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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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 설한 (4)
2014년 03월 01일 01시 36분  조회:2682  추천:1  작성자: 김송죽
 

 4. 

 

지난 을미년에 있은 <<마관조약>>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확립시켯으며 조선을 남만주침략을 위한 경제적 군사적 근거지로 되게 하였다. 비록 그후 로씨야, 프랑스, 독일 3국의 간섭으로 인하여 료동반도가 다시 중국에 반환은 되었으나 대련과 려순항구는 결국 일본의 소유로 되었으니 이것은 일본이 앞으로 만주와 몽골을 침략하기 위한 문호를 열어준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대만과 팽호렬도의 강점은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 남방에서 근거지를 건립할수 있게 하였다.

약소국가는 렬강들의 앞에 놓인 하나의 먹음직한 고기덩이였다.

원동문제에서는 영국은 많은 리익을 이미 얻었으나 로씨야와 독일은 중국에서 방금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중이였고 프랑스도 이미 자기가 얻은 리익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마관조약>>이 조인되자 제정로씨야는 매우 놀랐다. 그리하여 로씨야는 프랑스, 독일과 련합해서 일본정부에 대하여 동시에 항의를 제출하였다. 즉 일본은 료동반도를 즉시 반환할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로씨야, 프랑스, 독일이 무력으로 이에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당황하여 이미 20여년의 개화로 실력을 뽐내면서 입에 거의 삼켰던 료동반도를 게워놓았다.

이같이 싸움에서 진 청나라는 말할것도 없으려니와 제법 쎈줄알았던 일본이 싸움에는 이기고도 3국의 간섭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자 조선의 조정에서는 민씨일파와 일본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로씨야의 세력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전승국의 야심이 있은 일본은 아직도 조선같은건 주무를수 있어서 저 미우라(三甫)란자가 재류일본인과 더불어 대원군을 받들고 경복궁에 들어가 민비를 살해하고는 개화를 한답시고 <<단발령>>을 내렸던 것이다. 너무나도 무능한 정부를 반대하여, 왜적을 반대하여 각 지방에서는 의병이 일어났다. 그러자 무능한 정부는 다시 일본의 병력과 함께 참혹한 도살로써 의병을 탄압했다. 허나 일본은 3국간섭에는 어쩌지 못하고 잠시 물러갔다.
그다음은 로씨야의 천지였다. 내각은 순식간에 친로세력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의 군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일은 물론, 심지어는 정부에서 돈쓰는 일까지 로씨야가 참견하게 되었다. 고종은 자기 집에서 살 권리도 없이 로씨야의 공관에서 셋방살이를 해야했고 내렸던 단발령도 취소하였다.
그리고 인제는 그 본래의 사명을 잊어버린 의병의 어떤 찌꺼기들은 산골로 돌아다니면서 로략질이나 해먹었다.

바로 민비가 죽은 이듬해의 이러한 세월에 좌진이는 삼불산에서 벌떼에 쏘이였던 것이다.

이해, 건양(建陽)원년 동지달 그믐께. 좌진의 딱친구 갑룡이가 <<명심보감>>한권을 마치였다. 갑룡의 아버지는 기뻐하면서 아들의 책갈이턱을 내려했다. 그런데 술은 있어도 안주감이 문제였다. 이런 사정을 알게된 좌진이는 제또래의 애들을 데리고 새를 잡았다. 서당집주인 선달이네는 애들이 잡아온 새고기로 맛나는 술안주를 만들었다.

이날 저녁 훈장 김광호와 갑룡의 아버지 그리고 주인 김선달령감은 즐거운 술상을 방금 벌려놓았는데 여러해나 서울에 가있던 갈산의 청년 김석범(金錫範)이 머리를 깎고 문득 나타났다.

석범은 광호선생의 외척생질로서 개성이 시골의 여느 청년들과는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약국을 차려놓고있으면서 아들이 그것을 이어받아 경영하기를 바랐다. 허지만 석범이는 그런일에는 맘이 없었던지 4년전에 표연히 집을 나가 별로 하는일없이 서울일판을 방황하다가 돌아온 것이다. 왼쪽으로부터 가리마를 곱게 갈라붙인 하이칼라머리, 짙은 콧수염.... 이 세상의 사람같지 않게 변모한 그의 출현은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경아와 호기심을 자아냈다.

<<거참 멋진데!.... >>

좌진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기이한 사나이를 향해 눈총을 놓는 사람도 있었다.

허지만 이 신식의 청년은 그쯤한건 벌써 각오했던바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오자바람으로 광호로인앞에 엎드려 인사부터 올리였다.

<<삼촌! 그지간 옥체무사하셨습니까. 인제뵙기 황송합니다.>>

<<난 무사히 있네라. 건데 넌 머리를 어쨌느냐?>>

석범청년은 지난해의 11월에 <<단발령>>을 내리니 깎았노라했다.

이에 늙은 시골훈장은 생질 보고 남이 하지 않는 짓을 구태여 너만할건뭐냐, 량친과 선조신령들 앞에는 무슨 낯으로 대하겠느냐며 조카를 나무랐다.

