온공주의 인장은 남은 반입 절차를 거쳐 이번 달 안에 국내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전시 장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서울 종로구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인데요. 조선 마지막 공주의 인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장혁진 기자
2246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무술렵기축제"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4830  추천:0  2018-05-04
  공연가가 ‘칼산’을 오르는 모습 [촬영/중국신문사 뤄윈페이(駱雲飛)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3일] 4월 30일 제3회 중국 딩안(定安) 쥔포(軍坡, 군파) 문화행사가 하이난(海南, 해남)성 딩안현 원비펑(文筆峰, 문필봉)에서 개최됐다. 하이난 특색의 ‘쥔포 기념하기’ 행사가 펼쳐졌고 ‘쥔포제(軍坡節, 군파절)’의 이색 볼거리 중 하나인 ‘칼산 오르기(上刀山)’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공연가가 ‘칼산’을 오르는 모습 [촬영/중국신문사 뤄윈페이(駱雲飛) 기자]   공연가가 ‘칼산’을 오르는 모습 [촬영/중국신문사 뤄윈페이(駱雲飛) 기자]   공연가가 ‘칼산’을 오르는 모습 [촬영/중국신문사 뤄윈페이(駱雲飛) 기자]
2245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황소이색축제"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4807  추천:0  2018-05-04
  대회 현장, 고낭추(姑娘追: 아가씨가 총각을 쫓아가는 전통놀이)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 [촬영/마샤오웨이(馬曉偉)]                                                                                      [인민망 한국어판 5월 3일] 4월 30일 중국 노동절 휴가 기간 간쑤(甘肅, 감숙)성 주취안(酒泉, 주천)시 아커싸이(阿克塞) 카자흐족(哈薩克族)자치현에서 성대한 싸이마후이(賽馬會: 전통 경마대회)가 열렸다. 이번 싸이마후이에서는 경마, 고낭추(姑娘追: 아가씨가 총각을 쫓아가는 전통놀이), 조양(叼羊: 양 뺏기), 민족가무 등 10가지가 넘는 풍부한 공연 및 프로그램이 개최됐다. 경마대회와 해당 명절을 기념하는 민족가무를 보기 위해 간쑤성 및 주변 현(縣), 시(市)에서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커싸이현을 찾았다. 이곳의 경마대회는 현지인들의 문화, 생활, 민족적 풍토를 지니고 있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촬영/마샤오웨이(馬曉偉)]   치열한 경마대회 현장 [촬영/마샤오웨이(馬曉偉)]   대회 현장 [촬영/마샤오웨이(馬曉偉)]
2244    [동네방네] - 노벨상 수상자, 중국 영구거류신분증 타다... 댓글:  조회:5641  추천:0  2018-05-04
  5월 2일, 노벨상 수상자 베르나르트 페링하(Bernard L. Feringa) 씨와 그의 부인이 발급받은 영구거류신분증을 선보이고 있다. [촬영: 신화사 판쥔(凡軍)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3일] 상하이(上海, 상해)에서 7명의 외국인에게 영구거류신분증과 거류허가(居留許可: 거류증)를 발급했다. 그들의 중국 입국, 생활, 직장 생활에 큰 편리함이 찾아왔다. (번역: 은진호) ///신화망(新華網)
2243    [쉼터] - "가장 큰 취미는 독서" 댓글:  조회:5475  추천:0  2018-05-04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장소에서 책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연설 중에 경전을 자연스럽게 인용함으로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시진핑 총서기는 특히 지도간부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도록 당부했는데 이는 “독서가 사람의 사상적 활력을 유지하고, 지혜를 얻도록 할 뿐 아니라 강직함까지 겸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CCTV뉴스는 시진핑 총서기의 ‘서재’라는 타이틀로 총서기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과 독후감을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                                                                                                                                        ♦ 시진핑(習近平): 국가가 일류여야 학술이 일류가 될 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2일 오전 베이징대학(北京大學)을 시찰하면서 베이징대의 최근 5년 성과전을 관람했다. 베이징대가 최근 5년간 일류대학 건설을 추진하면서 이룬 탁월한 성과를 청취한 시진핑은 매우 기뻐했다. 그는 “일류란 무엇인가? 중국 특색에서 평가를 해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민족적인 것만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먼저 국가를 일류 수준에 도달하게 한 다음 다른 것들이 국가 일류에 이바지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학술연구를 국가발전 성과의 토대에서 구축해야 되고 지행합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진핑, 독서 소감 나눠: 실제와 결부시켜 지행합일을 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는 2일 오전 베이징대를 시찰하면서 청년 학생들과 자신의 독서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문학, 역사를 좋아한다. 