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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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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7    [동네방네] - 35년만에 영화관 문 활짝... 댓글:  조회:5108  추천:0  2018-04-22
35년만에 영화 개봉 사우디의 '첫 불금'..15분만에 매진 2018.04.22.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여성 모델 운전하는 코카콜라 광고도 상영 20일 밤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사우디 관객[사우디 외신 공보센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35년 만에 상업 영화관이 허용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화팬이 주말인 20일(현지시간) 금요일 밤 처음으로 최신 개봉작을 즐겼다고 현지 언론들이 2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8일 사우디 리야드에 처음 문을 연 영화관은 20일 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역사적인 첫 상영작 '블랙팬서'를 보려는 사우디 관객으로 가득 찼다. 사우디 외신 공보센터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20일 0시부터 온라인으로 판매된 당일 오후 8시30분 프로그램 620석이 15분 만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18일 사우디 왕실, 관료, 외교단 등을 초청한 'VIP 시사회'가 열렸고 일반인 상영은 이날 시작됐다. 영화 상영 전 영화의 역사를 요약한 홍보 영상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미국 방송 인터뷰, 여성이 운전하는 모델이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가 상영됐다. 아와드 알아와드 사우디 문화공보부 장관은 첫 일반 상영에 대해 "예상 이상으로 반응이 엄청나다"면서 "얼마나 우리 국민이 사우디 안에서 세계적 명작을 보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올해 6월부터 여성 운전을 허용한다. 사우디는 1979년 이란이 이슬람혁명으로 신정일치의 강경 보수 이슬람국가가 된 영향을 받아 1980년대 초반 영화관을 모두 금지했다. 정작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이란에선 영화 제작과 영화관이 매우 활발하지만 사우디 국민은 30년 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국을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변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상업 영화관을 허용했고, 미국회사 AMC가 리야드 북부 신시가지인 압둘라국왕경제구역(KAFD)에 첫 영화관을 열었다.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영화관 350곳을 열 계획이다. 미국 AMC와 함께 아랍에미리트(UAE) 영화관 사업자 VOX가 영업허가를 받았다. 영화관에 들어가는 사우디 관객[AP=연합뉴스자료사진]
219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수달 보호협조,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564  추천:0  2018-04-22
검색하기 사회 '멸종 위기' 수달 2마리 야생적응 훈련 뒤 자연 품으로 /권태훈 기자  2018.04.09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민물고기연구소는 9일 오후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인 수달 수컷 2마리를 자연으로 방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수달 2마리는 지난해 8월과 10월에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구조된 1년 미만의 어린 개체로, 당시 탈진 상태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발견돼 전남 구례군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로 인계됐습니다. 종복원기술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야생동물의료센터 훈련장에서 이들 2마리를 상대로 미꾸라지와 소형 어류 등 살아있는 먹이로 야생적응 훈련을 했습니다. 족제비과 포유류인 수달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동식물 목록인 적색목록에 준위협종(NT)로 분류돼 있습니다. 준위협종이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큰 종을 뜻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수달 방사지 주변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해 어린 수달이 자연에 적응하는 모습을 계속 관찰할 계획입니다. 김승희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남부사무소장은 "이번에 방사한 수달 2마리가 자연에 적응하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연합뉴스 ///SBS
219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황새의 방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680  추천:0  2018-04-22
4년 전, 충남 예산에 방사한 황새들이 자유롭게 북한을 오가고 있습니다. 평양을 거쳐 중국 단둥까지 다녀온 황새도 있을 만큼 방사 4년 만에 텃새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용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논에 물을 대 만든 습지에 황새가 내려앉았습니다. 얕은 물 속을 걸어 다니며 긴 부리로 먹이를 잡아먹습니다. 한 달 전쯤, 근처 둥지에서는 새끼 황새 4마리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렇게 야생에서 태어난 황새 한 마리가 7월 말쯤 황해도 연안을 거쳐 동해 원산지역에서 한 달간 머물다가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황새이동 경로는 몸에 부착한 발신기의 위치신호를 통신사 기지국의 정보를 통해 확인합니다. 이 황새는 지난달에도 개성과 옹진을 다녀왔습니다. 이 황새와 같이 태어난 수컷은 지난해 9월 초 평양 하늘을 날아 좀 더 먼 중국 단둥까지 이동했습니다. [하동수/예산황새공원 연구원 : 황새들이 많이 가는 지역같은 경우 서해에 위치해있고 간척지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2015년 야생 방사를 시작한 지 4년째, 야생에서 태어난 11마리를 포함해 모두 25마리의 황새가 이곳 예산을 중심으로 호남과 경기지역에 걸쳐 텃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을 오가는 황새는 7마리, 대부분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들녘의 먹이 자원 등 서식환경이 좋을 경우 남한에서 올라간 황새가 터를 잡고 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상취재 : 김민철)     ///SBS /이용식 기자   (포항=뉴스1) 최창호 기자 = 여름 새인 물까마귀 한마리가 22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계곡에서 먹잇감을 부지런히 물어나르고 있다.2018.4.22/뉴스1  
219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생태조사연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350  추천:0  2018-04-22
산에서만 사는 제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오소리가 바닷가에서 발견됐습니다.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박재현 기자입니다. 제주항 2부두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제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알려진 오소리가 바닷가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오소리는 테트라포드 사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신고자 : 고양이인가 하고 봤는데 오소리였고, 어떻게 하지 하다 전화했죠. 여기에 왜 있을까 바다에. 산에 사는데.] 2살 가량으로 추정되는 어린 암컷 오소리는 낚시객들의 신고로 구조됐습니다. 단체로 산속에서 굴을 파고 생활하는 오소리는 민물에서도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데 바닷가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성배/목격자: 오소리 있다고 하던데 잘 몰라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얘기했지. 진짜냐고 해서 내려가 보니 오소리가 있잖아요. 산에 있어야 할 게 바다에 나오니까.] 발견 장소는 오소리가 서식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라봉에서 4km가량 떨어져 있지만 정확한 유입경로는 알 수 없습니다. [민동원/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 사육사 : 산이나 계곡에서 사는 오소리가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거 자체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아마 먹이를 찾아 이동하다가 거기까지 간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는 오소리 개체 수조차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라 오소리 생태 등 관련 연구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 SBS 뉴스
219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반달곰관리,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101  추천:0  2018-04-22
지리산 반달곰 가족에게 올 들어서 역대 가장 많은 11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식구가 많이 늘어나서 서식지를 넓히기 위한 준비도 시작됐습니다. 이용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안전 장구를 갖춘 연구원들이 반달곰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산비탈을 올라갑니다. 해발 1천m 고지의 동면 굴 밖으로 새끼 곰 1마리가 빼꼼히 얼굴을 내밉니다. 어미 곰은 11년 전 러시아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처음 방사한 개체입니다. [김정진/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곰복원팀장 : 12월 말에서 1월 초쯤 출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리산 야생에서 어미 곰 6마리가 출산한 새끼는 8마리, 자연 적응장에서 태어난 3마리를 포함하면 올 들어 11마리의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지리산 반달곰 수는 56마리로 올 9월쯤 새끼 곰 3마리가 추가 방사되면 59마리가 됩니다. 해마다 반달가슴곰의 새끼가 태어나는 것은 그만큼 이곳 지리산이 반달곰이 살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갈수록 서식지가 좁아진다는 점입니다. 반달곰 1마리당 서식 면적은 40㎢인데 지리산에 살 수 있는 반달곰 적정 개체 수는 78마리입니다. [문광선/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곰복원센터장 : 먹이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면 더 넓은 면적에 서식지를 필요로 할 걸로 보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오는 9월까지 지리산 바깥 백두대간으로 반달곰 서식환경 조사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SBS 뉴스
219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노루 서식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492  추천:0  2018-04-22
제주도에서는 노루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법으로 덫을 놓고 있고 또 들개들이 공격을 해서 노루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JIBS 박재현 기자입니다. 나뭇가지에 뿔이 엉킨 노루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입니다. 구조대가 다가가 보니 뿔이 올무에 감겨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숲 속에 누군가 몰래 설치한 겁니다. [고영민/신고자 : (올무를) 잘라주려고 했는데 철사다 보니까, 우리 장비로는 조치가 안 돼서 신고하게 된 겁니다.] 올해부터 노루 포획이 금지됐지만 최근 고사리 채취와 성묘 철이 다가오면서 불법 덫에 노루가 포획됐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제주자치도 조사 결과 한라산을 제외한 12개 조사대상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노루 서식 적정 개체 수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은미/제주자연생태공원 박사 : 요즘은 중산간 일대에 들개가 많이 관찰되더라고요. 그리고 로드킬 같은 피해 사례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중 산간 개발로 노루 서식지가 급속히 파괴되고 들개 공격까지 이어지면서 한라산의 명물 노루가 설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SBS 뉴스
21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들아, 숲은 너희들 활무대... 댓글:  조회:4706  추천:0  2018-04-22
백두대간에 만들어진 한국 내 최대 '호랑이 숲'..내달 개방 조재근 기자  2018.04.22.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멸종위기에 처한 백두산 호랑이를 보존하기 위해 백두대간에 호랑이 숲이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초부터 호랑이 2마리가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데 다음 달에는 일반 관람객들도 볼 수 있습니다. 조재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경북 봉화군 백두대간 수목원에 만들어진 호랑이 숲입니다. 산과 인접한 곳에 높게 울타리를 쳐 놨는데 면적이 4만 8천㎡로 국내 최대의 호랑이 방사장입니다. 이곳에서 살아갈 호랑이는 13살 암컷인 '한청'과 7살 수컷인 '우리' 두 마리, 모두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자란 뒤 지난해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서로 천천히 얼굴을 익혔고 올 초부터는 호랑이 숲에서 적응훈련을 시작해 근육도 늘고 힘도 좋아졌습니다. [전재경/국립백두대간수목원 수의사 : 처음 왔을 때는 100m만 걸어도 많이 헉헉거리고 힘들어했습니다. 지금은 450m 정도 걷고 뛰어다녀도 힘들어하지 않고요. 식사량도 늘고 근육량도 늘고 아이들 활동량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백두대간 수목원은 다음 달 3일 공식 개원과 함께 숲속을 거니는 호랑이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할 예정입니다. 관람객들은 전망대나 울타리 앞에서 자유롭게 호랑이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들은 밤에는 사육 동에서 지내고 낮에만 숲으로 나오는데 숲 주변에는 전기 울타리와 높이 5~6m의 철조망이 설치돼 있습니다. 백두대간 수목원은 앞으로 호랑이 일곱 마리 정도를 더 데려와 호랑이 생태 연구를 통해 종 보존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영상취재 : 허 춘)  /조재근 기자
2190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다... 댓글:  조회:4601  추천:0  2018-04-21
뉴스 2015년 11월 01일 19시 29분 KST  '베를린장벽 붕괴' 촉발한                    샤보브스키 별세하다                 연합뉴스   1989년 11월 9일 기자회견에서의 '말실수' 한 마디로 역사적인 베를린장벽 붕괴를 촉발한 당시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브스키가 1일(현지시간)[2015년 11월] 별세했다. 독일 dpa통신 등은 샤보브스키가 베를린장벽 붕괴 26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베를린의 요양원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고인의 부인 이리나 샤보브스키를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사회주의통일당 선전 담당 비서였던 샤보브스키는 1989년 11월 9일 저녁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출국비자가 누구에게나 발급될 것이라는 내각의 결정을 발표했다.     회견 도중 이탈리아 안사통신 기자가 "언제부터"냐고 물었고, 답변이 준비돼 있지 않던 샤보브스키는 자료를 뒤적이며 머뭇거리다가 즉흥적으로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답했다. 사실 이 같은 결정은 이튿날부터 발효될 예정이었고, 출국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에 절차에 따라 신청해야 하는 것이었으나 이를 오해한 기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긴급뉴스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를 본 수천 명의 동베를린 사람들은 서베를린으로 가는 검문소로 향했고,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며 우왕좌왕하던 동독 경비병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의 거센 요구에 결국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샤보브스키의 '실언'이 28년간 독일을 양분했던 베를린장벽의 역사적인 붕괴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동독 정권은 빠르게 무너졌고, 동독과 서독은 이듬해 10월 3일 마침내 통일됐다.   통일 이후 샤보브스키는 과거 베를린장벽을 넘으려는 동독인 다수를 살해하는 데 정치적 역할을 한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1999년 12월부터 10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생전 여러 차례 자신의 도의적인 책임을 시인하고 죄책감을 표명했던 그는 이후 좀처럼 언론 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말년을 베를린의 한 요양원에서 보냈으며, 최근 몇 년간 건강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공감6 댓글1 ▲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선전담당 비서 권터 샤보브스키의 타계를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 BBC   전 세계가 지켜보는 기자회견에서 결정적인 말실수로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귄터 샤보브스키가 타계했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일(현지시각)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선전담당 비서였던 샤보브스키가 독일 베를린의 요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부인 이리나 샤보브스키가 발표했다. 기자 출신으로서 동독 정부의 '입' 역할을 하던 샤보브스키는 지난 1989년 11월 9일 사회주의통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출국 비자가 누구에게나 발급될 것이라는 내각의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회견 도중 이탈리아  동독 특파원이 "언제부터 발급되느냐"라고 물었고, 갑자기 답변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한 샤보브스키는 자료를 뒤적이다가 즉흥적으로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답했다. 그러나 전 세계 언론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라고 긴급 속보를 타전했다. 이를 본 수천 명의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한꺼번에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우왕좌왕하던 동독 경비병들은 할 수 없이 검문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원래 출국비자 발급은 이튿날부터 발효될 예정이었고, 이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에 신청하고 승인을 받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샤보브스키의 의도치 않은 말실수가 독일 역사를 뒤바꾼 것이다.  이후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동독 정권은 빠르게 무너졌고, 결국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면서 28년간 국가를 반으로 가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언론들은 샤보브스키의 말실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수"라고 부르며 "유혈 충돌 없이 독일을 통일시켰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샤보브스키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통일 이후 샤보브스키는 과거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동독인 다수를 살해한 정치 혐의로 1999년 12월부터 10개월간 투옥됐다가 사면받았고, 자신의 실수에 대한 도의적 책임감 때문에 좀처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오마이뉴스 =======================   베를린 장벽 (사진=블룸버그뉴스)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베를린 장벽 붕괴의 주역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3년 전 오늘(11월1일) 별세했다.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에서 실수한 말 한마디로 동독과 서독이 재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28년 전인 1989년 11월9일, 사회주의통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유럽 민주화 혁명 중 ‘외국 여행 자유화‘가 결의되면서 사회주의통일당 선전담당 비서였던 샤보브스키는 관련 법령 발표를 위해 단상 앞에 나섰다. 관련 회의 중 자리를 뜬 탓에 서기장에 건네받은 문서를 파악하지 못한 채 발표를 시작했다. 샤보브스키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모든 국경 통과 지점에서 출국이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11월10일부터 여행 허가에 관한 출국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잘못 발표한 것이다. 이 때 한 기자가 “언제부터 발효하는가?”라고 물었고 세부 사항을 몰랐던 샤보브스키는 “즉시(immediately, without delay)”라고 즉흥적으로 답했다.  당초 여행 규제 완화는 국경 경비를 강화한 후 이튿날부터 발효될 예정이었다. 이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에 신청하고 승인을 받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샤보브스키의 즉흥 답변에 기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뉴스를 접한 수천 명의 동베를린 시민들은 동서를 가르는 경계에 설치된 검문소로 향했다. 시민들의 압력으로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고 1961년 세워져 28년 동안 분단됐던 베를린 장벽이 결국 무너졌다. 그리고 이듬해 10월3일, 동독과 서독은 재통일됐다.   샤보브스키는 독일 재통일의 주역이지만 과거 베를린장벽을 넘으려는 동독인 다수를 총격·살해한 전적이 있었다. 이 혐의로 1997년 투옥돼 옥살이를 하다 2000년 사면됐다. 사면된 이후 샤보브스키는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2014년, 독일 매체를 통해 샤보브스키의 근황이 공개됐다. 독일 매체 n-tv는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아 샤보브스키를 조명한 특집기사에서 그가 베를린 빌머스도르프 지역에 러시아 언론인 출신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샤보브스키는 “장벽이 열려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이 무시돼왔는지 깨달았다”며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고 한다.             Günter Schabowski (귄터 샤보브스키)                   1989. 11. 9. 저녁 7시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여행완화에 대한 동독정부 결정을 발표한다.   "오늘 정부는 모든 동독 주민이 어느 국경검문소를 통해서든 출국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한 기자(ANSA 통신 리카르도 에르만 또는 NBC 톰 브러커)가 언제부터 여행완화가 시행되는지 질문하자,   귄터는 "sofort, unverzüglich (지금 당장)"이라고 답변한다.   휴가를 다녀온 그는 정확한 시행시기를 모르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며 즉흥적으로 답변한 것이었다.   원래는 다음날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기자들은 서독과 서베를린으로의 여행도 자유로운지 물었고, 귄터는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발표 내용 자체는 기존의 여행 제한을 다소 완화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기자들도 특별히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ANSA의 리카르도 에르만 특파원이 이탈리아 본사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긴급 뉴스로 전달하였고,     로이터, AP, AFP, 교도 통신 등에 의해 '베를린 장벽 붕괴'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서독 방송 ARD, ZDF 역시 8시 뉴스로 '국경 개방'을 보도하였고,   이를 시청한 동독 주민들도 국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베를린 국경검문소 군인들도 처음에는 시간을 끌려고 하였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밤 11:30 동독 장교 해랄트 얘거(Harald Jäger)는 독자적으로 검문소를 개방했다.                     동독 정부의 여행 완화 조치가 국경 개방으로 오해, 확대 재생산되어 몇 시간만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런 즉흥적인 사태가 없었더라도 동독은 무너지고 흡수통일은 이루어졌겠지만,  극적인 에피소드가 개입되어 더 오래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국경 개방 후 슈타지(Stasi, 동독 비밀경찰)는 샤보브스키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동지, 국경이 열렸소. 그런데 보고할 것이 없소."                   이후 샤보브스키는 동독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통일 독일에서 잠깐 옥살이를 한 후, 지방 언론사를 운영한다.   그는 기독민주당을 지지해서 전 동료들로부터 변절자라고 비판받게 된다.                 [출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실수, 귄터 샤보브스키(Günter Schabowski)|작성자 김화철        
