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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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장(8)
2014년 08월 24일 22시 48분  조회:3072  추천:1  작성자: 김송죽
 

 8.

   잠을 채 깨지 못한 려홍이는 몽롱한 의식속에서 두사람이 자기를 놓고 하는 말을 어슴프레 들었다.

   <<황주임, 깨여난 다음에 다시보는게 좋지 않을가요? 지금은 우선 푹 재우는게 더 좋을것 같구만요.>>

   <<좋다면야 그렇게 하지요.>>

   남성의 조용한 말소리에 뒤이어 녀성의 맑고 정중한 대답소리였다.

   <<의지력이 강한 청년입니다. 어제 상처를 째고 탄알을 끄집어낼적만뵈요. 너무아파 땀을 그렇게 물흘리듯 하면서도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더군요.>>

   <<감탄할 일입니다. 이 단단한 청년을 보니 우리가 이전에 마길준동지를 치료하던 때 일이 새삼스례 상기됩니다. 그때도 우린 마취약이 떨어져 강다짐으로 수술을 드리대는통에 환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댔습니까. 하지만 그인 그걸 끝까지 참아냈거던요.>>

   <<그러게말입니다. 사람의 의란 그렇게 무섭다니까요.>>

   녀성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이어졌다.

   <<우리가 이 청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지만 과연 겪은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삶에 대한 욕망도 크더구만요. 투지가 있지요. ...상처가 악화되지 않게끔 잘 치료해줍시다.>>

   <<그렇게 해야지요.>>

   문소리가 나더니 그들의 말소리는 사라졌다.

   려홍이는 병적인 민감성을 갖고 눈을 번쩍 떴다. 방안에는 의연히 자기 혼자 침대에 누워있었다. 바깥 먼거리로부터 <<사구려ㅡ>> 소리가 가담가담 들려올뿐 방안은 그가 잠들기전과 다름없이 한적하였다.

   (내가 꿈을 꾸었는가? 아니 그런거 같진 않은데...)

   이곳은 시내중심에서 좀 떨어진 단층집 <<항승병원(抗勝病院)>>이였다. 본래는 일본관동군의 수비대병원자리였는데 항일련군 모 부대 부상병치료소가 광복후 간판을 뜯어바꾸고 여기에다 자리를 잡았다.

   려홍이는 박금록이와 함께 어제밤 9시경에야 이 병원을 찾아냇다...

   밖에서 갑자기 여러사람의 발자취소리가 나더니 이러 문이 활짝 열렸다. 한 사람이 담가에 들려 들어왔다. 적막하던 방안은 갑자기 분주해났다. 사람들은 담가에 들려 들어온 사람을 려홍이가 누운 맞은켠에 있는 빈 침대우에 눕혔다. 그는 중년의 한족사나이였는데 숨이 진것처럼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제밤에 려홍이의 상처를 수술했던 의사가 손수 그의 웃옷을 벗기고 상처를 검사하더니 머리를 저었다.

   부상자는 시내에 방금 조직된 어느 한 사회단체의 요인인데 시정부에서조직한 시내의 각계각층 대표회의에 참석했다가 늦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으슥한 골목에서 불시에 달려드는 신분모를 자객의 칼에 찍혔다는 것이였다. 그의 목과 어깨뼈사이 움푹하게 들어간 들어간 곳에 생긴 칼자리에서 나오는 피가 온몸을 랑자하게 적셨으니 과연 살아날 가망은 보이지 않앗다...

   의사의 판단이 옳았다. 부상자는 울음에 지쳐 사설하는 안해와 자식들의 애타는 부름소리를 종시 알아듣지 못한채 밤이 지나자 죽어버렸다.

   시체는 인차 나갓고 그가 누웠던 침대도 정리했다. 그러고나서야 외과의사는 짬이 생겨 려홍이를 다시볼수 있었다.

   <<이거 참, 미처 돌볼새없구만. 그래 어떻소, 상처가 지금도 그냥 쑤셔나오?>>

   <<아니, 이젠 좀... >>

   그의 음성이 너무도 부드럽고 살뜰해서 려홍이는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엇이 욱 올라와 말을 더 잊지 못했다. 그러면서 눈뿌리도 금시 뜨더워났다.

