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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현대시의 흐름/바이런시인 시모음
2015년 07월 09일 21시 26분  조회:5216  추천:0  작성자: 죽림

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

- 심상운의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이선

 

 

 밤 12시 05분. 흰 가운의 젊은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을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40대의 사내. 눈을 감고 꼬부리고

누워있는 그의 검붉은 얼굴을 때리며 “재희 아빠 재희 아빠 눈

떠 봐요! 눈 좀 떠 봐요!“ 중년 여자가 울고 있다. 그때 건너편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그는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을 꺼내 후끈후끈한 수증기가 솟구치는 찜

통에 넣고 녹이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웅크리고 있던 밥

덩이는 수증기 속에서 다시 끈적끈적한 입김을 토해 내고, 차

갑고 어두운 기억들이 응고된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던

밥의 가슴도 끝내 축축하게 풀어지기 시작한다. 푸른 옷을 입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밥의 살을 찔러

보며 웃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들은 햇빛 찬란한 잠속에서 물질의 꿈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라의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둥근

무화과나무 목관木棺의 사진을 본다. 고대古代의 숲 속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의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니는 오전 11시.

 

                                        ― 심상운,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심상운의 시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하여 쓴 새로운 시 쓰기 방법을 모색한 시다. 심상운 시인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정의를 새롭게 하였다. 아직 하이퍼텍스트 시론은 학계의 학문적인 검증을 거쳐야 하고 더 연구하고 발전할 과제가 많지만 심상운 시인은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증명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하여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도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심상운의 시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 나타난 하이퍼텍스트적 요소를 살펴보고 하이퍼텍스트 시론을 역으로 추정해 보고자 한다.

  하이퍼텍스트 이론은 컴퓨터 용어인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 『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라는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용어를 문덕수 시인이 시에 처음 도입하였다. 컴퓨터의 링크는 기존의 텍스트의 선형성, 고정성, 유한성의 제약을 벗어나 마음대로 검색할 수 있다. ‘건너뛰기, 포기하기, 다른 텍스로의 이동’ 등 한 블록에서 다른 블록으로 이동하며 텍스트를 검색한다. 하이퍼텍스트는 한 편의 시 안에서 단어, 행, 연을 동시적으로 나열하여 한 공간에서 공존하게 한다. 리좀이라고 불리는 그물상태를 구축하여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병렬구조는 탈중심적으로 텍스트를 링크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한 공간에 집합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맞게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3연이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담은 몽타쥬 기법을 쓰고 있다. 1연은 병원 응급실, 2연은 밥, 3연은 이집트 미라, 세 개의 이야기를 짜깁기 하였다. 시적 거리가 먼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한 공간에 펼쳐 놓았다. 소설의 옴니버스 구조를 도입한 짧은 이야기는 극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병’과 ‘밥’, ‘죽음’의 문제는 인간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큰 관심 주제였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인생’과 ‘인간’이라는 큰 그림 속에 그려진 또 작은 세 개의 그림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사건과 사실을 펼쳐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그림에 색칠을 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보다 자유로운 상상적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독자는 가상현실의 플롯을 각각 다르게 상상하여 해석하고 감상한다.

  ‘병원 응급실’, ‘냉동고의 찬밥’, ‘이집트 미라’는 평범한 듯 보이는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얘깃거리를 담고 있다. 세 개의 그림은 하이퍼텍스트의 리좀 이론에 따라 다양한 얼개를 가지고 그물망을 짠다. 1연, 2연, 3연 모두 각각의 객체이지만 또한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1연의 ‘재희 아빠’는 2연의 중심 주제인 ‘밥’을 구하려고 피곤한 몸으로 일에 몰입하다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또한 응급실의 ‘재희 아빠’는 통상적으로 병원 응급실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장례식장,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3연의 ‘이집트 미라’인 고대 인간의 주검은 1, 2연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1, 2, 3연이 본질적 인간 생활과 일맥상통하며 연계된다. 동서양을 떠나서 남자는 기본적으로 가족부양이라는 가장의 책임을 떠맡고 있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 링크되어 공존하면서 연상작용을 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1연,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40대 사내’라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시는 출발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화하여 ‘보여주기’ 한다. 극한상황을 제시하여 사건을 구성한다. 그런데 2연에서 생뚱맞게 사물인 ‘밥’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이물질들의 결합이다. 병렬적 구조인 ‘사내’와 ‘밥’은 서로 내포적이거나 종속적이지 않으며 등가적이다. 그런데 그 밥은 정상적인 밥이 아니다. ‘허연 비닐봉지에 싸여진 채 냉동고 구석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밥’이다. 마치 냉동고에 안치된 시체처럼 서늘한 기운이 나는 ‘찬밥’이다. 1연의 ‘사내’는 세상에서 ‘찬밥신세’로 살다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사내가 세상의 밥이었을 수도 있고 ‘세상’이 사내의 '밥‘이었을 수도 있다. 사내는 ‘재희 엄마’와 ‘재희’에겐 그들을 먹이는 밥일 수도 있다. 가족을 먹이려고 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응급실에 실려온 것이다.. ‘밥’은 냉동고에서 찜통으로 들어가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녹는다. 차갑고 어두운 기억이 응고된 밥. 검붉은 뼈가 단단히 박혀 있는 밥의 가슴. 2연의 ‘밥’은 1연의 ‘사내’와 치환되어 동일시된다. 그러나 이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독자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그것이 사물시의 장점이다.

