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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출국인들
글 싣는 순서
1. 한국이 조선족인구유동에 미친 영향
2. 재한조선족의 삶의 변화
3. 떠나기만 하고 돌아가지 않는 이유
4. 누구를 위한 출국인가?
‘연변여성(2010.5)’
3. 떠나기만 하고 돌아가지 않는 이유
재한조선족은 왜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소박한 삶에서 즐기는 삶을 보내면서 고향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에서 10년 정도 체류한 조선족은 물론이고 3년쯤 머물던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면 마땅히 할 일이 없고 가령 일자리를 찾아도 소득에 비해 소비지출이 더 많은 것이 문제일뿐만아니라 고향생활에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불편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안착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경제수입과 소비지출 문제
연변의 경우 음식점, 공장, 일반사무직, 가정부 등 직업에 종사하면 받는 월급이 천원(인민폐) 정도이다. 연길에서 생활하려면 난방비, 가스요금, 전기요금, 물세, 위생비 지출 및 먹고 사는 데만 매달 천원이 넘게 든다. 게다가 연변은 부조바람이 얼마나 성행하는지 매달 평균 수백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여기에 자식공부비용까지 합치면 매달 평균 2,500~3000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연길시의 경우 물가가 하늘을 치솟아 오르고 있어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리봉 연길미식성 주방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 설에 중국에 있는 어머님이 친척들을 30명 집에 불러 모아 설을 쇠였는데 음식 장만에 쓴 비용만 2,000원이 들었다고 한다. 2,000원이면 보통시민의 두 달 월급이다. 두 달 월급수입을 설을 쇠는데 밀어 넣고 나면 나머지 생활이 어려울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2,000원이면 한화로 35만원이 된다. 한국에서 만약 30명이 집에 모여 음식을 해먹을 경우 35만원이면 먹고도 남는다. 한국과 중국의 수입격차를 따지고 또 양쪽 실제지출물가를 따져보면 연길의 경우 서울보다 다섯 배 이상 비싸다는 계산이 나온다.
쉽게 말해서 한국에서 한 달 벌어 용돈 남기고 중국에 생활비를 보내주고도 적금이 가능한데 비해 중국에서 한 달 벌어 적금은 고사하고 단순히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계산이다. 간단한 실례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조선족이 집을 맡아 소박한 살림이 가능할 정도의 가장집물과 전기기구를 사는데 한 달 월급이면 족하다. 이에 비해 연길의 경우 한 달 월급을 갖고 살림도구를 갖춘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실제사정이 이렇다보니 누가 고향에 돌아가려고 하겠는가?
기후문제
한국은 삼면이 바다를 끼고 있고 위도가 삼팔선 이남이여서 온대대륙성기후와 온대해양성기후가 혼합해있으며 중국 동북삼성에 비해 따스한 편이며 산이 많고 물이 좋고 공기가 맑아 사람 살기가 참 좋은 곳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다가 연길에 가면 특히 겨울철에 고향에 가면 흔히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으로 시달리게 된다. 필자는 한국에서 감기 한번 앓지 않았는데 이 몇 년래 겨울철에 고향에 가면 번번이 “홍역”을 치른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 대다수가 기후 때문에 나와 비슷한 증상에 시달린다고 한다.
연길에서 온 강씨(39세)는 전립선염이 심해 젊은 나이에 마누라와 잠자리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10년 전 한국에 와서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병이 나아 성생활이 무난한 건 물론 건설현장에서 고된 일을 하는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오상에서 온 심모 여인(29세)은 중국에 있을 때 젊은 나이에 쩍하면 폐렴에 시달려 고생했는데 한국에 온 후로 공기 좋고 물이 맑아서인지 병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한다.
정도(正道)와 사도(邪道) 문제
한국에서 다년간 머물다가 고향에 가서 도심의 큰길을 건너려면 신호등이 있는 데로 가서 기다리기 마련이다. 한국 생활 질서가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가 당지사람들한테는 바보로 보인다. 왜냐? 중국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큰길을 가로질러 건너기 때문이다.
