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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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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한국 최초의 자유시 댓글:  조회:4047  추천:0  2015-07-12
정형시(定型詩)「명사」『문학』 :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맞추어 지은 시. 우리나라의 시조, 한시(漢詩)의 절구와 율시, 서양의 소네트 따위이다 자유시(自由詩)「명사」『문학』 : 정하여진 형식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 아래는 정형시와 자유시 입니다. ○ 정형시 - 이은상의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홀로 울게 하여라 ○ 최초의 자유시 - 주요한의 ‘불놀이’ [1]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2]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3]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4]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5]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1349    新體詩란? 댓글:  조회:5151  추천:0  2015-07-12
新體詩 개화기 시가(開化期詩歌)의 한 유형으로 한국 근대시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식. ‘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愛國歌類型),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唱歌)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신시가(新詩歌) 또는 신체시가(新體詩歌)라고도 불린다. 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기점으로, 1919년 ≪창조 創造≫ 창간호에 실린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 이전의 ≪학지광 學之光≫·≪청춘 靑春≫·≪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 등의 잡지나 그밖에 발표된 이광수(李光洙)·현상윤(玄相允)·최승구(崔承九)·김여제(金輿濟)·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 등의 초기 시들이 ‘신체시’ 또는 ‘신시’의 범주에 든다 하겠다. 신체시라는 용어는 일본의 ≪신체시초 新體詩抄≫(메이지 15)에서 메이지시가(明治詩歌)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借用)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격수의(調格隨意), 즉 ‘어수(語數)와 구수(句數)와 제목은 수의(隨意)’라는 장르 개념을 의식한 ≪소년≫지의 ‘신체시가대모집(新體詩歌大募集)’ 광고와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광고에서 ‘신체시가’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신시’라는 용어는 최남선이 <구작삼편 舊作三篇>(소년, 1909.4.)의 창작 동기를 밝힌 후기(後記)에서 ‘신시의 형식을 시험하던 시초’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용어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는바, 일설은 일본의 신체시와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신시’로 하자는 것이고, 또 다른 이견(異見)은 신시라는 범칭(汎稱)보다는 장르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신체시’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는 것이다. 신체시의 기점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잡는 것이 통설이다. 여기에 몇 가지 이설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아직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이설들로는 우선 조지훈(趙芝薰)의 경우에, <구작삼편>이 실린 ≪소년≫의 ‘후기’에 <구작삼편>이 1907년의 작품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최초의 신체시로 <구작삼편>을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바이런(Byron,G.G.)의 <대양 The Ocean> 사이의 영향 관계를 탐색하여 그 유사성의 추출을 근거로 이 작품을 최초의 신체시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즉, 최남선 스스로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자신의 창작시라고 자처한 적도 없으며, ‘신체시’나 ‘신시’라고 명명한 적도 없고, 다만 권두시로 제시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대양>의 번안시(飜案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체시의 기점을 1909년 4월호에 실린 <구작삼편>과 <두고>에 두기도 한다. 신체시는 근대 정신의 소산으로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운동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에 이질적인 요소라 함은 형태적인 면에서는 정형적인 율문성에서 일탈한 산문성을 뜻한다. 한 마디로 자유율화한 산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시 이전까지의 고시가·애국가 유형·창가 등이 가창을 전제로 한 율조라면, 신체시는 산문화한 자유시(自由詩)로 이행되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애국가 유형과 개화가사가 3·4조, 4·4조의 음수율을 지키고 있고, 창가가 각 행간의 음수율을 7·5, 8·5, 6·5조로 일치시키고 있는 데 비해서, 초기의 신체시는 분련체(分聯體)로서 각 연 대응행에서만 음수율의 일치를 보인다. 신체시가 고시가의 율문적인 정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의 자유율화한 시가 형태인 산문적인 속성으로 변하는 과정은 근대시사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물론 이 경우의 신체시의 산문성은 ‘근대(近代)’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그 산문성의 한계는 매우 모호하다. 엄밀한 의미로 볼 때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구작삼편> 등 일련의 신체시들이 지닌 산문성은 극히 불안정하며, 창가의 율문성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하여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산문성의 이면에는 부분적으로 애국가 유형이나 창가의 율격(律格)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구작삼편>에서도 ‘그러나’와 ‘우리는’ 등의 삽입구를 제외하면 7·5조라는 창가의 음수율과 일치한다. 또한 이들 시의 분절법이나 후렴성도 거의 ‘창가적인 정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창가의 율문성과 자유시의 산문성의 과도기적인 혼합 양상은 신체시의 대표적인 형태적 특성으로, 조연현(趙演鉉)의 “엄격한 율문이나 정형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인 자유가 너무 강하며, 완전한 산문으로 보기에는 율문적인 정형성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채 있다.”는 지적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율문적이고 반산문적인 또는 이들 양자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신체시는 그 형태에서만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정한모(鄭漢模)는 최남선이 장르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여 “시의식에 선행하는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으로 말미암아 모처럼 시도된 형태적인 ‘새로움’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시 자체가 생명으로 삼아야 할 시정신(poesie)의 무자각 상태야말로 신체시가 근대시로 발전함에 있어서 그 형태면에서 보다 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남선의 신체시는 자아의 각성이나 탐구를 지향하기에 앞서 작자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각 연 대응행에서 음수의 일치를 꾀하고 같은 연의 시행간에서는 음수의 변화를 보이는 신체시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구작삼편>이 있다. 이외에도 최남선의 <신대한소년 新大韓少年>·<두고>가 있으며, 이광수의 <말듣거라>와 현상윤의 <웅커리로서> 등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각 연 1·7행의 반복구(反復句)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튜르릉, 콱, 7행)를 제외한 나머지 행에서는 각 행간의 음수가 완전히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2·4·6행은 3·3·5의 11음수로 이루어져 있고, 3·5행에서 각 행연간의 규칙적인 율격에서 몇 군데 변조를 보일 뿐이다. 이러한 각 행과 연간의 음수율은 <구작삼편>·<신대한소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고>는 총 2연으로 외견상 그 정형률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시인 듯하지만, 면밀히 검토해보면 각 연 대응행의 음수율이 보다 철저히 지켜져 있다. 그러나 각 행과 연간의 동음(同音)이나 유음(類音)의 배치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그 시적 형상력도 뛰어나 최남선의 초기 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의 초기 시가 근대시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 서구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면, 이광수의 초기 시는 그 한 측면의 변모를 시도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최남선이 거의 외형적인 음수율에만 치우쳐 직설적인 토로에 머물렀다면, 이광수는 음수율의 변화뿐만 아니라 대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에 기법적으로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말듣거라>에서도 ‘님’의 이미지는 역사의식이 보다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현상윤의 <웅커리로서>도 신체시형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감정이 전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채, 내적인 갈등으로 심화되어 형상화된 점이 특색이다. 요컨대, 현상윤에 이르러 시적 기교가 최남선이나 이광수에 비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전개되어갔다고 할 수 있으며, 1915년을 전후하여 김억·최승구·김여제·돌샘(石泉) 등에 이르면 자유시의 유형에 훨씬 가까운 산문시형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개아(個我)의 서정성에다 발상법을 두고 있어 근대시에 이르는 전환기에 중요한 시적 변모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48    新體詩 시인 - 최남선 / 자유시 선구자 - 주요한 댓글:  조회:5131  추천:0  2015-07-12
신체시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목차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교과 연계표 교과 연계표 구분 교과 단원 중학교   문학의 갈래 고등학교 국어Ⅱ 한국 문학의 전승과 흐름 ​ ​국문학의 역사를 배울 때 신체시라는 말이 나왔어요. 근대 문학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신체시는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자유시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 자유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 우리나라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 문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시조와 가사 외에도 다양한 시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전통적인 가사가 변한 개화가사도 있었고, 서양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도 있었습니다. 개화가사와 창가는 글자수에 엄격한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개화가사는 4 · 4조 2행으로 대구의 형식이었고 창가는 7 · 5조를 기본 율격으로 반드시 글자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유로운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차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글자수를 맞추는 정형적인 외형률에서 벗어난 작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당 최남선이 주로 창작했던 신체시입니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여했던 이름이지요. 신체시는 형태적인 고정성에서 벗어나 시적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비록 뚜렷한 한계는 있었지만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데에 계기를 만들어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이 작품은 의인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강한 힘과 기개를 지닐 것을 전하고 있는 시입니다. 표현이 소박하고 내용이 계몽적이어서 본격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형식은 창가라든가 개화가사와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행과 7행은 파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표현되어 있고 2행과 4행과 6행은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처럼 ‘3 · 3 · 5조’ 혹은 3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총 4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5음보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이 시에는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 행이 서로 다른 글자수로 배열되어 있으니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리듬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처럼 신체시는 우리 시에서 최초로 정형률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형률을 깨뜨리기는 했지만 신체시를 근대적인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용된 1연의 리듬이 전체 6연에 계속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내용상 차이가 있을 뿐, 시의 형태가 6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시를 자유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시는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기보다 계몽적인 주제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근대 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지요.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 자유시는 1910년대에 들어와서 창작되었습니다. 김억과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소개하면서 신체시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시적 형식과 리듬을 중시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것이지요.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주요한, 「불놀이」 중에서  이 작품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았던 작품입니다. 1919년 잡지 『창조』의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슬쩍 봐도 알겠지만 이 시는 산문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자수의 제한이라든가 연과 행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내용을 살펴보아도 전혀 계몽적이지 않습니다.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와 같이 시적 화자의 개인적인 정서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민중 계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가 시적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작품처럼 형식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 자유시는 대략 1910년경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구 문학을 소개한 잡지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남선이 만든 『소년』과 이후에 『창조』, 『백조』, 『폐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구 문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한 잡지로는 김억 등이 창간한 『태서문예신보』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는 서구의 근대 시를 비롯하여 당대의 최신 시와 시 이론까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억은 이 잡지에 다양한 서구의 시들을 번역하여 실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오뇌의 무도』라는 번역 시집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1347    명시인 - 박팔양 댓글:  조회:4272  추천:0  2015-07-09
   박팔양 시인 : -서사시 를 비롯하여 천여 편의 시와          극 등 문학예술작품을 발표하여 북한 문단사에 일획을 장식한 시인. -1905년 8월 경기도 수원에서 8형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남. -경성법학전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짐. -1923년 처음으로 시 작품 ‘물노래’를 발표함. -1925년 8월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의 회원으로 문필활동 본격화 -장시 ‘ 민족의 영예’가 있고, 장편서사시 ‘눈보라 만리’가 있음 -애국열사릉에 안치됨. -비전행장기수 박문재(52년 동안 남한에 수인으로) 씨가 시인의 아들임.       밤차 - 박팔양(필명: 김여수)   추방되는 백성의 고달픈 백(魄)을 실고 밤차는 헐레벌덕어리며 달어난다 도망군이 짐싸가지고 솔밭길을 빠지듯 야반(夜半) 국경의 들길을 달리는 이 괴물이여!   차창밖 하늘은 내 답답한 마음을 닮었느냐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하고나 유랑(流浪)의 짐 우에 고개 비스듬히 눕히고 생각한다 오오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어디로 갔느냐   비닭이*집 비닭이장같이 오붓하든 내 동리 그것은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차바퀴 소리 해조(諧調)*마치 들리는 중에 희미하게 벌려지는 괴로운 꿈자리여!   북방 고원의 밤바람이 차창을 흔든다 (사람들은 모다 피곤히 잠들었는데) 이 적막한 방문자여! 문 두드리지 마라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울고 있다   그러나 기관차는 야음(夜音)을 뚫고 나가면서 ‘돌진! 돌진! 돌진!’ 소리를 질른다 아아 털끝만치라도 의롭게 할 일 있느냐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가 있느냐   피로한 백성의 몸 우에 무겁게 나려 덥힌 이 지리한 밤아 언제나 새이랴나 언제나 걷히랴나 아아 언제나 이 괴로움에서 깨워 일으키랴느냐 (ꡔ조선지광ꡕ, 1927.9)   * 비닭이 : 비둘기. * 해조 : 아름다운 가락.     김여수(金麗水)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시를 발표한 박팔양은 임화를 중심으로 한 단편 서사시 계열과는 달 리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이러한 서정성은 일찌기 ꡔ요람ꡕ을 만들기도 하였던 시적 감수성이기도 한데, 이러한 성격에서 그는 초기 계급 문단에 관여하기도 하고 1930년대 중반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시는 추방당하는 유랑민의 비애를 거친 호흡과 직설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 연의 영탄적 표현에서 보듯 박팔양의 젊은 시절의 낭만적 어조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시에는,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한 ‘추방되는 백성’의 회한과 ‘무겁게 나려 덥힌 지리한’ 국경의 밤의 이미지가 ‘괴물’ 같은 기차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식민지 현실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주된 시어도 ‘추방’․‘고달픈’․‘헐레벌덕어리며’․‘달어난다’․‘답답한’․‘숨맥힐 듯’․‘가슴 터질 듯’․‘캄캄하고나’․‘괴로운’․‘적막한’․‘피로한’․‘무겁게’․‘나려 덥힌’ 등에서 보듯 피압박의 이미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어휘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추방되는 백성’으로, 그는 ‘백성’이라는 시어에서 보듯 나 혼자만이 아닌 식민지 백성 전체를 대유한다. 그리하여 2연의 1행 ‘내 답답한 마음’은 4연 마지막 행의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으로 밤차를 타고 있는 모든 승객―모든 유랑객의 마음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닭이집’ 같은 오붓한 고향을 등지고 ‘도망꾼’처럼 ‘솔밭길을 빠지듯’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나선 신세이다.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밤차에 몸을 실어 낯선 북방의 산하를 헤맬 것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따스하게 맞아 줄 ‘아름답든 꿈’은 없으리란 것을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할 뿐이다. 모두 피곤히 잠들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말없이 울고 있을 뿐인데, 차창에는 북국의 거친 바람이 부딪히고, ‘괴물’ 같은 밤차는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돌진’할 뿐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이러한 추방된 백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의롭게 할 일,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를 찾는다. 그것만이 이 괴로움에서 백성들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추방의 원인이,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사라지고 ‘비닭이집’ 같은 평화로운 고향이 지금은 황폐화된 것에서 보듯, 식민지 현실의 질곡에 있는 한, 시적 자아는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에 한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통한 박팔양의 작품 행동인 것이다.    너무도 슬픈 사실- 봄의 선구자 ‘진달래’를 노래함  - 박팔양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 이 가난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녈픈 꽃을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로 아침 비비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꽃을 무슨 말로 노래하라 하십니까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친구께서도 이미 그 꽃을 보셨으리다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 연분홍의 진달래꽃을 보셨으리다.   진달래꽃은 봄의 선구자외다 그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외다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그 엷은 꽃잎은 선구자의 불행한 수난이외다   어찌하야 이 나라에 태어난 이 가난한 시인이 이같이도 그 꽃을 붙들고 우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이외다   노래하기에는 너무도 슬픈 사실이외다 백일홍같이 붉게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을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을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을 노래하느니 차라리 붙들고 울 것이외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오라는 봄의 모양을 그 머리속에 그리면서 찬 바람 오고 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 고 ― (ꡔ학생ꡕ, 1930.4)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 - 심상운의                                                                이선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 심상운,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의 시 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시 쓰기 방법을 모색한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새롭게 하였다. 아직 하이퍼텍스트 시론은 학계의 학문적인 검증을 거쳐야 하고 더 연구하고 발전할 과제가 많지만 심상운 시인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증명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하여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도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심상운의 시 에 나타난 하이퍼텍스트적 요소를 살펴보고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역으로 추정해 보고자 한다.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는 기존의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의 제약을 벗어나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다. ‘건너뛰기, 포기하기, 다른 텍스로의 이동’ 등 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텍스트를 검색한다. 하이퍼텍스트는 한 편의 시 안에서 단어, 행, 연을 동시적으로 나열하여 한 공간에서 공존하게 한다. 리좀이라고 불리는 그물상태를 구축하여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맞게 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은 몽타쥬 기법을 쓰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였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사건과 사실을 펼쳐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그림에 색칠을 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보다 자유로운 상상적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독자는 가상현실의 플롯을 각각 다르게 상상하여 해석하고 감상한다.   ‘병원 응급실’, ‘냉동고의 찬밥’, ‘이집트 미라’는 평범한 듯 보이는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얘깃거리를 담고 있다. 세 개의 그림은 하이퍼텍스트의 리좀 이론에 따라 다양한 얼개를 가지고 그물망을 짠다. 1연, 2연, 3연 모두 각각의 객체이지만 또한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1연의 ‘재희 아빠’는 2연의 중심 주제인 ‘밥’을 구하려고 피곤한 몸으로 일에 몰입하다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또한 응급실의 ‘재희 아빠’는 통상적으로 병원 응급실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장례식장,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3연의 ‘이집트 미라’인 고대 인간의 주검은 1, 2연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1, 2, 3연이 본질적 인간 생활과 일맥상통하며 연계된다. 동서양을 떠나서 남자는 기본적으로 가족부양이라는 가장의 책임을 떠맡고 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링크되어 공존하면서 연상작용을 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1연,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40대 사내’라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시는 출발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화하여 ‘보여주기’ 한다. 극한상황을 제시하여 사건을 구성한다. 그런데 2연에서 생뚱맞게 사물인 ‘밥’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이물질들의 결합이다. 병렬적 구조인 ‘사내’와 ‘밥’은 서로 내포적이거나 종속적이지 않으며 등가적이다. 그런데 그 밥은 정상적인 밥이 아니다.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이다. 마치 냉동고에 안치된 시체처럼 서늘한 기운이 나는 ‘찬밥’이다. 1연의 ‘사내’는 세상에서 ‘찬밥신세’로 살다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사내가 세상의 밥이었을 수도 있고 ‘세상’이 사내의 '밥‘이었을 수도 있다. 사내는 ‘재희 엄마’와 ‘재희’에겐 그들을 먹이는 밥일 수도 있다. 가족을 먹이려고 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응급실에 실려온 것이다.. ‘밥’은 냉동고에서 찜통으로 들어가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녹는다. 차갑고 어두운 기억이 응고된 밥.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는 밥의 가슴. 2연의 ‘밥’은 1연의 ‘사내’와 치환되어 동일시된다. 그러나 이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독자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그것이 사물시의 장점이다.   심상운 시에서의 ‘밥’은 무생물이 아닌, 생각과 고통을 느끼며 가슴이 얼어붙은 활유화된 밥이다. ‘밥’과 ‘사내’의 아픔을 병치시켜 사내의 극단적으로 어려웠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단순한 밥이 아니다. 이 ‘밥’은 먹을 수 있도록 녹기까지 상당히 복잡한 사연을 가진 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연은 ‘그’라는 3인칭을 써서 1연의 ‘사내’와 ‘그’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여지를 준다.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는 ‘그’는 전혀 1연과 다른 사내일 것이다. 2연의 ‘그’는 1연의 ‘사내’를 진찰하는 의사일 수도 있다. 의사는 사내를 찔러보며 관찰하고, 진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검진한다. 또 어쩌면 2연의 ‘그’는 관을 꺼내서 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1연과 2연은 다초점, 다원화된 구조의 그물망을 짜서 독자에게 복잡한 리좀을 만들고 있다. ‘그’는 여러 정황적 상황과 상징성을 가지며 독자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의 의미시보다 해석의 폭이 넓다. 이렇게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의 단선구조를 다선구조로 바꾸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링크하여 관념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그 상상력은 사실에서부터 출발한 객관화된 상상력이다.   그런데 3연은 1, 2연과 또 동떨어진 소재 ‘이집트 미라’가 등장한다. 1연과 2연과 3연은 각각 다른 이야기로 ‘낯설게하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지금까지 연과 연이 결합하여 의미를 생산하던 시 쓰기 방법을 버리고 연과 연의 연결을 일부러 끊어버린다. 시적 거리가 먼 사물을 등장시켜 시적 논리와 질서를 파괴한다. 인간인 ‘사내’와 무생물인 ‘밥’, ‘사진’을 한 공간에 병렬 배치하여 같은 값을 준다. 지금까지 시의 연에서 이뤄지던 내포와 종속의 관계를 부정한다. 3연의 미라는 실제의 미라가 아니라 사진에서 본 ‘목관’ 속의 ‘미라’다. 고대의 숲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5월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닌다. ‘오전 11시’라는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현재성을 제공하여 실감을 더하고 있다.   1연- 객관적 사실. 2연- 객관적 사물과 상상력. 독자를 연상작용으로 유도한다. 3연- 객관적 사물인 사진. 다시 사진에서 상상력을 더하여 현재로 이동. 심상운 시인은 거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위의 시를 썼을 수도 있다. 시인은 벽에 걸린 이집트 미라의 목관 사진을 보면서 주검을 생각하고, 죽음은 병원응급실에 대한 심상운 시인의 사전지식인 기억과 만난다. 죽음은 다시 직업과 연결되고 직업은 밥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단순한 이집트 미라 목관 사진 한 장이 병원, 밥을 연상작용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또한 현재의 ‘새소리’를 등장시켜 화자인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온다. 흡사 영화의 회상 기법처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사진을 ‘본다’는 작은 사실에서 출발하여 ‘바라본다 - 관찰한다 - 상상한다 - 이야기를 조립한다 - 뼈대를 세운다 - 꾸민다’는 시적 발상과 완성까지, 시 쓰기의 전 과정을 심상운 시인은 여과 없이 시로써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눈을 감고 상상력의 가지를 뻗어 ‘무화과나무 목관- 무화과나무 숲- 숲에 사는 고대의 새-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새소리- 현대 청계산- 오전 11시의 화자인 나’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연상을 한다. 시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에 같은 값을 주고 병렬 배치한다. 사진에서 생물과 사건이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상력의 줄기를 잡고 우주 끝까지 연상작용을 하는 상상력을 중시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논리성을 파괴하며 무의미를 추구한다. 논리를 버리고 의미찾기를 버린다. 연과 연의 연결고리를 일부러 끊어버린다. 연과 연의 지시, 명령을 받지 않은 언어는 상상력의 폭이 넓어져 독자는 감각적이며 청량한 정서적 미의식을 경험한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는 사물시의 본질, 사물에서 파생된 상징과 본질적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2연의 ‘밥’처럼, 밥이라는 사물은 일과 직업이라는 묵계된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찬밥’을 녹이는 과정은 ‘찬밥’이 아웃사이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이된 것처럼 굳어버린 변형된 의미체계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병원 응급실’과 ‘미라’도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학습된 섬뜩한 무서운 이미지가 독자에게 연상작용을 하여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독자는 상상력의 범주를 넓혀 1, 2, 3연을 조합하여 극적으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꾸민다. 스스로 사건을 구성하는 토대는 경험과 지식, 극적구조물을 짜는 능력에 따라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이것이 하이퍼텍스트 시가 추구하는 텍스트의 명령과 지시,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시 감상의 매력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무의미를 추구한다. 무의미한 단어와 무의미한 사실들을 혼합시켜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보는 것이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독립된 연과 단어를 나열하여 독자가 각기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각각의 연들은 병렬적으로 널브러져 있지만 서로 말을 하고 연관을 갖는다. 리좀이 되어 단어와 이미지들이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의 모듈(module) 이론은 최소 독립된 단위인 단어들이 연속적으로 연계되어 한 공간에 나열된다. 그 단어나 문장, 연은 바꾸거나 버려도 전체에 전혀 영향을 미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모듈 이론이다. 교환 가능한 이미지, 독립된 기능을 가지면서도 분리될 수 있는 덩어리들이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 방법론이다. 또한 시는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시를 새롭고 감각적이게 한다.     또한 연과 연은 병렬배치 되어 있지만 각 연들은 서로 링크된다. 블록과 블록은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검색된다. 또한 각 연의 단어와 단어, 이미지와 이미지들도 병렬 배치되어 있지만 서로 링크된다. 모듈처럼 단어와 이미지, 사건들이 한 연 안에서 모자이크처럼 내밀한 구조로 연합되어 있다. 단어와 단어, 연과 연, 이미지와 이미지는 동시다발적 구도를 가지고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의존적이며 주장적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 용어로서 한 개의 모티브를 검색하기 위해서 여러 번 클릭한다. 이 시의 화자는 ‘검붉은 색의 그림’을 클릭한다. 또한 디지털의 모자이크 기능처럼 ‘을지병원 응급실’이라는 절박한 상황과 ‘밤 12시 05분’이라는 시간을 클릭하고, ‘재희 아빠, 울고 있는 중년 여자,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를 클릭하여 모자이크 하여 빠르게 빤짝빤짝 보여주고 있다.   2년에서도 ‘허연 비닐봉지, 냉동고, 딱딱, 후끈후끈, 찜통, 얼굴, 가슴, 밥덩이, 수증기, 끈적끈적, 입김, 차갑고, 어둡고, 기억, 응고, 뼈, 가슴, 축축, 푸른, 옷, 가스레인지, 나무젓가락 등, 밥의 살, 찔러본다, 웃다’ 등 많은 명사와 형용사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3연에서는 ‘이집트, 미이라, 햇빛, 찬란, 꿈, 무화과나무, 목관, 사진, 고대 숲, 날다, 새,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 청계산, 숲, 오전 11시’ 등 시간, 사물, 공간, 시대를 짜깁기 하여 종적, 횡적으로 모자이크하였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추상화와 같다. 연과 연은 흩어져 있지만 전체로 집합된다. 단어와 단어는 모듈과 리좀으로 얽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색깔이 섞인 구성과 같다. 그 구성의 덩어리들이 떠다니는 것이 연이다. 여러 개의 연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의 인상을 결정한다. 독자는 추상화를 일일이 색깔을 분석하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고 전체적인 인상으로 감상한다. 즉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황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유기체의 결합은 모자이크처럼 여러 색깔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여러 개의 구성물과 색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일일이 의미를 분석하지 않고 전체적인 상황으로 그림을 받아들인다. 즉 추상화는 감상자의 직관과 느낌이 중요하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의성어와 의태어, 무의미한 단어 나열로 가볍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미를 추구하던 아날로그 시를 버리고 하이퍼텍스트 시가 무의미를 추구하면서 경박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다. 상황제시만 있지 인간 삶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는 철학의 부재가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똑같은 형태의 시가 난립하여 개성적인 작품생산이 어렵고 자기 상표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름만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어 던지기는 어떤 단어로 대체하여도 되기 때문에 절실함과 진정성이 없다고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다. 그에 반하여 심상운의 에서는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사유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심상운 시인은 ‘죽음’과 ‘병’, ‘밥’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적된 사유의 부재와 무작위 단어들을 연결하여 만들어낸 무의미한 이미지 나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진정성의 결여를 극복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 ‘밥’이다. 또한 ‘밥’을 얻기 위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병과 죽음을 얻는다. 인간생활에서 죽음과 밥, 병이라는 테마는 ‘전쟁과 사랑’만큼 절실한 문제다. 인간이 영원히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예술의 테마다.     심상운은 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가 단어 던지기와 무의미 단어 나열로 가볍고 정신없다는 비난을 무력화시켰다. 위의 시는 여러 상황을 모자이크하여 보여주면서도 산만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질서정연한 폼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퍼 시의 문제점은 바로 그 파괴된 형태를 보여주는 시 쓰기를 실현하면서 보여주는 단어던지기와 무분별한 단어의 조합과 나열, 각각 다른 연의 ‘낯설게하기’ 기법이 무작위적으로 여러 편의 시를 생산했을 때 그 새로운 방법론이 시인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양산된 시가 과연 새로움을 가질 수 있는지, 창조성과 유일성, 철학을 가진 예술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이 새로운 문예사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쓰여진 하이퍼텍스트 시로써 시론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필자를 포함하여 하이퍼텍스트 시를 쓴다고 주장하는 시인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현대시의 흐름 현대시의 흐름   1. 3 ·1운동 무렵 ∼ 192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민족의 최대 희망이었던 3·1운동의 좌절은 민족 전체에게 절망과 방향 상실의 비애를 안겨 주었다. 국권 상실 이후, 정치적 좌절감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은 경제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착취와 세계 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화 현상의 심화로 민족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몇몇 선각자들은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2. 특 징 (1) 자유시형(自由詩形)의 확립 :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의 계몽성, 개념성, 비예술성을 극복한 본격적인 자유시가 창작되었다. 주요한(朱耀翰), 김억(金億), 김여제(金輿濟) 등이 그 선구자다.     시 인 작 품 실린 곳 연대 김여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학지광(學之光) 10호 1917 주요한 시내, 봄, 눈, 샘물이 혼자서 학우(學友) 창간호 1919 김 억 겨울의 황혼 태서문예신보 13호 1919 주요한 불놀이 창조(創造) 창간호 1919 (2) 동인지(同人誌) 문단의 형성 :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의 창간, , 등의 잡지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하여 많은 문예 동인지가 나와 동인지 문단 시대를 열었다. ① 창조(創造)     연 대 1919. 2. 1 ∼ 1921. 5. 30(통권 9호) 동 인 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김동환 의 의 - 최초의 순 문예 동인지 - 근대 문학 개척에 이바지 - 완전한 언문일치체 문장 확립 - 최초의 근대시인 '불놀이(주요한)', 사실주의 단편 소설 '약한 자의 슬픔(김동인)'을 실음 경 향 - 시 : 상징적 / - 소설 : 사실적 ② 폐허(廢墟)     연 대 1920. 7. 25 ∼ 1921. 1. 20(통권 2호) 동 인 황석우, 염상섭, 김억, 남궁벽, 오상순 경 향 퇴폐적, 상징적 ③ 장미촌(薔薇村)     연 대 1921 동 인 박종화, 변영로, 노자영, 박영희 의 의 - 시 동인지의 효시 - 의 전신 - 현대시 창작에 이바지함 경 향 낭만적 ④ 백조(白潮)     연 대 1922. 1. 9 ∼ 1922. 9. 6(통권 3호) 동 인 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홍사용, 박종화 의 의 - 순 문예 동인지 - 가장 활발한 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짐. - 투르게네프 산문시 소개(나도향) 경 향 낭만적 ⑤ 금성(金星)     연 대 1923 동 인 양주동, 유엽, 백기만, 이장희 의 의 시 동인지 경 향 낭만적 ⑥ 영대(靈臺)     연 대 1924(평양) 동 인 김소월, 주요한, 김억, 전영택, 이광수 의 의 순 문예지, 의 후신 경 향 일정치 않음 (3) 감상적 낭만주의, 상징주의, 계급주의, 민족주의, 해외문학파 시의 전개 ① 초기 : 감상적(퇴폐적) 낭만주의 김억과 황석우가 를 통해 프랑수 상징주의 시를 번역 소개했으며 3ㅗ1운동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 프랑수 상징주의 시의 퇴폐적 경향(특히 C.P.보들레르 풍), 우울한 분위기의 러시아 문학의 영향, 당시 청년들의 치기(稚氣)어린 감상성 등이 어울려 애상(哀想), 탄식(歎息), 절망(絶望), 도피(逃避), 죽음의 찬미(讚美) 등 감정의 과잉 노출 현상을 빚었다. ② 중기 이후 : 서사시, 계급주의 시ㅗ시조와 민요시의 출현, 해외문학파의 순수시 소개 3ㅗ1운동 실패의 충격이 다소 가라앉게 된 1920년대 중반부터 문인들은 민족의 갈 길이 나라 찾기와 민족의 생존권 회복에 있음을 재인식, 새로운 삶의 전망을 품게 되었다. 이에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은 3편의 서사시를 썼고, 중심의 계급주의파 시와 중심의 민족주의파의 문학이 대립했다.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등이 시조 부흥운동을 폈고, 김소월, 김동환, 주요한 등이 민요시를 썼다. 한편 계급주의 시의 개념성, 전투성, 공격성을 비판하여 해외문학파가 순수시를 소개했다. ㉠ 김동환의 서사시(敍事詩)     시 집 발행처(실린 곳) 연 대 국경 (國境)의 밤 한성도서 1925. 3. 우리 사남매(四男妹) 조선문단 1925. 11.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 신문화사 1925. 11. 이 시들의 서사시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 개벽(開闢)     연 대 1920. 6. 25 ∼ 1926. 8. 1(통권 72호, 발행 금지) 동 인 박영희, 김기진 의 의 - 월간 종합지(천도교 후원) - 신문지법에 따른 첫 잡지 - 근대 문학에 이바지함 경 향 계급주의 ㉢ 조선문단(朝鮮文壇)     연 대 1924. 9 ∼ (통권 25호), 1927년 속간, 1935년 복간, 1936년 폐간 동 인 이광수, 방인근 의 의 - 순 문예지 - 최초의 신인 등용 추천제 실시 - 박화성, 최학송, 채만식, 계용묵 등 많은 신인 배출 경 향 민족주의, 반계급주의 ㉣ 해외문학파(海外文學派)와     연 대 1927 ∼ 1931 동 인 김진섭, 정인섭, 손우성, 이하윤, 이선근, 이헌구, 함대훈, 김광섭 의 의 - 최초의 번역 문학지 - 해외문학연구회(1926)의 기관지 - 연극(번역) 공연의 모체 경 향 순수 문학, 반계급주의 ㉤ 민요시(전통시에의 관심) 뒷동산에 꽃 캐러 언니 따라 갔더니, 솥가지에 걸리어 다홍치마 찢었습네. 누가 행여 볼까 하여 지름길로 왔더니, 오늘따라 새 베는 임이 지름길로 나왔습네. 뽕밭 옆에 김 안 매고 새 베러 나왔습네, ( 주요한, '부끄러움' ) 이같은 소박한 민요시를 김소월만이 성공적인 자유시로 승화 발전시켰다. (4) 김소월과 한용운의 등장 : 한국시의 전통성과 서구적 현대시의 기법을 조화시켜 현대시의 기반을 다진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과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의 시집 (1925)과 (1926)으로 등단한 것도 이 시기이다. 2. 193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만주 사변(1931), 중일 전쟁(1937) 등으로 일제가 전시 체제를 구축하면서 민족 문화를 탄압, 말살하기 위한 억압 정책을 가속화해 가던 시기로서, 세계의 경제 공황(1929)과 전체주의 파시즘(fascism)이 대두하던 위기의 시대가 1930년대였다. 이 때는 탈이념(脫理念)이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2. 특 징 (1) 계급주의 문학의 퇴조와 순수시의 대두 : 발표 지면은 확대되었으나, 일제의 검열과 계급주의(KAPF)파의 검거와 자진 해체, 목적 문학인 계급주의 시의 무장ㅗ전파ㅗ선동의 전략적 행태(行態)와 도식적(圖式的)이고 이념 지향적(理念指向的)인 경향에 대한 독자의 반발 등을 계기로 하여 순수시가 대두했다. (2) 현대시 유파(流派)의 형성과 실험 : 1930년대 초기에는 순수시파, 중기에 모더니즘파, 후기에는 생명파가 다분히 의도적인 시 운동을 전재하여 본격적인 현대시의 기틀을 잡았고, 청록파가 30년대 말을 장식했다. ① 순수시파 : 순수시는 넓게 보아 (1927), , (1931), (1934), (1935) 등의 문예지를 중심으로 발표된 시를 가리키며, 좁게는 파 시인인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을 시를 지칭한다. ②     연 대 1930 ∼ 1931(통권 3호) 동 인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이하윤, 변영로, 정인보 의 의 - 시 동인지 - 순수시 운동의 모체(母體) 경 향 - 반목적적 순수시, 시에 대한 현대적 인식 - 모국어의 조탁(彫琢)과 순화(醇化)된 정서, 음악적 율격의 강조 ③ 모더니즘파 : 모더니즘(modernism)은 니체, 마르크스, 다윈이 제시한 시대 이념에서 유래하는 서구 사조이다. 근대 서구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던 기독교 사상과 휴머니즘이 설득력을 잃고, 뉴턴 물리학의 합리성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가냘픈 기대가 19세기 서구 사회를 지탱해 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여러 과학적 징후들은 과학 자체마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프랑크의 양자론(量子論),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돌연변이성, 방사선 방출, DNA의 합성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서구의 정신사(精神史)는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새로운 휴머니즘을 모색(摸索)하게 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추구된 것이 모더니즘이다.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이미지즘(imagism),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입체파(cubism), 미래파(futurism), 주지주의(intellectualism) 등을 포괄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주로 이미지즘의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등의 시를 가리킨다. 즉 이미지즘과 주지주의 문학이 우리 나라 모더니즘 시의 핵이다. 이상(李箱)의 다다이즘 내지 초현실주의의 시를 비롯한 동인들의 시는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시이다. 모더니즘(주지주의)은 최재서(崔載瑞), 백철(白鐵), 김기림(金起林)이 소개했다. 김기림은 평론을 쓰고 시를 실험했으며, 김광균은 이를 실현했다. ④ 생명파(生命派) : 1930년대 초반 순수시파의 유미주의(唯美主義), 중반 모더니즘파의 감각적 기교주의가 인생 문제를 도외시한 데 대한 반발을 보이며 등장한 1930년대 후반의 문인들 일파가 이른바 '생명파'이다. 1936년에 발간된 의 동인인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를 선두로 하여 이와는 다른 처지에서 등장한 시인 유치환이 이 유파의 문인을 대표한다. 생명파의 대다수는 동인 중의 시인이며, 김동리는 그 중 소설가이다. 유치환과 윤곤강, 신석초는 동인이 아니면서도 경향의 유사성 때문에 '생명파'라 불린다.     연 대 1930년대 후반 동 인 유치환,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김동리, 윤곤강, 신석초 의 의 생명의 본질, 본능적 조건을 기초로 한 인간의 이해와 인식을 추구함. 경 향 - 순수시파 유미주의의 관념성, 모더니즘 시의 반생명성에 대한 도전 - 시적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영향을 끼침 - 휴머니즘 문학(김동리의 주장)은 순수 문학론으로 발전, 계급주의 문학과 대결하게 됨. - ⑤     연 대 1936 ∼ 1937(통권 5호) 편집, 발행 서정주(1호), 오장환(2호 이후) 동 인 서정주, 김동리,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경 향 생명과 인간의 구경(究竟) 탐구 3. 암흑기의 시   1. 시대 배경 중일 전쟁(1937) 이후 태평양 전쟁(1941)이 일어나기까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였으나, 이 시기에는 오히려 많은 시집이 간행되고, 예술적으로 괄목할 만한 작품들이 빛을 보았다. 그러나 1941년에 들어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물론, 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의 두 문예지마저 폐간하였으며, 한국어, 한국 문자의 사용을 금지시켜 그야말로 역사와 문화의 암흑기를 맞이하였다.   2. 특 징 (1) '청록파(靑鹿派)'와 자연 회귀 : 지 추천을 거쳐 등단한 이 시인들은 자연에 회귀하여 위안을 찾으며 밝아올 새날의 역사를 노래했다. 1946년에 을 내었다. ① 박목월 : 동양의 이상향인 도화원(桃花園)과 같은 선경(仙境)을 추구했다. '청노루', '산도화(山桃花)', '불국사(佛國寺)' 등이 그 예이다. ② 박두진 : 기독교(구약성서 이사야서)적 평화 사상으로 자연을 추구하며 밝아올 새 역사의 소망을 노래했다. '향현(香峴)', '해', '어서 너는 오너라' 등이 그 예이다. ③ 조지훈 : 우리 전통 - 멸망하는 것에 대한 짙은 향수(鄕愁), 선(禪)과 은일(隱逸)의 경지에 침잠했다. '고풍의상(古風衣裳)', '봉황수(鳳凰愁)', '완화삼(玩花衫)', '낙화('落花)', '고사('古寺)', '범종('梵鍾)' 등이 그 예이다. (2) 암흑기의 별 - 저항 :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과 윤동주(尹東柱)의 시는 암흑기의마지막 밤을 밝히는 불멸의 별이다. ① 이육사 : 유교적 선비 정신으로 지절(志節)의 표상이 된 대륙적 기질의 시인. (語調)가 남성적이어서 도도하고 당당하다. '광야(曠野)', '절정(絶頂)' 등이 그 예이며, '청포도'는 인구에 회자되는 애송시이다. ② 윤동주 :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으로 순결과 참회와 그리움의 시를 썼다. '서시(序詩)', '십자가', '참회록',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어진 시' 등이 그 예이다.   4. 광복 후의 시   1. 시대 배경 1945년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은 이 땅에 정치적 선동과 파쟁을 빗었다. 좌익 문인 단체인 '조선 문학 동맹'(1945. 2) 소속의 시인들이 낸 시집은 경직된 좌익 이념만 노출, 선전하였을 뿐 예술성의 확보와는 먼 거리에 있었다. '조선 문학가 협회'를 중심으로 한 우익 계통의 시인들의 시도 해방을 맞이한 격정과 소박한 찬가풍(讚歌風)의 어조로 하여 긴장을 잃은 행사시(行事詩)들을 양산했다.   2. 특 징 (1) 전통의 계승 : 이런 가운데 출현한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의 공동 시집 (1946)과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의 (1947),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1948), 윤동주의 (1948) 등은 광복된 조국의 시사(詩史)를 빛낸 기념비적 업적이다. 그러나 청록파의 시는 전통적 자연 서정주의에 지나치게 편중된 흠이 있다. (2) 시단에서 활동한 시인들 ① 광복 전 : 김광섭, 노천명, 모윤숙, 신석초, 김광균, 신석정, 장만영, 김현승, 김상옥, 윤곤강 등 ② 광복 후 : 구상, 정한모, 조병화, 김춘수, 김경린, 김수영, 김윤성, 설창수, 이경순, 한하운 등 (3) 6·25 직전에 발간한 는 전쟁 전후의 문단에 크게 공헌 했다.   순문예지 주재자 연대 등단 문인 문예(文藝) 발행인 : 모윤순 편집인 : 김동리 조연현 1949 ∼1954 .3 (통권 21호) - 시인 : 손도인, 이동주, 송 욱, 전봉건, 천상병, 이형기 - 소설가 : 강신재, 장용학, 최일남, 서근배 - 평론가 : 김양수 5. 195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1948년 8월 15일 대한 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 문학은 분단의 비극을 연출하며, 북한의 남침으로 6ㅗ25의 대참화를 체험한다.   2. 특 징 (1) 새 시인군(詩人群)의 등장 : 신동집, 김구용, 김요섭, 장호, 김남조, 홍윤숙, 이인석, 김종문 등과 지 출신 이원섭, 이동주, 송욱, 전봉건, 이형기, 한성기, 박양균, 천상병, 이수복 등 역량 있는 시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2) '후반기(後半期)' 동인의 모더니즘 :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조향 등은 시의 소재를 현대의 도시 문명에 두고 주지적, 감각적 기법으로 처리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이 밝고 건강한 '오전의 시'를 썼음에 비해 이들은 짙은 불안감과 위기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3) 반서정주의의 상황파 시 : 6ㅗ25 전란의 참담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여 강렬한 생명 의식ㅗ민족애ㅗ조국애ㅗ인류애를 노래한 시인들이 등장하여 새와 바람, 푸나무와 냇물, 달과 꽃만 노래하는 전통적 자연ㅗ서정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유치환, 구상, 박남수, 전봉건, 송욱, 신동문 등이 반서정주의 시인이다. 특히 유치환의 종군 체험 시집 (1922), 강렬한 조국애와 민족애, 인류애, 원죄 의식을 노래한 구상의 연작시 '초토(焦土)의 시'(1956)가 이런 경향의 시를 대표한다. 또, 존재의 탐구에 골몰한 김춘수, 도시인의 애수를 직설적으로 노래한 조병화, 내향적 자아 의식을 추구한 김구용 등의 시도 반서정주의의 특성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자연 발생적 감정을 거부하고 언어를 지성적으로 조작하여 시를 구성하려 한 주지적 심상파 김종삼, 성찬경, 문덕수, 김광림, 김요섭 등의 시도 빼어 놓을 수 없다. (4) 전통적 서정파의 자기 수호의 시 : 위와 같은 도전을 받으면서 전통적 서정파는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서정주를 필두로 박재삼, 황금찬, 구자운, 김관식, 이동주, 박용래, 박성룡, 박희진 등이 이 계?!--" =============================================== 바벨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울었도다 By the Rivers of Babylon 우리 둘 헤어질 때 When We Two Parted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아테네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Maid of Athens, ere we part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Beauty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A-Roving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 바이런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Down and Wept - George, Gordon, Lord Byron  We sat down and wept by the waters  Of Babel, and thought of the day  When our foe, in the hue of his slaughters,  Made Salem's high places his prey;  And ye, oh her desolate daughters!  Were scattered all weeping away.  While sadly we gazed on the river  Which rolled on in freedom below,  They demanded the song; but, oh never  That triumph the stranger shall know!  May this right hand be withered for ever,  Ere it string our high harp for the foe!  On the willow that harp is suspended,  Oh Salem! its sound should be free;  And the hour when thy glories were  ended  But left me that token of thee:  And ne'er shall its soft tones be blended  With the voice of the spoiler by me!  우리 둘 헤어질 때  - 조지 고든 바이런 말없이 눈물 흘리며 우리 둘 헤어질 때 여러 해 떨어질 생각에 가슴 찢어졌었지 그대 뺨 파랗게 식고  그대 키스 차가웠어 이 같은 슬픔 그때 벌써 마련돼 있었지  내 이마에 싸늘했던 그 날 아침 이슬 바로 지금 이 느낌을  경고한 조짐이었어 그대 맹세 다 깨지고 그대 평판 가벼워져 누가 그대 이름 말하면 나도 같이 부끄럽네 남들 내게 그대 이름 말하면 그 이름 조종처럼 들리고 온몸이 한 바탕 떨리는데 왜 그리 그대 사랑스러웠을까 내 그대 알았던 것 남들은 몰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걸 오래 오래 난 그댈 슬퍼하리 말로는 못할 만큼 너무나 깊이 남몰래 만났던 우리-- 이제 난 말없이 슬퍼하네 잊기 잘하는 그대 마음 속이기 잘하는 그대 영혼을 오랜 세월 지난 뒤 그대 다시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말없이 눈물 흘리며 When We Two Parted  - George Gordon, Lord Byron  When we two parted  In silence and tears,  Half broken-hearted  To sever for years,  Pale grew thy cheek and cold,  Colder thy kiss;  Truly that hour foretold  Sorrow to this. The dew of the morning  Sunk chill on my brow--  It felt like the warning  Of what I feel now.  Thy vows are all broken,  And light is thy fame;  I hear thy name spoken,  And share in its shame. They name thee before me,  A knell to mine ear;  A shudder comes o'er me--  Why wert thou so dear?  They know not I knew thee,  Who knew thee too well:--  Long, long shall I rue thee,  Too deeply to tell. In secret we met--  In silence I grieve  That thy heart could forget,  Thy spirit deceive.  If I should meet thee  After long years,  How should I greet thee?--  With silence and tears.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해럴드 공자의 편력' 중에서, 캔토 4, 시 178  - 로드 바이런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 아무도 침범치 않는 곳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통해  현재나 과거의 나로부터 물러나 우주와 뒤섞이며, 표현할 수는 없으나  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바를 느끼기에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from Childe Harold, Canto iv, Verse 178  - George Gordon Lord Byron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There is a rapture on the lonely shore,  There is society, where none intrudes,  By the deep sea, and music in its roar:  I love not man the less, but Nature more,  From these our interviews, in which I steal  From all I may be, or have been before,  To mingle with the Universe, and feel  What I can ne'er express, yet cannot all conceal.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 바이런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돌려주오, 오, 내 마음 돌려주오 아니 기왕에 내 마음 떠난 바엔 이젠 그걸 가지고 나머지도 가져가오 나 떠나기 전 내 언챡 들어주오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에게해 바람마다 애무한 흘러내린 그대 머리칼에 맹세코 그대의 부드러우 뺨에 피어나는 홍조에 입마주는 까만 속눈썹이 술 장식한 그대 눈에 맹세코 어린 사슴처럼 순수한 그대 눈망울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애타게 맛보고 싶은 그대 입술에 맹세코 저 허리띠 두른 날씬한 허리에 맹세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사연도 전해주는 온갖 꽃에 맹세코 교차되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아테네의 아가씨여! 나는 떠나가리라 님이여! 홀로 있을 땐 날 생각하오 몸은 비록 이스탄불로 달려갈지라도 내 마음과 여혼은 아테네에 있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천만에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Maid of Athens, ere we part - George Gordon, Lord Byron Maid of Athens, ere we part,  Give, oh, give back my heart!  Or, since that has left my breast,  Keep it now, and take the rest!  Hear my vow before I go,  Zoe mou sas agapo.  By those tresses unconfined,  Wooed by each Aegean wind;  By those lids whose jetty fringe  Kiss thy soft cheeks' blooming tinge;  By those wild eyes like the roe,  Zoe mou sas agapo.  By that lip I long to taste;  By that zone-encircled waist;  By all the token-flowers that tell  What words can never speak so well;  By love's alternate joy and woe,  Zoe mou sas agapo.  Maid of Athens! I am gone:  Think of me, sweet! when alone.  Though I fly to Istambol,  Athens holds my heart and soul:  Can I cease to love thee? No!  Zoe mou sas agapo.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 바이런 별이 총총한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빛의 순수는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하늘이 찬연히 빛나는 낮에는 주지 않는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그늘 한 점이 더하고 빛이 한 줄기만 덜했어도  새까만 머리칼마다 물결치고 혹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밝혀 주는  형언할 바이 없는 그 우아함을 반은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선 사념이 고요히 감미롭게 솟아나 그 보금자리, 그 얼굴이 얼마나 순결하고 사랑스런가를 말해 주노라.  저 뺨과 이마 위에서 상냥하고 침착하나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환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 준다. 착하게 보낸 지난날을 이 땅의 모든 것과 화목한 마음, 순결한 사랑이 깃든 마음을.  Beauty - George Gordon,Lord Byron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Of cl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Thus mellowed to that tender light Which heaven to gaudy day denies. One shade the more, one ray the less, Had half impaired the nameless grace Which waves in every raven tress; Or softly lightens o'er her face; Where thoughts serenely sweet express How pure, how dear their dwelling place. And on that cheek, and o'er that brow, So soft, so calm, yet eloquent, The smiles that win, the tints that glow, But tell of days in goodness spent, A mind at peace with all below, A heart whose love is innocent.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사랑은 가슴 속에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정신을 쓰면 가슴이 헐고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도 때로는 쉬어야 하니.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A-Roving - George Gordon, Lord Byron  So, we'll go no more a-roving So late into the night, Though the heart be still as loving, 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For the sword outwears its sheath, And the soul wears out the breast,  And the heart must pause to breathe, And love itself have rest. Though the night was made for loving, And the day returns too soon, Yet we'll go no more a-roving By the light of the moon.    