성어(成語)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 사전을 많이 들춰보고 지식이 부족하면 매우 부끄러움을 느낀다. 예전에 농촌생산대(生產隊)에 들어가 생활했을 때 함께 있던 몇몇 학생은 집안 대대로 학문이 깊어 박학다식했는데 그들과 늘 담론을 하곤 했다. 어떤 학생들은 구체적인 문제를 담론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전고(典故)와 사례를 인용했다. 이를 통해 나는 학술이나 지식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결부시켜 지행합일, 격물치지, 학이치용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훗날 책을 읽을 때 실제와 결부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들을 읽었다. 15살 때 나는 독립적인 사고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부정의 부정, 온고지신에 달할 때까지 끊임 없이 다시 살펴보고 나서야 마르크스주의가 확실히 진리이고 중국 공산당의 지도는 인민의 선택, 역사의 선택이며 우리가 걷는 사회주의 노선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자신의 사고를 통해 인식하고 도출한 이런 결론들이야 말로 확고부동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번역: 이인숙 ///인민일보 클라이언트 ///사진출처: 신화사 /촬영: 리타오(李濤), 야오다웨이(姚大偉), 리쉐런(李學仁), 왕예(王曄), 성자펑(盛家鵬) ============================     [촬영: 신화사 판쉬(潘旭)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28일] 4월 27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남역, 오스트리아 연방 철도(OBB) 최고경영자(왼쪽 첫 번째)가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앞줄 오른쪽 첫 번째), 오스트리아 디지털경제사무부 장관(앞줄 오른쪽 두 번째) 등과 함께 중국 청두(成都, 성도)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온 열차를 시찰했다. 당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중국발 오스트리아행 첫 열차가 도착했다.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중국-오스트리아 열차는 오스트리아와 중국의 우호협력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중국-오스트리아 열차는 지난 4월 12일 중국 청두에서 출발해 아시아 및 유럽 6개국(9,800km)을 지나왔다. 해당 열차의 화물칸에는 전자부품, LED 조명 기구, 침낭 등이 실려 있었다. (번역: 은진호) ///신화망(新華網)   [촬영: 신화사 판쉬(潘旭) 기자]   구름과 안개가 가득 피어오른다. 구름은 산과 협곡 사이를 오가며 그 모습은 마치 폭포수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4월 황산(黃山)산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숲과 고랑 사이로 붉은 진달래꽃과 구름, 나무, 기석(奇石) 등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환상적인 경치를 만들어낸다. [촬영/장타오(張濤)]                                                                                    [인민망 한국어판 4월 27일] 4월 24일 비가 갠 후 안후이(安徽, 안휘) 황산(黃山) 관광지에 운해(雲海) 경관이 펼쳐졌다. 산봉우리 사이로 구름이 지나고 들판에는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환상적인 경치는 많은 관광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2242    [쉼터] - "높이 나는 새", "낮게 나는 새", 그리고... 댓글:  조회:4656  추천:0  2018-05-03
문학인의 고뇌와 그 가치를 말한다 2018년 05월 02일  작성자: 김인섭 청명날 고향에서 일생을 볼모로 내밀고 문학의 일로에서 매진하는 몇몇 문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오가는 한담에서 이들이 바로 속세의 부귀영화와 주지육림을 멀리한 민족사회의 주보이고 민족문학의 버팀목이라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민족문화의 터전이 황페해지고 민족문학의 자리가 좁아터진다는 탄식을 들으며 불안해졌다. 면식도 익히기 바쁘게 우수에 잠긴 그들을 뒤로 하며 유감(有感)도 남았다. 개혁개방은 조선족사회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전통적 인문지리학 구조는 밑둥부터 바뀌고 있다. 또 그 변화 물결과 세계화 조류가 합류되면서 조선족사회에는 인구대이동,인구격감, 교육위기, 등등 ‘전신증상’이 병발(并发)하여 그 존망 자체를 걱정하는 소리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더구나 민족문화를 아예 리탈하는 인구도 량산되고 있으며 가무는 문화터전에 불부채질한다는 것도 민족 내부의 사실이다. 이 불가역변화가 민족문학의 뿌리를 세차게 흔들었고 오늘도 진행형이다.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문학의 생산방식, 류통방식과 소비패턴이 격변하고 있다. 