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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 3
2016년 01월 08일 04시 30분  조회:5218  추천:0  작성자: 죽림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 
-상징과 이미지의 변주 / 이승훈



1. 은유냐 상징이냐 

직유가 발전하면 은유가 되고 은유는 서로 다른 범주에 있는 두 사물을 
동일시하는 기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직유가 상사성을 토대로 두 사물을 비교한다면 
은유는 비 상사성을 토대로 비유하고, 그런 점에서 
전자에 비해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시적 호소력이 크다. 
그러나 두 기법 모두 두 사물을 비교하고 비교되는 두 사물이 시에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예컨대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ㅡㅡ기형도,(빈집) 


같은 시행에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는 직유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나는 장님처럼’은 직유이고 따라서 이런 형식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시행을 예컨대 ‘나 장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고 쓴다면 
은유가 되고, 직유의 형식에서 비교조사‘ㅡ처럼’을 생략하면 은유가 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나는 장님처럼’이라는 말과 
나는 장님’이라는 말은 두 사물을 비교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전자가 문을 잠그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후자는 그런 설명보다 ‘나’와‘장님’의 동일시가 강조되고 따라서 이때 
'나’는 ‘장님’이면서 ‘장님’이 아닌 이상한 특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형도는 장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이렇게 쓴다면 그는 장님이고 장님이 아니다. 그리고 은유의 형식으로 시를 쓴다면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 아닌 다른 내용이 나오는게 좋다 
한편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의 경우 ‘빈 집’의 이미지는 이 시행만 놓고 보면 무엇을 비유하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취의 tenor 와 매재 vehicle 의 관계가 시행에 드러나지 않고 취의가 생략된 형식이 된다. 직유나 은유 에서는 취의와 매재의 관계가 드러나지만 
이런 이미지의 경우에는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드러난다. 
이런 이미지를 상징 이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상징은 은유가 발전한 형식이고 그 의미는 하나가 아니고 분명치 않고 모호하다.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직유] t : v = 1 : 1 (나는 장님처럼) 
[은유] t : v = 1 : 1 (나는 장님) 
[상징] t : v = ? : 1 (빈 집) 


‘빈집’ 은 무엇인가를 의미하지만 이 시행만 놓고 보면 
그 내용,취의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없다. 그렇치 않은가?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라는 시행만 놓고 보면 
이 ‘빈 집’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분명치 않고 다만 전체 시를 찬찬히 읽을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이‘빈 집’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징象徵은 영어로 symbol이고 그리스어로 뜻하는 명사 symbolon 에서오고 
이 명사는 짜 맞춘다는 뜻의 동사 symballein 과 관계가 있다.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201면 참고바람), 
그러니까 다른 무엇과 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지시한다는 것은 이 ‘빈 집’이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빈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가엾은 내 사랑’ 을 의인법으로 읽어 
‘가엾은 내 애인’이 갇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든 애인이든 
‘빈 집’에 갇혔다는 말은 이상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의 경우가 그렇다. 
사랑이 어떻게 빈 집에 갇힐수 있는가? 
요컨대 은유와 비교하면 상징은 비유되는 두 사물 가운데 
취의가 생략되는 형식이고 또한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로 치환하면 


[은유] 이미지 : 관념 = 1 : 1 (장님은 나) 
[상징] 이미지 : 관념 = 1 : 다 (빈 집은 무엇?) 