1345    <<死愛>> 댓글:  조회:5228  추천:0  2015-07-09
사랑 - 박철(1960~ )  나 죽도록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너를 기다릴 수 있어”라는 고백이고 다짐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늘 기다린다. 사랑해서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리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다. 기다림에의 종속은 사랑의 유력한 징표다. 그토록 사랑하건만 기다림은 종종 모든 것을 지연시킨다. 기다림이 키스와 애무와 교합의 설렘을 뒤로 미룬다. 공허를 품은 기다림이 이 사랑을 살찌게 만들지만 어떤 경우엔 사랑을 마르게 하고 파멸로 이끈다. 기다림이 파멸적인 것은 욕망을 냉각시키고 존재 자체를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1344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댓글:  조회:5563  추천:0  2015-07-09
시간 -김승희(1952~ )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색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을 편들지는 않으리. 죽음과 生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 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하략) 어렸을 때 시간은 신비 그 자체이고, 삶을 비옥한 꿈의 대지로 가꾼다. 어떤 악에도 물들지 않아 옳은 행동만을 일삼는 어린 인류는 천진무구한 채로 시간이란 말[馬]의 고삐를 틀어쥐고 달린다. 시간은 “금색의 깃발”로 나부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고삐를 틀어쥘 수가 없다. 순간들의 연쇄는 질서를 잃은 채 엉킨다.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제멋대로 달려가는 시간들! 누구나 시간이란 유한자원을 까먹으며 나이를 먹는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유한자산을 강탈하고, 노화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닿으면서 생의 주기라는 원을 닫는다. 김승희 시모음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 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1995.  ~~~~~~~~~~~~~~~~~~~~~~~~~~~~~~~~~~~~~~~~~~~~~~~~~~~~~~~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나는 새로운 것이 보고 싶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말고 ,정말 새로운 것.설거  지감 냄새가 묻지 않은 그런 새로운 것.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 창 아래로  하늘이 마구마구 내려갔다.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라갔어도 믿을 수 없으  리만큼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넝마 한 벌---하  늘과 설거지감---산하.환멸만큼 정숙한 칼이 또 있을까.  있음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리니까.  아아,난 새로운 것을 보려면  그 믿을 수 없는 높이의 옥상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  시집 ; 달걀속의 생  ~~~~~~~~~~~~~~~~~~~~~~~~~~~~~~~~~~~~  달걀 속의 生.2  냉장고 문을 열면 달걀 한 줄이  온순히 꽂혀 있지,  차고 희고 순결한 것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난 그것들을 쉽게 먹을 순 없을 것 같애  교외선을 타고 갈곳없이 방황하던 무렵,  어느 시골 국민학교 앞에서  초라한 행상아줌마가 팔고 있던  수십 마리의 그 노란 병아리들,  마분지곽 속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마분지곽 위로 보글보글 기어오르던  그런 노란 것들이  (생명의 중심은 그렇게 따스한 것)  살아서 즐겁다고 꼬물거리던 모습이  살아서 불행하다고 늘상 암송하고 있던  나의 눈에 문득 눈물처럼 다가와 고이고  그렇다면 나는 여태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아아,얼마나 슬픈가,  차가운 냉장칸 맨 윗줄에서  달걀껍질 속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는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실에서  입원비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 가난한 형제들처럼  흰자위와 노른자위도  무슨 그런 절망의 의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사계절 전천후 냉장고  하얀 문을 조용히 열면  추운 달걀들의 속삭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안아줘요 따스한 품속에  어미닭에 안기지 못하고 만 달걀들처럼  희망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 팔려온  너희들처럼  나도 역시 여권이 분실된 사람  희망의 온도가 차츰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하고 초연해지는 것 같지.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달걀 속의 生5  달걀을 보면  알 수 있지.  아, 저렇게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나.  조그맣게 차갑게  두 눈을 감고  아, 어찌해,  저리도 못다한  벙어리사랑을.  외치고 싶고  깨지고 싶어도  시간의 실금이 온 몸에 강물처럼 퍼지기를  기다려, 배꼽 같은 씨눈이  노른자위를 먹어치워  아, 그 안에서 원무처럼 일어서는  열애 같은 혁명을 기다려.  달걀을 보면  눈물이 어리지.  아, 저렇게 미해방의 절벽 위에서  꿈꾸는 사람!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왜,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일까,  당연의 세계는 거기에 너무도 당연히 있어서  그 두꺼운 껍질을 벗겨보지도 못하고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당연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당연한 사람이 만들었겠지,  당연히 그것을 만들만한 사람,  그것을 만들어도 당연한 사람,  그러므로, 당연의 세계는 물론 옳다,  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  다연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려다가는  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  당연한 손은 보이지 않은 손이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  당연한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  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는  물론의 세계의 말은 또한 믿을 수 가 없다  물론의 세계 또한  정녕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소을 걸어라  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  하루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  생사불명, 힘들여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  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  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  당연과 물론을 양손에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  ~~~~~~~~~~~~~~~~~~~~~~~~~~~~~~~~~~~  바늘 뗏목  바늘 하나로 만든 뗏목이다  바늘 하나의 뗏목을 타고  반도가 흔들린다  바늘 하나의 뗏목에 오천만이  매어달려  우르르 출렁거린다  바늘 하나의 뗏목으로 아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바늘 하나의 뗏목으로 내일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팔꽃 모가지같이 시든 오천만 나팔꽃 내 모가지가  바늘 하나의 뗏목에 매어달려 표류하고 있다  모가지까지 물이 차오르는 시간  누가 나를 세기말의 홍수 위에 꽃꽂이를 했는가  ~~~~~~~~~~~~~~~~~~~~~~~~~~~~~~~~~~~~~~~~~~~~~~~~~~~~~~~~~  시계풀의 편지 * 4  사랑이여  나는 그대의 하얀 손발에 박힌  못을 빼주고 싶다  그러나  못박힌 사람은 못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  ~~~~~~~~~~~~~~~~~~~~~~~~~~~~~~~~~~~  너에게  너는 산이 되어라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산이 되어 다가오지 마라  너는  너는  산이 되어  산이 되어  달아나지 마라  다가오지 마라  산이 되어 그렇게 그렇게  한국문학 / 1999 겨울호  ~~~~~~~~~~~~~~~~~~~~~~~~~~~~~~~~~~~~  그림 속의 물  사랑스런 플란다스의 소년과 함께  벨지움의 들판에서  나는 예술의 말[馬]을 타고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손을 들어  내가 그린 그림의 얼굴을  찢고 또 찢고  울고 있었고.  나는 당황한 현대의 이마를 바로잡으며  캔버스에  물빛 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나의 미학 상식으로서는  그림은 아름답기만 하면 되었다.  그림은 거칠어서도 안 되고  또 주제넘게 말을 해서도 안 되었다.  소년은 앞머리를 날리며  귀엽게, 귀엽게  나무다리를 깎고  그의 귀는 바람에 날리는  銀잎삭.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며  하늘의 물감이 부족하다고,  화폭 아래에는  반드시 강이 흘러야 하고  또 꽃을 길러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현대의 고장난 수신기와 목마름.  그것이 어찌 내 죄일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내 죄라고  소년은 조용히  칸나를 내밀며 말했다  칸나 위에 사과가 돋고  사과의 튼튼한 과육이  웬일인지 힘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나에게 강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강은 깊이깊이 흘러가  떨어진 사과를 붙이고  싹트고  꽃피게 하였다  그리고 그림엔 노래가 돋아나고  울려퍼져  그것은 벨지움을 넘어  멀리멀리 아시아로까지 가는 게 보였다.  소년은 강을 불러  내 그림에 다시 들어가라고 말했다.  화폭 아래엔 강이 흐르고  금세 금세  훤한 이마의 꽃들이 웃으며 일어났다.  피어난 몇 송이 꽃대를 꺾어  나는 잃어버린 내 친구에게로 간다.  그리고 강이 되어  스며들어  친구가 그리는 그림  그곳을 꽃피우는 물이 되려고 한다.  물이 되어 친구의 꽃을 꽃피우고  그리고 우리의 죽은 그림들을 꽃피우는  넓고 따스한 바다가 되려고 한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무거움 가벼움 솟아오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어느 가벼움이 있다 해도  무거움을 버리고  무거움을 도망쳐서 이르는  가벼움에서 어느 날개를 이룰 것인가  무거움을 다하여  손톱이 빠지도록 무거움을 다한 다음  업이 스러질 때  업이 스러진 그 빈자리에  솟아오르는 가벼움의 날갯짓이 있으면  그러므로 바닥이여  바닥에서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올라갈 수 있음이니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바닥이여 바닥에서 고통의, 상처의  장대 높이뛰기를 할 수 있도록  업을 다하여, 업 때문에 , 업을 다하도록  누덕누덕 수천 번 꿰맨 날개만이 더 진실하리니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닥이여 바닥에서  무거움의 사슬들이  짤랑짤랑 가벼운 빛의 음악이 되는 그날까지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눈물의 노래  네 눈물은 아름답구나, 다이아몬드 같다.  밤의 검은 이파리가 너울거리는  나무 아래서  나는 너에게 말했다.  이 눈물은 다이아몬드가 아니에요.  석탄입니다.  너는 고통으로 초췌한 얼굴을 들어  나에게 말했다.  석탄만한 절망이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나올 리 없지, 이런 말을  너에게 했는지 안했는지  어렴풋한 기억의 모서리가 지워져 있다.  조그만 빨래집게 두 개가  물먹은 솜 같은 커다란 빨래를  가냘픈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앙상한 네개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면서  빨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벌을 받고 있는 중일까.  그때 나는 너의 눈물을 기억해 낸 거야.  다이아몬드 두 방울이  석탄덩어리를 꽉 잡고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그렁그렁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 두 방울.  눈물은 꿈을 닮는다는데  네 눈물은 탄광 속에 이글거리는 생명의 불꽃  다이아몬드 날개를 가진 것 같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  ~~~~~~~~~~~~~~~~~~~~~~~~~~~~~~~~~~~~~~~~~~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의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멍  비닐 하우스에서 생산되어 팔려온  시금치는  그렇게 푸르지가 않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어  심하게 멍든 것 같은 표정을 줄 뿐이다.  바람이 되다만 사랑이  희망이 되다만 낙망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이  혁명이 되다만 울부짖음이  저런 정박의 멍이 된 것일까?  푸른 멍이 자신의 상처를 이길 수  없을 때  멍은 멍에가 되어  한밤을 개집 속에서 슬프게 울부짖어야 한다.  멍  멍.멍  멍.멍.멍.  멍멍멍 울부짖는 엄을 나는 기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이 되다만 멍들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들이  개벽이 되다만 희망들이  다른 언어로 꽃피어남(울기)을  찾을 때까지  나는 더 멍들의 멍에를 걸머지고  이 토막난 변시체 같은  희망의 빈민굴을 좀더 사랑할  작정이다.  멍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멍들게  하는 것들을 좀더 질기게  비웃어 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멍이 멍.멍을 초월하는  그 어떤 아름다운 반동을 낳을 때까지.  ~~~~~~~~~~~~~~~~~~~~~~~~~~~~~~~~~~~~~  아네모네 꽃이 핀 날부터.1  죽도록 사랑하면  죽도록 사랑하면  그렇게 神氣가 오릅니까?  죽도록 사랑하면  죽도록 사랑하면  그토록 검은 질료에서 주황빛 신이 불려 나옵니까?  옛날부터 늘 그래 왔습니까?  목숨을 지나서도 타오르는  무슨 한 덩어리 불이 있겠습니까?  너무 모욕받았는데 너무 큰 모욕이 내려왔는데  울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괴로운데 이렇게 괴로워도  토막난 늑대의 이글거리는 횃불처럼  뭉쳐서 뭉쳐서 화려하게 꿈을 꿔도 되겠습니까?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세계사.1995.  ~~~~~~~~~~~~~~~~~~~~~~~~~~~~~~~~~  하나를 위하여  나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살았던 것들 중  그 중 아름다운 하나가,  슬펐던 것들 중  그 중 화사한 하나가,  괴로웠던 것들 중  그 중 순결한 하나가 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많은 길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길을 버리고 싶고  더 많은 꿈을 지우고 싶고  다만 하나의 길과  다만 하나의 꿈을 통하여  물방울이 물이 되고  불꽃들이 불이 되는  그 하나의 비밀을 알고 싶을 뿐이다.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그 하나에 닿기 위하여  나는, 하나 하나, 소등 연습을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가로등이 다 꺼진 어둠 속으로  솜처럼 착하게 다 적셔져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타오르는  하나의 봉화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견딤의 형식  모두 저기, 저, 강을 쳐다본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기, 저,  산을 쳐다본다  평원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벌판의 끝,  저기, 저 지평선을 바라본다  강과 산과 지평선-그곳에서 언제나 무한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무한이 오는 곳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한 번 태어나서  한번은 꼭 죽기 때문이다  한번만 사는 삶인데  한 번밖에 못사는 삶인데  여기, 이렇게, 아무래도 남루한 냄비 속이  너무 좁지 않는냐 하고  물음 대신, 울음 대신으로 저기, 저, 먼 곳을 끝없이 힘을 다해  훨, 훨,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  비행기가 날아가는 저 하늘을, 구름이 흘러가는 저기  저곳을,  저기, 저, 방금 사라지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랫가락 사이를.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공옥진에게  나는 병신입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이 슬픈 몸을 움직여  이 절뚝거리고 비비적대는  우스운 몸뚱아리를 움직여  한 판 춤을 추다가  서리맞은 이 목숨이 허,허,웃을  진한 춤을 추다가 가야 합니다.  어디까지 놀아야  어디까지 놀아야  우리는 가는 것인가  춤이란 뭐냐하면  곱게 가다듬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장육부가 움직여줘야  징그럽게 이뻐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오장육부가 건드리는대로  춤을 추시오,  팔자병신은 팔자병신대로  문둥병신은 문둥병신대로  육갑이 풀리는대로 춤을 추시오,  뒤엉키는 살아 있음의  신명나는 곡선대로-  生卽願이요,  生卽怨이니,  여기는 아쟁과 장고가 부르는  미친 살풀이판이요  히,히-  ~~~~~~~~~~~~~~~~~~~~~~~~~~~~~~~~~~~  떠도는 환유 . 1  몇 장마인지 알지 못할  장마비가 연일연일 내리고 있다,  창이 좁아서인지  세상이 위태하리만치 어두워진다,  어둡고 긴, 무슨 포식의,  동물 창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  ㅡ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긴 너무 어두워요, 말 좀 해봐요,  ㅡ말하면 뭘하니? 넌 날 볼 수가 없잖아.  ㅡ그래도 괜찮아요, 말하면 밝아질 테니까요.  *  세상엔 벽이 되려는 창과 싸우는 사람과  창이 되려는 벽과 싸우는 사람,  그렇게 두 진영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자택인 듯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나, 나, 나라는 나가비는  영구 임대주택인 듯이, 아니, 아니,  임시 임대주택인 듯이 生을 대하며  조만간 흘러가 버리고 말 것 같다,  너무 쉽게 흘러가 주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투덜대기나 하면서 .....  위조여권 같은 말을 따라서  출렁출렁.....글썽글썽.....  ~~~~~~~~~~~~~~~~~~~~~~~~~~~~~~~~~~~~~~~~  얼굴  검은 눈  고요한 입  발가벗은 피부  비 내리는 산  한계선  예민한, 슬픔, 이마, 가득 찬 모래,  신경이 푸른 신경이 훤히 드러난  양쪽 뇌관  눈썹  미세한 파도, 구름 울음, 속눈썹  코  입, 상처  얼굴  벌거벗은  항상 바람이 지나가는......  너를 한번도 더듬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손가락에 묻어 있는  피, 바람이 지나가며......피  얼굴의 피.....  항상 노출된, 바람 속, 덧없이, 벌거벗은  결코 달아날 수가 없는  피  얼굴  뿌리칠 수 없는  진달래  1999다층,여름호  ~~~~~~~~~~~~~~~~~~~~~~~~~~~  미완성을 위한 연가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매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치기만 할 때  그 외로운 손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무엇인지 알아?  하나의 밀알이 비로소 썩을 때  별들의 씨앗이  우주의 맥박 가득히 새처럼  깃을 쳐오르는 것을  그대는 알아?  하늘과 강물은 말없이 수천 년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네  쳐다보는 마음이 나무를 만들고  쳐다보는 마음이 별빛을 만들었네  우리는 몹시 빨리 더욱 빨리  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어디에선가, 분명,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네  수갑을 찬 손목들끼리  성좌에 묶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햐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  솟구쳐 오르기 1  억압을 뚫지 않으면  억압을  억압을  억압을  악업이 되어  악업이  악업이  악업이  두려 우리라  절벽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절벽의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하늘 높이  장대 높이 뛰기를 해 보았으면  눈썹이 푸른 하늘에 닿을 때까지  푸른 하늘에 속눈썹이 젖을 때까지  아, 삶이란 그런 장대 높이 뛰기의 날개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상처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지만  상처의 그물 아래 갇혀 살 수도 없어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 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억압을 악업을  그렇게 솟아올라  아, 한 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다면  ~~~~~~~~~~~~~~~~~~~~~~~~~~~~~~~~~~~~~~~~~~~~~~~  솟구쳐 오르기. 10  황금의 별을 나는 배웠다,  어린 시절의 별자리여,  마음속 어느 혼 속에  고통의 상처가 있어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는 별,  혼돈과 함께 태어나는 황금의 별이 있다고  나는 배웠고  그 말은 나를 매혹하였다  혼 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  나는 고요히, 울면서,  인생이 나에게 주는 모든 쓰디쓴 혼돈  모든 쓰디쓴 상처  그 상처의 악령들을 나는 사랑하였다,  인생을 구제하는 건  상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오케스트라,  그 상처의 오케스트라 속에서만 터져나오는  황금의 별들의 찬란한 음악  상처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데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처의 장대 높이뛰기를 하는  존재의 곡예만큼  장엄한 것이 있을까?  불의 운명을 피하니 물의 운명이 나오고  물의 운명을 피하니  가시덤불 언덕을 구르는 형벌이 나왔던  옛날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처음 만난 운명을 피하지 말라던  황금의 별의 잉태를 믿으라던  가끔은 운명의 길이 텅 비고  아무것도 광채나는 것은 없어  공허가 길을 메우고  허공이 길 위에 내려와  내 길을 지우니  어디로 갈까  갈 곳도 없는 지평선이 나를 가두더라  사랑도 나침반을 잃고  슬픔은 바다의 파도와도 같고  기억은 곪은 상처와도 같이  무거운 독거미의 액을 뿌리고 있으니  무엇을 보고 존재의 황금의 별을 믿어야  할 것인가,  홀로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모든 것은 아프고 아프다  모든 존재는 아프고  아픈 것은 나쁜 것을 뛰어넘지 못할 때  꿈은 사악해지기도 하더라  내 옆구리를 찌른 장대창을 나에게  다오,  그것을 쥐고 하늘 높이  뛰어올라  황금의 별을 만지리라,  혼 속에 있는 고통이여  혼돈 속에 있는 황금의 별이여  시집"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세계사.  ~~~~~~~~~~~~~~~~~~~~~~~~~~~~~~~~~~~~~~~~  사랑 4  -눈보라 속에는  눈보라 속에는 손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다가오  는 손 누가 추워하나 누가 아파하나 하얀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손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눈들이 들어 있  다 환부를 읽으려고 다가오는 눈 누가 아파하나 누가 다  쳤는가 하얀 눈보라 속에는 고요한 눈들이 들어 있다 눈  보라 속에는 귀들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달려오는  귀 누가 울고 있나 누가 빌고 있나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귀들이 들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  천안관세음 숭숭 구멍 뚫린 가슴에서 하얀 눈보라 깃털  같은 붕대가 화안히 화안히 흩어져 나오는.....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11.  ~~~~~~~~~~~~~~~~~~~~~~~~~~~~~~~~~~~~~~~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거친 파도가 바위섬을 삼킬 듯이 몰아칠 때  세계의 집에서 지붕들이 고요히 벗겨지고  유리창들이 환상의 격투로 부서질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삶은 거기에서 발레리나, 발뒤꿈치를 힘껏 높여들고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춤추는 발레리나,  관절이 연결된 척추 마디에 삐걱거림의 꽃송이가  벙글어지듯 솟아나고  바알갛게 신음하는 복숭아뼈를 견디며  바닥을 차고 올라가는 하얀 높이로의 힘겨운 이행  벌레리나의 춤이 그 연루된 뼈들의 고통을 잊을 때  꽃이 고통의 연루로 피어난다는 것을 잊을 수 있을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목 없는 닭이 어두운 구름을 앞질러 날아가는  새떼들을 쳐다보는 시선으로  주전자 입에서 펄펄 날아가는 흰 김을 바라볼 때  혁명은 힘겨운 척추뼈와 복사뼈 사이의 연루에 있고  목 없는 닭의 떨리는 눈 속에 있고  하얀 김이 펄펄 나며 하늘을 조금 밀어내고 있는  그 공기의 힘겨운 파장 속에 있고  환상이 상심과 더불어 솟구쳐 일어나고  사랑이 한번만 사랑일 때  혁명이 한번만 혁명일 때  주전자 뚜껑이 팔팔 끓어오르는 김의 힘에 밀려  딱, 하고 저절로 벗겨져 떨어질 때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  ~~~~~~~~~~~~~~~~~~~~~~~~~~~~~~~~~~~~~~~~~~~~  사랑 3  - 고엽제 이야기  나르키서스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  에코는 그만을 사랑하는 여자  그가 말한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 거야?  에코는 따라서 말한다  사랑해줘요.  그가 말한다  제발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  그녀는 말한다  가까이 오세요!  나르키서스는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남자  에코는 그의 말을 (잘못) 따라하는 여자  모든 사랑에는 혀의 고엽제가 들어 있다  혀를 말리는 하얀 약이 키스할 때마다 배급된다  ~~~~~~~~~~~~~~~~~~~~~~~~~~~~~~~~~~~~~~~~~~~~~~~~~  사랑 4  - 눈보라 속에는  눈보라 속에는 손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다가오  는 손 누가 추워하나 누가 아파하나 하얀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손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눈들이 들어 있  다 환부를 읽으려고 다가오는 눈 누가 아파하나 누가 다  쳤는가 하얀 눈보라 속에는 고요한 눈들이 들어 있다 눈  보라 속에는 귀들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달려오는  귀 누가 울고 있나 누가 빌고 있나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귀들이 들어 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춘수  천안관세음 숭숭 구멍 뚫린 가슴에서 하얀 눈보라 깃털  같은 붕대가 화안히 화안히 흩어져 나오는······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란...  ~~~~~~~~~~~~~~~~~~~~~~~~~  꿈과 상처  나대로 살고싶다  나대로 살고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였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  시 간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색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것을 편들지 않으리.  죽음과 생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라.  지금은 빛나고 휘날리는 金색의 깃발.  그러나 곧  정적이 와버리는 것을.  시선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낙 오  살면 살수록  왜 자꾸만 더 낙제하는 기분이 되나.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세탁소 창문 앞에 내걸린  깨끗하게 건조세탁된 옷들을  바라볼 때도 그렇지.  혼자만 나 혼자서만  왜 마감기일이 넘은 원고를 붙들고 있나.  내가 갔을 때는  왜 언제나 백화점의 바겐세일 기간은  끝나 있어야 하나.  가을이 되어 꽃잎이 떨어질 때도,  광화문을 지나다가  회전꼬챙이에 꿰여 빙빙 돌아가는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바라볼 때도,  시인 황지우가 선거 후 낙향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왜 나는 자꾸만 더 낙제하는 기분이 되나.  사랑에도  꿈에도  난 늘 낙제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삶은 더한층 눈부시고  내 것이 아닌 연인을 바라볼 때처럼  울고싶도록 더욱 다가들고만 싶은가.  시집 ; 달걀속의 生 ; 문학사상사.  ~~~~~~~~~~~~~~~~~~~~~~~~~~~~~~~~~~~~~~  흰구름의 주소  내가 나를 버려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직 나 속에  머무른다  내가 아직 나와 헤어지지 못했기에  나는 나라는 고유명사 속에  숙박처럼 묵고 있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바깥과  바깥으로 들어나가고 싶은 안이  서로를 더욱 그리워하는 듯  하늘과 나무가  미친 듯이 서로를 불지르고 있는 여름  전생에서 오는 디딤돌 같은  흰구름과  내 생으로 가는 디딤돌 같은  흰구름이  잠시 만나  모두 나를 혈연인 듯 내려다보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  구름의 숙박소  그 안에 깃들인 흰 여름의 성하 같은  나의 목숨을  일박이일쯤 되나,  아니, 어쩌면,  혹은, 삼박사일쯤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시집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싸움 / 세계사  ~~~~~~~~~~~~~~~~~~~~~~~~~~~~~~~~~~~~~~~~~~~~  사랑 5  -결혼식의 사랑  성채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칼을 든 군인이 따라가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케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흰 장갑을 낀 신랑이 따라가면서  결혼 예식은 끝난다고 한다  모든 결혼에는 흰 장갑을 낀 제국주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시계풀의 편지 3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  그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떤 사람에겐 하늘이 액자만하다는 것을  액자보다 더 작은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을까  그는 정말 몰랐을까.  상처 안에 또 하나의 상처  그 안에 골목같은 상처. 그 안에  창살만한 상처.  그 아래 몽고반점만한 사랑.  하늘이 푸른 것은 아직도 꿈꾸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  그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떤 하늘은 때때로 몽고반점처럼  푸르르고  죽고 싶도록 멍든 사람들이  멍든 빛깔로만  사랑을 칠하고 있는  살고 싶도록 푸르른 하늘  하늘이 푸르른 것은  그런 멍든 사람들이  하늘을 등지고  푸른 언덕 위에 가슴을 대고  아아 가만가만  자신의 파아란 상처를 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식탁이 밥을 차린다  식탁이 밥을 차린다  밥이 나를 먹는다  칫솔이 나를 양치질한다  거울이 나를 잡는다 그 순간 나는 극장이 되고  쎄미나 룸이 되고  흡혈귀의 키스가 되고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거울이 된다  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  니나리찌가 나를 뿌린다  CNN이 나를 시청한다  타임즈가 나를 구독한다  신발이 나를 신는다  길이 나를 걸어간다  신용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신용카드가 나를 분실신고 한다  시계가 나를 몰아 간다 저속 기어로 혹은 고속 기어로  내 몸은 갈 데까지 가 보자고 한다  비타민 외판원을 나는 거절한다  낮에는 진통제를 먹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으면 된다  부두에 서 있고 싶다  다시 부두에...  씨티은행 지점장이 한강변에 음독자살을 하고  시력이 나쁜 나는 그 기사를 읽기 위해  신문지를 얼굴 가까이에 댄다  신문지가 얼굴을 와락 잡아당겨  내 피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신문이 된다  몸에서 활자가 벗겨지지 않는다  ~~~~~~~~~~~~~~~~~~~~~~~~~~~~~~~~~~~  13월 13일의 사랑  그런 사랑  13월 13일 같은 그런 사랑  토끼와 거북이가 뒤로 달리는 경주를 하고  싱그러운 초원 위에 뒹굴고 노는 그런 사랑  동서남북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방향을 지우고 놀다가  끝내는 이름도 얼굴도 잃어버리는  낙원 같은 그런 사랑  토마토 한복판을 가운데로 잘라내  똑똑 떨어지는 붉은 태양혈을 배꼽에 칠하고  응애 놀이를 하며 다시 태어나는 그런 사랑  우리는 세계와 국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당신은 세계와 국가의 요구에 부응.....  안하는 그런 사랑  인디언 추장을 만나 손을 잡고  바람의 질주를 그리며 달리는 그런 사랑  세상의 달력을 잊어버리는  총, 성경, 질병을 잊어버리는 그런 사랑  탈주하는 사랑  탈주를 웃는 사랑  탈주조차를 잊어버리는 사랑  눈보라처럼 부웅할 방향 자체가 없는 그런 사랑  반대로 달려가면서도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즐거워서 원기 왕성해지는  13월 13일만 같은 그런 사랑  13월 13일의 사랑  ~~~~~~~~~~~~~~~~~~~~~~~~~~~~~~~~~~~  보리수 나무 아래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 아래 길이 있을까,  난 그런 것을 잊어버렸어,  아니 차라리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정직하겠지,  잊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것을 쉽게 되찾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시간 속에 종종 성냥불을 그어보지,  내가 잃어버린 무슨 나무 아래 길이  혹여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혹시 장미나무 아래로 가는 길이  물푸레 나무 아래 휘여진 히아신스 꽃길이  어디 어둠의 담 저 너머  흔적 같은 향기로  날 부르러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난 청춘을 졸업한 게  아니라  청춘을 중퇴한 듯해.  청춘에서 휴학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곧 청춘에 복학해야 할 듯한  그런 위태로운 아편길 위에서  난 정말 미친 듯이 뛰었지, 아, 그래,  정말이야,꼭 미친 듯이 뛰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어.  그래서 난 새해 같은 것이 오면  더욱 피로해지는 것 같아.  그런 시간에는 문득 멈춰서서  자신을 봐야 하니까.  누구의 삶에나 실수는 있는 법이고  ~~~~~~~~~~~~~~~~~~~~~~~~~~~~  萬波息笛(만파식적)  -남편에게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의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시집 : 왼손을 위한 협주곡 / 문학사상사  ~~~~~~~~~~~~~~~~~~~~~~~~~~~~~~~~~~~~~~~~~~~~~~  솟구쳐 오르기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허우적대다  죽었는가  이젠 정말 죽었구나  했을 때  나는  떠  오  르  고  있었다  지상의 가장 끝에서  혼자 본  아침  해  백경의 장엄한 숨쉬기처럼  물방울 분수를 조용히 내뿜으며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  고통의 신의 하사품을 받는 것처럼  고  요  하  게  가라앉는 행복조차 빼앗기고  아아, 또 살아났구나  휴우~ ~ ~ 하고 말하려는 것처럼  솟구치는  ~~~~~~~~~~~~~~~~~~~~~~~~~~~~~~~~~~~~  솟구쳐오르기10  황금의 별을 나는 배웠다,  어린 시절의 별자리여,  마음속 어느 혼 속에  고통의 상처가 있어  그 혼돈 속에서 태어나는 별,  혼돈과 함께 태어나는 황금의 별이 있다고  나는 배웠고  그 말은 나를 매혹하였다.  혼 속에 상처를 간직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를 별이게 하겠는가?  나는 고요히, 울면서,  인생이 나에게 주는 모든 쓰디쓴 혼돈  모든 쓰디쓴 상처  그 상처의 악령들을 나는 사랑하였다,  인생을 구제하는 건  상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상처의  오케스트라,  그 상처의 오케스트라 속에서만 터져 나오는  황금의 별들의 찬란한 음악  상처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데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처의 장대 높이 뛰기를 하는  존재의 곡예만큼  장엄한 것이 있을까?  불의 운명을 피하니 물의 운명이 나오고  물의 운명을 피하니  가시덤불 언덕을 구르는 형벌이 나왔던  옛날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처음 만난 운명을 피하지 말라던  황금의 별의 잉태를 믿으라던  가끔은 운명의 길이 텅 비고  아무것도 광채 나는 것은 없어  공허가 길을 메우고  허공이 길 위에 내려와  내 길을 지우니  어디로 갈까  갈 곳도 없는 지평선이 나를 가두더라  사랑도 나침반을 잃고  슬픔은 바다의 파도와도 같고  기억은 곪은 상처와도 같이  무거운 독거미의 액을 뿌리고 있으니  무엇을 보고 존재의 황금의 별을 믿어야  할 것인가,  홀로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을 때  모든 것은 아프고 아프다  모든 존재는 아프고  아픈 것은 나쁜 것을 뛰어 넘지 못할 때  꿈은 사악해지기도 하더라  내 옆구리를 찌른 장대창을 나에게  다오,  그것을 쥐고 하늘 높이  뛰어 올라  황금의 별을 만지리라,  혼 속에 있는 고통이여  혼돈 속에 있는 황금의 별이여  ~~~~~~~~~~~~~~~~~~~~~~~~~~~~~~~~~~~~  황혼이면  황혼이면  밥상을 부수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다던  한 여류작가가  생각나지,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란 사는 것이 아니었고  힘껏 견뎌야만 하는  무엇이었지,  푸른 목숨의 그리움  있는 대로 선혈처럼 다 배어나오는  저 미친 하늘  일그러진 얼굴을 원흉처럼 거느린 채  치마폭일랑은 치렁치렁  난파의 깃발처럼 펄럭이며  아아, 머리칼은 욱조아 묶은 채로  그대로 두고 말까,  괴물의 마수처럼 훨훨 이글거리며  제 슬픔의 또아리를  힘껏 틀고 있으라고,  밤은 모르는 남자로부터 매일 오는  연서처럼  상냥하고도 은밀한 것,  두근거리며 드럼, 드럼, 드럼,  위험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인가  나는  더이상 산이 안 보이는  그런 산 위에 서 있고 싶다.  가라, 가서  루마니아 폴카를  피가 절이도록 루마니아폴카를  추며 잊으며 돌아오지 말까,  음악이 공범이 될 때까지  춤이 정사가 될 때까지  나는 더 이상  절벽이 안 보이는 그런 절벽 위에  춤추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오래 서 있었다,  춤을 추지는 않고  별빛이 내내 뼈에 시릴 때까지-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 / 나남.1987.  ~~~~~~~~~~~~~~~~~~~~~~~~~~~~~~~~~~~~~~~~~~  유서를 쓰며  내 뼈에 가득 찬  죄악을 비우기 위하여  나는 유서를 씁니다,  독한 청산가리 같은 잉크에  내 넋의 봇을 적셔  한 자 한 자 공들여 적어봅니다,  선언합니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에게,  시시한 추억들,  못 잊을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유품을 나누어놓고  이것이 최후라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문틈을 샅샅이 레이스로 봉합니다,  그리고 가스마개를 틀고  더러운 부엌바닥에  냉정히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아직 너무나 젊기에  더 살고 싶다는 푸르른 나의 육신에  못을 탕--탕--박고  망치를 허공으로 던져버립니다,  살점이 튀고  아까운 피가 양수처럼 따뜻이 고입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기역--니은--디귿! --하고  어머님께 매를 맞으면서  처음 글씨를 배웠던 일이,  첫애를 낳을 때의  그 무시무시한 고통과  현란을 극한 사랑의 고마움이,  번개처럼 일어나  창문을 열어봅니다,  달빛이 初雪처럼 흘러내립니다,  나의 해골을 집어들고  달빛을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마십니다,  고해를 하고 성찬을 받은 것처럼  목숨이 더없이 맑아진 것 같습니다.  