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http://www.zoglo.net/blog/jinsongzhu 블로그홈 | 로그인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소설

장편전기 설한 (12)
2014년 03월 09일 08시 39분  조회:3134  추천:1  작성자: 김송죽
 

12.

1913년 9월. 좌진은 마침내 형기를 끝마치고 출옥했다.          

철대문밖에서 그의 출옥을 기다리고있는 가족과 동지들의 감회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 그지간 뭐 변한 일은 없었나?>>

동지들은 웬 일인지 고개만 처뜨릴뿐이였다.     

길거리에는 일본계집과 사내들이 활개치며 다니었고 귀에 거슬리는 일본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전에는 드믈게 보이던 일본인 가계들이 군데군데 보이였다.

<<변했구나! 변하지 않은건 나였지. 세상은 변하였구나!>>

좌진은 개탄했다. 감옥에 들어가있은 그지간에 나라는 벌써 많이 변해가고있었던 것이다.

그의 집을 보아도 그러했다. 갈산(상촌)의 식솔들은 조석을 이어가기 어려울지경으로 가난했다. 오죽했으면 가회동에 있는 초가집까지 팔아버렸겠는가. 서울에는 이젠 마음놓고 들어가 앉을 방조차 하나 없었다. 그래서 좌진은 하는수없이 아우 동진이가 올라와 묵고있는 옛날의 호명학교학생 김재현의 리태원(梨泰院)에 있는 하숙집에서 며칠을 쉰 후 어머니뵈러 고향으로 갔다.

고향의 변화는 그의 가슴을 더 쓰라리게 만들었다.

호명학교로 쓰이던 옛집터에는 그사이 면소(面所)와 헌병분견소가 생기였다. 이것이 그래 갈산이고 내 고향 홍성땅이란말인가? 오로지 선불산과 월선지만은 옛모습을 잃지 않고 있어서 추억의 돛을 펴고 면면한 회포를 자아내게할 뿐. 저 옛날 홍주(洪州)시절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정평이 있었던 홍성땅,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드센 풍운속에서 의병항쟁의 요람지였던 홍성땅이 이젠 어떤 모양이 되고있는가?

다행이 어머니께서는 건재하시였다. 이 아들때문에 그 얼마나 로심초사를 해오신 어머니였던가! 4살에 아버지를 여읜 좌진에게는 서당선생먼저 어머니가 바로 계몽스승이였다. 어머니는 이 아들에게 커서는 나라에 유용한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늘 당부했고 훈계도했더랬다. 그리하였길래 좌진이는 8살에 벌써 <<통감>>을 독파해서 홍성의 수재로까지 불리웠다. 유식했던 어머니는 가끔 아들을 불러앉혀놓고는 이름남긴 의인, 걸사의 언행을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고구려말기 소문은 극단적인 무사였네만 위인이 독특하여 의표가 웅위하고 또한 의기가 호일하매 열다섯살때부터 그의 무명(武名)은 천하에 떨쳤네라.>>

어머니가 하는 말 끝에

<<나도 그 사람처럼 동부대인되면 이름내는 장수될만해요.>>하고 장담했던 좌진이다.

남달리 무사라면 흠모의 정을 갖고있은 좌진은 소시적에 벌써 고주몽으로부터 시작해 해명(解明), 밀우(密友), 유유(維由), 소문(蘇文), 계백(階伯), 비녕자(丕寧子)부자와 검군(劍君), 김유신(金庾信) 등 삼국시대의 많은 무사들에 대해서 알고있었을뿐만아니라 려조(麗朝)시대에 있었던 북계의 무사와 남계의 무사 양계의 무사들에 대해서도 그 업적과 함께 특출한 재능을 하나하나 기억해두었던 것이다.

<<해오르는 동방에 수려한 산하를 등지고 자란 조선사람이란 결코 못난이가 아니다. 위대하고 용감한 재주있고 씩씩한 조선의 기혼을 후세가 본받지 않으면 어찌되느냐.>>

좌진은 늘 이러면서 조선사람가운데 용감한 장군들이 많이 나와 조선사람은 남의 침략과 모욕만 받는 민족이 되지 말고 왜적을 압도하는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했던 것이다.

그러던 좌진이가 2년반의 지긋지긋한 옥살이를 하고나왔다. 인생은 고적한 처지에 놓이면 역시 그에 따라 고적한 생각을 품게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좌진은 오늘이 있음을 알고있었기에 그 고적함을 이겨내고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라도 뛰여들 무서운 의지와 결단성을 지닌 사나이로되여 나온것이다. 그의 삶과 죽음은 단 하나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하여 준비된것이다.