  심상운 시에서의 ‘밥’은 무생물이 아닌, 생각과 고통을 느끼며 가슴이 얼어붙은 활유화된 밥이다. ‘밥’과 ‘사내’의 아픔을 병치시켜 사내의 극단적으로 어려웠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단순한 밥이 아니다. 이 ‘밥’은 먹을 수 있도록 녹기까지 상당히 복잡한 사연을 가진 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연은 ‘그’라는 3인칭을 써서 1연의 ‘사내’와 ‘그’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여지를 준다. ‘밥’의 살을 찔러보며 웃는 ‘그’는 전혀 1연과 다른 사내일 것이다. 2연의 ‘그’는 1연의 ‘사내’를 진찰하는 의사일 수도 있다. 의사는 사내를 찔러보며 관찰하고, 진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검진한다. 또 어쩌면 2연의 ‘그’는 관을 꺼내서 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1연과 2연은 다초점, 다원화된 구조의 그물망을 짜서 독자에게 복잡한 리좀을 만들고 있다. ‘그’는 여러 정황적 상황과 상징성을 가지며 독자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의 의미시보다 해석의 폭이 넓다. 이렇게 하이퍼텍스트 시는 아날로그 시의 단선구조를 다선구조로 바꾸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링크하여 관념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그 상상력은 사실에서부터 출발한 객관화된 상상력이다.

  그런데 3연은 1, 2연과 또 동떨어진 소재 ‘이집트 미라’가 등장한다. 1연과 2연과 3연은 각각 다른 이야기로 ‘낯설게하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지금까지 연과 연이 결합하여 의미를 생산하던 시 쓰기 방법을 버리고 연과 연의 연결을 일부러 끊어버린다. 시적 거리가 먼 사물을 등장시켜 시적 논리와 질서를 파괴한다. 인간인 ‘사내’와 무생물인 ‘밥’, ‘사진’을 한 공간에 병렬 배치하여 같은 값을 준다. 지금까지 시의 연에서 이뤄지던 내포와 종속의 관계를 부정한다. 3연의 미라는 실제의 미라가 아니라 사진에서 본 ‘목관’ 속의 ‘미라’다. 고대의 숲에서 날아온 새들이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현대의 ‘5월 청계산 숲을 휘젓고’ 다닌다. ‘오전 11시’라는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현재성을 제공하여 실감을 더하고 있다.

  1연- 객관적 사실. 2연- 객관적 사물과 상상력. 독자를 연상작용으로 유도한다. 3연- 객관적 사물인 사진. 다시 사진에서 상상력을 더하여 현재로 이동. 심상운 시인은 거실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위의 시를 썼을 수도 있다. 시인은 벽에 걸린 이집트 미라의 목관 사진을 보면서 주검을 생각하고, 죽음은 병원응급실에 대한 심상운 시인의 사전지식인 기억과 만난다. 죽음은 다시 직업과 연결되고 직업은 밥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다. 단순한 이집트 미라 목관 사진 한 장이 병원, 밥을 연상작용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또한 현재의 ‘새소리’를 등장시켜 화자인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온다. 흡사 영화의 회상 기법처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사진을 ‘본다’는 작은 사실에서 출발하여 ‘바라본다 - 관찰한다 - 상상한다 - 이야기를 조립한다 - 뼈대를 세운다 - 꾸민다’는 시적 발상과 완성까지, 시 쓰기의 전 과정을 심상운 시인은 여과 없이 시로써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눈을 감고 상상력의 가지를 뻗어 ‘무화과나무 목관- 무화과나무 숲- 숲에 사는 고대의 새- “씨이룽 찍찍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새소리- 현대 청계산- 오전 11시의 화자인 나’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연상을 한다. 시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에 같은 값을 주고 병렬 배치한다. 사진에서 생물과 사건이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상력의 줄기를 잡고 우주 끝까지 연상작용을 하는 상상력을 중시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논리성을 파괴하며 무의미를 추구한다. 논리를 버리고 의미찾기를 버린다. 연과 연의 연결고리를 일부러 끊어버린다. 연과 연의 지시, 명령을 받지 않은 언어는 상상력의 폭이 넓어져 독자는 감각적이며 청량한 정서적 미의식을 경험한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는 사물시의 본질, 사물에서 파생된 상징과 본질적 이미지와 만나게 된다. 2연의 ‘밥’처럼, 밥이라는 사물은 일과 직업이라는 묵계된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찬밥’을 녹이는 과정은 ‘찬밥’이 아웃사이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이된 것처럼 굳어버린 변형된 의미체계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병원 응급실’과 ‘미라’도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학습된 섬뜩한 무서운 이미지가 독자에게 연상작용을 하여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독자는 상상력의 범주를 넓혀 1, 2, 3연을 조합하여 극적으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꾸민다. 스스로 사건을 구성하는 토대는 경험과 지식, 극적구조물을 짜는 능력에 따라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이것이 하이퍼텍스트 시가 추구하는 텍스트의 명령과 지시,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시 감상의 매력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무의미를 추구한다. 무의미한 단어와 무의미한 사실들을 혼합시켜 미술의 표현기법처럼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보는 것이다.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독립된 연과 단어를 나열하여 독자가 각기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각각의 연들은 병렬적으로 널브러져 있지만 서로 말을 하고 연관을 갖는다. 리좀이 되어 단어와 이미지들이 그물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의 모듈(module) 이론은 최소 독립된 단위인 단어들이 연속적으로 연계되어 한 공간에 나열된다. 그 단어나 문장, 연은 바꾸거나 버려도 전체에 전혀 영향을 미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모듈 이론이다. 교환 가능한 이미지, 독립된 기능을 가지면서도 분리될 수 있는 덩어리들이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 방법론이다. 또한 시는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시를 새롭고 감각적이게 한다.  

