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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시 어디까지 왔나 1920년대 金明淳 시인 이후 김남조·문정희 시의 이해 함께
한택수
1. 한국 문단의 1세대 여성 김명순
한국 최초의 여성소설가이며 여성시인은 김명순(金明淳, 1896∼1951)입니다. 그녀는 1917년 22세에 소설가로 등단했고, 1925년엔 시집 『생명의 과실』을 펴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첫 여성 시집이 됩니다. 이후 그녀는 창작시, 번역시,소설, 산문, 희곡 등 대단한 분량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그녀와 비교되는 여인으로 평론가와 수필가 김원주(金元周, 一葉), 화가 나혜석(羅蕙錫)을 자주 꼽습니다. 이 세 여성은 모두 일제 말 암흑기에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주창한 당대의 ‘신여성(新女性)’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 등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요구한 선구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봉건적 가치관에 대한 도전은 문단의 냉대와 세상의 조롱을 받았고, 끝내 비참한 삶을 마감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여성문학은 오랫동안 ‘여류(女流)’, ‘여류문학(女流文學)’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문학에도 자유와 민주의 사상적 정착과 함께 여성문학도 여성성(feminity)의 자각과 ‘페미니즘 문학’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습니다. 이제 여성 문인들은 문단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되레 남성 작가들보다 더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여성 시단의 한 표정(表情), 최영미
# 최영미(崔泳美 1961∼ ). 1992년 『창작과비평지』(誌)로 등단,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 『꿈의 페달을 밟고』(1998), 『돼지들에게』(2005)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엉큼 떨지 않는 서울내기 여성시인으로, 1980년대 운동권의 시대를 마감하고 자신이 느꼈던 사랑과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茶와 同情
최영미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 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 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 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3. 김남조·문정희 시의 이해
# 김남조(金南祚, 1927∼ ) 시인은 우리 여성 시단의 가장 웃어른의 한 분입니다. 굳이 여성 시단이라 할 것 없이 우리 시단의 큰 어른이지요. 1950년,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던 해이면서 6·25 동란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던 그해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고,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상자(上梓)했습니다.이후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 의식을 강조하는 시를 써왔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단의 기틀을 마련한 분으로 평가됩니다.
첫 시집 『목숨』 이후 『나아드의 향유(香油)』, 『정념의 기(旗)』, 『겨울 바다』, 『사랑초서(草書)』 등의 시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30여 권이 넘는 시집을 출판, 다작(多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음의 아픔과 희열을 섞어 마시는 잔(盞)이 곧 시”(자작시 해설「나의 시적 진실」)라는 김 시인입니다.
想思
金南祚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삿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 번 만 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평생 골수에 전화 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 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그대 세월
그대 헐벗었던 유년기 전란의 소년기 돌을 져 나르던 청년기 불과 얼음이 번갈아 손을 잡던 형벌의 긴 장년기 그 풍진 다하여 마침내 보통 날씨 그대 初老
그러나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모든 세월에 허리 굽혀 절하는 여자 하나 있잖니
# 문정희(文貞姬, 1947∼ )시인은 조숙한 시적 출발로 문단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명여고 재학 시절 전국의 백일장 대회를 휩쓸었으며, 이에 힘입어 당시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발문을 실은 첫 시집을 간행,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시적 재기(才氣)를 조로(早老)에 파묻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열기로 활기차게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1969년 『월간문학』을 통해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편 그녀는 40여 년 간 십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 시극집 등을 펴냈고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및 레바논의 나지 나만(Naji Naaman) 문학상, 스웨덴의 시카다 상(賞) 등을 수상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시세계는 건강한 여성성이 자각하는 삶의 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타락한 현실을 질타하면서, 순수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을 시로써 펼칩니다. 특히 잘 짜낸 시적 구조(構造, structure)는 본받을 만 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탯줄
文貞姬
대학병원 분만실 의자는 Y자였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새끼 밴 짐승으로 두 다리를 벌리고 하늘 향해 누웠다
성스러운 순간이라 말하지 마라 하늘이 뒤집히는 날카로운 공포 이빨 사이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불인두로 생살 찢기었다
드디어 내 속에서 내가 분리되었다 생명과 생명이 되었다
두 생명 사이에는 지상의 가위로는 자를 수 없는 긴 탯줄이 이어져 있었다
가장 처음이자 가장 오래인 땅 위의 끈 이보다 확실하고 질긴 이름을 사람의 일로는 더 만들지 못하리라
얼마 후 환속한 성자처럼 피 냄새나는 분만실을 한 에미와 새끼가 어기적거리며 걸어나왔다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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