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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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사람, 안쪽 사람 뭐가 다를까?
2010년 04월 27일 20시 38분  조회:5123  추천:57  작성자: 김정룡




연변사람, 안쪽 사람 뭐가 다를까?



글 제목부터 민감하다. 혹자는 김정룡이란 인간은 왜 바람 잦을 날 없이 민감한 문제들만 들 쑤시냐? 고 공격할 것이다. 각오가 되어 있다. 맞아 죽을 것을.

필자가 2006년 3월부터 연변조선족이 반성하자는 내용의 글 7편을 ‘연변여성’에 시리즈로 싣고 이삼년이 지난 후 사이버공간에 올렸더니 영광스럽게 두 번째 김문학이란 타이틀을 얻을 뻔했다. 아마 연변에서 이 글을 보고나면 또 나한테 몽둥이세례를 힘차게 갈겨 댈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인간은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에서만 맴돌면 인간세상이 다 그저 그렇거니 하고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장점만 내세우려하고 단점은 감추려 든다. 가령 누가 장점을 말해주면 좋다고 바지가 벗겨지는 줄 모르지만 일단 단점을 들추면 심한 알레르기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가 20년 전 연변일중 졸업반을 맡았을 때 성적이 하에 속하는 제자들에게 ‘공원다리나 건너려고 연변일중에 왔냐? 中專도 좋고 大專도 좋으니 되도록 안쪽 더 나아가서 산해관을 넘고 황하 장강을 건너라’고 교육시켰다.

중국조선족사회를 크게 두 가지 공동체로 나눠 볼 수 있다. 연변사람들이 연변을 제외한 나머지 산재지역의 조선족을 흔히 안쪽 사람으로 부른다. 즉 연변사람, 안쪽 사람.

선조들의 출신을 따져보면 연변사람은 주로 함경도이고, 장백현은 황해도와 평안도, 길림성 내 교하 서란 반석 매하구 및 남만 즉 요녕성 일대에 황해도 평안도 경상도 전라도이고, 흑룡강성은 주로 경상도가 많다.

한반도의 지형을 보면 이남이 벌이 많고 경작지가 많은데 비해 이북은 산이 많고 경작지가 적다. 특히 함경도가 경작지가 적고 땅이 메마르고 척박하다.

1875년에 우리 조상들이 장백현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역사자료가 있지만 초창기 만주에 이주한 조선인은, 두만강을 건넌 조선인 특히 함경도 출신이 지금의 연변 땅에 많이 이주했다. 그 이유로서 여러 가지겠으나 함경도의 자연조건과 큰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해온 사람들은 자연스레 인심이 박하기 마련이다. 마치 일본인처럼 말이다. 무슨 말이냐?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함경도 사람들이 본래 인심이 박한데다 또 산이 많고 개간할 땅이 적은 연변 땅에 와서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인심이 박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입에 풀칠이 어려운데 언제 인심을 베풀 여유가 있느냐? 말이다.

1977년에서 1978년에로 넘어가는 겨울 필자가 연길현 태양공사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태양에서 목단강에 이사 간 청년이 놀러와 하는 얘기가 안쪽 사람들은 이쪽을 ‘연변깍쟁이’라 욕한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다 같은 조선 사람인데 왜 그러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장장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즉 연변사람이 깍쟁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게끔 만들었다는 결론이다.

거꾸로 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연조건이 여유로웠던 경상도출신이 또 중국에서 가장 크고 넓은 동북평원에 정착하여 땅을 많이 개간할 수 있어 연변사람에 비해 생활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변에서는 옹기종기 널려 있는 논을 알뜰살뜰 가꿔야 생존이 가능하므로 인간의 마음도 세심하고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흑룡강 사람들은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여유가 있고 논도 그다지 알뜰하게 가꾸지 않고, 자세하게 말하자면 볏모내기를 연변처럼 알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논에다 볍씨를 이리저리 확 뿌리는 산종농사를 하다 보니 성격도 따라서 시원시원하게 형성되어 왔을 것이고 인심도 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인심이 박해지면 자연스레 잔머리를 굴리게 되어있다. 즉 자신의 그 어떤 단점을 감추려고 입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안쪽 사람들은 연변사람을 입만 반지르르하게 여물었다고 흉을 본다.

