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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시인 - 김수영
2016년 01월 05일 05시 22분  조회:4395  추천:0  작성자: 죽림


저항의 시인 김수영

 

 

 



이재훈 _ 시인, <현대시> 편집장

 

 

 

 

 




김수영의 대표적인 프로필 사진을 보면 시인은 흰 러닝셔츠 차림이다. 턱을 괴고 앉아 퀭한 눈으로 어딘가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눈에는 독기가 흐르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광기라고 해야 할까. 김수영의 사진을 보면 격식과 형식을 차리지 않고 내면의 자유로운 영혼을 그대로 발산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김수영(1921~1968).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현대시사에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지난 2008년은 김수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지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수영 40주기 추모사업회가 꾸려져 추모학술제가 개최되었으며, 40세 이하 젊은 시인 40명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오마주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이여>를 발간하고, 기념 문학제를 열기도 했다. 올해 2009년에는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354면의 <육필시고 전집>이 발간되었다. 이처럼 김수영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이다. 이를 가리켜 최두석 시인(한신대)은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 가운데 김수영만큼 주목을 받은 이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김수영은 후대 연구자들이나 창작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 중 한 명이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했다. 21세 되던 해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일본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건너간다. 이때 연극학교를 입학하게 되는데 이는 연극계에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귀국하여 다시 만주로 가서는 조선 청년들과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해방 이후 서울로 돌아와서는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다. 가장 가까운 문우이자 애증의 친구인 박인환은 김수영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인환이 경영하는 고서점 ‘마리서사’에서 김기림, 김광균 등과 만나면서 50년대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지게 된다. 명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50년대 문학사에서 김수영은 늘 가장 중심에 있었다. 30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 후퇴 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간다. 이후 평남 개천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탈출, 국군 최선봉 부대를 만나 서울까지 갔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낸다.

신시론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50년대 전후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59년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춘조사에서 발간하였다. 이후 참여시 문학논쟁 등을 벌이며 한국 현대시의 가장 중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68년 6월 15일 밤. 마포에 있는 집으로 귀가하던 중 버스에 치어 머리를 다치고 의식을 잃은 채 적십자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사후 여러 권의 시선집이 발행되었고 1981년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발간되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려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夜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겨서있다 絶頂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전문

 

김수영의 대표작으로는 늘 <풀>이나 <눈>, <폭포> 등을 떠올리지만 가장 김수영다운 시는 위의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수영답다는 게 뭘까. 자신의 옹졸함마저도 시적 공간 속에 들여놓고 자신의 윤리적 자아를 배반하는 언어들을 직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모습은 김수영만의 모습이 아니고, 바로 나의 모습이며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시인이 선각자나 투사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게 아니라, 설렁탕집에서의 옹졸함과 같은 솔직한 소시민으로 비춰진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래처럼 작은 존재 또한 시인의 일면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나 꼭 나 자신과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김수영은 불온의 시인이며, 반시(反詩)의 시인이다. 또한 “시는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며, 가슴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전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전언을 통해 시는 형식과 내용 사이의 긴장을 통한 변증법적 유기체라는 점을 자각케 하기도 하였다. 김수영의 영혼은 늘 자유를 향한 갈급함에 목말라 있었으며, 기존의 관습과 타성을 부숴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김수영은 때로는 모더니스트로서, 때로는 현실의 가장 최첨단에 선 참여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올곧게 수행했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이건 참여시인이건간에 그 중심에는 항상 ‘저항’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저항의 시인 김수영. 그를 떠올려 본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만약 김수영이 이 시대에 살아 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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