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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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전기 설한 (2)
2014년 02월 26일 19시 15분  조회:2986  추천:1  작성자: 김송죽
 

2.

조선은 거듭되는 외교적실패와 내정의 부패로 말미암아 재난이 그칠새없었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좌진이 태여나던 그해만도 전주란에 뒤이어 정선군민이 란을 일으켰고 이듬해는 함창에서도 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 그 이듬해에는 제주도에서와 고성에서 민란이 일어났고 평안도지방에서는 10여만명에 달하는 백성이 굶주림을 못이겨 만주로 도망가버렸으며 평산민들은 향리(鄕吏)의 포학을 진정(陳情)했다. 한즉 안토중천(安土重遷)이니 안거락업(安居樂業)이니 하는 미사(美辭)는 아득한 옛말에서나 바랄수 있는 꿈처럼 되어버렸는데 불난집에 도적이라 게다가 청나라의 도적들마저 국경을 넘어와 함경도 갑산, 단천 등지에서 로략질을 거듭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러고도 국내에서의 란은 그냥 꼬리를 물어 함흥, 덕원에서도 란이요 황간, 청풍, 개성, 중화에서도 란이였는데 인천부(仁川府)의 아전과 백성 수백명은 작당하여 관청을 들입다치기까지 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조선땅이 그야말로 란장판이 되어가고있었다.

이러한 때이던 1893년 봄, 이제 겨우 5살밖에 안되는 좌진이는 글을 배우려고 서당에 입학하였다.

아직 학교가 서지 못한 개화전의 시골서당은 꼴불견이였다. 뉘집의 사랑채를 빌려서 뿌관이나 탕건을 쓴 선생이 구들에 올방자를 틀고 앉으면 아이들은 그앞에 무릎꿇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것이 고작이였다.

갈산의 서당은 마을에서 감나무집이라 불리워지는 김선달이네 커다란 두칸의 사랑방이였는데 좌진이는 바로 그 서당에 공부하러 다녔다.

그 서당의 선생은 이름이 송로암(宋老岩)이요 아직은 나이 50전의 사나이였다. 하건만 이상스레도 자기 호를 그렇게 지어 부르면서 자기를 송시렬(宋時烈)의 자손이라 했다.

송시렬인즉 자가 영보(英甫)고 호는 우암(尤庵)인데 서인(西人)의 거두로 남인(南人)과 론쟁하고 후에는 로논(老論)의 거두로 활약하다가 숙종 15년에 세자 책봉(冊封)의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사(賜死)된 조선왕조때의 정치가이며 학자였다.

200년의 세월이 흘러갔어도 인걸의 넋은 살아있어서 우암 송시렬이라하면 지금도 모르는이가 별반없지만 자기를 그의 후손이라 스스로 자랑하고 뽐내는 서당선생은 명인의 후손답지 못하게 너무나 견식이 좁고 고루한 선비였다.

어느날 좌진이는 술마시고 거나히 취해 학생들앞에서 혀꼬부랑소리 하는 선생을 아니꼽게 보고와서 불만스러워했다.

다심한 어머니는 아들의 고발을 듣고나서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쉬였다.

<<원 어쩜.... 형은 찍소리없이 다녔는데 넌 벌써 불평스러워 투정이면 어떻게 해?>>

이제 배움의 길에 들어선지 한해되는 자식이 선생과 쉬틀려 맘을 달리먹고 학업을 중도이페(中途而廢)할가봐서였다.

더구나 좌진이네 집안에는 어쩌지 못할 비운까지 덮치였다. 이해의 2월에 일본에 망명했던 그의 십일촌숙부 김옥균이 상해로 갔다가 거기서 자객의 손에 살해되였다. 3월에는 그의 시체마저 양화진(楊花津)에 갖다가 걸어놓았다. 육시처참까지 당하다니 실로 구곡간장이 끊어질 절통한 일이였다. 지금 살아있는 그의 일가친척은 모두 비분에 잠겨 하수인과 흉모를 획책한 폭군을 그지없이 증오하고 저주하고있었다. 6살밖에 안되는 좌진이 역시.

<<홍종우 어떤놈이야, 내 그놈잡아 메뚜기처럼 각 찢어놓고말가부다.>>

<<너 이놈! 입 다물구있어!>>

오촌숙부는 엄한 눈길로 그를 단속했다.

나어린 좌진이까지 벼르는,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洪鍾宇)는 수구파(守舊派)의 앞잡이로서 프랑스류학을 하고 돌아와 김옥균을 상해로 유인해 거기서 그런 잔인한 짓을 했던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겨우 6살밖에 안되는 둘째아들 좌진이가 덩치는 벌서 그 나이를 곱먹은 아이들만큼 크거니와 용력역시 남달리 비범해가고있음에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또 그가 일시적인 감정충동을 못이겨 어른 몰래 어떤 우둔한짓을 할지도몰라 마음조이기도했다.

