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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신
2015년 06월 12일 21시 29분  조회:3985  추천:0  작성자: 죽림
시 정신과 감수성의 변화 

일본 식민지 시대 후반기에 해당하는 1930년대는 일본 군국주의의 확대와 함께 만주사변에서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전란의 상황이 지속된 시기이다.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경제적 수탈과 인적 동원을 획책함으로써,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일본의 강압적인 사상 탄압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해체된 후에는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집단적인 이념에 대한 논의가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이 시기의 시문학은 주로 소규모의 동인활동을 통해 전개된다. 정지용, 김영랑, 이하윤, 박용철 등이 주도한 ≪시문학≫(1930)의 등장 이후 신백수, 이시우, 정현웅, 조풍연, 장서언 등이 참여한 ≪삼사문학(三四文學)≫(1934)이 발간된다. 그리고 박용철, 김상용, 노천명, 모윤숙, 신석정 등이 참여한 ≪시원≫(1935)에 이어 서정주, 오장환, 김동리, 함형수, 김달진 등이 주도한 ≪시인부락≫(1937)과 김광균, 윤곤강, 이육사, 신석초, 이병각 등의 ≪자오선≫(1937)이 등장한다. 이밖에도 ≪단층≫(1937), ≪맥≫(1938)과 같은 동인지들이 잇달아 등장하게 되면서 개인적인 시작 활동 자체가 소그룹 중심의 동인 활동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 시기 시의 경향은 언어적 기법의 실험과 주지적 태도, 주관적 정서의 절제, 도시적 감각과 시적 심상의 구성 등으로 그 특징이 요약된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흔히 모더니즘이라는 서구 사조와 관련지어 이해되기도 한다. 모더니즘은 그 용어 자체가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의 시단에서는 최재서, 김기림 등에 의해 소개된 영미문학의 신고전주의와 이미지즘론 등이 그 이론적 기반을 이룬다. 최재서는 영미문학의 새로운 경향 가운데 예술에서 있어서의 신고전주의와 비평의 과학적 방법을 중시한다. 그는 사상과 감정의 지적인 조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대시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시에 있어서의 현대성의 인식을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기도 한다. 김기림의 모더니즘론은 최재서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 현대시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그의 모더니즘론은 「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주의적 태도」(1933)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로 집약되고 있지만, 「오전의 시론」(1935)을 비롯한 대부분의 글에서는 시에 대한 비평적 논의가 중심을 이룬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운동이 문학사적으로 두 가지의 문학적 조류에 대한 부정과 반발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낭만주의의 감상성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계급문학 운동의 정치적 이념적 지향에 대한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물론 한국문학에서 문제가 되는 문학적 조류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므로 모더니즘의 일반적인 특성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문명에 대한 일정한 감수를 기초로 한 다음 일정한 가치를 의식하고 씌어지는 시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본격적인 시의 모더니즘론에 다가서 있음을 볼 수 있다. 
김기림의 모더니즘론은 시적 모더니티에 대한 추구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현대 문명에 대한 긍정이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종속적인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결여하게 됨은 물론이다. 김기림 자신은 이 같은 문제성을 극복하기 위해 현실 속에서의 지식인의 대중적인 역할을 강조하기도 하고 풍자와 조소를 기조로 하는 문명 비판의 주제를 시 속으로 끌어들이는 실천적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그는 시의 모더니즘이 그 출발에서 볼 수 있었던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언어적 기교의 말초화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1930년대 김기림의 모더니즘론은 그 의의가 모더니티의 시적 구현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제작(製作)으로서의 시를 강조하면서 시가 사물을 재구성하고 독자적인 객관성을 구비하는 그러한 가치의 세계를 드러내야 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의 비평에 있어서도 순수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진 인상주의적 접근법을 벗어나서 방법론의 과학적 근거를 확립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비평이 철학이기 전에 과학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분명히 하였으며, 「과학으로서의 시학」(1940)과 같은 평문에서 과학적 합리주의에 집착하고 있는 그의 문학적 태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1930년대 한국시에서 모더니즘적 경향을 중심 축에 놓고 볼 때, 가장 중요한 경향의 하나는 모더니티의 시적 추구 작업이다. 언어적 감각과 기법의 파격성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시적 탐구, 이미지의 공간적인 구성에 의한 일상적 경험의 동시적 구현, 도시적 문명과 모더니티의 추구 등을 드러내는 모더니즘적 시의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정지용의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1935)과 「백록담(白鹿潭)」(1941), 김기림의 「기상도(氣象圖)」(1936) 등을 비롯하여 이상, 김광균, 장만영 등이 추구했던 시의 경향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과는 다르게 모더니티에 대한 시적 극복에 더욱 관심을 보였던 또 다른 부류의 시인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부락≫(1936)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서정주, 오장환, 유치환, 김광섭, 신석초, 김현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각각 그 작품활동의 배경을 달리하고 있으며, 서로 구별되는 독특한 시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 문명의 비인간화의 경향에 반발하면서 인간의 본능에 대한 시적 추구 작업에 몰두하기도 하였고, 현대 사회에서의 통합된 개인적 주체의 붕괴에 도전하여 인간의 생명 의지를 시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시에는 공통적으로 비판적 모더니티의 담론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와 삶, 생명과 죽음의 문제, 고독과 의지와 같은 관념적인 주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문학 활동은 모더니즘의 시적 경향과는 다른 각도에서 그 위치가 규정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모더니즘 운동의 넓은 범주 안에서 드러나는 모더니티의 시적 지향 자체를 본질적인 속성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전개과정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들은 두 권의 시집 「정지용시집」(1935)과 「백록담」(1941)으로 집약되고 있는데,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내고 있다. 