유서를 쓰며  詩集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흰 노트를 사러 가며  외로운 날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소복소복 흰 종이 위에  넋을 묻고 울어야 합니다.  황혼이 무서운 곡조로  저벅저벅 자살미사를 집전하는  우리의 불길한 도회의 지붕밑을 지나  나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면죄부를 잔뜩 사는  탐욕스런 노파처럼  나는 흰 노트를 무섭도록 많이 삽니다.  간호부-수녀-어머니-  흰 노트는 피에 젖은 나의 정수리를  자기의 가슴으로 자애롭게 껴안고  하얀 붕대로 환부를 감아주듯  조심조심 물어봅니다.  고독이 두렵지 않다면  너는 과연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고통스러운가고  세상에는 너무나 무능하여  성스럽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무능한 순정으로  무능한 순정으로  흰 노트는 나를 위해  정말 몸을 바칩니다.  외로운 날엔  흰 노트를 사러 갑니다.  미칠 듯한 순정으로  미칠 듯한 순정으로  또박또박 흰 종이 위에  나는 또 내 슬픔의 새끼들을 수북이 낳아야 합니다.  ~~~~~~~~~~~~~~~~~~~~~~~~~~~~~~~~~  눈부신 유언 한 채  110층 화염의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여자는 한점 화엄같이 전화기를 껴안고  목숨은 그냥 두고 전화기를 그보다 더 껴안고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두 신발에 오렌지색 불이 붙은 것도 모른 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꼭두서니 빛 불타오르는 화염에 치마를 물들이면서  너를 사랑했으며 너를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한 잎 화엄 잎사귀에 매달려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엉덩이를 다 먹고  허리 한복판을 너울너울 화염이 베어먹는 것을 느끼면서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이 불타는 허리 이 불타는 척추 이 불타는 모가지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불꽃이 머리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느끼며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여자는  불타는 머리카락 난폭한 두 귀가 갈기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끼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펄럭거리는 화염이 얼굴을 와락 베어먹는 것을 느끼며  여자는  일생을, 그 한 마디,  사랑한다는  그 말속에  묻으며  여자는  그 한마디에  결혼식과 장례식과 묘지명을  순식간에 다 쓰고  떨  어  지  는  순  간  의  그  여  자  는  ~~~~~~~~~~~~~~~~~~  사랑 8  -프라이데이가 로빈슨 크루소를 만난 날/김승희  당신은― 날-― 금요일에 구해 주셨지요  식인종들로부터―  그래서 주인님은 나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붙이셨지요  주인님을― 만난― 날이  내 이름이 되었어요  주인님을 만나기 전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그 날이 나의 이름이고 출생이고  영광이었어요  이제 나는 프라이데이예요  맨발에는 가죽 신발이 덮이었고  순진무구한 눈동자에는 벌레 같은 문자들이  기어들어 왔어요  내 이름은 프라이데이  그 날이 나의 이름이고 출생이고 종언이고  저주였어요  그 날부터 나는 애도 중입니다  뉴멕시코 광활한 땅, 망망대지에 푸에블로 인디언  그 날부터 나는 애도 중이에요  보호 구역에서 애도 중인 폐선 자기를 애도하는……  과도한 애도 중……  ~~~~~~~~~~~~~~~~~~~~~~~~~~~~~~~  사랑 11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한 여자가 횡단보도 건너 저편에  핸들을 잡고 멈추어 있다,  나는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횡단보도 이편에 핸들을 잡고 멈추어 앉아 있다,  붉은 신호등이 이렇게 모르는 두 여자를  잠잠히 마주보게 만든 그 고유의 순간  초침이 두 여자의 얼굴 위로 사각사각 지나가며  사과껍질을 얇게 벗겨내듯  과도 칼의 저미는 움직임이 얼굴 위에 느껴진다  유의해서 보아야 할 아무 특이한 점이 없는데도  무언가에 끌려서  벙어리 지뢰처럼 서로를 긴장에 차서 바라본 그 순간  붉은 신호등이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고  급히 전진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모든 인연을 끊고 질주해 나가야 할 이 진군의 시간  얼핏 스치며 나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녀의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뒷차들은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일 분 일 초에 일생을 건 사람들처럼 미친 늑대의 소리를 내지른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일 분 일 초에 목숨을 건 미친 늑대들인 것이다  그녀의 차는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다  스치면서 그녀의 얼굴을 흘깃 들여다본다  백합처럼 하얗게 굳은 얼굴,  왼쪽 콧구멍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붉은 피는 아까 전부터 흘러내렸는지  미색 가을 정장 윗도리 가슴 편에  아르다운 꽃다발이 뭉클뭉클 피어올라 있다  급성 뇌출혈,  가슴에서 뭉게뭉게 꽃피어 올라가는 꽃다발 헌정의 순간  그녀도 집에 닦지 못한 식기를 한아름 싱크대 위에  버려두고 도망치듯 나온 여자였을까,  강의 준비를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아홉시 수업에 늦지 않게 당도하려고  미친 듯 페달을 밟던 여자였을까,  더이상 경쟁려기 없다는 말을 그저께 들었던,  시부모로부터 네가 인간이냐는 말을 어저께 들었던,  친정 어머니로부터 전세값이 올랐는데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어쩌면 좋으냐는 말을  아침에 들었던  그 여자였을까,  당신의 사랑은 거기서 더 기어갈 수가 없었을까  사람들은 모두 다 끝나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를 가진다  내 차는 그녀의 차를 스쳐 지나가며  소리쳐 물어본다  왜 그렇게 핸들을 꽉 잡고 있는 거냐고,  당신의 사랑은 더 갈 수 없었던 거냐고,  거기서 멈추어버린 어떤 피로, 어떤 갈망,  미친 코다에 대한 그리움이  또 내 차를 미친듯이 몰아간다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웃음이란 상징적 사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씨앗 중의 하나---보들레르  바보 산수  정자에서 네 팔을 벌리고 낮잠을 즐기는  바보 산수  빨래하는 여인을 훔쳐보는 동네 영감이 있는  바보 산수  엿장수를 반기는 즐거운 아이들의 웃는  바보 산수  중력의 악마를 뿌리 채 뽑아내려는 듯  질질 끌고 가다가  휘두른 듯이 내려친 자루 걸레  그 봉 걸레에 먹을 듬뿍 찍어  병풍 위로 질질 끌고 다니며  불굴의 한 획으로  웃고 달려가는 잇달아 파고들며 웃고 달려가는  달아날수록 웃고 덤벼드는 뭉클뭉클한 천千의 산맥을  그린  걸레 수묵  후려치는 봉 걸레  빗자루를 타고 달려가는  웃는 웃음  그 웃음의 산맥을 타고 달려가는  꿈틀대는 웃는 웃음  그 웃음  빗자루가 휘갈리는 그 웃음  바보 웃음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푸른 상치들이 있는 풍경  도시의 창가에 유리창 가에 상치들이 상치들이 상치들  이 푸른 귀를 맛대고 푸른 뺨을 맞대고 푸른 숨 맞대고  푸른 입을 맞대고 팔 하얗게 드러난 팔 파랗게 드러난 힘  줄 팔 하얗게 드러난 팔꿈치들을 맞대고 뺨 한곳엔 흙이  묻어 뺨 한곳엔 물이 묻어 뺨 한곳엔 햇살이 묻어.....무  언가 옹알이 내 귀가 아알지 못할 옹알이 나른한 말들 숨  결들 꿈결들인 양......상치 밭에서 깜박 잠들었네 내 뺨  에 절 한 채 지어놓고 내가 도망갔네 도망간 나를 찾아  굳이 길을 떠나야 할 것은 뭔가?  시집 ;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 민음사.2000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하얀 문이  관뚜껑처럼 닫혀 버린다  아직, 얼굴 위에서  미처 미소가 지워지기도 전에,  일방적인 해고통고와도 같이  하얀 문이  관뚜껑처럼  닫혀 버린다  아, 아, 안녕......하고  말을 맺기도 전에,  사랑하는 이여,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면  정녕 그럴 수는 없다,  우린 좀더 사랑했어야 하고  우린 좀더 진지한 고통을  나누어야 했지,  사랑하는 이여, 그대와 나,  우린 좀더 불을 통과하는 뜨거운  길들을 함께  다녀보았어야 했다  언젠가 하얀 문이  그렇게 닫혀지고 말겠지,  불가사의하고도 불가항력적인 - 하얀-  단절이-우리의-  얼굴 위에 수면마스크처럼  조용히 드리워지고,  비단끈으로 된 하얀 망사처럼  보슬보슬한 음악이  엘리베이터 천정 위에서  세뇌라도 하듯이, 자근자근 소근소근  속삭여대겠지,  잊어버려, 이젠 다 끝장이 났어,  잊어버리라고, 낄, 낄, 낄......  사랑하는 이여,  그대와 나,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면  정녕 나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언제나 마지막 문은  그렇게 닫혀지고 마는 법,  언제나 지고 있는 노름패처럼  열쇠도 없다,  열쇠도 없이  그렇게 우리 홀로 승천의 문 안에 갇혀져야 하는가,  그렇게 홀로 갇혀  멍청히 승천의 길로 올라가야 하는가......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나남.1987.  ~~~~~~~~~~~~~~~~~~~~~~~~~~~~~~~~~~~~~~~~~~~~~  꿈과 상처  나대로 살고싶다  나대로 살고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였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구나  ~~~~~~~~~~~~~~~~~~~~~~~~~~~  이카루스의 잠  어느 날  새들의 임금님이  우리의 땅에 내려왔다  황금빛 햇살을 맞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자, 누가 이카루스인가.  모두들 한 번 날아보아라」  태양 가까이 날아  날개가 불태워져버린 아이에게만  불멸의 날개를 주겠다.  납이 아니고  뼈와 뼈의 날개,  녹을 수 없고 썩지도 않는 날개  그러나 지상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느 아이가 귀가 있어  그것을 듣겠으며  어느 날개가 천재가 있어  태양까지 날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가만히 있었다.  「이카루스만이 영원하다  그것을 모르고 사는 者는  이 지상에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오, 지금은  시인도 청년도  사슴도 독수리도 아무도 날을 수 없음을  우리는 아무도 날지 않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하늘 속에서 태양은 아름답고  태양 속에서 생명은 불타지만  그러나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잠을 자네  파도와 회색바위 위에서  이카루스,  모든 이카루스는 아무도 잠깨지 않네  아무도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거울 속에, 아니 아니,  화분 속에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심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내가 죽어 있을 동안이라도  더욱더욱 자라야 한다고,  환상이란 상심이지만  내가 잠들어 있을 동안이라도  몰래몰래 자라야 한다고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묻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도괴된 복도 속에 통조림 깡통이 하나 파묻혀 있다,  미를 헤치고 통조림 깡통을 들여다보면 인스턴트  평화라고 뚜껑에 대문자로 적히어 있다, 통조림 깡통  속에 장조림된 나, 통조림 깡통 속에 장조림 된 너,  평화는 불사신과 같이 방부처리되어 있어서 당신이 통  조림 깡통을 땄을 때는 화두처럼 목 없는 닭 한 마리  평화롭게 온 세상 그지없이 평화롭게 누워 있었으니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준다,  거울 속에, 아니 아니,  화분 속에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나를 심고  거울 속에 물을 준다,  환상이란천벌 같은 거지만  화분 속에는 사막식물이라는  선인장 화초가 심겨져 있고  화초인지 아닌지  그 선인장은 백년 동안에 한 번만  꽃피울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선인장 몸 위엔  갈퀴쇠 같은 물음표만 녹색으로 가시 돋쳐  왜? 왜? 왜? 라고  눈동자를 찌를 듯이 거울면으로  육박한다,  난수표 같은 절망은 자금회전이 안 됩니다,이곳에선  희망만이 현금유통되고 있어요, 희망을 환불하려고 거  울창구 앞으로 다가서면 희망이란 얼마나 하잘것없는  돈푼인지, 거대한 절망의 허물 수 없는 어음에 비한  다면 희망이란 얼마나 소소한 푼돈인지, 나는 밤마다  화분 속에 물을 준다, 이 생에선 그 꽃을 볼 수 없다  하여도, 나는 밤마다 거울 속에 물을 주고, 절망에 죽  음을 보탠 그 몸짓으로밖에 나는 그 선인장 꽃을 가꿀  줄을 모르니  ~~~~~~~~~~~~~~~~~~~~~~~~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말  인연은 재앙이니라-  내가 너무 배가 고파  어두움 속에서  달덩이같이 삭발한 그리움을  하나 걸어두었더니  꿈인듯 생시인듯  이상한 향기나는 白馬가 날아와  내가 하늘을 타고 갔느니라-  오색 구름 속에 황금궤가 홀연히  걸려 있는데  너무 곱고 너무 신령하여  내가 그만 외상으로 너희들을  사오고 말았더니라-  인연은 재앙이니라-  뭉게뭉게 퍼져가는 암세포처럼  시시각각 외상값은 계속 불어나  강아지같이 불쌍한 내 새끼들아,  너희가 갚아야 하느니라,  맷돌을 목에 걸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광견병 든 개처럼 맞아서 죽더라도  잔인한 것은 내가 아니다  흡혈귀는 -나는-아니다  고문처럼 질긴  철천지의 사랑-  이 무슨 원한의 달콤한  피냄새-나는  아니다-내 착한 새끼들아  인연은 후환이니라-  시집 : 큰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 / 청하/1984  ~~~~~~~~~~~~~~~~~~~~~~~~~~~~~~~~~~  오후 세 시의 식당  오후 세 시의 식당은  들숨과 날숨이 뒤바뀐 시간  폐에 바람이 가득찬 풍금 건반이 저절로 홀로  유령의 건반을 눌러보는 시간  의사 가운을 입은 주방 아주머니들이  하얀 빵 모자에 빨간 앞치마를 두른 채  식당 테이블에 나와 앉아 밥을 먹는 시간  큰 양푼에 맛있게 무친 나물을 넣고  한번 더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여러개의 김나는 팔뚝들이 들락날락하며  함께 나누어 맛인는 시간  의사가 환자가 되는 시간  환자가 의사가 되는 시간  링겔꽅은 왼팔을 흔들며 무어라 말을 하려  ......ㄱ ㄴ ㄷ ㄹ...... 하던 마지막 임종의 얼굴이 스치는데  남에게 국그릇을 퍼주던 김나는 팔뚝들이  자기 입으로 숟가락을 가져가는  여인들의 맛있는 시간  이사도라 덩컨이 차를 출발시키다 스카프에 목이 졸려  죽은 나이, 마흔 아홉, 오후 3시,  혼자 앉아 점심이나 먹는 나의 시간  정신박약의 당나귀가 어흥어흥 우는 시간  주방에선 양배추 끓이는 냄새가 자욱 올라오고  양배추들이 요오드크롬을 바르며 혼자 죽는 시간  알듯 말듯한 애도의 시간  활짝 펼쳐진 절정의 부채처럼  다 펼쳐진 부재의 시간  시인세계 ; 2002 가을 창간호-문학세계사  ~~~~~~~~~~~~~~~~~~~~~~~~~~~~~~~~~~~~~~~~~~  흰 나무 아래의 즉흥  하얗고 단단하고 깨끗한 여름날  우리들은 게오르그 브라끄의 해안에 있으면서  사유 안에  하나의 급한 흰 나무를 갖는다.  흰 나무는 그네다.  불꽃의 날아가는 맨발에 올라  내 일상은 훨훨 비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우리는 하나의 붉은 사과를 나눠먹으며  타오르는 해안의 태양 옆길을 간다.  아아,나는 너와 오래오래 만나고 싶어.  십오 분. 이십 분.  한 시간이 아닌  죽음과도 같이 긴 시간을,꿈의 시간을  예쁜 칼처럼 너를 지니고  헤어지지 않고 있고 싶어  언제나 서로 함께  불꽃 속에 살아  언제나 서로 함께 살아있고 싶어.  사랑은 죽음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푸른 바람을 달리며  대양을 횡단하고  대양을 버린다.  밝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오후 바다의 빛나는 머리칼은 와 감기고  돌아온 해안에서  우리는 보다 직접적이고 견고한 죽음과 만난다.  검게 그을은 얼굴을 들고  우리의 입술은  이제 보다 우수한 미소를 간직한다.  ~~~~~~~~~~~~~~~~~~~~~~~~~  時間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흑색 금식 창을 들고  사유의 들판에서 쌍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거슬 편들지는 않으리.  죽음과 生을  모조리 나의 심장 속에 놓아 먹이리.  그러나 그때에는 달랐었다.  내가 아직 내 말[馬]의  고삐쥔 손을 느끼지 않았을  그때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아라.  지금은 빛나고 휘날리는 金색의 깃발.  그러나 곧  정적이 와버리는 것을.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미래사  ~~~~~~~~~~~~~~~~~~~~~~~~~~~~~~~~~~~~~~~~~  피난 계단  계단은 올라가는 것이거나 내려가는 것이지만  어느쪽으로 가야만 피난이 되는지를 알 수 없을 때  냉담신자처럼  아직 어떤 방향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다면  불과  불  사이  세상은 온통 연기가 앞을 가리운  최루탄 장막의 무성영화  에취 에에취 기침을 하면서  엉엉 훌쩍훌쩍 눈물 닦으며  이쪽으로 가본들  저쪽으로 가본들  피난은 멀고  불은 가까우니  ~~~~~~~~~~~~~~~~~~~~~~~~~~~~~~~~~~~~  가까운 사람을 멀리 사랑하기 위하여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온통 벌거숭이로 피를 칠하고 있을 때  난 알 것 같았어,  왜 별이 아름다운지를,  난 알아질 것 같았어,  만일 구름의 너울이 없다면  어떻게 감히 태양을  사랑이라고 부르겠는가를,  밤에 마지막 외침처럼 황량한 마음으로  지붕 위에 서 있으면  먼데 있는 사람아, 말하려므나  내가 평화처럼 혹은 구원처럼  금빛이더라고,  신비한 금선이 아득히 흘러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꿈꾸게 되는지를,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내가 울부짖는 하나의 욕설처럼 추악해질 때  난 알고 말았어  별과 神은 왜 그토록 멀리 있어야 하는지를,  모든 성당의 창문에는  왜 천연색의 색유리가 끼여 있는지를,  오늘 애가 여기 천벌의 화형으로  지새우는 불이  어디엔가 먼 사람에겐  아마도 위안처럼 정다우리니  생각해 보아,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별은,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왜 우리에겐 그토록 간격의 탐닉이  필요한 것인가를  ~~~~~~~~~~~~~~~~~~~  호텔 자유로  자유로는 이제 호텔이 되었다  자유로에서 자유는 이렇게도 많이 밀리고 있다.  싱싱한 브로콜리 같은 아침의 얼굴이여  누가 이 아침의 얼굴을 식물인간으로 눌러 놓았나  자유로에서 밀리는 것은 정말 자유만이 아니다  때묻은 얼굴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맨발로  조그만 베개를 가슴에 안고  아가야, 아가야, 젖 줄까, 베개를 토닥이며 돌아다니던  그 미친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붉은 그리움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움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을 때  그리움이 앞으로도 뒤로도 다 막혀 있을 때  나도 얼마든지 그렇게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미치거나 식물인간이 되어서 반쯤 졸거나 반쯤 자는 길.  서울로 가는 전봉준도 그랫으리라. 깃발은 들었고  자유는 밀리고. 황토재 떠나 황룡촌 지나  첩첩 그리움은 막혀가고. 보은 지나 금강이여.  서울로 가는 길목마다 그렇게도 어려웠으리라  자유로에 점점 떨어진 푸른 알들이여  녹두 꽃잎들이여......  호텔 자유로. 인디언 담요에 몸을 두르고  김밥과 샌드우위치를 찬합에 놓고 먹으며  그렇게도 싫어했던 실려가는 삶에 대해  실려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밀려 있는 자유에 대해  밀려 가는 자유에 대해.  그리고 또다시 언젠가 피어날 녹두꽃에 대해  피기도 전에 탄환에 스러진  카불 소녀의 녹슨 녹두빛 눈동자에 대해......  실린 곳 : 2002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  모든 신발이 불편하다  모든 신발이 불편하다 나는 신발장을 연다  모든 신발이 가혹하다 나는 신발장을 닫는다  신발을 신고 나설 때마다 난 어떤 본능을 다치는  것만 같아, 골절, 뼈 뼈 뼈가 어긋 물린 것 같고 어떤 때는  도에 지나쳐 피 피 피가  길 위에 흘러내려 나의 길을 모가지로 감고 엉겨 저지하는 것 같아,  신발에서 길을 갈라내지 못하면  미친 듯이 신발의 길에 먹힐지도 모른다  신발에서 발을 추려내지 못하면  어쩌면 신발에서 발목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또 신발의 중독에서 깨어난 발  발가죽의 중독에서 깨어난 뼈들조차  더 시끄러운 이 내란의 길목에 서서  꿈이여, 잠시 잠시만 더, 그래도, 이 가죽 부대 같은 신발 안에  뭉쳐 있지 않겠니? 신발을 들고 날아가는 저 눈부신 태고의 날개가  하얀 자갈밭에서 알을 깨치고 날아가는  태양빛의 뜨거운 새처럼  고요히 중심의 원시 신화 속으로 솟구쳐 오를 때까지  나의 발은 아직 할 일이 많고  나의 발은 아직 더 가고 싶은 길이 있단다  그리하여 엘칸토 금강 에스콰이어 비제바노 브랑누아를 넘어  레스모아 미스미스터 엘레강스 허쉬파피 랜드로바를 지나  갔습니다  구두 대(大) 바겐에 가면 나에게 맞는 신발을 어쩌면 구할 수 있으리라~  모두 신발이 뼈에 마치고 근육은 구두에 대들고  발톱은 구두 가죽을 찢고 한 발 가득 무성한 털은  솟구쳐 나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범주를 벗어난 모래와 엉긴 피가  나의 신발 너머 길 가득 수북이 넘치고 있으니  모든 신발이 수상하다 나는 신발장을 연다  모든 신발은 천적이다 나는 신발장을 닫는다  ~~~~~~~~~~~~~~~~~~~~~~~~~~~~~~~~  길이 없는 길 위에서  역촌동 →상도동 구간을 오늘도 내일도 달리는  저 시내 버스는  어쩌면 나보다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승객들이 오르고 나면  재빨리 문이 닫히고  시간이 없다고 갈 길이 멀다고  오늘도 내일도  의심 없이 그 길을 달려가는  저 노선 버스는  나보다 더 고뇌가 없는 씩씩한  길을 가진 것이라 해도 좋다  매일매일  떠나야 할 분명한 시점과 닿아야 할 분명한  종점을 가진 것이  부럽다 해도  난 벌써 서른다섯 살.  아스팔트 위를 먼지와 함께 불어 가는  가을바람  처럼  그 바람에 흩어져 날아가는  어제 저녁의 구겨진 신문지 조각  처럼  나에겐 떠나야 할 곳도 닿아야 할 곳도  언제나처럼 분명치가 않다는 느낌이다  행복한 길을 가지기 위하여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행복한 길을 가져야 할까  나는 아직도 아마 모른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종점에서 닿고  떠나는  행복한 시내 버스들을 바라다보며  다만 나에겐 길이 없다는 절망과  길을 원하는 갈증이  우울증같이 멀미같이  환상의 외침이 되어 다가든다는 것뿐이다  ~~~~~~~~~~~~~~~~~~~~~~~~~~~~~~~~~~~~~~~  천년을 목에 걸고  내 마음에 한 그림자 있으니  천년을 기다려도 다 지워지지 않아라  마음을 묘비의 뚜껑삼아  밤마다 그림자의 획을 새기니,  죽어가는 인형을 안고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  여인이여, 여인의 품안에  병든 꽃의 목숨은 너무도 희미하여  물 한 모금 달라고  끝으로 말하지도 못했노라,  넋나간 유령처럼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여인의 가슴에  십자처럼 선명한 유혈의 검은 장미는  한 잎 두 잎  독 묻은 꽃 이파리 너울댈 때마다  뭉텅뭉텅 여인의 살을 베혀갔노라,  아직도 다 가지 못했노라,  천년을 더 한다 해도 다 가지는 못할,  내 마음에 한 그림자 있으니  마음을 묘비의 뚜껑삼아 밤마다 그리노라  ~~~~~~~~~~~~~~~~~~~~~~~~~~~~~~~~~~~~~~~~~~~~  우표 한 장의 사랑  가을이면 문득 작년에 넣어둔  옷장 속의 긴 코트를 꺼내 입고  바람처럼 괜히  길 모퉁이로 나서지,  하얀 장미꽃 그림자 같이  초췌한 양광陽光 속을 걸어가다 보면  호주머니 속에 작게 접힌  작년의 종이쪽지가 손에 잡히지,  나프탈린 냄새로 절여진  불쌍한 내 사랑,  하얀 방부제 속에 파묻혀  일 년이나 일년동안이나  창백하게 봉인된 금지된 내 사랑,  가을 햇빛 아래  이 종이쪽지를 건네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난 잊어버렸지만  이 종이쪽지를 쓴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덧없이 향기로왔던지를  난 기억할 수 없지만  가을 햇빛 아래  가을 햇빛 아래  차마 그 종이쪽지를 꺼내  그리운 전화번호를 읽어볼 수 없다 하여도  국립박물관 4층 불교회화실  진열장 속에 보관되 있던  은으로 쓴 화엄경을 난 기억할 수 있네,  어두운 청색 감지 위에  은으로 쓴 화엄경,  너무도 풍부한 슬픔 위에  화려하게 자수된  불멸의 은빛 극락조,  그렇게 영원한 것은  어둠 속에 차디차게 빛나며  작년의 긴 코트 호주머니 속에  반짝반짝 금석문처럼 남아  하얀 장미꽃 그림자 같이  초췌한 가을햇빛 속을 걸어가다 보면  그대여-그대는 어디로 갔을까  그대여-그대는 어떻게 갔을까  알고 싶지만 알 수가 없고  보고 싶지만 다시 볼 수가 없어  여름 사랑이면 힘껏  껴안을 수가 있지만  여름사랑이면 뜨겁게 부딪칠 수가 있지만  가을사랑이여 가을사랑이여  나뭇잎 그림자 아래 종적조차 없으니  그대여-어디로 가야 그대를  그대여- 어디로 가야 그대를,  어찌해도 그대에게 가는 길을  알 수가 없어  우표 한 장의 그리움으로  막막히 집을 나서  천지사방 바람처럼 허공을 헤매일지라도  난 호주머니 속의 그 종이쪽지를  결코 꺼내어 읽지 않으니  가을이면  내 얼굴은  점점 더 비석을 닮아가고  가을이면 내 사랑은  점점 더  우표 한 장의 그리움을 닮아  정처없이 정처없이  바람의 가출을 일삼고 있음이여  시집 : 미완성을 위한 연가 / 나남  ~~~~~~~~~~~~~~~~~~~~~~~~~~~~~~~~~~~~  땅에 떨어진 눈썹  신의 연습장 위에  나는 하나의 희미한 물음표,  어느 하늘, 덧없는 공책 위에,  신이 쓰다 버린 모호한 문장처럼  영원히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나는 하나의 물음표,  뒤주 안에 갇힌 왕자가  어둠 속에 날아다니는 들불 도깨비불에  홀려  퍼얼펄 옷을 찢어버릴 때의  피의 급류처럼  때때로 내 몸속으로도 그런 광기 젖은  물음표의 급류들이 뚫고  지나가느니---  신령님이 세상과 하늘에 대해  가장 붉은 글을 적으실 때에  흰 뼈  내 두개골의 가장 무심한 흰 뼈를  그의 연필심으로 바치고 싶었었지,  그리고 나머지 나의 몸은  강물 어느 모든 강물 위에 누워  말없음표처럼  평화를 사랑하리라고......  나는 하나의 초라한 물음표,  신의 나라에는, 물음표 가진 문장이  필요없다 하여서,  나는 하나의  더디 지워지는...... 울음표......  왼손을 위한 협주곡 / 민음사, 2002  ~~~~~~~~~~~~~~~~~~~~~~~~~~~~~~~~~~~~~~~  촛 불  하얀 무지개,  전신에 온통 흰 멍이 들어서--------  침묵으로 견디며  채찍을 맞고있는 사람처럼  화려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몸속의 부처가 눈을 뜰 것처럼,  슬픔이 성대해진다----------  시집 : 왼손을 위한 협주곡  ~~~~~~~~~~~~~~~~~~~~~~~~~~~~~~~~~~~  슬픔의 날품팔이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열심히 날품을 팔면서,  돌아오는 것은 없지만  돌아오는 것을 믿는 것은 야비한 일이라는  정신적인 금언까지 믿으면서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바퀴벌레처럼 순정적으로  시대는 바야흐로 교환의 시대여서 내가 가진 것으로 품을 팔아야 남이 가진 것을 얻어낼 수가 있지요, 나는 무엇을 가졌던가, 무엇을 가졌길래 무엇으로 나를 팔아넘길 수가 있을까, 나는 교환가치도 없고 생산가치도 없고 소비가치도 없는 그리하여 어디 가서도 교환이 안 되는, 교환불능의 순정이라는 자본만을 가진, 한 마리의 저능한 바퀴벌레처럼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되는 대로 날품을 팔면서  팔 것이 없어서 슬픔을 팔면서,  하얀 적십자병원 뜨락에  힘없이 서서  자기 피를 팔려고  서성이는 사람들,  어서어서 피를 팔아  국밥 한 그릇 사먹기가 소원인 사람들,  그것조차 아슬아슬 차례가 안 오는  사람들,  그렇게 살고 있어요,  슬픔을 팔아 끼니를 사고  슬픔을 팔아 별빛을 사며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바퀴벌레처럼 굴욕적으로  시집 ;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  시집  「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등을 냈으며,  산문집  「33세의 팡세」「남자들은 모른다」「냄비는 둥둥」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등을 펴냈다  김승희:1952년 광주출생.  시집(1979)  (1983)  (1987)  (1989)  (1991)  제 5회 수상(1991)    
1343    그 누구나 시의 전파자가 되는 날을 위하여... 댓글:  조회:4446  추천:0  2015-07-08
“시인은 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사람” 시 읽기의 즐거움 전파하는 장석주 시인 ———————————————————————————————                                                                  글 : 임현선 / 사진 : 김선아         ‘스무 살에 등단해 예순이 된 지금까지 시를 쓰는 사람, 읽을 수 있는 것에서 읽을 수 없는 것까지 읽어내는 독서광, 읽고 쓰는 것에 모든 것을 건 문장노동자’….  2007년부터 본지에 매달 ‘시와 시인을 찾아서’를 연재하는 시인 장석주는 ‘날마다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다. 그동안 100명에 가까운 시와 시인을 소개했지만 단 한 회도 거른 적이 없다. 그는 “9년간 연재를 하면서 지겨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항상 즐거웠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인 시의 즐거움, 시의 정수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욕은 여전히 강했다. 오히려 영상물이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면서 ‘소수자의 위치’로 전락한 시 문학과 독자들이 잘 교감할 수 있도록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더 커진 듯했다.  “시와 친해질 기회가 없었던 젊은 벗들이 더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천 편의 시는 천 가지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어요. 저는 전문가적인 논리보다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사물을 보고 감성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장석주 시인은 본지에 기고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21세기북스) 두 권이다. 첫 번째 책에는 사랑과 이별, 청춘을 주제로 삼은 시들을, 두 번째 책에는 삶과 죽음, 인생을 주제로 한 시들을 소개했다. 시 읽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곡진한 마음이 곳곳에서 읽혔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농부, 화물차 운전사, 교사, 의사 등 폭넓은 경험과 경력을 지닌 시인 60명의 시 60편이 장 시인의 감성적 해설과 더불어 펼쳐져 있다. 장 시인은 시인을 먼저 선택하고 그 시인의 시집을 전부 읽은 뒤 시를 정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되도록 알려지지 않은 시인의 좋은 시를 찾아 소개할 때 더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시는 ‘지적 근육’을 만드는 수단   장석주 시인은 열네 살 때 처음 시를 접하고 열다섯 살 때 〈겨울〉이란 시를 써서 〈학원〉지에 발표했다. 스물다섯 살 때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한 뒤 15권의 개인 시집을 냈다. 평론을 겸업하며 낸 평론집만도 10여 권에 이른다. 40년 동안 시를 읽고 썼지만, 그는 겸허하게 “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시는 모호하고 심오한 것이라는 말인데,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또렷하게 대답한다.  “시는 전적으로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우연의 산물입니다. 아직도 시를 잘 모르겠지만 시인의 일이 영업판촉 분야 일과는 다르다는 것은 알죠. 영업판촉 인력은 자기가 팔아야 할 제품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시인들은 제가 쓰는 시의 소재인 사물과 세계, 그리고 현상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시를 통해 보여줄 뿐이죠.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시를 읽지 않는 삶보다 시를 읽는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겁니다.” 장 시인은 시를 “지적 근육을 만드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시를 자주 읽으면 직관력이 생기고 직관을 훈련하면 통찰력과 투시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 시인에게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지혜이고 용기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데에 있으며 더 넓게는 세계를 바꾸는 혁명적인 것이지만, 그 이전 무지에서 깨어나는 기쁨을 주고, 정신 수련으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존재의 약동을 위해서나 정신의 유연함을 키우는 데 시는 반드시 필요해요. 시인은 상형문자와 같은 경험의 낱낱을 해독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도록 독자를 이끌죠.”  장 시인 역시 시를 읽고 쓰면서 직관을 키우고, 자아의 점진적 진화를 이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새벽 3시부터 4시 사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에 시를 쓴다.  “이성이 깨어나기 전 무의식 상태에서 시를 써요. 제 생각의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언어들과 이미지들을 붙잡아내는 것이지요. 나중에 새벽에 끼적인 것을 읽어보면 제가 썼는데도 왜 이것을 썼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구절들이 있어요. 시의 초고는 이렇듯 비논리, 초논리 문구들이 산만하게 펼쳐져 엉망이죠(웃음). 그걸 이성적 사고가 활발한 낮에 리듬을 만들고 구조화될 수 있도록 다듬고 정리합니다.”  장 시인에게 좋은 시란 어떤 시일까? 좋은 시는 사물과 존재의 핵심을 성찰하되, 그 진실과 마주치는 고통의 순간을 미적 쾌감의 순간으로 바꿔놓는다. 아무리 끔찍한 내용이 담겼더라도 좋은 시를 읽고 난 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독서는 나의 삶, 나의 힘   장석주 시인은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해인 1979년 1월에 출판사 편집부에 취업한다. 몇 년 뒤 독립해 13여 년 동안 출판사 경영인으로 살았다. 그동안 출판편집자로 살며 만든 책이 총 800여 권이다. 숱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손을 거친 시집 《홀로서기》는 200만 부 이상 팔렸다. 30대 중반 출판사 경영에도 크게 성공해서 강남에 5층짜리 건물을 샀다. 출판사가 커지면서 직원도 몇 배나 늘었다. 그에게 ‘출판기획의 천재’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운도 따랐지만 정말 일에 미친 듯이 자신을 다 바쳤죠. 눈뜨고 있는 동안은 오직 무슨 책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생각만 했어요. 놀 줄도 몰랐고, 개인 시간도 없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거의 없었죠. 어느 날 제 인생의 초안이 떠올랐어요.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전업작가로 사는 게 제 인생의 목표였거든요. 출퇴근하는 생활이 더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겨워졌어요. 그래서 미련 없이 사업을 접었습니다.” 출판사를 접은 뒤 시공사와 계약을 맺고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 다섯 권을 서교동의 한 낡은 오피스텔에서 썼다. 1993년에 시작해서 2000년 11월에 완간했으니 7년이나 걸린 큰 작업이었다. 장 시인이 쓴 원고는 200자 원고지 1만5000장에 달했다. “7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글쓰기를 하면서 쓰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완전히 떨쳐냈어요. 그 이후 글쓰기에 탄력을 받아 전업작가가 될 수 있었죠.” 마흔 살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터전을 옮겼다. 사업을 정리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출판사가 번창할 때 노후를 위해 사놓은 경기도 안성의 호수가 바라보이는 땅에 근처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지었다.  “출판사를 정리할 때 몸만 나왔어요. 아무 생계수단도 없이 출판사를 접었으니 굉장히 막막했죠. 시골로 온 것은 실존적 결단이었어요. 스스로 낙후와 고립과 유폐를 선택한 거죠.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는 문명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겁니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에 내려와 두 해 동안은 물(호수)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장 시인은 시골에서 노자·장자 철학과 주역을 공부하며 새로운 지적 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그에게 동양철학은 지적인 신세계였다. 동양철학과 더불어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들뢰즈·벤야민·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서양 철학자들의 책에 빠져 살았다. 장 시인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다. 이런 독서 편력이 지적 자양분이 되어 전업작가로 나선 뒤 숱한 책을 쓰게 했다. 최근 그의 저술활동은 가히 활화산같이 폭발적이다. 올해 신작 10여 권이 나올 예정이다. 책의 종류는 문학평론·철학서·에세이·그림책 등 다양하다.  “올해 말 저서가 80권을 넘어설 거예요. 읽은 책들이 제 내면에서 융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솟아나죠. 왕성한 글쓰기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장 시인은 날마다 눈뜨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새로 나온 책들의 목록을 훑어보고 필요한 책들을 주문한다. 매주 1~2회 책을 주문하는데, 해마다 새 책이 1000여 권씩 는다고 한다. 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 분류해서 서가에 꽂는다. 어떤 책은 두세 번 거듭해서 읽기도 한다.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혹은 ‘독서광’이란 말이 과하지 않다.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사과를 지하창고에 가득 갖고 있는 사람보다 손에 사과를 들고 씹어 먹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소유 욕심을 버리면 사는 일은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저는 문학과 철학에서 낙관주의를 배웠습니다. 시와 문학이 새롭게 세계와 마주하는 젊은이에게도 용기를 줄 거라고 믿어요.”  장 시인은 책의 서문에서 “어린 아들이 있다면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시를 읽게 하라”고 썼다. 그다음 단호한 문장이 이어진다. “허무에 쉬이 감염되는 나약한 아들 따위는 키울 필요 없다. 선승이 좌선하듯 시를 읽어라. 시와 좌선은 다 같이 본래 자기를 여미고, 여린 마음을 단련하도록 이끈다.” 날마다 ‘좌선하듯’ 시를 읽고 쓰는 장 시인의 모습이 두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342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인 댓글:  조회:4595  추천:0  2015-07-06