이때는 참으로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황황케하는 소란스런 세월이였다.

이해의 2월 15일, 동학당접주(接主) 전봉준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貪虐)에 항거하여 란을 일으키니 그 진동이 여느때보다 퍽 컷다. (동학당은 동학도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861년에 생겨난 조선의 고유한 종교로서 통치계급을 반대하고 유교를 반대하며 외래의 침략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비밀결사였다.)

폭동군은 전주감영에서와 리조정부에서 보낸 관군을 련속격파하고 백성들을 압박착취하던 통치기관인 관청들을 모조리 파괴소각하였고 악질관리와 량반들을 처단하였으며 감옥을 마스고 죄없이 감금당했던 백성들을 석방시켰다. 그러면서 백성탄압과 억압에 써먹었던 문건들을 불태워버리였고 전라도의 전부지역과 도소재지인 전주까지 점령하였다.

압박받고 천대받던 굶주린 백성들은 동학란에 갈채를 보내면서 지지해나섰다.

3월에는 좌진의 고향이 있는 충청도에서도 백성들이 전라도에서처럼 이 동학당의 폭동에 호응하여

<<오랑캐와 왜놈을 격멸하고 량반들을 모조리 숙청하자!>>는 구호를 웨치면서 떨쳐나섰다.

폭동군의 기세가 높아지니 대대로 내려온 량반집이요 문벌이 높았던 좌진이네가 자연히 겁을 집어먹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폭동군은 <<척왜척양>>의 기치를 든 것이고 겸해 노린것은 탐학을 일삼아온 악질관리와 그따위량반이였지 좌진이네 같은 집은 아니였다.

정부군에 의해 눌리운것 같으던 동학당란이 4월에 이르러 재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안핵사 리용태의 포학에 항거한것이였다.

그런데 무능한 조정의 비겁불의한 처사로 인하여 그것이 마침내는 중, 일량국간의 전쟁을 유발하기에 이르렀다.

교활한 일본은 기회만 엿보아오던 참이라 조선에 출병할 음모를 가지고 불량패와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여 소위 <<천우협단(天佑俠團)>>이란것을 조직해 동학당을 협력하면서 공공연히 남의 나라의 내정에 개입했다.

동학당의 진공에 의해 서울이 위급하게 되자 조선정부는 청나라에 증원병을 청하였다. 그래서 청나라군이 조선에 출병했는데 <<중일천진조약>>에 의하면 중, 일 량국이 만일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경우에는 사전에 반드시 상대방에 조회하기로 되었다. 하니까 일본은 구실이 좋아 더 많은 군대를 증파했던 것이다.

좌진이는 서당에만 가면 책속에 파묻혀 세상이 돌아가는걸 알수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소식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종들까지 수근대를 소리를 늘 듣군했다. 그것은 청나라군대가 아산에 왔다느니 일본군대가 인천에 상륙했다느니 동학당란이 평정됐다느니 청나라해군과 일본해군이 아산항부근에서 싸웠다느니 대동구바다에서 싸웠다느니 륙군들이 환성에서  맞붙어 싸웠다느니 평양에서 맞붙어 싸웠다느니 하는 등등이였다.

 

6월에 일본공사 오도리 게이스께(大烏圭介)는 군대를 인솔하고 조선왕궁에 돌입하여 근위병의 무기를 해제한 후 조선왕 리희(李熙)를 체포하고 대원군(大院君)으로 하여금 잠시 국정을 맡아 보게 하고는 집정 민영준(閔泳駿)을 임자도(荏子島)에 추방하고 중국에 접근하여 일본을 반대했던 관리들을 학살했다. 그뒤를 이어 일본군대는 풍도(豊島)에서 중국군함을 격침시켰다. 이로인하여 중일전쟁은 드디여 터졌다.

좌진은 이러한 정황을 후에 오촌숙부한테서 들어 알게 되었다.