2189    장벽 무너뜨리기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쉽게... 댓글:  조회:4211  추천:0  2018-04-21
베를린 장벽은 동서 냉전의 산물이자 분단의 상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분단되자 동독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대거 탈출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탈출자는 280만명에 이르렀다. 동독에는 막대한 고급 경제 인력의 손실이자 정권의 위기를 의미했다. 동독정권은 더 이상의 탈출 물결을 막고 동독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을 세운 것이다. 호네커는 1992년 재판에서 "장벽을 건설하지 않았더라면 동독은 1961년에 이미 무너졌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1989년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출과 월요데모로 동독 정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됐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사건은 독일통일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38년 동안 동독 정권과 체제의 보호막이던 '철의 장막'이 어떻게 무너지게 됐을까. 이 역사적 순간은 동독 당국 제2인자의 실수로 촉발됐다. 1980년대 후반 동독의 경제상황은 계속 악화됐고 동독 주민들의 여행조건 완화에 대한 압력은 거세지고 있었다. 1989년 5월부터 확산된 월요데모에서 '여행의 자유'를 계속 요구하고 탈출자가 늘어나자 동독정부는 여행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새 여행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재정문제였다. 동독 여행자들에게 제공해줘야 하는 외화가 충분히 없었던 것이다. 동독 지도부는 고민 끝에 1989년 10월 말 서독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독재 독점권력 포기, 자유선거 실시 등 정치개혁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외환 부족 때문에 여행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시민들의 '여행자유화' 요구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오후 7시7분 전 기자회견에서 샤보브스키 당 대변인이 사고를 쳤다. 그는 새 여행법 초안을 설명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제3국을 통하지 않고 바로 서독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 허가가 즉시 내려진다"라고 덧붙였다. 이때 이탈리아 ANSA통신사 기자가 "이 법률이 언제부터 발효되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브리핑 자료를 들춰보며 "내가 알기로는 즉각, 지체없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는 당 서기장 크렌츠로부터 회견 직전에 여행법 개정안을 건네받아서 대충 읽어보고 나간 상태라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사건을 더 키웠다. "서독만 얘기했는데 서베를린도 해당되는가?" 그는 "그렇다. 동독에서 서독 그리고 서베를린으로 가는 모든 국경 통과소가 다 해당된다"고 답변했다. 기자회견은 동독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되고 곧바로 통신사들과 서독 방송사들은 톱뉴스로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는 헤드라인 뉴스를 내보냈다. 이 소식을 접한 동독주민들이 바로 국경통과소로 몰려갔다.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한 국경수비대원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12시쯤 수많은 군중의 힘에 못이겨 동서베를린의 모든 국경통과소가 개방됐고 동·서독 주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의 도가니에 빠졌다. 다음날 사태를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독지도부는 전면적인 여행자유화를 선언했다. 동.서독 경계선의 모든 국경통과소가 완전히 개방됐으며 동독 시민들은 장벽을 망치와 정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통일 후 독일 제2방송인 ZDF는 샤보브스키의 발언을 '독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수'로 표현했다. 베를린 장벽의 개방은 그의 말실수로 촉발됐지만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과 거센 저항으로부터 시작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권의 보호막이던 장벽이 제거되자 동독정권의 종말도 시간문제였다. 이와 함께 독일 분단의 종말도 시작되고 있었다. 동·서독 국민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게 되자 독일은 사실상 통일된 것과 다름없었다.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 =========================덤으로 더...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뒤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콜 서독 수상, 브란트 전 수상을 비롯한 많은 독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生前엔 통일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통일이 언제 이뤄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질학자들에게 친숙한 시간 단위로 논의해야 한다는 농담도 등장하였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사건에 대응하기 바쁜 정치인들일수록 역사적 변화를 感知하는 데 무딘 경우가 많다.     *1984년 브란트 전 수상은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아무 실효가 없으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1988년 기민당 출신의 스투트가르트 시장 만프레드 롬멜이 "독일통일은 완전히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해도 정치적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1988년 10월 콜 독일 수상은 모스크바를 방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 한 기자가 언젠가는 고르바초프가 독일에 통일을 제의하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콜은 비꼬는 투로 답하였다: "나는 (영국인 소설가) 웰즈처럼 미래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질문은 판타지의 領域에 속한다."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이 유럽의 서독 대사관으로 들어가 농성중일 때인 1989년 여름 서독 지식인들은 '이젠 공식적으로 동서독 통일의 포기를 선언해야 될 때가 온 것이 아닌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간지 '슈피겔'은 카버 스토리로 왜 정부가 西獨 대사관을 찾는 東獨 사람들을 받아주느냐고 따졌다.     *1989년 8월15일 서독의 콜 수상은 기자들에게 "나와 호네커 동독 당국 서기장은 지금 유지하는 우호 정책을 계속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유럽방문을 앞둔 1989년 10월25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청와대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前 수상을 접견시, 1970년대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교류 시대를 열었던 브란트 전 수상은 “독일의 통일과 구라파의 통합이 매우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이 이뤄진 다음에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라파 통합은 그 과정에서 어떤 차질이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적 추세는 분명합니다. 서구의 통합은 中歐를 흡수해서 확대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독일 통일의 여건도 유리하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꼭 한 나라(One State)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상 독일이 단일국가였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일차적으로 하나의 국가연합(confederation)의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통합은 과거 George Kennan이 半유럽국가(Half-European Countries)로 불렀던 미국과 소련으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이 민주화가 되면, 비록 그것이 서독과 똑같은 정도의 것이 아니고 비슷한 것으로라도 변화된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보다 희망적이 될 것입니다”     브란트가 독일 통일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불과 2주일 뒤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그 1년 뒤 (브란트가 생각하였던 중간단계 없이 바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   역사는 한번 구르면 가속도가 붙게 된다. 유식자층일수록 南北통일을 비관적으로 보는데, "통일이 도둑처럼 올 것이다"... ================= (시우다드후아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5월 3일 (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 주 선랜드파크와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 사이 국경장벽에 손을 대고 양국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2188    "이 벽을 허무시오"... 댓글:  조회:5190  추천:0  2018-04-21
이 벽을 허무시오 Tear Down this Wall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생애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이다. 일리노이 주 탬파코에서 태어난 레이건은 근교의 유레카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졸업 후 레이건은 방송과 영화계에 진출하며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서 유명세를 날렸다. 그가 출연한 영화로는 〈누트 로크니, 올 아메리칸(Knute Rockne, All American)〉과 〈킬러스(The Killers)〉등이 있다. 민주당원이었던 레이건은 1962년에 공화당에 입당하여 5년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1981년에 지미 카터를 누르고 대통령 직에 올랐다. 연설의 배경 및 의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한 목적은 표면상으로는 당시 분열된 도시의 건립 7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존 F. 케네디의 유명한 연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가 세상에 퍼지고 24년이 지난 뒤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사실을 연설 서두에 언급했다. 당시 케네디의 연설은 군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반면, 레이건의 연설에 대한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이 역시 연설 말미에 언급된다. 연설의 특징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3년 전 레이건은 서베를린을 방문. 그리고 소련에 개방정책을 촉구하고 동구권에 협력의 손길을 내밀겠다고 제안한다. 이 벽을 허무시오 콜 총리, 디프겐 시장, 신사 숙녀 여러분! 24년 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하여 이곳 시청에서 베를린과 세계 시민들 앞에 연설을 했습니다. 그 뒤로 다른 대통령 두 분이 차례로 이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여러분의 도시를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미국 대통령들이 베를린을 찾아오는 것은 이곳에서 자유를 외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베를린 방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곳을 찾는 까닭은 우리나라보다 500년 이상 오래된 이 도시의 역사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뤼네발트와 티어가르텐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용기와 결의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파울 링케는 아마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저보다 앞선 여러 대통령처럼 저도 이곳에 오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Ich hab noch einen Koffer in Berlin (제 여행 가방은 여전히 베를린에 있습니다). 오늘 이 연설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에 방송됩니다. 동유럽 시민들도 지금 이 순간을 보고 들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유럽 전역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시민 여러분, 미국인을 대신해 여러분을 반갑게 맞아들이며 인사드리겠습니다. 동베를린에서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여러분, 특별히 인사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앞에 서 계신 분들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여러분을 향해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동포인 서베를린 시민들과 이 굳건하고 변함없는 믿음을 나누고자 말씀드립니다. Es gibt nur ein Berlin (베를린은 오직 하나입니다). 제 뒤에는 벽이 서 있습니다. 이 벽은 이 도시의 자유구역을 둘러싼 장벽이며, 유럽 대륙 전역을 가르는 거대한 장벽의 일부입니다. 발트 해 남쪽에서 시작해 철조망, 콘크리트, 감시탑으로 독일을 깊이 갈라놓는 장벽입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벽이라 할 것은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장한 보초와 검문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행의 자유는 여전히 제한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도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장벽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곳은 다름 아닌 이곳, 베를린입니다. 보도 사진이나 텔레비전 화면이 잔인하게 갈라진 대륙의 상흔을 전 세계로 실어 나르는 곳은 바로 이곳, 베를린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서면 누구나 동포와 떨어져 사는 독일인이 됩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베를린 인이 되어 그 상흔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닫혀 있는 한 독일의 문제는 남겨져 있다." 오늘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 문이 닫혀 있는 한, 장벽의 상처가 방치된 채 서 있는 한, 남겨지는 것은 비단 독일 문제만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자유문제가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 애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베를린에서 저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습니다. 이 장벽의 두터운 그늘 아래에서 승리의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1945년 봄날, 방공호에서 나온 베를린 시민들은 끔찍한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이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미국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고, 1947년에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잘 알려진 대로 마셜 플랜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에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정책은 특정한 국가나 주의에 맞서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아와 가난, 절망과 혼란에 맞서려는 것이다." 몇 달 전 독일 국회의사당에서 마셜 플랜 수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팻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에 처참하게 타버려 재건 중인 건물에 이런 표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세대의 베를린 시민들은 이 도시의 서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러한 표지를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마셜 플랜이 이곳을 도와 자유세계를 공고히 하다." 서양의 자유강대국이라는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폐허에서 일어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의 사실상 모든 국가들이 정치 · 경제면에서 부활하고 있습니다. 유럽공동체가 설립되었습니다. 서독과 이곳 베를린에서 경제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로이터를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은 일찍이 자유의 현실적인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실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드러나고, 번영은 농장과 사업장이 경제적 자유를 누릴 때에야 구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지도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관세를 낮추고 자유무역을 확대하면서 세금을 인하하였습니다. 1950년부터 60년까지만 보아도 서독과 베를린의 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두 배 높아졌습니다. 40년 전에는 잔해더미만 가득했던 서베를린이 이제는 독일 내에서 최고의 산업 도시가 되었습니다. 붐비는 사무 단지, 멋진 주택과 아파트, 자랑스러운 거리, 드넓은 잔디가 깔린 공원이 들어섰습니다. 한때 문화가 전멸할 위기에 처했던 서베를린에 이제는 훌륭한 대학이 두 곳이나 세워졌고,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수많은 극장과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한때 궁핍했던 도시가 이제는 풍요로워졌습니다. 음식과 의류, 자동차는 물론 쿠담 거리의 멋진 상품들이 곳곳에 넘쳐납니다. 파멸 위에, 완전한 폐허 위에 베를린 시민 여러분은 자유를 누리며 이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도시로 끌어 올렸습니다. 소련 정부가 계획한 미래는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련이 놓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Berliner Herz, Berliner Humor, ja, und Berliner Schnauze." (베를린 사람의 마음, 베를린 사람의 유머, 그리고, 그렇습니다, 베를린 사람의 말입니다.) 1950년대에 후르시초프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매장하겠다." 하지만 오늘날 서양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고도의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자유세계가 되었습니다. 반면 ..주의 사회는 기술 퇴보와 보건 수준 후퇴,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식량 부족으로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소련 연합은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4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중대한 결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유가 번영을 이끈다는 사실입니다. 자유가 국가 간의 해묵은 증오를 털어내고 예의와 평화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입니다. 자유가 승자입니다. 그리고 이제 소련 정부도 자유의 중요성을 미약하게나마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개혁과 개방 정책이 시행된다는 소식이 제법 들려오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범들이 석방되었습니다. 외국의 특정 뉴스 방송이 차단되는 일도 더는 없습니다. 일부 기업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소련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변화의 시작일까요? 아니면 서양에 거짓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소련 체제를 바꾸지 않고 강화하기 위해 의도된 전시 행정일까요? 우리는 변화와 개방을 환영합니다. 자유와 안보는 함께 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자유수준이 높아지면 세계 평화는 더욱 굳건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 수준을 극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소련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신호가 하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 앞으로 나오십시오!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문을 여십시오! 이 문을 허물어버리십시오! 저는 이 대륙이 부담해야 할 전쟁의 두려움과 분열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이 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서구권은 소련의 확장을 반드시 저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난공불락의 힘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양 진영은 무기를 반드시 감축해야 합니다. 10년 전부터 소련은 서양 연맹에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국가의 각 수도를 날려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SS-20 중거리탄두 핵미사일 수백 대를 배치한 것입니다. 이에 서유럽연맹은 방어태세를 구축하며 맞서게 되었습니다. 