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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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악마로 변했는가(번역문)
2015년 05월 07일 11시 34분  조회:3813  추천:11  작성자: 김송죽

 

                                  나는 어떻게 악마로 변했는가

  
                          
일본군 제38사단 230연대 12대 34소대 로병 미야모토의 자백.

                                                기록인: 지로 고바야시,  오시마.

 

                                                            김송죽 번역

 

 

   나는 간암에 걸려 이제는 말기에 이른 사람이다. 여지껏 아들과 손자의 낯이 깎일가봐 감히 말을 못하고 속만 썩혀오다가 그것을 그냥 속에다 넣 고 저세상까지 가자니 량심상 너무나 가책되고 무서운 일이라 이제는 아마도 다 털어놔야겠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더러운 살인악마였다. 

   세상사람 다가 이제부터는 나의 후대까지를 죄악의 씨알머리라 욕하겠지만 방법이 없다. 지난날 내가 저지른 죄악을 담은 얼마라도 뉘우친다면 그것이 회개하는 표현으로 될 것 같고 좀이라도 사람이 될 것 같기에 내가 오늘 결심하고 입을 여는것이다. 

 

   기실 나는 야스쿠니신사에 여러번이나 가긴했어도 한번도 그 안에는 들어가본적은 없다. 감히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안에 들어간다면 신사를 너무나 더럽게 만드는 것 같아서였다. 량심상 가책이 컷거니와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해온 짓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역질만 나기때문이였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내가 죽었다해도 내 이름과 내 얼굴이 거기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 이 미야모토는 너무나도 치사스럽고 더럽고 악질적인 인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에 가있은 기간에 군국주의의 한 병사로서 별의별짓을 다했다. 털어놓고 말해 나쁜짓이란 나쁜짓은 다한 것이다. 하나도 해보지 않은 짓이 없으니까. 그러니 나는 그 죄를 회피할래야 회피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 전쟁은 순전히 침략 행위였다. 그러하기에 나는 물론이고 다른 여늬 동료들도 역시 사람으로서 소유해야 할 인간성은 가질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격이란건 전혀 운운 할 수 조차 없을 지경이였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와같은 일본군인은 다가 죄악적인 짓에 끼여들지 않을래야 끼여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41년도의 일이다. 우리 제38사단 230연대 12대는 18사단, 51사단, 104사단과 같이 한데집중해서 다나카중장의 지휘하에 홍콩을 지키고있는 영국군대를 진공했던 것이다. 그 전투는 내가 겪은 전투가운데서는 가장 어려운 히트였는바 아군의 병사들은 빗발치는 탄우속에서 꺼꾸러져 군데군데 시체가 널렸다. 그런 환경속에서도 우리는 무사도정신으로 자살성적인 공격을 들이대여 18일만에 끝끝내 홍콩을 점령하고야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쓰러진 제 동료가 흘린 피자국을 밟으면서 홍콩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린 신입병사였건만 제 손으로 영국군인을 넷이나 죽이였다. 지어는 잡고있던 무기를 놓고 두손들고 투항하는 사람마저 사정없이 총창으로 찔러 죽이였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도 누구하나 말리지 않았다.


   사실이다. 그때는 그 어느 한 군관도 나서서 우리에게 “제네바공약”에 포로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는것을 알려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웃사람들의 명령이란 그저 “죽이라, 죽이라, 모조리 싹 다 죽이라!”였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가 두눈에 달이 올라 혈안이 된 채 미칠지경으로 대방을 마구죽이기만했던 것이다. 꼭 마치 마약에 중독된것 처럼 사람죽이는데 인이 박혀 살육을 지어는 쾌락으로 삼으면서 그것을 일종의 유희로까지 여겼던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극적인 백정의 행위였다. 그렇게 살인광으로 까지 변해가면서도 내 자신은 되려 자기를 용감하고 위대한 존재로 여겼거니와 그로인해 자호(自豪)를 가지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게 있는가.

 

   우리는 그때, 말하자면 1937년12월12일에 이미 남경대도살이 있은것은 몰랐다. 그저 승승장구하는 우리 일본군대가 남경을 점령했다하니 그것을 위대한 걸작으로만 여겼지 그것이 천추에 용납못할 죄악이였다는 것은 몰랐던 것이다. 훗날귀국하여 중국의 군사법정에서 제6사단의 구히라 육군중장을 심판하는 방송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세상을 놀래우는 남경대학살이 있었고 그 상황을 대략 알게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 거기다 비하면 우리가 홍콩에서 감행한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였다고만 여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닌게아니라 참으로 한쪼각의 량심도 없는 부끄러운 짓이였다.