  또한 연과 연은 병렬배치 되어 있지만 각 연들은 서로 링크된다. 블록과 블록은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검색된다. 또한 각 연의 단어와 단어, 이미지와 이미지들도 병렬 배치되어 있지만 서로 링크된다. 모듈처럼 단어와 이미지, 사건들이 한 연 안에서 모자이크처럼 내밀한 구조로 연합되어 있다. 단어와 단어, 연과 연, 이미지와 이미지는 동시다발적 구도를 가지고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의존적이며 주장적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 용어로서 한 개의 모티브를 검색하기 위해서 여러 번 클릭한다. 이 시의 화자는 ‘검붉은 색의 그림’을 클릭한다. 또한 디지털의 모자이크 기능처럼 ‘을지병원 응급실’이라는 절박한 상황과 ‘밤 12시 05분’이라는 시간을 클릭하고, ‘재희 아빠, 울고 있는 중년 여자,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를 클릭하여 모자이크 하여 빠르게 빤짝빤짝 보여주고 있다.

  2년에서도 ‘허연 비닐봉지, 냉동고, 딱딱, 후끈후끈, 찜통, 얼굴, 가슴, 밥덩이, 수증기, 끈적끈적, 입김, 차갑고, 어둡고, 기억, 응고, 뼈, 가슴, 축축, 푸른, 옷, 가스레인지, 나무젓가락 등, 밥의 살, 찔러본다, 웃다’ 등 많은 명사와 형용사들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3연에서는 ‘이집트, 미이라, 햇빛, 찬란, 꿈, 무화과나무, 목관, 사진, 고대 숲, 날다, 새, 씨이룽 찍찍, 쪼로롱 쪼로롱, 5월, 청계산, 숲, 오전 11시’ 등 시간, 사물, 공간, 시대를 짜깁기 하여 종적, 횡적으로 모자이크하였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추상화와 같다. 연과 연은 흩어져 있지만 전체로 집합된다. 단어와 단어는 모듈과 리좀으로 얽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색깔이 섞인 구성과 같다. 그 구성의 덩어리들이 떠다니는 것이 연이다. 여러 개의 연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의 인상을 결정한다. 독자는 추상화를 일일이 색깔을 분석하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고 전체적인 인상으로 감상한다. 즉 하이퍼텍스트 시는 상황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유기체의 결합은 모자이크처럼 여러 색깔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여러 개의 구성물과 색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일일이 의미를 분석하지 않고 전체적인 상황으로 그림을 받아들인다. 즉 추상화는 감상자의 직관과 느낌이 중요하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의성어와 의태어, 무의미한 단어 나열로 가볍다는 지적을 받았다. 의미를 추구하던 아날로그 시를 버리고 하이퍼텍스트 시가 무의미를 추구하면서 경박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다. 상황제시만 있지 인간 삶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없는 철학의 부재가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똑같은 형태의 시가 난립하여 개성적인 작품생산이 어렵고 자기 상표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름만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어 던지기는 어떤 단어로 대체하여도 되기 때문에 절실함과 진정성이 없다고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다.

그에 반하여 심상운의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서는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실현하기 어려웠던 사유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심상운 시인은 ‘죽음’과 ‘병’, ‘밥’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하이퍼텍스트 시에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적된 사유의 부재와 무작위 단어들을 연결하여 만들어낸 무의미한 이미지 나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진정성의 결여를 극복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 ‘밥’이다. 또한 ‘밥’을 얻기 위해서 죽도록 일하다가 병과 죽음을 얻는다. 인간생활에서 죽음과 밥, 병이라는 테마는 ‘전쟁과 사랑’만큼 절실한 문제다. 인간이 영원히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야 하는 예술의 테마다.  

  심상운은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으로 지적된 사유와 철학의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시가 단어 던지기와 무의미 단어 나열로 가볍고 정신없다는 비난을 무력화시켰다. 위의 시는 여러 상황을 모자이크하여 보여주면서도 산만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질서정연한 폼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퍼 시의 문제점은 바로 그 파괴된 형태를 보여주는 시 쓰기를 실현하면서 보여주는 단어던지기와 무분별한 단어의 조합과 나열, 각각 다른 연의 ‘낯설게하기’ 기법이 무작위적으로 여러 편의 시를 생산했을 때 그 새로운 방법론이 시인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양산된 시가 과연 새로움을 가질 수 있는지, 창조성과 유일성, 철학을 가진 예술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론이 새로운 문예사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쓰여진 하이퍼텍스트 시로써 시론을 증명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필자를 포함하여 하이퍼텍스트 시를 쓴다고 주장하는 시인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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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흐름

현대시의 흐름

 

1. 3 ·1운동 무렵 ∼ 192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민족의 최대 희망이었던 3·1운동의 좌절은 민족 전체에게 절망과 방향 상실의 비애를 안겨 주었다. 국권 상실 이후, 정치적 좌절감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은 경제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착취와 세계 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화 현상의 심화로 민족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몇몇 선각자들은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2. 특 징

(1) 자유시형(自由詩形)의 확립 :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의 계몽성, 개념성, 비예술성을 극복한 본격적인 자유시가 창작되었다. 주요한(朱耀翰), 김억(金億), 김여제(金輿濟) 등이 그 선구자다.

