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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의 철학은 강권이 진리라지만 토비의 철학은 폭행이 진리였다. 돈을 벌자, 큰돈을 벌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깃발을 꽂은 큰기와가마를 마사야한다! 이것이 바로 위삼포가 여지껏 웨쳐온 구호였고 목표였다.
그들이 기와가마라고 부르는 부호를 털때 계획대로 성공하면 그걸《소리났다》하고 실패하면《소리못났다》고 한다. 기와가마에는《무른가마》와《단단한 가마》두가지 류형으로 나뉘는데《무른가마》란 울타리를 나무로 했거나 아니면 널판자로 한 부자집을 가르킨다. 이런 부호들은 거개가 집모퉁이거나 마구간이거나 아니면 사람 다니는 곳에다 은페된 저격시설을 해놓았다. 《단단한 가마》란 집주위에 토성을 했거나 아니면 벽돌이거나 돌로 든든하게 담을 높이쌓고 사는 대부호를 가리키는데 어떤 부호들의 성에는 지어 네귀에 포대가 있고 지키는 사람도 전문 따로 있었다. 그런 대부호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는바 산에서 퇴역군인이나 불질잘하는 포수를 청해다 고용하기도했다.
한편 어떤 군벌과 대부호들은 토비의 습격과 략탈을 막기위해 자체의 무장대를 따로갖기도했다. 그리고 그럴 형편이 못되는 부호들은 관병을 청하거나 아니면 정규화가 못되는 화방자(花膀子)경찰대같은 지방의 무장대를 돈을 주고 청하거나 아니면 촌단(村團)이거나 련방(聯防)같은 무장대를 조직하여 토비들의 습격에 대처하고있었다.
아무리 그렇게 한들 그들이 생존활기를 위해 광분하는 사나운 토비의 발호(撥扈)를 어떻게 다 당해낸단말인가!
광활한 관동땅 도처에서 거의 매일이다싶이 토비와 부호들지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있었으니 그것은 짜장 전쟁다운 기분을 풍기고 있었다.
자체의 무장대를 갖고있는 토호거나 큰 재록신들은 자기 집의 굴뚝에다 붉은기를 높이 꽂아놓음으로써 위풍을 과시했다. 그같이 붉은기를 내꽂은 것은 내가 너깟 토비쯤은 무섭지도 않으니 어디 덤벼들겠거든 덤벼들어봐라는거니 그것이 실질상에는 토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웬간한 실력으로야 감히 얼씬거리기나하겠는가. 하길래 작은 무리의 토비들은 그저 깃대를 꽂지 않은 만만한 부호나 돌아가며 못살게 굴었다.
큰나무여야 그림자도 큰것이다. 여기 북만은 물론 온 관동땅에서 굴지인 염왕산은 언제나 담이 크게 놀았다. 이듬해의 가을이 돌아오자 그들은 또 한차례의 기와가마마슬 새 작전이 무르익었다. 방향은 계서(鷄西)일대. 그들이 노린 몇 개의 부호중 첫목표물은 그곳 조씨(曹氏)성을 가진 깃발꽂은 대부호였다. 조씨는 근년에 나타난, 말하자면 이른바 운수가 대통해서 생겨난 폭발호(爆發戶)였다. 그는 관내에서 몰려온 난민들을 싼값으로 모아갖고 채탄업을 벌려 거부로 된건데 처첩을 여럿거느리고 예황제부럽잖게 호강살이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니 위삼포의 과녘으로 될 수밖에.
계서는 이때 개발이 한창인 탄광지대였다. 그런데 탄갱이 여기저기 널려있다보니 그에따라 인가도 자연히 널려서 혹은 적게 혹은 많게 제마끔 무덕무덕 군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스산한 곳이였다. 그렇다해서 만만히 봐서야 될가? 절대 그럴수 없었다. 한 것은 집이 도회지에 있지 않고 거기다 자리잡고있는 부호마다 자기 무장을 갖추고있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기간의 정찰끝에 준비가 다 되자 염왕산의 군사 반둬더는 황도길일(黃道吉日)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날이 돌아오자 위삼포가 산채에다는 60명만 남아지키게 하고 자기가 친히 300여명의 인마를 거느리고 나섰다.
그들은 목단강을 건너서 동진(東進)했다.
가마마스는 일이 번마다 쉬운건아니였다. 이번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관병이나 련방대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행군을 거의 밤에 했다. 그렇게 해서 이틑날 먼동이 틀 무렵에 목적지에 당도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공격전이 벌어졌다.
한데 저항이 어찌나 완강한지 이쪽은 뜻과 같이 공략할 수 없었다. 포대가 이쪽의 밀집사격에 의하여 작용을 잃었지만 대문은 든든해서 열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담장의 사격구로 총알이 련발날아와 적잖은 새자가 쓰러졌다.
위삼포는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는 새자 하나를 쏴눕히고나서 그결에 권총쥔 손을 높이들고 웨쳤다.
《누구든 문만 열라, 그러면 자유를 줄테다!》
그가 선포한 자유가 다른때는 볼 수 없는 특허였다. 제2련에서 서은괴가 거느리는 3패가 맏두령이 던져주는 그 특혜를 쟁취하려고 나섰다.
《자유를 위해 싸워보자!》
《향락을 위해 싸워보자!》
그들은 미친듯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나갔다.
헛짓이 아니였다. 이쪽에서 대머리 포토우가 새로 밀집사격을 조직해 대방의 화력을 견제한 틈을 타 그들은 결사적으로 담을 넘어들어가 끝끝내 대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싸움이 붙은지 근 반시간만에 첫 번째의 《단단한 가마》는 마침내 부셔지고 말았다.
위삼포는 조만해서는 계획한 일을 그만두는 성질이 아니였다.
첫 기와가마가 공점되자 위삼포는 공을 세운 3패만 거기에 남겨놓고 자기는 주력을 끌고 인차 그 다음의 사냥물로 정해진 기와가마를 마스러 떠났다.