하여 재래적 문학은 과학기술 발전과 엇박자를 치는 데 합점을 이루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전 지구가 한마을로 축소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만두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까지 인터넷 통신망으로 련결되는 시대이다. 문학인들의 원고지는 모니터로 바뀌고 연필은 키보드로 바뀌고 있다.전통적인 문학과 문학 향수 타입이 혼선을 빚으며 헛갈리여 말 그대로 앞이 흐리마리하다. 격렬한 물질추구 욕망과 인간의 리성, 륜리 관념이 세찬 파동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민족공동체의 해체를 부르고 리념 혼돈을 조성하여 민족문화 허무주의와 그에 따르는 부산물을 량산하고 있다. 물질주의에 넋을 잃은 사람들은 무한경쟁과 재부의 축적에 혈안이 되였을 뿐 그까짓 민족문학은 내 생존과 아무 관련이 있냐는 듯 머리를 돌리고 있다. 민족문학이 이 살벌한 시대에서 류리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제4차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그 물결이 급속히 세지고 있다. 20년 뒤면 인간은 육체로동과 정신로동과 잡무에서 탈피하여 행복하게 살 것이라며 미래학자들이 예측을 꽃피우는 현실이다. 인간의 물욕과 과학발전의 동반물인 민족문학의 공허증후군을 해소하고 민족 가치관과 륜리 공백을 메우는 것이 조선족사회의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하여 민족문화 본연의 기초에서 문학의 미래를 재정립하고 새 도로를 개척해야 할 심중한 력사적 과제는 지성인들의 몫이 되고 있다. 시대가 굴러가며 변해도 조선족 작가들이 류념해야 할 신조라면 나의 작품은 중국특색이 선명한 민족문학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들은 중국 문화를 위주로 한 타문화에서 혼합영양을 흡수하고 량종측지(侧枝)를 접목하고 우성형질(优性形质)을 융합시키는 시대적 기법을 창조하는 것으로 민족문학의 승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타문화와의 슬기로운 조화야말로 민족문학 빛발의 광원이고 민족문학 영광의 소재이며 민족문학 존속의 원천이 된다. 또한 문화융합이 유연하게 실현된 작품이여야 민족문학의 독자성을 지키는 문화 장치와 방어선이 될 수 있다. 만약 문학시장의 개발에 나선다면 융합문학이란 포인트를 기치선명하게 홍보해야 최대의 시장효과를 올릴 것이다. 민족문학이 비록 가파로운 아리랑고개를 넘고 있어도 우리 작가들은 창작을 지속하며 민족의 희로애락과 참된 인간성을 살려내는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생존, 자본과 과학이란 삼두마차가 끌고 가는 이 시대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학인들의 고뇌는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작가들의 고민은 사회, 경제나 과학 발전의 간단한 부작용이 아니고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발전통이고 성장통이고 지나야 할 통과의례로 봐야 마땅하다. 우리 조선족은 기복이 많은 력사시련을 겪으며 혹독한 고민이 없었던 나날이 없었던 같다. 그렇다면 이 가난한 문인들의 고뇌와 고민을 민족운명의 축도라 봐야 할 게 아닌가. 그래도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락관적 정신과 ‘낮게 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 는 실리적 태도를 결합시키며 힘들더라도 미래와 발부리를 갈마보며 나가야 한다.그러면 우리 문인들의 고뇌 집적은 새시대 문학을 숙성하는 ‘발효효모’ 로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들이 고난이 점철한 올리막 걸음을 숙명으로 감내할 때 그 의지는 민족 문학의 새 천지를 개척하는 원동력이 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연변일보 ========================   민족문화는 적자생존의 산실 2018년 04월 30일  작성자: 김인섭 적자생존이란 술어의 연원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생물학 명사였는데 지금은 무한경쟁의 마당에서 나타나는 사회문제와 삶을 위해 고전하는 인간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형용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적자생존의 본래의 뜻은 동일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에 필요한 유전물질을 획득하는 개체가 살아남고 후대 번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자연성은 모든 생물체가 여건에 맞는 천연 형질이 구비되여야 한다는 피동적이고 무조건적인 순응이 전제로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원리를 간단히 인간사회에 적용한다면 인간은 주동적으로 자기와 자기 환경을 개변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적자생존의 의미도 문명의 진보에 따라 그 내용이 부단히 풍부해 지고 시점도 다각화 되고 있다. 과거 류행되던 적응하면 생존하고 생존했으면 적응된 것이라는식의 단순한 직접 추리는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약육강식이나 승자독식 같은 부조리를 형성하여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되였다. 그러나 세계화추세와 과학발전에 따라 인간의 자아개발 능력이 전례없이 향상되고 환경선택의 여지가 류례없이 넓어져 현재 인간은 자기 형질에 알맞는 삶터를 수시로 바꾸도록 되여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생존경쟁의 의미에도 공존공영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이 지능화시대를 몰고 오지만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경쟁의 기본 성질은 변함이 없다. 