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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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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22년 09월 10일 14시 33분  조회:232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사마천
                                                                                                                회령
 
기원전 145년 즉 한나라 경제 5년, 태사령 사마담은 중년에 득자하여 입이 함박만해 졌다. 이아이가 바로 훗날 위대한 사학가, 문학가로 된 사마천이다.
 
사마천이 20살이 되던해 아버지 사마담은 그를 불러놓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너는 뜻이 크고 포부가 원대한 사람인데 이렇게 집에만 있지말고 세상으로 나가서 명산대천을 돌아보며 각곳의 풍토인정을 고찰하며 잘알아야 한다. 이래야만이 너의 생각이 넓어지고 열람이 풍부하게 된다.” 아버지 말씀을 심중히 들은후 사마천은 이렇게 말을 여쭈었다. “하오만, 내가 집을 떠나면 누가 아버지를 모시오리까?” 사마천은 아버지의 앙상한 두손을 꼬옥잡았다. 사마담은 말했다. “나는 이젠 늙어서 모든희망을 너에게만 기탁한다. 나를 관계치말아라. 네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아버지의 지지하에 사마천은 홀몸으로 장안(지금의 서안)을 떠나 고찰의 길에 올랐다. 사마천은 유명한 풍경구와 명산대천을 돌아보았을 뿐만아니라 력사유적지와 력사인물들의 유적지를 될수록이면 빼놓지 않고 자세히 다 고찰하였다. 이렇게 여러해 고달픈 로고는 했지만 그는 풍부한 재료를 장악하게 되였다.
 
사마천이 장안으로 돌아온후 조정에서는 그를 랑중으로 선발하여 황제의 수종을 하게했다. 하여 사마천은 아버지와 함께 경상적으로 한무제의 순찰길에 따라다니게 되였다.
 
기원전110년, 한무제는 성대한 봉선대전을 거행하였다. 그때 황제를 수종해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주남이라는 곳까지 갔는데 그만 그곳에서 중병으로 앓아눕게 되였다. 하여 봉선대전을 거행하는 태산까지는 가지 못했다. 사마천은 당시 한무제의 지시를 받고 서남소수민족지구에 가서 시찰, 위문 등 사업을 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버지가 주남에서 앓아누웠다는 것을 알게된 사마천은 급히 주남으로 달려갔다. 사마천이 달려갔을때는 사마담이 이미 림종으로 숨이 간들간들 하였다. 사마담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런 유언을 하였다. “ 나의 운명은 황제를 따라 태산에 가서 봉선대전에 참가못하게 되여 있구나! 지금 오직한가지ㅡ 이대전을 기록못하는 것이 가슴에 걸린다. 내가 죽으면 황상께서 너를 태사령으로 임용하겠는데, 때가되면 너는 이 대전은 물론이고 지나간 력사를 꼭 잘 쓰거라.” 사마천은 눈물범벅아  되여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부친의 초상을 치른후 사마천은 즉각 태산으로 달려가서 봉선대전에 참가하였다.
 
기원전 108년 사마천은 정식으로 태사령이 되였다. 그는 사관이란 거짓미명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하며 사악을 음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깊히 알고 있었다. 자기의 책임이 중대하다는것을 잘알고 있는 사마천은 모든정력을 바쳐 일하리라 맹세를 하였다. 그가 모든재료를 정리, 열독하면서 “사기”를 찬술하려고 하는때에 “리릉지화”가 그의머리에 떨어질줄이야?!
 