이미 허락된 자유가 아닌가. 그것을 누려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최대의 유감으로 되고말 것이라면서 이곳에 남은 서은괴패의 류자들은 두령이 가버리기바쁘게 제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손에 무장들고 대항했던 자들을 다 끄집어내다가 담장밑에 세워놓고 총을 놓아 죽여버렸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서둘러 그야말로 쥐새끼도 빠져나가기 어려울 수색과 무자비한 략탈을 감행했다. 물론 망탕히 한것이 아니라 서은괴가 끄는대로 깐깐히 해나갔다.
그것이 일단 끝나자 서은괴는 그 집의 종들에게 말을 잘 먹이게 호령하는 한편 죽일가봐 겁나서 벌벌 떨어대는 그 집 사람들을 닭이며 오리를 있는대로 잡게했다. 반강자(기름떡)며 표양자(죠즈)며 진주산(이팝)도 하게했다.
3패의 류자들은 배껏먹고 마시였다.
야수는 배만 부르면 늘어지게 쉬건만 이들은 그러지를 않았다. 서둘러 계집데리고 노는 행사를 벌렸던 것이다. 그런데 새자 여럿이 죽어버려 수자가 줄었건만 그 집의 녀인수가 이쪽과 정비례가 되지 않는게 문제였다.
《제밀할거, 어쩐다?…》
서은괴는 불만에 볼이 부어오른 자기 패의 새자들을 향해 팔을 홰홰 저었다.
《제밀할거, 우리 이러잔말이야. 보다싶이 년놈의 수가 모자라잖은가. 이럴때는 우리두 한 번 공산을 하잔말이다. 그러는게 어때?》
그의 제의는 날이 서지 않았다. 개방구라면서 코방구뀌고 돌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두녀석이 얻어맞아 늘어진채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 조씨의 해사하게 생긴 첩년 하나를 놓고 서로 제가 가지고놀아야한다고 우기면서 다툼질을 했다.
《자 자, 그럼 차라리 이렇게 하자. 너들 누가 담이 더큰갈 어디 한 번 멋지게 비겨보란말이다.》
누군가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할려면해봐!》
다투던 자 중 하나가 선듯이 먼저나섰다. 그자는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더니 내놓인 자기 다리의 장단지에다 비수를 쿡 밖았다.
《아!…》
곁에서 모두 탄성을 올렸다.
자상을 한 그 류자는 상대측을 향해 어떠냐 자신있거든 너도 어디 나처럼해봐 하고 눈길을 날렸다.
그러자 저쪽 자가 칼로 제 한쪽다리의 장단지살을 썩 베여 그자의 앞에다 던진다.
《와아!…》
이번에는 더 큰 탄성이 터지면서 갈채까지 곁든다.
칼끝을 장단지에 밖은 자가가 그만 고개를 떨궈버린다. 이제 더 큰 동통을 만들어 낼 용기가 없는모양이다. 결국 제 장단지살을 베낸 자가 승리한것이다.
녀자쟁탈전이 그 한가지 모양만이 아니였다.
저기 다른 한켠에서는 울음을 그쳤지만 내내 놀랜 토끼새끼모양으로 제 가슴을 부등켜안고 오돌오돌 떨고있는 애처로운 계집하인 하나를 놓고도 류자 둘이 서로 제가 먼저맡아놓은거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녀인이 목과 젖가슴에는 그리 험하지 않은 칼상처가 가늘게 나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제마끔 제것이라 만들어놓은 표식이였던것이다…
위삼포는 계서일판을 이틀간 불나게 휩쓸고나서 말머리를 급히 돌렸다. 좀만 더 지체했다가는 련방대의 포위에 들 위험성이 있었으니까. 말타고 행패부리는 그들이야말로 과연 신출귀몰하다는 평을 받을만도했다.
전번날 건넜던 강가에 이르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숨을 돌려야했다. 게다가 어둠의 장막속을 그냥갈수도 없는지라 위삼포는 날이 새면 건너기로 하고 강변에다 둔을 쳤다.
류자들은 련며칠간 사정없이 혹사한 말들을 휴식시키면서 단잠에 골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잡혀온 5명의 운수사나운 인질들은 눈을 전혀 붙일수 없었다. 양즈방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빙 둘러앉게 한 후 방울을 주어 인질마다 그것을 다섯 번 흔들곤 다음사람한테 넘겨주는 계주를 끊지 않고 계속하게끔했던거다. 그것을 수이꾸이(水櫃)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울소리가 좀만 멎어도 채찍을 사정없이 날렸다. 수이꾸이는 전문 인질만 감독하는 류자였다. 양즈방이 왜 이런 방법을 쓰겠는가? 그건 두말할것없이 바로 비호자(飛虎子) (돈많은인질)를 이같이 괴롭힘으로써 굴복시켜 자기의 목적을 어서빨리이뤄보자는 목적에서였다. 토비손에 인질로 잡힌 자 모두 겁을 집어먹고 떨어대는건 아니다. 목숨보다 돈을 더 귀중히 여기는 수전노거나 이쪽에서 요구하는건 돈이지 사람의 목숨이 아니니 간대르야 하고 쓸데없는 배짱을 부려보는 자가 그러했다. 하길래 양즈방은 인질을 잡는 그 시각부터 내가 어떻게 하면 완고한 이 자식을 굴복시킬가고 골머리를 쓴다. 어쨌든 시일을 오래끌지 않고 인질을 돌려보내는게 상수요 재간이였다.
《오래잡아둬선뭘해 밥축만내는걸. 나도 고생이고.》
양즈방이 이런말하는 걸 민호도 들은적이 있다.
염왕산도 인질을 잡아가두고 협박해서 돈을 내게 하기도 하고 금품(金品)을 바치게도 하는데 다른 여느 도당과 색다른것이라면 이들이 잡는건 다가 먹을알이 큰 비호자(飛虎子)라는 것과 조만해서는 잡은 인질의 모숨은 빼앗지를 않는 그것이였다.
양즈방은 마음이 독해야 하지만 우선 수완가여야한다. 이 한 도당의 중점활동의 하나가 인질을 잡아오고 그를 다루는것이였기에 외사량 넷중 양즈방이 첫 자리에 서는 것이다.
