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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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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9)
2022년 12월 10일 14시 46분  조회:193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9 )
                                                                                                                    회령
 
세가지를 무서워 함
 
탁월하고 천재적인 모택동은 세상만사에 대하여 환히 알뿐만아니라 무비의 담량을 갖고있다. 그이는 세상에서 두려운것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 모택동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었다.
 
어느때 모택동은 안해 하자진과 이런말을 하였다.
“나는 평생 우는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세가지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였다. 첫째로는 가난한 백성들이 우는것을 그저 볼수없어서 저도모르게 나도 눈물을 흘리였다. 다음은 피를 보면 눈물이 나고 마지막 세번째로는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으면 참을수가 없었다.”
 
1948년 5월어느날 모택동은 성남장에서 서백파로 길을 떠났다. 산길은 상당히 나빴다. 일행이 평산현 큰길옆의 한마을에 이르렀을때 였다. 여러사람들은 길옆의 풀밭에 몇사람이 있는것을 보았다. 가까히 다가가자 8, 9세나이의 어린녀자애가 풀밭에 누워있고 곁에는 30여세로 보이는 농촌부녀자가 앉자있고 주위에는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둘러있는것이 보이였다. 녀자애는 누데기같이 람루한 옷을 입었는데 누런얼굴에는 피기라곤 전혀없고 두눈은 꼭 감고있었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곧 숨이 넘어갈것 같았다. 아이어머니는 애의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몹시 비통해서 자꾸 애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은 그들모녀를 동정했으나 속수무책이였다.
 
모택동이 차를 세우라고 하자 운전수 주서림은 즉시 차를 세웠다. 모택동은 첫사람으로 차에서 내린후 아이곁으로 다가가서 손이며 이마를 짚어보며 물었다.
“아이가 왜서 이러는가?”
“병으로…” 아이어머니가 울면서 대답했다.
“중한같은데, 며칠이 되였소?”
“3, 4일 되였어요. 처음에는 그만했는데 이렇게 점점 더 중해졌어요.”
“어째서 이렇게 마을밖으로 나왔소?”
“의사를 보이려고… 그런데 애가 틀린같아요.” 아이어머니는 더욱 목메여 울었다. 이런심심산골에서 의사와 약이 없고 돈이 없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죽었다.
 
모택동이 머리를 번쩍들고 차를 바라보자 사람들은 그이의 눈시울이 븕게 물든것을 보았다.
“여기있습니다.” 주의사가 모택동의 바로 곁에서 대답했다.
“애병을 봐주오.” 주의사는 자세히 병을보고 자세히 물었다.
“구할수 있소?”
“있습니다.”
“좋소. 어서 치료하시오.”
“그런데, 약이…”
“약이 없소?”
“있긴한데… 한대뿐이여서…”
“무슨약이게…”
“피니실린.”
“어서.”
“이약은 수입제로서 살수는 없습니다. 당신께서 앓을때도 아끼고 아끼면서 어쩔수 없는 경우에라야 썻는데…”
“지금이 바로 어쩔수 없는 경우요. 목숨이 경각인데, 어서 주사하오.” 당시는 항생소가 특별히 귀중했고 효과가 매우 좋았다. 주의사가 처치를 한후 아이는 기적같이 눈을 뜨고 엄마를 부르기까지 하였다. 아이어머니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소리쳣다.
“보살님이시여! 목숨을 구해준 보살님이시여!”
모택동은 눈물을 흘리면서 주의사에게 분부했다.
“제일 뒤 차로 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관찰해서 문제가 없으면 오시요.”
 
매번 그때일을 말할때면 모택동은 눈시울을 붉히군 했다.
“애가 지금은 어떤지… 데려다가 한동안 치료했더라면 좋았을걸… 농민들은 의사가 없고 약이 없어서 병이나면 몇십리를 가도 의사를 보이지 못한다. 방법을 대서 의사들이 농촌으로 가게해야 한다. 농민들이 지은 곡식을 먹는데 응당 그들을 위하여 병을 봐줘야 하는게 아닌가?!”
 
모택동은 수천번의 전쟁을 지휘하면서 죽음과 류혈을 겪었다. 그의 친인만 하여도 6명이나 희생되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견강하였다. 그는 말그대로 비통을 힘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어떤경우에는 피를 아주 싫어하고 두려워 하였다.
 