와 같다.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라고할 때 다는 다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상징의 의미는 아무리 퍼내고 쏟아 붓고 
계속 의미를 부여해도 모자란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다多는 다이고 다가 아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다는 다da이다. 이 다는 디자인 dasein,현존재라는 의미의 
디자인의 접두사이고 현재 존재하는 나, 지금 여기있는 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 존재는 존재 sein 와 현da이 결합된 존재이고 그러므로 여기da가 중요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프로이트는 18개월짜리 손자가 혼자 노는 것을 관찰하며 
그 아이가 오/아를 반복 하는것에 주의한 바 있다. 
엄마가 없는 빈 방에서 아이는 혼자 실패 놀이를 하고 실패가 멀리가면 ‘오’ , 
실패가 돌아오면‘아’ 라고 소리친다, ‘오’는fort(저기),‘아’는 da(여기) 
라고 해석한 것은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쾌락 원칙을 넘어서”). 
나는 나를 멀리 던지고 그 나는 다시 돌아온다. 나를 던질 때 나는 돌아온다. 
무슨 말인가?그러나 나는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돌아온다. 
요컨대 반복이 있을 뿐이고 이 반복, 죽고 싶은 마음이 칼을 찾는다. 
칼은 날이 접혀서 펴지지 않으니 날을 노호하는 초조가 절벽에 끊어지려 한다’(이상,“침몰”). 
나는 지금 시작법 (그것도 알기 쉬운?)에 대해 글을 쓰는지 
1 ; 다’에 나오는 다에 대한 잡념에 시달리는지 잡념을 즐기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다ㅡ 콤플렉스가 아니면 다ㅡ 강박증 인가보다. 
요컨대 현재는 없기 때문에 현 존재의 다da는 그런 無, 
불교식으로는 空 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 무,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는 무엇이고 많다는 것은 무엇이고 다 da는 무엇인가?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비가오고 어두운 새벽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갑자기 무섭고 서럽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작은방, 지금 이글을 쓰는방, 
옛날에 딸애가 공부하던 방으로 와서 전등을 켜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돌아가 
다시 잠이 든 이런 행위는 무엇을 상징 하는가? 

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다시 요약하면 상징은 하나의 낱말, 어구, 이미지가 
복잡한 추상적 관념을 암시하지만 그 의미는 전체 시를 전제로 알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그 낱말이 나오는 시행에서는 생략된다는 것. 
따라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상징은 은유보다 고급이고 
한편 은유보다 난해한 기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기법이 나오고 
이런 기법, 말하자면 상징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에서 상징을 강조한 것은 19세기 말 상징주의 시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보들레르 이다. 그는‘교감’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神殿, 거기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아득한 
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울리듯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상통 한다. 
ㅡ 보들레르,[교감](정기수역) 


‘교감’ correspodence 은 ‘만물 조웅’ 으로도 번역된다. 
자연은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끼리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는뜻. 
이 시에서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이 주고받는 것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의 경우 
자연의 시인의 정서를 환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치만 여기서는 ‘ 
신의 궁전’으로 노래된다. 신의 궁전 이기 때문에 
자연은 이 세상을 초월하는 이상의 세계, 
혹은 그런 세계로 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그런 점에서 자연은 신, 초월자, 절대자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상징의 숲’이 된다. 
시인은 이런 숲의 목소리를 듣는자 이고, 그 목소리는 만물 조웅, 곧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상통하는 것을 들을때 알 수 있다. 
만물 조웅은 향기(후각), 빛깔(시각), 소리(청각), 가 서로 통합 하는 것 
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감각의 교감이고, 교감의 세계가 된다. 
물론, 현대시를 쓰는, 혹은 쓰고자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런 상징의 미학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최소한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사적 문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된다. 
요컨대 상징을 강조하는 시들은 이 시가 암시 하듯이 
관념을 전제로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감각에 의해 사물을 보고 그 감각이 환기하는 혹은 암시하는 여러 관념들을, 
자신도 모르는 그런 관념들을 이미지로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기형도의 경우 ‘빈 집’은 상징적 이미지 이고 그는 살아가면서 ‘빈 집’ 을보고 혹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 체험의 내용을 시로 노래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ㅡ 기 형도,[빈 집] 


