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
야나기하라 야스코 대표가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일본 릿쿄대학 재학 시절 공부했던 교실을 안내하고 있다.
|
|
73년 전 젊은 윤동주는 이곳에서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부끄러움을 안은 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쉽게 씌여진 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야나기하라는 “그는 단순한 저항보다 더 깊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 시인이었고, 인간으로서도 청아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죽게 한 일본인으로서 속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90년 아들에게 한일 과거사 가르치다
“저항 넘어 보편 가치 추구한 지성”
릿쿄대학 사학과 64학번인 야나기하라가 윤동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25년 전인 90년 초등학생 아들이 한국으로 야구 원정경기를 떠나게 됐다. 아들에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다 자신이 생각보다 한-일 과거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 역사를 공부하던 그는 일본에 한국의 현대시를 소개해온 작가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의 에세이에서 깜짝 놀랄 만한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윤동주가 자신의 모교인 릿쿄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야나기하라는 “윤동주가 릿쿄의 선배로 나와 같은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겨우 20여년 전에 자신과 같은 대학에 다녔던 이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에선 조사하기 힘든 윤동주의 일본의 흔적을 조사하는 일”을 시작한다.
윤 시인은 42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후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한 그는 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독립운동 등의 혐의)으로 체포돼 복역 중이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45년 2월16일 숨졌다.
야나기하라는 지난 20여년 동안 릿쿄 동창생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옛날 대학신문을 찾거나 150여명의 동창생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윤동주의 일본 생활의 공백을 하나씩 메워가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그가 확인한 가장 큰 성과는 윤동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쉽게 씌여진 시’에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표현했던 릿쿄 시절 하숙집의 위치를 ‘도쿄 신주쿠구 다카다노바바 1초메’로 특정한 것이다. 야나기하라는 윤동주와 함께 릿쿄대학에 다녔던 백인준(1920~99)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이 89년 문익환 목사와 북한을 방문했던 작가 황석영에게 “윤동주와 같은 하숙에 있었다”는 증언을 남긴 사실에 착안해 그의 학적부 주소 등을 통해 하숙지의 위치를 특정해낼 수 있었다.
올해는 윤동주가 비운의 죽음을 맞은 지 70돌이 되는 해다. 야나기하라는 이를 기념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일본 도시들인 후쿠오카(5~9일), 교토(13~17일), 도쿄(21~15일) 등을 돌며 유품과 유고를 전시하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 행사는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58)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가 2013년 2월 연세대에 기증한 윤동주의 유품의 복제본을 연세대에서 빌려 진행하는 것이다.
야나기하라는 “윤동주는 책에다 자신의 감상이나 구입처 등을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그런 낙서까지 꼼꼼하게 재현한 복제품이기 때문에 원본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그는 정지용의 시집에는 ‘걸작’이라는 낙서를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육첩방은 남의 나라>...
여러분은 <<몇 첩방>>에 살고 계신가요?
<쉽게 씌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