북평에 갓 들어와서 향산 쌍청별장에 있을때다. 어느날, 모택동이 회의를 마치고 숙사로 오는데 뜨락에서 경위전사들이 희희락락해 하면서 무엇을 들고 유쾌해 하면서 떠들썩하였다. 모택동은 그들에게 무슨일에 이리도 좋아하는가고 물었다. 경위전사들은 총쏘기를 하여 잡은 참새꿰미를 내들고 보이면서 경과지사를 신나서 말하는데 여러마리 참새들은 피범벅이 되여있고 피는 모택동의 발치에 떨어지기도 했다. 모택동은 급히 뒤로 물러서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빨리 치우라고 소리치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률로 새나 짐승을 잡지못한다고 엄명을 하였다. 동시에 말하기를 “참새도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가지고 유쾌히 노래하고 자손을 번식하며 저들의 삶을 사는데, 그들이 너희들에게 피해를 주었는가? 왜서 그들을 죽이며 못살게 구는가?!” 하며 격분해 하였다. 전사들은 수장들이 먼저 새잡이를 하였다고 뿌르퉁해 고자질을 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그누구도 일률로 않되니까 즉시 금지통지를 하라고 엄령을 하였다. 향산은 다시 새들의 락원으로 되였다.
 
1958년, 모택동이 농촌을 시찰할 때다. 한 로농이 참새들이 곡식밭에 무리를 쳐서 날아들고 날아나며 숱한 낟알이 떨어지게 하고 먹어치워버린다고 말하였다. 또 한 전문가는 참새는 해조(害鳥)다. 곡식을 짋밟을 뿐만아니라 도둑질해 먹는놈이라고 중복해 말하였다. 일관적으로 “해인충을 쓸어버리자!”고 주장하는 모택동은 참새를 쥐와 한무리로 보고 “4해소멸”명단에 넣었다. 모택동의 한마디에 중국에서는 참새잡이 대약진이 전개되였다. 2년이 지난후 어떤전문가가 참새도 모모충 등 해충을 잡아먹는데 공과 착오가 반반이 되는게 아닌가?하고 조심히 듣기좋게 말하였다. (기실은 해충을 잡아먹는 공이 곡식을 훔쳐먹는 착오보다 훨씬 더 컸던것이다.) 그말을 들은 모택동은 천진에서 열린 위생공작회의에서 유모아적으로 말하였다.
“이 량년간 참새들이 무서운 재앙을 입었다. 우리는 그들을 평판해주어야 한다. 나는 그들의 당적을 회복해 줄것을 건의한다. 다시는 참새를 때려잡으면 않된다. 대신 빈대를 4해에 넣자.”
 
1964년께다. 중남해 무도장에서 휴식시 모택동이 담배를 피우는데, 공군정치부 문공단의 한 연원이 그의곁으로 와서 말동무를 하였다. 얘기가 문공단의 학습과 훈련에 이르자 모택동은 친절히 물었다.
“힘들겠구나.”
“그럼요. 때론 사고도 나요. 천진의 어느극단에서는 훈련을 하다가 연원이 공중에서 꺼꾸러 떨어졌는데 목이 상하면서 숱한 피를 흘렸대요.”
“아이쿠!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모택동은 그연원을 피하여 다른자리로 옮겨 앉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무도가 시작되였는데도 얼굴을 찌프리고 더는 춤을 추지않았다.
 
모택동은 또 “살려달라”는 말을 매우 두려워 했다.
섬북에 있을때다. 한 경위전사가 고생을 참지못하여 도망을 쳤는데 얼마않되여 잡혀왔다. 경위전사는 아는 비밀이 많기에 다른 전사들과 다르다. 경위부대애서는 몹시 증오하며 이 전사를 총살하려고 하였다. 사실을 들은 모택동은 도망쳤던 전사를 찿아보게 되였다. 전사는 애숭이 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나는 놈들한테로 가려고 도망친건 아닙니다. 집생각이 너무나서, 제발 살려주세요!”
모택동은 반변을, 변절자를 아주 증오하였다. 그러나 이전사는 비록 도망을 치다가 잡혀왔지만 변절자는 아니였다.
“놓아줘라. 놓아줘라. 빨리 놓아주라.”
“이놈은 도주병입니다! 쬐꼬만 놈이 아주 나쁩니다!”
“뭐가 나쁜가? 얘는 어린애가 아닌가? 빨리 놓아줘라. 애가  놀라겠다.”
“이렇게 엄중한 문제를 판결도 않하고 가두지도 않고 그저 놓아준다면 어찌됩니까? 규률을 집행하지 않으면 대오를 이끌수 없습니다.”
모택동은 온화하게 설복하였다.
“아이가 어린데다 방금 혁명에 참가했다. 고생을 해 못봤고 단련이 없으니…  집생각이 나선데, 가두기까지하면 집생각을 더 할게 아닌가? 얘는 반변투항한것도 아니고, 어린데 어서 놓아줘라. 그리고 맛있는걸로 잘 먹게해라. 들었는가?” 모택동은 격분해서 씩씩거리는 경위대간부들에게 엄격히 지시했다.
 
모택동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 그는 투쟁성이 풍부한 위대한 혁명가이며 동시에 흉금이 넓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매사에서 시비가 명확했다.
 
                                                                                                            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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