   나는 살인악마짓에다 색마의 짓까지 보태였다. 내 감각에 홍콩의 중국녀자들은 그닥지 않아보였다. 그들은 거개가 왜소한 체격이여서 꼭 마치도 근친교배에 의해서 만들어진 페품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날 죽을지도 모를 전쟁판이라 언제 그런것을 다 따지랴싶었다. 황차 그때는 우리에게 속했던 위안부들은 곤명에 가서 방금 싸움을 치른 거기의 23사의 관병들에게 몸을 바치는 판이였던 것이다.

   우리보고 그들이 이제 당장 돌아올것이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거짓말을 한 장교는 영국군의 총에 맞아 죽었고 위안부들은 45일이나 지나도록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어떤치들은 아마 싸움을 갖치른 다른 또 어느 한패가 중간에서 위안부들을 가로채간 모양이라 단언했다. 그런 소리를 듣고보니 기분이 몹시 상하면서 격분했던 우리는 세인트 스티븐병원을 목표물로 정하고는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때 영국군인 상병들을 치료하고있는 세인트 스티븐 병원에 맨먼저 뛰여들어간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12대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나하고 “중국전구범죄편호 435ㅡ54760”에 보면 229련대는 적의 저격수가 먼저습격하니 세인트 스티븐 병원에 돌진해 들어갔다했는데요 하는데 그런게 아니다. 그의 말대로 그렇다면 우리가 진공해 들어간 것은 정당한 행위로 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런게 아니였다. 그때는 229련대가 성밖을 지켰지 근본 성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조용한 세인트 스티븐 병원으로 쳐들어간것은 바로 우리였다. 우리는 제멋대로 쳐들어가 아무런 반항도 없는 영국군상병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자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때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약 20여분만에 총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제편사람이 쓰러진건 하나도 없었다. 그 총소리는 우리쪽에서 낸 것이였다. 보고서에다 저격을 받아 우리쪽에서 상망자가 나졌다고 했으면 그건 순전한 거짓말이고 허튼소리다.


   어떻게 얻어진 정보였는지 90여명에 달하는 영국병사가 거기 세인트 스티븐 병원에 숨어있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정작 가보니 그 정보는 맞지 않았다. 그곳의 녀의사와 호사들이 우리보고 여기는 병원이다, 모두가 상병이고 숨어있는 영국병사는 한명도 없으니까 수색하지 말라면서 막아나섯던 것이다. 그러나 키타로소좌는 그 말을 전혀 들으려하지 않고 우리를 향해 녀인들을 몽땅 한군데다 가두고 영국군인을 찾아내라 명령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78명에 달하는 녀의사와 호사들을 한 커다란 방에 몰아넣고는 키타로소좌의 명령대로 숨어있다는 영국병을 찾기 시작했는데 결국 하나도 찾지 못하게 되자 치료중인 영국군 부상병들을 마구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용하던 병원은 갑자기 아비규환의 도살장으로 변해버렸다. 아츠라운 비명속에서 영국군 상병들은 저항도 못하고 하나 하나 생명을 잃어가고있었다.


   한창 이러는 판인데 229련대가 득달한 것이다. 그들은 병원의 한 방에 녀인들이 가득 같혀있는것을 발견하자 몹시 기뻐하면서 서둘러 바지부터 벗었다. 보아하니 좋은짓은 그들이 먼저하는것 같아서 부상병들을 죽이고있었던 우리들도 살육을 중지하고는 그짓을 따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였기에 영국군인 상병 90명중 그나마 64명만 죽고 나머지는 살아날 수 있은 것이다.

   229련대 치들이 자기들은 석달이나 위안부맛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이 그러니 우리도 석달이나 구경못했노라고 맞받아 떠들어댔다. 이렇게 되자 쌍방에서는 장교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찾느라고 머리악을 썼다. 그들은 발정한 수캐같은 병사들을 한번다시 휘둘러 보더니 각기 6명씩 12명을 뽑아 내여 그들이 우선 복도와 출입구들을 지키게금 포치했다. 그러고나서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행동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보기가 끔찍하고도 흉측스런 집체강간장면이 벌어지게 되였던 것이다.

   녀인들은 아츠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구원을 바랐지만 허사였다. 그녀들을 구해 줄 구세주는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일제이 왁 달려들어  그녀들의 반항을 저지시키느라 때리면서 깔아뭉개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볼려니 중대장 요시다가 제일 곱게생긴 여의사의 머리를 문틈에다 끼우고는 내리누르는 판이였다. 그러니 그 여의사는 반항을 더 하지 못한채 비명을 지르면서 궁둥이만 치켜올린채 욕지걸이를 했다. 그러니 요시다는 그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그리고나서는 군도로 여인의 팬티를 찢어놓았다. 봉두란발이 된 그 녀의사는 알아듣지 못할 말로 요시다를 저주했다.

