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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일호동의 사랑
김송죽
1
토끼꼬리만큼이나 짧아 긴 꿈은 꾸기조차어려울 삼복철 한밤. 게으른 부엉이가 심야의 정적을 몇 번 건드려놓곤 지쳐버렸는지 그만 울음을 그쳐버렸다.
괴괴한 정적이 얼마간 흐른 후
《쮸리쮸리―》
이번에는 단잠을 깬 솔새가 단조하고 되알진 목청으로 어뜩새벽의 무거운 정적을 깨뜨려놓는다.
칠흙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먼동이 튼다.
미구하여 귀염둥이가 손에쥐고 놀던 고무풍선같은 붉은 해가 동산머리에 불끈 솟아오른다. 그러자 찬란한 햇빛이 온 대지를 찬란히 비추기 시작한다. 그 빛을 받아 삼라만상이 차츰 제 모습들을 드러내기시작한다.
벌방과 사이떠 외인의 발길이 적게 닿고있는 여기 산간벽지에 자그마한 늪을 한켠에 끼고 오두막모양의 자그마한 집 한채가 옹송그리고 있다.
출입문이 삐걱 열리면서 아직은 해빛이 채 들지 않아 어둑시그레한 집안으로부터 70대의 통바지를 입은 거쿨진 사나이가 맨 런닝그바람에 나온다.
《아―하!》
늙은이는 해뜬쪽을 향해 두 팔을 머리우로 올리면서 하품을 요란스레해댔다. 헝크러진 흰 머리카락이 해빛에 반짝거린다. 꺼진 눈확에 박혀있는 두 눈도 반짝거린다. 그 나이면 고령이건만 허리도 그리 굽지 않은 그는 짜장 만고 풍상을 겪어낸 한마리의 완악한 늙은 승양이를 방불케한다. 성명이 박기섭. 홀홀단신인 이 늙은이가 바로 여기 산간의 주인이자 이 일호동을 주재해온 군주인 것이다.
《까악까악―》
산까치 한 마리 머리우를 날면서 울어댄다.
《허허, 자식이. 무슨 좋은소식있다구저래.》
로인은 저기 백양나무가지에 가 앉아서도 꼬리를 달싹거리며 울어대는 산까치를 향해 입가에 잔웃음지으면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린다. 꿈을 꾸곤 그걸 해몽하거나 새소리듣고 점을 치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진 습성이다. 그의 하루생활은 늘 이런멋으로 시작되고 이런멋으로 반복되여왔다.
거의 망아지만큼이나 트대큰 개가 주인곁으로 다가오더니 꼬리를 저으며 알찐거린다. 귓등과 꼬리 주둥이만 희고는 온 몸뚱이가 새까만 이 개는 생각나면 먹이를 던져주면서 천대스레 자래우다가 출출할것같으면 잡아나먹자고 자래우는 그따위 하찮은 보통 똥개는 아니였다. 마스티브종인 이 개의 원산은 영국인데 크고 사나와 투견으로나 호신경으로 들고난거다. 이 개가 지금의 주인손에서 자란 것이 이미 다섯해나 된다. 여기서 서쪽으로 약 60여리 상거해있는 변방소에서 이런 개를 기르고 있다. 박기섭은 이 개가 제 어미배속에서 나와 어섯눈을 뜨자 거기서 안아왔던거다. 박기섭은 개를 기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 개가 각가지의 냄새를 제대로 맡아내게하느라 먹이를 주의해 가려먹였거니와 목기운이 세게하느라 오금이 트자부터 나무방망이를 달아주었고 다 커서는 그걸 벗기곤 목사리에다 대신 못을 촘촘히 밖아 만든 가죽띠를 돌려주었던 것이다. 여우나 승냥이를 만나 싸울 때 목이 상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주인이 그같이 알심들여 보살폈길래 개는 제 주인을 위해서라면 물불을가리지 않고 헌신 할수있는 충견으로 자라난 것이다. 박기섭에게는 한가족 성원인 이 개가 곧바로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였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유감스럽게도 사유가 고등이라는 인간이 행실은 털난 짐승보다도 못한 걸 심심찮게 보게된다. 그것을 박기섭이가 친히 목격했던거다. 력사에 류례없다는 혁명이 이 땅에서 휘몰아칠 때였으이니 이젠 어언 30여년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사람들이 어쩌누라 그리도 심한 광열병에 걸렸던지. 이런 변비와 가까이 있는 도시에서도《붉은해양》을 만든다면서 뼁끼를 통드리로 부어 펀펀한 콩트리트벽들을 온통 피칠갑을 한것같이 만들어놓았었고 촌에서는 집집마다 지붕에다 붉은기를 여러개꽂았다. 그리곤 때마다 밥상을 차려놓고는 위대한 그 사람의 초상앞에서 《삼경삼축》을했었다. 그러는 꼴을 박기섭이는 보다못해 이게 무슨짓이여 산사람놓고 제지를 지내는거야 아니겠지, 이런다구 혁명이 되는건가 제정때두 일본은 이러다가 망한거야 라고해서 그만 《반혁명》으로 몰려 변을 당하고말았는데 하마터면 아까운 제 목숨도 건지지 못할번했던것이다.
박기섭이를 놓고보면 남들처럼 시기시기의 기온에 맟추어 놀지 않고 우둔스레 입바른소리를 망탕죄쳤을 뿐이지 사실은 그 본인의 말대로 그 무슨 이단적인 사상이 머리속에 밖혀서 고의적으로 그렇게 말한 사람은 절대아니였다. 22살먹고 장가를 간 그는 이듬해에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남먼저 정부의 호소를 받들어 호미자루를 총자루로 바꿔쥐곤 지원군의 행렬에 들어 압록강을 뛰여넘어갔고 가렬한 전투를 여러번 치루면서도 운수좋아 무사했다. 그러던 그는 5차전역때 지금의 휴전선에 위치해있는 어느 한 무명고지를 지켜싸우다가 그만 적탄에 다리를 상하였고 그 상을 치료하느라 후방병원에 왔다가 정전이 되니 전업하여 고향에 돌아왔던거다. 욕망같아서는 향에서 무장조리노릇이나 하고싶었지만 몸이 남같이 성한축이 아니다보니 하는수없이 민정조리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안해가 너절한 상급과 배가 밪아 돌아가니 눈꼴시고여 차버렷거니와 그결에 지지하던 사업마저 집어던지고말았던 것이다. 남들은 관심해서 퇴직금이라도 타먹어야지 아무렴 계집년때문에 그 좋은 철밥통까지 팽가칠건 뭐냐고 권하면서 나무렸지만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거니와 거기에 대해서는 다시 더 추호의 미련도 두지 않은 박기섭이다. 지금도 한쪽다리를 살룩살룩절고있는 그는 오로지 용맹과 회생만이 약속되여있었던 그 가열처절한 전투의 나날에 겪은 가지가지의 일과 추억들을 지금도 의연히 중히 간수하고있는 군공메달 세 개와 함께 가슴속에다 깊이 묻어두고 홀로살아왔던 것이다. 왜서 홀로사는가?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다니? 하면서 그를 리해못하는 사람은 지금도 의연히 그를 괴짜로만 보고있다. 워낙 말수더구가 무거운편인 그였는데 안해의 배신이 괘씸하고 부화가 동해 자주 음질을 쓰면서 심청을 뿌리다보니 성질사나운 남자로 돼버렸고 말새질하기 좋아하는 동네집아낙네들이 그것을 입끝에 올려놓고 찧고까불려서 소문이 좋지 않게 파다히 퍼졌다. 아마 그런 미열이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는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문화혁명에 끌려나왔으니 그 꼴이 과연 어떠했겠는가.