소련이 더 나은 해결방안인 양 진영의 핵무기 폐기 협상에 동의하지 않는 한, 이러한 긴장 상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소련은 이 협상을 적극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서양 연방이 조금 더 강력한 방어 태세를 구축하게 되면서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했던 지난 1982년에 이어진 시위가 그 당시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협상 테이블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서양 연합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저는 우리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협상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재한 이상 소련은 언제든 다시 협상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건재한 이상 우리는 무기 확산을 단순히 저지할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핵무기 전체를 이 지구상에서 폐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 아이슬란드에서는 NATO 장관들이 모여 핵무기 폐기 제안의 진척 상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회담에서는 전략공격무기의 대폭 삭감을 논의하였고, 서양 연합국 역시 재래식 전쟁의 위험 축소와 화학 무기 전면 금지를 강력히 제안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무기 감축을 계속해 나가는 동시에 어떤 수준에서든 소련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저지력은 유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또한 미국은 여러 동맹국과 협력하여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략방위구상은 보복공세의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방어를 위한 방어 전략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유럽과 전 세계의 안전을 높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서 양진영이 서로 불신하는 것은 양방이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상대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에 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차이는 군사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차이는 자유의 유무입니다. 24년 전, 케네디 대통령이 이곳 시청을 찾았을 때 자유는 격리되었고 베를린은 포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무수한 억압 속에서도 베를린은 자유 안에서 안전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힘으로 전 세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가 부활하였습니다. 태평양 도처에서는 자유 시장이 경제 성장이라는 기적을 연이어 낳고 있습니다. 산업 국가에서는 기술 혁명이 추진되면서 컴퓨터와 정보통신 사업이 극적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단 한 나라와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들만이 자유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급격한 경제 성장의 시대에, 정보와 혁신의 시대에 소련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소련은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희망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방은 동구권과 언제든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개방을 도모하고 인류를 갈라놓는 장벽을 허물며, 안전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대의를 위한 출발점으로 서방과 동구권이 만나는 이곳 베를린만한 곳은 없습니다. 베를린의 자유로운 시민 여러분,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 미국은 1971년 4강대국 협상안 엄수와 전면 실행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를린 시 건립 750주년을 맞아, 이 도시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미래의 베를린이 더욱 더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랍니다. 1971년 협상안에 따라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과 서베를린의 유대 강화를 위해 다함께 힘을 모읍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부탁드립니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더욱 가까워져서 이곳 시민들이 세계적인 위대한 도시에서의 삶과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베를린을 동서 유럽 전역에 개방하기 위해 이 도시의 필수 항공 접근성을 확장합시다. 그리하여 승객들이 베를린 행 항공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고 편안하며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서베를린은 중앙유럽 전역의 항공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프랑스, 영국 동맹국과 함께 베를린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려 합니다. UN총회, 세계 인권 총회, 또는 군축 협정 등 기타 논의를 위한 국제 협력의 장으로 베를린만 한 곳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밝히는 최선의 대안은 바로 청소년 교육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동베를린의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 교류와 문화 행사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의 우방 프랑스와 영국 역시 뜻을 같이하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동베를린에도 서베를린 젊은이들의 방문을 지지할 기관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마음 속 깊은 바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포츠는 인류에게 즐거움과 품의를 동시에 선사합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즉 남한은 1988년 올림픽 대회 일부를 북한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역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가 동서 양 지역에서 열릴 수 있습니다. 세계만방에 베를린의 개방성을 알릴 방법으로 이곳, 동서베를린의 향후 올림픽 대회 개최만 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지난 40년 동안 베를린 시민 여러분은 위대한 도시를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동독 통화를 도입하려는 소련의 봉쇄 시도 위협에 맞서면서 위대한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를린은 이 장벽의 존재 자체가 암시하는 여러 시련에 맞서며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이곳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의연함과 불굴의 용기는 틀림없이 무수한 인정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단순한 감상이 아닌 베를린의 전체 풍광과 감정, 삶의 방식 등을 포괄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습니다.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베를린에서 오래 살 수 없었습니다. 베를린에는 이곳에서의 삶이 고단함을 알지만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나 열망을 억제하는 주변 전체주의 국가와 대조적으로 이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도시를 끝없이 건설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확신을 부르짖는 강력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를 향해 '예스'라고, 미래를 향해 '예스'라고, 자유를 향해 '예스'라고 부르짖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저는 한 마디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베를린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사랑, 깊고도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의 뿌리이며, 동과 서를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전체주의 세계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정신세계에 폭력을 가하며, 창조하고 즐기고 숭배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좌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전체주의 세계는 사랑과 숭배의 상징마저 모욕이라고 여깁니다. 수년 전, 동독이 교회를 재건하기 전에 그들은 비종교적인 구조물을 세웠습니다. 바로 알렉산더 광장의 텔레비전 탑입니다. 그 이후로 당국은 이 탑의 가장 큰 결함이라고 여긴 점을 고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탑 꼭대기의 유리 구면에 온갖 페인트와 화학약품을 덧칠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베를린 시 전체를 내려다보며 우뚝 솟은 그 구면에 태양이 내리쬐면 그 빛이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그곳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자체를 억압할 수 없듯이 사랑의 상징도, 숭배의 상징도 억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방금 전 독일의 통합을 구현한 의회 건물 라이히슈타크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장벽 위에 베를린 젊은이가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듯한 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 벽은 무너질 것이다. 믿음은 현실이 된다." 그렇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이 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 벽은 신념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벽은 자유를 견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저는 제 방문에 반대하는 특정 시위에 관한 기사를 읽었고, 그에 관한 질문도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시위자들에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추구한다는 그러한 정부를 구현했을 때, 당신들이 반복하게 될 그 일을 따를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자문해본 적이 있습니까? 감사합니다. 신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187    [그것이 알고싶다] - "베를린 장벽"?... 댓글:  조회:5680  추천:0  2018-04-21
요약 동베를린 및 동독의 기타 지역과 서베를린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설치된 장벽(1961~89).   1949~61년 250만 명에 달하는 동독의 기술자·전문직업인·지식인들이 서독행을 택함으로써 동독의 경제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결과 동독 인민회의의 결정으로 1961년 8월 12일 밤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장벽이 설치되었다. 철조망과 블록으로 이루어진 장벽은 기관총 초소와 지뢰지역이 설치된 5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대체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고압선과 방어진지들이 45㎞에 걸쳐 구축되어 베를린 시를 양분하고 서베를린 주위로도 120㎞의 장벽이 축조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오랜 기간 동안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약 5,000명의 동독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장벽을 가로지르는 데 성공했으나 다른 5,000여 명은 당국에 체포되고 말았으며, 191명의 동독인들이 장벽을 넘다가 발각되어 사살되었다. 1989년 10월 동유럽의 민주화로 동독의 강경보수 지도부가 해체되면서 11월 9일 서독과의 국경선이 개방되었고 장벽의 굳게 잠겨 있던 문도 활짝 열려 자유로운 상호방문이 가능해졌다. 28년간 독일을 동·서로 분단했던 정치장벽의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덤으로 더...     시대 1989년 1983년 아르헨티나가 민주화되고, 폴란드에서 군정이 철수했다. 1989년 폴란드에서 자유노조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소련에서 부분적으로 선거가 시작되었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로 나뉘었다.   1990년 10월 3일 0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에 ‘자유의 종’이 울려 퍼졌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 만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환성을 터뜨렸다. 광장의 국기 게양대에 하나의 깃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통일 독일의 국기인 삼색기였다.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전날 저녁 9시 동독의 샤우슈필하우스에서는 동독 정부의 해체식이 거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연합군의 진주와 함께 분단된 지 45년 만의 일이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전범국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다. 수도 베를린도 네 토막이 나고 말았다. 194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승전국 회담에서 ‘통일 독일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일된 강력한 독일이 또다시 침략해 올 것을 두려워한 이웃나라 프랑스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1949년 5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점령했던 독일의 서쪽에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되었다. 같은 해 10월 소련 치하의 동쪽 지역에는 공산주의 국가 이념을 채택한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닻을 올렸다. 옛 독일의 수도 베를린도 자유 진영의 서베를린과 공산 진영의 동베를린으로 나뉘었다. 분단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양쪽 사이의 접촉이 철저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의 통행도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분단국이었지만 전쟁을 벌였던 남북한의 관계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러나 동·서독 간 생활수준의 격차가 벌어지자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무려 300만 명을 넘어섰다. 동독 정부로서는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민의 낙원’을 자처하던 ..주의 사회의 체면도 체면이었지만 산업 발전의 주춧돌이 될 노동력과 고급 기술인력 유출이 더 큰 문제였다. 결국 동독 측은 1961년 8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탱크와 장갑차를 배치해 주민들의 왕래를 완전히 막았다. 이어 동·서 베를린 사이의 45.1킬로미터에 이르는 경계선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였다. ‘분단과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의 등장이었다. 베를린 장벽 분단 이후 서독은 아데나워 총리의 리더십과 ‘마셜 플랜’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 부흥을 일구었다. 서독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전쟁의 상처를 씻어 내고 빠른 시간 내에 선진국의 반열에 합류했다. 반면 동독은 계획경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사회 변화에 대한 갈망은 갈수록 높아졌다.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동유럽 ..주의의 몰락은 이러한 변화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유럽에 있어 1989년은 그야말로 자유와 변혁의 해였다.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한창이던 소련이 먼저 동유럽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내놓았다. 동독을 비롯한 소련의 위성국가들에 대한 고삐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폴란드에서는 총선거가 실시되어 자유노조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동유럽 일당독재 체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선을 개방했고, 루마니아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했다. 루마니아 ..주의를 상징하는 깃발 중앙이 뜯겨 있다. 1989년의 민주화 혁명 당시 사용된 것으로 부쿠레슈티 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독에서도 연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호네커 ...서기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11월 4일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동독 정부는 서독과의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는 소련이 “동독에 비공산 정권이 수립되어도 용인하겠다.”라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망치를 들고 달려 나와 베를린 장벽을 부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들어선 지 28년 만이었다. 통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불과 326일 만에 초고속으로 이루어졌다. 1990년 3월 동독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서독의 콜 총리가 지원하는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새 정부와 서독은 본격적인 통일 논의에 착수했다. 7월에는 경제 통합이 이루어졌고, 8월에 양국 내무장관이 통일 조약에 서명했으며, 그다음 달 양국 의회가 조약을 승인했다. 그리고 10월 3일 마침내 동독의 다섯 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의 영토로 흡수되었다. 분단 45년 만의 통일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변’은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동서독이 대립을 청산하고 대화와 교류를 위해 애쓴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통일이다. 앞서 1969년 서독 총리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는 힘의 논리로 동독을 흡수하겠다는 통일 정책을 버리고, 소련 및 동구권 공산국가들과 새로운 화해 협력 관계를 맺어 긴장을 완화한다는 새로운 노선을 발표했다. ‘동방 정책’ 아래 서독은 1970년 소련과 무력 불사용 협정을 체결했고, 1972년 동독과 ‘동·서독 기본 조약’에 서명해 평화 공존의 길을 열었다. 서로를 국가로서 승인하고, 무력 행위를 하지 않으며, 상호 연락 대표기관을 파견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때까지 서독은 국제 사회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국가임을 주장해 왔으나 이를 포기하고 동독을 동등한 국가로서, 대화의 파트너로서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완화 정책은 동독 간첩의 서독 총리실 위장취업 사건 같은 안보 이슈가 터진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브란트 총리의 후임인 슈미트 총리뿐 아니라 정권 교체로 집권한 보수 정당 출신 콜 총리의 임기 중에도 꾸준히 유지되었다. 변화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통일을 이룬 자양분은 이런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지나치게 통일을 서두른 대가는 컸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사회와 경제를 무리하게 통합시킨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구 동독 지역의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을 안정시키고 부족한 교통과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독인들은 가난한 동독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 부담을 져야 했다. 터져 나온 불만은 서독인과 동독인의 차별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지역 간의 격차는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낙후된 구 동독 지역의 인구는 통일 전보다 10퍼센트 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의 단절은 동족 간에도 이질감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 ‘2등 국민’으로 전락한 구 동독인들의 심리적 박탈감, 서독인들과의 불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통일 이후 지금까지 독일이 지출한 유무형의 통일 비용은 무려 2조 유로(약 3,000조 원)로 추산된다. 독일의 선구적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후유증은 분단 문제를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218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장벽을 허무는 "동심" 댓글:  조회:3504  추천:0  2018-04-21
미국-멕시코 장벽 너머의 아기 얼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세워진 장벽. 이 높고 고집스러운 장벽 너머로 아기 미소가 보인다. 장벽 너머 미국을 바라보는 아기의 미소를 귀엽다.  프랑스 출신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JR의 작품이다. 사진을 커다란 나무판에 붙여 멕시코쪽 영토에 세워놓았다. 멕시코의 큐레이터 페르도 알론조와 또 다른 길거리 예술가들이 함께 했다.  해외 SNS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장벽 그리고 가름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그 비판의 무기가 동심이다. 사랑스러운 아기 미소가 차별을 비판하는 무기다.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재현 리포터   ===================   핑크 플로이드 어너더 브릭 인 더 월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가사 해석 you, you, yes, you! stand still, Laddie! 너, 너, 그래 너! 똑바로 일어서, 래디! When we grew up and went to school 우리가 자라서 학교에 갔을 때 There were certain teachers 그곳엔 어떤 선생님들이 있었어 Who would hurt the children anyway they could by pouring their derision upon anything we did 아무것도 아닌 것에 조롱을 하면서 어떻게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Exposing every weakness however carefully hidden by the kids 아이들이 꼭꼭 숨긴 모든 약점을 폭로했지 What have we here, Laddie ? 이게 다 뭐니, 래디? Mysterious scribblings ?, A secret code? 비밀스러운 낙서?, 비밀 암호? No poems no less, Poems everybody 시는 많이 읽어야돼, 모두들 시를 읽어 The lad here reckons himself a poet 여기 있는 아이는 자기 자신이 시인이라고 생각해 Money get back, I'm all right Jack, Keep your hands off my stack 돈을 돌려받아, 난 괜찮아 잭. 내 돈에서 손을 떼 New car, caviar, four-star daydream 새로운 차, 캐비어, 최고급의 꿈 Think I'll buy me a football team 난 축구팀을 살거라고 생각해 Absolute rubbish, Laddie, Get on with your work 완전 쓰레기야, 래디, 일이나 열심히 해 Repeat after me, An acre is the area of a rectangle 내 말을 따라해봐, 에이커는 이 직사각형 모양의 면적이야(에이커=땅 평수 단위) Whose lenth is one furlong 높이는 1 펄롱이고 (펄롱=길이 단위) And whose width is one chain 너비는 하나의 사슬이야 But in this town it was well known 하지만 이 동네에서 그건 유명히 알려져있어 When they got home at night 그들이 밤에 집에 돌아왔을 때 Their fat and psychopathic wives 그들의 뚱뚱하고 싸이코같은 아내는 Would thrash them within inches of their lives ! 그들을 인생으로 후려칠거야 ! We don't need no education 우린 교육이 필요없어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린 생각을 통제받을 필요없어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이 교실에서 어두운 자기애는 이제 그만 Teachers leave them kids alone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내버려 두세요 Hey,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 이봐, 선생, 아이들을 내버려 둬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 결국에 넌 그냥 벽에 박힌 또 다른 벽돌일 뿐이야!    