염왕산의 양즈방은 환갑이 방금지난, 눈이 치째진 사나이였는데 모색이 어찌나 쌀쌀하고 독살스레 생겼는지 인정미라곤 꼬물만치도 있어보이지를 않거니와 어찌나 엄한 티를 내는지 일반사람은 감히 부접도 못할지경이다.
그런 사람이 잡아온 인질을 제 양아들로 삼았다니 민호는 종시 리해되지 않았는데 마침 그 리유를 알아볼 기회가 왔다. 인질보러 갔던 양즈방이 지나다가 아직 잠자지 않고 우등불가에 홀로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가까이에 다가왔던거다.
《넌 왜 자잖아?》
《잠안옵니다. 양즈방두령께서두 앉으시여 불이나 쬐시죠.》
《그럴가. 밤기온이 과연 쌀쌀하구나.》
이러면서 그도 우둥불가에 쭈크리고 앉는다.
민호는 인질쪽에 눈길을 던졌다가 거두고 입을 열어 물었다.
《저 표들이 이틀이나 눈을 영 붙혀보지 않아서…》
《방금도 한 녀석이 낯까지 뎃네라.》
《불더미에 꼭그라졌던모양이죠.》
《……》
《그토록하면 너무혹독하잖을까요?》
민호는 물어보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류자내에서 일반새자는 웃나으리앞에서 그 어떤 일이든 함부로 간섭하지 않기로 되어있다. 한데도 양즈방은 오늘만은 개의치않고 응대하는것이였다.
《혹독하게 굴잖으면 어떡하겠나, 마음편하면 집에다 사정도 알리지 않는데. 돈많고 구두쇠질하는것도 아마 부자들의 류행병인가보다. 생각해봐라. 그런자한테 자비를 베풀어서야 무슨일이 성사되겠냐. 이 일을 하자면 우선 손이 매워야 하네라.》
《저도 그렇다는건 압니다만…》
민호는 말을 끊고 양즈방의 기색을 살피다가 입을 다시열어 궁금한 것을 꺼냈다.
《저 양즈방두령님, 한가지 물어봐도될까요?》
《뭘말이냐?》
《언젠가 제가 들을라니 두령께선 전에 인질로 잡아온 애를 양자로 받으셨다더군요. 부모가 찾아가려하지 않아서 그리했다는게 사실인가요?》
《그렇게 됐네라. 넌 장평일 놓구 하는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애가 귀엽게 생겼더구나. 내가 걔의 부모들이 얼마나 상심이 크겠나 생각하고 해엽자를 인츰띄워 데려가라했지. 그런데 응대가 없더구나. 그래 어떻게 했겠냐. 우리쪽에서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많아 그런는모양이구나 생각하고 퍽 줄여갖구 화서즈더러 해엽자를 한 장 더 띄우라했지. 그래서 와서즈가 곧 그렇게 한건데 애비란 녀석이 의연히 응대가 없더란말이다. 귀신하품할 일이지. 보아하니 방귀도 제거면 아까와서 악귀한테 물려간대두 안뀔 놈팽이야.》
《아무렴 그렇게까지야 원!》
《한심한 수전노지.》
《그래 어떻게 했습니까? 그저 그렇게 끝나고만건가요?》
양즈방은 힐끗 치떠볼뿐이다. 그는 두 번씩이나 해엽자를 보냈건만 끄떡하지 않으니 화가 동해 훗날 그를 잡아 죽여버린 일은 말하지 않고 입을 다시열어 동강나려던 이야기를 계속이었다.
《너 생각해봐라. 그런 애비의 손에서 자라는 애가 그래 무슨 사람의 값에 가겠냐. 그래 내가 걔보고 얘야 안되겠다. 내가 네 애비루 돼주마. 이젠 집에 갈 념은 말고 여기서 살거라했네라. 걔도 말을 듣더구나. 그래서 그렇게 된거다.》
양즈방은 잠간 쉬였다가 자기 말에 그루밖았다.
《사람살아가는 세상이란 본시 이런거네라.》
여름에 인질을 묶어서 여러날 끌고다니다 보면 묶인 자리가 꺼지면서 거기에 구더기 생길때가 있는데 그때면 양즈방은 수레기름을 태워 발라준다. 인질은 물론 아파죽겠다고 아부재기친다. 그러면 양즈방은 으레 널 잡자구그러는게 아니니 참거라 이게 약이네라 하면서 치료를 늦추지 않는다.
안그러면 어쩌는가. 언젠가 민호는 주하쪽에 있는 가마를 마스고 돌아와 양즈방이 산채에 있는 양즈방에 가둬놓은 인질을 그렇게 치료해주는것을 보고 우둔하고 잔인한 놈이라 했는데 다시생각해보면 그럴법도했다. 특효약이 따로 없는데야 그인들 별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고통스레 내쳐두지 않는것만봐도 가슴한구석에는 그래도 한쪼각의 자비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해서 속으로 너도 사람이 옳기는 옳은모양이구나했다.
양즈방이 어깨를 추스르더니 입을 열어 물어왔다.
《네가 여기루 온지가 언제더라?》
《지금이 양력으루 구월초니 옹근 두해째지요, 두령님.》
《벌써 그리되던가. 세월이 류수라더니…그래 지내보니 재미는 어떠하냐?》
《재미가요…》
《맘은 안착이 돼느냐?》
《안착이요…》
《차츰지내누라면 살멋이 있을거다.》
《거야 그렇겠지요.》
《건데 언젠가 듣자니 거 한심한 내기들을 했더구나. 그런 짓은 왜 해.》
양즈방이 지난일을 문득 꺼내는것이였다.
무엇이라 말하랴. 민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마침 화서즈가 양즈방을 찾아왔다. 방금 인질 하나가 배겨내지 못하고 굴복했는데 함께 해엽자띄울 일을 상론해보지 않으려는가 했다. 반둬더는 잠못자며 지킨 보람이 있다면서 기뻐했다.