   이마가 벗겨지고 살결적은 얼굴에 근엄한 기색이 어린 나이 지긋한 의사는 감은 붕대를 조심스레 풀고 약을 갈아댔다.

   려홍이는 깨끗한 새 붕대로 상처를 다시 감아주고있는 그의 침착하고도 숙련된 솜씨를 보면서 전번날 말을 탐내던 안경쟁이의사가 빡빡한 가제로 아픈 상처를 건드려놓던 일을 상기했다. 지금 치료해주고있는 이 의사와 비해보면 말이 좋게 자선사업하는 의사이지 그한테서 자선심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찾아볼수 없는 날부란당이 아닌가...

   항승병원의 의사는 상처가 다 낳을때까지 조급해말고 치료받아야한다면서 붕대를 맘대로 풀지 말라고 이른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려홍이는 어제 흐릿한 잠속에서 들었던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깬 다음 다시보자고 말한 사람은 분명 저 외과의사일것이다. 저쪽 한사람은 누구일가? 녀성인데 의사는 그보고 황주임이라 했었다. 그러고보면 이 병원의 책임자는 남성이 아니고 녀성인모양이였다. 어떻게 생긴 녀성일가?... 어깨를 수술할 땐 사람이 여럿있었다. 흰 위생복걸친 녀성만도 셋이나되였는데 그중에서 어느 녀성이 황주임일가?...

   아직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황주임의 영상을 눈앞에 그려보는 려홍이로서는 이 병원에 조선족의사와 간호원들이 적지 않음에 각별한 정감을 느꼈다.

   아침햇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비쳐들어와 조용한 방안에는 광명이 차고넘쳤다. 아침식사를 끝낸지 얼마안되여 나이 40살가까이 되어보이는 녀성이 들어왔다. 보통키에 몸은 약간 실한 편인데 산듯한 위생복을 정갈하게 입어 한결 정숙해보이는 부녀였다. 려홍이는 머리를 틀어얹지도 땋지도 않고 단발비슷이 잘랐지만 그의 너그럽고 조용한 얼굴표정이라든가 몸가짐을 봐서 틀림없이 부녀일것이라고 짐작했다. 려홍이의 상처를 수술할 때도 아마 참견한 녀인같았다. 팔을 함부로 움직일가봐 꼭 붙잡아주던 그 녀성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려홍의 침대가로 다가오더니 진통이 어떤가고 묻고는 붕대감은 우로 어깨를 만져보는것이였다. 그의 살뜰한 손끝에서 지꿎은 아품은 풀이 죽어 달아나버리고마는것 같아서 려홍이는 한결 기분이 좋았다.

   <<이젠 다 나은것 같아요.>>

   <<원 거짓말은 신통스레 하네. 그렇게 제꺽 나을거면 입원을 했을가? 움직이지 말고 가만 누워있어요.>>

   녀성은 움직이는 려홍이를 두손으로 눌러눕히고나서 자기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조용히 위생모속에 쓸어넣었다. 마치도 제 아우를 핀잔하듯이 하는 그녀의 애무에 푹 잠긴 타리름에 수삽스러운 생각이 든 려홍이는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다. 그 녀성은 다지 않고 얼굴에 웃음을 짓더니 의자를 끌어다 침대가까이에 앉았다.

   <<그렇게 쑥스러워말고 맘놓고 치료받아요. 치료비를 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테니말이예요. 왜 내 말을 믿지 못하겠어요?>>

   (남의 속을 어쩌면 저리두 신통히 알가?... )

   려홍이는 당황해났다. 그의 맑고 예리한 눈이 자기의 배속까지 들여다보는것만 같아서였다.

   한편 녀성은 자기가 한 말이 대방을 안심시키기보다 흥분케하고 더욱 송구스럽게 만든것 같아서 한참이나 묵묵했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간밤에 간호하고 돌아간 청년이 누군가요?>>

   <<저... >>

   려홍이는 선듯 대답못하고 우물우물하다가 동생이라고 제걱 주어섬겼다.

