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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 "괴짜시인 - 김관식"
2015년 10월 03일 22시 45분  조회:4343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며 시 1천 수를 줄줄 외웠던 김관식은 한학에도 밝아 시의 세계가 깊고 그윽하다는 평을 들었다. 육당 최남선이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김관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다. 1968년에는 ‘사서삼경’ 중 가장 어렵다는 《서경》을 완역 출판했다. 한학자로서 뛰어난 한문 실력을 발휘했던 김관식은 문단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 시인"으로 통했다.

 

김관식은 17세 때 《현대문학》 추천을 받기 위해 미당 서정주의 집에 드나들었다. 어느 날 미당의 처제 방옥례를 본 김관식은 첫눈에 반해 청혼한다. 은행원이었던 방옥례는 처음에 김관식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3년 동안의 끈질긴 구애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라는 협박에 못 이겨 결혼에 응한다. 1954년 1월 1일 최남선의 주례로 부부가 됐을 때 김관식은 스물, 방옥례는 스물넷이었다.

 

김관식은 스무 살 때부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다른 과목은 모두 낙제점이던 학생에게 그가 가르치던 국어 점수만은 99점을 준 적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교장이 그를 불러 이유를 따지고 선생의 자율적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자 그는 말없이 학교 앞 텃밭으로 가서 무를 몇 개 뽑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이윽고 크게 취한 김관식은 교장실로 주저 없이 걸어가 교장이 집무하는 탁자 위에다 구토물을 쏟아 놓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일찍이 내 양심에 벗어나는 일을 나는 한 적이 없소. 그런 나에게 이런 모욕을…….” 기가 질린 교장은 이후 김관식의 결정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무를 안주 삼은 이유는 그걸 먹고 토하면 냄새가 아주 지독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란다.

 

김관식은 자신의 나이를 열 살이나 올려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쓴 책의 약력 소개란에도 그는 1934년인 출생연도를 1924년이라 적었다. 그는 당시 문단에서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는 평론가 조연현과 백철 등에게 반말을 쓴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1960년대 초반 월탄 박종화가 참가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월탄의 축사가 길어지자 “어이, 박 군 자네 이야기가 너무 길어. 나도 한마디 하겠으니 이제 그만 내려오지.”라고 큰 소리로 외쳐 시상식장을 일순간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게 한 일은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후배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존칭을 썼고, 자신이 가난한데도 더 가난한 후배 시인들을 챙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신경림 시인이 《못난 놈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에서 밝힌 김관식의 일화도 흥미롭다.

 

“내가 김관식 시인을 따라다니다가 아주 난처한 꼴을 당한 일이 한 번 더 있다. 서울서 맞는 첫 설이었다. 역시 그날은 내가 그를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침 잘 왔다면서 함께 세배를 가자고 했다.

 

첫 행선지를 조지훈 시인 댁으로 정한 것도 그였다. ‘미당 선생은 내 형님이지만 첫 세배를 미당한테야 할 수 없지. 지훈 선생한테 먼저 가야지.’ 한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본디 지조를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쳤던 터였다. 이렇게 해서 성북동의 지훈 시인 댁에 가서 밤늦도록 술을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마포의 서정주 시인 댁으로 옮겨 가기 위해서 나와 보니 눈이 발목을 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그는 양말 발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신을 벗었는데 아직도 택시 속이구먼.’ 택시를 타면서 신을 눈 위에 벗어 놓고 올라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당 댁에 세배를 드리고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는데 김 시인이 양말이 젖은 이유를 설명하자 미당이 술 좀 작작하라고 타일렀던 것 같다. 이 말에 비위가 상한 그가 삐딱하게 나갔다. ‘첫 세배를 형님한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행적으로 보아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지훈 선생한테 먼저 세배하고 오는 길입니다.’ 막걸리가 담긴 술 주전자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갈겼다. ‘이놈을 당장 개똥 떠다 버리듯 삽으로 떠다 버리거라.’ 미당은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내게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미친놈 따라다니다가는 똑같은 미친놈 되니까 저런 놈은 아예 상종을 말게.’ 그래도 미당이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해 여름 나는 그의 집에서 나와 시장 가까이에 사글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동부인해서 닭이나 과일을 사 들고 병석에 누워 있는 김관식 시인을 찾아가는 미당을 두어 번 본 일이 있다.”

 

술로 병을 얻은
김관식은
1970년 8월 30일,
서른일곱의 나이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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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유명한 일화중에 하나지만... 그는... 그 시대에 대항할수 없는 

권위에 항상 안티하게 나가는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런 

대단한 분이였죠.. 그러나 그는 그런 말과 행동에서만 그런것이 아닙니 

다. 지금도 `시경(詩經)`의 번역판 텍스트로도 쓰이고 가장 번역이 

잘된 책중에 하나인 현암사판 `詩經`의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그 `詩經`은 2년여에 걸쳐 번역되었고 그 당시 원고료로 2채의 집을 

살수 있는 금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그는 실력 또한 그 어떤 문인보다 뛰어났었던 인물입니다.. 