그들이 가버리자 민호는 졸음이 와서 자기 말곁에 쪼크리고누웠다. 그리곤 인차 쪽잠이 들었다. 꿈에 그는 방금 끓여서 김이 물물나는 라라부다 한그릇을 들고와서 먹으라고 주는 츄얼이를 보았다. 안해는 그보고 그지간 당신은 어데가있었길래 몰골이 그리도 축갔느냐며 상심하는것이였다. 과연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다.
말이 투레질했다. 그바람에 민호는 단잠에서 깨여나고말았다. 대체 어느땐지?… 하늘은 구름이 끼여 별들이 보이지 않고 소슬한 가을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가까운 어디에선가 반둬더가 주문외우는 소리 들려왔다.
일칠간위에야 모자람이 있으리오
혀는 돌아가지 않아 말하기 어렵도다
열시인지 열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삼구태위에 횡사가 있으니
상망이 많을가봐 근심이외다
한시인지 두시인지 알려주소서
오십일곤에 꼭 죽게되니
별이 나지면 구성이 되련만
세시인지 네시인지 알려주소서
……
가마마슬때건 보복할 때건 시퍼런 대낮에는 대로를 맘대로 활개치며 다니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은 거진 어두운 밤에 있게되는건데 그러노라면 어렵고 기분잡치는 일에 자주부닥친치게되는것이다. 그럴때면 거기서 해탈하기위해 군사인 반둬더가 책임지고 온갖의 방법을 다하는 것이다. 례를 들어 행군도중 대오가 길을 잃으면 반둬더는 땅에 꿇어앉아 《팔문지패》를 논다. 반둬더는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 팔방문이 열리는 점괘를 보는거다. 그래서 그는 패쪽이 열리는 방향에 따라서 대오를 움직이게 하는것이다.
어떤때는 모자를 벗어 던져 그것이 놓이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리기도한다.
십팔라한 신선이시여
우리한테 길을 알려주시오
대오를 이끌어주신다면
신선님을 잘 모시리다
어떤때는 네 방위에다 향을 피워놓고 그것이 빨리타는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손수건을 꺼내여 네귀를 접은 후 《십팔라한 신선님이시여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십사》하고 뇌이면서 공중에다 올려뿌려 접은 귀가 펴지는 것을 보고 대오의 행진방향을 정하기도한다. 이같이 지패를 놀아 점을 치거나 주문을 외우는건 반둬더가 늘 해야하는일이였다.
동녘이 푸름푸름해지더니 먼동이 트기시작한다.
잠을 깬 인마는 강을 건넜다.
련락원이 선통해서 염왕산은 경사났다. 폭죽소리 요란하고 곡분지에는 파아란 연기가 자오록했다.
붉은 비단치포를 화려하게 떨쳐입은 향란이가 산채에 남아있은 백두옹 량태와 즈좡 그리고 후근의 몇사람과 함께 개선하는 대오를 환영했다.
산채를 나간 류자들이 계획한 일을 성공하고 돌아올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벌어지군하는 한나의 경건한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앙산채의 널다란 앞마당 한가운데 놓여있는 단우에다 커다란 붉은 비로도를 펴놓았는데 산채로 돌아온 류자들은 말을 탄채 렬을 지어 지나면서 순서대로 자기가 여직까지 건사해온 장물들을 꺼내여 그 비로도우에다 던진다.
빨간 비로도우에는 보물이 싸인다.
민호역시 말안장에 매여있는 가죽주머니끈을 풀어 거꾸로 털었다. 금팔지 두 개와 은비녀 하나 진주목걸이 하나가 떨어졌다.
《저치가 수확이 괜찮네!》
누군가의 뇌임이 들려왔다.
돈과 보물은 점점 더 쌓이였고 류자들은 기뻐한다. 해빛에 눈이 부시게 령롱한 그것들이 이제 돈으로 바뀔것이며 그런 후에는 그들 저마다에게 다시금 분배될것이다. 바로 그것을 바라고 료략질을 해먹는 이네들이 아닌가.
보통 석달만에 소배일(小配日)이 있게되는데 그때면 류자들은 다시한번 명절기분에 잠기면서 배껏 먹고 마시고 푹 취해서 마음껏 놀아본다. 그러는 재미로 제 목숨을 그 어렵고도 무서운 도박판에다 걸고 한 번 또 한 번 출전하는건데 그들은 그 고비를 무난히 넘긴 안도감과 감출 수 없는 희열을 안고 소배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웬 일인지 소배일이 전보다 열흘이나 늦어졌거니와 분배액수도 바라던것보다는 적었다. 그래서 왕견이도 하진국이도 민호앞에 왜 요것만 주나 하고 내심좋잖은 기분을 나타냈다. 한반의 다른 류자들도 왜 이럴가고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떠들지는 않았다. 의견이 있어도 참는데 습관된 그들이요 두령들이 사욕이 있어서 따로 챙기는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반이 그런다고 다른반도 그럴가?
소배가 지난지 3일만이다. 위삼포는 북쪽산채에 있는 새자 하나가 와서 맏두령님께서 한 번만 좀 오셨다가십시오.》해서 그리로 갔다.
문을 떼고 들어 가 보니 2련 3패의 새자들이 다 모인것같은데 한자가 바당에 돼지대가리를 놓고 퍼더버리고 앉아 칼로 깝지를 바르고 있는것이였다. 위삼포의 눈길이 주위를 한 번 쭉 훝고나서 그자의 몸에 다시떨어졌다. 지금 돼지대가리깝지를 바르고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패장인 서은괴였던것이다.
납덩이같이 무겁고 랭랭한 침묵이 꽉 내리누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류자무리에서 새자가 이같이 모여 돼지대가리를 깝지바르는건 두령 네가 보아라 우린 지금 너한테 불만이 생겼다 그런줄을 알고 정신차리거라 그러지 않으면 처리해버리겠다 하는 암시인 것이다. 수백을 헤아리는 토비떼가 성행하고있는 여기 이 관동땅에서는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다. 그래서 어제까지도 맏형님이요 두령님이요 떠받들리던 자가 눈깜짝새에 제 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마는것이다.