 

 

시 인

작 품

실린 곳

연대

김여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학지광(學之光) 10호

1917

주요한

시내, 봄, 눈, 샘물이 혼자서

학우(學友) 창간호

1919

김 억

겨울의 황혼

태서문예신보 13호

1919

주요한

불놀이

창조(創造) 창간호

1919




(2) 동인지(同人誌) 문단의 형성 :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신문의 창간, <개벽>, <조선문단> 등의 잡지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하여 많은 문예 동인지가 나와 동인지 문단 시대를 열었다.

① 창조(創造)

 

 

연 대

1919. 2. 1 ∼ 1921. 5. 30(통권 9호)

동 인

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김동환

의 의

- 최초의 순 문예 동인지

- 근대 문학 개척에 이바지

- 완전한 언문일치체 문장 확립

- 최초의 근대시인 '불놀이(주요한)', 사실주의 단편 소설 '약한 자의 슬픔(김동인)'을 실음

경 향

- 시 : 상징적 / - 소설 : 사실적



② 폐허(廢墟)

 

 

연 대

1920. 7. 25 ∼ 1921. 1. 20(통권 2호)

동 인

황석우, 염상섭, 김억, 남궁벽, 오상순

경 향

퇴폐적, 상징적



③ 장미촌(薔薇村)

 

 

연 대

1921

동 인

박종화, 변영로, 노자영, 박영희

의 의

- 시 동인지의 효시

- <백조>의 전신

- 현대시 창작에 이바지함

경 향

낭만적



④ 백조(白潮)

 

 

연 대

1922. 1. 9 ∼ 1922. 9. 6(통권 3호)

동 인

현진건, 나도향, 이상화, 홍사용, 박종화

의 의

- 순 문예 동인지

- 가장 활발한 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짐.

- 투르게네프 산문시 소개(나도향)

경 향

낭만적



⑤ 금성(金星)

 

 

연 대

1923

동 인

양주동, 유엽, 백기만, 이장희

의 의

시 동인지

경 향

낭만적



⑥ 영대(靈臺)

 

 

연 대

1924(평양)

동 인

김소월, 주요한, 김억, 전영택, 이광수

의 의

순 문예지, <창조>의 후신

경 향

일정치 않음


(3) 감상적 낭만주의, 상징주의, 계급주의, 민족주의, 해외문학파 시의 전개

① 초기 : 감상적(퇴폐적) 낭만주의

김억과 황석우가 <태서문예신보>를 통해 프랑수 상징주의 시를 번역 소개했으며 3ㅗ1운동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 프랑수 상징주의 시의 퇴폐적 경향(특히 C.P.보들레르 풍), 우울한 분위기의 러시아 문학의 영향, 당시 청년들의 치기(稚氣)어린 감상성 등이 어울려 애상(哀想), 탄식(歎息), 절망(絶望), 도피(逃避), 죽음의 찬미(讚美) 등 감정의 과잉 노출 현상을 빚었다.

② 중기 이후 : 서사시, 계급주의 시ㅗ시조와 민요시의 출현, 해외문학파의 순수시 소개

3ㅗ1운동 실패의 충격이 다소 가라앉게 된 1920년대 중반부터 문인들은 민족의 갈 길이 나라 찾기와 민족의 생존권 회복에 있음을 재인식, 새로운 삶의 전망을 품게 되었다. 이에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은 3편의 서사시를 썼고, <개벽>중심의 계급주의파 시와 <조선문단>중심의 민족주의파의 문학이 대립했다.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등이 시조 부흥운동을 폈고, 김소월, 김동환, 주요한 등이 민요시를 썼다. 한편 계급주의 시의 개념성, 전투성, 공격성을 비판하여 해외문학파가 순수시를 소개했다.

㉠ 김동환의 서사시(敍事詩)

 

 

시 집

발행처(실린 곳)

연 대

국경 (國境)의 밤

한성도서

1925. 3.

우리 사남매(四男妹)

조선문단

1925. 11.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

신문화사

1925. 11.


이 시들의 서사시 여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 개벽(開闢)

 

 

연 대

1920. 6. 25 ∼ 1926. 8. 1(통권 72호, 발행 금지)

동 인

박영희, 김기진

의 의

- 월간 종합지(천도교 후원)

- 신문지법에 따른 첫 잡지

- 근대 문학에 이바지함

경 향

계급주의


㉢ 조선문단(朝鮮文壇)

 

 

연 대

1924. 9 ∼ (통권 25호), 1927년 속간, 1935년 복간, 1936년 폐간

동 인

이광수, 방인근

의 의

- 순 문예지

- 최초의 신인 등용 추천제 실시

- 박화성, 최학송, 채만식, 계용묵 등 많은 신인 배출

경 향

민족주의, 반계급주의

㉣ 해외문학파(海外文學派)와 <해외문학>

 

 

연 대

1927 ∼ 1931

동 인

김진섭, 정인섭, 손우성, 이하윤, 이선근, 이헌구, 함대훈, 김광섭

의 의

- 최초의 번역 문학지

- 해외문학연구회(1926)의 기관지

- 연극(번역) 공연의 모체

경 향

순수 문학, 반계급주의


㉤ 민요시(전통시에의 관심)

뒷동산에 꽃 캐러

언니 따라 갔더니,

솥가지에 걸리어

다홍치마 찢었습네.