사회 상위권에 들고 하위권에 령락하지 않으려면 인간은 피동적 적응이 아니라 주동적 선택으로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체력로동과 뇌력로동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이때 적응 가능한 삶의 터전이 넓은 자가 시대의 선두주자로 된다. 다시말하면 적자생존은 인류사회의 필연 법칙이다. 그렇다면 살아가고 잘 사는 비결은 자기에 부합되는 의식주행의 호조건을 부단히 조성하고 알맞는 여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굼뜨면 비천한 일생이 아니면 보람없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으로 말하면 진입 가능한 문화세계가 넓고 그 문화세계에 잠입할 ‘잠수함’이 구비되고 세계와 융합할 수 있는 인문주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일전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아들이 당장 대입시험인데 노라리만 부려 골이 아프다고 한다. 아들은 국내에서 대학에 꼭 입학해야만 되냐며 고중을 졸업하면 바로 한국류학을 떠나고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챙기고 아버지 돈은 푼전땡전도 안 쓰고 류학공부를 마치면 중국, 한국을 드나들며 돈벌이를 한다는 선언을 내렸다. 들어봐도 ‘공부를 시키니 개포수를 배운다’는 역리(逆理)인데 그래도 적자생존이란 론리로 분해하니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자기 문화에 대한 깊은 확신과 자신을 가진다는 감회도 머리에서 돌았다. 이 애꾼도 문화로 살 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굴리면서 어디에나 붓질하고 있는가부다.  ///길림신문  ===================   [촬영: 중국신문사 류잔쿤(劉占昆)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5월 2일] 4월 29일 장시(江西, 강서)성 난창(南昌, 남창)시 완다(萬達) 문화관광성의 대형 주차장에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모습은 마치 회로기판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절 연휴 첫날부터 중국의 유명 관광지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4월 30일, 간쑤(甘肅, 감숙)성 둔황(敦煌, 돈황)시 밍사(鳴沙, 명사)산 웨야취안(月牙泉, 월아천)을 찾은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출처: 신화사/촬영: 장샤오량(張曉亮)]
2241    [타산지석] - 손도장의 위력 댓글:  조회:3710  추천:0  2018-05-03
[개혁개방 40년] 네번 찍은 손도장과 소강촌 (ZOGLO) 2018년4월28일  붉은 손도장, 이 중국농민의 소박하면서도 견결한 표현은 중국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다. 40년전, 안휘봉양소강촌 촌민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호도거리”라는 생사적 계약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 후로는 개혁의 앞장에 선 선줄군을 신변에 남기기 위해  붉은 손도장을 세번 찍고 이 중후한 토지 우에 시대적 전기를 써내였다. 처음 찍은 손도장 1978년의 한 겨울 안휘 봉양현 소강촌의 낮고 허름한 초가집에서 18명의 람루한 옷가지를 걸친 촌민들이 가물거리는 기름등잔불을 마주하고 “감옥살이도 할 수 있는” 큰일을 둘러싸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생산대에는 굶어죽은 사람이 60여명에 달했고 온가족이 굶어죽은 집이 6세대나 되였습니다.” 칠순이 넘은 소강촌 촌민 엄립화가 당시를 회억하며 말하였다. 그는 이 소강촌의 ‘호도거리’ 인솔자의 한사람이였다. 40년전, 소강촌은 ‘반소량을 먹고 구제돈을 쓰고 대부금으로 생산’하던 소문난 빈곤촌이였다. 늘 기근이 들어 농민들은 외지로 나가 구걸을 하였다. “처자가 있고 늙은 부모들이 있는 세대들에서도 며칠이고 밥가마에 불을 때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부친은 너무 굶어 침대에서 내려서지도 못하였고 말린 토란이라도 한입 맛있게 잡숫고 싶어했지만 어디서 구할 데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 도거리호 엄홍창이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18명의 촌민들은 붉은 인주를 묻혀 손도장을 꾹- 꾹 눌러 찍고 그 손을 움켜쥐고 맹세를 다졌다. 집집마다 밭을 나눠가지고 호도거리를 잘 해 보자고. “감옥살이를 하는 한이 있라도 촌민들이 한끼 배불리 먹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생각했지요.” 역시 호도거리에 앞장 섰던 엄준창의 말이였다. 붉은 손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촌민들은 땅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가슴 부풀었고 농민들의 생산적극성은 드높기만 하였다. 한뙈기 땅이나마 “나누면서” 농민들은 황량한 대지우에 풍작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바람 새지 않는 벽이 없다고 했다. 1979년 4월의 하루, 당시 봉양현위 서기였던 진정원이 소강촌 소속인 리원공사로 검사를 내려 왔다가 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였다. “진정원은 한 젊은 부부가 밭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두부부만 같이 일하는 걸 보니 당신들도 밭을 나눠가진 거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수걱수걱 일만 했지요. 