 

그래도 인정만은 변하지 않아서 고향사람들은 좌진의 귀향을 무척 반가와했다. 그럼에도 그가 고향에 다시나타남을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에 갈산의 동장(洞長)질 해먹던 박정수(朴正洙) 따위의 인간이였다.

친일파로 전락된 그가 지금은 면장이 되었다.

좌진은 오자마자 석범이한테서 이자가 지금은 첩을 셋이나 두고있으면서 늘 왜놈의 헌병들과만 섭쓸려다닌다는 말을 듣고 쓰거워했다. 그런자가 지금 사회를 운전해가고있단말인가? 민족의 량심이란 꼬물만치도없이 남의 개가 된 그런자가. 그가 지금은 마을의 로인들앞에서 반말을 척척 쓰거니와 언젠가는 어머니 보고도 서슴없이 그러더라니 좌진은 분노할 일이였다. 더구나 그자가 언젠가는 왜놈 헌병과 같이 지나가다가 안해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씨근덕거리기까지 했다는 말을 들은후로는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던차 어느날, 온지 며칠안되여 좌진은 호출이 내려서 헌병분견소에 갔다. 다른일이 아니였다. 좌진이더러 살인미수죄로 결과가 있는 사람이니 이제부터는 어디를 가든 사전에 반드시 헌병대에 알려야한다는 당부였다.

거기 그따위 당부를 받고 막 나오던 좌진은 공교롭게도 박정수와 딱 마주쳤다.

<<이거 박정수아닌가? >>

<<응.... 에.... 그런데 언제왔소?>>

흠칠놀란 박정수는 떨떠름하게 대구했다.

<<왜, 내가 왔다는 소문은 들었겠지? 알았다면 진작와서 량반을 찾아뵐게지.>>

<<아니야, 정말로 감짝 모르고있었어. 온줄을 알았더라면 내가....>>

박정수는 아닌보살을 하곤 그만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운데 자기 집에 술마시러 가자고 맘에 없는 말을 했다.

좌진이는 가뜩이나 기회를 노리던차라 쾌히 나서면서 속으로 네놈이 노는 꼴을 어디 보자고 했다.

박정수는 자기 집 문앞에 이르자 바쁘게 안에다대고 야단떨었다.

<<여봐, 거 얼씨덩. 김선생오셨는데 술상 좀 차려! 거 말린 노루포있잖어? 그거랑 좀 내려려놓고....>>

남편의 호령 한마디에 녀인들은 찍소리없이 돌아쳤다. 그러더니 얼마지나지 않아서 아닌게아니라 노루포까찌 올려놓은 자그마한 주안상이 차려졌다.

좌진이 볼라니 그 주안상을 들고들어온것은 박정수의 본댁이 아니였다. 잘익은 밤알같이 살이 토실토실 찌고 나이 30쯤돼보이는 꽤나 해사하게 생긴 다른 녀인이였다. 첩이 셋이나된다니 그중 어느 하나일것이다.

박정수는 무슨 속셈이였던지 술상을 갖다놓고 인츰 물러가려는 그녀를 잡아 앉히였다.

<<왜, 거기 좀 앉지 그래. 자네 이 선생님 모르던가? 응? 자넨 모를테지만 이분이 옛날 호명학교 교장선생님이야. 김좌진씨라고.... 어서 인사하게. 이 량반한테 인사하게. 그리고 여기 앉아서 술도 좀 따르고.>>

첩년은 남편의 권에 못이겨 엎드리여 좌진에게 큰절을 하곤 술을 부었다.

두사람은 련거퍼 녀인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됐다. 이때 뜯밖에 박정수가 무슨 용기 생겼던지 좌진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기는 때가 된것만큼 별수 없어서 면장질을 하게 됐노라면서 그것은 부득이한 일이라고 변명비슷한 입정을 놀리였다.

<<뭐라? 부득이한 일?>>

좌진은 기다렸던 참이라 반문을 들이대곤 되지 못하게 자기 손을 잡고있는 그의 손을 되잡아서 으스러지게 죄이였다.

<<아니! 이 사람이 이게 웬 일일인가? 놓게 ! 놓아!>>

박정수는 중얼거렸으나 깨여질듯 하는 아픔을 참지 못해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죽죽 흘러내렸고 아가리는 저절로 벌러졌다.

그래도 좌진은 좀처럼 놓아줄념을 하지 않고 노루포를 달라해서 그의 첩년이 노루포를 가지러 간짬에 기겁하는 그자를 족치였다.