누가 행여 볼까 하여

지름길로 왔더니,

오늘따라 새 베는 임이

지름길로 나왔습네.

뽕밭 옆에 김 안 매고

새 베러 나왔습네,

( 주요한, '부끄러움' )

이같은 소박한 민요시를 김소월만이 성공적인 자유시로 승화 발전시켰다.

(4) 김소월과 한용운의 등장 : 한국시의 전통성과 서구적 현대시의 기법을 조화시켜 현대시의 기반을 다진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과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의 시집 <진달래꽃>(1925)과 <님의 침묵(沈默)>(1926)으로 등단한 것도 이 시기이다.

2. 193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만주 사변(1931), 중일 전쟁(1937) 등으로 일제가 전시 체제를 구축하면서 민족 문화를 탄압, 말살하기 위한 억압 정책을 가속화해 가던 시기로서, 세계의 경제 공황(1929)과 전체주의 파시즘(fascism)이 대두하던 위기의 시대가 1930년대였다. 이 때는 탈이념(脫理念)이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2. 특 징

(1) 계급주의 문학의 퇴조와 순수시의 대두 : 발표 지면은 확대되었으나, 일제의 검열과 계급주의(KAPF)파의 검거와 자진 해체, 목적 문학인 계급주의 시의 무장ㅗ전파ㅗ선동의 전략적 행태(行態)와 도식적(圖式的)이고 이념 지향적(理念指向的)인 경향에 대한 독자의 반발 등을 계기로 하여 순수시가 대두했다.

(2) 현대시 유파(流派)의 형성과 실험 : 1930년대 초기에는 순수시파, 중기에 모더니즘파, 후기에는 생명파가 다분히 의도적인 시 운동을 전재하여 본격적인 현대시의 기틀을 잡았고, 청록파가 30년대 말을 장식했다.

① 순수시파 : 순수시는 넓게 보아 <해외문학(海外文學)>(1927), <시문학(詩文學)>, <문예월간(文藝月刊)>(1931), <문학(文學)>(1934), <시원(詩苑)>(1935) 등의 문예지를 중심으로 발표된 시를 가리키며, 좁게는 <시문학>파 시인인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을 시를 지칭한다.

② <시문학(詩文學)>

 

 

연 대

1930 ∼ 1931(통권 3호)

동 인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이하윤, 변영로, 정인보

의 의

- 시 동인지

- 순수시 운동의 모체(母體)

경 향

- 반목적적 순수시, 시에 대한 현대적 인식

- 모국어의 조탁(彫琢)과 순화(醇化)된 정서, 음악적 율격의 강조


③ 모더니즘파 : 모더니즘(modernism)은 니체, 마르크스, 다윈이 제시한 시대 이념에서 유래하는 서구 사조이다. 근대 서구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던 기독교 사상과 휴머니즘이 설득력을 잃고, 뉴턴 물리학의 합리성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가냘픈 기대가 19세기 서구 사회를 지탱해 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여러 과학적 징후들은 과학 자체마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프랑크의 양자론(量子論),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돌연변이성, 방사선 방출, DNA의 합성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서구의 정신사(精神史)는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새로운 휴머니즘을 모색(摸索)하게 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추구된 것이 모더니즘이다.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이미지즘(imagism),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입체파(cubism), 미래파(futurism), 주지주의(intellectualism) 등을 포괄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주로 이미지즘의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등의 시를 가리킨다. 즉 이미지즘과 주지주의 문학이 우리 나라 모더니즘 시의 핵이다. 이상(李箱)의 다다이즘 내지 초현실주의의 시를 비롯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의 시는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시이다.

모더니즘(주지주의)은 최재서(崔載瑞), 백철(白鐵), 김기림(金起林)이 소개했다. 김기림은 평론을 쓰고 시를 실험했으며, 김광균은 이를 실현했다.

④ 생명파(生命派) : 1930년대 초반 순수시파의 유미주의(唯美主義), 중반 모더니즘파의 감각적 기교주의가 인생 문제를 도외시한 데 대한 반발을 보이며 등장한 1930년대 후반의 문인들 일파가 이른바 '생명파'이다.

1936년에 발간된 <시인부락(詩人部落)>의 동인인 시인 서정주, 소설가 김동리를 선두로 하여 이와는 다른 처지에서 등장한 시인 유치환이 이 유파의 문인을 대표한다.

생명파의 대다수는 <시인부락> 동인 중의 시인이며, 김동리는 그 중 소설가이다. 유치환과 윤곤강, 신석초는 동인이 아니면서도 경향의 유사성 때문에 '생명파'라 불린다.

 

 

연 대

1930년대 후반

동 인

유치환, 서정주, 오장환,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김동리, 윤곤강, 신석초

의 의

생명의 본질, 본능적 조건을 기초로 한 인간의 이해와 인식을 추구함.

경 향

- 순수시파 유미주의의 관념성, 모더니즘 시의 반생명성에 대한 도전

- 시적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의 한국 문학에 영향을 끼침

- 휴머니즘 문학(김동리의 주장)은 순수 문학론으로 발전, 계급주의 문학과 대결하게 됨.