   <<친동생이 아니지요? 그리고 실은... >>

   녀성은 무엇을 캐물으려다 그만두고 한결 맑아진 음성으로 말을 잇달았다.

   <<입원자등기란에 환자의 직업과 거주지는 밝히지 않았더군요. 그건 동무를 데리고 왔던 그 청년이 시원스레 대지 않았기때문이지요. 흥분해마시오. 우린 청년이 요즘 이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다 진압당한 안장코도배의 폭도가 아니고 여기로 오다가 나쁜놈한테 해를 입은 사람이란걸 믿습니다.>>

   려홍이는 가슴속에서 소란한 바람이 일어난것 같아서 어떻게 무어라 말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의 말은 입원자보호인으로 나선 발전소로동자의 믿는다는 뜻임이 분명한게고...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만 캐물으려는 것일가?... 조용하면서도 틀잡히고 집요한 어투에서 려홍이는 스스로 그 어떤 위압적인 감을 느끼면서 이 녀성이 위생복을 입긴했어도 보통의사도 간호원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이 부녀가 황주임일지도 몰라. 황주임이 옳으면 어떻게 할가?... 나는 도망쳐온 사람이다. 자꾸 캐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가?... 하지만 난 나쁜놈아닌이상 캐묻겠거든 캐물으라지.)

   려홍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속으로 이제 신분을 더 캐묻는다면 자기는 오직 원쑤를 갚기 위해서 살고있으며 그래서 떠돌이다니는 <<복수자>>라고 대답하리라 마음먹었다. 헌데 그는 이번에도 려홍이늬 이같은 내심을 빤히 헤아려보듯이 슬쩍 눈저울질하더니 화제는 다른데로 돌렸다.

   <<올해 스믈몇인가요?... 다섯?>>

   <<예, 바로맞혔습니다.>>

   <<그렇겠지, 내가 면바로봤다니까요. 그래 각시는 어데있는가요? 호호, 부끄러워하는걸 보니 아직미장가전인가보군요.>>

   그는 낯을 붉히는 총각을 앞에 놓고 유쾌하게 웃었다. 려홍이는 무망간에 얼굴을 돌렸다. 혜옥이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서글퍼졌다. 언제가면 또다시 만나게될런지 실로 가슴아픈 리별이였다.

   녀성은 한결 심각해진 낯색으로 두루 살피더니 자기의 위생복앞섶에 달린 호주머니에서 조꼬마한 쇠덩이를 하나 꺼냈다. 려홍이의 어깨에서 뽑아낸 탄알이였다.

   <<동문 자기한테 총쏜게 누군지 알고있어요?>>

   녀인은 권총알을 손바닥에 놓고 유심히 보고있는 려홍에게 정중히 물었다.

   <<아, 내가 왜 그걸 모르겠어요. 그건 틀림없이 리경광놈아니면 장나으리란 놈일겝니다.>>

   <<음... >>

   녀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창밖 어딘가를 쏘아보면서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고약한놈들! 붙잡자했더니 끝내 빠져달아났구나!...>>

   그는 려홍이가 말하는 장나으리가 성명이 장삼이고 위만시대 이 도시에서 협화회 회장노릇을 인물이란것을 알고있었다.

   <<장삼은 알아도 리경광은 어떤놈인지 아마 모르실겁니다. 그놈은 이고장사람아니니까요. 이걸 보시오. 나의 이 발목을 보라니까요. 벌써 보셨다구요?!... 이것도 그놈 때문에 생긴 상처입니다. 제가 그놈을 어떻게 아는가구요?... 내 왜 모르겠어요. 경찰서가 우리 마을에 있었구 그놈은 바로 거기서 서장노릇을 해먹었는데요.>>

   <<오, 그러니 젊은이는 손가장에서 왔구만요. 그 경찰서장이 조선사람이고 안경쟁이죠? 그자는 이 도시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2년도 안되여 그곳에 가 일본놈을 대신해서 경찰서장이 되었던거애요.>.