2009년 8월초 필자가 한국인 3명과 함께 단체관광팀에 합류해 장백산에 간적이 있다. 등산입구에 이르니 수백 명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가이드가 관광객을 모아놓고 새치기로 짚차를 타야 하기에 눈치 있게 서두르라고 말한다. 우리 일행 넷이 단체가운데서 가장 먼저 정상에 올라갔다. 천지를 보고 사진을 대충 찍고 서둘러 줄을 서 기다려 산 아래로 내려와 보니 우리 단체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딴에는 여유를 갖고 쉬면서 기다렸는데 반시간이 넘어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한테 전화했더니 모두 폭포를 구경하고 온천욕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라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으니 폭포와 온천욕 가운데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우리를 빼고 나머지 38명이 모두 정상에서 줄을 서지 않고 용케도 스스로 알아서 새치기로 짚차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사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득을 보는데 반해 한국생활이 몸에 배여 정도를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이 어쩌면 중국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성수기 때 장백산을 찾는 관광객이 매일 적게는 3000명이고 많게는 5000명이라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치기를 잘 시키는 가이드가 우수한 가이드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사회치안문제
한국에서 가끔 연쇄살인사건, 납치사건, 절도사건, 소매치기사건 등등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사회의 치안질서는 매우 좋은 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은 치안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별로 없이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던 조선족이 고향에 가면 치안문제로 피해를 입거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연길에서 온 백모 여인(40세)은 지난 설에 고향에 갔다가 공공버스에서 가방을 칼로 찢기고 5,000원을 절도 당했다. 연길시에는 아직도 공공버스에 절도범들이 쏠락거리고 있다. 한국에서 편히 다니던 습관이 있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불찰로 빚어진 일이기는 하나 한국에 비해 너무 치안이 안 좋아 다시는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는 연변처럼 상고머리하고 눈을 희번득거리며 괜히 사람을 째려보고 걸고들면서 싸움을 거는 젊은이가 아예 없다. 거리에 나서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공공장소에 가도 마음이 편하다. 이에 비하면 고향은 아직도 불안한 요소가 적지 않다.
환경문제
연길시의 경우 도시건설이 자고 깨면 변화할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겉보기에는 참으로 가관이다. 허나 도시기능시스템이거나 호화로운 건물 뒤에 숨겨진 꼴불견들이 문명사회와 거리가 멀었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연길시의 건물수준은 여느 선진국보다 전혀 손색이 없고 한국의 중소도시에 비하면 오히려 더 낫다는 느낌이다. 허나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와 매캐한 담배연기가 코를 찌르고 여기저기 담배꽁초와 휴지 및 과일껍질이 널려있다.
자질문제
한국에서 6년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던 허씨는 돈을 벌었으나 허리를 다쳐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 귀국하여 연길시 북산가에 비디오대여가게를 꾸렸다. 깔끔한 환경을 마련하려고 비싼 돈을 들여 바닥에 장판을 깔았는데 고객들이 장판에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꺼버려 구멍이 수두룩하다. 금연이라 써 붙여도 전혀 관계치 않고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고객들한테 뭐라 하면 이 집에 다시는 안 온다고 을러멘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 11월 말경 심양에서 연길행 열차를 탔는데 밤중에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마치 싸움이나 하는 것처럼 어찌나 높던지 잠마저 말짱 깨고 말았다. 새벽이 되여 또 다른 손님이 역시 자기 아내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고향에서는 열차든 버스든 음식점이든 모든 공공장소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든다. 이것도 중국의 하나의 문화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 아무리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모두 조용한 분위기에 적응된 조선족은 고향의 시끌벅적한 환경에 불편을 느끼기 마련이다.
서비스 품질문제
고향의 은행, 우체국, 정부공공기관 등의 서비스 질이 한국에 비해 많이 떨어져있다. 아직도 공무원들이 마치 자기네한테 뭘 빌러 간 것처럼 고객을 쌀쌀하게 대하고 고객을 앞에 두고 자기네끼리 이말 저말 한담을 하기가 일쑤이다. 전기요금, 물세, 도시가스요금을 수금하는 직원들의 서비스 질은 더 말할 것 없이 차하다.
필자가 작년 10월 초경 연길에 갔을 때 공항변방검사대에 이르니 한 “멋쟁이아주머니”가 줄 뒤 부분에 서 있다가 검사원에게 손짓을 하니 검사원이 뛰어 와 여권을 갖고 가 맨 앞으로 내보냈다. 또 카운터외의 검사원들은 혹시 면목이 있는 사람이 없나 하고 목을 빼들고 살피다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가 새치기로 통과시키기도 한다. 한국공항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목격할 수가 없다.
공항에서 이런 불미스런 일을 목격하고 기분이 언짢은데다 택시를 타면 부르는 것이 값이고 택시도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기사가 이어폰으로 마누라 아니면 친구에게 한바탕 큰소리로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한국택시는 깨끗할 뿐만 아니라 기사들은 휴대폰이 울리면 낮은 소리로 한두 마디 요점만 말하고 운전 중이라 끊는다고 하고는 운전에만 집중한다.
인간의 몸에는 관성과 리듬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생활에 길들여진 사람이 고향에 가면 관성과 리듬이 깨지게 되여 적응에 애를 먹기 마련이다. 그래서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웬만하면 한국에서 계속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 최종적인 답은 한국이 살기 편한데 비해 고향이 살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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