-




⑤ <시인부락(詩人部落)>

 

 

연 대

1936 ∼ 1937(통권 5호)

편집, 발행

서정주(1호), 오장환(2호 이후)

동 인

서정주, 김동리, 함형수, 김달진, 김상원

경 향

생명과 인간의 구경(究竟) 탐구


3. 암흑기의 시

 

1. 시대 배경

중일 전쟁(1937) 이후 태평양 전쟁(1941)이 일어나기까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였으나, 이 시기에는 오히려 많은 시집이 간행되고, 예술적으로 괄목할 만한 작품들이 빛을 보았다. 그러나 1941년에 들어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물론,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의 두 문예지마저 폐간하였으며, 한국어, 한국 문자의 사용을 금지시켜 그야말로 역사와 문화의 암흑기를 맞이하였다.

 

2. 특 징

(1) '청록파(靑鹿派)'와 자연 회귀 : <문장>지 추천을 거쳐 등단한 이 시인들은 자연에 회귀하여 위안을 찾으며 밝아올 새날의 역사를 노래했다. 1946년에 <청록집>을 내었다.

① 박목월 : 동양의 이상향인 도화원(桃花園)과 같은 선경(仙境)을 추구했다. '청노루', '산도화(山桃花)', '불국사(佛國寺)' 등이 그 예이다.

② 박두진 : 기독교(구약성서 이사야서)적 평화 사상으로 자연을 추구하며 밝아올 새 역사의 소망을 노래했다. '향현(香峴)', '해', '어서 너는 오너라' 등이 그 예이다.

③ 조지훈 : 우리 전통 - 멸망하는 것에 대한 짙은 향수(鄕愁), 선(禪)과 은일(隱逸)의 경지에 침잠했다. '고풍의상(古風衣裳)', '봉황수(鳳凰愁)', '완화삼(玩花衫)', '낙화('落花)', '고사('古寺)', '범종('梵鍾)' 등이 그 예이다.

(2) 암흑기의 별 - 저항 :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과 윤동주(尹東柱)의 시는 암흑기의마지막 밤을 밝히는 불멸의 별이다.

① 이육사 : 유교적 선비 정신으로 지절(志節)의 표상이 된 대륙적 기질의 시인. (語調)가 남성적이어서 도도하고 당당하다. '광야(曠野)', '절정(絶頂)' 등이 그 예이며, '청포도'는 인구에 회자되는 애송시이다.

② 윤동주 :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으로 순결과 참회와 그리움의 시를 썼다. '서시(序詩)', '십자가', '참회록',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어진 시' 등이 그 예이다.

 

4. 광복 후의 시

 

1. 시대 배경

1945년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은 이 땅에 정치적 선동과 파쟁을 빗었다. 좌익 문인 단체인 '조선 문학 동맹'(1945. 2) 소속의 시인들이 낸 시집은 경직된 좌익 이념만 노출, 선전하였을 뿐 예술성의 확보와는 먼 거리에 있었다. '조선 문학가 협회'를 중심으로 한 우익 계통의 시인들의 시도 해방을 맞이한 격정과 소박한 찬가풍(讚歌風)의 어조로 하여 긴장을 잃은 행사시(行事詩)들을 양산했다.

 

2. 특 징

(1) 전통의 계승 : 이런 가운데 출현한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의 공동 시집 <청록집(靑鹿集)>(1946)과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의 <생명(生命)의 서(書)>(1947),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귀촉도(歸蜀途)>(1948),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등은 광복된 조국의 시사(詩史)를 빛낸 기념비적 업적이다. 그러나 청록파의 시는 전통적 자연 서정주의에 지나치게 편중된 흠이 있다.

(2) 시단에서 활동한 시인들

① 광복 전 : 김광섭, 노천명, 모윤숙, 신석초, 김광균, 신석정, 장만영, 김현승, 김상옥, 윤곤강 등

② 광복 후 : 구상, 정한모, 조병화, 김춘수, 김경린, 김수영, 김윤성, 설창수, 이경순, 한하운 등

(3) 6·25 직전에 발간한 <문예(文藝)>는 전쟁 전후의 문단에 크게 공헌 했다.

 

순문예지

주재자

연대

등단 문인

문예(文藝)

발행인 : 모윤순

편집인 : 김동리

조연현

1949 ∼1954 .3
(통권 21호)

- 시인 : 손도인, 이동주,

송 욱, 전봉건,

천상병, 이형기

- 소설가 : 강신재, 장용학,

최일남, 서근배

- 평론가 : 김양수


5. 1950년대의 시

 

1. 시대 배경

1948년 8월 15일 대한 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 문학은 분단의 비극을 연출하며, 북한의 남침으로 6ㅗ25의 대참화를 체험한다.

 

2. 특 징

(1) 새 시인군(詩人群)의 등장 : 신동집, 김구용, 김요섭, 장호, 김남조, 홍윤숙, 이인석, 김종문 등과 <문예>지 출신 이원섭, 이동주, 송욱, 전봉건, 이형기, 한성기, 박양균, 천상병, 이수복 등 역량 있는 시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2) '후반기(後半期)' 동인의 모더니즘 :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조향 등은 시의 소재를 현대의 도시 문명에 두고 주지적, 감각적 기법으로 처리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이 밝고 건강한 '오전의 시'를 썼음에 비해 이들은 짙은 불안감과 위기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3) 반서정주의의 상황파 시 : 6ㅗ25 전란의 참담한 상황을 몸소 체험하여 강렬한 생명 의식ㅗ민족애ㅗ조국애ㅗ인류애를 노래한 시인들이 등장하여 새와 바람, 푸나무와 냇물, 달과 꽃만 노래하는 전통적 자연ㅗ서정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유치환, 구상, 박남수, 전봉건, 송욱, 신동문 등이 반서정주의 시인이다. 특히 유치환의 종군 체험 시집 <보병과 더불어>(1922), 강렬한 조국애와 민족애, 인류애, 원죄 의식을 노래한 구상의 연작시 '초토(焦土)의 시'(1956)가 이런 경향의 시를 대표한다.