《로건달말인가. 그녀석 인피를 썻으니 사람이지 어디 사람인가. 개만두 못해 개만두 못해.》
박기덕이 이렇게 욕하는 로건달이란 몇해전에 위암에 걸려 죽어버린 로명호다. 그는 시내에서 무직업자로 돌다가 60년대초에《하방》바람이 부니 더는 배겨낼수 없어서 잔밥을 데리고 박기섭이네 마을로 이사를 왔던 것이다. 그런데 털면 먼지밖에 없을지경 사는 꼴이 그야말로 말이아니였다. 형편이 그러하니까 워낙 민정사업을 했던 박기섭인지라 그저 보고만있을수는 없었다. 같은 제 동포요 더구나 한계급내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나서서 동지적인 우애정신으로 그를 보살펴주었던것이다. 마을의 간부들을 설복해 식량을 무상으로 내주게했고 국가에서 잔페군인에게 내려보내는 정양비를 자기는 쓰지 않고 그에게 주어 그걸로 아이들의 병을 보게하거나 옷을 해입게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서로 가까운사이로까지 되였다. 그래서 한 번은 술마시면서 그런 속맘의 말을 그하고한건데 량심을 떼어 개를 먹였는지 그가 박기섭을 적발했던거다. 그랬은즉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박기섭이는 냉큼 잡혀나와 투쟁대에 올랐고 소문난 건달이였던 로명호는 문화혁명을 위해 한차례 대공세운 “맹장”으로 인정되여 마을의 혁명위원회에 들어갔거니와 거기서도 주요한 지도성원으로까지 발탁되었던것이다. 그래서 개잡은 포수모양으로 대가리를 내저으면서 우쭐거렸으니 과연 소웃다 구럭터질일이였다.
그런일로해서 지금도 가슴에 맺힌 적원(績怨)이 풀리지 않고있는 박기섭이는 누가 로명호의 이름을 거들기만하면 코빠는 애들한테서마저 온갖수모를 당했던 그때의 일이 머리속에서 다시다시 고패쳐 얼굴에 노기를 피우면서 침을 뱉군한다. 그러니 로가는 죽음으로써도 그이 앞에서 지은 죄만은 의연히 씻지못하고만거다.
박기섭이한테는 청매죽마는 아니지만 조선전장에 지원군으로 나가기전부터 면목익히고는 아주가깝게 지내였던, 지금 그가 살고있는 이 집의 원주인이자 성명을 유덕환이라 부르는 허저족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식솔들은 3년재해년간에 살아가는게 과연 말이 아니였다. 그런 꼴을 보고 박기섭은 잠이오지 않았다. 하여 그는 돌아오자 제 배를 채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식량을 모아 그들을 먹으라고 보내주엇거니와 때론 옷가지도 보내주군했다. 오는 정 가는 정이라 유덕환이가 그 은공을 어찌잊으랴. 몇해후의 어느날 그는 안해와 리혼하고 혼자사는 박기섭이를 보러왔다가 마침 목에다 문짝만큼한 패쪽달고 투쟁받는 그를 발견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고 마을밖을 숨어돌다가 그날밤으로 박기섭을 빼돌려 자기집에 가져다 숨겨두었던거다. 마을에서는 그가 갑작스레 실종되는바람에 한바탕 벅작끓어번졌다. 박기섭이가 투쟁받더니 죄가 두려워 자살해버렸다는 둥 멀리 뺑소니를 쳤다는 둥… 실상 그랬던들 온 나라가 혈안이 돼서 상대자만 나지면 무자비한 전정을 들이대는판인데 제따위가 도망가면 어디에 가 오래배겨낸단말인가. 헤매며 찾느라말고 기다려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과연 그러했다. 살아서는 승천입지(昇天入地)할수없었던 박기섭이는 만 5년만에 마을과 20여리떨어진, 이런 변비의 산속에서 타민족의 집에 숨어지낸것이 끝내드러나게되었던것이다. 허지만 시종 되붇잡히지는 않았다. 유덕환이네 온집식구는 물론 개까지 그를 보호해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난날의 한가닥 이야기다.
그 허조족친구는 10년전에 벌써 위암으로 저세상에 가버렸다. 그리고 그가 위암으로 세상뜨자 그의 아들도 이듬해에 거의 한 대를 살아왔던 이 집을 가장어려웠던 나날에 자기네와 고락을 함께 해왔던 이 조선족로인에게 무상으로 념겨주곤 자기는 식솔들을 데리고 현성으로 이사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박기섭이가 이 일호동의 주인이 되어 그냥살아가고있는 것이다.
배게 누으면 장정 다섯까지는 잘 수 있는 돌구들에 부엌이 달린, 앞쪽에 출입문과 창이 붙어있고 뒷쪽에 뙤창이 있게끔 남북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이런 반토굴식의 집을 허조족들은 시르맨커라부른다. 그리고 집앞에 십여보쯤 떨어져 통나무 네 개를 땅에 밖아 기둥하고 물개암나무를 엮어서 벽을 한 자그마한 다락이 하나있는데 고기를 말리우거나 창고삼아 여러 가지 어수렵도구들을 넣어두기도하는 이런 다락을 허저어로 다커투라부른다. 박기섭은 시르맨커와 이 다커투를 물려받으면서 조대로부터 어업과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그들로부터 고기잡이술과 짐승잡이술도 배워두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와서는 나라정책에 따라 큰짐승잡이는 그만뒀지만. 변칙적인 운명이랄가 그역시 지금은 옛주인모양으로 반은 어부로 반은 산장이로 살아가고있는 판이였다.
국계인 큰강과 가까이에 있는 여기가 바로 변방지도에서나 향지도에 꼭같이《일호동》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그것은 허저족주인이 처음부터 그렇게 명명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전에는 여기로 사람이 퍽 적게다니였었다.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이 순라를 할 때 들리거나 되거리장사군이 고기를 사느라 오군했을뿐이다. 잔페군인인 박기섭은 지금도 자기에게 나오는 정양금을 타러 향민정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뉘집에 대사가 있어 부득불 가봐야 할 때를 내놓곤 벌방으로 자주나가지 않는다. 이런 산간벽지에서 혼자사노라니 적적하다못해 심하게 느끼군하던 고독감도 세월이 감에 따라 사그라져 이제는 아무렇지도않지만 사교를 그닥즐기지 않다보니 어쨌든 성미가 남보다는 류다른데가있었다.
이러한 그한테도 사귈만한 친구는 있었다. 몇달전부터는 제 안해를《위장결혼》시켜서 한국에 벌이를 내보낸 남병호란 젊은이가 꽤나자주다니고 있다. 처음은 누구의 심부름을 하느라 나타난 것이 지금은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려찾아오는 단골손님으로 되고말았다. 때론 왔다가 밤을 자고가기도했다. 그럴때는 적적하던 시르맨커에 활기를 더해주군했다. 박기섭은 그러는 그가 좋았다.
해가 바지랑대만큼 기여올랐다. 하늘의 한모퉁이에서는 솜같이 뭉실믕실한 더미구름이 떠돌고 있다.
《사람을 삶아낼판이냐. 오늘두 비는 안오겠구나… 통그믈이나 손질해야지…건데 까치놈은 왜 그렇게 울어댔을가?》
박기섭은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다커투에 올라가 망가진 통그믈을 내려오면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개가 궁둥이를 땅에 붙인채 제 주인을 말똥말똥 올려다보면서 대가리를 갸우뚱거린다. 말을 알아듣곤 요사스런 까치가 매일 그모양인걸요 뭐 하는 것 같았다.