해방전 최초의 조선족 시인- 리욱     시인 리욱(1907-1984)은 중국조선족문단과 한국문단에 널리 알려진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간도문학의 개척자이며 대표자로서 널리 추앙 받고있는 민족시인이다. 그는 간도문학을 한국문학이 아닌 중국내 조선인문학으로서 자리를 잡게 한 최초의 문학인으로서 일생동안 그 터전을 갈고 닦아왔다. 리욱시인은 중국조선인문학의 몇개의 《최초》를 독점함으로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리욱은 중국조선족문학의 터닦기를 시작한 최초의 문학인으로서 1924년에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하였으며 1947년 광복직후 최초로 개인시집 《북두성》을 출판하였으며 1956년 북경에서 최초로 중국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됐으며 1957년 최초로 북경 작가출판사에서 중문시집 《장백산하》를 출판하였으며 최초로 《중국현대문학사》의 한페지를 장식하였다.  리욱은 1907년 7월 25일 로씨야 부라디보스톡 신안촌(고려촌)에서 출생, 소학교를 졸업하고 사숙공부를 하며 소시적부터 조부의 슬항서 사서오경과 절구를 배웠다. 1923년 4월 룡정 동흥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했으며 1924년 훈춘 창동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한편 계몽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1924년 처녀작 《생명의 례물》을 《간도일보》에 발표한 뒤를 이어 20년대에 성정시 《눈》, 《봄비》등을 쓰고 30년대를 잡아들어 《님 찾는 마음》(1930),《송년사》(1935), 《금붕어》(1938) 등을 《조선문학》, 《만가일보》, 《만선일보》,  《조광》잡지들에 발표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의 만주특파기자로 있었기에 일제 간도헌병대의 검은 당안에는 리성학을 위험인물로 지목했다.  이 시기 리욱은 월촌, 월파, 월초, 월추, 단립, 백파, 춘파 등 십여가지 필명을 사용하였다.  1940년 8월 일제에 의해 《조선일보》가 《동아일보》와 함께 강제로 페간되자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조양천, 화룡 일대에서 광석탐사를 했다. 이 시기 리욱의 시를 당시  평론가  김우철은 1940년 5월 15일자 《만선일보》에 이렇게 적었다.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그 지향! 그것만으로 신전시인의 명예를 차줄수있지 않을까.ㅁㅁ과 케케묵은 감각의 울타리안에서 시를 창조하는 대신 시를 복제(모방)하는  이미 퇴색한 청년시인들에 비해 볼 때 아직 체내에 미숙한 오관을 가지고 떠리는 두손과 두팔을 한껏 벌리어 새로운 의 세계로! 항시 비상을 익망하는 젊은 시인—신세대, 시인들의 활기를 나는 놉히  사고 싶다. 그러나 지나친 바상은 오히려 허망과 를 동반하는수가 있자 않을까? 무의미의 탐미성을 강조하는 슐레알리스트들의 시로에는 경복할수 없으므로 의미의 혼란으로 충만되여 그것이 반대로 무의미한 시작품으로 화해버리는 이런 류의 시를 쓰는 무의미를 월촌씨에게 삼가 경고하고 싶다. 의미의 람용으로 시인자신이 나중엔 판타지병에 걸려 자기도 리해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푸념과 넉두리와 언어의 유희로 충만된 시를 쓰는 수가 많고 이런 시를 우리를 재ㅗ있는 신인들에게서 간혹 볼수 있다. 그러나 월촌씨는 아직 그런 환상병에 걸림지 안흘만한 자성과 건강을 가지고 있다.》  리욱의 해방전 서정시는 한시 12수를 포괄하여 민족적 특성이 짙고 랑만주의색채가 농후한것이 특징적이다.《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상징주의적이며 은유적인 기법들을 재치있게 운용함으로써 자기나름의 시풍을 보여주고 있다》  광복후 리욱은 리학성이란 이름 대신 리욱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그의 창작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경향으로 발돋음하게 되였으며 시집《고향사람들》(민족출판사, 1957), 《연변의 노래》(작가출판사, 1957),《장백산하》(작가출판사, 1959) 등 시집들을 조, 한 두가지 문자로 북경에서 출판하였다. 서사시《고향사람들》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최초로 창작된 서사시이다.  이는 리욱의 시창작의 고봉을 이루는 성과작이며 건국후 조선족시문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리정표로 되고있다.  리욱의 한시를 보면 해방전에는 주로 절구를 쓰고 간혹 률시도 썼다. 해방후에는 대체로 사를 위주로 썼다. 그의 해방전 한시에는 애환과 향유가 섞여 있다.유고로 남긴 한시집 《협중시사》는 108수가 수록되여 있다. 김동훈은 《리욱선생은 우리 민족 한시문학의 마지막장을 휘황하게 장식한 자랑스러운 시인이다》고 말했고 조규익은 《그의 한시문학은 결코 중국문학의 아류거나 단순한 습작품이 아니라 중국현대상류문학에 속하는, 선명한 독자적개성을 띤 하나의 정신적재부이다》고 주장하고있다.  시인 리욱은 1984년 2월 26일 별세, 연변대학 학부4층 강당에서 전례없이 륭성히 추도식을 거행했다. 그의 시비는 화룡현 로과향 호곡령정상에 세워졌다. 맞은 켠은 조선 무산, 시《할아버지 마음》(1957)이 시비에 새겨져 특수한 의의를 갖게 되였다.  주성화 기자        무    제     민상의 길을 더듬는 고원 시달린 내맘 조립니다  아롱진 봄꿈 깨기전에 갈니페 찬서리 매치거니  푸른 호수에 잠드는 님의 넉시여! 저달의 기움 알것이로다  피는 꽃도 서름이 잇고 지는 님도 희망이 잇다  오! 숨차게 달리는 내맘 애닯은 옛자취 차즘인지      
1341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댓글:  조회:4366  추천:0  2015-07-06
  광복전 우리 민족 문단 둘러보기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과     과 은 우리 민족 문단이 형성되어 최초로 간행된 시선집들입니다. 처음 이 두 시선집 복사본을 읽는 저의 마음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 연구는 비록 저의 전문 연구분야는 아니지만 적어도 시를 보는 눈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의 우리 시선집마저 거기에 비견될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1995년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시선집을 편집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시의 수준은 아직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더 이상 전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만큼 저에게 큰 충격을 줄 정도로 상당히 좋은 시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은 康德九年(1942년) 9월 29일 第一協和俱樂部文化部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편집자인 朴八陽이 쓴 「序」를 읽어보면 대략적인 편집 취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滿洲를 사랑하는 心情은 이땅 이 나라의 大氣를 呼吸하고 살아온 우리가 아니면 想像하기도 어려우리라. 남이야 무어라 하거나 滿洲는우리를 길러준 어머비요 사랑하여 안어준 안해이다.   이 나라의 單調로운 퍼언한 地平線 紅柿가치 새빨간 저녁해 모양 새 업는 우리 部落의 土城, 머언 白楊나무숩 적은 개울물 하나 하잘것 업는 돌덩이, 흑덩이 하나하나에도 우리네 歷史와 傳說과 限업는 愛情이 속속드리 숨여잇다. 그뿐이랴. 우리는    「거기서 새로운 言語를 배웟고     새로운 行動을 배웟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世界와     새로운 肉體와를 어텃나니」                     (咸亨洙氏「歸國」의 一節)   그럼으로 이땅 이 나라의 自然과 사람은 完全히 愛撫하는 우리 肉體의 한 部分이다.   長白靈峰의 품미를 의지하고 살은 우리요 黑龍長江의 울타리 안에서 살은 우리가 아닌가? 松花江언덕 杏花村에 情드리고 살고 海蘭江 白砂場에 옛이야기를 주으며 귀로 「오랑캐고개」의 傳說과 눈으로 「渤海古址 六宮의 남은 자최 주춧돌도 느근것」(尹海榮)을 듯고 보고 살어온 우리다.   아아 滿洲땅! 꿈에도 못닛는 우리 故鄕 우리 나라가 안인가?    「언제든지 고읍고 아름다운     장미꼿 송이를 안고     머ꠏꠏꠏㄴ 동산으로     시들지 안는 세월을 차저 왓읍니다」              (趙鶴來氏「滿洲에서」의 一節)    「漆夜에 불빗 思慕하듯     誠實하고 바른길 思慕케하소서     깨끗한 空氣 呼吸하며     健全한 生의塔 싸케 하소서」              (張起善氏「새날의 祈願」의 一節)   시들지 안는 歲月을 차저와서 健全한 生의 塔을 싸흐려는 우리들의 祈願이 이땅 이 나라의 한울과 별과 개울과 密林과 바람과 部落속에 서리여 잇는것을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 누가 是認하지 아니하랴?   愛誦하지 아니할수 업는 이 한 卷의 冊子 “滿洲詩人集”이 上梓되는것은 滿洲朝鮮人 辛酸한 한世紀 살림에 잇서서 可謂 最初의 花壇에 핀 꼬치요 또 生活文化의 結實이니 이것이 주는바 無量한 感懷를 무엇으로 表示하랴?   이에 깃쁨을 스스로 못이기여 敢히 拙筆을 들어 猥濫하게도 序에 代하는 所以다.   널리 江湖에 推擧하야 마지 안는다.   (康德九年六月二十五日 於新京 朴八陽識)     이주민의 문학 즉 조선족 문학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충분히 인식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차에 이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어 참고로 제시합니다. 시집답게 인사말도 행을 나누어 해놓았네요.   建國十週年을 마저 이 詩集을 刊行함에 際하야     序文을 執筆해주신 朴八陽氏와     玉稿를 惠送해주신 詩友諸兄과     經費를 援助해주신 大山基行 江川龍祚 兩氏와     出版의 便宜를 돌보아주신 安田觀祐 平川塋澈 宗方龍雄 諸氏와     印刷로 犧牲을 돌보지 안흐신 靑山茂夫氏와     아울러 勞苦를 아끼지 안흔 印刷所 松田秀吉氏 外 從業員諸兄과     끈임업이 刊行을 督勵해주신 江湖諸賢에게 삼가 衷心으로 深謝의 意를 表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 박팔양 시인 외에 나오는 이름들은 일본식 이름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꼭 일본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이미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이 된 때였으니까요. 다수가 조선인일 가능성이 오히려 더 많겠지요. 글의 성격상 작품 전부를 소개할 수 없으므로 목차의 순서에 따라 제목들만 올려 놓습니다.   柳致環篇: 편지/歸故/哈爾濱道裡公園 尹海榮篇: 海蘭江/오랑캐고개/四季/渤海古址 申尙寶篇: 흑과갓치살갯소/沙漠/旅人宿/乞人 宋鐵利篇: 爐邊吟/도라지/북쪽하늘엔/追憶 趙鶴來篇: 驛/心紋/彷徨/滿洲에서 金朝奎篇: 少年一代記/*胡弓/室內 咸亨洙篇: 나의 神은/歸國/나는하나의/悲哀 張起善篇: 새날의 祈願/아츰/구름/꿈 蔡禎麟篇: 별/북으로간다/밤 千靑松篇: 先驅民/古畵 朴八陽篇: 季節의 幻像/사랑함     보시는 바와 같이 11명 시인의 시 40편이 수록된 얄팍한 시선집입니다만 이것이 1942년에 간행된 우리 시집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들 시인들 중에서 유치환, 윤해영, 김조규, 함형수, 박팔양 등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도 거론되는 인물들이지요.     다음은 그 다음해인 康德九年(1943년) 10월 10일 間島省 延吉街 (株)藝文堂 發行으로 된 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 시집은 金朝奎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는 아무래도 金朝奎의 글이 되겠지요.     建國 十週年의 聖典. 우리는 敬虔한 世紀의 奇蹟을 가지고 있다. 神恷와 計劃과 經綸, 그리고 生活, 이속에 道義의 나라 滿洲國의 建設이 있었고 그러므로 또한 우리들의 자랑도 크다.   이 奇蹟과 자랑속에 뮤-즈도 자랐다. 不幸한 産聲을 울린 流浪의 夜宿으로볼어 거룩한 建設우에 絢爛한 花環을 걸기까지 二十年, 츤도라의 괴로운 旅程속에서도 우리 뮤-즈는 歷史的인 自己의 位相과 方向에 銳敏하기에 怠慢치 않었다. 이곳 大陸의 雄圖에서 一大浪漫을 創作하며 呼吸하는 거록한 情熱과 새로운 意慾―詞華集의 要求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우리는 이 微誠으로나마 빛난 建國十週年을 慶祝함과 아울러 大東亞新秋序文化建設에 參與하련다.   化裝이 매끈치 못하다면 울든 凍土를 가르치겠다. 목소리가 거츨다면 密林과 平原을 보이겠다. 이제 不幸하였든 뮤-즈는 天衣를 입고 雪原우으로 도로이카를 달려도 좋을겄이다.   南風이 불면 꽃씨를 뿌리겠노라   눈이 나리면 설매에 무지개를 달겠노라                壬午 여름, 編者 識.     서문의 취지는 앞의 에 나오는 박팔양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비록 더러 친일적 혹은 친만주국적인 문구들이 보이지만 일제의 검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액면 그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역시 수록 시인과 작품 목록을 제시해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金達鎭: 龍井/뜰/菊花/꼬아리 열매 金北原: 봄을 기다린다/看護婦/山/旗/그 넓은 드을에 金朝奎: 延吉驛 가는길/胡弓/밤의 倫理/葬列/南風 南勝景: 北滿素描/井蛙/奇童/海賊 李琇馨: 人間 나르시스/娼婦의 命令的 海洋圖/未明의 노래 李鶴城: 나의 노래/철쭉花/五月/落葉/별 李豪男: 신장노/애기와 코스모스/팽이와 팽이채/촌 정거장/葡萄 넝쿨 孫素熙: 밤車/어둠 속에서/失題 宋鐵利: 나의 노래가 담길/落鄕/五月 柳致環: 生命의 書/怒한 山/陰獸 趙鶴來: 流域/거리로 가는 마음/憧憬/街燈/春詞 千靑松: 드메/무덤/書堂 咸亨洙: 家族/化石의 고개/개아미와 같이/胡蝶夢     이 시집에는 13명 시인의 작품 52편이 수록되었습니다. 보다는 시인 수나 작품 양적으로 조금 더 많은 셈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앞의 시집에 같이 수록된 시인 외에 김북원, 손소희 등도 한국문학사에 자주 거론되는 시인들이지요.     그런데 세심한 독자들은 이 두 시집에 6명의 시인이 중복 수록되었음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柳致環, 宋鐵利, 趙鶴來, 金朝奎, 咸亨洙, 千靑松이 그에 속하는데 작품은 김조규의 「胡弓」 외에는 모두 다른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두 시집에 수록된 시인은 모두 18명이 되고 작품은 91편 되는 셈이군요.     이 정도의 시인과 작품이라면 당시 우리 시단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여기에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시인들도 여러 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우리 문학은 시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셈이 된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시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두 시집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당시 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비록 소설가들 중에서도 당시 한국 문단에서 중견역할을 하던 이들이 상당 수 이주해왔었지만 소설의 창작 주기나 현실 반영의 특징들 때문에, 그리고 지면의 한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진한 반면 시작품은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신문에 많은 양을 수용할 수가 있었고 또 현실 재현의 즉각성이라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좋은 시들이 많이 게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과 은 광복전 우리 시문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이 시집들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 나 다른 지면에 게재된 작품들도 좋은 작품들이 더러 있지만 이 두 시집이 대표성을 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쉬움은 이 두 시집에 시인들의 약력이 올라 있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에 소개하게 될 재만조선인작품집 의 경우처럼 짧게나마 문인들의 약력을 올렸더라면 연구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앞으로 이 두 시집의 작품들이 우리 문학전집에 수록되어 새로 간행됨으로써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340    시를 쓰려면 미술공부도 해야... 미술필독서 100 댓글:  조회:2782  추천:0  2015-07-06
한국미술분야  『한국회화의 전통』안휘준, 문예출판사, 1997년  『한국미의 조명』 조요한, 열화당, 1999년  『한국미학시론(한국학연구총서 2)』권영필 외, 국학자료원, 1994년  『한국회화사』안휘준, 일지사, 1999년  『한국미의 탐구』김원용, 열화당, 1998년  『한국미술의 자생성』 최몽룡 외, 한길아트, 1999년  『한국 미술의 미의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년  『지금 바로 여기』송항룡, 동인서원, 1999년  『한국현대미술사(열화당 미술 책방 11)』오광수, 열화당, 2000년  『조선공예개관』 야나기무네요시 외, 동문선, 1997년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동주, 한길아트, 2001년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 신서 7)』야나기무네요시, 학고재, 1996년  『근대한국화의 흐름』이구열, 미진사, 1984년  『나의문화유산 답사기Ⅰ,Ⅱ,Ⅲ』유홍준, 창작과비평사, 1997년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책세상, 2000년  『한국인의 조형의식』김영기, 창지사, 1991년  『한국현대미술사(열화당 미술 책방 11)』오광수, 열화당, 2000년  동양미술분야  『노자도덕경(동양학총서 13)』노재욱 편, 자유문고, 1997년  『장자』오강남 풀이, 현암사, 1999년  『중국미학사』이택후 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년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장파, 푸른숲, 1999년  『중국철학과 예술정신』조민환, 예문서원, 1997년  『동양회화미학』최병식, 東文選出版社, 1994년  『수묵의 사상과 역사』최병식, 東文選出版社, 2003년  『중국예술의 정신』서복관, 권덕주역, 동문선, 1990년  『華夏美學』이택후, 동문선, 1999년  『중국미학사』이택후 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년  『다도와 일본의 미(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7)』야나기무네요시, 소화, 1996년  서양, 현대미술분야  『프레드릭 제임슨 : 맑스주의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숀 호머, 문화과학사, 2002년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리얼리즘』브랜든 테일러(B.TAYLOR), 시각과언어, 1993년  『뒤샹과 친구들』김광우, 미술문화, 2001년  『현대 미술과 오브제(미진신서 46)』로제 보르디에, 미진사, 1999년  『새로운 예술론』최정호 엮음, 나남, 2001년  『오늘의 미술』브랜든 테일러, 예경, 2002년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가림, 월간미술, 2000년  『인간을 위한 디자인』 빅터파파넷, 미진사, 1983년  『현대미술의 풍경』 윤난지, 예경, 2000년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김상환, 민음사, 1999년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윤난지 엮음, 눈빛, 1999년  『서양미술 100장면』최승규, 한명, 2001년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김욱동 편, 문학과지성사, 1996년  『현대조각의 흐름』로잘린드, 예경, 1997년  『예술사의 철학』아놀드 하우저 저, 황지우 역, 돌베게, 1983년  『기호와 현대예술』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 1998년  미술비평, 미술사  『미술비평의 역사(열화당 미술 책방 7)』앙드레 리샤르, 열화당, 2000년  『미술사방법론』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조형교육, 1999년  『미술비평사』리오넬로 V.벤투리, 문예출판사 , 1988년  『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예경, 1994년  『현대미술비평 30선』계간미술편집부, 중앙일보사, 1987년  미학, 철학, 사상분야  『미학 오디세이 1, 2』진중권, 새길, 2001년  『한 권으로 읽는 니체』로버트 솔로몬 외, 푸른숲, 2001년  『미학이론』D.W.크로포드, 서광사, 1995년  『미학 예술학 사전』竹內敏雄 편; 안영길 외역, 미진사, 1993년  『광기의 역사(현대프랑스철학총서 11)』미셸 푸꼬, 인간사랑, 1991년  『시뮬라시옹 (현대사상의 모험 5)』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2001년  『존재 이야기(조광제의 철학 유혹)』조광제, 미래M&B, 2002년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까뮈, 문예출판사, 2001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른스트 캇시러, 서광사, 1989년  『인간의 마음』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2년  『모더니티 입문』앙리 르페브르, 동문선, 1999년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민글  『천재와 광기』필리브 브르노, 동문선, 1998년  『정신분석학 입문』 프로이드 Freud, Sigmund, 미문출판사, 1986년  『욕망 이론』자크 라캉, 문예출판사, 1994년  『해체』자크 데리다, 문예출판사, 1996년  『현대 사회와 예술』(인문예술총서 4) 발터 벤야민, 문학과지성사, 1980년  『미학·예술학 사전』 竹內敏雄 편, 안영길 외역, 미진사, 1993년  『광기의 역사』미셸 푸꼬, 인간사랑, 1991년  예술, 미술경영분야  『미술시장과 경영』최병식, 동문선, 2001년  『소더비』 Peter Watson 저, 공경희 옮김, 청림출판, 1997년  『예술경제란 무엇인가』유진룡 외편, 신구미디어, 1993년  『예술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레이그 드리즌·팸 코자 공저, 이은옥·용호성 공역, 민음사, 1997년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정태환 외, 지식산업사, 1995년  『그림과 그림값』김재준, 자음과 모음, 1997년  『문화정책과 예술진흥』구광모, 중앙대학교출판부, 2000년  『성공적인 예술경영(예술 경영 총서 1)』앨빈H.레이스, 세종출판사, 2000년  『예술과 경영』유민영 외, 태학사, 2002년  『큐레이터의 딜레마』니콜라스 세로타 저, 하계훈 역, 조형교육, 2000년  미술일반  『이중섭평전』최석태, 돌베개 , 2000년  『이상평전』 고은, 청하, 1992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가림, 월간미술, 2000년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이석우, 시공사, 2002년  『길섶의 미술』손수호, 한울, 1999년  예술일반  『예술이란 무엇인가』수잔 K.랭거(S.K.LANGER), 문예출판사, 1984년  『페미니즘.비디오.미술』김홍희, 재원, 1998년  『예술의 규칙』피에르 부르디외, 동문선, 1999년  『예술심리학』루돌프 아른하임,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5년  『예술과 인간가치』멜빈 레이더 외, 까치, 2001년  종합  『신의 지문(상 하)』그레이엄 핸콕, 까치, 1996년  『여섯가지개념의 역사』블라디슬로프 타타르키비츠 저, 이론과실천, 1990년  『유혹의 기술』로버트 그린, 이마고, 2002년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롤랑 바르트, 강, 1997년  『몸의 사회학』 크리스 쉴링, 나남, 1999년  『문명화과정 1, 2』노르베르트 엘리아스, 한길사, 1999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루터킹 자서전)』클레이본 카슨 엮음, 바다출판사, 2000년  『소피의 세계 1,2,3』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1994년  『꿈의 해석』프로이트, 정민미디어, 2002년  『제3의 물결(혜원교양신서 12)』앨빈 토플러, 혜원출판사, 1992년  『권력이동』앨빈 토플러, 한국경제신문사, 1990년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김영사, 1997년  『생각의 속도』빌게이츠, 청림출판, 1999년  『인간과 상징』칼G.융, 열린책들, 1996년  『오리엔탈리즘』EDWARD W.SAID, 교보문고, 2000년  『만다라를 통한 미술치료』수잔 핀처, 학지사, 1998년  『세계의 미술교육』김정, 예경, 1993년  『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엮음, 월간미술, 1999년 
1339    현대시 간략 정리 모음 댓글:  조회:4294  추천:0  2015-07-05
오픈지식 현대시 간략 정리 모음 경북대 대학원 김균홍 교수 정리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1***고은-[눈길]  눈길=세상의 고뇌와 방황을 덮어주는  관용, 정화의 이미지  ***2***고은-[성묘]  소금장수인 아버지의 묘에 감.  ↑  1.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  2.부패하지 않는 정신  ***3***구상-[초토의 시.8]  6.25후 적군묘지 앞에서    ***4***김광균-[성호부근](회화성)  양철로 만든 달 = (차가움, 겨울의 이미지)  추억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이 빛나다  = (의식의 시각화)  ***5***김광균-[오후의 구도]  눈보라에 얼어붙은 계절의 창밖에  ∼추억의… 별빛이 하나  → 적막감,감상적 분위기  ***6***김광균-[추일서정]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 (쓸쓸+황량+고독)  ***7***김광섭-[마음]  나의 마음은 돌 던지는 사람  고요한 물결 고기 낚는 사람  = 明鏡止水 , → 노래 부르는 사람  마음의 평화, 순결 갈망 = 세속적 자극  백조(=시심詩心) 오는 날  물가(내마음) 어지러울가 밤마다 꿈을 덮노라.  ***8***김광섭-[생의 감각]  a.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절망적 투병체험)  ↓  b.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실존적 인식)  ↓  c.기슭에는 채송화(생명의식 부각)  무더기로 피어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생명의 소중함)  ***9***김기림-[바다와 나비](문명비판)  흰 나비(연약한 인간)는  바다(삼월에도 꽃이 피지 않는 죽음의 공간;  문명사회의 불모성)가 무섭지 않다.  아무도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10***김남조-[정념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걸려 왔더니라.  → 막막함 속에서 순수한 삶 희구.  ***11***김소월-[가는 길]  그리움,아쉬움,회한,자책  저 산에도 까마귀(화자의 모습, 객관적상관물)  앞강물 뒷강물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떠나는 님의 모습(긴박감)  ***12***김소월-[길] (식민지 수탈로 인한  유랑민의 비애 대변)  a.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화자의 불안적 심정 표출하는 객관적상관물)  b.말마소 내 집도 정주곽산  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고향 상실하고 유랑하는 신세)  c.여보소, 기러기(선망의 대상),공중(희망의  공간)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d.열십자 복판(운명의 기로)에 내가 섰소.  ***13***김소월-[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다면]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또 한걸음.  → 정한의 세계가 아닌, 민족의 현실 반영,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  ***14***김소월-[접동새](설화소재)  진두강가 10남매중 누이가 시집가는데 계모  가 시샘, 태워 죽임→ 누이가 접동새 되어  아우래비("아우오래비"의 활음조) 곁에 와  夜삼경(11∼1시,丙夜,子時)에 슬피 웁니다.  = 좌절과 恨 속에서 방황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 → 혈육애,휴머니즘  ***15***김수영-[눈]  눈(서정적 존재 x, 순수한 생명적 존재) 점층,  ↓  반복, 기침(젊은 시인의 일상적인 리듬, 소시민성,속물성) ↓  가래(불순한 것으로 가득찬 상태)  눈의 순수성 통해 우리들의 속물성을  씻어내라는 권유, 눈과 기침의 대비,  고도의 상징, 비판의식, 주지적.  ***16***김수영-[死靈]  a.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욕된 郊外에서  → 자유당 독재하의 비민주적 사회  b.그대는(=폭포)반짝이는 하늘 아래 자유를  말하는데,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  아니냐? → 자유와 정의가 활자로만(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자신의 비겁하고  소심한 영혼을 自責 반성.  ***17***김수영-[폭포]  a.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 선구자적 행동성,실천의지  b.자유당 독재정권 하에서 양심있는 세력의  올곧은 목소리를 갈구.  c.자연물에 대한 지적인식  d.나타와 안정(現實安住,無事安逸)을 강력히  부정  ***18***김수영-[풀]  a.풀 : 민중,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 지님  b.바람 : 억압하는 세력  c.날이 흐리고 : 비관적인 역사의 흐름.  d.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돋보임, 수동→ 능동성, 풀의  너그러움과 넉넉함.  ***19***김수영-[현대식 교량]  a.나 : 죄가 많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지나온  역사(6.25, 식민지) 회고.  b.젊은이 : 적을 형제로 만듦,  새로운 역사 개척.  c.橋梁 통해 세대차 포용, 이해, 공감.  ***20***김수영-[푸른 하늘을]  =자유의 공간  a. 4.19 배경, 자신의 좌절감과  再起를 위한 고독한 의지 표현.  b.자유로의 비상은 그저 자유롭지만은 않다  → "피의 냄새" 섞여 있고, 고독해야 한다.  ***21***김영랑-[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a.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민족적 정서 가락(3음보)반복, 음악성,  = 외부세계의 갈등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안정 추구.  b.돋쳐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은결을/도도네//  → 세련된 감각어 사용,  c.수미쌍관식 구성(앞부분과 뒷부분이  비슷한 내용, 형식, 어구로 되어 있는것.  ***22***김영랑-[毒을 차고]  a.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뜯기우고 할퀴우라 내 맡긴 신세임을  - 나는 독을 차고 가리라,  혼을 건지기 위하여  → 늘 마음의 평화만 추구해 오던 영랑이  현실순응주의에서 벗어나 외로운 혼을  건지기 위해 현실에 맞서 저항할 것 결의.  ***23***김영랑-[두견]≠밤에 우는 접동새  (올빼미과의 소쩍새) ≒뻐꾸기  a. 서럽고 외로운…(지배적 정서)  b. 짙은 봄 獄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까  옛날 왕궁 나신어린 임금(단종)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냐  네 恨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 시의 화자는 한과 설움과 삶의 고뇌를 밤  지새워 비판하고있다.  c.두견 : 중국 촉나라 망제의 넋이 化한 새.  그 새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감정 담아냄  ***24*김영랑-[북]  a.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뿐  헛때리면 만갑이(명창)도 숨을 고쳐 쉴수밖에  →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예술과 삶의 일체감.  → 一鼓手二名唱  b.動中靜이요, 소란속에 고요있어  인생이 가을처럼 익어가오  → 논어,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26***김춘수-[처용단장]  a. 소외된 유년기≒바다떠나 서라벌에 삶  b. 삼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 ↓  물새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환청) ↓  c.산다화의 뽀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여성적 이미지) ↓  d.회상적, 과거의 인상을 서술,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 x, 이미지즘 시.  ***27***노천명-[남사당]  a.나(시인자신 x)는 분칠을 하고  다홍치마를 두르고 향단이가 된다.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되다  →어릴적 남자애 보기를 원했던 부모에 의해  男裝을 하고 다녔던 수치심에서 비롯  → 남사당 소년의 哀歡  b.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일제하 유랑민의 처지),  나는 집시의 피였다(근원적 슬픔)  ***28***노천명-[사슴]  (노천명 자신의 슬픔 담음,감정이입.)  a.먼데 산을 바라본다. 평화로운 삶을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 누릴수 있는  잃었던 전설. 과거의 영토  b.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 슬픔의 근원은?  일제하에서 잘못된 현실인식으로 인한  불명예와 6.25 전란시 부역으로 인한 고초  ***29***박남수-[새]  a.새는(노래인줄 모르면서) 체온을 나눈다.  (사랑인줄 모르면서) 사랑을 나눈다.  ↓  비의도적,순수.  b.포수는 한덩이 납으로 순수를 겨냥하지만  (인간의 잔혹함)  c.매양 쏘는 것은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순수, 아름다움  → 문명비판적 ↕  인간의 인위성, 파괴성  ***30**박남수-[아침이미지]  →감각적,즉물적 시  a.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음  → 공감각적 이미지  b. 어둠→ 개벽(시상 전개)  ***31***박남수-[종소리]  a.종소리를 의인화하여  b.오랜 인종 청동의 표면 끝에  청동의 벽  칠흙의 감방  c.역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는 시인의  자유를 위한 비상과 신념 표현  d.푸름,소리,울음,웃음,악기,뇌성,진폭의새  → 종소리의 객관적 상징물  ***32***박두진-[강 2]  a. 첫 연 = 숲: 혼란한 전쟁의 상황  b. 두,세 번째 연 = 꽃 :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난 겨레의 소망  c. 네, 다섯 번째 연 =  죽은 것, 배암비늘, 피발톱, 독수리,이리떼 :  (위협,갈등,살상,민족 비극의 원흉)  ↓  비둘기떼 : (약자, 희생자, 평화 사랑.)  d. 여섯, 일곱 번째 연 =  피몸짓,피무늿길 : (고난,역경)  ↓너머  바다 : (평화,자유,순결)  e. 강 : 우리 겨레의 내면, 심성 속에 흐르는  생명력과 포용력.  f. 해설 : 강이 바다로 흘러가기까지는  많은 고통과 비극이 있지만, 겨레의 가슴  속에 도도히 흐르는 "강"의 속성을 간직하고  산다면 자유와 이상이 넘치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33***박두진-[도봉]  a.산새도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삶은 오직 갈 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운 뿐  → 일제 말기의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느끼는 적막감, 우수, 그리움,  괴로움의 정서  b.석양→황혼→밤(시간흐름), 원경→ 근경에  따라 시상전개)  ***34***박두진-[묘지송]  (삶이 값졌으므로:전제)무덤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고,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허무x, 슬픔,x 주검에 대한  찬미, 삶에 대한 강렬한 긍정의 역설적 표현  ***35***박두진-[어서 너는 오너라]  a.너:국외로 흩어진 동포(제유법)  b.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이상향,무릉도원  = 일제에 의해 짓밟힌 민족 공동체적 삶의  회복 의미.  c.우리,우리,옛날을,옛날을 뒹굴어 보자.  → 반복법,리듬감  d.옛날 → 아름다운 민족 공동체의 삶.  ***36***박목월-[이별가]  a.가시리→ 황진이→ 김소월  b.뭐라카노 저편 강 기슭에서  → 이승:저승, 삶:죽음의 간격  c.동아 밧줄(인연)은 삭아 내리는데  → 운명적 別離  d. 오냐오냐(나도 곧 갈거다)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운명에 순응하면서  이별의 情恨을 生死 超克의 경지까지  끌어올림.  ***37***박성룡-[교외]  a. 都會 :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진 채  無毛하고 無風한 생활의 장소  ↕  郊外 : 풋물같은 것에라도 젖어야 한다.  b. 바람이여 다시 불어다오  → 굳어진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숨결,사랑.  c. 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 평화와 자유.  ***38***박용철-[떠나가는 배]  a.나ˇ두ˇ야 간다.  → 의도적인 띄움으로 망설이는 심정 표현.  b. 젊은 시절을 눈물로써만 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이(식민지하의 우리민족)를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 담음.  c."앞대일 언덕"(목적지)도 없이  그냥 "쫓겨가는 마음"이기에 절망적인 출발.  d.그래서 자기가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을  돌아보지만 "바람"이 헤살지어(훼방놓아)  "구름"에 가리워진 채 어둡기만 하다.  e.수미쌍관식 구성.  ***39***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 江]  a. 제삿날 큰집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다가  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며,  슬픈 사랑의 추억 되새김.  b.가을 강을 보것네, 눈물 나고나  여성적 가락, 판소리,민요조의 방언  종결어미 사용, 예스런 정감 표현.  c. 서러운,눈물,울음 : 슬픔과 恨의 분위기  d.가을강, 눈물, 산골물, 바다,(물)  ↕ 서로 조화  가을햇볕,불빛,해질녘(불의 이미지)  e.울음: 표면적 실체:저녁노을  내면적 실체:자신이 체험했던  가난과,인간 본원의 사랑, 고독,  무상감에서 오는 슬픔과 한.  ***40***박재삼-[자연]  a. 춘향의 독백 빌어,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사랑의 욕구를 "꽃나무가 피고 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다고 표현.  b.내 마음 꽃나무는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사랑의 감정은 운명적→ 피동형 사용)  ***41***서정주-[冬天]  a.눈썹 = 구체적:그믐달 비유  상징적:고귀한 정신  b.새가 그걸 알고 비껴가네  →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 차리고 감히 범접 x (畏敬)  ***42***서정주-[무등을 보며]  a. 6.25 이후 궁핍한 생활 속에서  b. 가난이야 襤褸(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c.갈매빛(짙은 초록색)  d.목숨이 가다가 농울쳐(풀이 꺾이어) 휘어드는  → 생활 속에서 피로와 허기를 느낄 때  e.쑥구렁(무덤)에 놓일지라도  → 고난 시련.  f.옥돌 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 가난 극복, 의연한 긍정의 자세  극단적 정신주의, 순응주의적 태도.  ***43***서정주-[밀어]  a.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돈호법, 감격 고조)  b.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이승과 저승의 통로)  c.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리를 보아라.  죽은 소녀들이 새로운 형상으로  부활하는 경이감  d.아득한 하늘가에 빰 비비며 열려있는  (의인)  e. 꽃봉오릴 보아라.  (구지가,무가의 주술적 명령과 연결)  ***44***서정주-[신부]  a.첫날밤 신랑이 오줌 누러 가는데 옷이 걸림  → 신부가 음탕해서 붙잡는 줄 알고 그 길로 나가버림  → 40년후 찾아가보니 신부가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음  → 만지니 재가됨.  b.서사적 구성,여인의 정절  c.백제 가요 "정읍사"와 관련된 망부석 전설,  박제상의 아내 전설과 유사  d.초록재와 다홍재 : 時空,靈肉의 세계를  뛰어넘는 존재로써의 신부 표상.  e.유교의 열녀사상을 뛰어넘은 신화적,  토속적 정서를 미학적으로 드러냄.  ***45***서정주-[자화상]  a.(갑오동학혁명 배경)애비는 종이었다.  → 떳떳, 솔직, 자신이 역사의 주체라는 자각  b.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바람  → 시련,굴욕적 현실  c.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새로운 인간관계가 열리는 지평)  d.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인간다운 삶의 실현)  e.몇방울의 피가 섞여있어  (자유를 위한 투쟁)  f.병든 수캐(시인자신)마냥 헐떡이며 나는 왔다.  → 과거의 삶에 대한 처절한 인식과  이에 저항하는 의지적 태도 표현.  ***46***서정주-[花巳]  a.화사:원시적 생명력의 상징  b.몸뚱아리,아가리,대가리 등 비속한 용어 사용  → 강렬하고 원색적인 느낌을 주고,  원시적이고, 퇴폐적인 생명력 강조  ↕  부드럽고 우아하고 理性的인 文明에 대립됨.  c.뱀 : 원죄,증오의 대상이자 유혹의 대상  (감정의 이중성)  ***47***서정주-[楸韆詞]  - 춘향의 말⑴  a. 그네 : 춘향과 이도령 만남의 계기,  춘향이 괴로움 .고통 . 번민의 운명을 벗어나  이상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매체, 天上세계를  꿈꾸면서도 끝내 인간이 사는 地上을 떠날 수 없는  운명적 한계  b. 현실세계 : 수양버들 나무 ,꽃더미,  나비새끼, 꾀꼬리  → 봄의 아름다움  c. 서으로 가는 달(무념무상,현실초극)같이는  갈 수 없다 →인간의 운명적 한계 자각  d. 이상세계 : 산호도 섬도 없는 곳.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 울렁이는  가슴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곳  ***48***서정주 - [춘향유문]  - 춘향의 말 (3)  a. 저승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춘향이  사랑보다 먼 딴나라는 아닐 겁니다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  b. 천길 땅밑을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극락)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더구나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거기 있을거예요  푸르던 나무같이 있으세요  윤회 사상, 자연현상과 관련(≒국화옆에서)  천둥,무서리,소쩍새  ***49***신경림 - [갈대]  a.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울음 :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인생살이의 설움  (존재론적인 것)  b.이 시 이후, 서정시의 한계 느끼고 10년 절필  ***50***신경림 - [農舞]  a. "막이 내렸다"로 시작 (한탄,원망의 표현예고)  b.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 농민의 恨과 苦惱를 직설적으로 표현  c. 쇠전(우시장)을 거쳐 도수장(도살장)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신명이 난다.  → 自嘲와 恨歎이 神明으로 전환,  농민의 悲哀를 逆說的으로 표현  ***51***신경림 - [목계장터]  a. 하늘은 날더러 바람 / 구름이 되라 하네  → 방랑의 심상 ( 근대화 영향, 장터 퇴색 )  b. 산과 강은 날더러 들꽃 / 잔돌이 되라 하네  → 정착의 심상  c. "산서리 맵차고 물여울 모진" 이 세상에서  "천지처럼 쉬고 싶지만 몸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다.  → 방랑과 정착 사이의 갈등과 뿌리뽑힌  민중들의 애환을 토속적 분위기 속에 담아냄.   
