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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문화기원
한반도는 일본과 함께 한자와 유교를 공통분모로 하는 중화문명권에 속한다. 하지만 일본은 신도라는 자체종교가 있고 따라서 일본인의 인간타입과 민족특징은 신도적이며 신도가 일본인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데 비해 한반도는 자체종교가 없는데 무엇이 한반도 인간의 타입과 민족특징을 형성케 하였을까? 다시 말해 한반도 인간의 타입과 민족특징을 형성해온 기본요소는 무엇이며 한반도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이에 관해 한국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00년 전 세계적인 석학인 중국인 고홍명은 그의 저서 《중국인의 정신》을 통해 “한 문명이 그 문명을 안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인간타입을 형성케 하고 정신세계를 지배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00년 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필자는 고홍명의 문명과 인간타입관계 이론에 대해 흥미를 갖고 한반도 공동체 인간타입의 형성기원 및 민족특징에 관해 살펴보기로 결심하고 지난 수년간 이에 관한 연구에 심혈을 기울려왔다.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중국에서 문화혁명 때 불륜을 저지른 남녀에게 새끼줄 양 끝에 헌 신발을 달아놓고 그것을 목에 걸게 하고 대중비판을 하였다. 그런데 비판대회에서 한족들은 불륜을 저지른 남녀를 “따따오까아오퍼쎄!(打倒搞破靴:헌 신발을 건드린 자를 타도하자!)”고 외쳤고, 조선족은 “비람피우는 자들을 처단하라!”고 외쳤다. 그러니까 불륜이란 한 가지 같은 사실, 같은 포인트를 한족은 ‘헌 신발’로 표현하는데 비해 조선족은 ‘바람’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이 언어상의 차이가 곧 두 민족 간의 문화차이를 말해주는 좋은 증거이다.
그 후부터 필자는 우리 한민족이 일상생활에서 한족에 비해 ‘바람’이란 낱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말(네가 오는 바람에 내가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럴 경우 타민족은 바람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에도 ‘바람’이요, 무엇을 희망하는 뜻에도 ‘바람’으로 표현한다.
1980년대 이북사람들과 접촉해 보았는데 그들도 ‘바람’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1990년대부터 한국인을 접촉해보니 역시 만찬가지였고 특히 한국가요에 ‘바람’이란 어휘가 굉장히 많다. 이탈리아 철학자 크로체의 말 대로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 한민족이 일상생활과 가요에 ‘바람’이란 낱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필시 역사적인 문화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고, 쉽게 말하자면 오늘날의 언어표현은 과거역사문화의 관성에서 온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도올·김용옥 교수는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신라계통의 경상도사람들이 집권하고 경상도 천하를 이루게 되자 유행가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어휘가 ‘바람’이라는, 이 한 마디라는 사실은 결코 단지 우연한 잠시적 유행현상으로만 간주할 수가 없다. 국제적으로 유행가요를 분석해보아도 바람이라는 단어는 특히 우리나라가요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수천 년을 무의식적으로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토속신앙의 메모리체계의 작동으로 보아야 하며 ‘바람’이야말로 잃어버린 우리자신의 ‘야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현상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눈이 필요하다. 즉 한 1500년 정도의 시간단위는 좀 거시적 혜안을 갖게 되면 몇 십 년 정도의 압축된 연속성의 체계로 간주할 수도 있고 해야 하는 것이다. 김범룡의 ‘바람,바람,바람’이나, 최치원의 난랑비서의 바람이나 화랑·미륵의 바람이나 《시경》의 바람이나 모두 한 가지 ‘바람’의 연속된 아키타입일 뿐이다.
한반도의 바람에 대한 고유토속신앙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바람이 고대사회에 있어서 보편적인 신앙대상이었으며 아울러 우주의 본체로 인식되어온 인류 보편사적인 원시종교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운역년기(五運歷年紀)》에 반고가 우주만물로 변화한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태초에 살았던 반고가 죽어서 우주만물로 변화하였다. 숨은 바람과 구름, 목소리는 우레, 왼쪽 눈은 해, 오른쪽 눈은 달, 사지오체는 사극과 오악, 혈액은 하천, 근맥은 지리, 근육은 전토(田土), 머리칼은 성신, 피부와 털은 초목, 치골은 금석, 정수는 주옥, 땀은 비와 못, 그리고 몸의 제충(諸蟲)이 바람에 감하여 인간이 되었다.