진정원도 그때 모든걸 번연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봉양현 인대상무위원회 원 부주임 진회인이 그때를 돌이키며 말하였다. 즉시 압제를 해버려야 하는 건가 아니면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인가? 성 시 현 각급 정부에서는 후자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1980년 음력설이 갓 지난 때, 중공안휘성위 제1서기로 사업하던 만리동지가 소강촌을 찾아왔다. 엄홍창의 집에서 만리동지는 그와 근 네시간동안 담화를 나누었다. “그이는 우리 집에 들어서면서 ‘마음대로 봐도 괜찮을가요?’라고 묻는 것이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괜찮다’고 했지요. 그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내 쪽에서는 속이 한줌은 했지요. 그이가 아니라고 한마디만 하면 나는 당장에서 감옥에 가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간 뜸을 들이던 그이는 ‘나는 언녕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하려는 사람이 없었지요. 당신은 참 잘한 겁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홍창은 열띤 어조로 말하였다. 붉은 손도장 18매는 호도거리책임제를 속출시켰다. 1980년 5월 등소평은 한차례 연설에서 공개적으로 “가정단위생산”를 긍정하였다. 1982년, 중앙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농촌사업 “1호문건”을 출범하여 “가정단위 도급생산”과 “가구단위 생산도급제”를 사회주의 집체경제의 생산책임제라고 명확히 규명하였다. “호도거리”를 실시한 첫해, 송강촌의 량곡생산량은 13.3만근에 달하였다. 이는 1955년부터 1970년사이의 량곡생산의 총량과 맞먹는다. 인구당 평균수입은 400원이 되였는데 이것은 그 전해의 인구당수입 22원의 18배에 달한다. 이것은 20여년간 구제량을 타먹던 이 촌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 싶이 공산당이 없으면 오늘의 ‘호도거리’도 없습니다.” 년로한 엄준창은 격동되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찍은 손도장: 개혁 치부의 선줄군을 위하여 20여년이 지난 후 소강촌 촌민들은 다시 한번 붉은 손도장을 찍었다. 이것은 개혁의 길에서 촌민들을 이끌어 치부의 길로 나아가는 선줄군을 위한 선택이였다. 심호(沈浩), 그는 2004년 안휘성 제2기 파견간부로서 안휘성재정청으로부터 봉양현 소강촌에 와 당지부 제1서기로 된 사람이였다. 후날 소강촌 촌민들은 그를 촌에 남기기 위해 세차례나 손도장을 찍으면서 그를 만류하였지만 처음부터 반겨맞이한 것은 아니였다. 1978년후로 중국의 농촌들은 날따라 새로운 면모로 일신하였다. 소강촌은 “하루 밤 새에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선을” 넘어섰지만 “20년간 부유의 대문에 들어서지는 못하였다.” “당시 심서기는 ‘3개 발전단계’라는 발전사상을 제기하였습니다. 현대화농업을 발전시키고 공업을 꾸리고 관광업을 벌릴 것을 제의하자 어떤 군중들은 심서기가 허튼소리를 친다고 꾸짖었습니다. ” 당시 소강촌의 당지부 부서기를 담당했던 장후화가 터놓았다.   “그때 농민들은 자기 밭을 잘 다루어 배를 곯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였지 잘 먹고 잘살자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역시 호도거리에 앞장에 섰던 관우강이 말하였다. 소강촌은 지리적으로 회하남안에 위치하고 있고 현성과 28키로메터 떨어진 마을이다. 당시 108세대에 경작지면적이 1800무, 인구당 3무 푼한 땅을 다루었는데 이것은 중국전통농촌의 축도로 된다. 먹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였으나 촌조직이 장시기 흩어져있고 관리모식이 뒤떨어졌으며 기초시설이 박약하였다. 심호가 소강촌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촌민들의 인구당수입이 200원을 웃돌고 집체 빚이 3만원이나 되였다. 그는 두달동안 전 촌 108세대를 집집이 방문하면서 마을이 발전해야만 촌민들이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도리를 설명하였다. “그는 당원가부들과 군중대표들을 조직하여 화서, 대채 등 이름난 촌들을 참관하면서 비교속에서 차이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개혁에서 앞장선 사람들이라 하지만 시대와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개혁의 장애물이 되고마는 것입니다.”관우강의 소감이였다. 오랜 세월동안 소강촌은 단 한갈래 흙길로 외계와 통하고 있었다. 이 페쇄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심호는 50만원이라는 자금을 쟁취하여 포장도로를 수건하였다. 그는 촌민들을 이끌고 물자를 아끼고 로력을 아끼면서 돈을 절약하였을뿐만 아니라 촌민들의 참여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매일 공사장에서 올리 뛰고 내리 뛰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해재꼈다. 팔을 걷어부치고 두손으로 세멘트를 이겨내면서 시공을 질적으로 보장하고 절반자금을 남기기도 하였다. '우의대로'라고 이름한 이 도로는 소강촌의 첫 홰불로 타올라 그후로 호도거리기념관을 짓고 홍색관광을 이끌어냈으며 자금을 인입하여 공장을 경영하고 촌민들은 집중계획으로 새 아빠트에 입주하였으며 좋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일어났다… 2006년 소강촌의 인구당 평균수입은 5000원을 넘어섰다. 