   려홍이는 이 녀성이 리경광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알고있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병원에서 환자나 다루는 의사인줄 알았더니....)

   려홍은 속으로 슬그머니 경탄을 금치못했다.그 녀성은 알릴락말락한 눈웃음을 지으며 <<어때 나를 그만큼 떠봤으면 됐겠지?>> 하듯이 넌지시 건너다보면서 이젠 려홍이의 형편에 대해서, 정확히 말해서 그의 치러온 경난에 경난에 대해서 똑똑히 알고퍼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때 공교롭게도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위생복을 입지 않은 한족청년이 뒤여와서 문을 반쯤열고

   <<황주임, 경비대에서 전화왔습니다.>>

   하고 알려서 그는 급히 일어나 나가버렸다.

   <<뭐 황주임?... 음, 그러면 그렇겠지. 내 짐작이 맞았어!... >>

   려홍이는 닫겨진 문을 멀커니 바라보면서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려홍이가 무엇인가 좀더 이야기 나누지 못한 아쉬운감에 잠겨있는데 박금록이가 들어왔다.

   <<아니 왜 벌써 왔소?... 그런데 그건 뭐요?... >>

   려홍이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신문꾸러미를 보면서 의아쩍게 물었다.

   금록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신문지꾸레미를 풀더니 기름가마에서 방금 끄집어낸것 같은 꽈배기 세 개를 내놓았다.

   <<자, 이걸 먹소.>>

   <<아니, 이건 뭐라고 샀소? 여기서 주는 음식도 괜찮은데.>>

   <<아마 국수생각이 날거요. 향련가에 우리네 조선사람이 차려놓은 <랭면옥>이 있소. 거겐 이제 출원하는 날 들려 한그릇씩 하기요.>>

   금록이의 따뜻한 마음씨와 극진한 보살핌은 려홍이의 가슴을 또다시 후덥게하였다.

   <<좀 어떻소? 그 외과의사는 조선사람같던데 너무나 엄해서... >>

   <<엄하긴? 보기완 달라. 참 싹싹한 분이더구만.>>

   <<싹싹한 분이라구? 그래 약을 새로 갈아붙였소?>>

   금녹이는 무료치료를 해주는건 감사한 일이지만 약을 너무적게 발라주는것 같더라면서 상처가 속히 나을수있겠는지를 걱정했다. 그러나 기실 의사가 상처를 보아가며 약을 량이 많게 발라줄수도 있고 약을 적게 발라줄수도있는 일이였다. 려홍이는 며칠새의 치료를 통해서 그것을 심심히 감득해왔다. 그와는 달리 려홍이로서는 그네들이 맡지 않아도 될 환자를 맡아놓고 너무도 극진히 보살펴주고있음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쪽에서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할 체면이 있는가!...

   <<여기서는 설사 약을 쓰지 않아도 상처가 저절로 나아질것 같구만.  정말이지 의사들의 보살핌이 또 얼마나 정겨운지 상처도 병도 말끔히 가셔주는것만같으단말이요. ... 이봐 금록이, 방금 누가왔다갔는지 알만하우? 황주임이 왔다갔어. 그인 남자아니구 여자야. 글쎄 날보러 일부러 왔댔다니까.>>

   려홍이는 깊은 강개에 잠겨서 뒤말을 이었다.

   <<바로 지금 금록이 앉은 그 걸상에 앉았다갔소. 저쪽에 있던 걸상을 끌어다놓고 바로 금록이처럼 마주앉아 나와 한참이나 얘길 했더랬지... 나한테 탄알을 주면서 누가 누가 찾는지 누가 쐈는지 알만하냐고 묻더구만. 참 그걸 내가 갖고있지. 자, 보라구. 이거야.>>

   려홍이는 호주머니에서 권총알을 꺼내여 금록의 손바닥에 놓았다. 금록이는 신기한듯이 탄알을 들여다보았다.