《회남자·정신훈(淮南子·精神訓)》에 음양이신이 인간과 충수(蟲獸)를 창조했다고 적혀 있다.
옛날 옛적에 하늘과 땅이 없었던 시절에 모든 물체가 모양이 없이 희미하고 오묘하기 그지없었다. 두 신이 혼생해 있었는데 하늘을 살피고 땅을 다스렸다. 그 비어 있음이 끝을 알 수 없고 도도함이 그칠 줄 몰랐다. 이리하여 곧 음과 양으로 분별되고 갈라짐이 팔극이 되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어울리고, 만물이 모양을 갖게 되고, 혼탁한 기는 충수(蟲獸)가 되고 깨끗한 기는 인간이 되었다.
《성경》창세기편에 “여호와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놓고 그 코 구멍에 입김을 불어넣었더니 사람이 된지라(2:7)”라는 구절이 있다. 입김이란 한국말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곧 숨이다. 그리스어로 숨을 ‘프뉴마(Pneuma)’라 하는데 ‘프뉴마’는 본래 바람을 뜻한다고 한다.
신약성서에 바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시니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마태복음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불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하게 여기지 말라. 발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5~8)
신화 연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령이란 바람의 고상한 표현이라 한다.
《이역지(異域志)》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여인국이 있는데 그 나라는 순수하게 음만 있는 곳이다. 여자들이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홀딱 벗은 채 남풍을 맞으면 바람에 감하여 잉태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상 이야기들은 바람과 인간탄생설화에 관한 것들이다.
다음은 한국인 학자 손진태 씨의 바람과 인간의 영혼에 관한 언급을 살펴보자.
기혼설에 의하면 사람의 혼은 마치 숨과 같아서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혼은 육체의 소유주라고 한다. 즉 우리는 혼을 넋이라고 한다. 넋이란 말은 한국말로서는 무슨 뜻인지 해석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은 일본어의 주인, 소유주 등을 뜻하는 ‘主’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야쿠트(yakut) 사람들도 그들의 혼을 이츠츠(ichichi)라고 하며 이츠츠란 말은 소유주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소유주인 넋이 몸에서 빠지면 사람은 죽는다고 하며 한편으로 ‘숨’이 없어지면 또한 죽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넋과 숨은 이명동물과 같이 생각되고 있다. 추상적인 것이 넋이면 구체적인 것은 ‘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적인 것이 넋이면 동적인 것은 숨이라 생각하여 양자가 전연 별물 같이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일치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위 여러 문장을 통해 바람이 곧 기(氣)이며 기는 바람을 고상하게 표현한 낱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바람에 연관된 원시종교사상을 개괄해 ‘풍교’라 지칭하고 바람(기)을 우주의 본체라 인식하고 바람의 흐름에 ‘도(道)’가 있다는 이른바 풍류도를 발병하였으며, 이 풍류도는 한대(漢代)부터 하나의 고등종교인 도교로 승화되었다. 이른바 도교란 중국모계씨족사회에서 자발적인 여성숭배를 특징으로 하는 원시종교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로한 무사(巫史)문화, 귀신숭배, 민속전통, 여러 방기술수(方技術手)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임과 아울러 도가의 황로지학을 기치와 이론지주로 하고 유불도의 음양, 신선제가학설 중의 수련사상, 쿵푸(工夫)경계, 신앙성분과 윤리관념을 포섭하여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구하고 장생하고 신선이 되며, 따라서 몸과 도의 합진(合眞)을 목적으로 신학화, 방술화한 다차원의 종교이다.