한무제 대한 2년 즉 기원전 99년가을이다. 한무제는 애첩 리부인의 오빠 리광리장군더러 흉노를 치게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공을 세우게 하여 후작으로 봉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리릉에게 명령하여 리광리를 도와 군수품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런데, 원래부터 녀동생의 신세로 득세를 하는 리광리를 우습게 보는 리릉인지라 그는 합작하기 싫어서 한무제에게 자기도 한개 부대를 이끌고 나가 흉노를 치겠다고, 그렇게하면 리광리의 압력이 감소될것이고… 하며 구실을 렬거했다. 한무제는 리릉의 속셈을 알기에 지금은 기병을 안배할수 없다고,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리릉은 보병도 좋다고 하며 견결히 나가 싸우겠다고 거듭 말하였다. 한무제는 리릉을 긍정적으로 좋게 보면서 동의를 하였다. 한무제는 로장 로박덕으로 리릉을 협조하게 하였다. 그런데, 또 호사다마로 일이 우습게 꼬이게 되였다. 그것은 로장 로박덕이 리릉을 협조하기 싫어서 한무제에게 상서하기를 지금은 천고마비계절이라 흉노의 력량이 좀 강해졌겠는데 명년봄에 나가서 치면 더욱 파악이 있을거니… 하며 구실을 대였다. 이에 한무제는 대노하게 되였는데, 그것은 리릉이 도전서를 낸후 지금은 또 두려워서 로박덕을 시켜 이따위 상서를 했다고 오판을 했기때문이다. 한무제는 즉시 명령을 내려 리릉더러 곧 출병하라고 하였다. 리릉은 5000보병을 이끌고 나가서 번번히 승리를 하였다. 하여 전국상하가 모두 환호하였다. 그런데, 또 호사다마로 호경불장(好景不長)이 되고 말았다. 흉노는 기병을 집중하여 리릉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리릉은 량식이 떨어지고 구원병이 없어서 결국은 포로되여 투항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한무제는 크게 놀라면서 분노를 억제할수 없었다. 전국상하에서는 리릉을 질책하며 그의 변절투항을 호되게 욕을 하였다. 한무제는 대신들을 소집하여 리릉을 어떻게 처리할것인가를 토론하였다. 토론은 하나마나, 이구동성으로 리릉을 부정하였다. 이렇게 되자 사마천은 속으로 이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대신들은 리릉의 공적을 매우 찬양했는데 지금은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쓸모도 없는 인물로 평가하면서 한갈래의 출로도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자기의 견해를 말하였다. “리릉은 보병이지만 그들을 이끌고 맹호같이 싸웠다. 비록 실패는 하였으나 공로가 없는건 아니다. 혹시 그가 투항한것은 기회를 보아 나라에 보답하자는 것일수도 있다.” 한무제는 사마천의 말이 매우 거슬렸다. 하여 면박하기를 “그래, 너는 리릉을 변호하는가! 이말은 리광리장군과 나를 책망하는 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사마천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때는 늦가을, 추위와 옥졸들의 박해에 시달린 사마천은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그는 몇번이나 자살하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마천은 그래도 한갈래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황상께서 자기를 혹 용서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였다. 얼마후, 한무제는 리릉의 일가를 전부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소식을 들은 리릉은 흉노에게 철저히 투항하였다. 흉노왕이 리릉을 특히 귀중히 여긴다는 소식을 들은 한무제는 더욱 분노하여 사마천을 엄중히 처리하였다. 사마천은 “무상”(윗사람을 무고했다.)죄목으로 사형을 받았다. 그때의 한나라 형법에는 돈으로 혹은 “부형”(고환을 빼버리는 형벌)으로 사형을 면할수 있었다. 하지만, 사마천에게는 돈이 없었고 뀌워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사마천은 죽는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니 죽을수는 없었다. “사기”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부형”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다.
 
사마천은 48살에 “부형”을 받고 필생의 정력을 다하여 전심전의로 “임소경에게 보내는 글”과 “사기”를 창작, 찬술하였다.(“사기”찬술에 10년이 걸렸다.) 그는 이것으로 자기의 수치를 씻으며 후세에 불후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였다. 이 두작품은 그의 념원대로, 맹세대로 오늘도 문학과 사학에서 불후의 거작으로 되고있다. 우리는 사마천에게서 많은 인간성을 따라 배울수 있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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