이해 가을 심호 서기의 임직기가 만기되자 촌민들은 깊은 정을 안고 심서기를 만류하는 청원서를 쓴 후 98매의 진붉은 손도장을 찍고 또 찍었다. 그 무엇인들 이 붉은 손도장보다 더 농민들의 깊은 감정을 잘 표달할 수가 있을가? 심호는 드디여 마을에 남기로 작심하였다. 소강촌: 개혁을 심화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심호가 계속 이 마을에서 사업한 3년은 고스란히 소강촌이 개혁을 실시한 3년이였다. 소강촌은 전형적인 농업형마을로서 농촌토지는 분산된 가정경영으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현대농업발전을 제약하고 있었다. 심호는 한차례의 촌민대회에서 자기가 오랫동안 구상해온 발전사상을 제출하였다. 토지를 집중하고 합작사를 룡두로 자원을 종합정돈하며 촌민들은 토지를 가지고 주식에 가입하는 형식을 취하자고 하였다. 이것은 결국 소강촌의 밥가마를 깨는 형국이 되는 것이였다. 어느 때는 '목이 떨어질' 각오를 하며 나눈 토지를 어쩌면 또다시 양도를 하다니?! 대대로 이 땅을 부치며 먹고 살아온 농민들은 그 ‘리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당년의 호도거리능수 엄준창도 있었다. “과거에 밭을 나눈 것이 개혁이라면 오늘날 토지를 합리하게 양도하는 것도 개혁입니다.” 심호는 엄씨댁으로 분주히 나들며 토지양도 우대정책과 눈앞의 리익에 대해 입이 다슬도록 해석하였다. 엄씨는 드디여 설득되여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가 이렇게 애쓴 덕에 2년사이에 소강촌에서는 600무의 토지를 양도받아 규모화 량곡, 포도 종식업을 발전시켰으며 양송이산업과 첨국양식기지 등 일련의 현대농업을 발전시켰다. 적당한 규모생산은 파죽지세로 일떠났다. 엄준창의 아들 엄덕우는 소강촌의 현대농업생산의 선줄군이다. 심호 서기의 도움으로 그는 100여무의 밭을 양도받고 포도재배를 시작하였는데 한 무에서 식량생산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그들 부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잡고 “현대농업이야말로 소강사람들을 살려내는 구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어느덧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소강사람들은 부유하게 잘살고 싶은 갈망과 개혁을 심화할데 대한 기대를 안고 또다시 심호 서기를 남겨두기 위해 붉은 손도장을 찍고 찍었다. “손도장이라고 쉽사리 찍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백성의 인정을 받아야만 손도장도 찍어주는 것입니다.” ‘호도거리’선줄군 엄금창도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2009년 11월 심호 서기는 끝내 이 땅 우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소강사람들은 세번째로 심호 서기가 이 곳에서 영원히 잠들기를 바라며 손도장들을 무겁게 찍었다. 2016년 그때로부터 소강촌에서는 집체자산주식합작제개혁과 “세가지변화”개혁시점사업을 전개하였다. 2018년 2월 9일, 촌민들은 처음으로 집체경제수익주권분홍을 탔다. “네차례에 거쳐 찍은 붉은손도장은 소강촌의 발전을 견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공산당은 영원히 개혁의 견정한 지도자이며 추동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강촌의 당위 제1서기로 사업하고 있는 리금주는 감개무량하게 터놓았다. ///편역: 길림신문 김청수 편역
224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피서명산 = 장백산, 어서 놀러 오이소 댓글:  조회:3623  추천:0  2018-05-03
장백산 ‘2018 중국 100대 피서명산’ 제1위 (ZOGLO) 2018년5월3일  관리위원회 혜민조치 시행 4월 22일, 계강방글로벌경쟁력연구회, 향항아태환경보호협회, 향항세계문화지리연구원에서 련합으로 연구, 평가한 ‘2018 중국 100대 피서명산 순위’ 및 ‘계강방순위’2018 중외 피서 관광목적지 순위가 확정된 가운데 장백산이 ‘중국 100대 피서 명산 순위’에 1위로 이름을 올렸다. ‘계강방순위’ 2018 중외 피서관광목적지 순위는 세계피서 명도시 순위, 중국피서 명도시 순위, 중국피서 명산 순위와 중국피서레저 100개 우수현 순위 등 4개 종목이 포함된다.   100대 피서명산 관광 목적지 평가에서 장백산은 ‘백두상수(白头相守)’의 미명으로 1위에 올랐으며 산서성의 오대산, 안휘성의 황산이 뒤를 이었다.   국가 5A급 풍경구인 장백산은 천년 적설과 만년송, 천하 제일봉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신산(神山), 성수(圣水), 기림(奇林), 선과(仙果)’로 칭송받고 있다. 장백산은 천지, 장백폭포, 지하삼림, 화산온천 등 명소와 대자연이 부여한 풍부하고 독특한 자연자원에 의거해 생태관광, 풍광관광, 변경관광과 민속관광을 두루 할 수 있는 명승지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장백산관리위원회는 리극강 총리가 ‘정부사업보고’ 에서 제기한 중점 국유 풍경구 입장료 하향 조절 요구에 따라 ‘다섯가지 혜민 조치’를 시행했다. 5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북쪽 풍경구와 서쪽 풍경구의 개방시간을 연장하고 입장권을 한장 사면 3일간 회수 제한 없이 북쪽 풍경구와 서쪽 풍경구를 관광할 수 있으며 65세 이상 로인, 장애인, 현역군인, 인민경찰, 기자, 관광가이드 등 인원들은 무료로 록색통로를 통해 입장할 수 있고 서쪽, 북쪽 풍경구에서 해돋이를 보고 서쪽 풍경구에서 별하늘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신고를 받는 즉시 처리하고 ‘리유 없이’ 배상하는 등 혜민조치는 해내외 손님들이 관광업 발전의 성과를 누리게 하고 있다.    ///길림일보/연변일보 