도교는 중국의학, 과학, 예술, 무술, 방중술, 수련, 장생술,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등의 발견과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 임어당 선생은 그의 《중국인》에서 “중국인은 문화적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본질적으로는 도교를 받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풍류도가 신도로 변이되고 발전해왔다. 200년 전 사대국학자에 속하는 모토오리노리나가(本居宣長)는《고사기》와《일본서기》를 연구하고 나서 “일본역사는 하→상에로 흐르는 한신과 충성 및 봉사의 구조로 흘러왔고, 이것이 곧 일본인의 신도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했다.” 도올·김용옥 교수는 저서《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일본인의 하→상에로 흐르는 충성과 헌신과 봉사의 구조는 카미(神)의 길이며 바람의 길이다.”라고 지적했다.
한반도에서도 바람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다.
《삼국유사》에 신라불교를 서술함에 있어서 풍교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고유토착신앙 가운데서 풍교가 으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삼국유사》에 신라의 불교를 논하는 장절에서 ‘석씨풍교(釋氏風敎)’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곧 불교를 의미한다. 신라인들은 왜 불교를 그냥 불교라 하지 않고 ‘석씨풍교’라 했을까?
신라인들은 바람을 우주의 본체라 여기고 풍교신앙이 뿌리 깊었다. 따라서 모든 외래종교를 풍교의 일종일 뿐이라 여겼다고 볼 수 있다.《삼국유사》에 ‘예의풍교, 불류우상(禮儀風敎, 不類于常)’란 구절이 있는데, ‘禮儀風敎’는 곧 공자교 즉 유교를 의미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신라인들은 유교든 불교든 모두 풍교이며 다만 그 구분을 말하고자 ‘석씨풍교’ ‘예의풍교’라 했다.
신라에서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왕은 법흥왕(법은 불교, 흥은 발흥하고 흥기시킨다는 뜻으로서 불교를 발흥하고 흥기시킨 왕이란 의미)이며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그다음의 왕을 진흥왕이라 했다. 그런데 진흥왕은 천성이 풍류(風味)적이어서 젊고 예쁜 낭자를 원화로 삼고 국선으로 받들었으며 나라를 일으키려면 반드시 풍월도를 선행시켜야 한다(幇興國, 須先風月道)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진흥왕은 ‘석씨풍교’가 나라를 일으키는데 있어서 재래의 전통 풍교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고유토착신앙인 풍교와 풍월도를 불교와 아주 조화롭게 접목시켜 화랑도를 흥기시켜 나라를 일으켰다. 화랑도는 신라인의 정신지주이자 넋이었다.
《삼국유사》에서 화랑도의 명부를 ‘풍류황권(風流黃券)’이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화랑도를 풍류도의 산물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화랑도가 풍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최치원은 화랑역사를 회고하면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라 일컬으며 그 뿌리는 선사(仙史)에 있다.”고 했다. 선사란 곧 풍교의 역사이며 그것을 또한 풍류도로 표현했다.
연세대 유동식 교수는《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에서 “풍류도는 하나의 종교라 불수는 없지만 한국인의 신앙사상을 강력하게 지배해왔으며 아울러 풍류도의 의미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곧 ‘멋’이다.”고 지적하였다.
필자는 한국인이 흔히 잘 사용하는 낱말 ‘맛’과 ‘판’ 및 ‘넋’도 역시 풍류도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는 저서《추한 한국인》에서 “멋이란 낱말은 중국어와 일본어에는 없고 유일하게 한국인만 사용하는 어휘이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그의 이 한마디 지적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즉 필자는 중한일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멋이란 낱말을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해보았으나 대충 의역은 될 수 있으나 완벽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했다. 아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멋이란 낱말이야말로 한민족의 민족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어휘이다.’ 이것이 곧 나의 결론이었다. 어떤 한국학자 분은 ‘멋’이 곧 ‘맛’이고 ‘맛’이 곧 ‘멋’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필자는 ‘맛’이란 낱말에 대해서 연구해본 결과 ‘멋’과 마찬가지로 역시 한민족만이 사용하는 특수용어라는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어와 일본어에 ‘맛’에 해당되는 ‘아지(味)’, ‘워이따오(味道)’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말 맛의 뜻을 완벽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또 노래판, 춤판, 도박판, 놀음판, 술판, 오락판, 싸움판, 난장판, 개판, 심지어 X판을 포함해 한민족은 ‘판’이란 낱말을 풍부하고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중국어와 일본어로 ‘판’을 경우에 따라 ‘場’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한민족이 말하는 ‘판’의 의미를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판을 깨다.’ ‘판이 깨지다.’ ‘판이 사라졌다.’ ‘판을 유지하다.’등등의 말을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이 쉽지 않다.