   <<참 이상한걸. 이눔의 탄알이 왜 살을 꿰뚫고 나가지 못하고 박혔댔을가?>>

   <<내 살이 아마 더 억셋던모양이지 허허...>>

   려홍이는 상한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빙그레 웃었다.

   <<헌데 참 모를 일이야. 그 황주임이 글쎄 장삼이도 알고 리서장도 잘 알더구만. 내가 말하던 리경광이란 놈은 말이야. 보아하니 북만일대에는 어디라없이 다 돌아다닌것 같애.>>

   <<하여튼 보통녀성이야 아니지!>>

   남성들도 적지 않은 병원에서 주임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녀성은 아니라는 확고부동한 견해가 려홍으로 하여금 그를 더욱 존경하게 하였다.

   가을치고는 고요한 날씨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바야흐로 단풍이 든 나뭇가지들에서 새들이 우짖는 소리만 들릴뿐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겐 아마 도회지니 바람소리가 없이 고요한가봐. 게다가 불한당들을 쫓아버려서 태평스럽기도하구....>>

   자연의 고요속에 도취되여 혼자말처럼 뇌인것을 어느새 금록이가 받아듣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태평하다는게 무슨 소리요. 나가 들어보우. 별별 소문이 다 떠돌고있소. 지금 토비들이 사처에서 구데기처럼 바글바글 궤기 시작한다우. 방정에 한패거리 생기구 목단강에도 한패거리 생기구... 호룡산에 생긴건 사문동의 패거린데 말루는 5천명남아된다오. 글세 5천명이라는게 어디요.부는 소리도 있겠지만 하여간 소문이 그렇게 나서 사람들은 그자들이 시내로 들어와 행패부릴가봐 행패부릴가봐 걱정들이요.>>

   금록이는 그 내심상 불안을 감출수 없어 땅바닥에다 침을 탁 뱉고나서 한마디 덧보탯다.

   <<뭐 이달말전으로 쳐들어온다는가? 뒈질놈들이!>>

   <<그건 또 웬 소리야?!>>

   려홍이는 움쭉 일어나려다가 상한 어깨가 당금 떨어져나가는것 같아서 어망결에 비명을 지르면서 도루누웠다. 려홍이는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담을 바질바질 흘렸다. 금록이는 급해맞아 의사부르러 가겠노라고 덤벼쳣다. 그러는것을 려홍이가 부득부득 잡아서 겨우 앉혀놓았다. 그리고는 띠끔띠끔 쑤셔나는 어깨를 살근살근 문지르며 종잡기 어려운 상념에 빠졌다. 어떻게 되어가는 판국인가? 호룡산에 불한당이 모인다는건 알았어도 그 수자가 5천명에 달한다는건 초문이다. 그곳으로 가는 백납먹은자를 길에서 만난게 엊그제 일인데 그사이에 벌서 그렇게 많은 자들이 모여들었단말인가? 그것이 사문동패라니 대체 뭘해먹던 자일가? 그리고 방정과 목단강에도 그런 패거리가 생겼다는데 방정에 있는 두목은 어떤자이고 목단강에 있는 두목은 또 어떤자일가?... 여기서는 안장코도배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을 진압해버렸다고했는데 그자들이 호룡산으로 쫓겨났으니 이제 그곳의 패거리와 합력해서 도시로 쳐들어오자고 하는게 분명하다. 5천명이라는 수자가 결코 적은건 아니다. 더욱이 보복하려고 달려들 때는... 이 도시에 경비대가 잇긴 있어도 력량이 얼마나 되는지?... 만일 정말 사문동도당이 쳐들어오면 그네들이 막아낼수가 잇겠는지?... 이 병원도 안전한 곳은 못된다. <<항승병원>>ㅇ;니, 자기네와 반대되는 편의 병원이니 말대로 쳐들어오기만하면 그놈들이 가만놔두려하지 않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방금 치료받기 시작했는데... 금성애기가 없는걸 보니 아마 거기에는 큰 토비무리가 생기지 않고있는 모양이지? 어쩌면 좋을가?...