《아니다, 이자식아. 고놈이 오늘아침은 내 머리우를 날면서 유별나게 울었단말이다.》
개는 참 그랬군요 하고 맛장구를 치듯이 꼬리를 살살 저었다.
박기섭은 집가까이에 있는 아름드리 백양나무그늘에 가 자리잡고 앉자 방금 다커투에서 꺼내온 통그믈을 앞에 놓고 손질하기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노래를 되는대로 흥얼거렸다.
정오가 거의되어 올 무렵. 날은 찌는 시루같이 무더워졌다.
개가 컹컹 짓다말고 꼬리 젓는다.
《누가왔느냐?》
《내가왔어요, 로인님.》
박기섭이 개와 말했는데 사람의 말소리들려왔다.
그는 일손을 멈추고 고개들어 방금 소리가 날아온 쪽을 보았다.
중등키에 다부지게 생긴 젊은이가 이켠을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늘 다니는 남병호였다. 해가림모를 삐딱히 쓴 그의 울기오른 얼굴은 땀으로 맥질했고 팔짜른 셔츠는 앞단추를 채우지 않아 펄럭거렸다. 손에는 그가 늘 갖고 다니는 쟉크달린 검은색나는 인조가죽가방이 들려있다.
로인은 얼굴에 반색을 지었다.
《어! 자네왔나. 그러잖아 왜 오잖나구그러는데…그래 요새받은 신문은 가져왔나?》
《그럼요. 가져오구말구요, 로인님께서 부탁하신건데 안갖고오면됩니까.》
젊은이는 흐르는 땀도 닦지 않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쟉크를 열더니 갖고온 신문부터 끄집어냈다.
《아니 그건 뭐.》
늙은이는 가방속에 배갈 두병도 들어있는것을 발견했다.
《오늘은 나도 좀…》
《어 그래?! 하하하…》
로인은 아무리 좋은 술이라 해도 동무있어야 맛이 나는건데 잘됐다면서 입을 뻐개가며 웃었다.
젊은이는 해가림모를 벗어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해댔다
로인은 손을 재게 놀려 하던 일을 매기단하고나서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누워있던 개도 일어나면서 꼬리를 저어댄다.
박기섭은 늪쪽으로갔다. 늪은 시르맨커 바로 동쪽에 있었다. 수면에 피여난 수련이 뜨고 늪가에는 장포와 갈과 여러 가지 잡풀들이 무성했다. 어디선가 물오리들이 박박박 울면서 자맥질하고있었다. 음향과 미묘하게 조화이룬 경물이랄가 작고 고요한 늪은 산간의 자연미를 한결돋구어주고 있었다.
남병호도 어느새따라왔다.
《로인님! 여기 경치가 이리두좋은걸 전엔 왜 몰랐을가요. 》
《생각해보게 왜 몰랐겠는가구. 거야 사람들이 모두 혁명하는데만 정신팔다보니 자연같은건 알아볼 념도 안했기 때문이지.》
《아무렴어쩜…》
전세대의 사람들은 감정이 과연 그리두 말라지냈단말인가. 젊은이는 로인의 말에 리해가 잘안가는지 말을 더 하려다말고 눈만 찡긋했다.
박기섭은 무성한 부들숲가에 이르러 거기 말둑에 매여있는 배를 풀어냈다. 그건 봇나무껍질로 만든건데 길이가 기껏해야 둬발밖에않되였다. 깜찍한 수공예품을 방불케하는 그것이 허저족어부들이 고기잡이철이 돌아오면 누구라없이 요긴하게 사용하는 우머르천이였다.
《건너에 가보렵니까?》
《가보려네. 몇놈들었을텐데.》
로인은 재우쳐 묻고나서 머쓱하니 서있는 젊은이를 의아쩍게 보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왜 그러나?》
《이눔의게 달걀껍질같아놔서 난 정말 …》
《뒤집어질가봐 근심되나?》
《솔직히말해서.....》
《겁쟁이같이!》
여기는 물고기가 흔했다. 이 늪 아니고도 시르맨커 뒤 저기 작은 물동아래 물후미거나 늪이 작은 내와 합치고 있는 물드리에다 낚시를 집어넣어도 길이가 둬뼘씩되는 메사구와 크기가 손바닥만큼한 붕어가 물려나왔다. 남병호는 자기는 낚시를 빌려갖고 차라리 거기에 가서 정심찬거리를 잡아오고싶었다. 그런데 로인이 마지막내던진 겁쟁이같다는 말에 살을 맞아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그는 낯이 확끈해났다. 등신같이 겁쟁이로되다니 원.
《내가 갔다오지요.》
남병호는 용기내여 먼저 성큼 뛰여올랐다
여지것 한사람만 태웟던 봇나무매생이는 심하게 요동쳤다.
《번져질라, 조심해라!. 》
로인은 소리쳐 주의줬다. 그리곤 이런 배는 어떻게 몰아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나서 풀어낸 배줄을 넘겨주지 않고 제손에 그냥쥔채 말을 이었다.
《고기잡일 제대루하자면 뭣보다두 이걸 잘 다를 줄을 알아야 해. 병호 너도 우리 이 늪에는 초어가 많은걸 알겠지.》
《알아요.》
《건데 여적 그놈을 한 마리라도 잡기나해봤는가. 못잡았지.》
《예. 못잡았어요.》
《거봐. 남은 잡는 데 왜 못잡았나. 이걸 타구서 고기잡일하자면 먼저 요령부터 장악하는게 관건일세, 알겠나 요령부터 장악하는게 관건이란말이여.》
《그렇지요.》
《적과 싸워 이기자면 우선 정찰을 잘한 기초상에서 작전방안을 잘짜야하는거구 그 기초상에서 또 전투원 각자가 취할 행동을 알아두어야하는거네.》
《그렇겠지요.》
《그렇겠다는게 뭔가. 이게 바로 꼭 알아둬야 할 요령이란말이야. 그놈이 알을 쓸고나서 먹이를 되게 찾을 때는 잡기가 제일 알맞춤인데 어떻게 해야 그놈을 잡는지 알어?》
《모릅니다. 일후 배워주십시오.》
《일후는 일후고 지금부터알아두는것두 괜찮아.》
박기섭은 이러면서 요약해 알려주었다. 우선 초어가 잘 모이는 곳부터 알아두어야한다는 것, 그 정찰이 끝나면 작고 가벼운 우머르천을 썩 바투 소리도 안나게 살살 몰고가 내심하게 기다려야한다는 것, 그리구있다가 초어가 풀잎을 물고는 그것을 대나 가지에서 떼여내느라 흰배를 해뜩 뒤번지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작살을 뿌려야한다는 것 등등.
제법의 리론강의였다.
그는 겨울이 오면 끝이 뾰족한 빙천을 갖고 고기들이 모여 월동하는 늪의 깊은 곳이나 강에 얼음구멍을 여러개 동그랗게 뚫고 는 그 속에다 이 구멍에서 저 구멍까지 그믈을 넣어 늘이거나 아니면 후리그믈을 넣어 돌려서 잡군했는데 그건 다음날 아무때든 젊은이가 들어두어야 할 강의내용이였다.
건너편물목에 싸리로 튼 통발을 하나 놓은 것이 보였다. 우머르천을 그곳까지 조심스레 몰고간 젊은이는 그것을 들추었다. 그 속에는 손바닥만큼씩 큰 살찐 붕어가 근 20여마리나 들어있었다. 박령감의 표현구대로 말하면 《OK!》였다.
남병호가 통발에서 털어낸 물고기를 갖고갔더니 로인은 보고서과연 만면에 희색을 가득담으며 손가락을 딱 소리나게 튀기였다.