한국고전음악에 ‘판소리’라는 것이 있는데 최근 중국문학작품을 보면 ‘盤瑟里’라고 중국어로 옮겼는데 이는 음역에 따라 억지공사로 번역한 것일 뿐 한민족의 진정한 생활정서가 배어 있는 ‘판소리’ 의미가 아예 전달되지 않는다. ‘판소리’가 중국음악과 일본음악에 비해 독특한 한민족의 특성을 반영하는 민족음악이라 할 때 우리는 한민족이 얼마나 ‘판’의 문화를 중시해왔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대저 ‘판’이란 무엇인가? ‘판’이란 낱말은 분명히 어떤 행위의 장을 의미하지만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말하는 ‘場’과는 엄연하게 구분된다. 정확히 말해서 ‘판’은 바람이 몰고 오는 일종 유형무형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판의 문화’가 풍류도에서 유래되었음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멋’ ‘맛’ ‘판’이란 낱말이 바람문화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며 이는 곧 한민족의 풍류도의 정수이다. 유동식 교수는 “풍류도의 의미내용을 규정하는 말이 곧 ‘멋’이라고 지적했다. 이 말을 바꿔하면 ‘멋’은 곧 풍류도의 기본정신이며, 풍류도의 기본사상이며, 풍류도의 기본 넋이다. 풍류도가 고대한민족의 기본종교사상이었다면 넋은 곧 ‘멋’이며 ‘멋’은 곧 한민족의 넋이다.
‘멋’을 한민족의 넋이라 말하는 것은 한민족은 수천 년 동안 ‘멋’에 대한 추구를 통해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내성외왕이란 말은 본래 <장자>에서 유래되었다. 장자는 인간의 이상적 경지가 곧 내성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중국유교비평가들이 지적한바와 같이 중국인은 내성에 대한 추구에만 치중해왔을 뿐 외왕을 홀시해왔기 때문에 중국인은 외모가 초라해보이게 되었다. 중국인은 확실히 내성은 강하지만 외왕이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도 내성은 강하지만 외왕은 중국인에 비해 나으나 한국인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멋’에 대한 추구를 통해 내성도 다지고 외왕도 장식해왔다. 세상에 완전완미한 사물이 없듯이 한민족의 내성외왕은 곧 내성보다 외왕 쪽에 무게를 더 두어왔다. 그래서 속보다 겉을 더 챙기는 관습이 지속되어왔다.
단군신화에서 홍익인간사상이란 고귀한 문구를 ‘멋’의 내성에 대한 추구라 이해야 마땅할 것이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은 확실히 기타 민족에 비해 매사에 사리가 밝다. 조선족이 사리가 밝은 것은 곧 홍익인간사상의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조에 들어서 유교의 영향 때문에 ‘멋’은 외왕보다 내성 쪽에 기울려졌다. 당시 유교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멋’보다 내심의 ‘인(仁)’이었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이러저러하게 ‘멋’에 대한 내성과 외왕이 서로 엇바뀔 때가 있었으나 대체로 ‘멋’에 대한 내성과 외왕 추구가 한민족을 한민족답게 만들어왔다.