결국 그는..그의 실력에 대변하는 자신감과 자만감을 가져있었던것이죠. 

그의 시를 뒤로 한체...이야기를 끝을 냅니다.. 


새파란 하늘 피로 물든 햇무리 

미쳐서 지랄났나 울고 가는 구름아 

짓밟힌 내 청춘의 슬픈 사연이길래 

언덕배기에 올라서서 중얼거린다....(``황토현에서`` 첫 연) 


바위야 바위야 눌러라 

황소 같은 바위야 

천근 같은 무게로 

네가 아무리 눌러도 

죽순은 뾰족뾰족 

자꾸만 자꾸만 솟더라....(``풍요조`` 전문) 

-------------------------------------

"대한민국(大韓民國) 김관식(金冠植)"명함에 그렇게 새기고 다니던 시인 김관식(1934~1970)이 4.19 직후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다는 소문이 문단에 파다하게 퍼졌다.

어떤 사람은 껄껄 웃으며 김관식답다고 했고,어떤 사람은 무슨 돼먹지 못한 망발이냐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하늘을 찌르는 자만심과 호방한 기개에 넘쳐있던 26세의 김관식은 서울 용산구에 출마했다.

상대는 민주당 신파의 거물인 장면(張勉)이었다.

결과는 자명하였다.

김관식은 떨어졌고 선거를 치르느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남김없이 털어먹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기와 술과 기행(奇行)뿐이었다.

지금은 연립주택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지이지만 당시에는 그 일대가 능금이며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던 과수원과 잡목들이 우거진 채 방치된 주인 없는 땅이었다.

시인의 눈에 저 귀한 땅을 쓸데없이 놀리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시인은 그 국유지에 목수와 인부들을 동원해 여러 채의 집을 한꺼번에짓기 시작했다.

판잣집은 한나절에 한 채씩 생겨났다.

무허가 불법가옥이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구청 직원들에 의해 그 판잣집들은 철거되었다.

김관식은 이튿날 다시 목수와 인부를 동원해 집을 지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고 십여 채의 집을 지었다.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하지 않는 겸허한 산"에 시인들만 사는 마을을 건설하고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살려 했던 것이다.

한때 황명걸.조태일 같은 시인들이 실제로 시인이 지은 집에 살기도 했다.

"산에 가 살래./팔밭을 일궈 곡식(穀食)도 심구고/질그릇이나 구워 먹고/가끔,날씨 청명(淸明)하면 동해(東海)에 나가/물고기 몇 놈 데리고 오고/작록(爵祿)도 싫으니 산에 가 살래."("거산호(居山好).1") 시인의 삶은 고달팠다.

"가난! 가난! 가난 아니면/고생! 고생! 고생이랬다" 낮거미가 집을 짓는 홍은동산비탈의 누옥 바람벽에는 썩은 새끼에 시래기 두어 타래가 내걸린 채 바람에흔들렸다.

끼니마다 감자를 삶아 먹고,호랑이표 시멘트 종이로 도배를 한 방에서 한미간의우정과 신뢰의 악수 문양이 새겨진 밀가루 포대로 호청을 한 이불을 덮는 누추한 삶이지만,"화옥(華屋)에 고차(高車).금의(錦衣).옥식(玉食)을 꿈에도 기루어하지를 않았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게으르게 일어나 조로에 물을담뿍 퍼 들고 텃밭에 심은 상치 쑥갓 아욱들에 물을 주었다.

그가 꿈꾼 것은 여름 저녁때 생모시 옷고름 고의적삼 바람에 합죽선으로 해를가리고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는 청빈낙도의 삶이다.

그런 청심과욕(淸心寡慾)으로 하루 세끼의 끼니에 자족하는 삶을 두고 "왕(王).후(候).장(將).상(相)이 부럽지 않고 백악관(白堊館) 청와대(靑瓦臺) 주어도 싫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서울상고(지금의 경기상고)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기도 하고 세계일보의 논설위원직에도 있었으나,그의 파천황(破天荒)적인 기행과 면모를 오래 참고 받아줄 직장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인 장기영이 축사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뒤늦게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나타낸 김관식은 씩씩하게 장기영 앞으로 나서며 그를 밀쳐냈다.

"자네는 그만 하게.내가 할 말이 좀 있으니까."라고 말문을 연 그는 직정적인 육두문자를 펼쳐냈다.

그는 낭인이 되어 문단의 이러저러한 술자리나 출판기념회 따위를 누비고 다니며 도발과 공격을 일삼고 종횡무진으로 오연한 자긍심과 호방한 기개를 뽐냈다.

그는 가난했으나 거기에 주눅들어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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