석범이는 머리태를 없애버린게 무슨 죄될일인가, 다른사람이야 리해하건말건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왜놈들의 참견으로 깎다만것이 비록 창피스럽긴하지만 조선사람도 오래잖아 머리를 다 깎게 되리라 했다.

그제야 광호선생은 더 나무리는 말이 없이 서울의 근황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석범이는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徐載弼)이 새로 독립협회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독립협회의 발기로 영은문자리에다 독립문을 세웠다는 것을 말하면서 일본에도 로씨야에도 청나라에도 그 어느 나라에도 기탁하지 말고 내 힘으로 내 나라의 독립과 개화를 해보자는 것이 그분들의 생각인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광호선생은 생질의 말을 곰곰이 듣고나서 의례그래야지 하면서도 신심은 나지 않아서 뇌이였다.

<<생각이야 좋다만 그게 어디 쉽겠냐?>>

<<쉽지 않으니 악을 써야지요.>>

이러면서 석범이는 게속해 지금 조선땅에 와서 행세군으로 나선 로씨야가 해군기지로 쓸 항구를 얻으려고 별의별수단을 다 쓰고있는 중이라 하곤 픽 웃더니 독립협회가 존재해있는 날까지는 로씨야가 그 어떤 묘한 수단을 쓴다해도 그대로놔두진 않을거라했다.

김선달로인이 짚이는데가 있는지 그더러 네가 바로 독립협회의 사람이여서 선동하러 온게 아니냐 했다.

석범이는 묵묵부답이더니 서울사람들은 벌써 개화가 되어가고있노라고 화제를 돌리였다.

김선달로인이 다시 입을 열고 아까말한 서재필이라면 갑신년에 김옥균과 같이 개화정변을 일으켰다가 해외로 망명간 사람이 아닌가고 물었다.

석범이는 바로 그렇다면서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황후를 잃은 상감께서 내 궁전은 버젓이 두고서도 남의 공관에 가서 셋방살이하면서 지금 매일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노라했다. 그리곤 정신차려야지 넋없이 앉아있다간 반드시 남한테 집어삼키우고말리라고, 그러니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너나없이 목숨바쳐 싸워야한다고 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김선달이만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더러 말을 좀 삼가하라고 타일렀다, 젊은놈이 세월이 어지러운 때 까딱잘못했다가는 무슨액을 당할지 모른다면서.

석범이는 입가에 랭소를 머금은채 더 말이 없다가 늙은이 두분한테 인사말을 하곤 서당을 나갔다.

 

좌진이는 뭐든 좀 더 알고팟다. 그래서 이 자리로 그를 훌쩍보내는게 아쉬워 슬며시 따라나섰다. 쌀쌀한 밤추위도 잊고 따라가다가 그가 돌다리를 건너 모습이 언덕에 가리워질때까지 눈으로 바래였다.

물론 석범이는 자기를 이같이 바래주고있는 고마운 아이가 곧바로 몇해전에 작고한 참봉 김형규의 둘째아들이란것을 알고는 몰라보게 자란데에 깜짝 놀랐다.

갈산마을에 개화청년 석범이가 돌아와서 며칠후, 광호선생이 일이 있어 서당을 잠시 비우게되였다. 그가 집에 간 며칠간 좌진은 날마다 30여명의 제또래의 아이들을 적군과 아군으로 갈라 마을밖에 있는 솔밭이며 병풍바위를 돌아다니면서 진치기와 접전놀음으로 날을 보내였다. 아군은 10명으로 한국군(韓國軍)이라 이름달아 좌진이 자기가 거느리고 나머지의 20여명은 각각 청군(靑軍), 일본군(日本軍), 아라사군(로씨야군)이라 이름달아 꺽지손이 센 다른 아이들이 선발되여 거느리였다. 그네들은 각기 자그마한 헝겊쪼각으로 자기편을 나타내는 깃발을 만들어들었다. 일본군은 빨간기, 청나라군은 노란기, 아라사군은 새파란기, 조선군만은 그네들것보다 조금 큰 새하얀기였는데 거기에다는 한자(漢字)로 <<大韓國>>이라 써놓았다. 그리고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 쓴 기발이 하나 더 있었다.

겨울날치고는 유달리 따스한 어느날, 아이들이 열이 올라 한창 떠들썩하게 전쟁놀음을 하고있는 판인데 그네들의 앞에 장총, 단총, 활과 검으로 무장된 수십명의 의병대오가 불쑥 나타났다. 커다란 통영갓쓰고 두건치고 도포입고 행전치고 미투리를 신은 행색이 각각인 사람들, 선문도 없이 귀신같이 묵묵히 나타난 그네들은 짜장 오합지졸이라는 감을 주거니와 굶주림에 찌든 몰골들이 사나와보이였다.

그중에 그래도 검정풍안경쓰고 의포단장이 사치스러운 사나이가 풍채좋은 말을 타고있었는데 그가 필시 두령이였다.

아이들은 놀던 놀음을 그만두고 호기심이 끓는 눈으로 그네들을 바라보았다.

좌진이는 풍채좋은 말에 눈길이 갔다.