1338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국민시인" 댓글:  조회:5037  추천:0  2015-07-05
  김수영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 15 이후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시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는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아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지금은 이어령 선생의 책을 보면서 교양수준이나 높일 궁리를 하지만 대학 다닐때에는 김수영이나 김지하 김남주 같은 이들의 시를 열심히 외웠다. 그 중 김수영 선생은 문장이 김지하나 김남주 같이 강렬하진 않아도 읽다보면 '세상이 어떤 것이고 그래서 지식인은 무엇을 할까 한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더욱이 김수영의 시처럼 육두문자를 시적인 은유 나 상징 속에 섞어 써도 천박하지 않게 느껴지는 시는 거의 드물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어령 선생과 대조적이다. 지식인의 교양으로 무장한 이어령 선생은 순수문학을 주장하며 국어의 세련미를 갉고 닦았고, 김수영 선생은 순수를 약간 비웃으며 참여시의 부흥을 가져왔으니. 그 둘 사이의 순수문학논쟁이 어떤 것인지 대충 느낌이 간다.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이들이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박영희의 언술을 인용할때 김수영은 "나는 더러운 진창을 사랑한다.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넘들은 미국넘 XXX나 빨아라 "라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 국어 책은 김수영을 모더니즘 시인으로 분류하지만 그의 시 거대한 뿌리는 마치 탈근대론의 개론서를 읽는 듯 하다. 원래 모더니즘, 즉 근대는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근대는 그런 믿음으로 인류를 봉건적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탈근대관점에서는 그런 믿음 또한 폭력적이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폭력을 잉태하기 마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분명 근대정신의 전형이다. 하지만 김수영은 그들에게 '네에미 X'라는 육두문자를 날려준다. 아마 김수영이 보기엔 그들은 진창을 사랑하지 않는 계몽의 화신들이고 통일도 학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요강, 신전, 무식쟁이 등 무수히 많은 반동에 대한 애정이 이념의 폭력성으로 부터 그들을 구해내리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대한 뿌리'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애정이 맹목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아래의 싯구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가 어떤 면에선 잔소리 많은 역사선생님같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그들은 아무도 상상 못하는 거대한 뿌리 그 자체이기에   개인적으로 '거대한 뿌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비숍 여사의 등장이다. 비숍은 분명 서구적 근대화의 상징이다. 그것도 가장 악랄한 근대정신으로 평가받는 제국주의의 화신이다. 그런데 김수영은 비숍의 시선으로 조선역사를 이해한 후 진창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간다. 어쩌면 김수영은 우리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학문체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 사실을 그냥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서구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더라도 애정을 팔아 먹지 말라달라는 당부를 하려고 '거대한 뿌리'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서정주 등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저 없이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1921-1968)이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실제 소설을 썼다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물론 그의 소설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그는 다시 시 쓰기에 매진했다. (짧은 분량의 소설 몇 편은 김수영 스스로 불태워버렸고, 계획했던 장편소설은 서두만을 쓰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어쨌든 ‘시인 김수영’이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김수영과 김수영의 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서울, 서울, 서울에 오래 살면서 나는 서울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소설을 써보려는 것도 이 알 수 없는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일 것이다. 알 듯 알 듯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서울은 무엇인가? 이 결론 없는 인생 같은 서울, 괴상하고 불쌍한 서울, 이 길고 긴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에서 잠시 땀이라도 씻고 가기 위한 짧고 안타까운 휴식 같은 것이 나의 소설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이 억지춘향격인 신문기자로, 번역료를 떼이기 일쑤인 번역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무렵에 쓴 메모의 일부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 ‘서울에서까지의 숨 가쁜 노정’이란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수영은 일제 식민지배가 완전히 고착된 후인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환경 덕에 비록 병약하기는 했지만 부족함 없이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해방 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징병을 피해 만주로 피신, 다시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물을 향유하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피난을 떠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김수영은 인민군에 의해 다른 문인들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강제 징병되어 훈련을 받고 의용군으로 전장에 배치됐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유엔군의 포로 신세가 된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억류된다.  영어에 능통했던 덕에 통역 담당이 되었지만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진저리처지는 지옥 그 자체였다. 피난지인 부산에 머물다 전쟁이 끝난 후 가까스로 서울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폐허가 된 서울은 그에게 ‘아늑하고 푸근한 고향’일 수 없었다.  집안 대대로 서울토박이인 김수영에게 서울은 고향, 그러나 언제나 ‘낯선 고향’이었다.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된 고향에서 그는 남의 나라의 말을 모국어처럼 읽고 쓰며 성장기를 보냈다. 유학으로, 피신으로, 전쟁으로 고향을 등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도 서울은 그에게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혼란과 혼돈, 아귀다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회적 모순과 경제적 불안뿐이었다. 김수영은 환멸과 무기력에 빠져들었다. 서울은 그 자신이 표현한대로 ‘결론 없는 인생’, ‘괴상하고 불쌍한’, 타향보다 낯선 고향이었던 것이다.  ‘서울을 알려고 하는 괴로운 몸부림’과 일제강점기-해방공간-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그 ‘숨 가쁜 노정’은 과연 시보다는 소설에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려던 김수영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의 ‘산문적 열망’을 ‘시’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시가 김수영의 진정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안락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자신의 고향을 찬미하는 시를 지은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순과 부조리로 점철된 인간과 역사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김수영은 특유의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와 자유를 가슴에 담고, 고향인 서울을, 그 격동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우리가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가를”이나 “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등의 싯귀를 기억하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결국 혁명은 미완으로 그쳤고, 김수영은 절망 속에서 군사독재의 시작을 지켜봐야 했다.  김수영은 불 같이 뜨거운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극단적인 성격과 폭음, 기행 등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적잖이 힘겹게 했다.  반복되는 우울과 무력감으로 스스로도 고통 받았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창작의 동력이 되어 불멸의 시를 탄생시켰고 빛나는 예술적 성취도 이뤘다. 그러나 ‘시인 김수영’이 아닌 ‘인간 김수영’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외롭고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은 뜨거운 격정과 치열한 예술정신을 지닌 시인 김수영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시선과 균형 잡힌 목소리로 인간 김수영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역시 당대의 시인인 최하림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전의 행간 곳곳에서 김수영을 향한 최하림의 지극한 애정과, 같은 시인으로서 고민하고 공감하는 삶의 진실들이 묻어난다.  그러나 최하림은 김수영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시는 새로운 면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시대를 증명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시는 인간의 정서적이며 지적인 어떤 정신과 기능의 통일체다”라고 말하며 그는 숨는 듯 드러나는 저자로 시인으로서의 김수영과 인간으로서의 김수영을 조화롭게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이 평전은 한 인간의 전부, 그 모든 것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독자에게 신뢰를 얻고 평전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김수영은 한때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또한 김수영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형제였고, 연인이었고, 친구였다.  직장을 그만둔 후 집에 닭장을 짓고 양계를 업으로 삼기도 했고, 신문을 통해 문사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술에 취해 서울의 쓸쓸한 밤거리를 비틀비틀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시인이었다. 이름뿐인, 허울뿐인 시인이 아니라 가슴으로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과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가 쓴 시처럼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그러나 그런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김수영, 그는 시인이다.     
1337    윤동주와 정지용, 리륙사와 로신 // <<향수>>와 <<추억>> 댓글:  조회:6373  추천:0  2015-07-04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있고 또한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본식 창씨개명은 히라누마 도슈(平沼東柱)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간이기도 하다.    생애 초반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당시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明東村, 지금의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지신진)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으로 간도 이주민 3세였다.    19세기 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조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도 집안을 이끌고 1886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서군 동풍면 상장포에 살다가 1886년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할아버지 윤하현은 밍둥춘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3] 아버지 윤영석은 1910년 독립지사인 김약연의 누이동생 김용과 결혼하여 명동촌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한다. 그의 고모 윤씨는 송신영에게 시집갔는데, 고모의 아들이 독립운동가이자 그의 친구였던 송몽규였다. 당숙은 윤영춘으로 후일 가수가 되는 윤형주는 그의 6촌 재종이었다.    소년 시절  1925년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을 발간하였다.[4]    중학 시절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를 졸업하고,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학교(大拉子學校)에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여,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35년 소학교 동창인 문익환이 다니고 있는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그해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가 간행한 학우지 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어, 문익환과 함께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로 편입하였다. 광명중에서 그는 [정일권]] 등을 만나게 된다.    연희전문 시절.  1937년 광명중학교 졸업반일 무렵,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의학과 진학 희망)과 갈등하나, 조부의 개입으로 연전 문과 진학을 결정한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京城)으로 유학, 그해 4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숙생활을 하며 그는 저녁밤 하숙집 근처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짓거나 담론을 하였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기숙사를 나와 북아현동, 서소문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친구 라사행과 함께 정지용 등을 방문, 시에 관한 토론을 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해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 때에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본 유학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교대학(立敎)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 도쿄 도시샤대학(同志社) 영문학과에 편입하였다.[5]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지용이 다닌 학교로 일본 조합교회에서 경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였다.[6]    창씨개명  윤동주 집안은 1941년 말 '히라누마'(平沼)로 창씨한 것으로 돼 있다. 일본 유학에 뜻을 둔 윤동주의 도일을 위해선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를 개명하게 되었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것이었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윤동주가 전시의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을 졸업하면서 1941년 연말에 "고향 집에서 일제의 탄압과 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했다. 창씨개명계를 내기 닷새 전에 그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시 참회록을 썼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설은 해방 이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1990년대에 와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중퇴하여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 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11] 교토지방 재판소에서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투옥과 최후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룬 후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후,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주장 등 그의 죽음은 일제 말기에 있었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이 수차례 제기되었다.    사후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의해 제정되었다.    작품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명동》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경향 및 평가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며, 1986년에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조선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학력  명동소학교 졸업  지린 다라쯔 중학교 수료  은진중학교 수료  평안남도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수료  광명중학교  졸업  경성 연희전문학교 졸업  일본 릿쿄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일본 도시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제적  상훈 경력[편집]  서울 숭실고등학교 명예 졸업장 추서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국민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    이육사(李陸史, 1904년 5월 18일 - 1944년 1월 16일)는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활(李活)이며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이원록(李源祿)·이원삼(李源三)이다. 육사(陸史)는 그의 아호로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후일 아호로 썼다.    생애    이육사 동상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진보)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큰형인 원기, 맏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이원록의 필명은 여러가지가 있고, 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가 있어 기재한다.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이육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요양을 위해 집안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육사가 어느 날 이영우에게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표현이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陸史를 쓰라'고 권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肉瀉'라는 이름은 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뜻으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1932년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했을 적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기사를 네 차례 연재할 때 사용되었다. 이육사의 필명이나 호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李活(1926-1939), 大邱二六四(1930), 戮史(1930), 肉瀉(1932), 陸史(1932-1944)와 같고 이원록이 '陸史'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32년 6월 초 중국 베이핑의 만국빈의사에서 대문호 로신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다. 후일 로신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한국내에 소개하였다.    1943년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베이핑(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 구금 중 순국했다. 둘째동생이 그의 유해를 수습하여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했고, 광복 후 1960년 안동시에 이장했다. 유고시집 《육사시집》(1946)이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하의 그의 항일 투쟁 활동과 일제 강점기 하의 詩作활동을 기려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탄신 100주년과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는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또한 안동시는 안동 강변도로를 '육사로'로 명명하였다.  ==========================================================================================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정지용의 [鄕愁]를 중심으로  이병렬(숭실대 국문과 강사)  I. 모방과 표절  예술 행위 혹은 예술 작품의 표절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질 시비가 종종 있는 대중가요로부터 소위 국전의 수상작이라는 고급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심심찮게 이 표절시비를 보아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문학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 얼마 후 외국 작가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된다든지, 베스트셀러 대열에 낀 어느 소설이 국내 몇몇 작가의 작품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게 짜집기한 것으로 독자에 의해 고발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근년의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일은 모방과 표절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은 말 그대로 모방이다. 남의 것을 본 떠서 하는 행위이다. 즉 남의 것을 이용하되 결과는 그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모방은 또 다른 창조를 전제로 해야한다. 모방이 이러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순한 모방에 그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류라고 부르며 폄하하게 됨은 물론 나아가 표절이라고 한다.  표절은 글자 그대로 남의 것을 허락없이 베끼는 행위이다. 근래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어색한 사조 아래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가 모든 예술작품에 성행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하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한 베끼기에 불과할 것이며, 이는 바로 무슨 무슨 사조라는 그럴싸한 이름아래 숨겨진 표절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방이든 표절이든 예술가에게는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남의 영감을 이용하여 나의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것은 결국 남의 피와 땀을 그저 먹겠다는 도둑 심보에 다름 아니다. 이는 법의 문제보다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모방 혹은 표절하여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비평가나 독자의 몫이지만, 근본적으로 모방이나 표절은 한 당사자가 더욱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표절시비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예술가의 예술행위는 모방이나 표절에서 시작한다는 데에 있다. 모든 예술행위, 예술작품이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는 문학에서의 모방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천재가 아닌 이상, 공자가 이른대로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아닌 이상 예술가들의 학습기 혹은 습작기 작품은 앞선 예술 작품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면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가 문학 소년 혹은 문학 소녀였을 시절에, 소월이나 윤동주, 혹은 만해나 미당의 여러 시에서 따온 구절들을 적당히 배열해 놓고 시를 썼다는 쾌감에 젖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방과 표절을 통한 학습기와 습작기를 거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되고, 그 목소리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는 개성있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술행위에서 모방과 표절은 있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어서는 참다운 예술행위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모방과 표절은, 그것을 빌어 또 다른 예술적 창조를 이루어낼 때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조적인 모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모방하고 표절을 하여 예술적인 창조로까지 나아가느냐에 있다. 이러한 물음에 적절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정지용의 와 이 작품을 모방한 작품(필자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답을 대신하려 한다. 먼저 트럼블 스티크니의 이란 작품을 소개하고, 이어서 정지용의 생애와 를 제시한 다음, 두 작품의 비교 분석을 통해 창조적 모방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트러블 스티크니의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는 1874년 6월 20일 제네바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아버지(Austin Stickney)는 트리니티 대학의 라틴학과장이었고, 어머니(Harriet champion Stickney)는 코네티컷 주지사의 직계 후손이었다. 그의 부모가 오랜 동안 주로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클리브돈과 뉴욕에서의 1, 2년을 제외하면, 스티크니는 어린 시절을 주로 유럽에서 보냈다. 게다가 하바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선생이었다.  1895년 문학사학위를 받은 스티크니는 곧 프랑스로 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7년 동안 희랍 문학과 산스크리트 문학을 공부했으며, 1903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3개월 간 그리스에 있다가 하바드 대학 희랍문학과의 강사로 돌아왔는데, 이때 이미 그는 한 권의 시집을 출간( 1902년)했으며, 또 계속적으로 시작을 하는 한편 그리스의 비극시인인 이스킬러스(Aeschvlus)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크니는 하바드 대학의 강사이자 결혼을 앞 둔, 온 세상이 그의 앞에 활짝 열려있던 30세의 나이에 아깝게도 뇌종양으로 죽고 만다. 이 때가 1904년 10월 11일이었다.  그가 죽은 이듬해인 1905년 그의 친구들이 스티크니가 생전에 출간한 시집에 그의 유작들을 미완성인 채로 묶어 ()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이것이 그가 남긴 작품 전부이다. 흔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시인들에게 올바른 평가가 아닌 잘못된 동정을 보내는 경향이 있으나, 스티크니의 경우에는 빈틈없는 비평가로 알려진 브룩스(Van Wyck Brooks)나 윌슨(Edmund Wilson)으로부터도 [약속의 시인이자 실행의 시인]이라고 칭송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친지들의 회고에 의하면 스티크니는 키가 크로 말랐으며 아름다운 음성을 소유한 우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부끄러움을 잘 타고 친구들 간에는 인정 많은 사람으로, 자연에 대한 우울함이 있었으나 유머로 넘친, 청년 시인의 한 본보기였다고 한다. 반면 그는 진정한 학자이자 음악가로서, 그의 바이올린 솜씨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 거의 천재적이었으며, 아름다운 회색 눈과 당황해 하는 슬픈 얼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특히 문학의 경우 '내가 진실로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시'라고 말할 정도로 스티크니는 시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스티크니의 친구이자 유고시집의 편집에 참여했던 무디(William V. Moody)의 말에 따르면 '그는 동서양의 사고를 새로이 종합한 자신만의 시를 쓰기를 꿈꾸어 왔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포우(Poe)와 스윈번(Swimburne)의 시에서 빌려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이란 시이다. (시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Mnemosyne  A-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B-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C-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D-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It's lonely the country I remember.  E- The babble of our chu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시의 제목인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의 이름이다. 우리말로 옮길 때, [기억]보다는 [추억]이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다. 어설프게나마 이 시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추 억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에 누운 그림자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떠는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함께 노래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번역이기에 원작의 형식과 각운의 맛을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엉성한 번역이었지만 향토적인 고향의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를 김현승은 그의 수필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 많은 추억의 시편들 가운데서도 생각나는 것은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걸작 이다. (중략) 얼마나 다사롭고 눈물겹게 만드는 추억의 시편인가? 이 시 한 줄 한 줄은 민감한 독자들의 추억을 오래도록 사로잡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끝 연 마지막 두 행은 얼마나 눈물겹고 감각적인 표현인가?  김현승이 지적한 것은 [가을]에 생각나는 시이다. 그의 가을과 관련한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이 시를 택한 것은 라는 제목과 함께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라는 시행, 그리고 시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시는 가을과 고향에 대한 [추억]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시이다.  III. 정지용의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농가에서 아버지 정태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약상을 경영하여 농촌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불의에 밀어닥친 홍수의 피해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져 가난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학동이 정지용의 시를 빌면서 소개한 정지용의 고향은 이런 곳이다.  재담과 독설로 숱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던 천재 시인 정지용이 태어난 곳은 실개천이 지즐대며 흐르는 농가마을이다. 지금은 문명의 때를 타고 그 원초적인 자연조차도 과도기적인 열병으로 진통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으나, 그 당시로는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그런 마을로 온통 전설의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다.  정지용이 태어나서 자란 마을 뒤로는 높은 한 일자로 뻗어간 이 있다. 그 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실개천을 이루고 청석교 밑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동쪽 끝으로 흐르고 있다. 그 산기슭에 자리한, 그가 태어나서 자란 집은 일자산의 계곡에서 이어지는 개천을 따라 산 정기가 곧바로 뻗어있는 것도 같지만, 범상의 눈엔 그것이 잘 보이질 않는다.  1913년 그의 나이 12세 때에 혼인을 하여 이곳에 살았고,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1914년)하고 4년간 한문을 수학하면서도 이곳에서 살았다. 어쨌거나 정지용은 그가 태어난 이곳에서 유년기는 물론, 휘문고보를 거쳐 동지사대학을 마치고 모교인 휘문고보에 교사로 취임하여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그러나 이는 주소지일 뿐, 실제는 14세이후 고향을 떠나 객지의 고달픈 삶을 영위했다.  정지용의 문학적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8년 4월 휘문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선배로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등이 있었고, 후배로는 이태준이 같은 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의 성적이 88명 중 1등을 할 정도로, 창가나 체조 등 실기과목을 제외하면 전 과목에 걸쳐 고루 성적이 우수했으며, 특히 영어와 작문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후에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진학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그는 교비생으로 휘문고보를 다녔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1918년) 이미 휘문고보, 중앙고보, 일고, 고상, 법전 등의 학생들이 모여 문학동인을 결성, 등사판 문예동인지인 을 발간하기도 했다는데, 휘문고보의 중심 학생이 정지용이었다고 한다. 이 을 통해 정지용은 많은 습작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한편 1922년에는 휘문고보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하는 문우회의 학예부장을 맡아 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된다. 이듬해 3월 휘문고보 5년제를 졸업하고, 4월에는 일본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학부에 진학한다.(이하 정지용의 생애는 이 글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생략한다)  이러한 정지용의 삶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농촌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벗삼아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 그는 14세 이후 객지 생활을 통해 누구보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으리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휘문고보 시절 이미 시인의 자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영어와 작문에 능통하여 영문학부를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지용이 초기 시의 대표작인 는 1927년 3월 에 발표되지만 작품 말미에 1913년 3월에 쓴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팔양의 기록에 의하면 1918년에 시작한 은 동인지가 1923년까지 약 10호 정도 나왔으며, 여기에 를 비롯한 그의 여러 작품이 실렸다는데,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정지용의 동시나 민요풍의 여러 시편들이 와 함께 이미 동인지 시대인 1918년부터 1923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할 수는 있다.  에 발표된 는 이렇다. (철자법과 띄어쓰기 모두 에 실려있는 그대로이며, 시행의 번호는 분석의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임)  鄕 愁  I- 넓은 벌 동쪽 끄트로  넷니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 지면  뷔인 바 테 밤 ㅅ 바람 소리 말을 달니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집벼개를 도다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II-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한울 비치 그립어 서  되는대로 쏜 화살을 차지러  풀섭 이슬에 한추룸 휘적시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IV-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가튼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누의와  아무러치도 안코 엽블것도 업는  사철 발 버슨 안해 가  따가운 해쌀을 지고 이삭 줏 든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V- 한울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업는 모래성으로 발을 옴기고,  서리 까막이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비체 돌아안저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 엔들 니칠니야.  유행가의 노랫말로도 쓰일 정도로 친숙해진 이 시에서 우리는 정지용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그가 그리워했던 고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즉,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정겨운, 지극히 향토적 서경이 그것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져 있으며, 한가로운 서경과 함께 아버지, 누이, 그리고 안해와 그들이 [돌아안저 도란도란거리는]는 행복한 모습이 바로 정지용의 고향인 것이다. 서경과 서정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이 시는 정지용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우리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것이다.  IV. 과 의 거리  앞에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의 과 정지용의 는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두 시인의 생애와 관련하여 두 작품의 창작 연대와 그 구조를 분석해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우선 생애와 관련지어 볼 때, 정지용의 습작기는 그가 휘문고보에 입학하던 1918년에서 일본 경도의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수학하던 1925년 사이가 된다. 당시 문학도로서 접할 수 있는 현대시는 대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의 국내외 시이다. 식민지 시대인 만큼 일본 시인과 함께, 서구시의 대표라 할 프랑스 상징주의 시는 물론 영미시를 접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더구나 앞에서 소개한 트럼블 스티크니는 미국의 근대시가 현대시로 전환하고 있던 1900년대의 과도기에 나와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의 한사람임은 물론, 요절한 시인으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시인이었다. 게다가 정지용은 영어에 능통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1923년 에 를 발표하기 전에 정지용은 스티크니의 을 읽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다음으로, 이러한 추측은 앞에 소개한 과 의 구조 및 기법을 견주어 보면 더욱 신빙성을 획득하게 된다. 우선 외형상으로 무척 닮아 있다. 전체 5연의 구성은 물론 매 연이 끝나며 후렴구의 형식 1 행이 반복되는 것이 그렇다.  먼저 스티크니의 을 보자. 형식 면으로 볼 때,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행(A)을 독립된 하나의 연으로 처리하면서 전체를 5연으로, 한 연은 3행과 후렴구 형식의 1행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고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음송형식의 시의 전형이다.  이러한 음송형식은 각운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 형식의 1행(B- , C- , E-123)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난다. 게다가 B연에서는 way와 3행의 days, C연에서는 grain과 plain, D연에서는 sight와 night, 그리고 E에서는 ears와 tears를 통해 매 연마다 1행과 3행의 각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 구분과 동음어의 반복을 통해 정형시 혹은 음성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역시 전체 5연으로 구성된 하나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스티크니의 처럼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독립된 연은 없다. 그러나 매 연마다 4(5)행으로 묘사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은 모두 [``````는(든) 곳]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 형식의 1행은 그러한 고향의 모습, [그 곳에 참하 꿈 엔들 니칠리야.]의 반복이다.  따라서 의 전체적인 시형식은 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의 5연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모습을 5개의 연에 균등하게 분배했고, 각운의 맛을 살리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형식의 1행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나지만 그 내용은 서로 상이한데, 는 이를 하나로 통일하여 5회에 걸쳐 반복함으로써 를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며 운을 살리고 있다. 결국 의 형식은 의 그것을 빌어 나름대로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시의 내용을 보자. 의 전체적인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가을은 이러이러한 곳(각연의 )이었는데 지금은 춥고 cold(B-④), 텅 비어있고 empty(C-④), 외롭고 lonely(D-④), 어두운 dark(E-④)곳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 기억 속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이 대조를 이루며 흔히 가을이란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는 기억 속의 고향이다.  김현승이 지적한 것처럼 의 고향은 다사롭고 눈물겨운 곳이다. 지극히 평화롭고 서정적 자아의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길모퉁이를 돌아 부는 바람, 졸고 있는 언덕의 그림자, 향기로운 여름날, 황금들판을 나는 제비, 풀을 뜯는 소, 검은 머리의 누이, 숲 속의 노래, 어린 자식들의 재잘거림, 별빛 같은 불꽃, 이 모든 것을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춥고, 텅 비어있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기에 [추억]처럼 눈물겨울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는 바로 에서 서정적 자아의 기억에 내재라는 고향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고, 질화로에 재가 식고, 아버지가 졸고 있고, 검은 머리 누이, 안해, 따가운 햇살, 하늘의 별, 흐릿한 불빛, 도란거리는 소리, 이 모두는 의 고향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소재와 이미지의 차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재 혹은 이미지가 유사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I - 꿈 엔들 니칠리야. A- I remember  I - 회돌아 나가고 B- blew here about the ways  I - 황소 C- yellow cattle  II-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 the perished ember  II- 뷔인 바테 C- empty down  II- 엷은 조름 B- lay to slumber  IV- 검은 귀밋머리 날니는 D- hair was dark  IV- 누의 D- a sister  IV- 따가운 해쌀 B- the long sun-sweetened  V- 별 E- starry  V- 우지짓고 지나가는 C- veering skimmed  V- 흐릿한 불비체 E- the perished ember  V- 도란도란거리는 E- babble  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바로 가 을 모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특히 V- 과 V- 의 소재와 분위기는 E- 을 그대로 빌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II연을 제외하면 모든 연이 의 전 연의 여러 행에서 그 소재와 분위기 혹은 이미지를 빌어 온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는 분명 의 형식을 빌었고, 소재와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의 구조와 기법을 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감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과거와 현재의 대조이다. 서정적 자아는 현재 고향에 돌아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다. 그런데 고향의 모습이 너무 변해버렸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구태여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을씨년스럽고, 공허하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김현승의 지적대로 다사로우면서도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이를 현재와 대조시키지 않는다. 서정적 자아도 고향이 아닌 타향에 있다.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고향의 평화롭고,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들만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이를 현재까지 지속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그곳 이 참하 꿈엔들 니칠리야.]를 반복함으로서 [향수]를 더욱 절실하게 할 뿐이다.  또한 서정적 자아의 시각의 경우 은 B, C, D, E로 진행하면서 원경에서 근경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는 원경과 근경이 혼합되어 있다. I연은 원경, II연은 근경, III연은 다시 원경으로 나가다가 IV연과 V연은 다시 근경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원경과 근경의 혼합을 통해 처럼 서정적 자아의 시각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즉 고향의 모습에서 가족의 모습으로 집중된다. 특히 는 의 누이와 어린 자식들만이 아니라, 아버지, 누이, 안해 그리고 그들이 모여 앉아 도란거리는 모습을 통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정겨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비록 정지용의 실제 고향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서구적인 [말] 달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만 당시 조선의 농촌에서 느낄 수 있는 향토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즉 정지용은 비록 의 여러 면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조선의 농촌에 걸맞는 분위기와 감흥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V. 창조적 모방을 위하여  앞에서 정지용의 는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도 아님을 아울러 밝혔다.  두 작품의 발표 연대와 정지용의 생애로 미루어 분명 정지용은 습작기에 트럼블 스티크니의 을 접했고, 그는 이 시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분명 이 시를 염두에 두고 를 썼을 것이다. 시의 형식이나 소재 그리고 이미지를 빌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스티크니의 시를 단순히 번역이나 번안만 한 것이 아니라, 스티크니가 사용한 시의 구성 기법, 행과 연의 구분, 후렴구의 기능, 그리고 소재와 이미지를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이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조선의 농촌, 자신의 고향의 서경과 서정에 맞게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는 에서 읽을 수 있는 cold, empty, lonely 그리고 dark와 같은 춥고, 공허하고, 쓸쓸하고, 어두운 가을을 찾을 수 없다. 언제 읽어도 정겹고, 따뜻한 고향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은, 비록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모방 혹은 표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지용은 이를 통해 조선에 어울리는 서경과 서정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을 하였다는 것이다.  정지용의 가 미국 시인의 시를 모방하였다는 것을 밝히면서도, 가 아름다운 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스티크니의 을 읽고, 이를 통해 자신의 고향을 생각했고, 정지용은 의 제요소를 빌어 자신의 고향을 그렸다. 구성기법, 소재, 리듬, 이미지는 물론 구체적인 단어까지 빌면서도 그는 이를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고향을 그렸다. 그리하여 전혀 새로운 조선의 서경과 서정을 읊었다. 모방은 하되 단순한 모방이 아니며, 하다못해 단어까지 그대로 빌면서도 그 단어의 쓰임이 시 전체의 내용 속에 용해되어 있도록 만들었다. 스티크니가 창조해 놓은 을 통해, 정지용은 그가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재창조해 낸 것이다. 이는 바로 창조적인 모방인 것이다.  창조적인 모방, 그것은 모든 예술행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 향수(鄕愁) - 꿈에도 못 잊는 인간의 본향     지금은 도시로 변해버린 뉴욕 퀸즈 카운티의 1920년대 전원 풍경. 농가의 생김새만 다를 뿐 한국의 시골 풍경과 매우 유사하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먹고 사는 게 힘들수록 향수(鄕愁)가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 한자 ‘鄕愁’도 그래서 생겨났다. 시골 향(鄕)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서 본래 의미는 ‘함께 밥을 먹다’, 그게 훗날 ‘마을’ ‘시골’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자 거기에 먹을 식(食)을 더해 ‘잔치’라는 의미로 썼다. 가을 추(秋) 아래 마음 심(心)이 붙은 시름 수(愁)도 마찬가지다. 가을 추(秋)는 벼 화(禾)에 불 화(火)가 붙은 것으로서 추수를 앞두고 곡식을 좀먹는 메뚜기들을 잡아 불태우는 모양을 그린 것이라는 게 정설, 겨울을 날 양식이 모자랄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그린 것인 바, 농경문화권에서 밥을 같이 먹던 혈연․지연에 대한 그리움 또한 시름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걸 거꾸로 말하자면, 향수는 ‘너’와 ‘나’의 성분과 사상과 다름을 극복해주는 공통분모로써, 향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성으로 돌아가는 것인 바, 인간애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시인들이 고향을 노래했던 것도 ‘향수’를 통해 인간애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본향을 아담과 이브가 죄 짓기 이전에 살았던 에덴동산으로 설정해놨듯이, 시골출신이 도회지의 물질만능주의에 타락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고향에서의 순수를 그리워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는 게 고달프고 외로울수록 향수가 더욱 증폭된다는 것을 누구라서 부인하랴. 아예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자고 일어나면 논밭이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요즘 고향 또한 예전의 그 때 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고 보면 현대인의 고향은 자신의 가슴 속이나 꿈속에만 남아있는 실루엣 같은 것이라고 해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으리라.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대인은 모두 다 실향민(失鄕民),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년-1950년)도 ‘현대인이 상실한, 상실할 수밖에 없는 고향’을 주목했던 것 같다. 190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한 정지용이 ‘향수’를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인 1923년 경,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19년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므로 ‘향수’는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學] 유학 시절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바, 당시 일본에 유학 갔던 대부분의 조선 젊은이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정지용 또한 낯선 타관에서 나라를 빼앗긴 2등 국민으로서 서러움을 톡톡히 겪으면서 ‘향수’의 시상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왼쪽부터, 1946년 건설출판사에서 펴낸 정지용 시집, 정지용, 스티크니 최남선(崔南善)이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일컬어지는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을 발표한 게 1908년이고 주요한(朱耀翰)이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발표한 게 1919년, 그 이후 불과 4년만에 정지용이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라든지 ‘금빛 게으른 울음’ 등의 공감각적(共感覺的)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해가며 지금의 어느 현대시에 비겨도 모자람이 없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혹자는 정지용이 도시샤 대학 영문과 재학 중에 접했을 구미 영시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머지 시상과 시적 기교를 습관적으로 차용(?)했을 거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향수’가 하버드대 출신으로서 30세 때 뇌종양으로 숨진 미국 시인 조셉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 1874∼1904)의 ‘추억(Mnemosyne)’를 모방 또는 번안했다는 글이 나돌기도 했었다. 실제로 ‘향수’와 ‘추억’은 구조와 시상의 전개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매 연마다 ‘the country I remember’(추억)과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향수)가 반복된 것도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고, ‘소’ ‘누이’ 등의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지용이 스티크니의 것을 한국말로 살짝 고쳐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향수’가 ‘추억’을 베낀 것이라고 해도, ‘향수’의 문학적 가치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아니 될 듯싶다. ‘향수’와 ‘추억’의 프레임과 테크닉은 같을망정 ‘향수’는 조선인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묻혀 있는 ‘고향’을 그린 것인 반면 ‘추억’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불안을 그렸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될 뿐만 아니라 정지용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런 사소한 시시비비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한국전쟁 때 월북했던 탓에 정지용은 누군가가 평했던 것처럼 “살아서는 불우한 시인이었고 죽어서는 사상적 금기 대상”이었지만,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많은 기라성 같은 후배 문인들을 등단시킴으로써 한국시단의 씨알을 굵게 만든 탁월한 문학가였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젊은 천재 시인 이상의 시를 실어 길을 터줬고, 1939년 ‘문장(文章)’ 편집인으로 있을 때는 조지훈․박두진․박목월 등 세칭 ‘청록파’를 등단시켰으며,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이화여전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후배들을 길러냈었다. 그런 그가 한창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하던 스무 살 시절에 서양시인의 시 하나 모방했다고 해서 손가락질한다면 그게 더 비문학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나 ‘사철 발 벗은 안해’를 두고 있는 사람들만큼은 정지용을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고 믿는다. 왜? 한국인들의 ‘고향 인심’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으니까. ============================================================= 정지용이 표절했다는 '향수'의 영문시 원본  Mnemosyne[nim?s?ni]?(추억) ( Joseph Trumbull Stickney(1874~1904) 스위스 태생 미국인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 It's lonely the country I remember.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원본시 번역 추 억 요셉 트럼블 스티크니 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따사로운 바람결 길모퉁이 스치고 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산마루에 누운 그림자 졸던 곳 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한낮에 금빛 곡식물결 박차고 소소떠는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 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와 밤이면 숲 속에서 함께 노래 부르던 곳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註釋) 1.헤설피 : 소리가 느릿하고 길며 약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지는 모양 2.함초롬 :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3.아무렇지도 않고 : 덤덤하고 4.성근 : 드문 드문 5.서리까마귀 : 가을까마귀 ?鄭芝容(1902-?)?아명 지용(池龍). ①충북 옥천, 12세 결혼, 천주교신자,부친은 한의사 ②옥천보통학교, 휘문고보 졸업 ③일본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 졸 ④휘문고 영어교사,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카토릭계신문),주간, 출판사 ‘문장’에 있으면서 청록파 박목월,박두진, 조지훈을 등단 시킴. ⑤保導聯盟(도울보,이끌도)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전향 강연에 큰 역할 했음. ⑥1950. 6.25 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 ●정지용의 詩 ?향수?의 표절 시비에 대한 나의 반론 (다음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대한 폄하(貶下) 및 폄훼(貶毁) 글에 대해 제가 해당 카페에 반론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정지용이 詩 ?향수?를 미국 詩에서 표절했다는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대전 지방에서는 공주대 국어교육과 구중회 교수가 자기 소견을 발표 했었고 그 외에도 理論詩(評論)를 하는 사람 중에 상당수가 정지용의 ?향수?를 문제시 하려고 시비를 붙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시인 아니 시의 대가들은 ?향수?를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훌륭한 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詩가 순수한 창작시가 아니고 표절시라 할지라도 ?향수?는 누구도 표절 할 수 없는 훌륭한 표절이므로 이 詩가 주는 엄청난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향수?가 표절작’이라고 그 가치를 격하하려해도 이미 ?향수?는 우리 가슴속 깊이 자리 잡아 격하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표절이면 어떻고 번역시면 어떤가. 읽어서 감동이 오고 들어서 기쁘면 되는 것 아닌가? 사기(詐欺)를 친 정지용은 우리 곁에 없고 정지용의 사기가 우리에게 손해 입힌 사실이 없으니 우리는 이 표절시가 주는 감동만 우리의 것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두 시를 잘 비교해 보라. 지용이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은 후 향수를 썼다면 그는 추억을 통해 향수의 영감을 얻은 것이지 분명 표절은 아니다. 향수를 표절시라고 한다면 이 땅에 진정한 창작시는 없는 것이다.  표절시비를 일으켜 자기 이름을 빛내려는 당신들은 어느모로보나 순수성이 없는 나쁜 사람들이다. 이미 마신 꿀물 속에 침 뱉었다고 말해 꿀물을 토하게 하려는 치사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최고의 노래방? repertory?하나를 빼앗아 가려는 치한들과 다름 없는 인간들이다. 남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나도 노력해서 그만큼 되도록 최선을 다 하거나 아니면 잠자코 있어라. 하기사 그런 왜곡된 마음을 가진 자가 제대로 된 한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Richard Carlson이 쓴 "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가?" 라는 책에서 그가 말한 "침묵의 힘을 믿어라" 라는 명언을 그대들에게 팁으로 전하며, 정지용의 티없고 순수한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을 더불어 선사 하노니 그대들도 님처럼 순박한 마음으로 붓을 놀려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길 바란다. 영국의 재사 죠지 버나드 쇼의 회한의 절규가 당신들의 절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버나드 쇼- 별똥 정지용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 보려 벼르고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어린 날 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수많은 별똥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때, 별똥이 떨어질 때 바로 언덕을 넘어 별똥 떨어진 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다음에, 다음에.... 벼르기만 하다가 다 자라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별똥은 그저 물체가 대기권에서 타고난 흔적일 뿐이란 슬픈 지식의 소유자가 되고 말았다.    