그가 쓰는 것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고 
따라서 ‘빈 집’ 은 이런 마음을 상징 한다. 
상징적 이미지는 시에서 반복되는 수도 있고 이 시처럼 변주되는 수도 있다. 
이 시의 경우 ‘빈 집’ 은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나’, 
그리고‘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로 변주된다. 한편 이런 마음, 
그러니까 ‘빈 집’이 상징하는 것들은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로 변주된다. 
이런 변주는 상징적 이미지가 보여주는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책략이고 
따라서 상징을 강조하는 시인들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이미지를 시에서 여러번 반복하거나 다양하게 변주 시켜야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시인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혹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한 이미지를 개인적인 상징 이라고 부른다. 
상징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첫째는 개인적 상징, 둘째는 인습적 상징, 셋째는 원형적 상징이다 (좀더 자세하 것은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상징의 유형’, 206ㅡ211면 참고바람). 
개인적 상징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 감각을 중심으로 그 내면성 혹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이때는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조에 의해 
혹은 시 전체의 문맥에 의해의미를 암시해야 한다. 인습적 상징과 
원형적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루기로 한다. 개인적 상징을 중심으로 
특히 그 상징적 이미지를 변주 하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들을 좀더 살피기로 하자. 


결국 그것은 제 몸 치근대는 바람 때문일 거야 큰 송아지만한 사 
냥개 절뚝절뚝 저녁 어스름 이끌고 날 찾아왔지 큰 채와 사랑채 
이음새 헛간에서 주먹밥을 나누어 먹던 한철을 잊을 수 없네 헛간 고 
요에 상처 아물고 주먹밥의 유순柔順에 길들여졌다 할지라도 어느 날 
훌쩍 사냥개 사라지고 텅 빈 고요만 비에 젖어 슬펐네 
ㅡ 강 현국,[가난한 시절4] 


이 시에서 ‘사냥개’는 ‘가난한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냥개‘ 라는 이미지에는 단순히 먹이를 사냥하는 동물 이라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 사냥이 암시하는 야수성, 짐승이 짐승을 잡는 
아이러니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강현국이 노래하는 가난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굶주린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한 이 시에서 그는 
사냥개가 ’절뚝절뚝 어스름 이끌고 나를 찾아 온다‘고 노래함으로써 
그것이 병든 가난, 어스름이 표상하는 무력감을 동반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컹 컹 컹 밀려오는 저녁놀‘을 본다/듣는다. 
그 가난은 밀려오며 무너진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를 지배하는 것은 
옛날의 가난이다. 그는 지금도 저녁놀에서 사냥개 울음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 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ㅡ최 승호[재] 

이 시의 경우‘재’는 석탄 가루를 표상하고 그것이 재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불타고 나면 재가 된다. 
그러나 이재, 죽음은 이 시에서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물론 바람을 매개로 하지만 재의 이미지는 이런 변주에 으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고 개인적 상징의 한 개를 초월한다. 
재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변주 됨 으로써 그 상징적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시에서 ‘재’는 죽음을 상징 하지만 그 죽음은 바람에 의해 일어나고 
흩어지고 불려간다. 결국 재는 바람과 동일시된다. 
바람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바람이 있다.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털이 있다. 궁창이 열리고 
땅이 혼돈을 멈추었을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을 
가장 나중에 완성 시킨건, 아무래도 털이다. 당신이 떠나고 
세상에서 가장 싼값으로 
인생을 구겨버리고 싶을 때, 낡은 침대나 
주전자 옆에서, 꼼지락거리는 
털. 
ㅡ 원 구식,[털]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는 ‘털’ 이지만 그 이미는 분명치 않고, 
따라서 상징이 된다. 무엇을 상징 하는가? 이 ‘털’은 ‘쾌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에서 쾌락과 관계되고, 따라서 머리털이나 수염이 아니라 
음모를 의미하고, 시인은‘당신이 떠난’ 방에서 낡은 침대와 주전자 옆에 떨어진 음모를 본다. 이 털은 육체에서 떨어진 것이므로 털로서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죽음을 표상 하지만 이 시에서는 꼼지락거린다. 살아있다. 
그리고 이 털은 대지의 풀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풀은 ‘땅의털’ 이다. 
도대체 정사가 끝나고 ‘당신이 떠난 다음’ 낡은 침대에 떨어진 털을 보는 것도 
이상하고 이 털이 살아 꼼지락거린다고 노래하는것도 이상하고 풀을 땅의 털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이렇게 이상한데 있고 
이상한 것이 진리이다. 상식, 기준, 표준이 깨질때 진리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털은 육체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고, 머리털은 신체 정상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정신적 힘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음모는 생식, 성행위를 돕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 털은 그런 의미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 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죽은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는 모두 상징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변주와 함께 변주를 먹고 태어난다. 