《ok! 오늘점심은 성찬을 차리게됐구나!》
남병호도 웃었다. 그린곤 의아쩍은 낯색을 지으며 물었다.
《로인님은 젊은이들이 쓰는 그런 현대말 언제배웠습니까?》
《현대말이라니? 어느거말인가?》
《ok라는거말입니다.》
《아니 뭐라?!…이런 까막바보라구야 원!》
더 괴이해하는건 젊은이가 아니라 외려 로인쪽이였다.
남병호는 낯이 또다시 뜨거워났다. 아까는 로인한테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까막바보란 말을 듣고 있다.
로인은 무안을 당하고 거북해진 젊은이를 향해 물었다.
《자넨 지금 나이 얼마라지?》
《올해 설흔여덟입니다.》
《음. 그러니까 난 자네가 아직 어미배속에두 있지 않았을 때 벌써 그 외국말 한마디를 배웠던거로군. 조선전쟁판에 나갔다가말이네. 그게 영어가 아닌가. 그런데는?… 내 자네한테 한가지 묻겠어. 외국말이면 다가 현대거로되는건가? 그게 지금 젊은이들의 리해인가? 아주 그럴싸한 사유로군!》
《… 》
남병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시열고 변명 할 재간이 없었다. 무었이라 대구하겠는가. 조소로 벼려진 로인의 말은 실랄한 비난으로 들렸다. 적잖은 사람들이 개혁개방이 시작된지가 이젠 꽤 오래건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외국것이면 다가 좋고 선진적인것으로만 보는데 습관이 되여있다. 지어는 그들의 언어와 문자마저도 신선한것같아서 그것을 현대적인 표징으로 여기고 있다. 색갈도 가릴줄모르는건 오로지 색망뿐이다. 어딘가 병들어 비탈린 사유가 아니겠는가. 수치스러웠다. 남병호는 자기의 무지가 이 자리에서 동배의 젊은이들을 몰잡아 모욕준것만같아서 부끄러웠다.
《이걸루 뭘해먹을가.》
《아무거나하지요.》
《주장을 내놓아보게. 내 오늘은 자네가 먹구푼걸 해줄테니.》
《로인님두 참.》
남병호는 속이 인츰 개운해졌다.
둘은 함께 고기밸을 땃다.
그들은 절반고기로는 생회를 만들고 나머지로는 고추장을 넣어 밭게 끓이였다. 식욕을 일으키는 구수한 물고기국냄새가 방안을그득 채워주었다.
상이 차려지자 젊은이가 병마개를 따서 술을 먼저 로인의 잔에다 부었다. 그리고나서 자기 잔에다도 조심스레 부었다.
《로인님 드셔요.》
박기섭은 술잔을 들려다말고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 오늘 이거 어떻게 된 술인지. 알기나하구 마셔야지.》
《다른일아닙니다. 어제 돈 좀 부쳐왔길래…》
《돈이라니 한국간 각시한테서 왔다는말인가.》
《그렇습니다. 5000딸라를 보냈습니다.》
《5000딸라라, 거 적잖은 돈인걸! 집을 떠난지가 얼마라지?》
《딱 여섯달입니다.》
《그러니까 반년이 되는군. 그 돈이면…》
《가느라 꾼돈은 리자까지 다 물어주게됩니다.》
돈이라느것이 무엇인지! 개도 먹지 않는 그놈의 돈때문에 아글타글하느게 인간이요 아웅다웅하는게 인간이요 죽고사는것도 인간이 아닌가! 젊은이는 안해를 이국멀리에 훌 보내놓고는 내내 속빼운 얼간이 같이 허전하면서 무겁던 시름이 인제야 좀 풀려지는지 기쁨실린 어조로 말해놓고는 로인더러 어서 술을 들라고 권했다.
주량이 좋은 로인은 첫잔을 단모금에 비웠다. 그래놓고는 얼굴에 웃음실린 젊은이를 다시금 쳐다보면서 벙긋이 웃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자네의 소울주(疏鬱酒)를 마시는군.》
《예, 그렇다구할수도있지요. 거기로 건너가서 소식 몇번 오긴했습니다만 사실 벌이를 어떻게 하고있는지 지울 수 없는 근심때문에 울적했던 내 마음이 다소 해소되니까요..》
《이제는 시름이 놓인다 그 말인가?》
《그렇지요. 벌지 않았으면야 돈을 보냈겠습니까. 정말이지 그 돈만 아니보냈더면 이 병호는 한평생 빚더미에 눌려 일어나지도못하고 죽어버고말겁니다. 3만원넘는 돈 몽땅 5푼리자로 꿨거든요.》
남병호는 이렇게 말해놓고는 지금세상에는 돈없는 사람은 똥값에도 못가요 하고 보탰다.
박령감은 미간을 모으고 그를 보았다.
《하긴 그놈것이 없으면야 간장 한봉지두 사먹질 못하지. 안그래? 그렇다구 돈없이살면 정말 모두가 똥값에두못갈까?》
그러했다. 돈이란 있어야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건 필경아니였다. 젊은이는 자기가 은연중 도리에 맞지도 않은 환금만능을 주장한지라 입을 다물고말았다.
3
습먹은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날의 어스름저녘켠.
《왝-왝-》
《왜갈왜갈》
늪쪽에서 왜가리들이 유별나게 겨끔내기로 울어댔다.
왕-왕-》
밖에 누워있던 개도 짖었다.
《저것들이 왜 저래?》
벽가에 이불을 꿍쳐놓고 등을 붙인채 비스듬히 누워 반도체라지오에서 나오는 가정프로를 한창듣고있던 박기섭은 이상쩍은 생각이 들어 일어나 밖에 나와 보았다. 흰 종이장같은 형체가 아직 뚜렸이 보이고 있는 왜가리 두 마리가 늪에 내려와 앉으려다말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소란떨고 있었다. 다른때는 이러지를 않았다. 더구나 개까지 곁들어 짖어대니 그저일갖지 않았다. 하여 눈주어 늪을 살펴보았더니 저기 통발을 놓은 건너쪽에 무언가 검은 것이 쭈크리고앉아있는것이 분명하게 안겨들었다.
《아니, 저게뭐야, 곰이구나!》
박기섭은 찔끔 놀라 뇌였다.
《허, 그자식이 렴치두 좋다!》
그놈은 분명 고기를 먹자고 통발을 들추고있는중이였다.
여긴 먼 옛날부터 워낙 짐승이 많았다. 늪동쪽도 그렇고 늪서쪽도 그렇고 산고랑을 얼마파고들지 않아도 여우, 승냥이는 물론 노루나 사슴, 메돼지같은 짐승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북으로 한 5리가량 들어가면 로씨야와 중국 량국간의 국계로 금이 그어지는 흑룡강이 있고 남쪽으로 3리밖에 있는 채석장을 지나 20여리를 더 나가면 박령감이 추억을 묻어두고 온 그 조선족동포만 모여사는 마을이 있다. 지금은 채석장에서 돌을 캐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는 거의 무인지경모양으로 조용한 산간지대인것이다. 하길래 국가에서 사냥을 금지시키고 채석장에서 울리던 발파소리가 영원히 멎어버린 후부터는 여기가 진정 산짐승들이 안거를 하는 자유의 령지로 되여버린것이다.
《저놈 안되겠구나.》
박기섭은 시르맨커로 제꺽되들어가 양철세수대야를 얼른찾아 손에 들고 나왔다. 생각같아서는 총을 한방 갈겨 그놈을 멀리 쫓아버리고싶었지만 전해에 현공안에서 치안을 위해 사창은 말끔히 걷어들이는바람에 지금 그한테 쓸만한 큰 흉기라고는 칼과 창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마저 사용할 정황이 아니였다.