염왕산이 생겨 여지껏 그따위 불의지변(不意之變)이라곤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지어는 꿈조차 꾸지 않았다. 한데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장면을 당할줄이야 어찌알았으랴!
이들의 반역은 배타를 목적하는 철저한 결연을 의미하거니와 거기에 보복이 가해질 때면 잔인한 참살로 결말을 짖는것이다. 한데 이는 또한 어디까지나 음모적인것이여서 아직 성공하기 전에는 광명정대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기에 남의 충둥질에 못이겨 심기일전(心機一轉)하지 않고 동참했거나 주모자의 위력에 눌리고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휘말려든 자는 자신의 죄책감으로 하여 어쨌는 행동이 떳떳치 못하고 어색한 것이다.
이런 어색함이 반죽된 집안에서 경계와 긴장으로 곧아진 여러쌍의 눈길이 두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고 있었다. 깝대기를 발라 죽여치울 녀석, 네놈이 언감생심(焉敢生心) 내 앞에서 이런짓을 해?… 위삼포는 눈섶이 푸뜰거리면서 속에서 불똥이 튀였다. 그렇다고 당금 펄펄 뛰겠는가. 이 자리에서 당장 팔열지옥에 떨어진다해도 꿈쩍안할 이 억척보두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눌렀다. 그리고는 일순간 돌이 되어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을 느슨히 플면서 되려 여유있게 웃음까지 지어보이면서 부드럽게 물었다.
《동생은 갑자기 무슨일인가. 보아하니 내한테 그 무슨 불만이 생긴거같은데… 정녕 그러하다면야 시원히 말이나할게지.》
《좋습니다. 말하지요. 우리 삼패는 이번 출전에 인명도 잃고 공도 세웠습니다. 이 점은 큰형님께서도 잘 알고계시는게 아닙니까.》
《오 그러니까 배분이 잘못됐다 그건가?》
《그렇지요. 바로 그겝니다. 아무리 소배라두 분금은 되려 이전만못하니 대체 어찌된일입니까. 식소사번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오 그런가! 내 알아들었네.》
서은괴는 돼지대갈을 그냥 바르면서 게정부렸다.
《안다면 왜 그러십니까? 유공자필득이라하구서는.》
《그래 그건 내가 한 소리야. 유공자필득이라구…동생은 그래 상이 없을가봐 그러나. 그리구…자네들이 목숨내걸구 벌어온 금전이야 까마귀가 물어갔을가. 있네, 있어. 깔축없이 그대루있단말일세. 건데 그걸 다 주자구보니 한가지 결리는게 있구만…그게 뭐겠나… 보다싶이 형제들이 여럿 눈감았는데 그분들의 식솔은 누가 봐줘야 하겠나. 그걸 우리가 돌봐야 할게 아니겠는가…내가 생각을 많이해봤지. 그래서…그러누라니 배분이 늦어지구 적게된건데 이제 또 묘동이 있잖은가…그때를 바라구 취한 소밴데 사전에 미처 설명을 못했군…기분잡치게됐어. 어쩌겠나 내 이제야 생각이 도니 알아서 다시보도록허지.》
위삼포는 돌아가자 지체없이 3패에다 이미받은 액수의 근 배되는 돈을 부가해주었다. 이건 물론 그가 마음내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패 류자들의 내심도 한번 점검해보자는 수단이였다.
시골까마귀우는데 버덕가마귀가 울지 못하랴. 이 일은 자연히 파문을 일으키기마련이였다.
이날 민호가 있는 산채에서는 그런줄도 모르고 서은괴패의 류자들이 계집쟁탈전을 벌린끝에 제 다리장단지에 칼박고 살을 베여 자상한 미런한 짓을 화제에 올려놓고 왈시왈비했다.
《물쥐도 짝있고 딱정벌레도 짝있네라.》
《그렇다구 산채에는 제 다리장단지갖고 노는 짝이 나진거야.》
《건데 왜 외짝귀 보재만은 짝없이 홀로보낼고.》
《말짱 바보병신들이야.》
하진국이 그따위 담량자랑이야말로 알짜바보짓이 아닌가고 하면서 자칫 놀림가마리로 될번했던 민호역시 신수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얼이 나갔던지 한심한 짓을 했던게 아니냐면서 혀를 찼다.
지난해의 그번 뽐창뿌리기시합에서 민호는 부개비를 잡히기는커녕 외려 뽐창명수로 불리우게되였다. 그러나 시합에서 패한 황보재는 신세가 마른 무우쪽같이 오그라지고만거다. 민호는 물론 처음 한동안은 속이 후련했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그렇지 않았다. 날이 가면서 황보재가 그번에 제 손으로 제 귀를 사정없이 베던 끔찍스런 장면을 눈앞에 떠올릴때마다 오연한 승리감에 젖어들기보다 죄스러운 미안감이 파고들면서 기분이 잡치군했다.
모략이 성공못한 자에게 앙심이 더 생기는거야 당연한 일. 민호는 겉으로는 대수로와하지 않지만 속은 시퍼렇게 살아 두억시니같은 그자가 지금도 여전히 절치부심하고있을것이요 이제 아무때건 기회만생기면 달려들어 보복하리란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귀떨어진 말만 꺼내면 신경이 일어섰다.
밖에 나갔던 왕은경이 젖떨어진 망아지같이 까불대며 달려들어오더니 폭발성적인 새 뉴스 한가지를 던졌다.
《어이, 어이!…희한한 소식이야, 희한한 소식!…서은괴네 패있잖아, 북채 거기말이야…소배를 다시했대. 돼지대갈을 발쿠구서! 》
《와!…》
《뭐라니?》
《다시말해라.》
《무슨 창빠진소릴 저렇게…》
류자들은 모두 천둥에 놀라듯 멍해졌다가 왁짝 떠들었다.
왕견이 눈알을 굴리였다.
《자식! 임다물지 못해. 누가 감히 그따위짓을 한단말이냐?》
《서은괴가 발퀐다오. 장평이가 그러는데…정말이요.》
떠듬이 잠간 멎었다. 너구리가 호랑이를 물어메쳤다면 누가 곧이듣기나하겠는가. 도무지 믿기어려운 일인지라 류자들은 제 귀를 의심하기도 하고 눈을 다시 화등잔같이 뜨기도했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은괴가 감히 그런짖을 해?…우둔하지.》
그러자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말문이 터졌다.