   마치 불에 덴 고양이모양으로 기겁초풍한 여인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병원은 급기야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다시볼라니 요시다가 신짝으로 여인의 태양혈을 답새기는 것이였다. 여인은 정신을 잃었는지 소리를 더 지르지 못했다. 그러자 병사 둘이 달려들어 그녀를 바로눕히고는 발가벗기는 것이였다.

   요시다는 군도를 한켠에다 던지고나서 부르짖었다.

   “병사들이여, 다들 듣거라. 오늘은 우리가 이 계집들을 위안해줘야겠다.   어느누가 감히 우리 일본을 무능하다고 깔보고 욕한단말인가? 이 시각 나는 명령한다ㅡ 목표를 향해 준비! 여기에 있는 중국여자들을 깔아뭉개는 포를 쏘라, 돌격!”

   그리하여 그곳은 어느덧 순식간에 강간게임의 낙원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의 손에 든 여인은 나이가 18,9세쯤 되였을 녀간호사였은데 길죽한 상판에 주근깨가 가득했다. 게다가 울어서 두눈마서 부어나 볼모양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를 고를 여유가 없었거니와 더구나 기회를 놓칠것만 같아 나는 서둘러 그짓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간이란것은 꼭 마치 온역병과도 같이 전염이 빨랐던 것이다. 나는 총탁으로 반항하는 그녀의 머리를 답새겼다. 녀인은 그만 정신잃고 쓰러졌다. 맞은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런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칼로 그의 웃옷을 찢었거니와 바지와 속옷마저 다 찟어반라체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정말 미친짓을 했다. 여인을 그렇게 만들어놓고서 나는 누구던 와서 이년을 깔아뭉개라고 고함쳤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올라타고 껍석거리고있을 때 그 여자는 그만 개복했고 그녀는 일어나면서 내 낯을 손톱으로 빡 긁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를 다시금 정신잃게 만들었다. 나의 주먹에 코등이 터진 그녀의 낯은 당장 피칠갑을 했다. 그런 그를 병사 여섯이 또 달려들어 륜간을 했던 것이다.

   이러는 사이 어느덧 세인트 스티븐 병원은 운동장마저 온통 반라체의 일본병사와 전라의 산발한 중국여인들로 어지러워졌다. 그날 이같이 집체적인 강간작전에 참가한 것이 옹군 두개의 련대였던 것이다. 제일 고운 여자들을 골라 먼저 시범을 보였던 자들이 높은 단에 앉자서 사정을 보지 말고 중국여자들을 향래 돌격하고 발사하라고 소리쳐 추기면서 다른 사람이 그러는 장면을 흡족스레 감상했다.

   그날 세인트 스티븐 병원의 중국여인들은 그같이 백주에에 평균 6명의 일본병사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만 것이다.


   한데 그날 지내고 보니 중국여자라 해서 절대 없수히 볼것이 아니였다. 그들 중 어떤 여인들은 그저 모욕을 당하기만한게 아니였다. 어떤 여인은 그런 혼란속에서 남몰래 가위를 갖고있다가 그것으로 껍석거리는 자의 허리를 찔러 동맥을 끊어놓거나 아니면 생식기를 잘라버렸거니와 지어는 배를 찔러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알아보니 가위에 찔려 대동맥이 끊어진 자 8명, 생식기를 잘리워 잃은자가 5명이나 되었는데 이날 그 여인들 손에 죽은것이 18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값없이 죽은이들 속에는 평상시 우리의 존경을 받아왔던 유키오대좌도 들어있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살인자를 추적하느라 륜간당하고나서 아직 옷도 입지 못해 흉물스레 발가벗은 그대로인 여인들을 모두 한군데다 몰아 세워놓고는 살인짓을 한자는 당장 앞으로 나서라했다. 그러나 응대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기관총으로 모조리 없새치우리라 위협했다. 그랬건만 그저 무서워 벌벌 떨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내가 세여 보니 중국 여자 열넷이나 혼비백산하여 허벅지를 마구 떨면서 오줌까지 내싸는 것이였다. 여자 둘은 아예 땅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아마 기관총에 당장 죽을것 같아 기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였다. 우리는 그녀들을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이지 않은 것이다.  발가벗은 64명을 한줄에다 묶어놓고는 병원에서 찾아 낸 마취제를 돌아가며 놓아서는 트럭에다 올려뿌렸던 것이다. 우리는 그녀들을 그렇게 싣고서는 거기를 떠나 교외에 있는 한 별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들 모두를 군대의 매춘부ㅡ종군 기녀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사방이 모두 철망이라서 그녀들은 달아날래야 달아날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에 빠지면서도 녀인들은 다가 불복했다. 육체상의 모욕을 더는 받아내지 못해 죽음으로 반항하는 일이 련속재발했던 것이다. 한 녀인은 죽자고 손톱으로 제 목주래를 허벼 끊다가 발각되였다. 소대장은 홧김에 군도로 그녀의 손바닥을 두토막냈다. 하여 그녀는 당장에서 기혼해 넘어졌는데 그런것을 병사 8명이 바지를 벗고 달려들엇던 것이다. 여섯 번째까지 껍석거리고 나서 일곱 번째가 막 달려들었을 때는 그 녀자는 그만 숨을 거두고말았다. 