3.인습적 상징을 이용하라 
이상에서 나는 상징의 세 유형 가운데 이른바 개인적 상징에 대해 말했다. 
다음은 이른바 인습적 상징. 말 그대로 이런 상징은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내적 필연성(개인적 상징)이 아니라 오직 인습, 습관, 사회적 약속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런 상징은 일정한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소유한다. 말하자면 한 시대나 한 사회에서만 공유하는 상징이다. 예컨대 십자가는 기독교 정신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고 태극기는 조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상징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의 진리이고, 비둘기는 
구약의 문맥에서 평화이고, 태극기는 한국인들의(그것도 남한만의) 조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극기를 보고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적 역사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징은 인습적으로 습관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알기는 쉽지만 
한편 시적 깊이가 사라진다. 오늘 이 시대에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 한다고, 
비둘기를 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없고, 그런 생각은 
과거의 인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치 않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약방 앞 보도 블럭에는 언제나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놀고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평화롭게 놀고있는 것이 아니라 모이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너희들이나 우리나 모두 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런 비둘기들은 
평화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한 고통, 싸움, 전쟁을 상징 한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유념할 것은 이런 인습적 상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상징적 의미를 
시의 문맥에 의해 변형 시키고 변주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라는 것. 
다음은 비둘기라는 이미지를 인습적 의미로 사용하되 변주시킨 보기이다. 

비둘기들이 걷고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반짝거린다,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여기 공정한 ‘정오’ 가 불로서 구성 한다 
바다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 
산들의 고요를 오래 관조하는 
오 사색이 받는 보상이여! 
ㅡ발레리,[해변의 묘지](민희식, 이재호 역) 

시의 표제가 ‘해변의 묘지’ 로 되어있기 때문에‘이 고요한 지붕’은 ‘바다’를 비유한다. 그렇다면 ‘비둘기들’은 바다를 걷고 있는 비둘기로 읽을수 있지만 
바다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물론 조금 미친 비둘기들은 바다에 떠 있을수도 있다. 김기림의{바다와 나비}에는 조금 미친 나비가 바다에 떠있음) 갈매기가 
많고 따라서 이 비둘기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의 하얀 돛대’를 
비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행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는 지붕/ 비둘기가 
바다/ 하얀 돛대를 비유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고요한 지붕을 비둘기가 걷고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시행이 주는 시적 효과는 이런 이중 구조가 산출하고 
그것은 고요한 지붕(바다)에 하얀 돛대가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떠있다는 
독특한 의미를 낳는다. 물론 여기서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화라는 인습적 의미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비둘기는 비둘기 이면서 동시에 하얀 돛대이기 때문에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다. 요컨대 비둘기의 평화는 하얀 돛대의 평화가 된다. 
이 시의 전경은 소나무 사이, 무덤 사이에서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고 후경은 
하얀 돛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습적 상징은 그 의미를 이렇게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그 보기. 