박기섭은 주인이 나오니 더 악패듯 짓어대는 개를 우선말려놓고 우머르천에 올랐다. 그리고는 노젓는 소리를 죽여가면서 가까이로 살살 몰고갔다. 그때까지도 곰은 세상모르고 셈평좋게 앉아 퉁발속에 들어있는 고기를 들춰먹고있었다. 로인은 우머르천이 곰의 등을 떠박아놓을지경 바투접근했을 때 갑작스레 소래기를 치면서 세수대야가 깨질지경 마구두드렸다. 그 소리가 꼭마치 폭죽터지는 것 같이 요란했다. 몹시놀랜 그놈은 와닥닥 뛸쳐일어나더니 그만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놓아 어디론가 멀리사라져버렸다.
통발은 곰발에 뜯기워 영못쓰게되였다. 그래서 박령감은 그 자리에다 전날손질한 통그믈을 놓고는 이틑날 서산에 싸리비러갔다. 통발을 하나 새것을 만들어야하거니와 고기말릴 발도 하나 새로 크게 결어야했다. 하나있긴해도 삭아서 이젠 아궁이에다 넣어버리기나 할 것이였다.
그는 싸리두단을 베여다놓고 계획대로 통발 하나와 발을 하나 훌륭하게 만들었다. 그러고서도 손은 얼마놀사이가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한시간가량 낮잠을 자고나서 그는 늪에 나가 거기다 늘여놓은 그믈을 들추었다. 무계가 거의 반근씩은 나갈것같은 초어가 여나무마리나 걸려있었다. 박기섭은 자기가 저녁에 끓여먹을 놈 한 마리와 개한테 줄놈 한 마리만 골라 내놓곤 나머지는 등때기를 갈라 밸을 끄집어냈다. 그런 후 그는 그것들을 싸리꼬챙이에 꿰어 장대기에 높이올리걸었다. 아직은 건들바람부는 한가을철도 아니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쉬파리들이 좋다고 달려들어 하루새에 거기에다 후대를 번식하여 개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버릴것이였다.
이틑날도 아침을 먹자 박기섭은 다래끼를 갖고 시르맨커를 나왔다. 머루가 익었을테니 이제는 그것을 딸때가 된거다. 혼자사는 박기섭이한테는 그같은 유취의 일이 곧 소일거리기도했다. 그는 해마다 늪의 고기를 잡아 팔아서 손에 목돈을 쥐거니와 철이 되면 머루와 다래를 따다 팔거나 잣도 따 팔아 소비돈을 장만했다. 그런건 그가 직접 갖고다니며 싸구려를 부르지 않아도 얼마든 처리되였다. 부근의 한족마을에도 향소재지마을에도 해마다 제발로 찾아오는 되거리장사군이 있어서 산을 나가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값을 쳐 넘겨만주면 그만이였던것이다. 박령감이 지금기르는 마스티브종개를 안아오던 전해까지만해도 맡아놓은 임자가 따로없는 그따위 산열매들은 그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였다. 푼전벌이라도하자고드는 한족들이 철이 채 되기전부터 그것을 제가먼저따려고 짓꿎게달려들군했던거다. 그러다가 한 번 그들중의 누구엔가 횡래지액이 떨어져서야 모두 맥을 놓고 다시는 감히 올 념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 젊은 사나이가 머루따러왔다가 나무에도 바라오를줄을 아는 사나운 달곰을 만났는데 엉겁결에 소래기를 내질러서 짐승을 놀래워놓곤 미처피하지도못하고 그놈한테 잡혀 각을 뜯기웠던거다. 그런 횡사가 있게되니 박기섭이도 일신의 안전을 위해 지금의 개를 가져다기르게된거다. 전에 개가 두 마리있긴했어도 기운이 세지 못하니 똥개만 별반나은게없었더랬다.
《이놈아, 너도가자!》
박기섭은 개를 집지키게 놔두지 않고 데리고 산속에 들어갔다.
온갖나무들로 혼성림을 이룬 산은 쨍쨍 내리쬐이는 땡볕에 빛을 바래였고 새들은 재잘거렸다.
《저것좀 봐, 고약한 놈들이지. 면목아는 사람왔는데두 나와서 반길 념은 안하구 그늘속에 숨어 떠들기만하는구나.》
박기섭이 새를 놓고 사설하니 개가 컹컹 두마디짖는다. 그러자 새들은 내던 소리를 딱 그친다.
짙은 잎들을 떠인 느릅나무는 묵묵히 서있고 사시나무는 미풍에도 떨고있었다. 박기섭은 참나무에 겨우살이덩굴이 감긴 것을 발견하자 가까이에 다가가서 손을 댔다.
《잘 만났다. 먼저 네 잎부터 좀 뜯고봐야겠구나.》
박기섭은 겨우살이덩굴잎을 차대신쓰고있었다. 한방에서는 잎과 줄기를《인동》이라부르고 꽃은《금은화》라 하는데 약재로쓰인다. 그래서 박기섭이는 한때 품놓고 그것을 전문채집한적도있다. 그것뿐이아니였다. 여기의 산들에는 다른 초약재들도많았다. 그래서 약초캐기꾼과 심마니들이 드나든다.
거기서 몇발짝가지 않아 머루며 다래넝쿨들이 구름처럼 엉킨 숲이 있었다. 박기섭은 발이 먼저간데의 머루부터 따기시작했다.
새콤달달한 머루들은 과연 탐스러웠다. 오로지 따는 품만 팔면 제 입에 들어올 수 있는 고마운 자연의 과실이였다.
시간이 얼마걸리지 않아서 딴 머루가 반다래끼나되였다.
개가 보이지 않고 가까운 숲 어디에선가 쌕-쌕-하는 소리들려왔다.
박기섭은 팔에 끼고있던 다래끼를 얼른내려놓고 달려가봤다.
개가 오소리를 만나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약자인 오소리는 겁을 대단히 집어먹었지만 개가 자기를 건드리느라 앞발을 들때마다 그렇게 소리내면서 입을 사려물었다.
《조 앙증한놈이 대항하는 꼴보지. 그러다가 물릴라! 관둬!》
박기섭은 개를 말렸다. 개는 주인의 명령을 알아듣고는 더 집작거리지 않았다.
굴에서 나왔다가 재수사납게 사지판에들어 하마터면 목숨잃을번 한 오소리는 어디론가 정신없이내뺐다.
《어허. 이거 왜이래!?》
박기섭이 머루를 다 따갖고 시르맨커에 돌아와보니 꼭 닫아놓고갔던 문이 제대로아니였다. 바람이 그럴순없다. 누군가가 열었다가 제대로 닫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제길헐거. 내가 널 데리고갔더니만 이런 일 생겼구나! 어느 몰상식한 녀석이 주인없는 사택을 맘대루건드리는지 원!》
주인의 말에 개도 분하다는 듯 머리를 기웃거린다.
고맙게도 집안의 물건들은 다친것같지 않았다.
헌데 밖에 나가 돌아보니 장대기꼭대기에 달아놓았던 고기궴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도적맞힌거다. 기분잡칠일이였다. 여직 이런 도난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변방순라병들은 들리면 물이나 달라해 마시고갔을 뿐 주인없어 인적기나지 않을 때는 문도 열어보지 않고 되돌아갔다. 그리고 전에 여기를 찾아오군했던 물고기되거리꾼도 돌캐던 채석장이도 산열매따기꾼도 산장이도 모두 제 볼 일이나 보고 주는거나 받아가질 뿐 감히 더러운손짓은 하지 않았다. 박기섭이 비록 다리는 성하지 않지만 겉모양부터 호락호락하게 생기지를 않고 점잖으니 누구든 그를 허술히 보지 않고 행동거지를 례절바르게 가꾸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런일이 발생하다니!.