1336    두 시인의 마음속 "고향"은...? 댓글:  조회:4435  추천:0  2015-07-04
오픈지식 백석 "고향"과 정지용 "고향"  * 백석의 "고향"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정지용의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해설 - 백석의 시 '고향'에서, 시적 자아는 낯선 타향에서의 힘든 삶에서 병을 얻어 의원을 찾는다. 우연히 의원으로부터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을 받고 , 시적 자아는 자신의 부친과 의원의 부친이 막역한 친구임을 확인한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운 신세에 놓여 있던 시적 자아는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향을 떠올린다. 순간 고향은 자신의 출생지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유대로 묶인 상징적인 공간으로 확대된다. 한편, 정지용의 시 '고향'에서, 고향은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관념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곳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대비되면서 시적 자아의 의식 속에서 상실되기에 이른다. 이 순간 현실 속의 힘든 삶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시적 자아의 현재와 과거를 이어 주던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은, 현실과의 단절을 겪고 기억 속의 공간으로 후퇴한다.   
1335    다시 알아보는 시인 백석 댓글:  조회:4719  추천:0  2015-07-04
백석(白石, 1912.7.1 - 1995 )  한국의 시인, 수필가, 번역가  1. 서 론  백석(白石)은 1912년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부친 수원백씩 백용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작품을 발표할 때는 백석 이라는 필명을 애용하였다.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문단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30년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어서 인데 그는 곧 후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하였다. 1934년 청산학원을 졸업한 그는 에 입사하여 출판부 일과 계열사인 지를 편집을 하면서 수필 「耳說 귀ㅅ고리」를 쓰고,「臨終 체흡의 6월」이라는 서간문을 번역 소개하였고,「죠이스와 애란문학」이라는 티 에스 마르키 스의 논문을 번역하였고, 단편소설「마을의 유화」와「닭을 채인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즉 그는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문학과 관계된 글을 번역.소개하였고, 등단 장르였던 소설을 두편 발표하였으며 수필을 한 편 썼다. 이것으로 보면 문필활동 초기에 그는 산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발표한 첫 시는 1935년 1월 20일, 33편의 시를 묶어 시집 『사슴』을 상재하였다.  시를 처음 발표한 시기부터 시집을 낼 때까지의 기간이 다섯 달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 1941년까지 그는 집중적으로 시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집을 낸 직후인 1936년 4월초 백석은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흥에 있는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였으나 1938년엔 영생고보를 사임하고 다시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가 이듬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북만주 산간 오지를 여행하기도 하며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생활 만주 안동에서 세관원 생활등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다 해방후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그대로 북한에 남아 있었다. 해방후 발표된 그의 시는 친구인 허준이 가지고 있다 발표한 것이고 그 이후 확인된 작품을 보면 백석은 1961년 까지는 조선작가동맹에 소속되어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하였으며 아동문학평론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의 시세계는 시집「사슴」을 내던 시기와 사슴 이후 시기, 그리고 북한에서의 활동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전개한 문학활동은 당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선전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어 해방직후까지 발표한 시만을 대상으로 그의 시세계를 고찰한다.  2. 묘사의 시학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시집 「사슴」을 낼 무렵 백석이 견지하고 있는 시작 방법은 묘사이다. 그 방법이 지니고 있는 모더니티를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김기림이다.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던 그는 백석이 시집「사슴」을 낼때 같은 조선일보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발간되자 제일 먼서 서평을《조선일보》에 실었다.  백석은 우리를 충분히 애상적이게 만들 수 있는 세계를 주무르면서도 그것 속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추태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시인이다. 차라리 거의 철석(鐵石)의 냉담에 필적하는 불발한 정신을 가지고 대상과 마조 선다. 그 점에「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착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  김기림「사슴을 안고」,1936. 1. 29.  모더니즘 시인들이 그야말로 신선한 감각으로서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고 음으로서 말의 가치, 시각적 영상, 의미의 가치도 여러가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한 전체적 효과를 의식하고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 아래서 시를 쓰는 것이라면 백석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백석은 모더니스트 시인들과 달리 시의 대상은 고향의 풍물과 민속에 두었지만 감정과 정서는 철저하게 절제했는데 그 방법이 묘사인 것이다.  백석이 묘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소설로 등단하였고 시를 발표하기 전까지 소설을 두 편이나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기도 한다. 소설은 서술자의 의도나 감정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행동, 인물의 성격,또는 풍경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즉 간접화시키는 장르인데 대상에 대한 생각과 정서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대상을 묘사함으로서 간접화시키는 백석의 시작 방법론은 시를 창작하기 전 훈련한 소설의 장르적 성격에서 연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소설은 사건을 서술하는 장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인물,풍경, 심리, 행동 등 묘사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풍물 묘사만으로 시적 깊이를 획득하기 어렵자 사건을 끌어들이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하는 지적도 타당성이 있지만 이때 이 사건은 소설에서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백석이 시에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묘사인 것이다.  아배는 타관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딴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듯이 무서운밤 딥뒤로는 어느 산골짝이에서 소를 잡아 먹는 노나리군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 멍석을 저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굴린다는 땅아래 고래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가진 조마구 뒷산 어늬뫼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군병의 새깜안대가리 새깜안 눈알이 들여다 보는때 나는 이불 속에 자르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중략  섯달에 내빌날이드러서 비빌날 밤에 눈이오면 이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난다는 말을 든든히녁이며 엄매와 아는 앙궁옿에 떡돌옿에 곱새담옿에 함지에 버치며 대낭푼을 놓고 치성이나 들이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 눈약 눈을 받는다.  이눈세기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 가며 고뿔이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고야」전문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옛밤'을 소재로 한 것인데 밤이면 기억나는 어린 날의 밤풍경 다섯 개를 병렬시켜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밤풍경이지만 밤이라는 시간을 풍경화로 제시하여 공간화시키는 이 시는 바로 그 기법의 측면에서도 모더니즘적이다.  백석의 시를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곤혹감은 낯선 평북 방언 때문이다. 그러나 방언이 주는 곤혹감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듯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지니며 독자들에게 언술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고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해도 환기하는 정조에 젖어들게 만든다.  백석시가 보인 관심 중의 하나는 고향 산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특히 다음 시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3. 독백의 시학  시집 「사슴」의 발행일자는 1936년 1월 20일인데 백석은 그 직후인 1월 23일자 에 시「통영」을 발표하였다. 이 시는 물론 이제까지의 시의 기법인 묘사를 통해 통영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연에서 시적 화자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는데 이 점이 시집에 실린 시들과의 차이이다. 이전의 시에서 생각이란 시어가 보이는 것은「고야」에서인데 그것은 없어도 기본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는 보조서술어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통영」의 마지막 연에 보이는 '녕 낮은 집 담 맞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에서 '생각한다'는 그 앞에 묘사된 통영의 풍물과 대조시켜 시적 화자의 상태, 그 중에서도 생각을 직접 진술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백석이 발표하는 시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어 중의 하나가 '생각하다'이다.  36년 3월1호에 발표한 「탕약」에 사용된 '생각하다'는 시어에는 보다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의미가 포괄되어 있다.뿐만 아니라 이 시간성은 연 구성의 원리로도 작용한다.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웋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봉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올으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딸인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여 만년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곻이 약그릇을 들고 이약을 내인 옛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탕약」전문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고백하는 방식은 이제까지의 시에서 보여주던 간접제시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시인의 관심이 객관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주관적인 생각과 마음의 세계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백석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가지면서 시간성과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낭만주의의 기본 속성으로 볼때 당연한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감성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유기체적 세계관은 생명체적 자연인식인데 생명체란 탄생,성장, 소멸의 지속성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이기에 낭만주의자들은 시간과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4. 결 론  첫 작품을 발표하고 첫 시집 을 낼 무렵 백석은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 평북방언으로, 고향의 풍물과 민속,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기의 시학을 묘사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것은 당시 문단을 풍미하였던 모더니즘의 영향이면서 동시에 소설 장르의 영향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집을 발표한 이후 백석의 시작 방향은 생각과 정서를 직접 술회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이 시기의 시학을 독백의 시학이라 이름 붙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많은 기행시는 여전히 여행지의 풍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과 정서를 철저하게 배제하던「사슴」시기와 다르게 이 시기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에 기울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6년에서 38년 사이에는 단순히 생각과 마음의 세계를 발견한 화자의 모습만 나타나 있다면 그 이후의 시는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진술하거나 토로하고 있음을 불 수 있다. 이런 낭만주의적 시작태도를 보이면서 백석은 공간성보다는 시간성과 역사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시기가 시인 개인으로서도 어렵고 굴곡 많았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민족 전체로서도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제어하기 어려운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면서도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애쓰는 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런 중에도 자연과 대지의 생명력에 힘입어 생기는 회복해 보려는 시도 남기고 있다.  백석은 한국이 낳은 가장 자랑스러운 시인이며 수필가이며 번역가이다. 이러한 위대한 백석이 진정 우리들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만 평가하더라도 세계의 어느 유수한 시인들과 비교를 하여 볼 때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  백석이 점차로 알려지던 그 때 보다는 오히려 그들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분단이라는 많은 제약과 굴레 그리고 억압속에서 그러한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백석은 그 동안 꾸준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사실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평가를 받으리라는 예견이 이미 시인이자 평론가인 박용철에 의해서 동시대에 대두되었다.  문학은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문학은 생업으로 삼은 백석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백석은 이러한 고난을 온몸으로 체감하여 한 시대를 누구보다도 치령하게 살아왔다. 최고의 시인이면서도 언제나 평범한 기자로 또한 교사로 공무원으로 농부로 변역가로 독립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해방이 되기 전까지는 광산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세관원까지 하였다. 해방후에는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 선생의 통역비서를 하기도 하였으며 세계적인 소설문학가로 활동했다. 그와중에도 몇번의 결혼 실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언제나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이 훌륭한 시들은 고난의 시기를 비껴나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시들이며 또한 고난 그 자체를 포용하는 놀라운 작품들이다 또한 지조있고 고결한 작품들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우선 백석은 우리 학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또한 어설픈 외래와보다 내실있고 한국화를 요구하고 있다.  백석은 자신의 첫시집 에서 33편을 실음으로서 보이지 않는 항일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민족적 자존심이 가득한 시들을 발표하고 있다. 극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백석은 자신의 삶 전부를 청렴결백으로 일관했다.
1334    <소주> 시모음 / 김소월시인과 담배, 술, 진달래꽃 댓글:  조회:5442  추천:0  2015-07-04
1333    포스트/모더니즘시론의 력사 댓글:  조회:4597  추천:0  2015-07-04
[ 2015년 07월 06일 11시 00분 ]     (남아프리카 더반주에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이만식     1.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시와 표현』에서 특집의 원고를 청탁하면서, 5~60년대와 80~90년대의 시적변모를 이미 다루었으니 2000년대에 주목받은 시인들의 시를 분석하여 시와 시적 표현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이를 드러내어 제시해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과거와 달라진 2000년대의 대표적인 유파 중의 하나가 소위 미래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와 시적 표현에 대한 선호 여부에 따라 산발적이고 제한적인 분석은 있었지만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관점에서 거시적이며 체계적으로 검토된 바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시인들의 시작업의 주요한 특징들 중 하나가 소박한 감상주의를 벗어나서 현대문학이론의 성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시론의 역사,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 속에서 이를 바라보면 최근의 시와 시적 표현의 특징을 뚜렷하게 구별·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1930년대의 김기림에서 시작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이 1960년대의 김수영에서 실질적인 결실을 맺고, 1980~90년대의 오규원, 김준오와 이승훈의 시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2010년에 발간된 소위 미래파의 이론가 권혁웅의 시론에 이르러전환점을 맞는 과정을 읽어보는 것이 이런 관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2. 모더니티/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즘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모더니즘, 모더니티,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티를 둘러싼 개념의 혼란을 정리하면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개괄하는 것이 논리전개의 기반이 될 것이다. 모더니티modernity가 근대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면, 모더니즘modernism은 19세기말의 예술운동을 지칭한다. 이 두 개의 용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모더니티, 즉 근대성은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적 사고체계를 벗어나면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온 근대화의 기본 논리를 뜻한다. 이러한 모더니티는 프랑스혁명에서구체화된다. 문학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대중교육을 통하여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이 사회의 주류 이론이 되고, 이러한 인권 개념을 기반으로 근대국가가 수립되게 되는데, 이 근대국가 체제가 서세동점의 과정에 의하여 현재까지도 비서구권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 즉 개개인의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천부인권설에 가정되었던 인간의 개념 속에 남성이 아닌 여성, 백인이 아닌 유색인, 인간이 아닌 자연 등의 타자他者가 배제되어 있다는 1960년대 이후의 깨달음이 모더니티에 대한 본격적인 반성을 유도하면서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 즉 탈근대성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지 않을수 없게 되었던 저간의 사정은 현대문학이론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알게 된 사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이러한 포스트모더니티의 인식에서 기인하는 1960년대 이후의 예술운동인데, 19세기말에 있었던 모더니즘 예술운동에 이후以後라는 뜻의 포스트post를 붙여서 사용하는 바람에 개념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전개되어 온 모더니티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것이 모더니즘 예술운동이니까 포스트모더니즘과 거의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경우에는 모더니티에 대한 본격적이고 철저한 철학적 반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예술적이며 본능적인 반발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미래파Futurist처럼 근대의 기계문명이란 모더니티를 찬양하는 예술운동과 근대적인 인식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에 대한 깨달음을 소개하는 초현실주의처럼 당대의 모더니티의 모순을 지적하는 예술운동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19세기말의 모더니즘이나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각자 나름대로 당대의 모더니티에대한 반성 행위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은 그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적 인식에 기반을 둔 근본적이며 본격적인 반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적 발전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철학적 연구로부터 도움을받은 예술운동이기 때문에 그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작품들보다 모더니즘의 예술작품들이 아직까지도 그 의의를 상실하지 않고 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논의에 있어서 잊지 않아야 할 전제조건은 모더니티의 시대가 가고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가 왔다는 식의 단선적인 역사전개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유엔 등의 국제기구가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정치적인 현실을 생각해보면, 모더니티의 효용성이 약화된 것은 틀림없으며 그래서 모더니티에대한 반성이 철저하게 제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는 있지만, 포스트모더니티의 논리가 모더니티를 대체한다고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전개의 과정을 고려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대체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단지 모더니즘 예술운동을 계승하면서도 문제적인 국면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근대화의 전개과정을 시론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프랑스혁명의 기반이 되었던 천부인권설은 19세기 초 영국 낭만주의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낭만적 상상력의 철학적 기반이 바로 인간 개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적 상상력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이 인식되면서 19세기 말에 이르러 모더니즘 예술운동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더니즘에서 암시적으로 제시되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인식된 인간 개념의 문제점을 시론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자아의 완전성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낭만적 사랑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와 ‘너’라는 자아의 이면에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 모더니즘 예술운동에서 발견되었다면,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과연 ‘나’와 ‘너’라는 자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3. 김기림의 『시론』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는, 아니 한국 시론의 역사는 김기림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김기림의 『시론』의 분석은 한국문학사의 시작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점검하는 것이 된다. 김기림이 “한일합병으로 끝나는 이조 최후의 약 반세기간은 조선이 그 자신의 근대화를 필사적으로 회피하려고 하여 빚어낸 세계문화사상 침통한 「동·키호테」의 재연이었다.”라고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근대화는 자생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은 초기 신문학에서부터 현재까지 청산되지 않은 “봉건적·유교적 구사상”의 잔재와 싸우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조의 부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싸움의 양상이 배타적인 투쟁이라기보다는 포월包越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문학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은 “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 모방 혹은 수입의 형식을 거쳐 속성해야 하는 동양적 후진성”과 “근대화의 과정이 지지할 뿐 아니라 정상적이 아니었다는 것”에서 기인하는다음과 같은 근대문학의 기형성이다.     그러나 우리 신문학의 「이데」는 결코 이 초기의 단계에 그리 오래는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서구가 이미 5세기나 6세기를 두고 걸어온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을 그대로 더듬어 속성해야 했다. 실로 30년이라는 짧은 동안에 그것을 졸업해야 할 벅찬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문학사가 나이로는 극히 어리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서구제국의 근대문학사 전부에 필적하는 복잡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그러면 오늘의 우리 문학은 근대정신을 완전히 붙잡았으며 그것을 재현하였는가. 그래서 20세기적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는가. 이렇게 스스로 물어볼 때에 유감이나마 우리 생활과 사고, 사고와 생활 사이에는 중세와 근대의 틈바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구석이 있으며 또 한 정신 속에도 봉건사상과 인문주의가 동서하며 한 작가나 시인의 문학 속에 19세기와 20세기가 뒤섞여 있으며 한 상징시인 속에 낭만파와 민요 시인과 유행가수가 겹쳐 있는 것조차 도처에서 쉽사리 구경한다. 이를 김현이 ‘새것 콤플렉스’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지금의 포스트모던시대에 이르러서는 문학의 혼재성이 결함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김기림은 1950년 4월에 『시의 이해―I. A. 리차즈를 중심하여』를 쓰게될 정도로 모더니즘의 시운동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리차즈의 이론을 한국문학에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시의 경험의 과학적 분석을 도입하여 영문학과의 창설에 기여한 리차즈의 이론은 모더니즘의 이론이 되어 현재까지도 영문학과의 표준 교육과정인 뉴크리티시즘New Criticism 비평이론을 창설하는 데 공헌한다. 한국문학 현장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서구와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김기림의 선구적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조선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집단적 시운동의 모양은 갖지 못했다. 또 위에서 말한 특징을 개개의 시인이 모조리 갖춘 것은 아니었다. 오직 대부분은 부분적으로만 「모더니즘」의 징후를 나타냈다. 또 그것이 반드시 의식적인 것도 아니고 시인적 민감에 의한 천재적 발현인경우가 많았다. 김기림이 명민하게 이론적 측면에서나마 한국문학에 모더니즘을 도입하려고 하였지만, 모더니즘이 탄생한 서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면서 이론만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론적으로도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문학의 큰 약점이 된 것 같아 보인다. 「모더니즘」은 우선 오늘의 문명 속에서 나서 신선한 감각으로써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붙잡았다. 그것은 현대의 문명을 도피하려고 하는 모든 태도와는 달리 문명 그것 속에서 자라난 문명의 아들이었다. 그 일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 신사상에 비로소 도회의 아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題材부터 우선 도회에서 구했고 문명의 뭇면이 풍월 대신에 등장했다. 문명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감각·정서·사고가 나타났다.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후진국에서 경험하는 모더니티일 뿐이었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르네상스 이후 19세기말까지의 모더니티의 전개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며 반성의 모색이었다면, 후진국 지식인 김기림의 경우에는 도시문명이라는 르네상스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감탄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근대의 과정을 아직 현실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후진국의 지식인이 근대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의 논리인 모더니즘을 이론적인 측면에서나마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의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김기림의 이런 약점이 지금도 무반성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측면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품분석에 있어서 작품의 전체적인 측면을 고려하고 평가하기 보다는 작품의 부분일 뿐인 인상적인 측면이나 이미지들을 강조하는 평론이 현재 한국문학의 대세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4. 김수영의 시론     김기림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육화된 근대문학이론을 전개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번역작업 등을 통하여 서구의 근대문학을 체험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론에는 현장감이 있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진정한 자질을 갖춘 처녀작이 무엇인가하고 생각해볼 때 나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 요즘 나는 리오넬 트릴링의 「쾌락의 운명」이란 논문을 번역하면서, 트릴링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10여년전에 쓴 「병풍」과 「폭포」다. 「병풍」은 죽음을 노래한 시이고, 「폭포」는 나태와 안정을 배격한 시다. 트릴링은 쾌락의 부르죠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으니까 그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병풍」 정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고, 나의 진정한 시력은 불과 10년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김수영이 자괴감이나 선입견 없이 서구의 문학이론을 자신의 시세계에위와 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대문학이 갖고 있었던 모방과 수입일변도란 한계적인 국면을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수영은 다른 곳에서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 詩에 다소나마 교양이 있는 사람이면 나의 이러한 연애관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키이츠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실제의 체험에서 배운 것이니까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의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김수영의 강 점은 근대문화나 근대문학을 서구에 일방적으로 의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체험적으로 형성해나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서구의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이 한국에 제대로 정착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현대시는 아직도 제대로의 발언을 못하고 있다. 자기의 언어를 못 갖고 있다. 피부 속까지 스며드는 뼈저린 언어를 못 갖고 있다.”라고 김수영이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얼마 전에 비하면 소위 모더니스트들의 비현대적인 시도 많이 줄어진 것 같고, 詠月派의 색채가 진한 젊은 시인들의 모더니티에 접근하려는 은근한 기도가 엿보이게 된 것도 같은데, 이 달의 시만 보더라도 확고한 우리의 모더니티의 기반에서 우러나온 시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시의 모더니티란 외부로부터 부과하는 감각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지성의 火焰이며, 따라서 그것은 시인이 -육체로서― 추구할것이지 詩가 ―기술면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시인들의 모더니티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안이한 것 같다.   김수영이 시의 기교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시인의 세계관의 측면에서 근대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배의 허세가 아니라 울림이 있는 강력한 주장이 되는데, 이는 김수영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확보해낸 모더니티의 시론이 다음과 같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 이다.   김수영은 온몸시론 등 자생적 모더니즘 문학이론을 확립하면서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게 된다.     5. 오규원의 『현대시작법』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론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김수영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시가 서구시의 식민지대로부터 해방을 하려는 노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의 현대시의 교육을 먼저 받아야한다. 그것도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이 모자라기 때문에「참여파」고 「예술파」고를 막론하고 그들의 작품이 거의 전부가 위태롭게 보인다. 이런 의구심은 2,30대의 시인들의 오히려 좋은 작품을 대할 때에 더 커진다.   1990년에 발행된 오규원의 이 책은 그 이후 여러 곳에 개설된 대학과정의 문예창작과의 기본교재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한국근대시의 근대성에 대한 의구심을 더 이상 제기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란 감정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가 숨기고 있는 모든 가치로운 것들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예술 형식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에는 푸념이나 혼잣소리가 끼어들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런 감정의 세계이다.”라는 오규원의 설명을 통과하면서 한국시의 중세적 잔재는 우려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6. 김준오의 『시론』     김준오는 “개성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에는 아직 미숙하고 또 쑥스러웠기 때문”에 자신의 저서인 『시론』에다 “‘同一性의 詩論’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으나 결과는 그냥 『詩論』이라 해버렸다.”라고 말한다. 김준오가시의 원리를 논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일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삼는 이유는 “詩는 同一性이다”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사나 극과 구분되는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과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라는 “시 정신 또는 시적 세계관이나 비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의식의 차원에서, 즉 실제의 현실에서 자아와 세계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나는 타인과 다르며 나 아닌 모든 사물과도 엄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세계를 내면화(자아화 또는 인간화)한다. 이런 서정적 자아의 작용에 의해서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는 동일성·일체감의 상상적 공간 속에 놓인다. 이것이 서정시의 원형이다. 세계를 내면화하는 서정적 자아의 행위 자체는 현실의 차원에서 상실된 동일성을 회복하는 일이 된다. 김준오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시의 원래의 모습이자 시인이 몽상하고 갈망하는 고향”이며 이런 자아를 ‘서정적 자아’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서정시는 극과 서사와 달리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의 서정적 결핍’lyric lack of distance이 서정시의 본질이라고 김준오는 강조한다. 이런 서정적 자아는 “세계를 자아화한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단일한 의미자’다. 다시 말하면 서정시는 ‘한’의식의, ‘한’ 목소리의 독백이다.” 김준오의 서정적 자아를 위한 동일성의 시론은 현재까지도 한국시단의 주류 이론이다. 한국시단에서 ‘시’란 대부분의 경우 ‘서정시’를 말하는데, 그 근저에 있는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지금까지 설명한 김준오의 서정적 자아의 시론일 것이다. 이런 김준오의 시론은 뉴크리티시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기림이 1930년대에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던 뉴크리티시즘 이론을 김준오가 1980년대에 이르러 제대로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I. A. 리차즈에 의해 시작된 뉴크리티시즘 이론은 T. S. 엘리엇이 비판하는 바와 같이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이었던 모더니즘 예술운동을 문학비평의 한 측면에 국한하여 축소시킨 과오가 있다. 김준오가 1993년 『도시시와 해체시』를 쓰면서 이런 축소지향의 과오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그의 동일성의 시론이 1960년대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운동을 포괄할 수 없었다는 현실로 나타난다. 사실 많은 현대시들에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대립·갈등이 지배적이다. 이기철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차이·분별의 원리인 氣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세계의 자아화라는 서정장르 이론과 전면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이 불일치 자체는 서정시 이론의 불충분함을 시사한다. 김준오의 위와 같은 자기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론』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 즉 동일성의 시론에 기반을 둔 서정적 자아가 어떻게 변해야하는지 제시해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서정시의 한 순간은 ‘충만한 현재’다. 비록 인생의 줄거리가 없도 시는 한 순간 속에 오히려 강렬하고 집약된 형태로 자아를 표현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새로운 시문학을 위한 총체적 연구의 과제를 피하고 있다.     7. 이승훈의 시론     이승훈은 시 같은 평론 그리고 평론 같은 시를 쓰면서 이제 65권째의 저서를 냈다. 이승훈이 이렇게도 많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모더니티의 시대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 사이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는 모더니티의 시대의 끝자락에 위치하면서 자신의 시세계의 언어가 새로운 시대 속에서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런 반면에 이승훈의 시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정서는 두 시대 사이에 어쩔 수 없이 걸쳐 있어서 정착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자아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이승훈이 최근에 보내온 두 권의 저서는 평론집 『선과 하이데거』 그리고 해방시학 『라캉으로 시읽기』인데, 그 제목만으로도 김준오가 회피했던 새로운 시문학을 위한 총체적 연구의 과제를 자신이 떠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연구 자세는 이승훈으로 하여금 한국문단의 주류 이론인 서정적 자아를 위한 동일성의 시론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승훈은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이나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 등의 제목에서처럼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이승훈은 ‘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단의 주류 시론이 중심으로 삼는 ‘서정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승훈은 ‘서정시’만 ‘시’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런 해방적인 시론의 전개가 한국문학에 새로운 시문학을 창출해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8. 권혁웅의 『시론』     권혁웅은 2000년대 한국시단의 새로운 경향인 미래파라는 용어를 제시한 이론가로서 2010년 664쪽에 이르는 『시론』을 상재하였다. 권혁웅의 『시론』은 2000년대에 주목받은 시인들의 시를 분석하여 시와 시적 표현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해달라는 『시와표현』뿐만 아니라 한국문단 전체의 주문에 대한 중요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승훈이 자신의 내면에서 얼핏 발견되는 서정시적인 측면을 무시할수 없어서 다소 흥분된 어조로 소위 한국의 서정시 일변도에 대해 공격하였다면, 권혁웅은 그런 관습과 전통에서 자유롭기 때문인지 차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분석을 시작한다.     세계의 자아화가 서정시라는 주장이 있다. 자아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투사, 세계가 자아로 들어오는 것을 동화라고 한다. 세계를 관통하고 수렴하는 주체의 환원적 운동이 동화라면, 세계에 스며들고 확장해가는 주체의 분산적 운동이 투사다. 어느 쪽이든 서정시는 동일시의 산물이며, 이때 세계는 주체의 모노드라마가 된다. 시적인 대상이 주체의 발언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이 융합되는 체험, 곧 각각의 자리가 소멸되어 통전하는 체험이 서정적 체험이다. 권혁웅은 이와 같은 동일성의 시론이 “장르론에서 말하는 서정을 서정시의 영역으로 전유”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시 장르를 일컫는 서정과 시의 하위장 르로서의 서정이 교착交錯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들은 좌표상의 기준점이지 범주가 아니다. 다시 말해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극적인 것, 교술적인 것이 있지, 서정과 서사와 극과 교술이라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장르를 언술을 나누고 가르는 형식화된 체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체계가 차이와 배제를 속성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 때의 서정은 서사와 극과 교술 장르의 잉여이거나 분할로 정의될 수밖 에 없다. 서정을 이렇게 정의하면 시 가운데 서정시 아닌 게 없게 된다. 모든 문학이 시였고, 그중에서 어떤 것들이 소설로 희곡으로 수필로 분화해갔기에 지금의 시가 모두 서정시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왔다. 이 주장은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무의미한 주장이다. 그로써 해명되는 시적특질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정 장르와 서정시의 위와 같은 개념적인 혼란을 제외한다면, 김준오가 주장한 동일성의 시론에 대한 검토가 서정시에 대한 반론의 핵심이 될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운동을 시론의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동일성의 시론이 전제로 하고 있는 자아의 완전성에 대한 반성의 표현일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과연 자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권혁웅은 이를 시론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는데 한국 미래파의 시들을 이해하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대상을 지배하는 자아나 화자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고, 대상과의 관련에서 생겨나는 주체의 문제로 간주하자. 대상의 본질과 배열을 검토해야 목소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있다. 시의 의미론적 국면을 검토하지 않으면 주체의 위치와 정체를 살필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적 발언들을 에오라지 자아의 것으로 간주하면, 대상끼리의 관계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발화의 주체를 해명할 수 없다. 자아를 분석의 전제로삼는다는 것은 ‘나는 내가 한 발언들을 알고 있으며, 그 발언의 주인으로서 발언들을 온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가정을 수락하는 것이다. 차라리 ‘나는 제출된 발언의 결과로 생겨나는 목소리이며, 그 발언의 결과로서 발언들에 온전히 속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시와 시인과 화자를 혼동하는 악무한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김준오의 동일성의 시론의 핵심이 자아의 완전성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런 논리로는 현대시의 목소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권혁웅은 “자아나 화자 개념 대신에 주체 개념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첫째, “시 장르 역시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장르라는 점이 증명”될 것이며, 둘째, “어조의 기저형을 탐색할 수”있으며, 셋째, “의미론을 시 해명의 중심 과제로 설정할 수” 있으며, 넷째, “감각의 운용 방식을 살필 수” 있다는 것, 즉 새로운 시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대상을 장악한다는 가정으로는 발화 의 심층적 층위가 드러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주체 개념을 활용하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바로) 이것을 말한다’는 형식에 다음과 같은 전언들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이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척하는) 이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말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은) 이것을 말한다.’ 권혁웅이 지금 개척해나가고 있는 새로운 시론은 한국문학을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세계의 문학과 같이 발맞추어나갈 수 있게 할 것인 바,이러한 권혁웅의 시론을 둘러싼 미래파의 개척 작업이 한국문학의 중요한 미래를 배태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만식 1992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 『시론』, 『하느님의 야구장 입장권』, 『아내의 문학』 외 『나는 정말 아주 다르다』, 평론집 : 『해체론의 시대』 외 현 : 경원대 영문과 교수    
1332    할만할 때 우리 문학을 살리자... 댓글:  조회:5650  추천:0  2015-07-04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론 / 채 영 춘                   “단군문학상 !?” 필자는 처음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조선반도도 아닌 우리 중국에서, 그것도 조선민족의 시조를 문학상이름으로 모시고 거기다 어마어마한 상금을 건다?!)     십여년 전 울며겨자먹기로 동냥해온 해외후원금으로 “중국 조선족출판문화대상”시상식을 치르면서 아무때든 우리 돈으로 보란듯이 조선족문화대상을 세우고말리라는 소망을 품어왔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유감을 안고 퇴직했던 필자였으니 그 감동이 클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그런 리유때문에 필자의 관심은 문학상 설립자체보다도 이 장거를 일궈낸 장본인이 더 궁금할수 밖에 없었다.      현재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로 임직하고있는 신봉철씨가 이번 장거의 주요공신임을 알게 되면서 반사적으로 떠오른 그의 말이 있었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빨리빨리 해야죠”     여러 문화행사를 후원하면서 버릇처럼 내뱉군하던 그의 “량 심선언”이다.  이 “량심선언”을 받들고 그가 지금까지 조 선족문화사업에 후원해준 돈만 적으만치 수백만원에 달하는데 그 거금대부분은 그의 인격매력에 감화된 한족기업인친구들이 내놓았다고 한다. “단군문학상”은 그가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해낸 또 하나의 쾌거가 아닐수 없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이는 지도강위에 있는 모든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대전제이다. 지도자들은 크고작게 권 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신의 그 어떤 의도나 뜻을 무난하게 현 실화시킬수 있게 되여있다. 직위가 높을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도자의 봉직시간은 제한되여있다. 일단 퇴직하면 모든게 달라진다. 때문에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자기의 “의도와 뜻”을 “빨리빨리” 실천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리치일것이다. 문제는 어떤 ”의도와 뜻”인가 하는데서 루트가 달라진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민족문화의 중흥을 위해 매 하루를 단위로 계산하고 점검하면서 로심초사하는 이들, 우리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 민족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죄다 접고 당당하게 발벗고나서 뜻했던 일을 성사시키고마는 그 정치적용기에  후원자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이제 내가 정년퇴직할 시간이  615일이 남았다”. 우리 민족을 위해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것을 안타까워하며 달음박질해 일하는 신봉철씨와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민족의 문화적 삶은 풍요로울 것이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군자의 틀은 다갖추면서 은밀하고 점잖게 랑탄호연 (狼吞虎咽)하며 부정축재에 혈안이  된 자들도 로출되면서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나름대로 이들 또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울 것이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아까운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무위도식하는 민족간부들도 더러 있다. 이런 분들은 사실 상당한 능력과 수준, 그리고 다년간 쌓아온 인맥관계까지 갖고있어 맘만 먹으면 우리민족문화의 난제들을 풀어나가는데 결정적 변수로 될 요인이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몸을 사리거나  아예 뒷짐을 지면서 소중한 인적자원의 고사(枯死)를 초래 하는 안타까움을 남기고있다.  이번에 설립된 “단군문학상”이 민간차원에서 발상되고 또한 조선족산재지역 민족지도간부의 통 큰 용기로 추진됐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올 년초에 인구 9100명중 까자흐족이 3700명, 인구당수입이 1900원에 불과한 감숙성 아크싸이 까자흐자치현에서 40만원 거금을 걸어 국가급 까자흐문학상을 설립하고 일부러 북경에 가서 거창한 시상식을 한것이나,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당당하게 까자흐말로 연설한 땅딸막한 까자흐족현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선족문화의 중흥을 위한 것이라면 주춤하거나 겁날게 없이 팔을 걷고 나서는것이 전국 유일 조선족자치주 민족간부들의 자세가 돼야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는 “연변조선 족자치주를 더 빨리, 더 좋게 건설하라”는 등소평동지의 간곡 한 부탁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조선족 지도 간부들이 모두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우리 민족의 대업을 위해 통큰 일들을 하나 둘 “저질러”나간다면 중국 조선족의 앞날은 찬란할수 밖에 없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맑스가 1835년 트리르중학교졸업시험작문에서 쓴 다음의 글은 18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우리모두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만일 우리가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일할수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면 우리는 그 중하에 짓눌려 쓰러지지는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체를 위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보잘것없는 한정된 리기적인 기쁨을 맛보지 않을것인바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 사람의 것으로 될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위업은  고요하고도 영생불멸의 삶으로  남을것이다.”     2015년  6월  8일  
1331    2015년 7월 4일자 한국 중앙일보 윤동주 시한편 등고해설 댓글:  조회:4619  추천:0  2015-07-04
빨래      - 윤동주(1917~1945)  빨랫줄에 두 다리를 드리우고 흰 빨래들이 귓속이야기 하는 오후(午後), 쨍쨍한 칠월 햇발은 고요히도 아담한 빨래에만 달린다. ---------------------- 빨래를 미루는 일은 어리석다. 빨래는 머리를 쓰지 않고, 자기 쇄신의 명랑함과 정신적 성숙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심신이 무료하면 빨래를 하고 마르기를 기다려 보라. 빨래가 마르는 오후, 비활성화된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방은 고요하다. 수정 같은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을 키우며 홀연 모욕과 수치에서 벗어난다.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는 오후가 주는 선물은 심심함과 먼 곳의 아우라에 대한 예감이다. 이 심심함 속에서 우리는 제가 나아갈 바를 혼자서 결정하고 생의 침묵들을 견뎌낸다.