또, 존재의 탐구에 골몰한 김춘수, 도시인의 애수를 직설적으로 노래한 조병화, 내향적 자아 의식을 추구한 김구용 등의 시도 반서정주의의 특성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자연 발생적 감정을 거부하고 언어를 지성적으로 조작하여 시를 구성하려 한 주지적 심상파 김종삼, 성찬경, 문덕수, 김광림, 김요섭 등의 시도 빼어 놓을 수 없다.

(4) 전통적 서정파의 자기 수호의 시 : 위와 같은 도전을 받으면서 전통적 서정파는 자기 정체성을 지켰다. 서정주를 필두로 박재삼, 황금찬, 구자운, 김관식, 이동주, 박용래, 박성룡, 박희진 등이 이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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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울었도다 By the Rivers of Babylon
우리 둘 헤어질 때 When We Two Parted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아테네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Maid of Athens, ere we part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Beauty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A-Roving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 바이런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Down and Wept

- George, Gordon, Lord Byron 


We sat down and wept by the waters 

Of Babel, and thought of the day 

When our foe, in the hue of his slaughters, 

Made Salem's high places his prey; 

And ye, oh her desolate daughters! 

Were scattered all weeping away. 


While sadly we gazed on the river 

Which rolled on in freedom below, 

They demanded the song; but, oh never 

That triumph the stranger shall know! 

May this right hand be withered for ever, 

Ere it string our high harp for the foe! 


On the willow that harp is suspended, 

Oh Salem! its sound should be free; 

And the hour when thy glories were 

ended 

But left me that token of thee: 

And ne'er shall its soft tones be blended 

With the voice of the spoiler by me! 



우리 둘 헤어질 때 

- 조지 고든 바이런


말없이 눈물 흘리며

우리 둘 헤어질 때

여러 해 떨어질 생각에

가슴 찢어졌었지

그대 뺨 파랗게 식고 

그대 키스 차가웠어

이 같은 슬픔

그때 벌써 마련돼 있었지 


내 이마에 싸늘했던

그 날 아침 이슬

바로 지금 이 느낌을 

경고한 조짐이었어

그대 맹세 다 깨지고

그대 평판 가벼워져

누가 그대 이름 말하면

나도 같이 부끄럽네


남들 내게 그대 이름 말하면

그 이름 조종처럼 들리고

온몸이 한 바탕 떨리는데

왜 그리 그대 사랑스러웠을까

내 그대 알았던 것 남들은 몰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걸

오래 오래 난 그댈 슬퍼하리

말로는 못할 만큼 너무나 깊이


남몰래 만났던 우리--

이제 난 말없이 슬퍼하네

잊기 잘하는 그대 마음

속이기 잘하는 그대 영혼을

오랜 세월 지난 뒤

그대 다시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말없이 눈물 흘리며



When We Two Parted 

- George Gordon, Lord Byron 


When we two parted 

In silence and tears, 

Half broken-hearted 

To sever for years, 

Pale grew thy cheek and cold, 

Colder thy kiss; 

Truly that hour foretold 

Sorrow to this.


The dew of the morning 

Sunk chill on my brow-- 

It felt like the warning 

Of what I feel now. 

Thy vows are all broken, 

And light is thy fame; 

I hear thy name spoken, 

And share in its shame.


They name thee before me, 

A knell to mine ear; 

A shudder comes o'er me-- 

Why wert thou so dear? 

They know not I knew thee, 

Who knew thee too well:-- 

Long, long shall I rue thee, 

Too deeply to tell.


In secret we met-- 

In silence I grieve 

That thy heart could forget, 

Thy spirit deceive. 

If I should meet thee 

After long years, 

How should I greet thee?-- 

With silence and tears.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해럴드 공자의 편력' 중에서, 캔토 4, 시 178 

- 로드 바이런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외로운 바닷가에 황홀이 있다

아무도 침범치 않는 곳

깊은 바다 곁, 그 함성의 음악에 사귐이 있다.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통해 

현재나 과거의 나로부터 물러나

우주와 뒤섞이며, 표현할 수는 없으나 

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바를 느끼기에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from Childe Harold, Canto iv, Verse 178 

- George Gordon Lord Byron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There is a rapture on the lonely shore, 

There is society, where none intrudes, 

By the deep sea, and music in its roar: 

I love not man the less, but Nature more, 

From these our interviews, in which I steal 

From all I may be, or have been before, 

To mingle with the Universe, and feel 

What I can ne'er express, yet cannot all conceal.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 바이런 


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돌려주오, 오, 내 마음 돌려주오

아니 기왕에 내 마음 떠난 바엔

이젠 그걸 가지고 나머지도 가져가오

나 떠나기 전 내 언챡 들어주오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에게해 바람마다 애무한

흘러내린 그대 머리칼에 맹세코

그대의 부드러우 뺨에 피어나는 홍조에 입마주는

까만 속눈썹이 술 장식한 그대 눈에 맹세코

어린 사슴처럼 순수한 그대 눈망울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애타게 맛보고 싶은 그대 입술에 맹세코

저 허리띠 두른 날씬한 허리에 맹세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사연도

전해주는 온갖 꽃에 맹세코

교차되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맹세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아테네의 아가씨여! 나는 떠나가리라

님이여! 홀로 있을 땐 날 생각하오

몸은 비록 이스탄불로 달려갈지라도

내 마음과 여혼은 아테네에 있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천만에요!

