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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 우리 시인이여 - 독자들을 다시 시앞에 모이게 하는 비법...
2015년 10월 20일 22시 11분  조회:447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여, 우리 시인이여

                                                                                                         임 동 윤(시인)

 

1

시가 짧은 형식의 언어예술이라고 한다면 시를 언어의 정수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따라서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며 나아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동물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또한 시의 효용성을 놓고 볼 때, 시 한 편이 우리 삶에 있어서 즐거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준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시가 널리 수용되거나 회자되지 못하고 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왜 그럴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의 홍수 속에서 <좋은 시>를 만나지 못하는 데 그 큰 까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 기준은 무엇일까? 시를 구별하는 눈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의 구분은 참으로 어렵다. 이것도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시를 읽을 때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이나 경험에 근거하여, 다시 말해 자신의 연상이나 기억에 의지하여 때때로 과도한 반응을 보여 <좋은 시>, <훌륭한 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온당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문맥 속에서의 ‘언어 조직에 얼마나 충실을 도모했는가?’ 하는 점에서 시를 평가하는 기본으로 삼아야 온당하리라고 본다.

 

 

가끔 나더러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곤혹스럽다. 하지만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도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다시 되물어온다. ‘시가 돈이 되고 밥이 되느냐?’고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또 대답한다. ‘내 정신의 밥이 곧 시’라고 말이다. 그렇다. 하얀 쌀밥은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는 ‘정신을 살찌우는 나의 밥’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가슴에 넣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가는 시인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좋은 시를 가슴에 품고 평생을 그 향기에 취해 풍요롭게 살아가는 시인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볼 때, 시를 쓰는 행위는 어쩌면 구원의 한 의식인지도 모르겠다. 한 끼 밥은 굶을 수 있어도 시인에겐, 정신의 허기는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시가 없는 삶이란 시인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밥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로써 ‘배가 부르는 시인’은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시 한 편을 쓰고, 또 어렵게 시집 한 권 내보아야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 또한 명예나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이 스스로 시 짓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아예 다른 길로 가야지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피나는 노력 없이, 좋은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버려야만 할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좋은 글은 피의 여로를 거쳐야 하며, 피로 쓴 글만이 진실하다.’ 고 말한바 있다. 그리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플로베르도 글 쓰기의 어려움을 가리켜, ‘내 심장과 두뇌를 짜서 그걸 고갈시키는 과정이며, 한 마디의 말을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 내 머리를 쥐어짰다.’ 라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글 쓰기가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걸 나타내는 말들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나는 과연 피의 여로를 거쳤을까? 내 심장과 두뇌를 쥐어짜서 토로하는 과정을 얼마나 거쳤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그만 말문이 콱 막힌다. 나름대로는 많은 밤을 피 흘리는 것처럼 지샌 적도 있고 또 실제 수많은 파지를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파지를 만든다는 게 어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렇게 해서 겨우 겨우 만든 한 편의 시, 그 시를 만나기 위해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시는 피를 짜내는 고통이 있어야만 탄생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위대한 시, 훌륭한 시, 좋은 시가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어떤 시를 몇 편 만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시를 쓰느냐가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쓰는 일이 많아졌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모니터의 깜박이는 커서가 ‘빨리 써, 빨리!’ 하고 나를 막 보채곤 한다. 그러나 시의 첫 행조차 쉽게 시작할 수 없어서 나는 늘 막막하고 불안하다. 어쩌면 저 아득히 높은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허물 벗는 고통 없이 어찌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시에 대해서 치열해지자고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치열함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동시에 정신의 밥을 제공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잘 산다는 것은, 우리 시인에겐 시로 된 정신의 밥을 제대로 먹으면서 살아야 비로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 편의 감동을 주는 시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시를 쓴 시인의 아픈 삶이 그대로 녹아있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가슴으로 쓴 시, 즉 시의 진정성이 곧 감동으로 연결된다고 나는 굳게 믿어보는 것이다.

 

 

2

시인은 많다. 그래서 그 시인의 숫자만큼 시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시 앞에서 두려움과 외경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의 반영’이라는 추측도 가능해 진다. 자신의 감수성은 뒷전으로 돌려놓고 대세와 풍문과 눈치에 의존하여 시를 창작한다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요즘 시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독자들은 말한다.

정말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좋지 않은 시>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렵다고 토로할 것이다. 시의 역사도 피라미드와 같다. 먼저 태어난 작품을 딛고 후대 작품이 올라서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대충대충 마무리짓고 건성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다면 이는 부단히 경계해야할 일이다. 언어에 대한 엄밀성은 우리 시인이 가꾸어야 할 첫 번째 기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 이러한 시는 어떠한 웅변보다도, 어떤 대화보다도 심금을 흔들 수 있는 예술, 문학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시를 통하여 경험을 얻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바르게 쓰고 또 이해하도록 해야만 한다.

 

이 글을 맺으면서 아래의 몇 가지 말들을 나 자신과 시를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좋은 시를 쓰려면 아래의 몇 가지를 늘 염두에 두고 그것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자고 말이다. 이를 지키는 일이 <좋은 시>를 쓰는 첫 번째 비결이요, 독자들을 다시 시 앞으로 모이게 하는 최첨단 비법이기 때문이다.

 

 

[아래]

 

첫째, 시의 언어에서 되도록 관습적인 표현은 버리도록 합시다.

둘째,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념적인 언어의 사용도 자제하도록 합시다.

셋째, 비유와 상징, 새로운 상상력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합시다.

넷째, 시에서도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도입해 재미를 느끼도록 해봅시다.

다섯째, 시의 배열과 조화를 바둑의 포석처럼 치밀하게 짜봅시다.

여섯째, 시는 사실의 진술(설명)이 아니라 이미지(묘사를 통한)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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