218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 아기야, 무럭무럭 자라거라 댓글:  조회:3268  추천:0  2018-04-20
동북호랑이 인공 사육번식 절정기 [ 2018년 04월 20일 ]     중국 헝다오허쯔(橫道河子) 고양이과 동물 사육번식센터 하얼빈(哈爾濱) 기지에서 인공 사육한 어린 동북호랑이(4월 18일 촬영). 올해 동북호랑이 번식 절정기를 맞이한 동북호랑이 인공 사육번식기지—중국 헝다오허쯔 고양이과 동물 사육번식센터에서 현재까지 누적으로 30여 마리의 아기 호랑이가 태어났다. ///신화사                       
2184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동물교감학교"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4455  추천:0  2018-04-19
"염소가 입학했어요"... 초등학교 동물교감교육 '실험' 윤희일 선임기자  2018.04.18.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경향신문]  ㆍ어린이들 염소 돌보며 인성교육 ㆍ농진청, 4개교서 시범 프로그램 전북 김제 죽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최근 입학한 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염소야 어서와.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음매….” 18일 오전 전북 김제시 죽산면 죽산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55명인 이 학교 교정에 반가운 새 식구가 모습을 보였다. 염소 2마리가 입학한 것이다. 학교 측은 염소들을 위해 ‘염소 입학식’이라는 이색 이벤트를 열었다. 이 학교 어린이들이 염소 친구를 맞이하게 된 것은 농촌진흥청이 추진하고 있는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 덕분이다. 농진청은 ‘염소와 함께하는 학교음매’라는 이름의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고 염소 2마리를 이곳에 보냈다. 동물교감교육은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동물을 돌보며 동물과 교감하도록 함으로써 좋은 인성을 키우는 교육을 말한다. 죽산초의 새 식구가 된 염소는 귀가 처진 보어종이다. 성질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를 뿐 아니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동물교감교육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린이들은 새 친구인 2마리의 염소에게 ‘하루’와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 학교 3·4학년 어린이들은 학교에 파견된 동물교감교육 전문가와 염소 돌보기를 하면서 ‘염소와 감정 나누기’, ‘염소의 행동 알아보기’ 등의 수업을 주 1차례 진행하게 된다. 농진청이 2017년부터 개·토끼와 함께 진행한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인격 형성 등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와 함게하는 학교멍멍’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자아존중감이 15% 향상되고, 공격성이 21.5% 감소했다. ‘토끼와 함께하는 학교깡충’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의 경우 사회성이 13.2% 향상되고 부정적 정서는 14%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농진청은 올해 전국 4개 학교에서 ‘학교음매’, ‘학교멍멍’, ‘학교깡충’ 등의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윤희일 선임기자 
2183    [별의별] - 돼지를 타고 다니다... 댓글:  조회:4494  추천:0  2018-04-19
전생에 말이었을까? 돼지 타고 가는 中 노인 2018.04.19.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TV] 중국 한 시골길에서 돼지 등에 타고 이동하고 있는 노인 모습(유튜브 영상 캡처) 중국은 참 재밌는 나라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중국 한 시골길에서 돼지 등에 타고 이동하고 있는 노인이 화제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사람이 등에 타는 걸 허락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 노인과 돼지의 관계가 어떤 특별한 관계임을 짐작케 한다.   돼지가 전생에 말이었을까? 네티즌들도 “참 충성스런 돼지다”, “적어도 이 돼진 정육점에서 볼 순 없을 거 같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영상=LiveLeak/유튜브 /영상팀 
218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호랑이 통증,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133  추천:0  2018-04-19
[서소문사진관] 세계 최초 줄기세포 치료 시베리아 호랑이 우상조  2018.04.19.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헝가리 세게드 동물원의 시베리아 호랑이 이고르가 18일(현지시간) 비외과적 줄기세포 수술을 받기 위해 혀에 주사바늘을 꽂은 체 수술대 위에 누워있다.[로이터=연합뉴스]   헝가리 남부에 위치한 세게드 동물원의 시베리아 호랑이 이고르가 18일(현지시간) 엉덩이 관절을 치료하기 위해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이고르는 엉덩이 관절 통증으로 수 년간 정상적인 걸음을 걷지 못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동물원 직원들이 이동을 위해 마취된 이고르를 18일(현지시간) 철제 테이블에 뉘여 수술대로 옮기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신화 통신에 따르면 이고르는 비외과적 줄기세포 수술을 받은 세계 최초의 시베리아 호랑이다. 올해 13살의 이고르는 수년 동안 엉덩이 관절 통증을 겪었다. 이에 헝가리 의료진은 18일(현지시간) 이고르에게 사람들의 치료에 사용되어 온 비외과적 줄기세포 치료를 결정했다. 'Lipogems process'로 불리는 이 시술은 비외과적 수술로 재생 줄기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자신의 지방 조직 세포를 이용하여 다친 관절부위를 치료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0년 이탈리아에서 관절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헝가리에서는 수 년 간 환자들의 관절 치료에 이 시술이 사용됐다. 다만 수의학에 적용된 것은 최근 사례이다. 동부 유럽에 한해서 애완견과 말에 이 시술을 적용한 헝가리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동물원 관계자와 수의사 등이 이고르를 수술하기 전에 부상 부위를 살펴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고르에게 수술을 하기 위해 수의사들이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의사들이 이고르의 재생 줄기 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지방 조직 세포를 채취하여 주사기를 통해 엉덩이 관절 부분의 다친 부위에 주입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 줄기세포 수술의 사업 파트너인 조셉 베레즈 관리 이사는 "전 세계 약 3만여 명의 환자와 헝가리의 550명 이상의 환자가 이 치료를 받았다"며 말했다.  또한 그는 "환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호랑이 이고르의 엉덩이 통증의 대부분이 곧 줄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고르의 건강해진 모습을 동물원을 찾는 방문객이 본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마친 의료진은 시베리아 호랑이 이고르가 2~3주 안에 완쾌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상조 기자   올해 13살인 시베리아 호랑이 이고르가 헝가리 세게드 동물원 우리 안에서 창밖의 숲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18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멸종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072  추천:0  2018-04-19
[if] [사이언스 샷] '포켓몬' 거북이 실제 모델, 메리 강 거북 멸종위기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8.04.19.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는 등에 나무를 지고 있는 거북 토대부기가 나온다. 실제 모델은 호주에 사는 '메리 강 거북(Mary river turtle·사진)'. 만화에서처럼 머리와 등에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나있다. /영국 런던 동물학회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는 메리 강 거북 등 100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파충류로 새로 선정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 동물학회는 그동안 개체 수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근연종이 거의 사라져 보존 가치가 높은 동물들을 선정해 발표해왔다. 메리 강 거북은 몸길이 40㎝ 정도로, 호주 퀸즐랜드주의 메리 강에서만 발견된다. 펑크족 같은 헤어스타일은 사실 강에 사는 조류(藻類)가 거북의 몸에 달라붙어 사는 것이다. 외모는 독특하지만 성격이 유순해 예전부터 애완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자연 남획이 늘면서 1970년대부터 개체 수가 급감했다. 이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기 동물로 선정했다. 메리 강 거북은 4000만년 전에 다른 강 거북들과 분리돼 진화했다. 항문이자 생식기인 배설강으로도 호흡을 할 수 있다. 덕분에 물속에서 사흘이나 머물 수 있다. 이번 논문의 저자인 리키 굼스 연구원은 "목록의 파충류들은 공룡시대부터 출현해 지금은 근연종이 거의 남지 않은 유일한 생존자들"이라며 "이들을 잃으면 지구에 그와 같은 존재들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경제
2180    [그것이 알고싶다] -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릴라... 댓글:  조회:5057  추천:0  2018-04-19
올해로 61세..환갑넘은 독일 최장수 고릴라 2018. 04. 16.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파투가 자신의 생일 기념 케이크를 먹고 있다. (사진=AP)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고릴라 파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동물원에서 61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날 동물원 사육사는 파투에게 숫자 61이 적힌 과일 쌀 케이크를 선물했고, 파투는 이를 두손으로 잡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였다. 야무지게 먹는 모습. 암컷인 파투는 1957년에 태어나 현재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 동물원에 있는 ‘트루디’와 함께 최장수 고릴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파투의 정확히 몇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1959년 프랑스 마르세유의 어느 술집에서 한 선원이 새끼였던 파투를 술값 대신 지불했고, 이 바의 주인이 베를린 동물원에 기증할 당시의 나이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동물원 측은 “지난 해 환갑잔치도 무사히 치른 파투는 몸 일부분에 관절염 증상이 있지만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고 전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61번째 생일을 맞은 파투를 향해 축하하면서도 “나도 파투만큼 오래 살 수 있을까?”, “내 환갑잔치는 누가 해주나”등의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다. /안정은 기자 
217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사자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617  추천:0  2018-04-19
우간다 국립공원 사자 11마리는 누가 죽였을까 2018.04.17.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현지 매체 "소 공격할까 우려한 마을 주민 소행인 듯" 우간다 암사자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우간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에서 사자 11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채 발견됐다고 16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이 보도했다. 발견된 사자는 새끼 8마리와 암사자 3마리로 같은 무리 출신이다. 우간다 야생유물관광부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주 국립공원 내 하무쿵구 어촌 마을에서 발견됐다. 당국은 사자들이 마을 주민들이 준 독이 묻은 고기를 먹고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마을 주민들이 사자가 소를 공격할까 우려해 죽인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사자가 우간다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당국이 보호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에프라임 카문투 우간다 야생유물관광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고의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카문투 장관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원이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해 악의적으로 희생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라며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발전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우간다에서 자연관광이 창출하는 경제 효과는 14억달러(약 1조4천942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자는 매년 자연 서식지를 잃고 있으며, 밀렵 등으로 지난 75년 동안 개체 수가 90% 감소했다.
2178    [그것이 알고싶다] - 뻐꾸기는 "뻐꾸기"가 아니다... 댓글:  조회:5050  추천:0  2018-04-18
뻐꾸기 ‘남 다 른 ’ 출산 '  ?              육 아 전 략   !     안녕하세요, 생생 동물 라이브 청취자 여러분! 뻐꾹~ 뻐꾹~ 청아하게 울리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오늘 한낮의 데이트 초대손님입니다. 바로 ‘뻐꾸기’지요. 뻐꾸기들은 남다른 출산과 육아 전략을 가진 새로 유명한데요. 최근 전 지구적으로 출산율 저하, 멸종 동물 증가가 문제가 되고 있지요. 뻐꾸기의 독특한 육아 방식에 혹 해답은 없을지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뻐꾸기 씨, 안녕하세요.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출산 후 알을 품을 둥지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요즘 둥지 지을 곳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만…. 뻐꾸기 : 아이, 참 쑥스럽네요. 동물세계를 아시는 분은 다 아시다시피 저희 뻐꾸기들은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전문용어로는 육아기생, 부화기생이라고 하죠. 흔히들 ‘탁란’이라고 하는데, 들어 보셨나요?  진행자 : 아, 네. 탁란(托卵)이라면 다른 새에게 알을 맡긴다는 얘기인가요? 뻐꾸기 : 그렇습니다. 저희 뻐꾸기들은 때까치, 알락할미새, 흔히 뱁새라고 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되면 그 새들이 알을 키워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국에서는 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를 이용하고 있지요. 알은 내가 낳고, 키워주는 건 전적으로 둥지의 주인인 계모에게 맡기는 식입니다. 진행자 :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기 새끼 키우기도 벅찬 현실인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순순히 알을 받아들여 줍니까?  뻐꾸기 : 호호~ 물론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모르게 하는 일이죠. 수컷이 망을 보다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둥지를 비운 틈을 타 얼른 둥지 속으로 날아들어 알을 낳지요. 몸을 흔들어 알을 낳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아요. 보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붉은눈이오목눈이의 알 하나를 물고 나옵니다. 진행자 :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알이 뒤바뀐 것을 눈치채지 못할까요? 아무리 ‘새머리’라지만 알의 색이나 모양, 크기를 보고 금방 눈치챌 것 같습니다만…. 뻐꾸기 : 물론 눈치챌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저희 뻐꾸기들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알의 모양과 색깔이 비슷한 새의 둥지에 알을 낳습니다. 사실 저희 뻐꾸기들은 같은 뻐꾸기라도 탁란하는 새 둥지에 따라 다른 알을 낳기도 합니다. 여기 한국에서는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비슷한 파란색 알을 낳지만, 개개비 둥지에 탁란을 하는 일본 서식 뻐꾸기의 경우는 개개비 알과 비슷하게 흰 바탕에 검은색 반점이 있는 알을 낳지요.  진행자 : 아, 정말 탁월한 전략이군요. 하지만, 알에서 깨어나면 아직 눈도 못 뜨는 어린 새끼인데, 혼자 다른 새의 둥지에 두고 나오는 건 잔인하지 않나요? 어미 새가 눈감아 준다고 해도 다른 새끼들이 눈치채고 힘을 모아 해칠 수도 있을 테고요.  뻐꾸기 : 사자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절벽에서 던져 살아남는 자식만 키운다고 했던가요. 저는 우리 뻐꾸기들의 핏속에 흐르는 강인한 생존 본능을 믿습니다. 저 역시 남의 둥지에서 이렇게 자라났으니, 제 자식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살기 위해 안 한 짓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잔인했구나 하고 몸서리가 쳐질 정도지요.  진행자 :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뻐꾸기 : 저처럼 제 어머니도 저를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서 낳고 날아가셨죠. 저는 다행히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진짜 알보다 빨리 부화했습니다. 진행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상태였지만,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옆에 있는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둥지에는 3개의 알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 1개만을 없앨 수 있었죠. 나머지 2개의 알은 부화에 성공했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저희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보다 체구가 훨씬 큽니다. 다 자란 상태에서는 몸집이 배 이상이지요. 당연히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새끼보다 많이 먹어야 이렇게 자랄 수가 있습니다. 먹이를 더 얻어먹기 위해 더 크게 울며 어미 새를 재촉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새들을 잡아먹는 적을 불러올 정도로 크게 울어 댔지요.