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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기법
2015년 06월 12일 21시 41분  조회:408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적 기법과 서정성

한국 현대시 가운데 민중시가 민중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민중의 삶의 현실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면, 시 정신 자체를 개인적 정서에 근거하여 새롭게 확립하고자 노력을 기울여온 시인들도 적지 않다. 시적 언어와 대상에 대한 인식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황동규, 정현종, 김영태, 오규원, 이승훈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시의 서정적 전통에 집중하면서 일상적 삶의 모순을 시를 통해 규명하고자 하는 정진규, 오세영, 김종해, 이건청, 이수익 등의 시적 성과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후란, 허영자, 유안진, 신달자, 김초혜, 문정희, 김승희 등의 여성 시인들에 의해 한국의 현대시가 그 감수성의 세련을 기할 수 있게 된 점도 주목된다. 이들의 시적 작업은 때로는 순수주의로 비판되기도 하고 때로는 관념적 현학취향으로 지적되기도 하였지만,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인간의 존재와 그 본질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시에서는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왜곡된 언어에 의해 그려지기도 하며,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고양된 정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도시적인 것, 문명적인 것들이 지니는 비인간적인 요소는 대부분 이들의 시에서 기지의 언어로 매도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지 않으며, 언어의 베일을 통한 감정의 은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황동규의 초기 시들은 첫 시집 「어떤 개인 날」(1961)과 둘째 시집 「비가」(1965)를 통해 정리되고 있다. 이들 시집에 수록된 「시월」이나 「즐거운 편지」 등과 같은 작품은 그리움과 기다림이 담긴 적막하고 쓸쓸한 내면풍경을 담고 있다. 그리고 「비가」를 통해 우울한 내면세계의 묘사에서 현실의 고뇌를 껴안으려는 정열을 드러낸다. 방황하는 자, 혹은 내몰린 자의 언어를 통해 자아와 현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시인이 구체적인 현실세계로 그의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황동규는 김영태, 마종기와 함께 「평균율」이라는 공동시집을 몇 차례 묶어내면서 시적 세계의 내면공간을 외부적인 현실로 확대하고 있다. 그의 시는 자아와 현실 사이의 갈등,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 등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상상력을 발동한다. 그의 시 「태평가」를 비롯해 「삼남에 내리는 눈」, 「열하일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감정을 통어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반어적 울림으로 드러난다. 그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1975)을 보면,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는 모순어법을 통해 상황적 문제성을 극명하게 제시하는 여러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가 즐겨 활용하고 있는 언어의 패러독스가 극적으로 현실과 대면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인 폭력과 그 무자비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접근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정치적 폭력이 어떻게 한 인간의 순수한 꿈과 사랑을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꿈과 사랑이 성립될 수 없는 냉혹한 현실과 어둠의 세계를 시적 정황으로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황동규는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풍장」(1984), 「견딜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1988) 등을 발간하면서 현실의 문제보다는 본질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내놓은 절창의 노래가 연작시 「풍장」이다. 이 시에서 황동규는 역사와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서 그 역사와 현실 인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간의 시학을 창조하고 있다. 「풍장」은 죽음에 대한 명상을 노래한다. 시인은 죽음에 대한 시적 체험을 통해 삶의 무게를 덜고 삶과 죽음이 적대적 요소가 아님을 확인한다. 이 연작시는 세속의 옷을 벗고 한없이 자유롭고 가벼워지려는 시인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시어로 육체를 탈속시킨 정신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정신적 경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남다른 숙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풍장」은 시간의 멈춤, 또는 시간의 감각 자체를 뛰어넘는 긴장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삶도 초월하고 죽음도 벗어난다. 이 몰아의 경지는 황동규의 시가 추구하고 있는 궁극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무위의 자연과 그 자연의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은 「풍장」 이후에도 시집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현종은 첫 시집 「사물의 꿈」(1972)에서부터 사물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유추론적 의미의 연관을 언어를 통해 포착하는 데에 몰두한다. 그는 사물의 다양한 형상과 움직임과 그 존재의 의미를 상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낮은 것과 높은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등의 이미지의 충돌이 그의 시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이미지의 긴장관계는 사물의 세계와 정신의 현상이 서로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시인의 언어적 횡포는 아니다. 그의 시는 존재하는 사물과 그것을 지향하는 의식이 이미지의 언어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집 「나는 별아저씨」(1978)에서는 역동적인 이미지들이 더욱 복잡하게 얽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그것들은 때때로 대상을 왜곡시키고, 바로 그 왜곡된 대상으로 인하여 시적 자아의 형상을 왜곡시킨다. 현실에 대한 발언들이 함의적으로 담겨지기도 하지만, 이미지는 더욱 생동한다. 정현종은 언어의 개념이 가지는 자의적인 의미와 그 횡포를 거부한다. 그는 언어로 지시되는 관념을 거부하기 위해 오히려 이미지의 구체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현종은 제3시집인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를 고비로 하여 현실과 꿈의 갈등보다는 생명현상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감을 노래하면서 갈등보다는 화해의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관심의 변화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 「자」는 문명과 인공이 인간을 억압하는 반면, 자연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임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오세영은 첫 시집 「반란하는 빛」(1970)에서부터 사물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보여주면서 시적 서정성의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자신의 개성을 가꾸어온 시인이다. 그는 전통적인 시적 정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도시적 감각도 살려내고, 체험에 바탕을 둔 삶의 진실을 시의 세계에 포괄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시가 펼쳐보이는 개인적인 서정의 세계는 세속의 생활감정에서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고아한 정신의 상태까지 폭이 넓다. 오세영은 시집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2)를 내면서 초기시의 모더니즘적인 감각을 벗어나고 있다. 1970년대의 정치적인 격동과 혼란한 사회현실을 통과하면서 그의 시들은 일상성에 대한 관심으로 인식의 폭이 확대되고 있으며, 삶의 본질을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논리적인 사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현상과 그 본질을 인식하는 방법의 깊이를 뜻한다. 철학적이라는 말은 오히려 종교적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물은 결국 그것이 만들어진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평범한 종교적인 회귀의 원리가 오세영의 시에서 빛을 발한다. 모든 사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일원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 시인의 언어가 모순의 어법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세영은 연작시 「무명연시」(1986)에서 불교적인 ‘무명’의 주제에 매달리면서 더욱 종교적인 사색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그의 깨달음의 길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일상의 현실과 부딪치고 있는 모습은 시집 「불타는 물」(1988)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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