하여튼 연변사람의 이런저런 단점 때문에 다른 안쪽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흑룡강성 조선족은 연변사람과 혼사하면 일단 30점을 깎고 들어간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함경도출신인 연변사람들이 인심이 박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어려운 환경에서 삶을 개척하다 보니 생존력이 강한 장점이 있다. 이북에서 일등 신붓감으로 생존력이 강한 함경도 여성을 꼽듯이 연변여성들도 음식을 잘하고 바느질 잘하고 집 잘 거두고 남편을 잘 받들고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장점이 있다. 이는 흑룡강성 조선족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연변은 오래동안 안쪽 사람들한테 민족문화의 중심지로 동경을 받아왔다. 또한 연변사람을 이러컹저러쿵 흉 보던 안쪽 사람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아이들 교육 때문에 연길에 집 사고 이사간다. 노인들도 노년에 그래도 조선족이 모여 있는 곳에 살고 싶어 연변에 이사가는 것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자식이 있는 노인들도 노후를 생각해서 미리 위생이 깨끗한 연변의 여러 양로원을 돌아보고 있다.

연변사람이 자연생활환경이 어렵다 보니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겠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정치에 붙어 살아가려는 경향이 심한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연변은 지리적 우세와 인구비례를 따져 조선족자치로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과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을 받들어 전반 중국조선족사회의 문화면에서 중심역할을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자치주를 순수 민족발전에 기여하는 데 이용해 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기네끼리 죽고 죽이는 못된 짓을 많이 해온 것은 정말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문화대혁명시기 필자의 부친이 주자파로 비판투쟁 받게 되었는데 한족들은 좌우지간 아무런 말이 없는데 같은 조선족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난리다. 양반처럼 어진 부친을 꼬투리 잡을 것이 없으니 어떤 집들에선 자기네 아들이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마저 나의 아버지 탓이라고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또 어떤 자들은 빈농인 우리가문을 부농으로 만들려고 애쓴다든가 하여튼 실로 어처구니없이 대국혁명에 앞장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못된 짓거리를 많이 남겼다. 아마 그 시기 연변조선족사회의 상황이 거의 다 그러했을 것이다.

연변사람들이 대국혁명에 앞장서는 유전자가 강한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현재 한국에서 조선족의 삶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정치와 언론에 향해 마구 필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 연변출신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지난 지 30년도 넘었건만 지금도 연변은 그 바람이 여전히 쌩쌩 불어치고 있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환언하자면 안쪽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을 잊고 새로운 시기에 새롭게 발 맞춰 살아가려 하는데 비해 연변은 아직도 문화대혁명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변사람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자신들(소수사람)을 조선족사회를 지켜내는 최후보루의 투사로 여기고 한국어가 어떻고 조선어가 어떻고 하면서 밖에 나간 사람들을 깔아뭉개려고 애쓰면서 결국에 가서는 자신들도 그 길을 걷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흑룡강성 친구들과 대화해 보면 연변사람을 가장 못 마땅해 하는 것이 곧 “우리 흑룡강에서는 타민족과 싸우면 모를 사람들도 지나다가 돌을 집어 들고 돕는데 당신네 연변은 조선족이 타민족한테 얻어터져도 숱한 사람이 구경만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맡는 사실이다.

무시무시한 얘기를 걷어치우고 삶에 대한 화제로 넘어가자.

한국에서 생활해 보면 연변사람들이 여러모로 생존력이 강한 장점이 있으나 안쪽 사람들에 비해 마음씀씀이가 각박한 것은 사실이다. 오래전에 필자가 <연변내기와 연변사람>이란 글에서 지적했듯이 연변사람들이 현재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글에서 몇 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연변사람은 함경도사투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안쪽 사람에 비해 한국인들에게 일단 점수를 깎이고 있는 것도 부인 못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또 흑룡강성을 비롯해 안쪽 사람들은 이남에 선조의 고향이 많아 어릴 적부터 남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해온 이유로 한국에 대해 뭔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고 실제 이 땅에 온 이후에도 적응이 빠르고 쉬웠던 것이다. 이에 비해 연변사람은 선조고향이 주로 함경도이기 때문에 남한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해 아는 것이 없어 적응이 어려웠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남조선’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주정착시기에 안쪽 사람들은 황금벼파도를 바라보며 가슴이 뿌듯해 ‘쾌지나 칭칭나네’ 노래를 불렀고, 토비와 왜놈의 수탈을 막으려고 아낙내들이 보초를 서면서 이순신장군이 의병술로 이용했듯이 ‘강강술래’놀이도 했고, 또 평소에 각설이 타령 같은 노래도 불러왔는데 이런 노래들의 본산지가 바로 경상도와 전라도이다.