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어미 새가 제 입에 더 많은 먹이를 넣어줄 테니까요. 뻐꾸기 오목눈이가 제 몸집보다 두 배 이상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다. 사진 제공 : 동아일보 진행자 : 제가 자료 화면을 보니, 정말 누가 자식이고 누가 어미인지 의아할 정도로 크기 차이가 많이 나네요. 제가 붉은머리오목눈이라면 먹이를 구해다 주기는커녕, 뻐꾸기 부리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용기도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몸통까지 한번에 꿀꺽 할 정도로 입이 크네요.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 중에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진짜 알들보다 빨리 부화됐다고 하셨는데요. 그건 본인만 겪은 행운입니까? 아니면 어떤 뻐꾸기든 그렇습니까?  뻐꾸기 : 날카로운 질문이십니다. 저희 뻐꾸기들이 최근까지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영국 셰필드 대학의 연구진들이 생물학회지 ‘프로시딩스 B’저널에 그 비밀을 발표했더군요.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 뻐꾸기들은 알을 낳기 전 몸속에서 24시간 품을 수 있는 ‘체내부화’ 능력을 갖고 있답니다. 1802년에 이미 제기되었던 설이지만,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며 무시됐었죠. 하지만 영국의 과학자들은 뻐꾸기들이 몸속에 24시간 알을 품으면, 31시간이 지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체내에서는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지요. 탁란하는 새의 새끼들과 함께 깨어난다면 뻐꾸기 새끼가 살아남을 확률은 훨씬 줄어들게 될 테니까 우리 뻐꾸기로서는 정말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행자 : 다른 새에게 양육을 맡기니, 일종의 은인인 셈인데 그 어미 새 새끼들의 생명을 빼앗아 생존한다니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뻐꾸기 : 그건 뭘 모르시는 말씀이네요. 뻐꾸기뿐 아니라 전체 새들 중 1% 가까이가 탁란으로 번식합니다. 새들은 그 정도이지만, 곤충 쪽에서는 더 흔한 일이죠. 인간 세상에서도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시겠죠? 어떤 전략을 택하든 종족을 번식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아예 안 낳고 있는 것보다야 낫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진행자 : 네, 지금까지 뻐꾸기 씨의 출산과 육아 전략을 들어봤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얘기하셨지만, 저 유명한 탁란 습성 때문에 뻐꾸기의 개체 수는 항상 위태로운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역시 모두 다 뻐꾸기의 새끼를 키워주는 것은 아니라서 탁란이 성공하는 것은 겨우 10%에 불과합니다. 다른 지역에서의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에서 담청색날개까치에 기생하는 뻐꾸기의 경우, 탁란을 한지 10년 안쪽의 지역에서는 알을 제거하는 까치가 없었지만, 20년 이상 된 곳에서는 40% 이상의 까치가 뻐꾸기의 알을 없앤다고 합니다. 이용당하는 쪽도 넋 놓고 있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이용당하는 쪽에서 알을 100% 가려내 제거해 버린다면 뻐꾸기는 다른 새를 찾아내 알을 낳겠지요. 둥지를 틀고 새끼에게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는 고생을 덜기 위한 뻐꾸기의 방법이 과연 더 나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청취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지금까지 동물 생생 라이브였습니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2177    [지명유래] - 로과(盧菓), 죽림(竹林) 댓글:  조회:3615  추천:0  2018-04-17
... 로과부락 동켠에 자리잡은 조창렬로인의 집은 광복전 로과일대에서 제일 잘사는 지주집이였다고 한다. 팔간 초가에 뜰이 넓고 컸다. 광복 착전에 지었다고 가정해도 벌써 50년도 더 되는 집이였지만 초가로는 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요즘 세월에 벽돌집들이 많이 앉아서 보기에 궁색스러웠지만 생각을 바꾸어 민속으로 곬을 타면 한결 고풍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 팔십이면 쌀벌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창렬로인은 년세에 비해 여간 정정하신게 아니였다. 한창 나이엔 쌀마대를 씽씽 메고 다녔을것처럼 느껴지는 장대한 체구다. 허리도 굽지 않았고 살도 별로 빠지지 않아서 60을 갓 넘었다는 아들과 비하면 부자간이라기 보다 형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면 봉파동 태생이우다. 나서 일곱달만에 업혀서 들어왔으니 꼭 85년이 되우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곳엔 늪천지였다구요. 그래서 이곳 이름이 원래는 늪골이라우.》 1890년부터 1895년사이 청나라 정부는 봉금령을 해제한 뒤를 이어 두만강류역의 지명과 호적을 등록하였다.  《늪골이 어떻게 되여 로과로 변했는지 아십니까?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우. 옛날 이곳에 산동에서 이사를 온 한 한족선비가 있었는데 고향에 편지를 쓰면서 마을 이름을 비슷한 발음을 골라 루궈(芦果)라고 적었다지 뭡니까. 그후 관리들이 내려와 지명을 등록하면서 그것을 따랐지우. 그 다음부터 늪골이 로과로 되였다우.》 근로한 이주민들은 화전을 일구며 부지런히 일했고 땅 또한 비옥해서 씨만 뿌렸다 하면 대풍이였다. 그때 당시 밭에 심은 조의 이삭은 개꼬리만했고 또한 조이대가 참대처럼 마디지고 굵었다고 해서  죽림(竹林)촌의 이름이 생겨난것이다... ... (서울=연합뉴스) 23일 경남 함양군 상림연꽃단지에서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 한 쌍이 봄비를 맞으며 헤엄치고 있다. 2018.4.23 [경남 함양군 제공=연합뉴스]
2176    [고향소식] - "죽림이여, 너는 나의 마음속에" 댓글:  조회:5837  추천:0  2018-04-17
[연변일보] |  2017.07.20일    제4회 화룡시 농민문화절 및 죽림촌 예술절 가동 길림성장애인재활중심(길림성춘광병원)의 의사들이 촌민들에게 무료진찰을 해주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노래하며 즐겁게 살게 되였습니다…” 두만강변의 편벽한 변경마을이자 빈곤촌인 화룡시 숭선진 죽림촌 촌민들이 활기를 띠며 한 말이다. 빈곤해탈 난관공략과 더불어 농민들의 정신문화 수요를 만족시키고 문화소양을 높이며 당과 정부의 배려를 직접 빈곤촌 농민들의 마음속에 전달해주기 위한 제4회 화룡시 농민문화절 및 죽림촌 예술절이 18일(2017년 7월) 성황리에 개최됐다. 하늘도 촌민들의 흥겨운 마음을 대변해주듯이 맑고 푸르게 어우러진 가운데 고운 한복을 떨쳐입은 촌민들이 무대에 올라 자체로 준비한 노래와 춤을 선보이면서 장끼를 한껏 자랑했다. 화룡시 전문극단의 다채로운 종목과 경민(警民)공동건설단위인 연변지대 기동대대 3중대 전사들의 멋진 격투표현은 촌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촌주둔 사업대의 대원들과 숭선진 기관간부들이 라는 제목의 시를 읊었다. 이 시는 성장애인련합회 선전문화부 부장이자 죽림촌 제1서기인 리덕부가 창작한 것이다. 촌민들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향연을 감상하면서 변경지역 군중들에 대한 당과 정부의 따사로움을 절실히 느꼈다. 제4회 길림성 농민문화절의 총체적포치에 따라 화룡시당위 선전부, 시 문화라지오TV방송신문출판국, 시문련, 숭선진 당위와 정부가 주최하고 성과 화룡시 장애인련합회, 죽림촌주둔 사업대, 죽림촌당지부에서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빈곤해탈 도급단위인 성장애인련합회의 주선으로 빈곤부축 활동들도 활발히 진행됐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길림성장애인재활중심(길림성춘광병원),롱아언어청력재활중심에서는 촌민들에게 무료로 신체검사를 해주고 보조기구와 약품을 증정했다. 이들은 전날에도 죽림촌 사정곡툰과 연변지대 기동대대 3중대를 찾아 무료진찰,약품전달 활동을 가졌다. 오랜만에 귀검사를 했다는 정영숙(72세) 로인은 “귀가 잘 안 들려 여기저기 다니며 치료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속을 썩였는데 성급 병원에서 집앞까지 찾아와 까근히 검사해주고 알맞은 보청기까지 무료로 주니 고맙다.”고 전했다. 장춘의과병원에서도 정밀화 재활 빈곤층 부축사업에 나섰다. 이 병원에서는 죽림촌위생소와 의료원격회진 합작협의서를 체결했는데 앞으로 매달 세번씩 원격회진을 하게 된다. 촌민들이 촌을 벗어나지 않고도 훌륭한 의료봉사를 받을 수 있게 조처한 것이다. 맨 첫사람으로 혜택을 본 죽림촌 리수툰의 김주옥씨는 “원격회진을 통해 경추통과 요추통이 생기게 된 원인을 확실히 알게 되고 처방약도 받게 되였다.”면서 “교통이 불편해 병원에 다니기 힘들었는데 영상을 통해 앉은자리에서 전문가들의 진단을 받으니 편리하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날 화룡시상무국, 시우정국, 화흠상업무역회사에서는 죽림촌에 ‘죽림’특색인터넷망을 개통하여 촌의 전자상거래발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앞서 연변대학출판사에서는 죽림촌과 연변지대 기동대대 3중대에 300권의 도서를 기증했다. 화룡시 문련에서도 서법, 미술 협회 회원들을 동원하여 죽림촌에 서예와 그림을 기증하고 전문촬영가를 초청하여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등 빈곤촌 지원활동에 참여했다. ///연변일보 /글·사진 차순희 기자 ====================================   "온돌공연" 죽림촌 찾다  2018년 2월 19일,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신문출판국과 화룡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신문출판국의 책임자들은 '새시대홍색문예청기병'인 화룡시문화관 '온돌공연소분대'를 이끌고 숭선진 죽림촌과 고성리변방검사소에 찾아가 촌민들과 변방전사들에게 다채로운 문화향연을 선사하고 더불어 새해축복을 전했다.   이날 오전, 화룡시문화관의 25명 문예일군으로 구성된 공연팀이 죽림촌의 문체활동실에 도착했을 때 사십여명에 가까운 촌민들은 따뜻한 온돌에 앉아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아름다운 선률과 함께 부채춤으로 공연의 막을 연 공연은 무용 , 남성독창 , 녀성독창 등 다채로운 문예종목들로 촌민들에게 명절의 인사를 전했고 촌민들은 흥겨운 노래가락에 맞춰 춤 추고 노래하는 등 명절의 분위기로 들끓었다.   올해 주TV, 시TV의 음력설문예야회에 모두 출연한 소품배우 허광일, 정복화가 열연한 소품 은 촌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고 최종철, 로미화, 홍미옥의 조선족 삼로인 소품 는 공연현장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었다.   알아본데 의하면 '화룡시온돌공연소분대'는 61년전부터 화룡현극단의 공연소분대로 활약하면서 농가집에 찾아가 온돌공연을 했다. 지금은 현이 시로 바뀌고 극단이 문화관으로 바뀌였지만 한 시대 또 한시대의 문예일군들은 군중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온돌식 공연을 전승해왔다. 촌민 주영애는 " 설날에 이렇게 우리 곁에 찾아와줘 고맙다. 따뜻한 온돌에 앉아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어 대단히 기쁘다"고 격동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오후에 '온돌공연소분대'는 또 길림성공안변방총대인 고성리변방검사소에 찾아가     무용 ,남녀듀엣송 , 가야금독주 , 남성독창 등 다채로운 공연들로 국가의 안전을 위해 휴식일 없이 변방을 지키고있는 장병들에게 문예향연을 선사했다.   화룡시문화관의 책임자에 따르면 이번 활동은 2018화룡시 '우리의 중국꿈' 문화를 만가에 전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정월대보름 이후 대중들의 수요에 따라 문화하향공연을 종종 조직할게 되며 군중이 즐겨보는 문예형식으로 당의 따뜻함을 천가만호에 전할것이라 밝혔다.   글 사진 장향월 기자   /편집:리영철 ///연변라지오TV 넷     [출처] "따뜻한 온돌서 문예공연 볼수 있다니..." - 모이자 커뮤니티    
2175    [그때와 추억] - 동년이 그립다... 댓글:  조회:4742  추천:0  2018-04-17
동년의 추억이 깃든 오붓한 강변마을    2014-4-17    언덕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마을. 옆으로는 두만강이 호선형을 이루며 흘러간다. 지난 4일(2014년 4월), 청명절을 맞으며 태여난 곳은 아니지만 동년과 소년 시절을 보냈던 화룡시 로과향 사정곡촌, 아니, 지금은 숭선진 죽림촌의 한개 툰으로 되여버린 사정곡툰을 찾았다. 죽림촌이나 원래의 사정곡촌은  로과향에 속했던 마을이다. 로과향이 화룡-로과도로를 경계로 두동강이 나면서 숭선진에 귀속, 현재 촌에는 죽림 원 마을과 흥남, 사정곡, 리수 등 마을이 아우러져 하나의 촌-죽림촌을 이룬다. 내가 살던 사정곡촌(현 사정곡툰)은 한때 연변을 들썽인 사건의 주역이다. 1963년 12월 27일, 마을소녀 몇몇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따라 하교길에 올랐다가 마을과 500메터쯤 떨어진 부근에서 두만강에 빠졌는데 그때 렬차에서 뛰여내린 조선청년 김형호와 최상현이 서슴없이 차디찬 강물에 뛰여들어 마지막으로 허우적거리는 한순자소녀를 구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친선의 노래”가 창작되였고 사건의 주인공이였던 한선자녀성은 이름을 한친선으로 고치기도 했다.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사정곡촌은 근 50세대 인가에 아이들도 많았던 곳이였다. 아직도 겨울철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10여명이서 애돌(쪽발구) , 구루마(썰매)를 타며 한동안 즐기다 학교로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다니던 소학교건물은 이제는 볼품없이 허름한 모습을 하고있음에도 여전히 시야를 당겨가며 새록새록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현지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지금의 아이들이 상상조차 할수 없는 많은 거창한 일들을 했었던것 같다. 비료를 생산한다고 소똥, 돼지똥을 주었고 페물을 회수한다고 유리, 철, 납, 비닐박막 등 회수 가능한 물건줏기에 얼마나 열성을 보였는지 모른다. 뿐만아니라 한창 공부에 열심해야 했을 나이였음에도 생산대 지원을 나가 모내기, 김매기에 나섰다. 물이 얼마 흐르지 않는 골짜기에 저수지를 앉힌다고 제방뚝 쌓는 일에 동원되고 하천정비일에 참가해 돌을 주어 나르던 일…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깊은 추억으로 남을 뜻깊은 일이였음은 분명했다. 당시 마을 자체도 생기와 활력으로 넘쳐났던 고장이였다. 봄이면 웃고 떠들며 벼모내기, 담배모내기를 하는 사람들, 집집마다 온 가족이 혹은 외지의 친척들까지 가담해 잎담배를 겯던 모습들, 황소의 영각소리와 함께 소궁둥이를 치는 농군들, 그런 일군들 사이를 누비며 재롱을 떠는 아이들… 하지만 요즘 보면 내가 살던 고장은 많이 변해있었고 또 변해가고 있었다. 소똥에 얼룩졌던 흙길은 세멘트길로 바뀌였고 허름한 나무울바자는 쇠그물바자로 바뀌였으며 짚으로 되였던 이영은 파랗고 불그스레한 기와로 바뀌였다. 마을은 아름답게 변해가면서도 더불어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며 변해가고있었다. 마을에선 뛰여 노는 동심을 볼수 없었고 마을의 기둥처럼 느껴지는 젊은 세대들을 보기 힘들었으며 가족끼리 혹은 겨리끼리 모여앉아 잎담배를 겯던 모습도 볼수 없었다. 마을은 마치도 쇠약해가는 인간처럼 많이 고달프게 보이고 지쳐가고있는듯한 느낌이였다. 한적한 마을은 때때로 일하러 가는 경운기소리 혹은 굴뚝에서 피여오르는 연기가 인적의 존재를 알려줄따름이였다. 선조들이 땀을 흘리며 걸구어온 마을의 땅을 걸구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타국의 어느 공장건물에서, 식당 주방에서, 어느 가정집에서 혹은 타지방의 어느 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부지런히 “신사임당”과 인민페를 챙기고 있다. 고즈넉한 산 땅속에 묻힌채 마을의 달라져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어르신들의 심정은 어떠할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면서 마음이 복잡해났다. ///연변일보 전윤길 기자      
2174    언어는 인권이며 "한글 병신체"는 도구 장치, 모독 폭거이다... 댓글:  조회:3622  추천:0  2018-04-17
© News1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명작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를 지켜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엘레강스하고 시크한 리듬이 비비드한 컬러로 콜레보된 콤비 이번 윈터 시즌 머스트 해브’가 무슨 말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고급 패션 잡지 등의 광고에 유행하는 소위 ‘보그 병신체’라는데 이는 한글을 쓰는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들에게 저지르는 모독이자 언어 폭거다. 담당자들은 한글로 쉽게 써놓으면 싸구려 제품으로 인식해서 그렇다고 할지 모른다. 이 문체에 반응하는 소비자도 책임이 좀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파트 단지 이름을 ‘샹드리안클래식’ 식의 어려운 외국어로 짓는 이유가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하려는 것’이란 애교 섞인 해학이 더 이상 해학으로 들리지 않는다. 광고만 그런 것은 아니다.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이나 백성 위에 군림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관직의 세계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그들만의 언어’가 실존한다. "환자가 어정쩡한 지식으로 뭐라뭐라 하기에 전문용어 몇 개 동원했더니 입을 다물더라"는 말을 아는 의사로부터 들은 게 바로 얼마 전이다. 이는 학자나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오거나 신문에 칼럼을 쓰는 교수의 말과 글은 가급적 어려워야 ‘과연 학자’로 자부한다. 나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선문답의 뜻을 여태 알지 못한다. 정치인들이 종종 자신을 위장하거나 책임을 은근슬쩍 회피하려 할 때 이런 어려운 말을 동원한다. 지하철이나 관공서마다 ‘에이이디(AED)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機)’가 비치돼 있다. 설명을 듣지 않고는 ‘자동제세동기’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한자를 읽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 기계가 뭔지 관심을 기울이고, 위급할 때 가져다 쓸 생각을 할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냥 ‘심장마비 응급 충격기’라 써놓으면 법에 걸릴까. ...결정문이나 ...연설문이 상대적으로 박수를 받는 것은 대부분 알아듣기 쉬운 말들이라 그렇다. ...얼마든지 쉬운 우리 한글로 폼 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걸 안 할 뿐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말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절대 아니라고들 하겠지만. ...10월 9일 한글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설계(디자인)됐다는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는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달력의 빨간 글자가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몇 년 전 그날을 빨간색으로 되돌리는데 일조했던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가 ‘언어는 인권이다’를 펴낸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외국어와 전문용어로 어렵게 말을 늘어놓는 것은 듣거나 읽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주권에 앞서 인권이 먼저다. 언어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생명, 존엄, 기득권, 군림, 효율, 평등, 공생을 지키거나 방해한다. 어려운 용어의 말과 글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하는 도구이자 장치인 것이다. 이건범의 ‘쉬운 언어 쓰기’ 주장을 모두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여기에 있다. ///뉴스1 / 최보기
