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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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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
2022년 09월 30일 15시 27분  조회:262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왕소군
                                                                                                                회령
 
한나라 한선제 원년 즉 기원전57년때다. 북방에 거주하고 있는 흉노내부에서는 단꺼번에 5명의 왕이 일떠서며 대 분렬이 일어났다. 다섯왕은 서로 싸웠는데 그중에서 호한사라는 왕이 다른왕들을 모두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형은 동생에게 불복하여 기회를 타서 자기를 질지왕이라고 하며 독립하였다. 하다보니 동생과 형이 사생결단 싸우게 되였다. 결과 호한사왕은 패전하고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한나라 한선제는 두말할것 없이 매우 기뻐 입이 함박만해 하였다. 기원전 51년 호한사왕은 장안(지금의 서안)으로 와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겠다고 하였다. 한선제는 좋은 옷과 금으로 만든 도장, 멋진 특등마차와 금은주보, 릉라주단을 많이 보내주었다. 호한사왕은 한선제가 보내준 옷을입고 멋진 마차에 앉아 사신을 따라 한나라 장안으로 왔다. 한무제는 친히 성밖으로 중앙과 지방의 대신, 존장, 제후와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서 륭중하게 호한사를 영접하였다. 수만 환영군중들은 만세를 열창했다. 난생처음으로 이런 성대한 환영을 받아보는 호한사는 너무도 놀라서 어리둥절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연회의 그 열렬하고도 친절하고 화기애애한 정경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한달후, 호한사가 돌아갈때 한선제는 1만6000기병으로 호송하며 많은 량식을 보내주었다.
 
질지왕은 한선제가 이렇게 성대하게 호한사를 대해주는것이 매우 심술이 나고 질투가 났지만 별수가 없었다. 질지왕은 동생 호한사를 한나라때문에 때려부실수도 없고 실력도 않됨을 알고 한나라에 화애를 표시했다. 그리고는 주동적으로 서쪽으로 멀리 이사를 갔다.
 
기원전 33년, 호한사왕은 또 장안으로 오겠다고 하였다. 당시 황제인 한원제는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서 또 오자는건가? 리유를 알아보니 호한사는 엉뚱하게도 한나라와 혼인을 맺자는것이였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 두나라관계를 더욱 우호적이 되게 한다는것이였다. 한원제는 생각해 보니 이건 좋은일이였다. 한원제는 호한사왕의 청구를 응낙하고 수종들에게 분부하였다. “너들이 궁중에서 능력있고 예쁜궁녀 하나를 선택하여라. 만약 그가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겠다면 그를 공주처럼 대하여 주겠다.”
 
궁중에는 물론 미녀들이 가득했다. 그들 대부분은 강제로 선발되여 왔고 황제와 동품을 해 보지못한 궁녀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하여, 궁에서 나가기를 몹시 갈망했으나 정작 멀고도 춥고 사람도 생활습관도 모두 낯선고장ㅡ 흉노로 시집가겠다는 궁녀는 없었다. 이런때에 왕소군이 자원해 나섯다. 왕소군은 호북 자귀(지금의호북서부)사람으로 노래와 춤을 잘하고 총명해서 궁녀로 뽑혀왔으나 아직 황제와는 만나지 못한 처녀였다. 왕소군은 생각하기를 흉노왕에게 시집가는것은 자기 개인의 일이기보다 한나라와 흉노의 우호와 관계되는 대사였던 것이다. 왕소군은 선발된후 흉노의 언어와 풍속습관, 비파 등 악기를 학습, 훈련받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학습하여 재빨리 익숙해 지었는데, 비파는 너무도 잘 타서 새들도 날아가기 싫어했다고 하였다.
 
드디여 결혼일이 되였다. 호한사왕은 한족신랑차림으로 신부를 맞으려 왔다.  머리수건을 벗기고 신부를 본 호한사왕은 멍해서 보기만 하였다. 그런데 입은 저절로 귀밑까지 히죽히 벌어졌다. 초원의 그 무슨꽃도 비길수 없이 아름다운 신부였다. 혼수는 한마디로 다 말할수 없었다. 금은주보는 얼마인지 헤아릴수가 없고 비단만해도 1만8000필이였다. 호한사왕은 정신이 아뜩해 날 지경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한원제로는 이런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오직, 흉노가 시끄럽게 굴지않으면 되였다.
 
신혼행차가 출발하자 한원제와 문무백관, 백성들이 왕소군에게 “잘 가시라!” 환호성을 높히 웨치며 환송해주었다. 왕소군은 감격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이렇게 오늘 떠나가면 다시는 한나라로 올수없고 친인들도 다시는 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흉노의 법) 그러나 국가의 안정과 백성의 행복을 위하여 한몫을 하였다는 자호감을 뿌듯히 느끼였다. 그는 두 나라와 두 민족의 우호를 위하여 더욱 노력하리라 맹세하였다.
 
왕소군은 흉노로 온후 한나라의 선진적인 지식과 기술을 힘껏 보급하고 흉노의 유목생활, 떠돌이생활을 개변케 하였다. 이때로부터 흉노에서는 농업생산을 하게 되였고 중원의 농기구를 사용하게 되였다. 하여, 량식이 보장되고 생활이 온정되게 되였다. 그리고 흉노의 락후한 풍속습관을 고치고 한족의 문화를 배우게 하였다. 호한사왕은 흉노족이 번영하여 인구가 증가되게 했고 소와 양떼가 가득하게 하였다.
 
왕소군과 호한사왕의 금슬은 아주 좋았다. 그들은 평생 한마디 다툼도 없었다. 결혼이듬해 왕소군은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훗날 우일축왕으로 되였다. 호한사왕이 죽은후 왕소군은 법에따라 새로 등극한 왕에게로 시집을 가서 딸 둘을 낳았다. 왕소군은 애국자로서 고국과 경상적으로 서신래왕을 했고 귀중한 선물을 자주 보냈다. 물론 한나라황제도 친절한 태도였다.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후 60여년 두나라 사이에는 단 한번의 전쟁도 없었다.
 
왕소군은 로년에 아들과 딸들에게 한나라와 꼭 우호적으로 지내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묘를 남쪽을 향하여 건조하라고 유언하였다. 그가 죽은후 묘를 귀화(지금의 내몽고 후호호터시 시교) 청명산에 건조하였다. 그곳은 사막과 가까운데 풀이 생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소군의 묘에는 언제나 청초가 푸르싱싱 가득 자랐다. 하여 사람들은 “청총”이라고도 부른다. 애국 애민의 왕소군을 하늘과 땅도 특별히 보는건가!...  (왕소군은 중국력사에서 4대미인중의 하나다.)
                                                                                           
                                                                                         2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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