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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해설> 1968년 [월간문학]에 발표된 시로, 1969년 시집 [성북동 비둘기]의 표제시이다.
이 시는 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둘기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을 비판하거나 인간들에게 어떤 교훈을 제시하는 것은 김광섭 후기 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는 그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시는 그야말로 명징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1968년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 사고라는 평가도 있다. 이 시는 두 개의 세계 즉, 문명과 파괴라는 이원적 대립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도시화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은 '비둘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자기 성찰과 인간적인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문명 비판적 사상을 무의미하게 지나칠 수 있는 한 마리 비둘기의 움직임에서 포착해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삶인 것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이 시는 1960년대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인간의 삶을 '성북동'이라는 대유적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을 비판하거나 인간에게 어떤 교훈을 제시하는 것은 김광섭 후기 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비둘기를 의인화하여 인간 세상의 황폐화된 모습을 비판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에서 '비둘기'는 자연과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채석장', '포성', '구공탄' 등은 현대문명의 불모성(不毛性)을 암시한다. 1,2연에서는 원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비둘기의 가련한 처지와 향수에 대해 말하다가, 마지막 연에서는 그 '비둘기'가 문명 속으로 점점 왜소해지고 본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다름없다는 깨달음을 진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 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 김광섭 시인은 1974년 [심상]에서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뇌출혈로 메디칼센터에 입원하여 오랜 혼수상태를 겪으면서 사경을 헤맸어요. 그 후 성북동 나의 집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따스한 훈풍이 불고 꽃이 피어 있었어요. 뇌일혈이란 말을 듣고 내 시적 생명은 끝났다는 절망감을 안고 있었지요. 그 때,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침마다 하늘을 휘익 돌아 나는 비둘기떼를 보게 되었어요. <성북동 비둘기>의 착상은 거기에서였지요. 돌 깨는 소리가 채석장에서 울리면 놀라서 놀라서 날아 오르는 새들, 그러나 저것들이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인가? 돌 깨는 산에서는 다이나마이트가 터지고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지어서 마음 놓고 내릴 장소도 없는 저것들이란 데 생각이 머물었어요."
* 성북동 비둘기 (발췌)(장석주/문학평론가, '나는 문학이다')
시인 김광섭은 시인으로서도 명성이 높았지만, 해방 뒤에 몰아친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익 문학단체를 앞서서 이끌고, 문인으로는 특이하게도 관직에서도 오랫동안 머문 이력을 갖고 있다. 해방 바로 뒤에 우익 문학단체인 ‘중앙문화협회’ 창립을 주도하고, 이 단체의 후신인 ‘전조선문필가협회’의 총무부장으로 활약했다. 또한 미군정청 공보국장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정부수립 뒤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1951년 관직을 떠나고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과 ‘한국자유문학자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56년에 자신의 손으로 창간해 꾸려오던 《자유문학》이 1960년대에 들어 재정난을 겪다가 마침내 휴간에 들어가는 등 주변의 일들로 골머리를 앓으며 그 여파로 고혈압 증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65년 4월, 60세의 나이에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지던 경희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야구경기를 관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메디컬센터에 서둘러 입원한 뒤로 병·죽음과 고투를 벌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주변을 정리하고 비로소 온전히 자기의 시간을 문학을 위해 쓸 수 있었다. 그의 문학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위협했던 병이 전화위복이 되었던 셈이다.
그는 한결 고적해진 생활 속에서 객관적 현실을 정면으로 투시하며 그것을 오롯이 자신의 문학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1969년에 펴낸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그 시간의 결실인 셈인데, 더욱 소박하고 겸허한 일상인의 자세로서 삶을 이야기하고, 나아가서는 달관의 미적 공간을 열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김광섭 시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뒤에는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드러내 보인 비인간화에 대한 준엄한 비판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그는 갈수록 강퍅해지는 인간관계와 산업화사회에서 불가피했던 인간의 물화에 대한 저항정신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삶의 진실을 감추고 위협하는 일체의 위선과 허위에 대해서도 비판정신을 발휘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의 결과로 도시 중심의 공업화 개발이 촉진됨에 따라 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이 가속화했다. 그 때문에 서울의 주택난이 심해졌다. 여기저기 무허가주택이 많아졌는데, 서울시는 무허가건물을 양성화하거나, 시민아파트를 건립하고, 집단이주 정착지 조성 등을 통해 이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되는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치는 ‘성북동산’ 일대도 주택단지로 막 개발이 되는 그 즈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개발 명목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거기에 깃들어 살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도 오갈 데 없이 ‘쫓기는 새’가 되고 만다. 이 시는 그동안 김광섭의 시에서 보이던 추상성과 관념성이 말끔히 걷히고 삶의 터전인 자연을 잃어버리고 난 뒤 상실의 아픔을 구체적인 일상어로 노래한다.
그는 그동안 몸담아오던 경희대학교를 퇴직하고, 1970년에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한다. 1971년 《현대문학》에 시 「장미」 등을 발표하던 즈음에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자신의 투병생활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오랫동안 거처로 삼았던 성북구를 떠나 동대문구 중화동으로 이사하는 번거로운 일을 치르면서도 다섯 번째 시집 『반응』을 펴낸다. 이 뒤로도 1974년에 『김광섭시전집』을, 1975년 70세의 나이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시선집 『겨울날』을, 이듬해인 1976년에는 『나의 옥중기』를 펴내는 등 해마다 거름 없이 한 권 정도의 저서를 내놓는 의욕을 보인다. 그러다 1977년 서울 여의도 삼부아파트 차남의 집에서 72세로 생을 마감한다. 사후 1981년 <지식산업사>에서 『김광섭 -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2』 등이 간행된다.
◈ 변두리/김광섭
흙을 벗고
시멘트를 입는 근대풍(近代風)
호박꽃 속에서
아기가 나던 조상의 밭은
큰 거리로 나가고
변두리만 남아서
대머리처럼 외로이
등성이로 슬슬 기어오른다
바람이 왔다가도
정둘 곳 없어
잡초와 놀다가
홧김에 구름을 몰고 와서
마구 깎아 낸 기슭
뻐얼건 황소 엉뎅이에
죽으라고 비를 퍼붓는데
도심(都心)을 태우는 불은
꺼지지 않고
거멓게 탄다
<해설> 이 작품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있는 시로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는 근대화와 도시화를 비판하고, 정(精)과 순수한 삶이 살아 있는 사회를 지향한 작품이다. 도시화에 밀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은 산기슭을 마구 깎아 낸 자리에 들어선 도시에서 정 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화자는 이러한 파괴와 소외의 현실에 분노를 표출하지만, 도심을 거멓게 태운 도시화는 멈추지 않고 이제 변두리마저 파괴하려 한다. 현대 문명을 '죽임'과 '차가운 비정'의 문명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따라 밀려나는 자연과 순수함, 인정 어린 삶을 옹호하고 있는 작품이다. (현대시 작품, 인터넷)
◈ 산(山)/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不動)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해설> 이 시는 산이 주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간접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산’은 인간과 멀리 떨어진 외경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친근한 존재이다. 인간처럼 다정하고 의연하지만 설음과 분노도 표현할 줄 알며 인간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동반자인 것이다. 산은 관용과 포용력, 조화로움 그리고 때로는 엄격함으로 인간에게 깨우침을 주며 인간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 준다. (현대시 작품,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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