   <<공연한 소릴 해서 려홍형님한테 근심생기에 한게 아니요?... 여하튼 보통소문이 아니니 알려줄수밖에 없었소.>>

   그록이가 이렇게 입을 열어서 려홍이는 자기의 사념에서 깨여났다. 사념이 끊어지니 머리가 좀 개운해나는것 같았다.

   <<그놈들이 큰소리는 탕탕쳐도 감히 쳐들어오진 못할거야. 경비대가 단단히 지키고있을텐데 제따위들이 감히 달려들어?>>

   되도록 좋은 면으로 생각을 굴굴려 부질없이 생겨난 우려들을 떨어버라려했다.

   그후 시내엔 새 소문이 더 퍼지질 않았다. 그래서 려홍이는 금록이한테서 들은 소문도 아마 요어니엿던 모양이구나 하면서 련 며칠을 마음안정한 기분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황혼무렵이였다.

   바깥에서 간호원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왓다. 노래소리는 매우 률동적이고도 맑았다.

   

  험산절벽에 수목이 우거지고

   광풍폭우 몰아치는데

   거친 벌 물가에 전마가 호용하네

   우등불둘레에 한결같이 문치니

   붉은 빛은 온 천하에 차고넘치누나

   ....

 

   려홍이는 귀를 강구고 들었다. 노래는 길고도 여러개절로 되어있었는데 어딘가 려홍의 심금을 울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노래소리가 멎은지 얼마안되여 주임 황숙금아주머니가 들어와 스위치를 올렸다. 회칠한 방안엔 불식간에 밝은 전등불이 차고넘쳤다.

   황숙금아주머니는 손수 깨끗이 씻어 말리우고 다림질까지 한 곤색옷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려홍이는 침대에서 얼른 내려서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정작 받고보니 탄알구멍마저 찬찬한 바늘뜸질로 지워버려서 새옷같이 된 그 옷을 선뜻이 입을수 없었다.

   <<왜 쭈물거려요? 갑자기 옷입을줄도 잊었는가요? 호호호... >>

   하고 숙금아주머니가 놀려주었다.

   <<정말 감사해요. 난 내옷같지 않아서... >>

   려홍이는 침대가에 서서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황아주머니, 방금 아주머니도 노래불럿는가요?>>

   <<원 어쩌면 불도 켜지 않았길래 난 자는줄로 알았지.>>

   <<허, 자다니요. 노래소리가 귀속을 파고드는데 잠이 얼수있나요. 난 누워서 누구 목청이 고운가구 감상했지요.>>

   <<호, 그러고보니 이 총각동무 마음이 들뜬 모양이지?>>

   황숙금은 익살스레 말하며 사람좋게 웃었다. 려홍이는 자기를 <<황주임>>이라 부르지 말고 그저 <<황아주머니>>라 부르든지 아니면 이름을 넣어 <<숙금아주머니>>라 부르든지 아니면 이름을 넣어 <<숙금아주머니>>라 부르라던 황주임앞에서 버릇궂은 아이처럼 싱글벙글 웃었다.

   <<아주머니, 그건 대관절 무슨노랜가요?>>

   <<우리 부른 노래말이지? 그건 <로영의 노래>라는거요. 마음에 들어요?>>

   <<예, 어쩜 나도 부르고싶습니다.>>

   황주임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더니 얼굴에 띠였던 웃음기를 거두며 그 노래는 동북항일련군 제3군이 수빈일대에서 고투하면서 45리소택지를 넘을때에 창작된것이라고 했다. 황주임은 도 항일련군이 여기 송화강하류인 목란(木蘭), 의란(依蘭), 부금(富錦), 라북(羅北) 일대에서도 일본놈과 영용하게 싸웠다고했다. 그야말로 피흘리며 싸운 혁명의 력사였다.

   (산속에서 8년동안이나 항일을 견지하느라니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려홍이는 수술받고 잠들었을 때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피뜩 상기되여 마취약도 없이 수술받았다는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났다. 그러나 직방으로는 물을수도 없어서 슬쩍 변을 쳐 알아보기로 하였다.