<<왜놈이나 청국놈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오촌숙부 창규는 캐묻기를 좋아하는 조카를 앞에 놓고 이렇게 일, 청 두나라를 몰잡아 증오하기도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그는 또 어린 조카보고 가슴깊이 새겨두라면서 선조 25년의 임진란때 일본이 조선반도를 유린하여 이루 혜아릴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일과 이번에 <<원조>>를 왔다는 청나라군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산에서의 전투가 일어나기 며칠전에 청나라의 리홍장은 광서황제의 지시를 받고 위여귀(衛汝貴), 마옥권(馬玉昆), 좌보귀(左寶貴), 풍승아(豊升阿) 이 네사람에게 명령하여 각각 자기 부대를 인솔하여 조선의 옛서울인 평양성에 주둔하게하였다. 이때 조선인민들은 대다수가 청나라에 호감을 가지고 일본을 배척하는 때이라 대부대의 중국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주식(酒食)을 준비하여 그들을 환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인민들은 만청정부의 군대가 규률이 문란하리라고는 생각지도못했다. 청나라군대는 국경을 넘어서자 백성의 가구(家具)를 파괴하고 주택에 불을 지르며 재산을 략탈하고 부녀를 강간하며 인민을 학살하고 장정(壯丁)을 강제로 랍치하는 등 온갖만행을 다 하였으므로 조선인민들은 매우 실망하였다.

그 정황을 리홍장은 <<정칙군기전(整飭軍紀傳)>>에 아래와같이 밝히였다.

 

<<의주(義州)로부터 평양에 이르는 수백리간에 상인들은 모두 도망가고 심지어 관리들까지 숨어버렸다. 정주(定州)에서는 거의 반리이상이나 주택이 소각되고 연로에는 깨여진 가마와 부서진 사발뿐이며 짐군 한사람조차 얻을수 없으며 도중에는 음식점조차 구할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좌진이 어머니앞에서 주먹을 쥐고 오촌숙부한테서 들은 소리를 외웠더니 어머니 역시 몹시 격분해하면서 한숨짓는것이였다.

<<한심하구나, 그러니 세상에 누굴믿고 살겠냐.>>

이에 좌진은 발끈 어성을 높혔다.

<<남믿을게 뭔가요. 자기를 믿으며 살아야지!>>

어찌 6살먹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 하겠는가. 어머니는 자못 경탄의 눈으로 아들을 다시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네 말이 맞구나. 우리 조선은 자기 힘은 기르지 않고 남만 믿다나니 이젠 점점 망해가는것 같구나.>>

이해의 가을, 조선 각지에서 동학도들이 다시 봉기를 했다. 그러나 얼마못가서 관군에 의해 탄압되고 두령 전봉준은 순창에서 체포되였다가 이듬해인 1895년 3월에 판결받아 목숨을 잃고말았다. 그리고 1월에 이르러서는 청일전쟁도 끝났으며 <<마관조약>>이 체결되고 청나라가 일본에 굴복하고말았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그로하여 큰 장애란없이 좌진이는 좌진이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놀음에 팔려 가끔 무단결석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유언과 어머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당공부를 견지해서 놀랄만치 첫 두해동안에 벌써 <<천자>>와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래서 남한테 형 경진이보다 더 총명하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그런데 바로 1895년 이해의 가을에 7살나는 좌진이는 끝내 서당선생을 닦엽혀서 갈산마을은 물론 온 홍성고을까지 들성케하는 야단이 한바탕 일어나고말았다.

갈산마을의 윤생원로인이 초상난 날이다. 본래 술망태나답지 않은 송로암선생은 술썰썰이나던차 장사집에서 모시는지라 강의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리로 가면서 학동들보고 어데 가지 말고 복습을 잘하라고 단단히 을러놓았다.

그런데 선생의 회초리에 겁을 먹고 지내오던 아이들이 선생이 없어지자말자 풀어놓은 망아지같이 얼싸좋다고 란장판을 벌렸다.

그네들이 뜀뛰기도하고 씨름도하면서 한창 제멋대로 복새판을 피우는데 담장밖에서 <<어이노 어이노>>상여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치던 장난을 뚝 그쳤다.

<<가보자!>>

한애가 선줄을 끌었다. 그러자 다른 애들도 따라서 우르르 밖으로 달려나갔다.

상여는 마을밖을 나갔고 마을밖을 나간 상여는 그냥 구슬픈 상여소리에 실리여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

거기에 유혹되여 어린 학동들은 그만 시간가는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얼마후, 아이들은 비로서 제정신이 들었다. 땋아늘인 머리채를 철렁거리며 달려와보니 그새 선생은 먼저돌아와 거기 얌전하게 남앗던 아이들을 시켜 물푸레나무회초리를 한다발이나해놓고는 낯에 독살을 피우면서 기다리고있는게 아닌가.

아뿔싸, 큰일났다! 규률위반자에겐 엄벌이 첩경인지라 매사태가 터져 애들은 종아리에 피멍이 드는 변을 당하고야말았다.

그러나 좌진이만은 그따위변을 면했다. 선생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슬그머니 뺑소니를 쳤던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길로 그냥 집으로 갈수는 없었던 좌진이는 매질이 끝나고 서당에서 글읽는 소리 한창 날 때에야 슬그머니 들어갔다. 

<<좌진이 너 으째서 인제야오는고?>>

선생은 도끼눈으로 찍어박듯 쏘아보면서 을러멧다.