2239    [록색문학평화주의者]-"하늘 길 여는 문제",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604  추천:0  2018-05-03
남북한 직항로는 왜 바다로 돌아갈까 (ZOGLO) 2018년5월2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영공 개방과 국제항로 신설을 요청한 것으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올해 3월 ‘날飛’에서도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해 전해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북한이 예상 외로 빠르게 자국 영토와 영공을 개방하고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북한이 ICAO에 영공 개방과 국제항로 신설을 요청했다는 동아일보 2018년 5월 2일자 단독 보도. ▷관련기사 : [이원주의 날飛] 北 하늘길도 다시 열릴 수 있을까 ▷관련기사 : [단독]北 “해외항로 늘리고 영공 열겠다” 하늘길 제재풀기 나서  북한 영공이 열리고 남북 항공기가 교류할 수 있어도 남북을 잇는 항로는 한동안 여전히 ‘서해 직항로’, ‘동해 직항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2월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 협의를 위해 남한을 찾았던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습니다. 그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 가서 전지훈련을 했던 남한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은 ‘동해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갔죠. 올림픽 기간 모란봉 예술단의 남한 공연에 대한 답방으로 북한 공연을 떠났던 남한 공연단 역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에 갔고요.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단일팀 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남했던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태우고 서해직항로를 건너 인천공항에 내린 북한 김정은 전용기. 동아일보 DB 서울 인천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 직선으로 이으면 200km가 살짝 넘는 거리가 나옵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고속철도에 손님을 크게 빼앗긴 김포-대구 직선거리(약 250km)보다 가깝죠. 이 가까운 거리를 두고 남북한을 오가는 비행기는 서해로 동해로 일부러 빙 둘러서 오갔습니다. 40분이면 될 비행 시간은 1시간 반 정도로 두 배나 더 걸립니다. 하늘에는 장애물도 없는데, 왜 남북 직항로는 ‘직항로 아닌 직항로’가 되었을까요.  남한과 북한을 항공기로 오갈 때 쓰는 직항로. 각각 서해와 동해바다로 빠져나갔다가 북한으로 올라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휴전선이 하늘 끝까지 뻗어있기 때문입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 상공은 ‘비행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있어서 어떤 민간항공기도 이 휴전선 상공을 비행하지 못합니다. ‘P-518 한국전술지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비행제한구역에는 군 작전에 꼭 필요한 항공기나 응급구조, 산불진화 같은 특수목적 항공기만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허가를 받아 이 공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휴전선 상공에 배치된 비행금지구역. 군 작전이나 화재·긴급구조 등 특수임무를 제외하고는 어떤 항공기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자료 : 주한미군 육군 제8군 따라서 휴전선을 넘어 비행기가 오가려면 먼저 이 비행제한구역이 해제되거나, 아니면 민간 항공기가 상시 오갈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허가는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마음대로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P-518 비행제한구역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 유엔군 사령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이 공간에 항공기가 드나들기 위해서는 UN과 미국(주한미군), 한국이 한꺼번에 협의를 해야 합니다.  ※P-518 한국전술지대를 비행할 때 지켜야 할 비행 절차 문건에 표시된 이 지역의 관리 주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미군이 공동 관할하고 있습니다. 자료 : 주한미군 육군 제8군 그렇다고 휴전선 상공을 오가는 직항로를 아예 생각조차 않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예전부터 육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직항로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양양에서 청진-나진을 잇는 직항로를 개설하는 구상입니다.  ※동해·서해 직항로가 아닌 육상 상공에 직항로를 신설할 경우의 항로 구상안. 서울(안양VOR)과 평양(순안공항), 양양(강원VOR)과 북한의 청진·나진을 잇는 항로가 유력합니다. 