   그같은 녀인이 또 있었다. 어느 병사던 그녀와 성교를 제대로 못했다. 그렇게 되자 소대장이 머리를 쓴것이 그녀를 차라리 발가벗겨 알몸둥이로 만들어서는 통나무에다 묶어놓았다. 그러니 과연 더 애를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녀인역시 3일만에 죽고말았다. 

   그녀보다 더 참혹한 것은 다른 한 젋은 녀의사의 죽음이였다. 병사 셋이 그녀를 땅바닥에다 재껴놓으니 그녀는 몸을 주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반항했다. 그러니 소대장은 그녀의 두손을 뒤로 탈아 결박했다. 그리고는 칼을 빼들더니 땅바닥에 쓰러진 그녀의 두 다리를 잡아 벌리게 해놓고는 칼을 그녀의 음도에다 박아넣었던 것이다. 그러니 녀인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일어나 뛰는데 칼은 꽂힌대로 빠지지 않았고 음도에서 흘러내린 선혈은 땅에다 붉은 선을 그리였다. 가련한 그녀는 모진 통증에 고함을 치다가 쓰러지더니 그만 죽고말았다.  

   녀인 하나는 억지로 간음하려 든 자의 코를 물어놓았다. 코를 뜯기운 그 병사는 죽겠다고 아우성이 치면서 펄펄 뛰였다. 병사들은 그 여자를 붙잡아 발가벗긴 후 전선대에다 묶어놓았다. 그리고는 칼로 두 유방을 베여냈거니와 배를 자궁이 있는데까지 내리 쩍 갈라놓았다. 그래놓고서는 쏟아지는 창자로 녀인의 머리를 감아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취미가 되어 우리는 필리핀에 가서도 그따위짓을 다시했던 것이다. 어떻게 되어 생긴 습관인지 한 녀석은 전문 여자의 생식기ㅡ 자궁을 즐겨먹었다. 내가 봤는데 한번은 15살난 여호사를 붙잡아 묶어놓고는 그의 자궁을 베여 불에다 구워먹는 것이였다. 죽지 않은 여자애는 땅에 쓰러진 채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아 제 자궁이 그 일본병사의 먹히우는 광경을 고통스레 보았던 것이다. 배가 갈리운 그 어린 여호사는 피를 수없이 흘리다가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가 죽자 이번에는 다른 한 자가 그녀의 심장을 뜯어내여 먹어버렸다.  

   아마 일본군인들은 가는곳마다 그따위 식인종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았던모양인지 가끔 끔찍스런 보복을 당하하기도 했다. 한번은 230련대가 위안부의 접대를 받게 되었는데 23명이나 생식기가 물려 띁기웠다. 그들 중 18명은 미처 구급못해서 죽기까지 한 것이다.


   한번은 내가 붙잡혀 반항하는 중국여자 8명을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받고는 군도로 그녀들의 머리를 전부 베버렸거니와 배까지 칼로 갈라 창자를 빼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날밤 악몽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군했다. 거의 미칠것 같았다.

   나는 중국여성 34명을 강간했거니와 내 손으로 그렇게 8명이나 죽이고 3명은 불구자로 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본이 투항한 후 나는 내가 저지를 죄악을 줄곧 말할 담량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러서야 이같이 말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라면 다른게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5살나는 손자까지 갑자기 다 읺고말았다. 그들은 홋카이도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그만 다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이 세상에 친인이란건 없게되였다. 왜서 이모양이 될가? 그것은 보복이였다. 죄를 지은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앙갚음이고 천벌이였던 것이다.  나는 오로지 그렇게만 생각해야지 달리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가 절대 다시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죄악을 만든다. 우리의 자위대가 하필 국외에 나가 련합국의 임무를 지킬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나는 중국의 피해자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임을 잘 알고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오직 한마디 내가 죽으면 내 골회를 중국에 가져다 노새시장에 뿌려 짐승들이 밟아버리게 만들어달라는 것 뿐이다. 아니면 홍콩의 스티븐에다 뿌리든지. 나는 지금 그렇게해서라도 속죄하고푼 마음뿐이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양국간의 우정을 키우냐 못키우냐 하는 큰 문제와 관계되니 일본정부는 과거에 지은 죄악들을 솔직히 다 승인하고 잘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세상사람들의 량해를 구하자면 오직 그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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