해방 후에도 안쪽 사람들은 정치 그늘의 속박(문화대혁명시기를 빼고)이 없이 늘 고향을 그리며 살아왔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후손들한테 들려주었다. 이에 비해 연변사람들은 단순히 이북과의 그 어떤 막연한 감정만 갖고 있었을 뿐 이남에 대해선 제로 상태였다.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안쪽 사람은 단점이 없는가? 필자는 연변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단점에 대한 지적은 회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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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0 ]

20   작성자 : 잠자나
날자:2010-05-02 08:32:01
연변은 중앙 직속이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인 북경은 국제화가 되며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를 따르는 변화가 있으나 연변은 중앙이 아닌 엉뚱하게 국경 넘어의 북쪽을 연상시키는 사고방식과 글씨쓰기를 따르고 있다. 연변은 중국에 있으니 당연히 연변하면 먼저 중국이 떠올라야 되는게 마땅한 일인데 연변하면 먼저 북쪽의 수도가 떠오르니 그 자랑스러운 전통인 연변은 중국의 중앙직속이라던 중국에 앞장서 나가던 모습은 이제 어디서 잠을 자고있는지 모르겠다. 연변사람, 안쪽 사람 뭐가 다를까? 바로 이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19   작성자 : 역으로반대로다르게
날자:2010-04-30 06:50:47
조선족사회에도 CONTRARIAN (대다수의 사람의 생각과 반대로 또는 다른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조선족사회는 CONRARIAN의 의견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된다. 그래야 대중심리 속에 조선족집단이 함께 범할 수있는 실수나 오류,오해,착각을 막을 수있다. 미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이들 CONTRARIAN 들이 위기를 예측했으나 말할 기회를 놓쳐 위기 예방을 못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론 오바마 대통령이 종종 대담하게 CONTRARIAN의 자세로 사태를 보고 의견을 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토요타사태는 바로 CONTRARIAN을 용납하지 않는 일본사회의 폐단이 나타난 한 결과이다. 예를 들면 이글에서 김정룡씨는 연변분들은 다들 스스로 우리 연변사람들은 인심이 좋다고 믿고서 그런 얘기들을 하고있을 때 연변사람의 한명으로서 CONTRAIAIN의 자세로 인심이 박하다는 전혀 다른얘기를 하는 것이다. 또는 조선족들이 다들 우리는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소수민족이라고 믿고있을 때 용기있는 CONTRARIAN이 나타나 세계 평균수준만 못한 집단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18   작성자 : 또순이
날자:2010-04-29 13:00:34
이전의 교육받고 세련된 멋쟁이 함경도 또순이 아줌마들을 기억하고 있는 서울 사람들은 근래에 들어오는 함경도 출신이라는 탈북자니 연변 조선족을 대하면 분위기가 완연히 달라 기대밖이라 꽤 실망하게 된다. 서울의 이들 멋쟁이 함경도 아줌마들 얘기로는 일제시대 때는 러시아에 가까운 청진에서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변에서 왔다는 여성이라고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보게되 반가운 김에 식당에서 대화를 나눠본적이 있는데 말하는 입놀림이 어찌나 촌스럽고 나이에 비해 노티가 나게 말을 하는지 이전의 멋쟁이 함경도 아줌마에 대한 환상에서 번뜩 깨어난적이 있다. 이전의 세련되고 바지런하고 교양있던 멋쟁이 함경도 또순이 아줌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17   작성자 : 가영
날자:2010-04-29 12:45:50
환경으로 인한 풍속의 차이라고 봅니다.사람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16   작성자 : 사랑의 메아리
날자:2010-04-28 17:24:12
한국에 대한 불만과 비평이 많은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인 것처럼 연변에 대한 기대도 크기 때문이다. 인구비례를 보아도 연변사람들의 거동이 중국조선족의 얼굴로도 된다. 자신의 입지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국가 정의나 무엇을 대표하려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착각이고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이다. 김정용선생의 비평은 보약으로 될수 있다. 늘 자아비평하며 수시로 수정하는 사람은 군자이다.
15   작성자 : 삿갓
날자:2010-04-28 16:56:13