《내가 정신없었지. 이제는 자물쇠를 사야겠구나.》
결코 태평가만 부를 세월이 아니였다. 로인은 자기가 이제야 우뢰소리듣고 문득 잠을 깬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박기섭이 여직 너무나도 무경각했던 자기를 속으로 한창 책망하고있는데 마침 마을에서 남병호가 왔다. 여기에 왔다간지 열하루만이다.
《로인님 그지간 무사하셨습니까?》
젊은이는 벙글거리며 문안하고나서 검은색인조가죽가방가방 쟉크를 열었다.
《로인님 부탁하시던 전지약을 사왔습니다. 그리구 신문도 빠짐없이 갖고왔구요.》
전번에 갈 때 사오라고 부탁한 물건외에 이번에도 술을 두병갖고왔거니와 깜빡잊어먹고 미처부탁도못했던 정통편까지 1000여알사와서 로인은 더 고맙고 감사했다.
《거 다음번에는말이네 날 자믈쇠 하날 사다주게.》
로인은 젊은이가 갖고온 신문을 읽으려다말고 말을 꺼냈다.
남병호는 대방의 안색이 어딘가 흐려있음을 보아내고 물었다.
《아니 갑자기 자믈쇠는 왜서요? 여기야 문잠그는 법 모르구사는 고장이라면서두?》
《이제부터는 아닐세.》
《이제부터는 아니라니요? 그러니 내없는연에 도적이라도 들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네. 어느 불청객이 와갖고 기분잡칠노릇했네.》
로인은 그한테 머루따러갔다오는 사이에 고기뀀이 읺어진 일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참 깜빡잊었다면서 따온 머루를 먹으라내놓으면서 도적이 어떤녀석인지 모르겠다고 말꼬리를 붙였다.
남병호가 그 말을 듣고보니 문득 생각나는바가 있어서 먹자고 입가로 가져갔던 머루송이를 도루내렸다.
《근식이는 왜 여게왔더랬습니까?》
《근식이라니! 그게 누군가?》
《누구겠습니까, 지금 현에 가있는 근식이지요. 장용팔의 아들을 모릅니까?》
《장용팔의 아들이라?…현에 가있다지?…그럼 그게 장용팔의 둘째아들아닌가.》
《맞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지요. 그가 지금 거기가 무슨 건축회살 하나 꾸렸는데 들을라니 돈을 대단히 잘번답디다.》
박기섭의 눈에 어깨가 딱바라지고 철색의 얼굴에 늘 상고머리를 해갖고 다니던 한 사내의 몰골이 밟혀왔다. 잊어지지 않는다. 동란이 한창심하던 때 그는 중학생반란퇀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헤덤벼치던 맹장ㅡ깡패였던 것이다. 박기섭이 향내를 한바퀴 조리돌림하며 투쟁받고나자 그가 학생반란퇀을 대표해갖고와서《계급원쑤》를 현에까지 끌고가 투쟁했던 것이다.
《아니 그자식이 그래 여기루왔더랬나?》
《로인님은 그래 모릅니까, 오토바이뒤에다 웬 사람을 태우고가던데요. 나는 오다가 마주쳤습니다. 그네들이 여길내놓구서는 어디메루왔다가 가갔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로인님!》
《음-도적은 그놈들이였구나!》
로인은 굳어진 얼굴에 노기를 피여올렸다.
점심때가 됐으니 배속에 넣을 것을 넣어야했다. 그래서 남병호는 박로인먼저 서둘러 우머르천을 타고 늪저켠에 가 로인이 새로만든 싸리통발을 털어왔다.
전번과 꼭같은 물고기요리 두가지가 제꺽만들어졌다. 이번의것은 남병호의 솜씨였다.
《요즘은 어떤가? 거 모두들 출국수속하느라 밀어넣구는 가지두못하구 떼운 돈은 그래 찾기나했는가.》
《못찾았습니다. 어떻게 찾습니까.〈보안〉은 해놓았답디다.》
《그놈을 붙잡아야될텐데.》
어쩐지 남의일로만돼보이지를 않았다. 제 동포가 아닌가. 어쩌면 이렇게 되어가고있는가. 할빈어디서 산다는 사람이 사업고찰단을 조직한다 한국가고푼 사람은 기회를 놓지지말고 자보하라 보증코되니 믿으라면서 인당 예약금 2만원씩 열사람치 20만원이나 제꺽챙겨갖고 어디론가 내뺀것이다. 사기꾼한테 속지말라고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그토록 강조했건만 왜 아직도 눈을 펀히 뜨고 그꼴로 당하기만하는지?…로인은 가슴터질 일이라면서 한탄을 뽑았다.
이백여호되는 동네가 외국나들이바람에 한창 두부장끓듯이 끓고 있었다. 로씨야에 간다 리비야에 간다 한국에 간다…이미 가서 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 가자는 사람도 있다. 이 마을도 외현의 여느고장과 마찬가지로 가는 도경이 여러갈래였다. 친척방문으로 가는 사람, 로무로 가는 사람, 연수이름으로 가는 사람, 고찰단에 들어 가는 사람…헌데 진짜는 적고 거의가 가짜였다. 수속이 그렇게 엄함에도불구하고 지난해의 봄을 이어 올년초에도 젊은녀성 둘이 제 남편과 가짜리혼하고는 생면부지의 한국사내를 따라갔다. 하나는 경상도집며느리 봉금이고 다른하나는 남병호의 각시였다.
그런모양으로 가서 만들어낸 비극이 그래 적은가?
《간 사람한테서 요즘은 소식있는가?》
《이천원들이고 전화를 가설했습니다. 제때에 소식알려구요.》
《그래 통화를 해봤는가?》
《저쪽에서 받는 사람은 있는데 본인이 자리를 옮겨 지금 거기에 없다는 답이 왔습니다.》
《그러니 자기사람하구는 말을 못해봤다 그건가?》
《예 아직은 그렇습니다. 이제 소식오겠지요. 제 딸이 보고싶어서도 오래못견딜겁니다.》
《뉘집의 가정보모로 들어갔다했지?》
《예. 건너가자부터 하는 일이 그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가 무슨일을 하는지.... 딸보고싶어서도 이제 소식보내겠지요, 않그렇습니까.》
젊은이가 우려 반 기대 반으로 하는 말이였다.
《농사는 잘되여가고있는가?》
《약을 제때 쳐주지 않았더니 벼가 도열이 숱해갔습니다. 》
《저런! 일곱짐논도 제대로 다루지못하다니? 그렇다면야 올해는 페농이 아닌가!》
《그깟거 먹을알도 없는 농산데요 뭐.》
《먹을알도없는 농사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은 가졌는가?》
늙은이는 제 각시를 보내놓고는 안착해서 농사도 제대로짓지
않고 들떠지내는 그가 낯선사람같아 다시쳐다보았다.
4
해맑던 하늘에 갑자기 비를 머금은 매지구름이 떠돌고있다.
남병호가 돌아가자 사흘만에 향정부에서 사람 둘이 박기섭로인을 위문하러왔다. 하나는 면목이 아리숭한 한족젊은이고 하나는 향에서 토지를 관리하는 성이 김씨인 조선족 중년사나이였다. 그 둘은 자그마하고 고요한 늪을 품고 있는 수려한 산색에 심취하면서 피서하기 좋은 여기가 휴양지로는 과연 들고났다고 감탄사를 올리기도하고 왜 여직 이런데가있는것도 몰랐을가하기도했다. 헌데 그들이 노는 거지를 보니 말이 위문이지 속은 딴판이였다.