《우둔하구 미런하다.》
《맞아. 돌을 들어 제 발 등깨는거야.》
《과연그럴가?》
《글쎄…》
《가만있자, 나눠준게 적으니까 더 달라구 한짓이겠는데 말과 같이 과연 더 받았다면야 그치들이 제 목적은 이룬셈이야.》
《우리도 응당이면…》
《너 무슨소릴 그렇게…》
《목적을 이뤘다해두…》
《문제는 돼지대갈을 껍질바른거야.》
《그렇지! 내 생각두 그렇구나. 그게 어째 신통치 않아. 생각해봐라. 그치들이 이번 출전에 아무리 공을 세웠다해두 어쩜 그렇게까지야…》
《한심하구나. 한심해.》
《공은 공이구 소배가 적다구 그렇게 불만부려서야 어디.》
왕견이 눈을 꺼물거리며 오가는 소리를 여겨듣더니 제 입을 끌어다 민호의 귀가에 댔다.
《그저일같잖다. 서은괴가 꼭 뉘기추김에 들었어.》
《허, 이거. 오늘은 제법 머리도는구만!》
민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동감이였다. 서은괴가 담이 아무리큰들 남의 추김에 들지 않구서야 배꼽이 웃을 그런 미런한 짓을 할가. 운수사나운 인간은 운명이 한순간에 역전하고마는건데 서은괴가 지금이 바로 그런꼴이였다. 누군가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며 반장을 불렀다. 멍청해 있던 위진은 고개를 드는 것 같더니 제 머리만 썩썩 긁는다. 태도를 어떻게 표시할지 몰라 난감한 상태다.
민호는 들떠나려는 기분을 차분히 가라않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분별없이 날뛰려는 류자들을 향해 우선 떠들지 말고 조용하라해놓고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개구리뛴다구 강아지도 뛸가. 칼물고 뜀뛰는 자 끝장좋을리 없는거다. 그러한즉 모두들 주의하라. 내 말인즉은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절대 남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 말자는거다. 명철한 두뇌로 제 주견이이 있게 놀자는 그거다.》
모두들 그의 말이 옳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서은괴가 사람됨이 팔부는 아닌데 왜 그같이 갑작스레 미런한 짓을 했을가? 이번사건은 민호의 흥미를 부쩍 자아냈다. 보아하니 남의 충둥질에 놀아댄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뒤에서 든장질하고 부채질한건 누굴가?… 듣자니 서은괴가 진사해와 보통관게가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장본인은 진사해가 아닐가? 그럴거야. 민호는 속으로 그를 짚었다. 한데 그렇다면 진사해는 또 어느만큼한 자신이 있길래 뒷심이 돼주는걸가?… 민호나 그나 여기에 들어와 지낸 시간이 거진같은데 어찌보면 진사해가 그사이 물망에 오른 것 같기도했다. 아직 그의 본질을 모르고있는 적잖은 류자들이 그를 호인풍의 남아로 보면서 존경까지하는 것을 보면. 한데 그런 사람이 왜 아직 일자반급도 못하고있는걸가? 분석해 보면 이건 바로 그라는 존재가 아직도 위두령의 안중에는 들지 않고있음을 말하는것이다. 그자는 야심많고 속이 엉큼해서 아무때건 스스로 마각을 드러내고말것이다. 민호는 속으로 이렇게 짚었다. 그렇다고 딱 찍을만한 근거는 대기어렵지만.
민호가 자기를 원쑤로 여기고있음을 알게되였던 진사해는 자기가 직접 독수를 뻗치기 어려우니 황보재의 손을 빌려고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속수는 장평이 입을 연데서 더 명백하게 밝혀졌다. 뽐창시합직후 향란이는 자기의 은사를 진사해한테 발설한 장평을 불러다놓고 한바탕 되게 족쳤다. 그런결과 장평은 언녕부터 진사해가 자기더러 향란이와 민호지간의 왕래를 감시하라고 시킨일과 정황을 수시로 자기한테 반영하라고 했던일을 실토했다. 그것만이 아니였다. 장평은 또 진사해가 황보재보고《여기서 뜻을 이루려면 우선 그 꼬리방즈놈부터 없애야한다》고 충둥질을 한것까지도 알려주었던것이다.
향란이는 보기와 다르게 인내력이 대단한 녀인이였다. 그녀는 황보재를 그리 각박하게 굴지 않고 제똥에 물러나게 처박아두는 한편 처음부터 그와 배짱이 맞아도는 진사해에 대해서는 곁을 약간씩 주면서 살살 끌었다. 그가 의뭉수를 쓰는 능구렁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향란이는 전혀 무감각한 것 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대방은 이 계집이 과연 내 속이 어떤건 모르는모양이구나 했다. 제아무리 총명한 사내라 해도 녀인의 홀림수에 들면 그렇게 어리석어지는 법이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덩치값못하는 너절한 비게덩이로 보일뿐이였다. 그가 비루하게도 남의 정사를 들춰낸 일을 생각할수록 이갈리도록 괘씸했다. 했지만 향란이는 그렇다는 내색은 좀치도 겉에 드러내지 않은채 만날때마다 외려 각별히 친절한양했다. 그래서 사내로하여금 두꺼비가 고니고기먹어보려고 하듯이 엉뚱하고 과분한 궁리까지 하게 만들었다. 향란이는 누가 만약 제 앞에서 그를 호인풍의 남아라 칭찬할라치면 그런가요 내가 보게도 어쩜 그런거같네요 했다. 그렇게 맞장구치면서 속으로는 야 이 얼빠진 놈아, 네가 그 사람을 그렇게 보니 정신이 어지간히두 빨렸구나, 그 녀석은 시궁창에서 바라다니는 부덕쥐만도 못한 더러운 비렁뱅이야, 그런걸 보구 호인풍의 사나이라면 네 눈에 정말 곰팡이꼈다 하고 욕했다.