정지용의 시는 예리하고도 섬세한 언어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시의 언어에 대한 자각은 물론 그 이전의 김소월이나 동시대의 김영랑의 경우에도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이들은 모두 시를 통해 전통적인 정서에 알맞은 율조의 언어를 재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경우 이들과는 달리 율조의 언어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언어의 조형성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시의 언어를 통해 음악적인 가락의 미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조형의 미를 창조한다. 이같은 특징은 언어의 감각성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으로, 「바다」, 「유리창」과 같은 작품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琉璃窓 1」

앞에 인용한 「유리창」에는 ‘새까만 밤’으로 표상되는 무한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서정적 자아는 유리창을 경계로 하여 거기에 대면해 있다. 여기서 유리창은 무한의 세계를 끌어와 보여주는 하나의 신비로운 예술로 표상된다. 그러므로 유리창에 입을 대고 입김을 불어보면서 서정 자아는 지금 이곳의 세계와 저기 밤의 세계를 상상력의 힘으로 서로 연결하게 된다. 창 밖 어둠 속에 빛나는 별빛을 보는 순간 자신의 슬픔과 열망 같은 것은 모두 소멸되고, 밀려오는 밤 속으로 자신도 깊이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딸을 잃은 슬픔이라든지 시인 자신의 감정의 동요 같은 것은 엄격하게 절제되어 있다. 다만 유리창이라는 경계를 통해 섬세하게 통어되었던 별빛과의 심정적 거리를 유리창 밖으로 날아가 버린 ‘새’라는 시적 표상을 통해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이 그의 시에서 활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시법은 주관적 감정의 절제와 정서의 균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사물과 현상을 순수관념으로 포착하여 이것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정지용의 시에서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균제미는 시집 「백록담」에 이르러 거의 절정에 이른다. 정지용이 일체의 주관적 감정을 억제한 채 시적 대상을 관조하면서 만들어낸 이 새로운 시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와 동화하거나 합일화하기를 소망하였던 전통적인 자연관을 벗어나고 있다. 정지용은 오히려 자연과 거리를 둠으로써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자연을 새롭게 발견한다. 자연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대상화하면서 그것을 언어를 통해 소묘적으로 재구성한다. 정지용은 자연 그대로의 질서와 자연 그대로의 미를 추구한다. 정지용이 그의 시를 통해 발견한 이러한 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영랑은 동인지 ≪시문학≫(1930)에서부터 본격적인 시 창작활동을 보여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영랑시집」(1935)으로 묶여지고 있거니와 서정적 자아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비애의 정감을 섬세한 율조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슬픔’이나 ‘눈물’과 같은 시어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과장적인 수사에 의한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오히려 균제된 언어로 표현되는 정감의 시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영랑의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섬세한 언어적 감각과 그 언어 감각을 시적 율조로 살려내는 리듬 의식이다. 그러나 김영랑은 깊은 정감을 부드러운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시적 형태의 균제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는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작품언어와 리듬을 보다 개방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형태적 자유로움을 추구하였으며, 상실의 비애와 기다림의 정서를 대응시키면서 그것을 아름다운 율조에 의해 순화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상황이 점차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이어지자 그는 이러한 자기 내면의 시적 욕망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더욱 분명하게 자기 지향성을 드러내게 된다. 현실과 삶의 문제로 시적 관심을 확대하면서 보다 의지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1930년대 후반기에 발표한 「거문고」, 「독을 차고」와 같은 작품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시는 기존의 문학적 기법과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특유의 공간 감각이다. 이 공간 감각은 「오감도」, 「거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주체의 존재론적인 위기 상황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지만, 문학적 기법의 면에서 어떤 경우에는 이미지의 확산을 위해, 어떤 경우에는 상징적 의미의 대립적인 관계를 구체화시켜 주기 위해 동원되기도 한다. 흔히 이상의 공간 감각은 그의 개인사적인 체험에 근거하여 기하학적인 것 또는 건축학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상의 시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요소 중의 하나가 수학적인 것들임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오감도」라든지 「선에 관한 각서」 등에서 보여주는 수의 배열은 모두가 일종의 수학적인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수의 배열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규칙에 의해 함께 묶이는 요소들과 전체 사이의 구조적인 연관성이다. 어떤 요소가 이 규칙에 의해 전체 속에 묶이면 그 요소는 전체를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상은 전체를 묶는 규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의 무의미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 부정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상은 전체와 개체 사이의 부조화를 공간적으로 시각화하여 놓고 있다. 