이 토론 마당에 한국 사람들이 꽤 참여하는 것 같아 한 마디 하겠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와 '남'을 철저하게 갈라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흑백 이론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연변 사람들은 한국과 조선 사이에서 균형 잡힌 입장을 선호하고 있다. 그런 연변 사람들이 철두철미하게 한국 사람들 편에 서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시시로 불만을 터뜨리니 '우리'가 아닌 '남'으로 취급당하기 일수고 괘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판에 김문학, 김정룡 제씨들이 뛰쳐 나와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연변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욕해 대니 얼싸 좋다하고 두손 들어 만세와 찬사를 부른다. 연변사람들에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구 욕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따지고 싶다.
14   작성자 : 어리석은짓
날자:2010-04-28 16:08:31
하루는 출신이 중국남방이여서 조선족을 전혀 모르는 교수가 엉뚱한 질문을 들이대는 것이였다"당신네 조선족 남자는 집일을 전혀 안하고 쩍하면 네편네를 때리나요?" 하도 기가막혀 누구한데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으니 연구생시절 같은 박사도사선생님슬하에있는 연변출신의 한 여연구생이 모임이 있을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듣었다고 했다. 그들 부부가 아마도 배우지 못한 상놈이나 촌놈이 아니겠냐, 중국의 어느 농촌에도 산동에도 동북에도 아직 이런현상이 있지않느가고 반문했다. 조선족이란 처음 만나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라 조선족이 다 그런가했다고 고백했다.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어리석게 이러한 말들을 계속 곱씹는 분들이 아직도 많고도 많다. 모르면 가만히 듣고나 있을 터지.
13   작성자 : 天池
날자:2010-04-28 15:10:24
[연변사람],[전라도 사람]은 우리 부모님때 부터 거리를 두고 살아왔습니다.저의 부모님은 고향이 황해도 입니다.저도 영향 받아 자라는 애들 한테도 [연변사람],[전라도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라고...제가 여기에 글올려 [연변 사람],[전라도 사람]한테 봉변당하지 않을까 싶네요...ㅎㅎㅎ.그러나 사실이니까요...실은 사람 나름이지요...한국에서도 [연변사람],[전라도 사람]하며 가려 말하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지요.그렇게 가리고 가려도 형부는 [연변사람],매부는 [전라도사람]살기는 더 잘 살아요...ㅎㅎㅎ~~ [출처:조글로포럼 forum.zoglo.net]
12   작성자 : 김정룡과 김문학
날자:2010-04-28 14:35:16
이제 홈페이지의 주인인 김정룡선생에 대하여 얘기해보겠다.(이하 김정룡이라 칭함) 김정룡의 "한류의 우와 열" (조글로 2008년 6월16일 칼럼)을 읽고 아니 이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이며 이토록 좋은 글을 어디다 썼다가 여기다 옴겨놨나 의문이 생겼다. "붉은색의 의미, 응원 구호의 의미, 붉은악마의 자발적인 참여의 의미" 는 신선한 공부가 되었다. 한국의 조선,중앙일보에 실려도 명문장이란 소리를 들을 참 잘쓴 글이로다 하고 감탄했다. 바로 떠오른 인상이 일제시대 때 만주로 가서 활동했던 똑똑한 운동가들이 많았다고 배웠는데 바로 이분이 그런 분들의 자손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 김정룡의 칼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격렬한 성격이 들어난 글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김정룡은 냉정을 유지하며 글을 쓰기도하지만 본인의 감정이 내밷어지는 글들도 보여 반발을 이끌기도 하는데 이로해서 글에 맛깔이 느껴지고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며 쓴 글들은 논리가 나무랄 때가 없다. 전업 글쟁이가 아닌 사람이 이런 수준 높은 글을 계속 쓰고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중국에 인접한 서울에서 조선족과 더불어 생활하며 글을 쓰고있다는게 본인의 글을 쓸 때의 감정의 배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조선족 지식인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와 일본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김문학에게 쓴 글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싶으니 그 글을 참고로 하길 바란다.
11   작성자 : 연변아저씨
날자:2010-04-28 11:50:41
연변사람 깍쟁이? 이건 좀... 너무 헤푸다 할까? 그리고 사랑으로 가는길 같은좋은 프로그램도 있고... 100원 용돈에서 100원 다 바치고 김치와 된장찌개로 살아간다면 깍쟁이는 아이잰.... 친구오면 꿔서라도 명태에 피주사주고... 아무튼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 우리서로 새롭게 태여나서 래일은 보다 밝은 연변이 되였으면... 인간으로 되였으면...
10   작성자 : 룡정사람
날자:2010-04-28 09:59:48