아무때건 네놈의 깝지를 라쿠고말리라 벼르는 향란이였다.
어느날 민호는 장평을 만났다.
《여봐, 장평동생! 전날있잖아. 우리 계서엘 갔다오다가 강변서 로숙하던날말이야…그날밤 난 양즈방하구 오래얘기했었는데 참 재미있었어. 그분이 어쨌는지 알어. 나한테 너의 얘길 하더란말이다. 난 정말 잘 들었어. 》
《뭐라우, 내 양부가?…》
《그렇잖구. 그인 어떻게 돼서 널 수양하게 됐는갈 내한테 알려주더구나. 그리구…저기 좀 가자.》
민호는 이렇게 말을 걸어 대방을 곁으로 당긴 후 그를 조용한데 끌고가서 하나하나 집요하게 캐물었다.
《네희들 거기서 소배를 더 했다는게 정말이냐?》
《정말이잖구.》
《듣자니 돼지대갈껍지를 발퀏다며?.》
《그랬소.》
《사실이란말이지?》
《사실아니구. 서은괴가 그랬는데 뭐.》
《서은괴가? 아니 그가 어째서 그랬다니?》
《거야 간단하죠. 우리 패는 그번에 공까지 세웠는데두 주는건 외려 다른때만두 형편없더란말이요. 그래서...》
《무슨소린지…》
《위두령 정신 좀 차리라구.》
《그래서 위두령이 과연 정신차렸다 그 말이겠구나…그렇지?…갑을간 너들이 목적은 이룬거같구…그러니까 서은괴가 머리는 돈 것 같기도하구. 담통이 큰데다 총명해서!》
《그가 담크고 총명해서라구? 아니요.》
《아니라니 건 또 무슨소리냐?》
《그게 뭐 서패장이 궁리해낸 술책인줄아오.》
《그렇다면? 그토록 머리돈게 누구였단말이냐?》
《그건 진수이샹이가…》
장평은 낯이 빨개지면서 입밖으로 튀여나온 말을 꺾어버렸다. 갑작실수로 인한 파설(播說)의 후과를 깨닫고 입을 닫아걸려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왜그래. 꼴보니 넌 거짓말해놓구 그러는거같구나. 말해라.》
민호는 심히 불쾌한양 눈살을 찌프렸다.
《…》
《믿고싶지도않은 소리지. 그가 어디 그럴사람이냐. 제 눈으루 보지두못해갖구 그런 말 하면 못써. 그러면 무함이 되니까.》
류자지간에 무함은 배신이며 용서못할 죄악으로 치부되는거다. 장평은 자기가 죄인취급을 받고싶지는 않아 입을 열었다.
《난 보았소. 보지 않구서 어떻게 맘대루 지껄이겠소. 진사해 그이가…》
《그이가 뭐라더냐?》
《음…저…》
《왜 그러니. 시원히 말을 할게지.》
《말하겠소. 그인 은괴보구서 가만있을 일이 아니다. 우는 애 젓한모금 더 먹이는거야. 떠들구일어나야한다구했소. 그리구는 어미소죽으면 새끼소 멍에지기마련인데 밭이 묵어 자빠질가봐 걱정이냐 했소.》
《그리구는?…그런말만 한건 아니겠지?》
《그리구 자기는 돼지대갈 껍지를 발쿤적있었다구했소.》
《진사해가 그러더란말이지.》
《그랬소, 정말. 거짓말이면 내가 피자새끼지(개).》
장평이 이러면서 말추를 누르는 걸 보면 믿을만한 소리였다.
이젠됐다, 어디보자! 원쑤를 찍어넘길 칼을 자기 손에 쥔 것만같아 민호는 기뻤다. 하지만 지금의 심정을 웃음으로 밖에 뿜어 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이마살을 찌프리기도 하고 턱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다면?…네가 다른소리는 더 들은거없냐?》
《없소. 다른소린 못들었소. 그것두 내가 적삼씻자구 양푼에 물담아갖구 나가다가 면바루 잡아들은거요.》
《됐다. 알았다. 넌 이런 말 다른데가서는 번지지말거라. 알아들었냐. 네가 이제 더 발설했다가는 좋은일없을테니까.》
알고푼 것을 다 알아낸 민호는 그한테 그루밖아 주의주었다. 생각과 다르게 경계심풀고 대방을 믿어주면서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준 그가 자칫 변을 당할 것 같아서였다.
이쯤하면 진상은 다 밝혀진건데 어떻게 하면 좋을가? 요즘 진사해는 산채에 있지 않았다. 듣자니 위용강이와 같이 어덴가 외출을 했다고 한다. 민호는 생각했다. 그들이 산채를 나간게 소배가 있은 이틑날이라니 진사해가 그때 서은괴를 추긴것이다. 이 추리가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확실히 한차례의 실패한 모반(謀叛)이다.
일은 잘되여간다! 명민한 사람은 자기의 칼을 쓰지 않고서도 얼마든 원쑤의 피를 볼수있는 것이다. 형세는 이러한데 자 이젠 어떻게 할것인가고 생각을 굴린 끝에 민호는 이 일을 우선 위삼포한테 알리기로 맘먹었다. 그러되 그를 따로 조용히 만나서 알려주고싶었다. 조심해야 할 일이니까.
민호는 위삼포를 어떻게 만날가 궁리하다가 향란이를 생각했다. 그한테 이 사실을 먼저알려준다면 그녀가 가만있으려 하지 않을건 물론 그녀와 합심하면 일은 더 잘 되어갈것 같았다. 하여 그는 그렇게 하리라 맘먹었다.
민호는 지체없이 그녀를 찾아갔다. 한데 이럴변이라구야! 그가 가보니 거기에 뜻밖에 황보재가 먼저와있지를 않는가. 되돌아나오려는데 향란이가 발목을 잡는것이였다.
《왜 가요! 가지 말아요!》
그녀의 신경질적인 만류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들리였다.
황보재가 힐끔 눈치를 보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민호는 향란이를 향해 물었다.