이상의 시가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모든 근대적인 것에 대한 부정이다. 자아의 절대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중시하는 근대적인 가치 체계를 놓고 볼 때, 이상이 강조하고 있는 자아의 분열 현상은 절대적인 것으로 신뢰되어온 자아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상이 자주 활용하고 있는 기하학적인 요소들이나 대수학의 원리는 모두 절대적으로 신뢰되어온 규칙에 대한 부정을 위해 동원된 것들이다. 기하학적인 원리와 대수학의 규칙을 왜곡시켜 놓으면서 이상은 그러한 원리와 규칙들이 부정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가능성의 현실을 새롭게 제시한다. 바로 이러한 상상력의 초월성에서 우리는 이상의 시에 드러나 있는 새로운 세계인식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백석(白石)은 시집 「사슴」(1936)을 통해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고통스럽게 살고 있던 민중들의 삶의 모습과 그 애환을 소박한 토속적인 사투리를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백석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공간은 대체로 고향이라는 토속적인 세계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고향에 대한 체험이 그만큼 시인의 의식 속에 강렬함을 뜻하는 것이다. 동시에 도시라든지 문명이라든지 하는 근대화의 과정에 대해 가지는 시인의 반근대적인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백석의 시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고향의 풍경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이미 근대화의 과정에 밀려 훼손되어 가는 모습도 나타난다. 백석은 「고방」, 「가즈랑집」, 「여우난곬족 」 등에서 이러한 고향의 풍물에 깊은 애정을 표함으로써, 훼손된 것의 회복에 대한 의지를 표하고 민족의 삶에 깃든 인정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낡은 고향과 지나간 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 속에 담긴 인간적인 것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서는 세 벌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 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시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칠월 백중」

백석의 시 가운데 민중들의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칠월 백중」을 손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백중날 약물터에 놀이를 나가는 새악시들의 모습을 그 옷치레부터 수선스럽게 묘사한다. 그리고 고개를 넘고 넘어 약물터에 모여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대상들이 백중날 약물터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시적 공간 속으로 집약되면서 시적 감흥도 고조된다. 시인은 감각적인 시적 심상들을 공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동시에 그 공간 자체를 한 폭의 이야기로 꾸며낸다. 그는 다채로운 시적 심상을 활용하여 시적 공간을 감각적으로 확장하였으며, 그 속에 고향이라는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담아 놓고 있다. 이러한 시의 방법은 한국 현대시가 감각적으로 섬세해지고 정서적으로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장환의 시는 세 권의 시집 「성벽」(1937), 「헌사」(1939), 「나 사는 곳」(1947)에 그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병든 서울」(1946)에서 그의 문학 세계의 정신적 지표가 전환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오장환의 시의 세계는 시적 주체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고향으로부터 출발한다. 고향은 그의 시의 가장 근원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고향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실된 공간이기 때문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오장환에게 있어 고향은 단순한 회고 취향의 산물이 아니며, 감상적인 동경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근원을 다스리는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오장환은 「고향 앞에서」, 「나 사는 곳」 등의 시를 통해 완고한 유교적 전통과 관습을 고향을 걸고 부정하기도 하며, 부박한 도시의 인정과 항구의 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고향을 통해 그릴 수 있는 공동체의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 물론 고향에 대한 동경과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간절한 그리움 그 자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오장환이 그의 시에서 노래하고자 한 것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으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적 주체가 오롯이 설 수 있는 존재의 근원의 회복을 소망한다. 이것은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과 자신이 속한 민족의 처지를 동일한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낡은 인습을 벗어던지면서도 근대적 병폐가 범람하고 있는 도시의 뒷골목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오장환의 입장을 진보적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고, 모더니즘의 비판적인 인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유치환의 시작 활동은 첫 시집 「청마시초」(1939)와 해방 직후에 펴낸 「생명의 서」(1947)을 통해 정리되고 있다. 초기의 작품들 가운데 「박쥐」, 「깃빨」, 「가마귀의 노래」 등을 보면, 시적 상상력의 역동적 지향과 형태적인 지향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동적인 상상력은 ‘바람’과 ‘날개’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깃발’과 ‘새’라는 시적 대상이 그 긴장을 살려내고 있다. 유치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깃빨」은 시적 상상력의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뜻한다. 이 시는 현실 속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을 향한 비원을 애수의 정서로 표현하고 있다. 
유치환의 시적 상상력은 역동적인 것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다. 그는 끊임없는 움직임과 떠돌아다님의 상태를 구하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의연하게 자리잡는 힘의 균형도 겨냥한다. 유치환의 「산」, 「바위」 같은 작품은 형태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들에는 삶에 대한 개인적 신념과 의지가 시의 주제와 밀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기 의지 또는 생명과 그 존재의 실상에 도달하려는 정신적 자세를 남성적 어조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치환의 시들이 시적 정서를 직설적으로 토로하거나 격렬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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