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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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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4)
2022년 11월 16일 13시 42분  조회:267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 4 )
                                                                                                              회령
 
장국도의 반변
 
장국도는 중국공산당 창건인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당내에서 주요령도직위에서 공작하였다. 1935년 1월 홍군이 장정을 시작하면서부터 장국도는 당중앙의 결정과 맞서기 시작했다. 당중앙의 파견으로 홍4방면군으로 간 장국도는 북상을(北上) 반대하고 남하를(南下) 고집하면서 당중앙과 홍군을 분렬하는 엄중한 착오를 범하였다. 그의 착오는 혁명사업이 업중한 손실을 당하게 하였다.
 
1936년 10월 홍군의 3대주력은 끝끝내 승리적으로 회사를 하였다. 이것은 인간기적을 창조한 장정의 승리적인 결속을 말할뿐만 아니라 장국도의 분렬주의를 전승한 표지이기도 하였다.
 
장국도가 엄중한 분렬주의 착오를 범하여 혁명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지만 중앙은 오래동안 기다리며 그가 착오를 심각히 인식하기를 바랐다. 모택동은 그의착오를 엄격히 비평하는 한편 내심히 교육하며 함께 혁명사업을 하기 바랐다.
 
1937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연안에서 열린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에서는 장국도의 착오를 비평하고 그의 착오에 대한 결정을 하였다. 회의에서 장국도는 걷둥치기로 자아비평을 하여 회의참가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하지만, 당중앙에서는 장국도에게 착오를 개진할 기회를 충분히 주며 섬감녕변구정부의 부주석직무를 안배하여 주기까지 했다. 1937년 11월 연안에서 당의 활동분자대회가 있었는데 회의에서는 서로군의 실패교훈을 연구하고 장국도의 착오에 대한 비평도 하였다. 하지만 장국도 본인은 떼를 쓰며 참가하지 않다가 정 할수없게 되자 억지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발언하기를 자기를 적발하고 비평하는것은 착오적이라고 오히려 궤변을 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그가 심각히 느끼기를 내심히 기다렸다.
 
1938년4월3일 오후, 장국도는 엉큼한 속심을 감추고 모택동을 만나자고 요청하였다. 장국도를 미워하는 경위원들은 그의 요청을 전달하고 싶지않아 모르는체 하였다. 그러나 장국도가 찿아온걸 안 모택동은 평시와 마찬가지로 그를 열정적으로 접견하였다. 장국도는 모택동의 사무상 맞은켠에 앉아 풀썩풀썩 담배를 피우다가 거짓정을 나타내며 가면으로 말하였다. “모주석, 내가 잘못했습니다. 동지들의 비평과 당의 교육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지난날의 착오를 꼭 개조하겠습니다. 나는…”그는 중얼거리며 끝이 없었다. 모택동은 내심히 끝까지 들어주고 말하였다. “사람은 착오를 범하지 않을수 없다. 당신의 착오는 당과 인민, 홍4방면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일이다. 당신이 착오를 인식하고 개진하면 좋은것이다. 당신이 금후 당을 위하여 많이 공작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 당과 인민은 여전히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속줄이 달아있는 장국도는 건성으로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깊히 새겨 듣는체 하였다. 그는 자기의 계획을 어떻게 하면 순리롭게 실현하겠는가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모택동의 말이 끝나자 장국도는 곧 말을 꺼냈다. 그것은, 자기가  중부현에 가서 황제릉에 제를 지내게 비준하여 달라는 것이였다. 청명이 곧 되는데, 여러방면의 인사들이 중부현에 가서 민족의 조상 황제에게 제를 올리는데… 우리당도 이렇게 한 전례가 있고하니 자기가 가서 당을 대표하여 제를 올리겠다는 것이였다. 이어 부언하기를 국민당도 정부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릉에 제를 올리는데 우리도 대표가 가서 변구의 150만 인민의 마음을 표시함이 지당하다는 것이였다. 그의 말은 십분 은근하면서도 감동적이고 간절하였다. 모택동은 그럼, 당신이 갔다오라고 비준하면서 특별히 행사가 끝나면 즉시 연안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하였다.
 
청명절 이른아침에 장국도는 조바심을 치면서 급급히 출발했다. 중부현에서 황제릉 제사행사가 끝난후 장국도는 운전수와 경위반 인원들께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라. 나는 서안에 가서 림조함동지와 토론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경위원 장해는 상서롭지 못함을 느끼고 따라나섯다. 장국도는 급급히 길옆에 서있는 국민당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는 국민당의 품속에 안긴것이다. (경위원 장해는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당의 신변으로 돌아왔다.)
 
장국도가 국민당켠으로 반변하자 당시 항일군정대학에서 학습중이던 장국도의 처 양자렬은 눈물코물 범벅이 되여가지고 모택동을 찿아왔다. “주석님!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에게 가르켜 주세요. 이 량심없는것이 우리모자를 버리고 도망쳤으니… 우리는 전혀 몰랐어요! 잉잉잉…” 모택동은 양자렬을 안위하며 말했다. “장국도는 우리와 함께 20년을 혁명했다. 그가 도망하며 혁명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무슨방법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가 돌아와서 우리와  함께 혁명하기를 희망한다.” 모택동은 두손을 옆구리에 올리고 거닐다가 이어 말하였다. “이렇게 하자. 지금 너도 무한으로 가라. 가서 설복해 봐라. 당신들이 함께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돌아오면 우리는 여전히 환영할것이다. 과거의 착오는 고치면 된다.” 양자렬은 아이를 데리고 무한으로 간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모택동은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
 
1938년 4월17일, 장국도는 무한에서 서면으로 공산당을 리탈하며 국민당에 의탁한다는 공개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튿날 4월18일 중공중앙에서는 장국도를 출당한다고 결정하였다. 1948년11월 장국도는 대만 대북으로 도망쳐 갔으나 온갖랭대를 받다가 후에 향항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소위 “민주전투동맹”의 두목을 하며 “중국의 소리”잡지사 사장을 겸직하였다. 훗날, 그는 고정적인 직업이 없게되자 중공의 정보를 팔아먹는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56년 장국도는 중국에 돌아오기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중공에서 제출한 공개적으로 착오를 승인해야한다는 선결조건을 승인하지않아서 이뤄지지 못했다. 60년대초 그는 미국의 어느대학의 요청으로 4년의 시간을 들여 “나의회억”을 썼다. 1968년 장국도는 카나다의 더룬더시에 이주했다. 만년에 그는 중풍으로 생활을 자립할수 없어서 면비로인병원에 입원하여 처참한 나날을 보내다가 1979년12월초에 죽었다. (1897ㅡ1979)
 
장국도는 누가 보아도 괘씸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그에게 인의(仁義)를 다 했다.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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