2173    [쉼터] - 1만개의 금속실과 "천수천안" 법랑화 댓글:  조회:5258  추천:0  2018-04-16
  [촬영/중국신문사 양옌민(楊艶敏)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2일] 4월 7일 란저우문리학원(蘭州文理學院) 여교수 바이첸(白茜) 씨는 1만여 개의 금속실을 가지고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세선 세공 법랑화(琺瑯畫)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10년 넘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둔황(敦煌, 돈황) 벽화를 모델로 한 세선 세공 법랑화를 완성했다. ‘천수천안관음’은 바이첸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1m 상당의 금속실 1만여 개를 이용해 완성한 것이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촬영/중국신문사 양옌민(楊艶敏) 기자]   4월 7일, 란저우문리학원(蘭州文理學院) 여교수 바이첸(白茜) 씨는 큰 자기 접시에 금속실을 이용한 세선 세공 법랑화(琺瑯畫) 작품을 완성했다. [촬영/중국신문사 양옌민(楊艶敏) 기자]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10년 넘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둔황(敦煌, 돈황) 벽화를 모델로 한 세선 세공 법랑화를 완성했다. 해당 작품은 커다란 흰색 자기 접시에 위치했다. 그녀의 ‘반탄비파무악도(反彈琵琶舞樂圖)’, ‘문수보살부회도(文殊菩薩赴會圖)’ 등의 작품은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인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촬영/중국신문사 양옌민(楊艶敏) 기자]
2172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축제다운 대표 축제"가 있어야... 댓글:  조회:5596  추천:0  2018-04-16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발수절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촬영/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6일] 4월 15일,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태력(傣曆) 기준의 신년 취수 의식 및 포수이제(潑水節, 발수절)를 개최했다.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징훙(景洪)시에서 서로 물을 뿌리는 의식을 통해 서로의 축복을 기원하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번역: 박지연) ///신화망(新華網)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발수절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촬영/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발수절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촬영/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발수절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촬영/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의 징훙(景洪)시의 광장 중앙에 모여 단체로 춤을 추고 있다. [촬영/신화사 왕창산(王長山) 기자]   4월 15일, 사람들이 윈난(雲南,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 태족(傣族)자치주에서 발수절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촬영/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2171    [그것이 알고싶다] - 한자 상형문자 알아보기... 댓글:  조회:3775  추천:0  2018-04-16
疒, 虍, 彳... 위와 같은 한자들은 그 생김새가 절반밖에 없다. 우리는 몇 개나 알고 있을까?   zhì / zhài 고양이, 호랑이 등의 야수를 가리킨다. 고대에는 야수의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에 모두 ‘치(豸)’라는 편방(偏旁)이 들어갔다. 獬豸(xiè zhì)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야수로 외관은 양과 사슴을 닮았다. 머리 가운데 긴 뿔이 하나 있고 발은 양의 발을 닮았으며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주로 물가에 살고 충성스러운 성격을 가졌으며 시비•선악을 판단할 줄 알아 예로부터 법수(法獸)라고도 불렸다.   nè 한자 본래의 의미는 ‘기대다’, ‘의지하다’, ‘질병’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질병에 관한 한자에는 모두 ‘疒(병질엄)’이 부수로 사용된다.   bō 위를 향한 발걸음, 등져서 벌리며 걷는 발걸음의 모양   hū 호랑이 가죽에 새겨진 무늬 [사진 출처: 신화사/ 촬영: 왕자오보(王昭博)]   mián 주택, 뒤덮다 꼭대기가 있는 물건을 표현하는 한자의 부수로 많이 사용된다. 예: ‘집 가(家)’, ‘집 궁(宮)’, ‘우리 뢰(牢)’ [촬영: 중국신문사 두양(杜洋) 기자]   chì 천천히 걷다. 걷다가 쉬다가 하다. ‘다닐 행(行)’은 ‘조금 걸을 척(彳)’과 ‘자축거릴 촉(亍)’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척척촉촉(彳彳亍亍)’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는 ‘천천히 걷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촬영: 인리친(殷立勤)]   guàn / kuàng [guàn]: 대표적인 상형문자로 어린아이가 머리를 양갈래로 올려 묶은 모습을 뜻한다. [kuàng]: 고대에는 ‘쇳돌 광(礦)’과 동자(同字)로 씌였다.   jì 뱃속의 공기가 입을 통해 나오면서 소리내는 것, 즉 트림을 하는 것을 뜻한다.   piě ‘삐침 별(丿)’은 고대 ‘닦을 별(撇)’과 동자였다. 한자의 주요한 한 획으로 오른쪽 위에서부터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작성한다. ‘아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한자에 사용된다. 예: ‘창 모(戊)’의 뜻은 움직이지 않은 창(槍)이다.   jié 한자의 중요한 부수 가운데 하나이며‘사람 인(人)’의 변체자(變體字)이다. 금문(金文)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으로 이러한 좌법(坐法)은 고대 사람들이 예의를 차리며 앉는 좌법, 양쪽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다리 위에 올려 앉고 양손을 양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모습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좌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shān / xiǎn 털을 이용한 장식, 그림을 그려 장식을 하는 것을 뜻함 [촬영: 중국신문사 탄다밍(譚達明) 기자] 중국에는 두 가지의 발음이 있는데 ‘xiǎn’으로 발음될 때는 고대 강족(羌族)의 복성[두 글자로 된 성(姓)]을 가리킨다. (예: ‘彡姐’)   huǒ / biāo ‘불’, ‘열기’ 등을 뜻한다. 중국어 발음으로 ‘huǒ’로 읽을 때는 ‘불 화(火)’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biāo’로 읽을 때는 사나운 불길이란 뜻을 가진다. 확대된 의미로는 ‘놈’ 등이 있다. 예를 들어: “二灬”는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촬영: 우런화(烏仁花)]   chuān 1. ‘내 천(川)’과 생김새는 다르나 뜻은 같다. 2. 한자의 부수 가운데 하나 ‘shùn’이라고 읽기도 하며 ‘헝클어진 머리 순(鬊)’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내 천(巛)’은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서는 큰 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뜻한다. 금문(金文)과 전문(篆文)에서는 획이 간소화되면서 가운데 선이 이어졌다. 해서(楷書)에서는 ‘川’과 ‘巛’을 구분해서 사용했으며 ‘巛’은 편방으로만 사용됐다. 이 외에도 ‘巛’을 ‘파광린린(波光粼粼: 잔잔한 물결이 맑고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모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촬영: 왕레이(王磊)]   (번역: 은진호) ///시사세계(詩詞世界)
217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사랑스러운 동물들... 댓글:  조회:3553  추천:0  2018-04-16
노루 고라니와 사슴과는 다르게 생겼음   사슴   고라니 겁나 빠르고 울음 소리가 기괴함 수달 족제비     꿩 야생공작 공작새 클라스   
2169    [이런저런] - 간이 큰 할매... 댓글:  조회:3158  추천:0  2018-04-16
호랑이    
2168    "믿거나 말거나"의 미국 화가 - 로버트 리플리 댓글:  조회:5382  추천:0  2018-04-15
로버트 리플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로버트 리플리 로버트 리로이 리플리(Robert LeRoy Ripley, 1890년 12월 26일 ~ 1949년 5월 27일)는 미국의 만화가, 사업가, 인류학자, 야구선수이다.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를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908년 만화 Life를 출판했으며 를 설립한 해인 1913년까지는 야구선수로 활동했었다.   출생 1893. 12. 26,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로사 사망 1949. 5. 27, 뉴욕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풍자만화가. 본명은 LeRoy Ripley.   온갖 종류의 기이한 일과 사건들을 다루어 폭넓은 인기를 얻은, 신문의 풍자만화 〈믿거나 말거나! Believe It or Not!〉를 그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찍부터 식구들을 부양하느라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야구선수가 될 수도 있었으나 메이저 리그에 출전했다가 입은 팔의 부상 때문에 그 꿈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의 또다른 재능을 살려 풍자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6세 때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신문들에서 스포츠 풍자만화가로 일하다가 1913년 뉴욕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욕의 〈글로브 Globe〉지에 풍자만화를 그렸으며, 그 신문의 1918년 12월 19일자에 〈믿거나 말거나!〉라는 풍자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풍자만화는 운동경기 세계에서 일어난 9가지 진기한 사건을 묘사했다. 이 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으며, 〈믿거나 말거나!〉는 1주일에 1회 실리다가 결국 날마다 실리게 되었다. 리플리는 1923년 뉴욕의 〈이브닝 포스트 Evening Post〉지로 옮겨 이 풍자만화를 계속 그렸으며, 1929년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경영하는 '킹 피처스 신디케이트'에서 거의 300여 개에 이르는 미국의 신문에 그의 만화를 동시 발표하도록 선정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에는 처음으로 그의 스케치를 모아 책으로 출판한 〈믿거나 말거나!〉(1929)에 이어 여러 다른 책들이 출판되었다. 또한 여러 편의 라디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를 주제로 한 일련의 단편영화들도 만들어졌다. 그는 사육제 같은 축제 분위기의 공간에 진기한 물건들을 진열한 '오디토리움스'(Odditoriums)라는 전시회를 후원했다. 1949년 그가 죽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풍자만화를 계속 이어 그렸다.
2167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두만강떼목축제"가 있었으면... 댓글:  조회:5624  추천:0  2018-04-15
  4월 8일,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에 참가한 선수들 [사진 출처: 신화사]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0일] 4월 8일 2018년 중국 타이저우(泰州, 태주) 장옌(姜堰, 강언)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이 개막됐다. 수백 척에 달하는 각양각색의 보트와 수만 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친후(溱湖)호에 집결했고 현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환상적인 ‘수상 묘회(廟會: 잿날이나 정한 날에 절 안이나 절 입구에 개설되던 임시 시장)’를 체험했다. (번역: 은진호) ///신화망(新華網)   4월 8일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에 참가한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 [사진 출처: 신화사]   4월 8일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 현장, 선수들이 용선(龍舟) 위에서 용춤을 추는 모습 [사진 출처: 신화사]   4월 8일,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에 참가한 선수들 [사진 출처: 신화사]   4월 8일, 진퉁(溱潼) 보트 페스티벌에 참가한 선수들 [사진 출처: 신화사]  
2166    [동네방네] - 문화 + 관광 댓글:  조회:5454  추천:0  2018-04-15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0일] 4월 8일 오전, 새로 출범된 문화관광부가 정식으로 현판식을 가졌다. 뤄수강(雒樹剛)이 당조(黨組) 서기 겸 부장에, 리진자오(李金早)가 당조 부서기 겸 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문화관광부는 ▲당의 문화업무 방침과 정책을 관철•이행 ▲문화와 관광 업무 정책과 조치를 연구•제정 ▲문화사업, 문화산업, 관광업 발전을 총괄 계획 ▲문화 혜민 프로젝트 시행 ▲문화자원 조사와 발굴, 보호 업무를 조직적으로 시행 ▲관광시장 질서를 포함한 각종 문화시장 보호 ▲대외 문화교류 강화 ▲중화문화의 해외진출 추진하는 등의 주요 직책을 맡게 된다. 상무부나 교통부 등 관광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다른 부처들도 있는데 왜 굳이 ‘문화부’와 ‘관광부’를 합친 것일까? 문화관광부의 출범은 문화와 관광을 단순하게 합친 것이 아니라 상호 촉진을 통해 시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다. 시대의 대세 ‘문화+관광’ 통한 융합발전 문화는 관광의 중요한 내포이고, 관광은 문화를 전파하는 매개체이다. 에서 2015년 중국을 방문한 국내외 관광객은 41억 2천만 명이었으며, 문화체험관광을 선호하는 여행인구는 50.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부의 출범은 향후 업무의 중점이 단순히 ‘문화’나 ‘관광’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발전을 통해 산업과 소비 업그레이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실경 공연 스틸컷 사실 ‘시’와 ‘여행’ 간의 융합은 여행의 먹거리와 즐길거리, 숙박, 교통수단, 관광, 쇼핑의 곳곳에 침투했다. 숙박의 경우 최근 민박은 관광시장의 트렌드로 부상했다. 민박은 기본적인 숙박을 해결하는 것 외에 지방 문화와 관광 숙박의 결합이다. 민박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방적인 특색과 관광의 결합이 날로 긴밀해지고 있다. 즐길거리의 경우 예전에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우스갯소리로 “차를 타면 자고, 차에서 내리면 사진을 찍는다”고 했으나 실제 배경을 무대로 한 실경 공연을 대표로 하는 공연관광 시장 덕분에 전통적인 관광 방식은 문화 체험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에서 2016년 전국 공연관광 상연 목록은 232개, 중국 공연관광 흥행수입은 43억 3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1>2’ 제도 정립 및 자원 통합 종합성과 융합성이 매우 강한 문화관광은 천혜의 자연자원에 의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조상이 남긴 문화자원에도 의존해야 한다. 문화산업, 공공문화서비스, 문화재 보호와 이용, 관광산업의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하지만 관리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상술한 분야의 교차와 융합 부분이 다른 관리기관에 속해 있어 여러 부처가 동일한 업무를 관리하는 비효율적인 국면이 형성되었다. 최근 많은 지방의 문화관광 관련 기구가 조정•합병된 것은 관리 내용이 날로 교차되고 중복되는 현실에 기반해 관리 직능을 통합 조정하여 정부 서비스 효능을 높이기 위함이다. 국가 차원에서 문화부와 관광부를 합병해 국무원의 조직 부처로 출범한 것은 문화와 관광의 융합 현황과 추세가 날로 정부의 중시를 받고 있음을 설명하는 대목이며, 이는 산업, 사업, 문화재, 관광 관리의 최적화와 협동,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문화산업자원, 공공서비스자원, 개발이용 가능한 문화재 자원과 관광자원의 통합에도 도움이 된다.  문화 자신감 낡은 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것을 세워 혁신적으로 발전 중국의 많은 도시는 문화관광의 융합발전에서 성공적인 실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각 도시는 100여 개의 문화관광그룹 및 각종 문화관광기금을 설립해 현재 관광산업 전환과 업그레이드 니즈에 부응하고 있다. 명승고적은 여행의 핫 키워드이다. 사진은 진(秦)나라 병마용(兵馬俑) 중국에 있는 대량의 문화 고적은 효과적인 보호와 활성화를 필요로 하고, 이런 보호는 거액의 자금 지원을 필요로 한다. 또한 관광의 업그레이드는 IP 구축, 산업사슬 확장, 영화•TV•광고•문학•예술•뉴미디어 등 다양한 문화 형식의 통합이 필요하며, 문화관광그룹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광발전전략과 산업구도 수립을 통해 문화산업화와 관광을 심도 있게 결합해야 한다. 소림사는 외국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1억 3948만 명에 달해 중국은 세계 4위의 관광대국 지위를 유지했다. 문화와 관광의 결합을 통해 문화를 수출하는 매개체가 생겼다. 미국의 영화,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은 모두 자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매개체다.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더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문화는 관광수단을 타고 수출되어야 효과가 뚜렷하고 더욱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번역: 이인숙) ///인민망(人民網) 문화채널 위챗계정 ‘文藝星靑年 ======================   [촬영/중국신문사 양보(泱波)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1일] 4월 9일 장쑤(江蘇, 강소)성 쥐룽(句容, 구용)시 톈왕(天王)진 화궈위안(花果原)향 즈잉(芝櫻)마을에는 300묘(畝, 면적 단위: 1묘는 약 666.67㎡)에 달하는 지면패랭이꽃밭이 있다.  ========================                                                                                                                4월 1일, 관광객들이 장쑤(江蘇, 강소) 싱화(興化) 유채꽃 풍경구에서 유람하고 있다. 