쫒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었을까요. 
ㅡ 윤 동주.[십자가] 

4. 원형적 상징 

인습적 상징이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받고 그 의미가 사회적 인습에 의존 한다면 
이와는 달리 이런 시대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하고 상징(이미지)과 관념의 관계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있다. 이른바 보편적 상징 혹은 원형적 상징 원형 archetype 은 으뜸가는 이미지, 원초적 이미지라는 뜻으로 시인들, 화가들이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 하지만 결국은 몇 가지 원형으로 환원 된다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들의 바탕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이런 이미지는 
사회와 역사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이 생산하고 그런 점에서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미지(상징)는 개인 무의식 
그것도 성적 욕망이 생산 하지만 그의 제자인 융에 의하면 집단 무의식이 생산하고 이런 보편적 상징은 옛날부터 현재까지 인류에게 무의식적으로 계승되는 
이미지이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는 인간적 꿈, 소망, 원망을 암시한다. 이런 소망은 지금도 계속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물, 불, 바람, 흙의 원형으로 
되어 있다거나 자연은 계절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인간도 다시 태어난다는 
재생 원형 등이 있고, 재생 원형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죽고 싶지 않다는 것, 이른바 불사不死,영원에의 꿈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지상의 삶을 초월해서 하늘, 천상의 세계에 닿고 싶은 소망도 있고, 
이런 소망은 흔히 계단, 산, 나무, 탑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예컨대 이런 꿈은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 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 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ㅡ김 현승,[플라 타너스] 


같은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중심적 이미지는 ‘플라 타너스’ 이고 
여기서 이 나무는 단순히 가로수를 의미 하는 게 아니라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는 시행이 암시하듯이 하늘과 닿은 나무, 이른바 초월을 상징하고, 이런 초월은 지상으로부터 벗어나 신의 세계에 닿고싶은 인간의 꿈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시의 후반에는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는 시행이 
나오고, 이런 시행을 전제로 할때 인간의 꿈이 나무의 꿈이고 이꿈은 
신의 세계에 닿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 에게는 탄생, 
창조, 재생에의 꿈이 있고, 이런 꿈은 계절적으로는 봄, 하루의 수준에서는 
새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성기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 까지 이민을 떠났다 우리는 
ㅡ 이 성복,[1959년] 


이 시의 경우‘봄’은 오지 않고, 그것도 여름이 되어도 오지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봄은 자연으로서의 봄이면서 동시에 이런 의미를 초월하고 따라서 
관념으로서의 봄이고(‘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이런 봄이 암시하는 것은 새로운 삶, 신생, 창조, 계몽 등이다. 말하자면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과 대비되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삶, 새로운 삶의 창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5.상징이냐 알레고리냐 

상징과 알레고리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두 기법모두 이미지를 보여줄뿐 
직접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취의가 생략되고 매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징과 알레고리는 다르고, 이 차이가 중요하다. 알레고리allegory 는 흔히 우유㝢兪, 우화偶話, 로 번역되고allegory는 그리스어로 
‘다른것’을 뜻하는 allos 와 ‘말하다’를 뜻하는 agoreuein 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알레고리는 어떤말 혹은 이미지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 한다는 
뜻이고, 우화가 암시하듯이 이런 말하기는 상징과 다른 몇가지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상징이 사물이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관념에 이른다면 알레고리는 
거꾸로 관념에서 출발해서 이미지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다. 
둘째로 상징의 경우 이미지와 관념의 관계가 
1 : 다 로 나타 난다면 알레고리의 경우엔 1 : 1 로 나타나며 시간적 
계기성을 띠고 그런점에서 연속성을 띤다. 
셋째로 상징의 의미는 모호 하지만 알레고리의 경우엔 분명하고 교훈적이고, 
넷째로 알레고리는 이 교훈적인 것과 관계가 있지만 실화성을 띤다는 것이다 
( 좀더 자세한 것은 이승훈, 시작법, 탑 출판사.1988, 201-206면 참고바람). 
다음은 알레고리에 의한시. 


그는 들어왔다. 
그는 앉았다. 
그는 빨강 머리의 이 열병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성냥불이 켜지자 
그는 떠났다. 
ㅡ 아폴리네르,[시](오 증자 역) 


‘그’는 시를 의미하고, 따라서 이 시는 시스기에 대한 시이며, 시쓰기 
혹은 시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노래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혹은 환각으로 나타난 시가 성냥불을 켜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다음과 같은 시도 알레고리의 기법에 의존한다. 