검정풍안경을 쓴 사나이는 가까이로 오더니 말을 잠깐 멈춰세우고 아이들손에 쥐여있는 놀음흉기를 보면서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전쟁놀음을 했노라고 벌떼같이 왕왕거렸다.

검정풍안경낀 사나이는 피식웃고나서 그렇다면 너희들의 대장은 누구냐고 물었다.

<<좌진이얘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알려주면서 뒤에 못박힌듯 서서 좀처럼 나서지 않고 있는 덩치큰 좌진이를 가리켰다.

사나이는 활을 멘 좌진이를 한참이나 쏘아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녀석이 흘겨보기는... 이리루와, 네 손에건 뭔데?>>

좌진은 말없이 손에 쥐고있던 기폭을 펼쳐보이였다.

<<억강부약이라? 강한놈을 억누르고 약한놈을 도와준단말이지? 하하하. 이놈봐라, 제법인걸!>>

사나이는 앙천대소하더니 좌진이보고 그래 그 글은 제절로 쓴거냐고 물었다.

좌진은 그를 노려볼뿐 대답이 없다가 기폭을 꾸겨서 주머니조끼에 넣어버렸다.

<<하하, 녀석이! 노려보긴? 억강부약은 나도 찬성이니 한편아니냐. 노려보지 마 이 자식아. 하하하 녀석들.... >>

검정풍안경을 낀 사나이는 다시 말을 몰았다.

아이들도 그네들의 꽁무니에 묻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간 의병들이 객주집을 찾고있을 때 공교롭게도 석범청년이 그네들과 딱 마주쳤다.

<<가만있자, 저놈 잡아라! 하이칼라놈을!>>

이 호령소리에 놀란건 좌진이였다. 왜놈과 단발령을 반대해 일어난 의병일것이니 석범이가 머리깍은 까닥같은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죽여버릴 것이다. 그래서 좌진은 급히 달려가 그를 에워싸는 의병들의 앞을 막으며 웼쳤다.

<<이 사람은 내 형님이요! 독립협회사람이요!>>

검정풍안경을 낀 사나이가 다가왔다. 그는 두사람을 번갈아보더니만 독립협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 형이라니 살려준다고했다.


이날밤 좌진이는 어머니한테 졸라댔다.

<<어머니 날 말사주우.>>

<<말은 왜 갑자기?>>  

<<나 타고싶어서. 장수되자면 말탈줄알아야되는거 아니여. 아버진 날보고 장수되라했어. 살아계셨더면 좋은말 사줄거야. 그러겠다했으니까.>> 

큰아들 경진이는 종래로 이러지 않았다. 덩치는 커도 나이는 어린놈인데 말을 타겠다니 원. 하지만 요구가 하도 곡진하니 어머니는 이윽토록 미간을 모으고있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도 말이 여러필 되잖니. 부림말아닌것도 있을텐데.>>

타협이였다. 좌진이는 어머니한테 이제 좀 더 크거들랑 멋들어진 가라말이나 부루말을 사기로 약속받고 우선 집에 있는 말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이틑날. 구유에 여물을 담고있던 마구종 세채가 의아쩍어했다.

<<아니 도련님! 이런 루지에는 왜 들어왔어유?>>

<<나 말 한필 줘.... 이거 어때유?>>

좌진은 지금 막 빈 구유에다 코를 비벼대고있는, 주둥이만 검고 온 몸뚱이는 새하얀 백설총이를 가르켰다.

<<건 해서 뭘 할려구요?>>

<<탈려구.>>

<<도련님, 그말은 안돼유.>>

<<왜?>>

<<이놈은 아직 멍에도 안메봤어유.>>

<<그래서?>>

<<여지것 제멋대루 놀아먹어놔서.>>

<<그러면 못타나 뭐?>>

<<그렇지유. 대단히 사나운걸요.>>

<<사납다구? 그럼야 더좋지.>>

좌진이가 말을 풀어 내가자 세채는 여물주던 삼태기를 놓고 달려나왔다. 고집세고 철닥서니없는 이 어린 도련님이 생마한테 채우기라도할까봐 걱정됐던거다.
담장밖까지 끌려나간 백설총이는 좌진의 손이 제 잔등이에 닿이자 대바람 요동쳤다.

<<도련님! 채우겠어요!>>

좌진이는 들었는 둥 말았는 둥 고삐잡힌채 빙빙 돌아치면서 몸을 주지 않는 말을 욕도하고 살살 달래기도했다.

<<말들어 응. 말들어 응.>>

그러다가 마침내 잔등에 올라탔다.

백설총이는 기겁초풍하듯 놀래면서 앙칼지게 소리를 내지르기도하고 뒷발로 하늘을 차기도했다.

좌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그렇지만 그놈이 하도 지랄스레 궁둥이뜀질을 해대는통에 끝내 허궁나가 떨어지고말았다. 그러면서도 고삐만은 단단히 잡은채 놓지 않았다.

<<안돼요! 안돼!>>

세채는 황겁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내가 이놈의 말 꼭 탈테야.>>

좌진이는 온 얼굴이 땀벌창이 되어 씨근거리면서도 고삐를 놓지 않고 말과 싸웠다.

마구종 세채는 말릴방법이 없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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