연변사람들이 깍쟁이? 그런데 연변사람들이 왜 소비가 센가?연변사람들은 확실히 남한테는 깍쟁이지만 자기한테는 많이 쓰는거같다. 공원다리 조선족의 문화는 국한됐다.고인물과 같다.우린 멀리멀리로 나가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연변대학의 문화는 연변문화고 또한 ...음... 연변대학다닌 한족들도 빨리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떠나고 싶어하고 조선족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것이다. 싫다...나도 연변대학 출신..... 그만 하겠습니다
9   작성자 : 김문학과 김정룡
날자:2010-04-28 09:26:15
그러지않아도 김정룡선생과 김문학선생을 비교해 생각했다.(이하 김문학 김정룡이라 칭함) 김정룡의 홈페이지이니 예의를 갖추어 김문학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자. 김문학의 '조선족 대개조론"을 읽고는 김문학이 이 책을 내 놓을 당시 그렇게길지 않은 외국 생활을 했음에도 빨리 머리가 깼구나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품세가 마음에 들었다. 조선족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기 때문에 이 책이 조선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국을 제대로 인정하고 조선족 지식인들의 한국에 대한 배은망덕한 태도를 맹비난하는 대목에서는 솔찍히 눈물이 다 나올 지경으로 고마왔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조선족 지식인 중에 머리가 제대로 박힌 인재가 있으니 정말 다행이구나 생각이 들며 김문학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머리에 남았다. 한국의 모방송국에서 김문학을 비난하는 프로를 방영한 것도 시청했는데 조선족 대개조론을 읽어 본 입장에서는 오히려 친한적 인물로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이 프로의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 김문학에 대해 반발이 심하다는 것도 알게되고 비난하는 글들도 읽어 보았다. 글쎄 김문학이 그렇게 지독하게 비난받을 글을 썼는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까딱하다가는 나중에 시대의 희극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선족 대개조론을 읽으며 조금 아쉬웠던 것은 조선족 지식인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인 한국인과 조선족은 같은 뿌리여서 민족적 성향이 모두 같다고 결론을 내리고 조선족의 단점을 비난하며 한국인들을 한묶음으로 묶으며 함께 비판하는 잣대이다. 연변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다른 성향을 보이듯 조선족의 단점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없는 점들이 분명있다. 이의를 제기할 분도 있을까봐 얘기는 삼가겠다. 김문학의 일본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싱가폴 이광요 전 수상이 미국 언론과의 대화에서 분명히 한 얘기를 김문학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중국이 일본,서방국가에 뒤떨어졌던 것은 세상의 변화에 어두워 과학 기술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일본, 서방국가가 하면 그들도 바로 알고 시작한다.앞으로는 옛날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정보가 빨라 먼저 시작한 것을 일본의 민족적 위대성이나 문화적 우수성으로 곡해해 평가하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
8   작성자 : 바로가기
날자:2010-04-28 07:22:18
연변에 대한 애착심으로 찬양도 하고 비평도 많은 것은 연변이 연변사람들만의 연변이 아니라 중국조선족 동포들의 마음의 고향이므로 더 잘 발전되고 문명해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민족경제와 문화를 잘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 름름하고 문명하며 소양있게 단합되고 근면하게 멀리 내다 보면서 민족 특색이 짙은 새연변을 건설해주시기를 전세계동포들은 기대합니다. 몇번인가 연변 텔레비젼 방송을 보려하다가 너무 함경도 사투리가 결려서 그만두었습니다. 옹졸하고 낙오된 습관 가치관 언행도 바로잡기 운동을 해야할것입니다. 중국의 대하 인기 드라마 "관동으로 가다"도 동북 특히 요녕 조본산사투리를 모두 표준어로 고쳐습니다.동북사람이 관내에와 들어도 너무 거북하니 남방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전중국을 전세계를 대상으로 다시 출발해야합니다. 문명의 대세로 나아가는 것은 올바른 길이고 미래가 밝은 길입니다. 한국에가서도 단합된 민족의 힘을 보여야지 고국허물기에 앞장서면 다른 민족들의 웃음꺼리밖에 안됩니다. 중한우호교류에 공헌해야하고 하나밖에 없는 문명하고 부유하며 믿음이 되는 고국인 한국을 도와야합니다.
7   작성자 : 용정사람
날자:2010-04-28 07:17:48
김문학이는 연변여자는 어떻고 남자는 어떻고 연변대학은 어떻고 했는데 편견 과장이 아닌가?? ㅎㅎ
6   작성자 : 서울사람과 함경도사람
날자:2010-04-28 06:48:32