《로인님 그사이 잘 지냈습니까?》
동포사나이가 로인을 찾아 하는 첫 인사였다.
《덕분에 잘있네. 건데 이 사람은 누구요?》
《모르는모양이구만요, 올년초에 새로올라온 부향장인데요.》
로인이 아 그런가고 인사를 차리려는데 저쪽이 대방을 눈빗질해보다가 먼저 손을 내밀며 말차림했다.
《왕덕보입니다. 늦게뵈여서 참 미안합니다. 응당 진작와봤어야할건데 몸뺄새가 없어서 인제야 이렇게…》
《미안해할거있소 향장분이 나같은 령감을 잊지 않고 먼길도 마다하구 왕림해주셨는데..... 외려 내가 송구스럽구만.》
김씨가 이켠이 말을 끝맺기바쁘게 얼굴에 웃음을 바르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로인님은 아직두 건재하시군요. 무병하다니 우리도 정말기쁨니다.》
《그런가. 감사하네.》
로인이 만면에 희색이 피자 부향장이 입을 다시열었다.
《그런데 로인님, 로인님은 이젠 년세가 적잖은데 그러다가…지금은 무병한 것 같지만 모릅니다. 혼자 그냥 이런 산지에 있지말고 이젠 벌방에 나가지내는게 어떻습니까.》
《날 여기서 가라는말인가?》
《현에 양로원있는데 거길가면 곁에서 돌봐줄사람이 있지요.》
《그건 나도아네. 그래 날 부양 할 사람 없는것같아서 념려되는가. 있네, 있어. 심양에 내 조카 하나있구 북경에두 하나있네. 그들이 나를 데려가려구하네. 둘다 여기루 왔더랬지. 심양조카는 지난겨울에 왔다갔구 북경조카는 올봄에 왔다갔지.》
《아 그랬습니까. 그럼 따라가실거지 왜 가지않았습니까?.》
《왜 가지않았는가말이지. 그건 내가 여기서 혼자래두 그냥살고싶어서였지.》
《성미두 참 별낳네. 그래서야되겠습니까. 조카들이 자원해 모시겠다면야 거기루가야합니다. 가시오.》
《안가겠네.》
《안가서됩니까. 가시오.》
《왜 이러는가. 가고 안가는거야 내 일이 아닌가.》
《물론그렇기도하지만 충고하니 로인님은 노여워말고 꼭 들어야합니다.》
《내가 당신의 충고를 꼭 들어야 한다? 대체 무슨 리유에?》
로인의 안색이 좋지 않게 돌변하는 것을 보고 김씨가 왕가먼저 입을 열어 해석조로 알려주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여기를 이젠 우리가 써야겠기에.》
《여기를 쓰겠다? 무슨말인지? 》
《정말입니다. 써야합니다.》
《아니 뭐라? 향에 그래 부쳐먹을 땅없어 나더러 여기를 내놓으라는건가. 보다싶이 여긴 산골이구 있다는건 늪뿐인데.》
《우리가 그걸 모르구온게 아닙니다.》
《그럼? 내가있는 여기 땅속에 꼭 캐내야 할 보배라도 있다는건가. 과연 그렇다면 난 지금이라도 두말않고 떠나겠네.》
《그런게아닙니다. 사실은…》
《사실은 어떻다는건가?》
《향에서 여길 더러 팔아버리자구그럽니다. 늪하고 산 얼마가량을요.》
느닷없이 닥쳐든 골치거리였다. 남의 보금자리를 빼았자고들다니. 심기사 단통 뒤틀린 박기섭은 찌무룩해서 보다가 화가 솟아 토라진 음성으로 캐물었다.
《무슨소린지. 그래 누구한테 뭘 하느라구 팔자는건가?》
《저…잠시 그건 말못하겠습니다.》
《잠시 말못하겠다? 좋아. 그럼 말하지말게. 그런데 자넨 저 늪의 소유권이 누구한테있다는거나 알구와서 이러는가?》
로인이 감사납게 심사를 부리니 김씨는 두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토지를 관리하는 사람인데. 원래의 주인이 떠나면서 로인한테 넙겨주었으니 지금 소유권이야 물론 박로인께 있지요. 우리도 무리하게 내놓라는게 아닙니다. 늪면적만한 땅을 떼어드리거나 아니면 늪을 돈으로 값을 쳐 드리면안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야 박로인은 리익보면 보지 손해는 절대안볼겝니다.》
《내가 그런걸 따질 사람인가. 돈이 아니라 금덩이를 준대두 난 싫네.》
박기섭은 괘괘떼면서 청간을 퇴박놓고는 두사람 다 두말다시 번지지 못하게 입을 막아보냈다.
향간부 둘은 돌아갈 때 이제 곧 다시오리라 했다. 한데 그리고 간 사람들이 한달이 지나도록 다시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느라니 어느덧 추석이 돌아왔다.
하늘높이 비구름이 깔렸다.
이날 아침 일찌기 남병호가 전에 늘 타고다니던 자전거를 타지 않고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새것이였는데 외국제였다.
박령감이 물었다.
《제건가?》
그것을 신나게 타고온 남병호는 벙글거리며 대답했다.
《예. 제거아니구 남의거겠나요. 하나샀습니다.》
박령감은 담통 큰 자식이 멋이 좋구나 하는 눈매로 그를 피끗훝고나서 차체에 한자(漢字)로《飛燕》이라 씌여있은 것을 보고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비연패라!》
《예. 비연패입니다. 한국제지요.》
《값이 얼만데?》
《이만원입니다.》
《뭐! 이만원이라?》
값이 기껏해야 몇천원일줄로 알았는데 입이 딱 벌어질지경 인지라 박령감은 일시 멍해졌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 돈 안주고야 어떻게 이런걸 만지기나한다구요.〈혼다〉는 한 대에 만원 더 붙어 삼만원인걸요.》
산품자랑인가 값자랑인가? 박기섭은 자전거를 타고서도 얼마든 다니는 시골길에 값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멋부리는 젊은이의 소행이 순간 한심하게만 보일 뿐이다.
전화를 놓고서도 저쪽에서 련락이 없어 취향이 오리무중이여 속을 은근히 태웠던 남병호는 요즘 뜻밖에 또 안해가 부친 돈 2,000딸라를 받았다. 요즘 딸라와 인민페교환시세가 8,2밖에 안되니 그 돈만 갖고는 20,000원짜리 물건을 살수도 없는거다. 남병 호는 부족분은 남한테 꾸어서 보태갖고 그것을 샀던 것이다.
《이제 또 벌어서 붙이겠는걸요 뭐.》
박기섭은 그사이 값비싼 외국제오토바이를 사갖고 그것을 모는 재간을 배우느라 그슬러그런지 아니면 부러 자랑하느라 여기저기를 싸다녀서 그런지 전만 더 감숭감숭해진 젊은이의 얼굴을 다시보며 물었다.