<<이놈아! 네 죄를 네가 알테지. 그래 노루포쯤가지고 도리줄 아니? 어림도없어.... 너는 남의 집 유부녀를 보고 선가락질하며 씨근거리기가 일수고 마을 어른들도 몰라본다더라. 이놈! 그래, 왜놈에게 매달려 면장질이나 하고 첩을 셋씩이나 거느리고 지내니 재미가 깨쏟아지는것 같니? 나는 이젠 집도 절도 없고 의지할곳도 없는 사람이다. 이놈아, 네같은 놈 죽여버리고 내 목숨하나 던져버리면 그만이야. 알겠니? 그러니 딴생각은 내지 말고 아가 네 계집년 나한테 잠깐 빌려라.... 거 꽤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그래 빌리겠니? 못 빌리겠니?>>

좌진은 그의 손을 더 으스러지게 쥐면서 윽박질렀다.

<<아이고.... 아이고.... >>

박정수는 죽는소리치면서 그러마고 응낙했다.

좌진은 그제야 쥐였던 손을 풀고 그를 놓아주었다.

이때에 그의 첩년은 노루포를 먹음직하게 구워 접시에 그득담아들고 들어왔다. 박정수는 첩더러 좌진에게 술을 부어드리라 해놓고는 하는수없이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피하여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흘렀다.

이윽하여 좌진은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녀인을 술붇게하곤 마루건너 안방까지 들리도록 말했다.

<<여보!당신 남편이 왜 여지껏 안들어오는지 아슈?....>>

박정수의 첩은 그제야 그 말뜻이 무엇임을 알고 온 낯이 홍당무우같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방바닥에 닿도록 숙이였다.

<<실상은 당신을 내게다가 맡끼기로 아까 당신남편하구 나사이에 언약이 되었는데 그래 당신은 나를 따라 살려오?>>

좌진이 물어보니 녀인은 대답은 고사하고 방바닥에 아주 엎드려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울뿐이였다.

<<정수, 이리오게!>>

박정수는 혈안이 되어 부들부들 떨며 달려들어왔다. 그리곤 방바닥에 퍽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는 골을 보고 좌진은 바깥으로 훌 나와버렸다.

그후 박정수는 감히 찍소리도 못했다.

이일이 있은지 며칠안되여 채기두가 웬 초면의 젊은이 하나를 데리고 문득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서로만나는지라 반갑고 기쁘기가 이를데없었다.

<<내가 김선생이 이만때는 출옥인걸 진작 알았소만... 많이 량해하오.>>

채기두는 이러면서 자기는 사실 할 일이 너무도많아 해내지 못하다보니 제때에 와보지 못했노라 사과하고는 데리고 온 젊은이를 좌진에게 인사시켰다.

<<여보게 인사하라구. 바로 이분이 내가 늘 뇌이군했던 김좌진일세 듣던소문과 같이 거인이 위인답지를 않은가.>>

<<선성은 많이들었습니다만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김상옥이라 합니다. >>   

<<찾아와 알게돼서 고맙소.>>

좌진은 이젠 동지간에 류행되는 식으로 악수하면서 면전에 나타난 이 언어례절이 신식으로 갖춰진 영준하게 생긴 젊은이를 뜯어보았다. 어느모로보나 시골티라곤 나는데가 없었다. 그래 물었더니 김상옥(金相玉)이가 자기는 집이 서울에 잇다는것이였다.

<<그렇겠지. 금년 나이는 몇됐소?>>

<<경인년생입니다.>>

<<오! 그래? 그러면야 내보담은 한 살이 지하야. 난 기축년생이요.>>

<<그렇다면야 난 동생벌되겠네. 형님 자, 서울동생인사받으시오.>>

김상옥은 갑자기 쾌활해지면서 굽석 인사했고 미처 대답못한 좌진은 껄껄 웃었다. 이렇게 되어 좌진은 서울청년 김상옥을 혁명동지로 사귀게됐고 훗날 과연 친형제같이 가깝게 지냈다.

이날 좌진이가 고향에 돌아오자 세도가 바뀔때마다 놀아대면서 권세에 아첨하는 외에는 의리고 인륜도 렴치도 없는 밗강수를 혼내운 일을 말햇더니 채기두와 김상옥은 듣고서 참 시원한노릇했다면서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를 놓쳤다고 웃었다.

그런데 좌진은 이때가 바로 할 일없어 제일 암담한 때였다.

1911년 1월부터 시작해 일본경찰이 본격적으로 데라우찌총독암살에 련루되는 자들을 잡아낸다면서 벌리였던 일대 수사소동은 좌진이 한창 옥고를 치루고있던 1912년 6월 윤치호이하 신민회 회원 105명이 암살사건혐의로 정식 기소됨으로 하여 일단 가라앉아버렸다.