태양신이라고 불리우던 루이14세는 
그의 통치 말기에 
종종 구멍 난 의자에 앉곤 했다 
지독히 어둡던 어느 날 밤 
태양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가 앉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ㅡ 프레베르,[일식](오 증자 역) 


루이 14세를 풍자한 시로 일종의 교훈이 있고, 설화성도 있고, 
이미지가 시간적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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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부모 / 김소월

 

 

            

 

 

 

 

 

 

 

 

김소월 부모 원작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연보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군 서산면 왕인동 외가에서 父 金性壽와 母 張景淑의 장남 출생(金氏문중의 종손)

               (본명 : 김정식, 필명 : 소월) 

                  ※ 조부가 대지주였고 광산업도 하여 집안이 부유했으며 유교적 가풍이 있었음. 

1904년 (2세)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부친이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킴. 

1907년 (5세) 조부가 독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초빙하여 한문 공부 시작. 

1909년 (7세)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

                  서춘 선생의 문학수업을 받고 동네 친구인 오순을 만나 이성에 눈뜸. 

1915년 (13세) 남산소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오산중학에 입학.

                    교장 이승훈, 교사 조만식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을 키움.

                    스승 안서 김억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 

1916년 (14세) 조부의 뜻에 의해 홍실단과 결혼. 오순과의 이별로 심리적 갈등을 겪음. 

1920년 (18세) 안서의 지도로 창작에 매진하고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춘강' 등을 발표하여 문단 등단. 

1922년 (20세)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 

1923(년 21세) 3월 교지 『배제』에 '길손, 달밤, 점동새' 등을 발표. 
                    배재고보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오름. 10월 관동대지진으로 귀국.

                    (조부의 반대로 다시 일본 유학은 가지 못함) 

1924년(22세) 귀향해서 조부의 광산일을 도움.

                   영변 여행을 다녀와서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동인이 됨. 

1925년 (23세) 시집『진달래꽃』(매문사) 상재. 시론 「시혼」을 『개벽』(5호)에 발표. 

1926년 (24세) 마음속의 연인이던 오순의 죽음으로 충격받음. 시작에서 거의 손을 떼고 방탕한 생활을 함. 
                    7월 평안북도 구성군에 동아일보 구성지국 개설, 지국장 역임.


1927년 (25세) 3월 동아일보 지국 폐쇄. '팔베개 노래' 발표.

                   나도향의 요절로 충격을 받고 자살충동을 느낌. 술로 지새는 날이 많아짐. 고리대금업에 손댐. 

1929년 (27세) '조선 시가협회' 회원 가입

                    이 협회는 이광수, 주요한, 김억 등 10명으로 구성, 저속한 가요의 가사 혁신을 위하여 조직 됨. 


1932년 (30세) 독립운동가 배찬경의 망명자금을 대주고 일경의 감시를 받음. 만주행을 꿈꿨으나 실패함. 

1934년 (32세) 8월 '제이,엠,에쓰', '돈타령" 등 발표.

                    9월 21일 추석 전날밤에 김억에게 절망적임 편지를 씀.

                    12월23일 장에서 아편을 사가지고 와 음독함. 다음날 아침 8시경 시체로 발견됨.

                     평북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안장됐다가 후에 서산면 평지동 왕릉산으로 이장. 

1935년 김억이 『신동아』 2월호에 「김소월시행장」발표 

1939년 김억 선의 『소월시집』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됨. 

1956년 완본 『소월시집』이 정음사에서 간행됨. 

1961년 김영삼씨가 『소월정전』을 성문각에서 간행함. 

1968년 3월에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서울 남산에 소월시비가 건립됨. 

1970년 숙모 계희영이 『소월선집』과 『내가 기른 소월』을 장문각에서 간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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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못 잊어 / 김소월

 

 

 

    

 

     

 

 

 

 

 

 

 

김소월 못 잊어 원작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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