1330    다시 알아보는 시인 조기천 댓글:  조회:5171  추천:0  2015-07-03
조기천의 서사시   1. 조기천의 생애  분단이후 북한 문학사가 "평화적 건설시기"(1945. 8-1950. 6)의 걸작으로 꼽고있는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강승한의 서사시 『한라산』과 함께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비단 이 시기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분단시대의 북한문학 전시기를 통틀어서도 이념적 경직성이 지나치지 않는 8·15직후의 빈약했던 우리 문학가에서 드물게 보는 성과로 평가받을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1970년대를 전후해서 본격화된 주체이념의 유일사상화 시기를 북한문학의 이해와 평가의 시대적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도 『백두산』은 오히려 주체사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예술작품이 지닌 그 부정적 측면을 잘 극복한 뛰어난 형상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 조기천은 1913년 11월 6일 함경북도 회령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이내 시베리아로 이주해 갔다. 소련에서 그는 소년시절부터 지방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짤막한 시들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옴스끄의 고리끼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는 중앙 아시아 끄실 오르따 조선사범대학에서 약2년간 교직에 있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8·15때 조기천은 중국 동북지방에 들어왔던 소련군에 참여했다가 이내 북한으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북한 문단의 구성요인이었던 재북·월북파,연안파,소련파 등의 구분에 따르면 소련파의 일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조기천은『조선신무넬에서 일하면서 1946년 3월 서정시「두만강」을 발표하여 처음 시인으로서의 얼굴을 나타낸다. 이 시는 일제 식민지 시대 때의 수난받는 민중상과 항일투사들의 투지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8·15의 감격을 노래한「울밑대에서 부른 노래」,토지개혁을 읊은「땅의 노래」등을 거쳐 1947년 『백두산』을 쓰게된다.  소련파였던 조기천이 이 시기에 가장 먼저 항일유격전을 소재로 하여 김일성을 부각시키는 작품에 손을 댄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상정할 수 있으나 어쨌건 이 시로써 그는 일약 북한문단의 일급으로 부상한다. 1948년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항쟁의 려수」를 발표하여 그는 북한당국으로부터 공로메달을 받았는가 하면 8·15기념예술축전에서 연 세 번이나 수석 표창을 받았다고 전한다.  1949년 여름에는 휴가를 이용하여 흥남인민공장을 방문하여 약20일간 노동자들과 함께 한 체험을 바탕삼아 1950년6월에 장편 서사시『생의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2개년 경제계획에 나서도록 노동자들을 독려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6·25가 일어나자 조기천은 9월에 종군작가로 나서서 낙동강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중에 저 유명한「조선은 싸운다」를 비롯하여「불타는 거리에서」「죽음을 우너수에게」「나의 고지」등 시작품을 썼다. 특히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싸우는 조선을 찾으라"로 시작되는「조선은 싸운다」는 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지도에서 도시와 마을은 폭격으로 불타고 없으니 찾지 말아라는 이 시는 선전과 서정이 조화된 반전시로 세계문학사에 알려져 있다.  1951년 3월 조기천은 조선문학예술 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피선된다. 그 해 5월 그에게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국기훈장 2급이 수여되기도 한다. 그 두 달 뒤인 7월 31일 조기천은 39세로 평양에서 폭격으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품 속에서는 유고『비행기 사냥군』이란 서정서사시가 있어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전한다.  조기천의 생애는 짧았기에 북한의 어떤 정치적 격변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애국적 시인"으로 남았고, 또한 그의 작품활동 기간은 "평화적 건설시기"와 "위대한 조국 해방전쟁시기"에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 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기천은『생의 노래』에서 투철한 자신의 문학관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소련 시절부터 익혔던 사회주의 미학관의 한 표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엔/ 시가를 풍월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화조월석을 찾았고/ 초로인생을 설어했는가?/ 그래서 그들에겐/ 외적의 나팔소리보다/ 꾀꼬리소리 더 높이 들리었고/ 달이 둥그는 걸 잘 알았는가?/ 시인이라 자처한 무리들은/ 병든 마음을 파고들며/ 인생의 비애를 찬미하며--/ 무엇 때문이었느냐?/ 지는 곷이 서러웠드냐?/ 조선의 가슴에/ 일제의 칼이 박혔는데--  『생의 노래』에서  8·15뒤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창조를 그 바탕으로 삼으면서 민족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었는데 비록 소련에서 소년기를 보낸 조기천 일지언정 이런 원칙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던성 싶다.  2.『백두산』의 주제로서의 보천보 전투  8·15직후 남북한은 문학적으로 다 일제잔재 청산과 새 사회 건설을 위한 완전독립을 이루려는 반외세운동 등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친일파에 대한 처벌문제와 반제·반봉건 의식의 문학이 가장 긴박한 과제로 등장했으며 이를 다룬 작품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남북한에서 다 토지문제를 다룬 작품이 상당량에 이르며 그 뒤로 오면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내면적 탐구를 주로 다루는 한국문학과 사회주의 개혁의지를 다룬 북한 문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기천의 『백두산』은 바로 그 갈림길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면서 그 당시로서는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항일빨치산을 소재로 했다는데서 이 시인의 특이한 역사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서사시의 소재인 보천보 전투에 대해서는 항일투쟁사에서 여러 각도에 걸쳐 고찰된 것이 많은데 최근 소개된 와다 하루키(和母春樹)의「김일성과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사회와 사상』1988.11-12 연재)에 따르면 조국광복회 조직이 시작되면서 국내로까지 손을 뻗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그 지휘자는 김일성이었다고 한다. 커민테른 제7차대회의 새방침에 따라 항일연군 제1로군의 힘으로 조선독립투쟁을 수행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 3개사가 공동으로 국내 진입작전을 입안하게 된 것이라고 와다 교수는 보고 있다.  즉 제6사는 장백에서 보천보를 공격하고, 제4사는 무송-안도-화룡으로 돌아서서 조선의 무산을 치며, 제2사는 임진강 일대에서 장백으로 향하도록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제안은 김일성이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적으로 간삼봉(間三峯)에서 만나기로 한 이 3개사 합동작전은 제4사의 최현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김의 제6사는 근대 민족해방 투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북한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하 와다 교수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김일성의 제6사는 무산에서의 행동을 통보받고 6월 4일밤, 100여명이 강을 건너고, 대안에서 조국광복회 청년 80여 명과 합류하여 보천면 보전(保田)을 공격했다. 보건은 일본인 26호, 조선인 280호, 중국인 2호, 합계 308호인 소읍으로서 조재소에는 5명의 경관이 있었다. 이 주재소를 비롯하여 면사무소·삼림구(森林區)·우체국·관공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부대는 〈10강령〉의 삐라를 뿌리고 철수했다. 철수할 때 혜산서(署)의 오가와(大川)의 경부가 이끄는 병력의 추격을 받자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물러갔다.  보천보 작전을 성공리에 끝마친 제6사는 장백의 밀영으로 일단 철수했다가 제4사·제2사의 도착을 기다려 간삼봉으로 이동했다. 총인원 400이라고도 하고 600이라고도 한다. 그 사이 조선 침입사건으로 초조해진 일본군은 함흥의 제74연대를 김석원 소좌의 지휘하에 출동시켜 국경 일대의 토벌전을 시도했다. 이 군대에 6월 30일, 간삼봉에서 기다리고 있던 3사 연합군의 타격을 가했다.  『사회와 사상』1988. 11. 187쪽  이어 와다 교수는 이 사건으로 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원이 일제 기관에 의하여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쓴다(보다 자세한 자료는 남현우 엮음『항일무장 투쟁사』대동, 253-266쪽 참고)  이 1937년 6월4일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 조기천의 『백두산』으로 이는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많은 예술작품이 다뤄온 역사적인 한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조기천의 『백두산』은 이 보천보 사건을 다루면서도 결코 이 사건 하나만에 국한시키지 않는 항일빨치산 투쟁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서가고 있다. 즉 이 시에서는 김을 비롯한 몇몇 고유명사만 빼면 어떤 특수한 사건이 아닌 항일 투쟁의 민족적 보편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창작했다고 풀이한다. 예술적인 일반화를 시도하려는 동기에서 이 시는 사건발생의 명확한 연도와 지명을 밝히지 않았는데 예컨데 H시로 표기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웅주의를 벗어난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 사건의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민족적으로 일반화된 민중주체의 항일투쟁을 전형화 시킨다는 의도로 평범한 농민투사들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김만은 예외적 구상으로 이뤄져 있다.  3. 『백두산』의 구성과 특질  머리시와 1-7장에다 맺음시로 이루어져 있는『백두산』은 조기천 자신의 서정시「두만강」을 그 원형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즉「두만강」에 나오는 국토와 민족애가 『백두산』에 그대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째진 가난 속에 부대껴도/ 말 한마디 틀리랴 겁내며/ 눈물에 치마고름 썩어도/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주이는/ 두만강이여. 이것이/ 그대 그려둔 조선의 여인이 아닌가?"(「두만강」)에 나타난 여인상이 그대로『백두산』의 꽃분이로 승화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우리의 민족문학에 나타난 여인상은 모두가 꽃분이일 수밖에 없다는 민족적 보편성이 성립할 소지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보편성을 먼저 내세우느냐 하면 분단 44년이 지나서 남북한의 이질화 현상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지만 민족문학사의 긴 뿌리에서 본다면 결국은 동질성으로 볼 수 밖에 없음을 대전제로 삼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백두산』의 모든 인물들은 근대 이후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반성을 지닌 인간상이 아닐까? 예컨데 꽃분이는 가난 속에서 민족의식을 지닌 채 자라나 빨치산 활동에 투신하여 박철호와 위험을 무릎 쓰고 항일선전 및 무장투쟁에 까지 가담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박철호가 죽어간 뒤에도 미래의 조국 건설을 위한 후비대로 눈물을 삼키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한 여인상의 고난은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너무나 많은 변형으로 나타난다. 신동엽의 시에서는 아사녀로 상징되며, 소월의 시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며 님을 보내드리는 그 여인상 모두가 우리의 꽃분이가 아닐까.  『백두산』은 그 앞머리부터 역사적인 현실성으로서의 평범성(곧 민중성)과 초자연적인 영웅성이 조화를 이룬 채 장엄하게 묘사된다. 이 조화로운 자연묘사는 영웅주의와 민중성을 하나의 역사적 진보의 작용으로 보려는 시인의 의도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에 나타난 영웅상은 한 개인적인 위대성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적 영웅상으로 그려진다. 물론 시에는 김을 그 정점으로 삼아 짤막하나마 초인화시키고 있으나, 그것은 다른 빨치산 개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홀로인 영웅주의로 우뚝 솟은 인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민중적 영웅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적 구도로 『백두산』은 가장 민중적 형식인 구비문학의 각종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철저한 전통적 민중성을 혁명의 기초로 삼으려는 의도된 문학적 형식이기도 한데 민요조로 이루어진 가락은 독자들에게 한결 친근감을 준다.  시적 사건 전개방법은 오히려 극히 단조롭다. 아내를 일본인에게 잃은 김운칠은 혜산에서 솔개 마을로 옮겨와 화전농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딸 꽃분이는 조선광복회 회원일시 분명한 박철호가 정치공작원으로 국내에 잠입해 왔을 때 그에게서 1년동안 지도를 받는다. (2장) 꽃분이와 철호는 유인물을 만들다 일본경찰에게 들킬뻔 했으나 꽃분의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3장) 임무를 끝낸 철호는 16세 소년 영남이와 떠났으나 압록강을 건너다 영남은 사살되고 만다. (5장) 이미 국내에 조직되어 있는 과옥회 회원들과 연계하여 잠입한 빨치산은 쉽게 폭동에 성공한 후 각종 정치사업을 끝내고는 물러간다. 폭동 성공은 물론 꽃분이와 철호가 그 앞장을 선다. (6장) 그러나 압록강 뗏목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던 중 철호와 청년빨치산 중 가장 용감했던 석준이 총에 맞아 전사한다. (7장)  이미 밝힌 것처럼 보천보 전투를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특정 지명을 쓰지 않은 것은 항일투쟁의 보편성을 전형화하기 위한 의도이다. 그러나 투쟁의 전형성은 먼저 투철한 조직의 부각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H시에 들어온 빨치산들은 이미 만들어진 조직을 통하여 힘들이지 않고 잠입하여 쉽게 폭동을 일으킨 후 여유있게 물러간다. 그리고 이런 힘이 원천을 이 시에서는 민중의 편에 선 민중을 위한 조직으로 풀이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인 제4장은 나흘째 굶은 빨치산 대원들이 소 두 마리를 끌고 오자 그 소가 일본의 것이 아닌 조선과 중국 농민의 것임을 알고는 되돌려 주려다 실패하곤 그 대가라도 치뤄야 한다는 철의 규율이 나오는 대목이다. 제4장의 5절에 나오는 민중성의 강조는 근대이래 우리 민족문학사에서도 드물게 보는 구절이다.  항일빨치산이 지닌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하여 『백두산』의 맺음시는 "그러면 백두야/ 조선의 산아 말하라!/ 오늘은 무엇을 보느냐?/ 오늘은 누구를 보느냐?"고 묻도록 만든다. 바로 8·15직후의 한반도로 항일의 의지를 끌어들여 역사적 진로를 모색코자 하면서 이시는 끝난다. 물론 문학의 당시 입장이 선명하게 스며있다, 그러나 8·15직후의 북한 입장이란 오늘의 분단고직화 시대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외친다!/ 백성은 이렇게 외친다!"는 마지막 구절은 당시 남북한 어디에도 들어맞는 말이었기도 하다.  이래서『백두산』은 분단시대 초기의 남북한 이질화가 옹고되기 이전의 동질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의 하나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서사시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우리 입장에서 말한다면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구체적인 민중적 삶의 실체가 좀 약하다든가 하는 나대로의 비판이 따를 수도 있지만 8·15직후의 작품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 문학의 수확인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1329    전쟁과 화폐살포작전 / 짧은 시 모음 댓글:  조회:5304  추천:0  2015-07-03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 포탄과 총알 뿐 아니라 '조개껍데기'도 무기로 쓰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공격을 방어하는 도구로써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적국의 금융을 교란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1942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태평양 한가운데 섬나라 뉴기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뉴기니의 상공에서 포탄과 함께 조개껍데기를 마구 흩날렸습니다. 바로 그곳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화폐가 조개껍데기였기 때문이지요. 하늘에서 돈을 내리는 방법으로 현지의 화폐 가치를 폭락시키는 공격이었습니다. 이후 뉴기니는 상당기간 금융불안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서 화폐를 무기로 삼아 '인플레이션'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려한 경우는 또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베른하르트 작전'이 대표적이지요. 친위대 중령 베른하르트 크루거가 총 책임자로, 작전명도 그의 이름을 땄습니다. 1942년 독일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위조해 영국 상공에 투하시킬 계획을 수립합니다. 수용소에 잡아들인 유대인 화폐위조범과 인쇄공, 회계사 등 140여명을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포로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개인침대, 담배, 스포츠 등을 제공받았습니다. 독일은 베른하르트 작전을 충실히 실행해 2년간 1억3000만파운드 규모의 위조 파운드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정밀도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된 위폐들은 공작금, 무역결제용, 살포용 등으로 분류됐지요. 하지만 영국 상공에 살포한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이 후반부에 치달았던 1944년 독일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영국상공에 비행기조차 띄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폐와 장비는 모두 오스트리아 토플리츠 호수에 버려졌습니다. 이후 수십년간 이 호수 근처에는 위폐를 건져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이외에 지폐의 모습을 한 프로파간다 전단지를 뿌리는 방법도 전쟁에서는 종종 사용됐습니다. 사람들이 지폐로 착각해 집어들게 만들거나, 전단지를 지폐로 위장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짧은 시]  모음|     덫에 걸린 쥐에게  --에리히 케스트너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後記  --천양희  시는 내 自作나무  네가 내 全集이다.  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다오  木星  --박용하  확실히, 영혼도 중력을 느낀다.  쏟아지는 중력의 대양에서  삶과 죽음을 희롱하는 시를 그대는 썼는가.  삶이 시에 빚지는 그런 시를 말이다  마른 나뭇잎  --정현종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그리고 삶  --이상희  입술을 깨물어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재채기 삼창  에잇!  집어쳐!  kitsch!  시멘트  --유용주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자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부서져 본 사람만이 그걸 안다.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사이  --박덕규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정신은 한번 깨지면 붙이기 어렵다  후회  --황인숙  깊고 깊어라  행동 뒤 나의 생각.  내 혀는 마음 보다  정직했느니  별  --곽재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아침이슬  --고은  여기 어이할 수 없는 황홀!  아아 끝끝내 아침이슬 한방울로 돌아가야 할  내 욕망이여  연탄재  --안도현  발로 차지는 말아라  네가 언제 남을 위해 그렇게 타오른 적이 있었더냐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꿈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빵  --장석주  누군가 이 육체의 삶,  더 이상 뜯어먹을 것이 없을 때 까지  아귀 아귀 뜯어먹고 있다!  이스트로 한없이 부풀어 오른 내 몸을  뜯어먹고 있다!  방(榜)  --함성호  천불 천탑 세우기  내 詩 쓰기는 그런 것이다.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 까지  우주를 건너는 법  --박찬일  달팽이와 함께!  달팽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도달할 뿐이다  일기  --김형영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다음  너, 가련한 육체여  살 것 같으니 술 생각 나냐?  사랑  --정호승  무너지는  폭포 속에  탑 하나 서 있네  그 여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폭포 속으로 걸어 들어가  탑이 되어  무너지네  사랑  --김명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눈물  --정희성  초식동물 같이 착한 눈을 가진  아침 풀섶 이슬 같은 그녀  눈가에 언뜻 비친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낚는다.  전집  --최승호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 껍질만을 남겼다.  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 앵글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최하림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 寒山 같은 시인도  길위에서 비오면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지난 시간들이 축축히  젖은 채로 길바닥에 깔려있다  꽃  --조은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수묵 정원 -暮色  --장석남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 가끔 단추처럼 핑글  떨어지는 별도 있습니다  간 봄  --천상병  한 때는 우주 끝까지 갔단다.  사랑했던 여인  한 봄의 산 나무 뿌리에서  뜻 아니한 십 센티쯤의 뱀 새끼같이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이젠  나는 좀 잠자야겠다.  겨울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187  --------  김영승  茶道니 酒道니 무릎 꿇고 정신 가다듬고  PT체조 한 뒤에 한 모금씩 꼴깍꼴깍 마신다.  차 한잔 술 한잔을 놓고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나한테 그 무슨 오도방정을 또 떨까  잡념된다.  지겹다.  반성 906  --------  김영승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 위에 손등을 얹어놓고  주먹으로 때리면  때리면 쌱 피한다  맨밑의 나만 맞는다  칼로 찍힌다.  죽음  ----  김영승  창밖엔 비가 내린다.  더 이상 내 손에 만져보고 싶은 게 없게 되었을 때  그래서 권태스러워하고 있을 때  노아의 방주처럼  잠시 동안만 더 고독해 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창밖엔 빗소리가 정답다.   
1328    항상 취해 있으라... 댓글:  조회:4725  추천:0  2015-07-03
조금 취해서 - 김형영(1944~ ) 남 칭찬하고 술 한 잔 마시고, 많이는 아니고 조금, 마시고 취해서 비틀거리니                                         행복하구나.                                         갈 길 몰라도                                         행복하구나. 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술, 시, 음악, 고양이, 아름다움에 취하면 인생이 보다 풍부해진다. 보들레르는 항상 취해 있으라고 썼다. 취하면 평범한 악들의 번성은 물론이거니와 인생 자체의 권태와 느글거림마저도 견딜 만해지니까. 술에 취하면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술은 고통을 잠재우고 기쁨을 일깨우는 묘약이다. 적당히 취한 뒤 비틀거리니 행복하구나! 아아, “갈 길 몰라도” 행복하구나. 밤이면 밤마다 그토록 많은 술집들에 술꾼들이 붐비는 것은 술 한 잔의 환락과 젊음, 술 한 잔의 망각과 행복을 사기 위해서다. 헛것을 따라다니다*     김형영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1327    언제면 언어의 규법화가 될런지... 댓글:  조회:7546  추천:0  2015-07-01
        중국조선말(中國朝鮮—)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재중동포 사이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가리킵니다.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랴오닝 성의 이른바 ‘동북 3성’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조하세요.    개요    - 언어 규범  중국조선말에 관한 망라적인 언어 규범은 동북3성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중국어 간체: 东北三省朝鲜语文工作协作小组)가 1977년에 작성한 ‘조선말규범집’이 처음이다. 이 규범집에는 표준발음법,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에 관한 규범이 수록되었다. ‘조선말규범집’은 어휘에 관한 규범을 덧붙이고, 일부를 가필 수정한 개정판이 1984년에 만들어졌다.[1]    중국조선말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의 언어에 규범의 토대를 두어 왔다. 그러한 경위가 있어 중국조선말의 언어 규범은 모두 북한의 규범(조선말규범집 등)과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만약에 이 규범을 가지고 중국조선말의 ‘표준어’를 규정할 수 있다면 그 ‘표준어’는 북한의 문화어에 한없이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중수교 이후에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진출한 기업이나 한국어 교육 기관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남한식 한국어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 지역 차이  현실적으로 조선족 사이에서 사용되는 조선어는 균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 조선족은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걸쳐 조선반도북부를 중심으로 조선반도각지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했다. 일반적으로 함경도 출신자들은 두만강 건너편인 길림성으로 가고, 평안도 출신자들은 압록강 건너편인 료녕성으로 가는 경우 많았기 때문에 길림성에서는 함경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고 료녕성에서는 평안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어의 방언과 각 지역의 관계는 대략 아래와 같다.    동북(함경도) 방언 :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흑룡강성 목단강 시 등. 연변의 두만강 연안 동부 지역은 육진 방언이다.  서북(평안도) 방언 : 료녕성 중부,동부;길림성 남부.  동남(경상도) 방언 :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제외한 길림성 기타 지방, 흑룡강성 서북부와 서남부,료녕성 일부.  중부 방언과 서남(전라도) 방언은 큰 사용 지역이 없고 동북 각성에 산재하고 있다. 중부 방언 지역으로서 길림성 유하현 강가점향 경기둔(吉林省 柳河県 姜家店郷 京畿屯)을 들며, 서남 방언 지역으로서 길림성 교하현 천북향 영진촌(吉林省 蛟河県 天北郷 永進村)을 들 수 있다.[2]제주방언등 다른 방언의지역은 형성되지 않았으나 중국이주1세중에서 가끔 포함되여 있다.    특징  음운, 문법, 어휘 각 분야에 있어서 바탕에 깔린 한국어방언에 따라 지역마다 방언적특징을 가진다.    음운  서남 방언 지역에서는 단모음 [ø](ㅚ)와 [y](ㅟ)를 가지며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ɛ](ㅐ)와 [e](ㅔ)가 구별되지 않는다. 중국조선말은 일반적으로 한반도북부 방언의 영향력이 강하여 일부의 /ㅈ/, /ㅊ/, /ㅉ/이 /ㄷ/, /ㅌ/, /ㄸ/으로 나타나거나 모음 /i/, 반모음 /j/에 앞선 /ㄴ/이 어두에 올 수 있는 등 북부 방언의 특징들을 잘 간직한다.    또 동북 방언,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변별적인 고저 악센트(이른바 ‘성조’)를 가지며 소리의 높낮이로 단어의 뜻을 구별한다.    문법  표준어의 ‘-ㅂ니까/-습니까’가 길림성 화룡시, 훈춘시(둘다 동북 방언 지역)에서 ‘-ㅁ둥/-슴둥’으로 나타나고 흑룡강성 태래현(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ㅁ니꺼/-심니꺼’로 나타나는 등 지역적특징이 있다.    또 통사론 차원에서 중국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전화를 치다 (전화를 걸다) < 중국어 간체: 打电话      어휘  어휘는 중국어의 영향이 아주 크며 적지 않은 어휘가 현대 중국어로부터 차용된다.    중국어 어휘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차용 어휘.    판공실 < 중국어 간체: 办公室 (사무실)  그외의 차음현상: 중국어 발음을 따른 차용어. 성조의 탈락 등 조선어의 음운 체계에 맞춰 중국어 원음이 약간 변형된다.    땐노 < 중국어 간체: 电脑, 병음: diànnăo (컴퓨터)      추천해요1 HouseSoul 답변 고마워요 한국어의 방언인 중국조선말에 대한 모든 것    -중국에 살고 있는 재중동포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한국어 방언의 일종으로, 만주 연변지역과 흑룡강성 남부에서 가장 가까운 방언은 동북 방언이다. 이유는 이 지역 연변 조선족동포 대부분이 함경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 다른 길림성이나 랴오닝성에서는 서북 방언계의 언어를 쓴다. 그리고 원래 조선에서 이주할 때 마을이나 친족 단위로 만주의 시골로 한꺼번에 이주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마을중엔 동네 전체가 서남 방언, 경기 방언, 동남 방언 등 특정지역 사투리를 쓰는 마을이 꽤 많다.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연변에 조선족 자치구가 설치 되었고, 주은래가 총리로 재직 당시 "중국의 조선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문화어를 표준어로 한다"는 조치로 북한의 문화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문화대혁명 당시에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문헌자료들과 문화유산들이 사라졌는데 연변지역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라서 많은 조선어 서적과 사진, 문화자료들이 대거 소실되거나 사라졌다. 당시 조선어로 된 책들 중 마오주의에 관련이 없거나, 한복 사진이 나오거나, 한글로 적은 편지가 나오기만 해도 조선 특무(간첩), 남조선 특무, 지방민족주의자로 몰려서 처벌받거나 조리돌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출처: 연변 문화대혁명, 10년의 약속.)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에는 이전에 사라졌던 책들이 다시 발간되는 등 조선어 서적의 발행량이 크게 늘기도 했다. 한 편으로 북한의 경제가 막장화되어가고, 남한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문법  어휘에선 북한의 문화어에 영향을 받아서 두음법칙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문법적인 면에선 중국어의 영향을 받기도 하다. 예를 들면, '전화를 걸다'를 중국어 打电话에서 유래된 '전화를 치다'하는 형태로 쓴다 하지만 90년대부터 남한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 표준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특히 연변쪽 조선어 티비와 라디어 방송의 아나운서의 발음과 표현이 상당히 한국화 되었다.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게 90년대 이후 한국문화를 접할수있게 되면서 어휘면에서 영향이 많이 받고, 한국에 많이 취업을 하게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조선족동포들이 표준어를 접하게 되었고, 조선문책의 발행량도 수익성문제로 적어지는 바람에 한국서적에 많이 의존 할수밖에 없었다.   