좌진이는 입을 꾹 다문채 제자리에 앉아 책만 펼쳤다.

좌진의 숨소리도 낮지는 않았다. 선생이 회초리를 들면 그도 가만있지 않을 잡도리였다. 요전날 아침 숙제한 글을 읽어바치다 욕먹고 매맞은 분이 되다시 치달아올랐던거다. 그날 오래 꿇어앉아서 저려나는 발을 개였더니 선생은 <<배우지 못한 놈>>이라면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한매 갈겼다.

제 부모한테서도 그렇게는 맞아못본 매였다.

선생은 분이 났지만 웬 일인지 성깔을 더 부리지 않고 래일 매맞을 준비나 단단히 하라 했다.

(흥. 매를 맞아? 이제 또?)

좌진은 속으로 코방귀뀌였다.

송로암선생은 방안에다 초상집에서 얻어먹고 온 역한 술낸새를 물씬 풍기였다. 게트림한 끝에 선하품을 하더니 아랫목에 풍침을 베고 비스듬히 누웠다. 그리고는 인츰 코를 드렁드렁 골기 시작하더니 잠에 골아떨어졌다.

한데도 회초리맛을 본 애들은 지독스런 선생이 혹시 능구렝이같이 딴청을 쓰지나 않나해서 감히 떠들지 못하고 글소리를 높이였다.

이틑날아침에 세수를 끝내고 방에 들어와 머리에 탕건을 쓴 송로암선생은 늘 보던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읽자고 펼쳤다가 거기에 난데없는

<<先生死  金佐鎭>>이라 쓴 조그만 종이쪽지가 들어있는걸 발견했다. 기구멍이 딱 막힐 일이였다.

송로암선생은 자기눈을 의심하고 다시보았지만 그것은 분명 자기 송로암을 죽으라는 글이였다. 이제 일곱 살먹은 어린학동 김좌진의 필적임에도 틀림없고.

<<이런 제길헐!....>>

어찌된 연고인지를 명백히 깨달은 송로암은 자리에서 벌컥 일어났다가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학동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서당에 왔다. 그런데 기다리는 좌진이만은 오지 않고있었다.

느즈막해서 그의 집 종 춘봉의 막내아들이 전날 좌진이 선생한테서 빌려갔던 <<통감>>을 갖고 선생앞에 나타났다. 자기는 오지 않고 종아이에게 쥐여 돌려주는 판이였다. 헌데 그 책속에도

<<先生死  金佐鎭>>이라고 쓴 종이장이 끼여있을줄이야.

과연 울화통이 터질 일이였다.

얼굴이 단통 지지벌개진 송로암은 씩씩 황소숨을 톱다가 홰대에서 도포를 내려입으면서 호통뺏다.

<<너희들은 지금 모두 집으로들 가거라. 가서 너희들의 아버지나 형님보고 여기루 오시라 해라.>>

그래서 학부형들이 서당방에 많이 모였는데 송로암은 이 일을 말하고는 위인이 불출이다보니 제자한테서 이따위 봉변을 당하는 모양이라느니 나이 50을 먹도록 훈장노릇해왔지만 이렇게 해괴한 일은 난생처음본다느니 하면서 자기는 있을멋이 더 없어서 당장 가겠노라했다.

사태가 이쯤되고보니 썩 미안하게 된것은 기별을 받고 그 자리에 참석한 좌진의 오촌숙부 창규였다. 그는 고약한 조카를 단단히 가르쳐 다시는 그따위짓을 못하게 할테니 노여움을 참아달라고 선생을 달래는 한편 큰조카 경진이를 시켜 냉큼 좌진이를 불러오라했다. 그런데 심부름을 갔던 경진이는 돌아와 좌진이는 집에 없다고, 자기보다 아침에 일찍이 나왔는데 어데 갔는지 모르겠노라 했다.

<<개는 배짱이 더럽게 돼먹어놔서 두고보오만 아무하구나 막짓을 할거우다.>>

송로암은 이따위 가시돋힌 말을 내뱉어놓고 갈산의 서당을 떠나고말았다.

저기 동네앞 솔무더기가의 병풍바위에서 옥색저고리에 밤빛바지 입은 좌진이는 10여명의 아이들을 거느리고 군대놀음을 놀다가 왁짝떠들면서 노새타고 가는 선생을 싱긋이 눈바램했다.

<<어쩜 그런짓 다 하니?>>

저녁때 어머니가 집에 들어온 좌진이를 꾸짖으니 맞받아 뱉는 아들의 대답역시 당당했다.

<<아주 영 맘에 안드는 그따위선생한테서 누가 배우겠어요. 난 쫓아버릴려구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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