216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경찰견과 녀경찰 댓글:  조회:5041  추천:0  2018-04-15
  4월 9일, 류제(劉潔)와 경찰견 ‘치뎬(起點)’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4월 13일] 납서족(納西族) 여성 류제(劉潔)는 쿤밍(昆明, 곤명) 철도 경찰의 경찰견 업무팀의 조련사이다. 류제는 어릴 적 4마리의 애완견을 키워봤기 때문에 그녀는 경찰이 된 후 경찰견에게 줄곧 각별한 친밀감을 가져왔다. 마침 경찰견 업무 팀에 여성 조련사가 필요했고, 류제는 적극적으로 이 직무에 지원해 순조롭게 합격했다. 류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찰견 조련 업무를 접해본 적이 없고, 집에서 키웠던 애완견들은 경찰견과 완전히 다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지만, 선배 조련사가 차근차근 가르쳐 준 덕에 훈련하는 법, 먹이주는 법, 경찰견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법 모두 배울 수 있었다. 경찰견과 한 걸음 한 걸음씩 함께 성장하는 것 또한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번역: 박지연)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4월 9일, 류제(劉潔)와 경찰견 ‘치뎬(起點)’이 훈련장에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과 마약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선배 조련사의 지도 하에 경찰견 ‘치뎬(起點)’을 훈련하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을 씻기고 있다.[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잠시 쉬는 시간에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을 쓰다듬고 있다.[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의 입을 닦아주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4월 9일, 류제(劉潔)가 경찰견 ‘치뎬(起點)’과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촬영/중국신문사 류란양(劉冉陽) 기자]
216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커피찌꺼기도 보배... 댓글:  조회:3493  추천:0  2018-04-15
    ‘가비(加比)’ ‘가배차’ 또는 ‘양탕국(洋湯麴)’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바로 현대인이 밥보다도 더 많이 찾는다는 커피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는 당시 소수 특권층만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마시는 일상음료가 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식후 한 잔 마시는 커피는 나른한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한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엄청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볶지 않은 커피 원두(생두) 수입량은 13만7795t(5억4705만달러)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전보다 3.5배 증가한 수치다.   커피 인기가 높아지면서 커피찌꺼기에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카페에서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며 커피찌꺼기를 제공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가만히 보면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찌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나는 경우가 많다.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 버리면 쓰레기이지만 알고 보면 유용한 커피찌꺼기 활용법을 소개한다.   ◆ 탈취제와 방향제   커피찌꺼기를 천연탈취제로 재사용하는 방법은 가장 잘 알려진 커피찌꺼기 활용법이다. 그러나 커피 찌꺼기를 바짝 말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커피가루를 사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습기를 머금어 곰팡이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린 커피 찌꺼기를 냉장고나 신발장에 넣어두면 습기와 잡냄새를 잡아주어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다.   커피찌꺼기는 특유의 향긋함으로 방향제 역할도 한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티백이나 얇은 크레프트지, 통풍이 잘되는 망 등으로 말린 커피찌꺼기 적당량을 담아 묶으면 자동차나 신발장, 냉장고, 화장실 등 작은 공간을 커피 향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 벌레퇴치   쓰레기통 주변이나 벌레가 잘 꼬이는 곳 근처에 커피찌꺼기를 두면 벌레가 생기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날 파리와 같은 벌레가 서식하기 좋은 쓰레기통에도 커피 찌꺼기를 뿌려주면 벌레가 눈에 띄게 감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셀룰라이트 제거   노출의 계절 여름. 살도 문제지만 피부 표면에 드러나는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 역시 큰 고민거리다. 이때 커피찌꺼기로 마사지하면 셀룰라이트를 없애고 탄력 있는 피부를 얻을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디오일과 커피찌꺼기를 되직하게 섞어 배나 팔뚝, 허벅지 등 원하는 부위에 바르고 피부 결을 따라 마사지한다. 오래하는 것보다는 5분에서 7분 사이가 적당하며, 2주 동안 꾸준히 마사지 해주는 게 좋다.   한 전문가는 “커피찌꺼기의 카페인은 지방분해 효과가 있어 꾸준히 마사지하면 셀룰라이트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스크럽제   훌륭한 스크럽제로도 탈바꿈할 수 있다. 커피찌꺼기를 꿀이나 클렌징크림에 섞어 샤워 후 물기가 남아있는 몸이나 각질이 가득한 발바닥에 골고루 발라 살살 문질러준다. 3분에서 5분 정도 곳곳을 마사지한 뒤 씻어내면 보송보송한 피부 결을 만들 수 있다. 단 입자가 거치므로 얼굴 등 피부 조직이 약한 부분은 피해야하고, 마사지 후 깨끗이 씻어내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한다.   ◆ 요리용   생선이나 육류 등을 요리할 때 커피가루를 조금만 뿌려주면 잡내를 잡아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브라우니를 만들 때는 우유 대신 갓 내리고 남은 신선한 커피 가루를 넣으면 풍부한 향을 더해주고, 육류 요리 시 이용하면 고기를 연하게 만들어 부드러운 식감을 낼 수 있다.   이밖에 생선이나 마늘을 만진 뒤에는 커피가루로 손을 문지르면 비누로도 쉽게 제거할 수 없는 강한 향이 중화된다.   ◆ 가구 흠집 제거   짙은 고동색인 커피찌꺼기로 오래된 원목 가구를 근사하게 리폼할 수 있다.   끓는 물에 찌꺼기를 다시 한 번 우려낸 뒤 그 물을 부드러운 천에 살짝 묻혀 흠집이 난 가구를 닦아주면 커피색이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가구의 흠집이 가려지고 광택도 난다.   ◆ 묵은 때 제거   고기나 생선 등을 요리한 뒤 팬에 묻어나는 기름때는 아무리 세제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아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때 커피찌꺼기를 활용해보자. 기름때가 낀 부분에 찌꺼기와 세제를 섞어 닦은 후 미지근한 물로 세척해주면 기름때가 말끔히 사라진다.   가스레인지나 싱크대, 욕실 등에 생긴 묵은 때 역시 커피찌꺼기를 살살 뿌려준 뒤 천으로 문질러주면 깨끗이 지워진다.   ◆ 화초의 영양 거름   커피찌꺼기에는 무기질이나 단백질 같은 다양한 영양성분이 들어있어 거름으로 사용하면 영양분을 공급하고 벌레를 퇴치해준다.   따라서 흙과 섞어 화분에 뿌리면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은 식물부터 농장에서 자라는 야채들까지 화학비료 없이 건강하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 단 말리지 않은 찌꺼기는 오히려 곰팡이를 피울 수 있으니 유의하도록 한다.     /글 김예린 인턴기자│ /자료제공 매일경제
2163    [그것이 알고싶다] - 제2의 인생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댓글:  조회:3679  추천:0  2018-04-14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前 축구 스타들의 모습 [ 2018년 04월 13일 ]       ' FIFA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발롱도르상’ 1회 수상의 주인공인 FC 바르셀로나 출신 호나우지뉴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호나우지뉴는 성공한 자신의 선배들처럼 ‘은퇴’ 후 스케줄을 착실하게 계획했다. 3월 21일 스페인 일간지 ABC는 지난 20일 호나우지뉴가 브라질 공화당에 입당했다고 전했다. 이는 호나우지뉴가 2018년 연방 상원의원 혹은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구장에서 명예와 부를 얻은 축구 스타들은 ‘은퇴’ 후 과연 무엇을 하며 지낼까? 과연 다른 분야에서도 활약할까?   호나우지뉴와 같은 고향 출신이자 ‘늑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호마리우의 과거 및 현재의 양력을 알아보자. 축구 선수로 활동할 당시 호마리우는 ‘박스 안의 여우’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프로 무대에서 1,002개의 골을 성공시켰고 A매치에서 브라질 역대 3위에 해당하는 55개의 골을 성공시켰다. 호마리우는 2008년 은퇴 후 정계에 진출했다. 호마리우는 2010년부터 하원의원으로 활동했고 2014년부터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브라질 축구의 부패 척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얼마 전 호마리우는 큰 포부를 안고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AC밀란에서 호나우지뉴와 함께 발을 맞췄던 조지•웨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선수로 알려져 있다. 조지•웨아는 현역 시절 같은 해에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상’,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를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조지•웨아는 2003년 은퇴 후 라이베리아 정계에 진출했다. 2005년과 2011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17년 12월 29일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취임식에서 조지•웨아는 라이베리아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인 중국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중국어로 감사하다는 표현인 ‘셰셰(謝謝)’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축구 선수들에게 은퇴 후 정계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전 영국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전설의 수비수인 리오 퍼디낸드는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복싱을 시작했고 프로 복서가 되었다.   축구계에서 ‘그랜드슬램’급 성적을 달성한 프랑스 출신의 빅상트 리자라쥐는 2006년 은퇴 후 주짓수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9년 빅상트 리자라쥐는 40세의 나이에 주짓수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했고 블루벨트 시니어(35~40세) 76kg급 우승을 차지했다. 빅상트 리자라쥐는 주짓수를 시작한 후 개인 SNS 계정에 올리는 사진의 스타일이 완전히 변했다.   만약 위 인물들이 축구 선수였을 때 얻은 명예와 우수한 신체적 조건으로 업종 변경에 성공한 케이스라면 터키 출신의 일한 만시즈는 사랑을 위해 피겨스케이팅을 선택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일한 만시즈는 은퇴 후 여자친구의 소치동계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31세 ‘고령’의 나이와 무릎 수술을 7번이나 받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한 만시즈는 2013년 38세의 나이에 여자친구와 함께 소치동계올림픽 선발전 무대에 섰다. 결과적으로 소치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지만 일한 만시즈는 “저에게 있어 동계올림픽은 축구보다 소중해졌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번역: 은진호) ///신화국제톱기사(新華國際頭條) 
2162    [동네방네] - 심양 "윤동주문화원" 선다... 댓글:  조회:3451  추천:0  2018-04-14
중국 선양에 윤동주문화원 설립 '조선족에 시인 알릴 터' (ZOGLO) 2018년4월14일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중국 동북3성 중심 도시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의 생애와 문학을 알리는 문화원이 설립된다. '선양 윤동주문화원'은 선양 시 외곽에 들어서며 오는 14일 오후 창립기념식이 열린다고 선양 소재 문화단체인 한중문화융합연구소가 13일 밝혔다. 문화원은 ...중국 조선족 청년·대학생들이 윤 시인을 공부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문화원은 300석 규모의 강당과 60석 규모의 갤러리, '윤동주 테마여행' 홍보관, '시인의 언덕' 포토존 등으로 구성되며 이곳에서는 강연과 문화행사 등이 열린다. 한중문화융합연구소 측은 문화원의 전시 내용을 알차게 하고자 한국관광공사·한국 윤동주기념사업회·종로문화재단에 전시자료를 요청하고, 연변한국인회·룽징(龍井)윤동주연구회와 상호교류에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박신헌 한중문화융합연구소 이사장(다롄한국인회 회장)은 "선양 윤동주문화원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전하고 실버예술대학 등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봉사활동으로 조선족 차세대 역량 증진에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룽징중학교에 세워진 윤동주 조각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길림성 연변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촌에서ㅡ
2161    [별의별] - "제비뽑기"와 징병제도 댓글:  조회:5488  추천:0  2018-04-12