먼저 김정룡씨가 흥미있는 글을 써준데 감사드림니다. 계속 좋은 글 써주세요. 함경도사람(연변사람 포함)과 서울사람 서울사람들이 깍쟁이인 것은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경우에는 교양이있다고 할까 경우에 맞게 쓸 때는 쓰면서 돈을 아껴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돈을 아껴쓴다한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경우없는 짓들은 안하고 지독하고 각박하다는 느낌은 안준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보아온 함경도 출신 사람들은 서울사람들과는 다르다. 두루두루 함경도 출신사람들과 어울려 왔으니 한두사람의 사례가 아닌 어떤 특징으로 파악된 것이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함경도 출신 사람들은 좀 모질고 각박하다. 깍쟁이라는 말은 적절하지않다. 인심이 박하고 경우없이 지독하다는게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거기다 사람들과의 마찰이 많고 어떤 경우는 배운사람이건 못배운 사람이건 남자건 여자건 여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성향이 있다.
5   작성자 : 이상해
날자:2010-04-28 02:02:17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글 쓰는 김정룡 씨에게 우선 탄복한다. 하지만 미숙된 견해도 보이고 있다. 민감한 문제를 다룬다고 덮어 놓고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 총체적으로 연변사람과 안쪽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연변사람들의 단점을 많이 들춰내고 있는데 자칫하면 연변사람과 안쪽사람들 사이에 편견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연변사람들을 깎쟁이라고 운운하면서 그 원인이 가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도 예로부터 유명한 깎쟁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가난 때문인지? 연변사람들은 대부분 함경도 출신인데 함경도 사람들은 군인 기질이 강해 역사적으로 민족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마다 전쟁 터에서 목숨바쳐 싸워 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마저 서슴없이 바치면서 싸운 연변사람들을 단순하게 깎쟁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 연변사람을 이른바 깎쟁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옛날 농경문화 소산이라고 본. 오늘날 시장경제 환경에서는 이런 깎쟁이 기질이 아주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연변사람들은 중국에서 민족문화를 지킴에 있어서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 특히 장장 60여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족문화와 민족교육을 발전시킨 연변대학의 공헌을 반드시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공원다리를 건너려고 연변일중에 왔느냐'고 중학생들 앞에서 큰소리 쳤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보잘것 없는 우월감으로 연변대학의 명예를 마구 짓밟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것은 연변사람만의 단점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어느 지역에서나 당파싸움을 끊임없이 해왔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파싸움이 결코 노무 일군으로 나간 연변사람들이 참여한 탓은 아닐 것이다.
4   작성자 : 바다처럼 초원처럼
날자:2010-04-27 22:28:09
동감이고 좋은 글입니다.자아반성과 비평은 그만큼 도량이 있는 품위입니다. 같은 민족이 많은데서 살다보니 서로의 도움보다 질투와 깎아내리기가 더 많은 같습니다.다른 민족과의 교류에도 름름한 자세로 나서야 하고 본민족의 비하와 흉보기는 어리석다고 봅니다. 연변 바깥에 나와서 다른 민족앞에서는 서로 도와야하지 서로 발가놓거나 흉을 보며 내리깎아선 안됩니다.어리석고 비굴하니깐요. 하지만 연변자치주를 민족특색있게 잘 건설하여 중국동포뿐만 아니라 전중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민족문화와 경제가 발전하면 조선족뿐만 아니라 한족 등 여러민족에게도 모두다 도움이 됩니다.
3   작성자 : 미안합꾸마
날자:2010-04-27 22:10:55
"연변에 오면 꼭 찾아 옵소", 진작 찾아가 보니 "야,내리 우리 동창회가 있읐꾸마 가보지못해서 미안 합꾸마 " .
2   작성자 : 잘 살아 보세
날자:2010-04-27 22:04:39
그래도 연변에 가보면 우리민족의 문화를 많이 볼수있어 안쪽 사람들도 감개무량해집니다. 정치구호 이념 허망한 시비 대국혁명보다 매개인의 처사를 잘하고 소양있고 부지런히 잘살아봅시다.
1   작성자 : 물동이
날자:2010-04-27 22:00:29
몇십년전 연변의 가무를 보았는데 연변 아주머니들과 어린이들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중월(남)자위반격전에 참가한 해방군인들을 지원하는 장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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