"내 생명이여, 나 그대 사랑하오"




Maid of Athens, ere we part

- George Gordon, Lord Byron


Maid of Athens, ere we part, 

Give, oh, give back my heart! 

Or, since that has left my breast, 

Keep it now, and take the rest! 

Hear my vow before I go, 

Zoe mou sas agapo. 


By those tresses unconfined, 

Wooed by each Aegean wind; 

By those lids whose jetty fringe 

Kiss thy soft cheeks' blooming tinge; 

By those wild eyes like the roe, 

Zoe mou sas agapo. 


By that lip I long to taste; 

By that zone-encircled waist; 

By all the token-flowers that tell 

What words can never speak so well; 

By love's alternate joy and woe, 

Zoe mou sas agapo. 


Maid of Athens! I am gone: 

Think of me, sweet! when alone. 

Though I fly to Istambol, 

Athens holds my heart and soul: 

Can I cease to love thee? No! 

Zoe mou sas agapo.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 바이런


별이 총총한 구름 한점 없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어둠과 빛의 순수는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하늘이 찬연히 빛나는 낮에는 주지 않는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그늘 한 점이 더하고 빛이 한 줄기만 덜했어도 

새까만 머리칼마다 물결치고

혹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밝혀 주는 

형언할 바이 없는 그 우아함을 반은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선 사념이 고요히 감미롭게 솟아나

그 보금자리, 그 얼굴이 얼마나 순결하고 사랑스런가를 말해 주노라. 

저 뺨과 이마 위에서

상냥하고 침착하나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환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 준다. 착하게 보낸 지난날을

이 땅의 모든 것과 화목한 마음,

순결한 사랑이 깃든 마음을. 




Beauty

- George Gordon,Lord Byron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Of cl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Thus mellowed to that tender light

Which heaven to gaudy day denies.

One shade the more, one ray the less,

Had half impaired the nameless grace

Which waves in every raven tress;

Or softly lightens o'er her face;

Where thoughts serenely sweet express

How pure, how dear their dwelling place.

And on that cheek, and o'er that brow,

So soft, so calm, yet eloquent,

The smiles that win, the tints that glow,

But tell of days in goodness spent,

A mind at peace with all below,

A heart whose love is innocent.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사랑은 가슴 속에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정신을 쓰면 가슴이 헐고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도 때로는 쉬어야 하니.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 빨리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A-Roving

- George Gordon, Lord Byron 


So, we'll go no more a-roving

So late into the night,

Though the heart be still as loving,

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For the sword outwears its sheath,

And the soul wears out the breast, 

And the heart must pause to breathe,

And love itself have rest.

Though the night was made for loving,

And the day returns too soon,

Yet we'll go no more a-roving

By the light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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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현대시의 흐름/바이런시인 시모음 2015-07-09 0 5216
631 <<死愛>> 2015-07-09 0 4832
630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2015-07-09 0 5241
629 그 누구나 시의 전파자가 되는 날을 위하여... 2015-07-08 0 4074
628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인 2015-07-06 0 4305
627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2015-07-06 0 4116
626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국민시인" 2015-07-05 0 4763
625 윤동주와 정지용, 리륙사와 로신 // <<향수>>와 <<추억>> 2015-07-04 0 6097
624 두 시인의 마음속 "고향"은...? 2015-07-04 0 4171
623 다시 알아보는 시인 백석 2015-07-04 0 4316
622 <소주> 시모음 / 김소월시인과 담배, 술, 진달래꽃 2015-07-04 0 5198
621 포스트/모더니즘시론의 력사 2015-07-04 0 4361
620 2015년 7월 4일자 한국 중앙일보 윤동주 시한편 등고해설 2015-07-04 0 4416
619 다시 알아보는 시인 조기천 2015-07-03 0 4887
618 전쟁과 화폐살포작전 / 짧은 시 모음 2015-07-03 0 5035
617 항상 취해 있으라... 2015-07-03 0 4417
616 <지렁이> 시모음 2015-07-01 0 4541
615 미친 시문학도와 싸구려 커피 2015-06-30 0 4331
614 체 게바라 시모음 2015-06-28 0 4532
613 파블로 네루다 시모음 2015-06-28 0 4464
612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시모음 2015-06-27 0 4924
611 <夏至> 시모음 2015-06-22 0 4213
610 시를 설사하듯 쓰기와 시를 느린보로 쓰기와 좋은 시 다섯편 남기기 2015-06-22 0 4686
609 연변 작가계렬 취재 1 2015-06-22 0 4478
608 다시 읽는 우리 문학 2 2015-06-22 0 4781
607 다시 읽는 우리 문학 1 2015-06-22 0 4238
606 리임원 시집 출간 2015-06-21 0 4104
605 李仁老 漢詩 2015-06-20 0 6388
604 녀성詩 어디까지 왔나ㅠ... 2015-06-19 0 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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