그 사건으로 하여 좌진은 청년학우회의 많은 동지들을 잃고말았다. 회원들이 많이 투옥되고 망명하는 바람에 그 조직은 자연 해산되였다. 이럴 때 대한협회가 나서서 맥을 써야겠건만 그러지 못하고 뒷걸음을 치는 판이였다.

전에 있었던 좌진의 친구 몇몇도 자기 조직을 잃은 후로는 유야뮤야하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허송하고있었다. 좌진은 그네들과 다름없이 백수건달이나닯지 않은 자기 처지를 생각하고는 한탄하면서 채기두보고 그래 그지간 어떻게 지내는판이냐고 물어보았다.

<<눈뜨고서야 왜놈 노는 꼴을 얻겋게 보고만있겠소? 잃어버린 내나라를 꼭 찾아와야지. 그래서 나도 그렇고 우리 동지들은 죽음각오하고 다시금나섰다우.>>

채기두는 이러면서 좌진의 마음을 격동케하는 하나의 새소식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즉 채기두가 주장이 되어 풍기(豊基)에서 유창순(庾昌淳), 류장렬(柳璋烈), 정만교(鄭萬敎), 김상옥(金相玉) 등이 비밀결사인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이 비밀단체의 주장은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하자는것이였다.

<<거 대단히 장한 일을 하고있습니다. 어쩌면 내 맘과 꼭 같을가요! 우리가 광복을 이룩하자면 바로 무력에 의거해야지 빈주먹에 입만 갖구서야 어디 될번이나 하겠습니까.>>

<<그건 김선생이 늘 주장해온게 아니요. 이 채기두는 그게 바로 옳은주의라고 읜정되였길래 이렇게 하고있는거요.>>

채기두는 이러면서 좌진이가 대호지(大湖池)에서부터 자기를 깨우쳐주고 이끌어준걸 따져보면 천량값도 더 난다고했다. 그러고나서 덧붙이여 자기가 단체조직은 해놨지만 손에 무기가 없어 어려운사정이라했다.

<<그럼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든 해결해야지요. 구해봅시다.>>

오로지 복수일념에 불타고있었던 좌진은 조국의 주권을 당장 회복할 수 없는 정황하에서는 총독부건 총독이건 도청이건 도지사건 우선 눈에 보이는대로 들부시고 죽여버리고싶었다. 그러자면 돈을 벌어 무기를 사와야했다.

이듬해, 즉 1914년 봄이 되자 좌진은 돈벌러 공주(公州)로 중석광(重石鑛)하려 간다면서 집을 나갔다. 그런데 그는 홍주에 이르러서 그만 헌병대놈의 손에 잡히였다. 의심하고 뒤따른것이 분명했다. 일이 안되자면 마디에 옹이라더니 이건 너무나 공교로왔다. 좌진은 리유도없이 험악한 류치장에 갇혀 10개월이나 고생하다나왔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64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4 장편전기 설한 (8) 2014-03-05 1 3401
43 장편전기 설한 (7) 2014-03-04 1 2739
42 장편전기 설한 (6) 2014-03-03 1 3042
41 장편전기 설한 (5) 2014-03-02 1 3257
40 장편전기 설한 (4) 2014-03-01 1 2681
39 장편전기 설한 (3) 2014-02-27 1 3154
38 장편전기 설한 (2) 2014-02-26 1 3005
37 장편전기 설한(1) 2014-02-23 2 2951
36 장편전기 설한(雪恨) 2014-02-23 1 2373
35 장편전기 설한 2014-02-19 4 3132
34 중편소설 망매의 무도장 (5ㅡ8) 2013-11-22 3 3431
33 중편소설 망매의 무도장 (1ㅡ4) 2013-11-22 2 3460
32 우숩고도 잔인한 시합 2013-10-19 1 3027
31 중편소설 일호동의 사랑(5ㅡ7) 2013-09-15 1 3290
30 중편소설 일호동의 사랑(1ㅡ4) 2013-09-13 0 3862
29 에세이 독재자의 배짱과 재난(2) 2013-08-30 1 3570
28 에세이 독재자의 배짱과 재난(1) 2013-08-30 0 3221
27 에세이 현대 식인종 2013-08-24 1 3970
26 에세이 웃지도울지도못할 방귀사건(2) 2013-08-21 0 4251
25 에세이 웃지도울지도못할 방귀사건(1) 2013-08-21 1 4125
‹처음  이전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