이 구상안은 남한과 북한의 주요 방문지역, 그러니까 평양이나 백두산, 청진·나진 등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항로인 동시에, 남한 국적기가 미주나 유럽으로 향할 때 최단거리로 주파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역할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미주로 가려면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으로 건너간 뒤 태평양 상공으로 빠져나가는 항로를, 유럽으로 가려면 반대로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으로 건너간 뒤 러시아 상공으로 진입하는 항로를 쓰고 있습니다. 남북 직항로가 신설되면 유럽과 미국 동부로 가는 비행기의 최단 경로(노란색)와 현재 항공로(흰색). 직항로가 개설되면 양대륙으로 가는 장거리 항로가 상당히 단축될 전망입니다. 남북 직항로가 신설되면 유럽과 미국 동부로 가는 비행기의 최단 경로(노란색)와 현재 항공로(흰색). 직항로가 개설되면 양대륙으로 가는 장거리 항로가 상당히 단축될 전망입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통일이 될 경우에 대비해 통일 이후 북한의 항로를 크게 늘리는 방안도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가로 방향으로만 연결된 현재의 북한 항로를 9개 간선으로 크게 늘려 ‘통일한국’ 국내선뿐만 아니라 유럽-일본이나 미주-중국 중부·동남아 등지를 잇는 항공기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으로 읽힙니다. 통일이 된 이후 북한 지역(現 평양 비행정보구역)에서 운용될 항로 구상안. 남북 방향 항로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자료 : 통일된 남북한의 효율적인 항공교통흐름관리에 관한 연구(국토교통부) 정상회담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여러 가지 숙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남북 직항로도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한아름입니다. 하지만 남북이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면 비행기를 타고 북한 하늘을 통과할 수 있는 날이 정말 머지않은 시기에 올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비행기를 타고 북한 하늘을 지나가면서 ‘하늘에서 본 백두산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동아일보
2238    [이런저런] - "바위벼랑 구멍가게" 댓글:  조회:3384  추천:0  2018-05-03
후난 핑장에 등장한 ‘암벽 편의점’ [ 2018년 05월 02일 ]     최근 후난(湖南, 호남)성 핑장(平江)현 스뉴자이(石牛寨, 석우채)의 ‘암벽 편의점’이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편의점은 스뉴자이 ‘비아 페라타’ 암벽등반 챌린저대회가 열리는 암벽 위에 설치됐다. 지상으로부터의 높이는 100m에 달하며 암벽등반을 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간식과 음료수 등을 판매한다. /중신넷/인민망                                         베이징(北京)~장자커우(張家口) 철도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철도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라는 100여년전의 주장을 깨뜨렸다.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도는 세계 스마트 철도의 물꼬를 틔웠다.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특집편 ‘중국 고속철의 새 모델 수립’ 캡처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스마트 열차 시속 350km 23일 오후, 중국철도총공사(中國鐵路總公司)가 발표한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 스마트 열차의 설계방안은 스마트 열차의 외관, 이미지, 기능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스마트 열차는 푸싱호(復興號) 열차의 스마트 업그레이드판이자 중국이 최초로 독자 연구개발한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을 채택해 세계 최초로 시속 350km의 자율주행을 실현했다.   쌍둥이 열차 ‘룽펑청샹(龍鳳呈祥, 용봉정상)’과 ‘루이쉐잉춘(瑞雪迎春, 서설영춘)’ ‘푸싱호’의 스마트형인 베이징~장자커우 고속철은 ‘푸싱호’ CR400BF형을 토대로 현대화된 최신 과학기술 운용을 통해 스마트화, 안전감과 쾌적도, 녹색 친환경, 종합 에너지 절약 등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과 돌파를 실현했다.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은 ‘룽펑청샹’과 ‘루이쉐잉춘’이라는 이름의 쌍둥이다. 열차 앞 부분은 매와 돛새치(sailfish)를 본 떠 뛰어난 공기 역학 성능과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 ‘룽펑청샹’ 베이징~장자커우 스마트 고속철 ‘루이쉐잉춘’   =======================     타지역 사람들이 특히 몰리는 곳은 단동 신구 지역. 조선 황금평, 위화도와 맞붙은 이곳에는 아직 미개통된 신압록강 대교가 있다. 2014년 7월 개통 예정이였던 신압록강 대교는 중조관계 악화를 개통이 미뤄져왔다. 하지만 조선반도 정세가 완화하면서 개통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향후 대교가 개통되면 물류업체들이 속속 단동신구로 옮겨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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