'제비뽑기'로 징병하는 나라...                                   이현우  2018.04.10. 10:12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제비뽑기로 입대 결정되는 태국과 멕시코 면제 받기 위해 뽑아야하는 공은 두 나라 모두 '검은공' (사진=국제축구연맹(FIFA)홈페이지/FIFA.com)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그룹 갓세븐(GOT7) 멤버이자 태국인인 뱀뱀이 군면제를 받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비뽑기로 진행되는 태국의 '복권식 추첨징병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징병검사를 통해 신체상 이상이 없는 대상자는 무조건 입대해야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생소한 제도지만, 태국에서는 60년 넘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징병제로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제도다. 태국의 추첨징병제는 지난 1954년부터 시행됐으며, 추첨 방법은 검은공과 빨간공 중 하나를 뽑아 검은공을 뽑으면 면제, 빨간공을 뽑으면 군대에 입대해야하는 제비뽑기 방식이다. 보통 검은공과 빨간공의 비율은 7대 3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병역법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으로 병역면제를 받던 승려들도 제비를 뽑아야하는 상황이 왔고, 트랜스젠더 역시 생식기까지 완벽하게 전환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공을 뽑아야한다. 그래서 태국 내에서는 징병시즌마다 스님 옆에 트랜스젠더가 앉아 추첨을 기다리는 매우 독특한 풍경이 그려진다고 한다. 추첨을 통해 빨간공을 뽑은 사람은 1년간 병역을 이행해야하며, 추첨 전에 자원입대를 한 경우에는 병역기간이 6개월로 줄어든다. 중도에 마음이 바뀌어서 가고 싶어도 검은공을 뽑은 사람은 무조건 면제이며, 다른 사람과 공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태국은 병사 봉급이나 대우가 좋은 편이라 예전에는 자원입대자가 많은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남부 반군과 싸움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군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태국 청년들은 이 제비뽑기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특히 이 제비뽑기는 늦게하면 유리할수도 있고, 불리할수도 있다. 늦게할 경우에는 검은공 숫자가 줄어들어 빨간공을 뽑을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빨간공을 먼저 뽑은 사람이 많아서 군의 목표 입대자 숫자가 채워지면 그 뒤에 대기자들은 전원 자동면제를 받기 때문에 먼저 뽑는다고 꼭 유리하지는 않다. 뱀뱀도 제비뽑기 전에 군의 목표 입대자 숫자가 모두 채워지면서 자동으로 면제됐다. 태국과 같이 이런 특이한 징병제도를 운영하는 또다른 나라가 멕시코다. 운영방식은 태국과 거의 비슷하며, 다만 공 색깔이 좀 다르다. 검은공, 빨간공인 태국과 달리 검은공, 흰공이다. 여기도 태국과 같이 검은공을 뽑으면 면제된다. 검은공과 흰공의 비율이 6대 4정도라 태국보다 검은공을 뽑을 확률이 좀 적은 편이다. 멕시코는 마약조직과의 실전을 방불케하는 진압작전이 펼쳐지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 나서는 병력자원은 모병제로 운영되지만, 후방 지원이나 치안유지, 청소 등 잡역에 동원될 인원은 징병제로 충당한다. 우리나라처럼 강도높은 훈련을 받고 사회와 격리돼 지내야하는 징병제가 아니라고 전해진다. ===========덤으로 더...     성격 민속놀이 유형 놀이 분야 생활/민속·인류 요약 종잇조각이나 나무 쪽을 필요한 숫자만큼 만들어 뽑아, 거기에 적힌 기호나 문구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길흉·승패·당락·우열·등급·차례 등을 결정짓는 놀이의 한 방법.   내용 ‘제비’는 ‘잡다’의 명사형인 ‘잡이·잽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한자로는 추첨(抽籤)이라고 한다. 제비뽑기는 점의 일종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객관적인 표적에 의해 운명을 미리 알려는 객관적·인위적 점복(占卜)의 형식이었다.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진성여대왕 거타지(眞聖女大王居陀知)조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때 아찬 양패(良貝)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다. 그런데 꿈에 한 노인의 현몽을 받고 나뭇조각[木簡] 50개에 수행한 군사들의 이름을 써서 바닷물에 띄웠다가 그 이름이 물에 잠긴 거타지(居陁知)를 섬에 남도록 결정하였다고 전한다. 바로 그러한 것이 제비뽑기의 예에 해당한다. 지금도 무속에서 오방기(五方旗)를 빼는 것, 점복가가 댓가지·산가지 또는 종이 등의 점괘를 빼는 것, 점복가가 돈이나 쌀을 던져 그 모습을 보고 점을 치는 척전점(擲錢占)이나 척미점(擲米占), 그리고 새점·물방개점 등도 모두 객관적·인위적 복점 형식의 제비뽑기에 해당한다. 제비뽑기는 처음에는 이와 같이 우연의 결정을 신의 뜻(神意)으로 받아들인다는 종교성을 띤 심각한 일이었는데, 뒤에는 사람들 사이의 어려운 분쟁을 단순히 시비 없이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갔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토지나 채초지(採草地) 또는 어장(漁場) 등의 분할·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제비뽑기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오늘날 어린이들 사이에 널리 행해지는 ‘사닥다리타기’나 또는 ‘심지뽑기’ 같이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놀이로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제비뽑기는 학생의 학교 입학, 아파트 추첨, 복권 추첨 등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행하여지고 있다. 이 놀이는 사용하는 도구와 방법에 따라 흔듬제비·뽑음제비·구슬제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흔듬제비’는 표를 한 한개의 돌이나 동전 또는 윷이나 주사위 등을 던져서 그 결과를 보는 방식이다. ‘뽑음제비’는 글을 쓰거나 표를 한 제비를 접어놓거나 또는 화투짝이나 트럼프짝을 안이 보이지 않게 하여 놓고 그 결과를 보는 방식이다. ‘구슬제비’는 복잡한 길이 만들어진 통 속에 구슬을 넣어 그것이 굴러나오는 결과를 보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내용이 표시된 과녁에 화살을 쏘아 그 결과를 보는 방식도 있다. 이 놀이는 윷놀이·승경도놀이·화투·투전·주사위놀이 등과 같이 순전히 우연의 원리에 입각한 놀이이다. 상대에게 승리한다고 해도 놀이하는 사람의 힘과 아무 상관이 없다. 놀이하는 사람은 수동적이어서 기량이나 지성·훈련 등의 수단을 사용할 수가 없고, 다만 운명의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놀이는 상대에게 이긴다고 하기보다 운에 이긴다고 하는 것이 보다 중요성을 띤다.
2160    [그것이 알고싶다] - "장백산석경(石磬)"?... 댓글:  조회:3676  추천:0  2018-04-11
석경(石磬) 1호 장백산지역에서 발견 (ZOGLO) 2018년4월11일  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문화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 제공 4월 8일,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쳐 길림성 장백산 서남비탈 만강에서 발견한 5점의 천공석기는 신석기시기의 ‘장백산석경(石磬)’임이 확인되였고 돈화시 강자유적지(岗子遗址)에서 발견한 석경도 전문가들로부터 확인되였다. 이는 동북 장백산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오래 된 악기로서 장백산 력사,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한다. 4월 8일, 길림대학, 길림성문물감정위원회, 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의 전문가, 학자들이 참가한 감정회의가 장춘에서 소집되였다. 길림대학변강고고중심 교수, 중국고고학회 구석기전문위원회 부주임 진전가, 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회장, 길림성인민정부 문화력사연구관 연구원 장복유, 길림성문물감정위원회 주임위원 조령실연구원 등이 감정회의에 참석했다.        ‘장백산석경’1-5호(오른쪽부터 왼쪽) / 장복유 찍음 우리 나라 구석기고고 권위자 진전가교수를 조장으로 하는 전문가 소조는 5점의 천공석기가 석경임을 인정, 각기‘장백산석경’1-5호로 이름을 달았다. 그중‘장백산석경’1호의 가장 긴 부분이 35센치메터, 너비 21센치메터이며 구멍 부분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9센치메터, 구경 길이는 7센치메터, 너비는 5센치메터, 깊이 4센치메터이며 무게는 7.75킬로그람이다. 구조, 형태로부터 음색에 이르기까지 모두 석경의 형태와 두드리면 생기는 듣기 좋은 공명의 기본특징에 부합되여 장백산지역의 조기 인류의 격타악기로 확정했다. 전문가는 2-5호‘장백산석경’은 조기 형태라고 추측, 제사를 지내고 악무행사중의 격타절주로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다른 용도에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장백산 석경은‘편경(编磬)’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덧붙여 말한다. 이외 2017년 5월 17일, 장복유와 우아여, 림삼, 등수평 등이 돈화 강자유적지에서 한점의 석경을 발견했는데 구멍 변두리와 아래변이 약간 파손되였다. 이 석경도 전문가소조의 확인을 받았다. ‘장백산석경’1호/ 장복유 찍음 돈화시 강자유적지에서 발견한 석경 / 장복유 찍음 장복유의 소개에 따르면 2014년 10월 20일, 장복유가 장백산 서남비탈 송화강 상류에서 력사문화자원을 조사할 때 만강진 풍림촌에서 구석기시기의 손도끼를 발견, 진전가교수의 감정을 거쳐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년전의 도구로 인정되였다. 2015년 7월 7일, 장복유는 장백산관리위원회 지남구 구위 서기 조수청 등과 만강촌에 가 전야조사를 할 때 구멍이 있는 석기를 발견, 신석기시기의 물건임을 초보적으로 판단, 후에 ‘장백산석경’1호로 명명했다. 그후 만강진의 ‘눌은옛성(讷殷古城)’주변지역에서 련이어‘장백산석경’2-5호를 채집했다.  ‘장백산석경’ 1호, 제일 먼저 발견한 우건/ 장복유 찍음 진전가교수는 ‘장백산석경’의 가치는 장복유가 발견한 ‘장백산손도끼’와 어깨를 겨룰수 있다고 하면서 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 문화 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를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전문가들의 소개에 따르면 우리 나라 고대에 팔음악기 분류법이 있다. 즉‘금(金),석(石),토(土),혁(革),사(丝),목(木),포(匏),죽(竹)’으로서 이중 ‘경(磬)’은 석류에 속한다. 경(磬)을 또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단독으로 된 큰 경이라 ‘특경(特磬)’이라고 부르며 다른 하나는 ‘편경(编磬)’이라 부른다 한다. 전문가들은 ‘장백산석경’과 돈화강자석경은 신석기시기의 것임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확실한 년대를 알려면 진일보로 되는 고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복유와 ‘장백산석경’ 1호/ 장희 찍음 알아본 데 의하면 ‘장백산석경’을 장백산지남구‘눌은박물관(讷殷博物馆)’의 ‘진관의 보물’로 삼고 공개 전시하기로 했다. / 사진 글 신화사 편역 /길림신문 홍옥  
215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고래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5399  추천:0  2018-04-11
[포토 뉴스] 고래 구출 대작전                  '20시간의 사투' 김정근 기자 2018.04.10.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경향신문] 자원봉사자들과 해군 구조대가 파도와 싸워가며 고래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대서양을 면한 아르헨티나 남동부의 유명한 휴양도시 마르 델 플라타 해변에 혹등고래 한마리가 밀려왔다. 자원봉사자들과 해군 구조대가 필사의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고래는 결국 숨을 거뒀다.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해변에 밀려와 있는 혹등고래. AFP연합뉴스 몸 길이 8m, 무게 8t의 어린 혹등고래가 발견되자마자 많은 시민들의 응원 속에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주민들과 해군 구조대는 중장비를 동원해 고래 주변의 모래를 파 바닷물을 끌어들였지만 고래 스스로 헤엄쳐 나가기에는 수심이 너무 낮았다. 중장비를 동원해 고래를 옮기는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구조대가 중장비를 동원해 모래를 파내며 고래 주변에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원봉사자들은 고래 몸에 수분이 마르지 않도록 천을 덮고 물을 끊임없이 뿌려댔지만 20시간이 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린 혹등고래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래에게 바닷물을 뿌려주는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고래에게 물을 뿌려주는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필사적인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숨을 거둔 혹등고래. AP연합뉴스  
2158    [그것이 알고싶다] - 문화와 력사를 배우는 "국기"... 댓글:  조회:5596  추천:0  2018-04-11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세계 국기백과’ㅡ 국기는 고대 이집트나 중국의 주(周)나라 때부터 썼지만 나라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쓴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다.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쓴 이후 각국으로 퍼졌다. 대한민국은 ‘태극기’ 미국은 ‘성조기’ 영국은 ‘유니언 잭’ 중국은 ‘오성홍기’ 일본은 ‘일장기’라 부른다. 국기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희망이 담겨있다. 국기에는 보통 빨강색, 흰색, 파랑색, 초록색, 노랑색, 검정색 등 6가지 색이 쓰인다. ①빨강색의 의미: 모든 사람들의 피는 민족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빨강색이다. 그래서 모든 인류의 화합을 의미한다. 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독립을 위한 투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②흰색의 의미: 종교적인 의미 또는 사상이나 이상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태극기는 순결과 평화 및 고요함을 뜻하기도 한다. ③파랑색의 의미: 바다나 하늘을 의미한다. 태평양 주변의 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의 국기에 쓰인 파랑색은 물의 소중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④초록의 의미: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는 초록색을 신성한 색깔로 여긴다. 중앙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국기에 쓰인 초록색은 숲과 평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희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⑤노란색의 의미: 노란색은 부유함을 상징한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국가에서는 특히 금(金)과 같은 풍부한 자원을 뜻한다. 서남아시아 나라들의 국기에서 노란색은 지도자를 의미한다. ⑥검정색의 의미: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국가에서 검정색은 주민을 상징한다. 또 아픈 역사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시는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염원의 상징이다. 각 나라 국기의 문양에 흔히 들어간 디자인은 십자가, 태양, 달과 별이 많다 ①십자가의 의미: 유럽 여러 나라의 국기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를 비롯해 그리스, 영국,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의 국기에선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을 넣었다. ②태양의 의미: 태양은 빛과 생명을 주는 것을 상징한다. 일본의 일장기와 필리핀, 네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니제르의 국기에서 태양을 볼 수 있다. 태양은 대개 노란색으로 표현하지만 빨강색과 흰색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③달의 의미: 초승달은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처럼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별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이슬람교를 상징하기도 한다. 유목 생활을 하는 사막지역에서는 밤하늘의 초승달이 길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존재다. 또 팔라우의 국기에는 보름달이 떠있다. ④별의 의미: 별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북한, 베트남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를 상징한다. 미국이나 필리핀, 브라질의 국기에서 별의 개수는 주의 수를 나타낸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사모아 등 남태평양에 위치한 나라들의 국기에는 남십자성이 쓰였다. 이스라엘 국기에는 다윗을 상징하는 육각형 별이 들어 있다. 가나, 뉴질랜드, 모로코, 미국, 베트남, 북한, 소말리아, 솔로몬제도, 중국,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 뉴기니, 에디오피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기에도 별이 들어있다. 국기에 동물 그림이 들어간 과테말라(케찰) 도미니카연방(앵무새), 멕시코(독수리), 몰도바(독수리와 소), 몰타(말), 베네스엘라(말), 볼리비아(콘도르), 부탄(용), 스리랑카(사자), 스페인(사자), 안도라(소), 알바니아(독수리), 에콰도르(콘도르), 우간다(관학), 이집트(독수리), 잠비아(독수리), 짐바브웨(전설의 새), 카자흐스탄(독수리), 크로아티아(사자, 염소), 키리바시(군함조), 파라과이(사자), 파푸아뉴기니(극락조), 피지(사자)등의 국가도 있다. 국기에 식물이 들어간 나라는 과테말라(월계수), 그레나다(대추야자), 도미니카 공화국(월계수, 종려나무), 레바논(삼나무), 멕시코(선인장), 바누아트(고사리), 베네스엘라(야자나무, 올리브), 벨리즈(월계수, 마오가니), 볼리비아(빵나무), 산마리노(월계수, 떡갈나무), 스리랑카(보리수잎), 아이티(야자나무), 아프가니스탄(밀이삭), 에리트레아(올리브), 에콰도르(월계수, 올리브)엘살바도르(월계수), 적도기니(맹그로브나무), 캐나다(단풍잎), 키프로스(올리브),투르크메니스탄(올리브), 파라과이(야자나무, 올리브), 페루(월계수, 올리브), 피지(카카오, 바나나, 사탕수수, 야자수)등이다. 이중 경제적 또는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의 국기 문장에 대부분 십자가가 새겨진 경우가 많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세계 각국을 연구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국기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가 될 것이다. 김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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