한민족의 외왕에 대해 조금 더 논의한다면 한민족은 겉으로는 멍청이가 매우 적어 보인다. 이는 상대적으로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곧 실속 없이 겉만 꾸미는 내빈외화라 할 수 있겠으나 긍정적인 시각에서 말하자면 곧 한민족은 상향의식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이 ‘멋’에 대한 내성과 외왕의 추구가 한민족으로 하여금 민족정체성을 갖게 만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한민족은 모든 사물을 ‘멋’을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민족은 일본인을 ‘쪽발’이라 부르고 중국인을 ‘때놈(汚垢)’이라 한다. 일본인은 중국인을 ‘지나인(支那人)’이라 부르고 조선인을 그냥 ‘죠센징’이라 했다. 물론 ‘지나인’은 중국이 이미 늙었다고 얍잡아 보는 호칭이고 ‘죠센징’은 힘없고 가난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호칭이기는 하지만 그 뉘앙스를 볼 때 한민족이 타민족을 평가해 비하하는 호칭에 비해 훨씬 신사적이다. 중국인은 일본인을 ‘작은 일본(小日本)’이라 부르고 조선인을 ‘까오리빵즈(高麗捧子:고려 몽둥이)’라 한다. ‘작은 일본’이란 곧 일본은 사람도 작고 땅도 작고 나라도 작고 인심도 야박하다는 등등의 뜻을 나타내는 호칭이며 조선인을 ‘까오리빵즈’라 하는 것은 아마 옛날에 고려인(고구려인)과 싸울 때 고려인들이 몽둥이를 잘 써 혼났던 모양인데 이로서 유래되었다. 아무튼 중국인이 타민족을 평가하는 뉘앙스도 한민족에 비해 많이 점잖은 편이다.
한민족이 타민족을 평가하는 호칭이 매우 신사적이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돌이켜야 할 것은 곧 한민족은 ‘멋’을 통해 타민족과의 특징의 구분을 부각시키려는 데서 비신사적인 호칭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내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다름이’ 곧 ‘멋’에서 유래된 것이며, 아울러 한민족을 한민족답게 만든 주체성과 정체성이다. 이 ‘다름이’ 곧 한민족이 천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았어도 꿋꿋이 살아남게 된 가장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왔던 것이다. 중국이란 거대한 문화용광로 속에서도 조선족은 뚜렷한 교리교의가 있는 자체종교가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민족정체성을 잘 지켜온 것이 곧 ‘멋’에서 유래된 ‘다름이’ 크게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강력한 종교를 갖고 있는 회족(회교도:무슬림)마저 한족과 통혼이 잘되고 있는데 비해 조선족은 한족과의 통혼이 매우 드물다. 한족은 조선족과의 통혼을 원하지만 조선족부모들이 만약 자식이 한족과 연애를 하면 망종으로 취급할 정도로 통혼을 반대한다. 그 주유 이유가 바로 ‘우리(조선족)는 당신(한족)들과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한민족의 고유한 ‘멋’ ‘맛’ ‘판’ ‘넋’ ‘얼’의 문화로서 이미 중국대륙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받았다.
이 멋에서 유래된 ‘다름이’ 비록 한국 내에서는 이러저러하게 역사적으로 당파싸움도 유난히 많았고 지금도 역시 영남과 호남을 대변하는 당파싸움을 비롯한 사회 각 영역에서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 허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다름이’ 곧 한민족이 타민족과의 구분을 부각시켜 일치 단합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대한민국을 세상에 크게 홍보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예하면 1997년 말 IMF 직후에 전체 국민이 동원되어 장롱 속의 금붙이를 나라에 바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2002한일월드컵> 때에는 7백만의 붉은 악마가 세상을 또 한 번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그 힘이 어디서 왔을까? 필자는 그 힘이 곧 한국인의 특유한 ‘멋’과 ‘판’에서 온 신바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그 어떠한 종교도 그 어떠한 문화도 <2002한일월드컵> 때에 한국인이 세상에 보여주었던 그러한 멋진 장관을 연출해내지 못했다. 세상은 그때 그 사건 때문에 크게 놀랐으며 대한민국을 크게 부러워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멋’을 이미 엄마의 언어를 통해 배웠고 몸에 배였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힘의 표출은 나라가 가르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단군시대부터 ‘멋’에 대한 터득의 결과이며 엄마의 언어를 통해 배우고 실천한 결과이며 한국인의 몸속에 깊이 배어 있는 신바람이 표출된 결과이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과 한국인을 알려면 반드시 ‘멋’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이는 마치 중국인을 알려면 반드시 도교를, 일본인을 알려면 반드시 신도를 알아야하는 이치와 같다. 만약 일본문명을 독자적 문명으로 취급하는데 동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도리로 ‘멋’이란 독특한 문화도 역시 독자적 문명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멋’ ‘맛’ ‘판’ ‘넋’ ‘얼’ ‘신바람’이야말로 한류의 문화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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