   <<황아주머니네 이 병원도 고생이 막심했겠습니다. 어떤땐 물론 마취약같은것도 없어서 애먹었겟지요?>>

   <<이루다 말할게 있어요. 마취약이 없을 땐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게 환자였지요.>>

   이렇게 말하는 황숙금의 표정에는 순간 어둠이 깃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어 표정을 고치고 이왕의 그 상냥스러운 어투로 묻는것이였다.

   <<마취약애길 하는걸 보니 수술받을때의 일 생각나는 모양이구만. 참 고통수러웠을 거얘요.>>

   <<이까짓거, 전 얼마든 참을만했습니다.>>

   려홍이는 도리여 점직한 생악에 휘말려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인차 치켜들었다.

   <<황아주머니, 아주머닌 나보다 몇갑절 더 중한 부상자도 마취약없이 강다짐으로 수술한적이 있었겠지요?>>

   <<있구말구. 한두번이 아니였지요. 지어 복부를 상하고도 마취약없이 수술받은 사람이 있었어요.>>

   <<아,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단말입니까! 아주머니 그사람이 지금 살아있어요?>>

   <<살아있구말구요. 지금 바로 이 시내에 있어요.>>

   <<이 시내에 있다구요? 대체 누군데요. 낯은 몰라도 이름이나 알아둡시다!>>

   하고 려홍이는 감격해 황숙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준길이라고 합니다.>>

   황숙금은 조용한 어조로 알려주고나서 지나온 피어린 나날의 한토막을 들려주었다.

   <<마준걸동무는 우리 부대의 훌륭한 전사입니다. 그이는 과연 수난당한 로고대중의 력사를 잊지 않고 해방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투사였지요. 일본침략자를 무찔러 만리전화 꺼버리고 도탄속에서 헤매는 민중을 구해내는 가렬한 전투마다에서 그는 그야말로 대담무쌍했고 정찰기능도 훌륭한분이였답니다. 번마다 상급에서 맡겨준 임무를 어김없이 완수하군했던 그는 어느 한번 놈들의 토벌작전계획도를 사출해내려고 이 아르금시 일본수비대 마쯔모도대장의 저택에 잠입한적이 있었지요. 그랬다가 무치한자의 밀고로 해서 몸을 미처 빼지도 못한채 탄로났던겁니다. 그때 그는 단신으로 겹겹한 포위망을 뚫고나오다가 불행히도 적들이 쏜 탄알에 맞았지요. 물론 선량한 백성의 구원을 받았답니다. 산에서 나무하던 나무꾼이였는데 그는 나무단속에다 그를 감추고 놈들이 추격해왔을 때 옛말에 나오는 사슴감춘 나무꾼 더벅머리총각처럼 엉뚱한 곳을 가르켜 그놈들이 그리로 쫓아가게 만들었답니다. 그래놓고 그 농민이 그를 우리께로 업어왔지요. 우리는 적탄에 복부를 맞은 그를 마취야없이 수술하여 탄알을 꺼냈지요. ... 복통이 그렇게도 심했지만 그는 치료받는 기간에 도리여 우리가 자기를 치료해내지 못해 상심할가봐 신음소리를 한마디도 내지 않았지요. 그의 그같은 놀라운 의력은 우리 위생전사들뿐아니라 온 부대의 전사들에게 곤난을 박차고 앞으로 전진하게끔 고무해주었던 겁니다. ...>>

   <<아!ㅡ >>

저도모르게 환성을 올린 려홍이는 눈뿌리가 저려남을 느꼈다. 목숨바쳐 희생한 무수한 혁명렬사들, 피흘려 싸웠으며 또 오늘까지 살아있다는 그 마준길이라는 사람, 이 보잘것 없는 인간의 운명을 깊이 동정해주고있는 황숙금아주머니ㅡ 이들 모두가 이 세상에는 보기드믄 고결한 사람이고 억센 투사들이라고 려홍이는 가슴사무치게 느꼈다.