《보재는 왜 왔댔습니까?》
《그가 글쎄…내 그놈을…》
향란이는 당혹감을 금치못하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요즘 밖을 나오지 않고 혼자 방구석에 들어않아 내내 무협소설에만 정신팔려있다보니 산채에서 발생한 일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보재가 서은괴의 얘길합디까?》
《그래요. 방금알려줬어요. 이가 막 갈려요. 서은괴가 어쩜…》
《그러니 <아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는 속담생긴게지.》
《한심하지. 그자가 글쎄 담통이 어쩜 그렇게두 커졌을가요.》
《생각해보시오. 그자한테 왜 그런 담이 갑자기 생겼겠는가구.》 《글쎄요. 이게 그래 귀신이 들어두 피똥쌀 일이 아닌가요.》
《보재가 그걸 알려주지 않았습디까?》
《뭘 말인가요?》
《뒤에서 그렇게 하라구 추겨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니 뭐라구요? 그런가요!》
민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향란이가 숨가쁘게 졸랐다.
《말해요. 어서알려줘요. 대체 어느 놈이 그랬는가요?》
《진사해!》
《뭐라구요!?》
민호의 말에 향란이는 아연해지면서 진정못한다.
황보재는 서은괴가 돼지대갈껍지바른 일만 알려줬던거다. 그가 이번 사건에 진사해가 어떤 역을 논건 모르는 것 같았다.
민호는 녀인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입을 다시열었다.
《향란아가씨, 우선 진정하시오! 그래야만 내가 말하겠어.》
향란이는 발끈했다.
《날 놀리는가요. 어떻게 진정할수있나요.》
《천만에. 아무렴 내가 감히 아가씰 놀리자구 찾아왔을까.》
녀인이 태도가 야속해서 민호도 어성을 높혔다.
이럴 때 마침 소풍하러 밖에 나왔던 위삼포가 딸거실의 창가를 지나다가 안에서 나는 소리를 잡아듣고 들어왔다.
《너희들은 대체 무슨일에 그러느냐?》
민호는 숙였던 머리를 다시치키고 배품했다.
《두령님께서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러잖아 제가 지금 막 찾아가 뵙자던참이였습니다. 서은괴가 돼지대갈을 껍지발쿠게 된 내막에 대해서…》
위삼포는 귓뿌리를 세웠다.
《뭐라!?…》
차고 예리한 눈매로 자기 딸과 언쟁하던 조선사나이를 드레질하면서 그는 아래에 이어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민호는 이 억척스런 두목이 이제 제 고발을 듣기만 하면 선불맞은 호랑이같이 격노하여 날뛸거라고 생각면서 입을 다시열었다.
《두령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일이 서은괴혼자서 주도한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서은괴혼자서는 그럴 담도 없지요. 그자는 무모한 표연자였을 뿐 막후에 지휘자가 따로 하나 있었던겁니다.》
《뭐라!?…》
《이번사건은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긴겁니다.》
《진사해가 조작하고 추겼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장평이한테 들어서 압니다. 그 애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제 귀로 똑똑히 들었노라구 했습니다. 일은 이런겝니다.》
민호는 진사해가 서은괴에게 했다는 말을 들은대로 번지였다.
위삼포는 낯가죽이 몇번 실룩거리더니 돌같이 굳어버렸다. 괴여오르는 노기를 지긋이 누르면서 귀담아 들을 뿐 억척스런 이 사나이는 이쪽의 생각과는 다르게 격분해서 날뛰지는 않았다.
민호는 그의 참을성에 한번다시 감탄했다.
위삼포는 알려줘서 참 고맙다면서 자기가 이 일을 알아서 처리할것이니 다른 누구한테도 더 발설하지 말라고 민호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 딸을 보고는 자칫했다가는 일을 그르칠수있으니 절대 감정에 들뜨지 말고 신중이 행동하라 주의주고 돌아갔다.
《호ㅡ어쩜! 저렇게 배은망덕하는 불한당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요. 아버지는 큰 실수를 한거얘요. 그따위 거지를 다 불쌍히 여겨주다니 원. 애초에 들여놓지도 말고 쫓아버렸어야 옳은걸 그랬어요. 안그런가요. 양호우환(養虎憂患)이라더니 이런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요. 봐요, 그자를 받아들였기에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번하잖았나요. 과연 그럴사한 위선자였지. 그러잖아 어쩐지 눈에 거슬리기에.... 과연 교활하기 짝없는 놈이지! 이번까지 지내보니 그놈의 배속에는 전갈모양으로 온통 독밖에 없네요.》
아버지가 가자 딸이 이를 악물면서 진사해를 욕하는것이였다.
《제 아무리 교활해두 오산을 했으니 행동이야 서툰놈이지.》
《나하구 어디 밸 좀 더 써보죠. 거 참 볼만하던데.》
향란이는 게면쩍은지 낯색이 약간 붉어지더니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첨엔 정말 참기어려웠던거얘요.》
《참기어려우면 고래질인가. 제 남편이면 그러지 않을걸.》
《입다물어요. 그따위소린 작작하고.》
《하지말랍니까. 그럼 하지말지.》
본래는 서은괴가 돼지대가리껍지를 발쿠면 위삼포가 보고서 발연대로하여 새자들을 마구욕질할것이고 그러면 격분한 새자들이 들고일어나 합심하여 두령을 그 자리에서 요정낼줄로 알았다. 그런데 위삼포는 발연대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해지면서 내놓는 요구를 선선히 받아준 것이다. 그가 그러는데야 다른때 악감도 적의도 없었던 새자들이 발검할리있는가.
서은괴는 실패하고말았다. 밀려드는건 내가 왜 위삼포가 들어오면 반의 새자들이 한결같이 들고일어나 다짜고짜 그를 죽여버리게끔 잡도리를 하지 않았던가, 후회막급 할 뿐이였다.
한편 위삼포는 적발이 믿음직하기는하지만 더 확실한 죄증을 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였다. 하지만 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진사해의 일거일동을 주의해 살피다가 때가 되면 수습하기로 맘먹고 먼저 분별없이 납친 서은괴부터 처리해버리리라 작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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