1326    <지렁이> 시모음 댓글:  조회:4766  추천:0  2015-07-01
        지렁이의 일생   한상순·(아동문학가)     한평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좋은 땅 일구느라 수고한 지렁이 죽어서도 선뜻 선행의 끈 놓지 못합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 밭고랑 너머 개미네 집으로 실려 갑니다. 지렁이에게 주는 상장   신현득     너는 흙을 깨물지 않고  온몸으로 주물러서만 일구었느니라.  빗물 스미기 좋게 하고  거름 스미기 좋게 하고  민들레 뿌리 뻗기 좋게 하여  그 그늘에 귀뚜라미 숨어살게 하였느니라.  도꼬마리 씨 떨어지면 싹트기 좋게 하고  온갖 벌레알 잠자기 좋게 하고…….  좋게, 좋게만 하다 보니  총으로 서로 쏘던 사람들도  ―어, 지렁이 보게!  ―지렁이에게 배워야 한다니까!  놀라고 느껴 쏘던 대포도 그리고 해서  좋게만 되었느니라.  네가 발바닥 하나 없이  배밀이로만 기면서 이룬 일이  우리 백두산 높이라, 오늘  인간의 국무총리가 큼직한 도장으로  주는 상장보다도  나무와 햇빛과 흙이 나란히 서서  몇 줄 칭찬을 적어  주느니라.   흙에 생명을 주는 주인공   조춘구     또르륵 또르륵 한여름 밤 고요 속에  풀밭에서  아주 작으나 청량하고 또렷한 소리 그러나 그 소리가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흙의 생명도 잃어간다. 농약과 제초제가 주범이다. 흙이 살아야 인간도 살텐데... 지렁이의 걱정이다.     지렁이와 터널   나호열     시력이 약해지고 있다  끊겨질 길에 대한 불안  감히 뛰어가지도 못한다  너를 통과하는 동안  기쁨은 너무 짧은 마취였다 넝쿨장미가 상처처럼  아득하게 피어났다     지렁이론   오만환·     침묵으로 말한다  드러내지 않는 게 사는 길  꿈틀거린다  꿈틀대도 어쩔 수 없다  고기밥으로 맛있는 지렁이  허리가 잘려도 살아남는 게 지렁이다  암수가 하나  약한 것이 힘  자연스러운 게 지렁이다  눈물 콧물 구정물 섞여서  주변을 기름지게  주면서 사는 게 지렁이다  내버려두세요  사람은 사람, 지렁이는 지렁이  흙내음 맡으며  축축하게 땀 흘리는  지렁 지렁 우리 지렁이  낮은 곳에서  사람들도 지렁이처럼 산다     지렁이   주근옥·     아스팔트 위를  지렁이가 기어가네  비와 자동차 사이로  지렁이   김종익·     억울하게 조사 받은 지렁이  맑은 날 길에 빠져 자살했다 모든 체액을 햇빛에 빨리고  검불이 되는 먼지로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 무죄 주장하는  마지막 저항 나와 지렁이   백석·     내 지렁이는  커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렁이가 되었습니다.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이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렁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렁이의 밤과 집이 부럽습니다 1935년 11월 「朝光」발표   지렁이의 詩   김신용·     그저 온몸으로 꿈틀거릴 뿐, 나의 노동은  머리가 없어 그대 위한 기교는 알지 못한다  구더기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지만  내 땀 다 짜내어도 그대 입힐 눈물  한 방울일 수 없어  햇살 한 잎의 고뇌에도 내 몸은 하얗게 마르고  天刑이듯, 그대 뱉는 침 벗삼아 내 울음  알몸 한 벌 지어 오직 꿈틀거림의 노래를 들려주겠다  이 세상의 모든 빛,  그대 사랑에게 겸허히 잡혀 먹히어 주겠다  나를 지킬 무기는 없어  비록 어둡고 음울한 습지에 숨어 징그러운  몸뚱이끼리 얽혀 산다 해도 어둠은 결코  謫所가 아니다 몸뚱이가 흙을 품고 있는 한  간음처럼, 대지를 품고 있는 한  우리 암수의 성기가  사흘 밤 사흘 낮을 몸 섞는 풍요로운 꿈으로  모든 버려진 것을 사랑하는 몸짓으로  그대의 땅을 은밀히 잉태하고 있는 한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신현정     조금 남은 공한지에 구덩이를 파서 호박씨 묻으려고  흙 한 삽 떠올렸는데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이 이다지 무거운가 하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이 저절로 명랑하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흙 한 삽에 포오란 지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지렁이가 따라 올라오다  아서라 나는 흙 한 삽 도루 내려놓고  구덩이를 포기하다. 지렁이 같은 세상   유일하     핏줄기의 몸으로 울어야했던  죽음의 사투를 난 바라본다. 어이해 갑옷을 벗어던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고뇌하는가! 갑옷 속에서 흐느적거릴 때  따스했던 흙덩이의 사랑은  매몰된 구덩이로 돌변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처참한 생은  하늘의 눈물 때문이었으리라. 개미들의 악착같은 이빨로  붉게 물들어간 너의 삭신. 자연을 정화하고 자연 속을 향해  거룩한 행진을 하고 있구나. 우리의 분신도 그때가 되면 알겠지! 지렁이   정일남       적갈색 고무줄로 된 몸이더라  뼈가 다 녹아 반죽이 되어 고무줄이 된 거지  한 몸에 암수가 같이 껴안고 살아  금실이 너무 잘 다듬어졌다  부부간의 진정한 애무의 전범이다 자네, 지렁이 우는소리 들어봤어?  비닐하우스를 하는 친구가 느닷없이 묻는다  지렁이가 운다고?  아침에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면 공간에  자욱하던 지렁이 울음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진다고 했다  귀가 그렇게 밝은 지렁이  지렁이가 살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다  장마 뒤 공기 구멍을 물이 막으면 지렁이는 땅위로 올라와야 산다  악착같이 살려고 헤매다가 햇볕에 말라죽는다  개미들이 몰려와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달밤에 마당 한쪽에서  풀벌레보다 작은 이상한 소리 들었다  그것이 지렁이의 울음소리가 맞을까  그것이 세상을 원망하는 소리라면 더 들어주었어야 했는데  척추는 없어도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렁이와 나는 사는 방식이 달랐다 어느 날 아스팔트길을 건너려고  지렁이는 온몸이 발이 되어  긴 고무줄을 이끌고 갔다  차량이 줄을 이어 오고 가는 그 길을 · 지렁이의 울음을 누가 들었을까   김정희       소낙비 그친 뒤  수 시간 걸려 아스팔트로 올라왔을 지렁이가  후진하던 자동차에 깔린다 수 초 전까지 살아  꿈틀거리던 그가 금세 한 장의 전개도처럼 펼쳐진다  그때, 누가 들었을까? 그 지렁이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409호 베란다에 사는 비둘기들이 새파랗게 눈독들이는 소리를  비둘기들이 재빨리 내려가 축축한 전개도를 떼어 물고 간다  아스팔트에 복사된 지렁이의 생이 붉은 우표처럼 붙어있다  바로 그 자리에 짐차 한 대 들어선다 지렁이의 서울   김수우     가을장마가 끝난 오후  흙먼지를 뒤집어쓴 지렁이를 본다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저기 저만치 꽃밭이 보인다 벗겨진 살갗을 찌르는 햇살보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더 아찔하다  쥐똥나무가 있는 화단은 턱이 높다 수 미터 아래서는  지하철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날 이후 밤마다  왝왝 토해낸 슬픔들이  모두 흙투성이가 되어 꿈틀거린다  화단은 날마다 가위질로 다듬어지고    
1325    미친 시문학도와 싸구려 커피 댓글:  조회:4514  추천:0  2015-06-30
빗방울 -오규원(1942~2007)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통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때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낮잠을 잘 때다. 파초 잎의 빗소리를 들으며 파초 꿈을 꾼다. 빗방울은 어디에서나 노래하고 춤춘다. 당신은 빗방울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개나리 울타리에서 솝-솝-솝-솝,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서 롭-롭-롭-롭, 무성한 수국 잎에서 톱-톱-톱-톱, 잔디밭에서 홉-홉-홉-홉, 강아지 머리통에서 돕-돕-돕-돕 하고 빗방울들은 실로폰 두드리듯 그것들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귀 밝은 시인 덕분에 들을 수 없는 비의 노래를 듣는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간판이 많다. 4월의 개나리나 전경(全景)보다 더 많다. 더러는 건물이 마빡이나 심장 한가운데 못으로 꽝꽝 박아 놓고 더러는 문이란 문 모두가 간판이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소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도 우리는 간판 밑으로 또는 간판의 두 다리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는 사전에 배치해 놓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마빡에 달린 간판을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들어 우러러보아야 한다. 간판이 있는 곳에는 무슨 일이 있다 좌와 우 앞과 뒤 무수한 간판이 그대를 기다리며 버젓이 가로로 누워서 세로로 서서 지켜보고 있다.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 자세히 보라 간판이 많은 집은 수상하다.       개봉동과 장미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MENU-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드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한잎의 여자(女子) 1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女子), 그 한 잎의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 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女子)를 사랑했네. 여자(女子)만을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女子), 여자(女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女子), 눈물 같은 여자(女子), 슬픔 같은 여자(女子), 병신(病 身) 같은 여자(女子), 시집(詩集) 같은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 는 여자(女子), 그래서 불행한 여자(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女子).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버스정거장에서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새                                                             커튼 한쪽의 쇠고리를 털털털 왼쪽으로 잡아당긴다 세계의 일부가 차단된 다 그 세계의 일부가 방 안의 光度를 가져가버린다 액자속에 담아놓은 세계 의 그림도 명징성을 박탈당한다 내 안이 반쯤 닫힌다 닫힌 커튼의 하복부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다른 한쪽 커튼을 쥐고 있는 내 손이 아직 닫히지 않 고 열려 있는 세계에 노출되어 있다 그 세계에 사는 맞은편의 사람들이 보 이지 않는다 집의 門들이 닫혀 있다 열린 세계의 닫힌 창이 하늘을 내 앞으 로 반사한다 태양이 없는 파란 공간이다 그래도 눈부시다 낯선 새 한 마리 가 울지 않고 다리를 숨기고 그곳에 묻힌다 봉분 없는 하늘이 아름답다       거리의 시간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사내가 간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뒷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의 모가지 하나가 여러 사내 어깨 사이에 끼인다 급히 여자가 자기의 모가지를 남의 몸에 붙인다 두 발짝 가더니 다시 사람들을 비키며 제자리에 붙인다 감동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한 여자의 핸드백과 한 여자의 아랫도리 사이 하얀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주전자가 올라붙는다 마리아의 한쪽 가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놀란 여자 하나 그 자리에 멈춘다 아스팔트가 꿈틀한다 꾹꾹 아스팔트를 제압하며 승용차가 간다 또 한 대 두 대의 트럭이 이런 사내와 저런 여자들을 썩썩 뭉개며 간다 사내와 여자들이 뭉개지며 감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는 시간을 따로 잘라내어 만든다       빈자리가 필요하다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空想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사랑의 감옥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엄마는 털옷을 하나씩 골라 손으로 뺨으로 문질러보면서 그것 하나로 추운 세상 안으로 따뜻하게 세상 하나 감추려 한단다 뱃속의 아이야 아직도 엄마는 옷을 골라잡지 못하고 얼굴에는 땀이 배어나오고 있단다 털옷으로 어찌 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있다고 엄마가 믿겠느냐 그러나 엄마는 털옷 안의 털옷 안의 집으로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리라만         이 시대의 순수시                                    자유에 관해서라면 나는 칸트주의자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로의 자유를 방 해하 지 않는 한도 안에서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 기 위해 남몰래(이 점이 중요합니다.)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법은 나는 사 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이렇게 자유를 사랑하므로, 세상의 모든 자유도 나의 품 속에서 나를 사랑 합니다. 사랑으로 얻은 나의 자유. 나는 사랑을 많이 했으므로 참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택복권을 사는 자유, 주택복권에 미래를 거는 자유, 금주의 운세를 믿는 자유, 운세가 나쁘면 안 믿는 자유, 사기를 치고는 술 먹는 자유, 술 먹고 웃어 버리는 자유, 오입하고 빨리 잊어 버리 는 자유.  나의 사랑스런 자유는 종류도 많습니다. 걸어다니는 자유, 앉아다니는 자 유(택시 타고 말입니다). 월급 도둑질 상사들 모르게 하는 자유, 들키면 뒤 에서 욕질하 는 자유, 술로 적당히 하는 자유, 지각 안하고 출세 좀 해볼까 하고 봉급 봉투 털 어 기세 좋게 택시 타고 출근하는 자유, 찰칵찰칵 택시 요금이 오를 때마다 택시 탄 것을 후회하는 자유,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남 은 몇 개의 동전으로 늠름하게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이 세상은 나의 자유투성이입니다. 사랑이란 말을 팔아서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자유, 시대라는 말을 팔아서 여대생의 옷을 벗기는 자유, 꿈을 팔아 서 편안을 사 는 자유, 편한 것이 좋아 편한 것을 좋아하는 자유, 쓴 것보다 달콤한 게 역시 달 콤한 자유, 쓴 것도 커피 정도면 알맞게 맛있는 맛의 자 유.   세상에는 사랑스런 자유가 참 많습니다. 당신도 혹 자유를 사랑하신다면 좀 드 릴 수는 있습니다만.   밖에는 비가 옵니다.   시대의 순수시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우리의 장난, 우리의 언어가 음흉하게 불순해지듯  저 음흉함이 드러나는 의미의 미망(미망), 무의미한 순결의 뭄뚱이, 비의 몸뚱이들……  조심하시기를  무식하지도 못한 저 수많은 순결의 몸뚱이들.        호수와 나무                                              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 어망에 넣고 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 기다리는 한 사내와 귀는 접고 눈은 뜨고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개 한 마리 물가에 앉아 있다   사내는 턱을 허공에 박고 개는 사내의 그림자에 코를 박고   건너편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는 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         하늘과 두께                                               투명한 햇살 창창 떨어지는 봄날 새 한 마리 햇살에 찔리며 붉나무에 앉아 있더니 허공을 힘차게 위로 위로 솟구치더니 하늘을 열고 들어가 뚫고 들어가 그곳에서 파랗게 하늘이 되었습니다 오늘 생긴 하늘의 또다른 두께가 되었습니다  허공과 구멍                                               나무가 있으면 허공은 나무가 됩니다  나무에 새가 와 앉으면 허공은 새가 앉은 나무가 됩니다  새가 날아가면 새가 앉았던 가지만 흔들리는 나무가 됩니다  새가 혼자 날면 허공은 새가 됩니다 새의 속도가 됩니다.  새가 지붕에 앉으면 새의 속도의 끝이 됩니다 허공은 새가 앉은 지붕이 됩 니다  지붕 밑의 거미가 됩니다 거미줄에 날개 한쪽만 남은 잠자리가 됩니다  지붕 밑에 창이 있으면 허공은 창이 있는 집이 됩니다  방 안에 침대가 있으면 허공은 침대가 됩니다  침대 위에 남녀가 껴안고 있으면 껴안고 있는 남녀의 입술이 되고 가슴이 되고 사타구니가 됩니다  여자의 발가락이 되고 발톱이 되고 남자의 발바닥이 됩니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탈한 나사못이 되고 침대 바퀴에 깔린 꼬불꼬불한 음모 가 됩니다  침대 위의 벽에 시계가 있으면 시계가 되고 멈춘 시계의 시간이 되기도 합 니다  사람이 죽으면 허공은 사람이 되지 않고 시체가 됩니다  시체가 되어 들어갈 관이 되고 뚜껑이 꽝 닫히는 소리가 되고 땅속이 되고 땅속에 묻혀서는 봉분이 됩니다  인부들이 일손을 털고 돌아가면 허공은 돌아가는 인부가 되어 뿔뿔이 흩어 집니다  상주가 봉분을 떠나면 모지를 떠나는 상주가 됩니다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페트병과 신문지와 누구의 주머니에서 잘못 나온 구겨진 천원짜리와 부서진 각목과 함께 비로소 혼자만의 오롯한 봉분이 됩 니다  얼마 후 새로 생긴 봉분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달라져 잠시 놀라는 뱀이 됩니다  뱀이 두리번거리며 봉분을 돌아서 돌틈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사라지면 허 공은 어두운 구멍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 앞에서 발을 멈춘 빛이 됩니다  어두운 구멍을 가까운 나무 위에서 보고 있는 새가 됩니다.  강과 둑                                                    강과 둑 사이 강의 물과 둑의 길 사이 강의 물과 강의 물소리 사이 그림자 를 내려놓고 서 있는 미루나무와 미루나무의 그림자를 몸에 붙이고 누워있 는 둑 사이 미루나무에 붙어서 강으로 가는 길을 보고 있는 한 사내와 강물 을 밟고서 강 건너의 길을 보고 있는 망아지 사이 망아지와 낭미초 사이 낭 미초와 들찔레 사이 들찔레 위의 허공과 물 위의 허공 사이 그림자가 먼저 가 있는 강 건너를 향해 퍼득퍼득 날고 있는 새 두 마리와 허덕허덕 강을 건 너오는 나비 한 마리 사이         
1324    체 게바라 시모음 댓글:  조회:4713  추천:0  2015-06-28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1967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칭송한 바 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게릴라 혁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2002년 겨울 한국의 독자들 앞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깊은 서정을 품은 시인’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선조 때부터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교양 있는 어머니 셀리아 데 라 세르나의 영향을 크게 받아 9살 경부터 소포클레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했고 잭 런던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귀를 암송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의대에 들어가 졸업한 후,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접하고는 수많은 번민과 고뇌 속에서 결국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펼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민중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이자 결심이었다.  그 후 체 게바라는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로서 혁명운동에 동참하게 되는 데, 목숨을 내 건 게릴라 전투 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괴테, 보들레르, 모택동, 랭보와 네루다, 마르크스, 레닌 등의 책이 떠나질 않았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기록과 그 기록 곳곳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詩) 같은 글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역사와 민중에 대한 체 게바라의 인식은 치열했으며, 사물에 대한 깊은 의식과 인간애에 대한 서정은 뜨거웠다. 쿠바 혁명 성공 후 체 게바라는 눈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콩고와 볼리비아로 건너가 다시 게릴라 복을 입고 혁명운동을 주도한다.   이로써, 혁명 후 권력을 분배하여 또 다른 통치자의 권좌에 선 혁명 지도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그는 위대한 혁명적 순수성을 지켜 간다.   아내와 자식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은 채, 쿠바의 권력도 모두 다 돌려준 채, 체 게바라는 자신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볼리비아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어 39살의 생을 마감한다.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체 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절망    대원들은 모두 물이 부족해 자기 오줌을 받아마셨다  동굴 속에 감춰둔 비상식량과 의약품도 다 발각되었다  사살된 다른 부대원들의 시체들이 강물 위로 떠내려왔다  돌아가는 정세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도 가끔씩 사냥을 하며 밀림 속을 배회할 뿐이었다  난 더욱 악화된 천식발작으로 말꼬리를 붙잡고 행군해야 했다  게다가 불시에 극심한 호흡장애까지 일을켜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원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 가슴을 힘껏 쳐야 숨통이 트였다  숨통이 트이면 이번엔 또 복통이 찾아와 바닥을 기었다  대원들도 모두 영양실조와 병에다가 전의마저도 상실한 듯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부지할 마지막 기회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생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나 때문에 언제나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언제쯤이면, 꽃처럼 환하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이틀 내내  이빨이 아픈 대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오후에 출발해 1시간 정도 행군했다 이 전투에서 나는 처음으로 노새를 탔다 여기는  해발 1,200미터 생각만큼 밤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의약품이 또 부족하다 피를 토할 듯 밤새도록 기침을 했다 잠은 별빛처럼 쏟아지는데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시계 오늘은 우울하고 슬픈 날이다 총알이 뚜마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나는 지난날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었던  한 동지를 잃었다 모진 고난 속에서도 그는 나에게 늘 진실했었다 지금도 내 자식을 잃은 듯한 심정이다 그는 죽을 때  곁에 있던 동지들에게 나에게 자기 시계를 주라고 부탁하였다 그 말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시신을 말에 태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땅속에 묻고 돌아왔다 나는  이 전투 중에도 항상 그의 시계를 차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그의 아들에게 꼭 전해주리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먼 저편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가자 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의 선지자들이여 감춰지고 버려진 외딴길을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민을 해방시키러   가자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는 자, 정복자들아 분연히 봉기하여 마르티의 별들이 되어 승리를 다짐하며 죽음을 불사하나니,   세상 모든 처녀림에 동요를 일으키는 총성의 첫발이 울려퍼질 때 그대의 곁에서 싸우니 우리 그 곳에 있으리  토지개혁, 정의, 빵, 자유를 외치는 그대의 목소리, 사방에 울려 퍼질때 우리 그대 곁에 남으리 최후의 전투를 기다리며   압제에 항거하는 의로운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대 곁에서 최후의 싸움을 기다리며 우리 그곳에 있으리   국유화라는 화살로 상처 입은 야수가 옆구리 핥게 되는 날 그대와 함께 강건한 심장으로 우리 그 곳에 있으리   선심으로 치장한 압제자들도 우리의 강건함을 약화시킬 수는 없으리   우리가 바라는 건 총과 탄약, 그리고 몸을 숨길 수 있는 계곡 더 이상 바랄 것 없네   아무리 험한 불길이 우리의 여정을 가로 막아도 단지 우리에겐 아메리카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진 게릴라들의 뼈를 감싸줄 쿠바인의 눈물로 지은 수의 한 벌뿐      
1323    파블로 네루다 시모음 댓글:  조회:4634  추천:0  2015-06-28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슾른 시를 쓸 수 있네.     예를 들면 밤하늘을 가득 채운 파랗고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에 대하여 하늘을 휘감고 노래하는 밤바람에 대해서.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 때 있었네.  이런 밤에, 나는 그녀를 내 팔에 안았네.  무한한 밤하늘 아래 그녀에게 무수히 키스했었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 때 있었네.  그녀의 크고 조용한 눈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밤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더이상 그녀가 곁에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며 내가 그녀를 잃은 것을 느끼며   거대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거대한  그리고 시는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처럼 영혼으로 떨어지네.   내 사랑을 지키지 못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찼어도 그녀는 나와 함께 있지 못한데.   그게 다야. 멀리 누군가 노래하는 멀리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없어.  그녀를 내 곁에 데리고 올 것처럼 내 눈은 그녀를 찾아 헤매지.   내 심장도 그녀를 찾아 헤매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지.  똑같은 나무를 더욱 희게 만드는 그날 같은 밤   우리 예전의 우리 우리는 더이상 같지 않지.  나 역시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예전에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목소리는 바람 속을 헤매다가 그녀의 귀를 매만질 수 있겠지.  누군가 다른 사람을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랑이겠지.  예전에 그녀가 나의 사랑이였던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가벼운 육체 그녀의 무한한 눈동자   나는 그녀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해.  사랑은 짧게 지속되고 망각은 먼 것이니.  이런 밤에 내가 그녀를 내 팔에 안았던 것처럼.  내 영혼은 그녀 없이는 더 이상 없네.   어쩌면 이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고통일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녀를 위해 쓰는 마지막 시일지라도...             충만한 힘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버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 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건축가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오랜 숙련이 꿈들을 분할한 게 사실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채 벽들, 분리된 장소들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닷가로 갔다.   나는 조선의 처음을 보았고, 신성한 물고기처럼 매끄러운 그걸 만져보았다- 그건 천상의 하프처럼 떨었고, 목공작업은 깨끗했으며,   꿀 향기를 갖고 있었다. 그 향기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그 배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물 속에 익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별처럼 벌거벗은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돌아갔고.   내 믿음은 그 배들 속에 있다.   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작별들     안녕, 안녕, 한 곳에게 또는 다른 곳에게, 모든 입에게, 모든 슬픔에게, 무례한 달에게, 날들로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사라지는 주週들에게, 이 목소리와 적자색으로 물든 저 목소리에 안녕, 늘 쓰는 침대와 접시에게 안녕, 모든 작별들의 어슴푸레한 무대에게, 그 희미함의 일부인 의자에게, 내 구두가 만든 길에게.   나는 나를 펼친다,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전 생애를 숙고한다, 달라진 피부, 램프들, 그리고 증오들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규칙이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고 일련의 반작용하고도 다르다; 새로운 여행은 매번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장소를, 모든 장소들을 즐겼다.   그리고, 도착하자 또 즉시 새로 생긴 다감함으로 작별을 고했다 마치 빵이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달아나듯이. 그리하여 나는 모든 언어들을 뒤에 남겼고, 오래된 문처럼 작별을 되풀이했으며, 영화관과 이유들과 무덤들을 바꾸었고, 어떤 다른 곳으로 가려고 모든 곳을 떠났다; 나는 존재하기를 계속했고, 그리고 항상 기쁨으로 반쯤 황폐해 있었다, 슬픔들 속의 신랑, 어떻게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돌아가지 않은.   돌아가는 사람은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을 밟고 되밟았으며, 옷과 행성을 바꾸고, 점점 동행에 익숙해지고, 유배의 큰 회오리바람에, 종소리의 크나큰 고독에 익숙해졌다.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나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 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물     지상의 모든 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가시나무는 찔렀고 초록 줄기는 갉아먹혔으며, 잎은 떨어졌다, 낙하 자체가 유일한 꽃일 때까지, 물은 또다른 일이다, 그건 그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 외에 방향이 없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 속을 흐르며, 돌에서 명쾌한 교훈을 얻고, 그런 노릇들 속에서 거품의 실현되지 않은 야망을 이루어낸다.       그건 태어난다   여기 바로 끝에 나는 왔다 그 무엇도 도대체 말할 필요가 없는 곳, 모든 게 날씨와 바다를 익혔고 달은 다시 돌아왔으며, 그 빛은 온통 은빛, 그리고 어둠은 부서지는 파도에 되풀이하여 부서지고, 바다의 발코니의 나날, 날개는 열리고, 불은 태어나고, 그리고 모든 게 아침처럼 또 푸르르다.         탑에서     이 장엄한 탑에는 투쟁이 없다. 안개, 공기, 날이 그걸 둘러쌌고 떠났으며 나는 하늘과 종이와 더불어 머물렀다, 고독한 기쁨과 부채와 함께. 증오가 있는 지상의 투명한 탑 그리고 하늘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먼 바다. 그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가, 그 단어에는? 내가 말했던가?   이슬의 불안은 아름다워라- 그건 아침에 떨어진다 새벽에서 밤을 분리하며 그리고 그 차가운 선물은 불확실하게 매달려 있다 강렬한 태양이 그걸 죽게 하기를 기다리며,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밤이 우리 속에서 별 박힌 눈을 뜨는 건지, 어떤 문이 열릴 때까지 그게 우리 꿈의 벽에 구멍을 파는 건지. 그러나 꿈은 한순간의 휙 지나가는 의복일 뿐, 어둠의 한 번의 고동 속에 소모되고, 우리 발 앞에 떨어져, 벗어던진다 날이 움직여 우리와 함께 출범할 때. 이게 거기서 내가 내려다보는 탑이다, 빛과 말수가 적은 물 사이, 칼을 지닌 시간, 그러고 나서 나는 살기 위해 서두른다, 나는 온 공기를 마시고 도시에 들어찬 불모의 빌딩들에 간담이 서늘하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혼잣말을 한다, 높은 곳들의 침묵에서 한 잎씩 떼어내며.              시인의 의무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문을 연다, 희미하나 뚜렷한 동요가 시작되고, 천둥의 긴 우르릉 소리가 이 행성의 무게와 거품에 스스로를 더하며,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별은 그 광관光冠 속에서 급속히 진동하며,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그들이 가을의 선고로 고통받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 하고 두 눈은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말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여전히, 여전히 그건 왔다 죽은 아버지들과 유랑하는 종족들에서, 돌이 된 땅들에서, 그 가난한 부족들로 지친 땅, 슬픔이 길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로운 땅과 물에 도착하고 결혼하여 그들의 말을 다시 키웠느니. 그리하여 이것이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를 죽은 사람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들을 연결하는 대기大氣   대기는 아직 공포와 한숨을 차려입은 처음 말해진 말로 떨린다. 그건 어둠에서 솟아났고 지금까지 어떤 천둥도 그 말, 처음 말해진 그 말의 철鐵 같은 목소리 와 함께 우르렁거리지 못했다- 그건 다만 하나의 잔물결,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 모르나 그 큰 폭포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러다가, 말은 의미로 채워진다. 언제나 아이와 함께, 그건 생명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이다- 긍정, 명확성, 힘, 부정, 파괴, 죽음-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한다.   인간의 말, 음절, 퍼지는 빛의 측면과 순은세공, 피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물려받은 술잔- 여기서 침묵은 인간의 말의 온전함과 함께한다, 인간에게, 말하지 않는 건 죽는 것이니- 언어는 머리카락에까지 미치며, 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고, 문득, 눈은 말이다.   나는 말을 취해서 그걸 내 감각들을 통해 보낸다 마치 그게 인간의 형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것의 배열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나는 말해진 말의 울림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말하고 그리고 나는 존재하며 또한, 말없이, 말들의 침묵 자체의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며 접근한다.   나는 한마디 말이나 빛나는 잔을 들어올리며 말과 건배한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언어의 순수한 포도주나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잔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파블로 네루다 /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과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인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젊음 -파블로 네루다(1904~73)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냄새,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性的) 과일, (…)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 때.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은 오직 젊은이들의 몫이다. “달콤한 성적 과일”을 딸 수 있는 것도 이들의 권리다. 젊은이들은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 데를 선호하는데, 키스하기 좋고 성적 과일을 따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 젊은이들이여, 망설이지 마라. 붉고 탐스러운 자두를 깨물 듯 젊음을 깨물고 그 달콤한 과즙을 마셔라. 젊음이 지난 뒤 그 설탕 같은 키스들과 환락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오리니, 야생 초록의 골짜기이고, 뒤집은 램프같이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 때”를 만끽하라! 어차피 노력 없이 얻은 젊음이란 지불 유예된 ‘노년’일 테니까!
1322    현대사진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댓글:  조회:2941  추천:0  2015-06-28
현대사진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현대사진의 강한 조류는 포스트모더니즘 테두리의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근대적 예술적 감각이 모더니즘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보수성 절대성을 거부한 다양한 실험적 문화운동입니다.  그럼 덩어리가 큰 문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공부해 보시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부연설명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 ·건축 ·무용 ·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모더니즘이란?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  부연설명 :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 아트(modern art)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前衛藝術: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  한국 문학에서는 1931년경 프로문학의 퇴장과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대두를 계기로 나타났으며, 일명 주지주의라고 일컬었다. 김기림(金起林)이 시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시작(詩作) 자체의 의식성을 강조하는 시의 기술주의(技術主義)를 주장하면서 형태화하였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시운동을 벌였으며, 그 특징은  ① 정서적 우세에서 지성적 우세로,  ② 현실에 대한 초월적 태도에 대하여 비판적 적극성을,  ③ 청각적 요소에 대하여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소설에서는 1934년 최재서(崔載瑞)가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고, 실제로 이상(李箱)의 작품을 중심으로 심리주의적 경향을 비평하면서 전개되었다.  '포스트모던한 전망 속의 다원주의(이합 핫산, 1987 발행)'에서 밝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 8 가지  ① 불확실성(Indeterminacy)  경제학자 갈브레드가 2차 대전 이후의 서구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지은 것처럼과학분야에서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실성의 원리」, 토마스 쿤(Thomas S. Khun)의 「패러다임」, 폴회이에르 벤드의 「과학의 다다이즘」등이 대두되면서 사회 각분야에서 상대주의적이고 불확정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사업이자 무정부주의는 법과 질서의 대안보다 훨씬 인도적이며 발전을 고무시켜 준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변화와 실험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영역에서조차도 즐거운 실험을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 다다이스트"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유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이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단편화(Fragment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인식론적 종합을 거부하고 총체성을 오명으로 여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유명한 글의 결론 부분에서 "총체성에 선전 포고를 하자.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증인이 되자, 차이를 활성화하여 차이의 명예를 구해내자"고 주장한다. 확신, 차이, 변증의 시대가 되며 몽따지 수법, 꼴라쥬 등의 기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유와 환유가 중요시되고 역설, 배리, 병렬결합이 자주 등장하는 정신분석적 시대가 도래한다.  ③ 탈 경전화(Decanonization)  리오타르는 현대사회를 지배담론(Masternarrative)의 탈 권위와 붕괴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그 대신 소수의 담화이며 언어게임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소설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 체계인 진리, 주체, 초월적 이성 등을 거부하고 규범과 경전에 대한 도전은 엘리트주의, 남성 우선주의를 부인할 뿐 아니라 대중의 참여와 비평을 유도하며, 대중문화, 여성문화, 민중미술, 제3세계의 예술, 소수민족 예술, 노동자 예술,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대중 예술이 주류를 이루게 한다.  ④ 재현 불가능성(Unrepresentability)  장르가 붕괴되고 혼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모방을 거부하고 예술의 한계를 추구하며 소모를 즐기고 침묵 속에 존재하면서 예술고유의 재현(Representation)양식을 문제시하여 반리얼리즘의 성격을 가른다. 리오타르는 동시의 상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적인 종합적 분석대신 구대 불가사이를 인정한 칸트의 '숭고미(Sublime)'의 개념을 증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대 기술 문화의 무형태성, 공해, 절대 등의 본질은 본질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들이 주는 위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⑤ 혼성모방(Hybridization)  풍자적, 조롱적 모방, 우스운 모방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르의식의 붕괴와 혼합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다원적이고 확산적이며 논리를 무시하는 유동적인 현상황에 맞추기 위한 전략으로 문학에서는 '뉴 리얼리즘', '논픽션 소설'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에 대한 다른 개념을 보완하다. 지속과 단절, 고급 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고 현재 속에서 과거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확장시키게 된다. 다원적인 현재 속에서 모든 형식들은 현재와 현재가 아닌 것,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동시성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공간 상호성 즉 병렬적, 수평적, 평등적 공간의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도 얻게 된다.  ⑥ 대중주의(Populism)  고급문화와 본격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이 역력히 드러나며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마르쉘 뒤상의 기성풍 이론은 예술의 기존 관념을 깬 것으로 '이미 만들어진' 즉 주변의 흔한 대상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였고 앤디워홀은 스프깡통, 브릴로 상자, 슈퍼맨 만화 등 대중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혼합 모방기법을 연출하였다. 또한 화가인 라우센버그에게서 재미있는 것은 도시의 상업적인 추함에 영원성과 자연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는 도시 일상의 재료들을 즐겁게, 그리고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에게는 도시의 추한 면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⑦ 행위(Performance)와 참여(Participation)  포스트모더니즘은 직접 행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며 행위로 연출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행위를 통하여 시간, 공간, 또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완성된다. 요즈음은 예술의 여러 가지 경향을 관통하는 인식들은 '놀이'라는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엄격한 통제와 인간관계의 틀을 버리고 우연의 작용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에서도 구도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존재하고 의미하기보다는 작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⑧ 보편내재성(Immensity)  앞서 지적한 불확실성의 분산은 거대한 확산을 이룬다. 보편 재재성의 경향은 율동, 상호작용, 의사소통, 상호의존, 상호침투 등의 잡다한 개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념들 속에서 가치관의 세계화, 보편화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이미 아놀드 토인비의 영혼화, 어비 다드로즈의 개념화, 빅 인스트홀러의 무상화, 칼 마르크스의 역사화 한 자연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상징을 통해 인간의 정신자체를 일반화하려는 정신적인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간은 새로운 통신수단과 전자매체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끊임없는 확장을 경험한다.  사진. 장   소 - 서울 강변북로,          제   목 - 시간          촬영자 - 이형묵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말입니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됩니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냅니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습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합니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입니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합니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습니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1321    愛... 댓글:  조회:5738  추천:0  2015-06-28
오픈지식 [ 2015년 07월 06일 11시 05분 ]     [ 2015년 07월 01일 07시 56분 ]  
1320    논밭 그림 그리기 댓글:  조회:5895  추천:0  2015-06-27
        하룻밤만에 매우 크고 기하학적인 그림이 논에 그려지는 불가사의한 미스테리서클..   아직 원인을 알 수 없다하고 외계인의 소행이라는등 추측만 무성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호랑이 모양의 미스테리 서클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무슨일 일까요 ?????                   달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역동적인 모습이 멋지네요 !!  하지만 일반 미스테리서클과는 다른 느낌이죠?     사실 미스테리서클이 아니라 우리 농민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ㅎㅎ     늠름하고 멋진 호랑이 논그림은 괴산 문광면 양곡리 양곡저수지 아래에 무려 가로 50m, 세로 60m 크기로 만들어졌답니다.     친환경 세계화를 향한 역동적인 괴산군을 표현했다고 하네요                     이 논그림을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단순히 물감으로 칠한 것일까요?           바로, 꽃처럼 벼에 색이있는 "유색벼"라고 합니다.    왼쪽은 황도(노란색벼)이고 오른쪽은 자도(흑색벼)                       자주색, 황색, 붉은색, 흰색, 초록색 등 다섯 색상의 유색벼로 논그림을 만들었다고 해요 ^-^     유색벼로 만든 다른 논그림들도 살펴볼까요                  이번엔 풍물놀이의 상모돌리기 모습 논그림입니다.             이곳까지 풍악소리가 들리는듯 신명나는 논그림이네요 ^^           논그림의 묘미는 벼가 자라는 과정에 따라 그림도 서서히 변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익지않은 벼그림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죠?                                농악놀이 논그림.                   이번엔 널뛰기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야! 뜨네 라고 써놓은것이 참 재미있네요 ㅎㅎ     이 논그림은 감물면 백양리 이담저수지 아래에 가로 200m, 세로 150m 로 그려졌답니다.   호랑이 논그림보다 무려 3배는 더 크죠~        이 보기만해도 행복한 논그림은 풍요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                   논그림은 5월말부터 6월말까지 한달동안 200여명을 동원하여 그림 도안, 밑그림그리기, 유색벼 손모내기를 했다고 합니다.   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논밭의 예술품 이네요~     8월에는 논그림 사진촬영대회 를, 추수기에는 유색벼베기 체험행사를 연다고 하니  멋진 논그림을 보러 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논밭 아트」는 각기 다른 벼의 품종을 이용하여 논밭에 그림을 그리는 대규모 아트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죠. 최근엔 확인된 곳만도 일본 전국에서 137곳이며 주로 도후쿠지방을 중심으로 논밭 아트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논밭 아트」를 보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위에서 보는 방법 평평한 지상에서 보면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계단식 논이나 다리 위 또는 전망대에서 보면 그다지 왜곡되지 않고 확실히 보입니다. ■보는 시점을 고정하고 보는 방법(원근법) 정확히는 전망대 위에 있는 한 점에서 볼 때 그림을 왜곡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실제로는 논밭의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모내기를 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두가지 방법 모두 설계한 것 처럼 모내기를 하기가 힘든 일입니다. 모내기 면적의 규모가 커지고 그림이 정밀해 짐에 따라 난이도도 따라서 올라갑니다.  고대미의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등의 각각의 색상의 잎이나 이삭을 사용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는 것으로 착색제나 화학약품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니 놀랍네요.  최근 「논밭 아트」는 전국에 알려져 관광목적의 버스투어가 펼쳐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있다고 합니다.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무라는 매년 10만명에서 2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합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1319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시모음 댓글:  조회:5123  추천:0  2015-06-27
[ 2015년 07월 01일 08시 05분 ]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팔이 없는 비행기 조종사 - '제시카 콕스(Jessica Cox)' ,     + 詩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生과 견주어보아도  詩는 삶의 蛇足에 불과하네  허나,  뱀의 발로 사람의 마음을 그리니  詩는 사족인 만큼 아름답네  (함민복·시인, 1962-) + 시의 근육 시의 근육은 먹이를 쫓는 사자의 근육보다는 죽음과 경주하는 사슴의 근육이다. 아니 그보다는 사슴에게 꼼짝없이 먹히지만 어느새 초원을 뒤덮어버리는 풀이 시의 근육이다 (채호기·시인, 1957-) +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천양희·시인, 1942-) + 불쌍하도다 詩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시인, 1939-) +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 한다  시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정희성·시인, 1945-) + 시(詩)는 이슬이야 시란 하늘과 땅이 뿜어낸 이슬이지 시는 이슬을 먹고  이슬을 말하고 이슬을 숨쉬며 살지 저 수평선에서 이슬을 느낄 때 그건 시를 느끼는 거야 한라산도 시가 되고 외돌개도 시가 되는 것은 그곳에 이슬이 살기 때문이야 별도 이슬이고  달도 이슬이고 달팽이도 이슬이지. 달팽이는 가난해 보여 날 때부터 짊어지고 다니는 가난이 처량해 보여 나도 이슬이 되고 싶어 달팽이처럼 배낭을 메고 다니는 이슬 (이생진·시인, 1929-) + 위안 시를 쓴다는 건 하늘에다 무지개를 그리는 일이다 고단한 일상의 삶에 지쳐 하늘을 보지 못하는 이에게 아직 하늘을 볼 만한 무엇이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 너무 많은 욕심으로 무지개마저 차지하려는 이에게 그것이 오히려 허상이라고 지워 버리기도 한다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에 물방울을 뿌려 무지개를 만들어 하늘로 올리는 시 시인은 그런 시를 쓰고 있다 (서정윤·시인, 1957-) + 거룩한 허기  피네스테레*,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은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못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운다  (전동균·시인, 1962-) * 스페인 서쪽 끝 바닷가 마을 + 시 읽는 시간 시는 녹색 대문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낸다 시는 맑은 영혼을 담은 풀벌레 소리를 낸다 누구의 생인들 한 편의 시 아닌 사람 있으랴 그가 걸어온 길 그가 든 수저소리 그가 열었던 창의 커튼 그가 만졌던 생각들이 실타래 실타래로 모여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된다 누가 시를 읽으며 내일을 근심하랴 누가 시를 읽으며 적금통장을 생각하랴 첫 구절에서는 풀피리 소리 둘째 구절에서는 동요 한 구절 마지막 구절에서는 교향곡으로 넘실대는 싯발들 행마다 영혼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들 나를 적시고 너를 적시는 초록 위를 뛰어다니는 이슬방울들 (이기철·시인, 1943-)  + 시의 경제학 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안 어디 없나요   (정다혜·시인, 1955-) + 가두의 시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 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먹는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송경동·시인, 1967-) + 착한 詩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정일근·시인, 1958-)
1318    퍼포먼스 = 행위예술 댓글:  조회:5373  추천:0  2015-06-26
              광고도 예술, 시. 흔히 퍼포먼스를 행위예술 [行爲藝術, performance]이라 합니다.      ->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행위.    실행 ·연기 ·연주 등의 어학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회화 ·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합니다. 신체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신체예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과정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해프닝 ·이벤트 등으로 불렸으나 점차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욕망을 연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로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그 전조를 미래주의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해프닝의 선구적 사례로서 1954년 J.케이지가 가졌던 《4분 33초》란 전위음악연주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연주회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의 소음을 채집하는 것으로 끝난 행사로서 그가 1962년에 나타나는 ‘플럭서스(Fuluxus)’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습니다. 해프닝은 연극의 형태로서 극장보다는 야외나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시연되며, 미리 기획된 연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는데, 1959년에 시도된 A.카프로의 해프닝이 이러한 예술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Y.클라인은 1960년 《인체측정술》이란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고 197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행위예술을 시도하여 이제 행위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최초의 해프닝이 시도되었고, 1970년에 김구림(金丘林)이 한강변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이벤트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정찬승 ·정강자 ·이건용 등의 미술가와 무세중(巫世衆) 등의 행위예술가에 의해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발표되었으며 초기에 해프닝 ·이벤트 등의 용어로 시도되던 퍼포먼스는 90년대 들어 탈장르현상과 맞물려 주로 젊은 작가들에 의해 빈번하게 시연(試演)되는 추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317    38의 영탄조 댓글:  조회:1613  추천:0  2015-06-26
      38의 영탄조(詠嘆弔)                                           백두산 세상 1번지 산천어 999 쫑- 쫑- 에 와 닿고...   한라산 세상 1번지 고등어 999 쏭- 쏭- 에 와 닿고...   두 세상 1번지 권커니작커니 산천어매운탕 얼쑤~ 간고등어구이 절쑤~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그 정다운 맛,- 그 성스러운 멋,- 새하야니 새하야니 한누리 너머너머 끝 없 으련만...   후유,ㅡ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만 가고 그리고, 저기 저 녹쓸어가는 쇠붙이를 또 서로서로 맞대고 들어야만 하는...        
1316    과녁 댓글:  조회:1426  추천:0  2015-06-26
[ 2015년 12월 10일 09시 39분 ]     로씨야 한 사냥군 500여키로 달하는 멧돼지 사냥.                                                               과 녁                                                          밝음과    숨김과                                          어둠과                  잊음과                                       善과                           거짖과                                      惡과              @             헛걸음과                                                 葉과                            잃음과                                          根과                      >                                                                      앵-- 앵-- 싸이렌 향음과                                              잉-- 잉-- 미사일 맛과                                                          그                                                          찰                                                          나                                                          의                                                          찰                                                          나                                                          의                                                       ㅡ前,ㅡ                      ㄹ ㅗ ㄱ, ㅅ ㅐ ㄱ, ㅍ ㅕ ㅇ, ㅎ ㅗ ㅏ,        
1315    詩詩한 詩 댓글:  조회:1735  추천:0  2015-06-26
                                                                                                                                 始.時.市.施.                                                                示.是.視.試.                                                                侍.矢.媤.柴.                                                                屍.猜.嘶.弑.                                                                匙.尸.翅.蓍.                                                                蒔.恃.諡.豺.                                                                枾.屎.詩.始                                                                                                                                 ...                                                                      ...                                                                    ...                 =ㅡ
1314    그림자 댓글:  조회:1410  추천:0  2015-06-26
                그림자                                                         호                                           어느 날,-  ㄹ                                                                                              호롱불이 죽고... ㅗ                                                  롱                                                                ㄱ                                                                                        또,                         ㅅ                                                                                   그 어느 어느 날,-           ㅐ                                             불~                           그 호롱불의 그림자도 죽고... ㄱ                                             그리고 또,                                                             ㅍ                                    ...어느 어느 어느 날,-                                                     ㅕ                                                                                                          호                그 호롱불의 그림자의 그림자의 ...   ㅇ                                                       롱                                                              ㅎ                                                                                   그리웠쑤예...                 ㅗ                                                              불~                               그 어느 날,-   ㅏ  
1313    혈과 루 댓글:  조회:1457  추천:0  2015-06-26
(논밭 3D그림)                                                                                       穴 과 樓                                      그            갈무리           저              오늘도           또                                언덕빼기에    커다랗게     재 너머로       새하야니      황혼위    파아랗게                                맥              우               곰                우               생          우                                맥              렷               곰                렷               생          렷                                히              이               히                이               히          이                                                                        치              떠               묵                떠               쿡          떠                                솟              오               상                오               쿡          오                                는              르               하                르               찌          르                                곧              는               며                는               르          는                                고              내               꿈                내               려        고향ㅡ                                 곧              고               꾸                고               하          영                                   은              향               는                향               는          원                           마음 마음         ㅣ         매듭 매듭            ㅣ          야심 야심     할...                        ㄹ ㅗ ㄱ, ㅅ ㅐ ㄱ, ㅍ ㅕ ㅇ, ㅎ ㅗ ㅏ, ㅍ ㅕ ㅇ, ㅎ ㅗ ㅏ, ㄹ ㅗ ㄱ, ㅅ ㅐ ㄱ,    
1312    얄美은 詩란 놈 댓글:  조회:1504  추천:0  2015-06-26
[ 2015년 12월 10일 09시 56분 ]             @!@                                                                 그날의 오전의 탈을                                               그날의                   오후의 탈을                                           그날의       탈       탈        저녘의 탈을                                                            그날의              !               새벽녘의 탈을...                                                                      그날의 탈을ㅡ                                               그 누군가가 쓰고 있던 탈인가                                                    내가 쓰고 있었던 탈을                                              지금은 훌러덩 벗어 내동댕이친,-                                       오늘도 또 다른 그 누군가가 쓰고 있는 탈,-                                                     하          *!*          호                                                    하             호                                               ...하            탈              호...                               ㄹ ㅗ ㄱ, ㅅ ㅐ ㄱ,~                   ㅍ ㅕ ㅇ, ㅎ ㅗ ㅏ,~            
1311    메아리 댓글:  조회:1485  추천:0  2015-06-26
  [ 2015년 12월 10일 09시 20분 ]     로아티아한 인권조직령도가 당국 녀대통령과 수도 자그레브에서 함께 사진을 찍다 바지가 흘러내리는 웃지 못할 일 발생. ㅋ...    메아리                                                                         山                                                          山山                                                         山山山                                             山은 파아랗게 맛보기 하다...                                                                        야~호~                                                                   삼키다                                                                       삼키다                                                                     삼키다 ...                                                        山은 얼굴이 퍼렇게 질린다...                                                                 야~하~~오~호~~                                                                   뱉는다                                                          뱉는다                                                                         뱉는다...                                                                             .                                                                             .                                                                             .                                                             그리고, 沈默이 흐르고... ...                                              ㄹ ㅗ ㄱ, ㅅ ㅐ ㄱ, 山은, ㅍ ㅕ ㅇ, ㅎ ㅗ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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