   <<어이구, 그러니까 려홍형님은 마을에 돌아가 혁명을 했던게로구먼!>>

   려홍이는 며칠전에 자기가 마을에서 소작료인하를 위해 투쟁했다는 얘기를 했더니 박금록이가 이렇게 웨치며 대견해하던 일을 상기했다.

   (어리석은 노릇이였어. ...그것도 다 혁명이라 할수 있는가.... 내가 소작료를 낯춰보려고 덤벼쳤던 일을 말하면 이 숙금아주머니가 풋내기들의 놀음이였다고 얼마나 되게 웃겠는가.)

   려홍이는 자기의 경솔했던 행동을 뉘우치면서 다시는 그때 일을 입밖에 내지 말려고 맘먹었다.

   <<려홍동무!>>

   <<예?>>

   려홍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동무는 출원한다음 어쩔 예산입니까?>>

   하고 황숙금은 려홍이를 빤히 건너다보았다.

   <<저는 복수하러 떠나겠습니다. 제가 어제 손가네와 리경광은 나의 원쑤라 하잖습디까. 금성에 살고있는 황복룡이... 그는 한족친굽니다. 그가 나설겝니다. 매일오군하는 금록이도 나설게구... 딴곳에서도 내 친구들을 찾으렵니다.>>

   <<그래서 복수단을 조직하겠단말이지요? >>

   <<예, 꼭 조직할 예산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대단한 마음을 먹고있는구나 하고 귀담아 듣는것 같던 황숙금의 입가에 잔 파문이 일었다. 조소를 머금었음이 분명했다.

   (왜 저러는걸가?)

   려홍이는 미약한 반발심이 울컥 치밀었다. 그래서 달아오른 얼굴을 쳐들고 어줍은 태도로 캐듯이 되물었다.

   <<왜요? 그렇게 하며 ㄴ안되나요?>>

   <<안됩니다!>>

   황숙금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다가 소리내여 웃기까지 하더니 정중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이 복수단을 조직해서 원쑤를 없앨수 있을가요?... 동무는 원쑤가 그 몇놈인줄로 알고있어요?... 생각이 너무 단순합니다.>>

   <<제 생각이 단순하다구요?>>

   려홍이는 어리둥절해났다. 그러나 그로서는 원쑤를 갚지 않고서는 견뎌낼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부르짖다싶히 웨쳤다.

   <<내가 감옥에서 나올 때, 웬분이 내 발목에서 철쇄를 끊어주었지요. 그분은 날 보고 다신 남한테 억눌림받지 말라구 했습니다!>>

   <<옳습니다. 이제 다시는 남한테 억눌림받지 말아야지요. ...그분이 어떤분인지 제대로 말했군요.>>

   황숙금은 이렇게 동의를 표하고나서 그런 진리를 알려준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는 눈매로 말끄러미 건너다보았다.

   <<그분이 누군지 저는 모릅니다만 그를 데릴러왔던 유격대원이 그분보고 <지휘원동지!>라고 부릅디다. 그분도 조선사람이였지요!>>

   <<오, 그래요?!>>

   황숙금의 얼굴에는 웃음발이 덮히였다. 려홍이는 단통 이 주임녀성이 틀림없이 그를 알고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와동시에 이 도시에 와 여러날째 치료받으면서도 금성에 있는 왕복룡이를 찾아 그와 복수를 도모할 생각만을 했지 왜 가까운데 있는 해방의 은인을 찾아보고 그한테서 좀더 적절하고 리지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궁리를 하지 못했던가를 슬그머니 후회했다.  

   려홍이는 돌아가려고 일어선 황주임을 따라서며 다그쳐 물었다.

   <<황아주머니, 아주머닌 그분을 알고있죠? ... 웃는걸 보니 틀림없이 알고있는것 같습니다.>>

   <<나 좀... >>

   황숙금은 미묘한 웃음을 남겨놓고 나가버렸다.

   <<좀이라?... >>

   그의 말을 음미하느라 뇌여보고있는 려홍이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저 아주머니가 왜서 저럴가? 가만있자, 저 숙금아주머니가 혹시 그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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