《애의 엄마는 그래 지금 어디에 가 있다는가?》
《서울시 서북구 어디라구 돈깍지에 썼습디다. 》
《전화나 편지로 말은 없구?》
《없습니다. 아무튼 돈을 부치니 됐습니다. 아무렴…》
《그래두 그게 어떻게 무슨일을 해서 번 돈인지는 알구서 써야할게 아닌가.》
《전번같이 또 어느집 보모노릇하거나 아니면 거기 어느 식당에 들어가있겠지요, 뭐.》
《식당일도 여러 가지야. 거긴 말루는 식당이라지만 술집인거 많아 그런데를 들어가서 접대원아가씨노릇이나 작부노릇할지두 모르잖아. 내놓구 사내들의 돈빨아내느라 허리춤푸는 요리간두 아주많다던데.》
《요리간은 몰라두 술집이야 여기두 쌔쿠버리지 않은가요.》
《그래두 환경이야 여기완 판다르지. 사회제도가 달라 거기서는 개방이 돼도 여기서는 안되고 금하는게 있어.》
박기섭은 외국에서는 허락이 되고있는 성자유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비록 나이 많아 늙기는했어도 직감력은 무디지 않고 살아있는 그였다. 리혼했으면 이젠 남이지 뭔가. 뼈마디에 피가 한동이씩 고인 녀석이 제힘갖고 살아가지두못할주제면야 아예 뒤여지기나할거지 분에 없는 향락을 남처럼누려보겠다고 지지 아기자기살다가 불쪽에 달린 제 장기는 쓰지도못하고 가두어 넣고 썩히면서 고운 각시를 생면부지의 한국남자에게 주어 따라보내다니! 애초에 그렇게 해서 돈벌어보자고 타산한것부터가 원체 틀려먹은 한심한 노릇같아 로인은 한마디 일깨워주었다.
《사람의 마음은 바위에 새겨놓은 글이 아니야. 자넨 제 각시가 마음변하지 않을거라구 어떻게 장담을 하는가. 돈보낸다구 그저 시름놓지 말구 어디서 무슨일을 하고있는지를 알아보라구. 면목아는 사람 거기가있는게 여럿된다했지.》
《사인정탐을 내놓으란 말씀인가요. 그렇게 하면 부부지간에 감정이나 상하게 만들지 않을가요. 우리는 정말 가짜리혼을 했습니다. 전 그가 이제 돈 다 벌구는 꼭 돌아오리라믿습니다. 약속을 그렇게 단단히 하고 갔으니까요.》
《그런가. 녀인이 마음 정말 철과 같다면 어디 그렇게 믿어보라구. 늙은 것이 젊은이가 들기좋아하지 않는 말을 곱씹으면 로망으로 보일거니 더 말치않겠네.》
남병호의 귀에는 그의 충고가 과연 쓸데없는 소리로들렸다. 그는 로인한테서 낚시를 달라해서 그걸갖고 시르맨커뒤의 물후미에 가 점심먹을 념도 하지 않고 한나절 혼자서 낚시질만했다.
오후가 되자 날이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습기를 머금은 강바람이 북쪽골을 타고 불어왔고 찌프린 하늘밑으로는 해묵은 솜같은 구름장이 몰려다녔다.
《에구, 이거! 빨리 집에나가야겠구나!》
온갖잡념에 몰려 시간가는줄을 모르고있던 남병호는 인제야 정신을 벌떡차리면서 고기잡이도구들을 급급히 거두었다.
《아니, 날이 저무는데 가자구그러는가. 집에 가두 혼자아닌가. 날이 저문데 있게나.》
박령감의 권고였다.
홀아비신세에 이제는 학교를 다녀야 할 딸을 데리고 살아가자니 지겨운일이였다. 그래서 남병호는 학비와 식비를 대주기로 하고 이곱살먹은 딸애는 할빈에 있는 튼형님네 집에 보내여 거기서 학교를 다니게 하고 있다. 하니까 박로인의 말과같이 가봐야 혼자인 것이다. 이제 떠난다면 락자없이 가다가 중도에서 비를 맞을것이다. 그래서 남병호는 가지 않고 묵기로 작정했다.
날은 스산했다. 두 사람은 어둑시그레한 집안에 앉아 바람에 흩날리면서 소란스레 내리는 비소리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지리한 장밤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둘다 일찍부터 드러누워 잠충이같이 잠만잘수는 없었다. 이럴때는 말주머니를 풀어놓는게 상책이였다. 꺼내놓고 할 수 있는 화제거리는 많고많았다. 박기섭은 젊은이의 기분을 잡치우지 않으려고 한국과 거기로 간 사람들의 일에 대해서는 다시더는 입밖에 내놓고 운운하지 않았다. 신문을 보거나 방송을 듣거나 떠도는 풍설만들어도 근년들어 외국에 벌이를 나갔다가는 돌아오지도못하고 잘못된 사람이 적잖았다. 이를테면 어느 신문사의《하해》한 기자가 로씨야에 장사를 갔다가 돈도얼마못벌고 사소한 오해로 인해 마찰이 생겨 그곳의 폭력조직인《마피아》의 손에 살해되여 묶이운채 종이곽속에 들어 쓰레기장에 처밖혀있다가 경찰들에 의하여 발견된 일이며 아재비조카가 거기의《얼모즈》와 짜고 벌이를 나간 제 마을사람들을 털어먹은 일이며 로무로 한국의 원양어로선에 오른 사람이 거기의 뱃놈과 등지고 지낸탓으로 리유불명하게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일이며 리비야에 차몰이를 갔다가 정체모를 악당손에 차를 빼앗기우고 목숨까지 빼앗긴일이며…이런것들다가 다시씹어보면서 사고해볼만한 이야기였다.
긴 한담 끝에 남병호가 지금의 자기태도를 설토했다.
《솔직히 말해 전 그래서 지금두 외국에는 돈벌이를 나가고싶은 맘없습니다. 벌어도 안전하게 벌어야지요.》
《그러면 돈벌이를 어디에는 갈수있다는말인가?》
《심수에 가고십습니다. 듣자니 거기는 우리 동포가 가는 교회가 둘있는데 어려운 사람 밥먹여주고 일자리알선도한답디다.》
《그게 어느때의 일인가. 전에는 그랬다는 신문글을 내가 본것같네. 거기에다 밝혔더군 수천명이 맹목적으로 몰려드니 그네들도 받아당하기 힘든형편이라구.》
《그렇다구합디다. 그래서 전 아무리 가고싶어도 거기는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
남병호의 결졍이다.
로인이 흥미를 가지면서 캐듯 물었다.
《외국에는 안전이 념려돼서 못가구 심수에는 일자리찾기힘들어서 못가구 그럼 어디루 가기싶은가?》
《북경에 가기싶습니다. 거기에는 한국사람들이 들어와서 꾸리는 기업이 숱하답니다. 》
《한국기업이야 어덴들없겠나. 산동성 하나에만도 천여개나 된다잖어. 거기 청도나 위해로도 갈수있겠는데 왜 하필 발불이기 제일어렵다고들하는 북경에는 가려는가?》
《거기는 다르지요. 나가서 생활할바에야 차라리 수도가 낫지요. 나라의 지도자들을 볼수도 있구 외국사람두 자주볼수있구… 아무튼 그 어디보담도 볼거리많아 식견도 자연히 더 넓어질것만은 사실이 아닙니까. 안그렇습니까?》
《허허허…》
그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해서 로인은 웃기만했다.
솔직히 말해 일은 하기 싫고 돈은 쓰기싶고 나가벌자니 능력은 없고 그래서 머리통박을 굴려가면서 기껏생각을 했다는 것이 , 궁여일책(窮餘一策)이라는 것이 제 녀편네를 한국에 시집보내는것이였다. 리혼했으면 리혼이지 가짜라는게 뭔가. 법은 그런 사정을 보아주지않는 것이다.
박기섭은 자기를 존중하고 믿어주면서 가까이 접근하는기간에 어느덧 친근한사이로 되여가고있는 이 젊은이가 초중공부까지해서 판무식은 면했지만 허우대뿐 정신은 만신창이니 바보나답지 않은 안타까운 인간존재임을 오늘에야 똑똑히 알게되였다.
《우후ㅡ우후ㅡ》
비는 점점 그쳐가고 어디선가 칡부엉이 운다.
두사람은 장밤 애기하나니 늦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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