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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碑의 喜悲쌍곡선
2015년 11월 13일 23시 21분  조회:455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비공원(詩碑公園) 유감’
살아있는 시인 시비는 세우지 않는게 불문율
문예부흥 예산은 좋은 작품 쓰는데 지원해야
[특별기고] 김원길 (시인·지례창작예술촌장)
 
  김원길(시인, 지례창작예술촌장) 
 

안동에 시비가 여럿 세워지고 있다. 5년 전(2010년) 안동 예총에서 기획하여 안동예술의 전당 뒤 벚꽃 길에 우리 고장 출신 시인들의 시비를 1년에 하나씩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학의 거리를 만든다는 취지이다. 예산은 예총이 안동시로부터 받아서 안동문협이 주관하여 시인을 선정하고 공사를 시행하고 예산을 집행하여 왔다. 

선정 기준은 안동출신 현대시인 중에 작고한 분을 우선하며 생존한 분이라도 문학적 성과를 자타가 인정하는 분을 안동문협이 추천하여 결정하여 왔다. 첫 해엔 이육사, 둘째 해엔 권정생, 셋째 해엔 김종길, 그리고 한 해 건너 올 해엔 유안진의 시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이육사와 권정생은 작고한 분이고 김종길과 유안진은 생존한 분이지만 문학적 업적과 나이로 보아 자격에 이론이 없었다. 

원래 시비는 시인이 살아 있을 때 세우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생존한 사람의 묘비를 세우지 않듯이 당사자가 살아있을 경우엔 본인이 원하든 않든 간에 금석(金石)에 그 어떠한 것도 새겨선 안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왜냐하면 지은이가 나중에 그 글을 고치고 싶어도 금석에 새겨진 이상 다시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시인은 그의 시를 빗돌에 새기기 직전에 틀리게 쓴 걸 발견하고 가까스로 고쳤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걸 고치지 못한 채 빗돌을 세웠더라면 영원히 비난을 면할래야 면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책에 실린 글, 시화전에 낸 글, 도자기에 쓴 글은 그나마 없애거나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금석에 새긴 글을 지우거나 고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들이 나이가 많다하나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죽기 전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 시인이 노년에 불미스런 일로 세상에 비난을 살 일을 한다면 그의 시비는 쳐다보기도 싫은 애물단지가 되고 그 시비를 세운 사람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작품이 우수하여 자타가 흡족해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본인도 만인이 쳐다보는 자리에 어줍지 못한 시비를 세워 놓고 부끄러워서 어떻게 그 거리를 지나다닐 것인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시비를 세우고 있음을 본다. ‘언제부턴가’라는 말은 시비를 세운 자가 문인들 몰래 슬그머니 시비를 세웠기 때문이다. 누구는 자기 고향 마을 입구에, 누구는 자기 직장의 화단에 세운 것이 뒤늦게 알려져 비난이 비등했다. 왜냐하면 거기 새겨져 있는 시가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시에 감동하여 베끼거나 사진을 찍어 가는 정도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왜 돈 들여 시비를 세워 놓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구설에 오르내려야 하나? 

유명해지고 싶으면 사랑 받고 존경 받을 일을 해야지 빗돌 세우기를 먼저 한다고 대단한 인물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특히 안동은 예로부터 나 잘난 척하지 않기로 이름난 곳이 아닌가? 

전라도에 가면 시비공원이라는 게 있다. 지역 출신 시인들을 생사불문하고 총망라해서 갖가지 모양의 돌과 글씨로 시비를 세워 두고 관광객에게 구경 시키고자 지자체가 조성한 공원이다. 나는 가끔 전라도엘 가면 가람이나 석정이나 미당의 시비를 보러 가긴 했어도 시비공원에는 가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거긴 아직 설익은 작품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 시인의 시비가 있다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 갈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이런 사업이 성공하려면 일단 거기 새겨진 시가 좋아야하고 그 시인이 존경 받는 인사여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다수의 호응이 있어야하고 엄격한 심사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국은 유명하지 않은 시인의 시비도 예산이 있다고 해서 꼭 세워야 하나? 작품이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외면할 게 뻔한 작품도 시민의 세금으로 빗돌에 새겨서 세워야하나? 시민의 세금으로 시비를 세우는 것이니 시의회의 동의 여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문학의 성공은 좋은 작품,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데 있는 것이지 시비가 서 있느냐 아니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할 것이다. 문인의 약력을 보라. 몇 년도에 무슨 책, 무슨 작품을 썼는가는 기록 되어도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없고는 약력에 올린 걸 보지 못했다. 문학의 성공여부는 작가가 죽고 최소한 50년 후에 후인들이 그의 작품을 기리느냐 않느냐에 맡겨 놓아야한다. 만약 후인들이 선배의 시비를 세우고자 할 때 그가 생전에 손수 자기 시비를 세운 사람이라면 무엇하러 또 세워 줄 것인가? 

우리 선배 문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매문과 매명이었다. 돈을 받고 유력자를 미화하여 자서전 써 주는 것, 글은 안 쓰고 감투만 좇아 날밤을 새우는 것들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글은 뒷전이고 문학단체의 장이 되고자하는 사람, 작품 한 편 안 쓰면서 문예지를 발행하여 신인을 모집하여 예비문인을 상대로 책장사하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런 자들은 거개가 돈도 벌고 이름도 날렸지만 작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들 시인이 참으로 중시해야할 것은 시집의 출판이어야 한다. 8백만 원으로 한 편의 시를 돌에 새기기보다 죽기 전에 그만한 돈으로 시 전집을 내는 게 중요하다. 변변한 작품 하나 없는 사람이 자기 시비를 세우려고 안달하는 꼴은 목불인견이다. 시인이 훌륭하면 후인들이 그를 기려서 언젠가 세워 주게 마련 아닌가! 
 

   
△김원길(시인,지례창작예술촌장)

지방자치단체는 시집 출판보다 시비공원을 만드는 게 전시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문인을 이용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사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문예부흥 정책은 그 예산으로 문인이 좋은 작품을 쓰고, 죽기 전에 전집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속적 허영으로 말미암아 이름을 외려 망치는, 타락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당국이 문인들의 동의 없이 자기 판단으로 수준 미달의 작품으로 시비공원을 만들면 돈이 있는 시인은 자비로 자기 시비를 여기저기 세워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 뻔하다. 당국은 도시미관을 위해 이의 난립을 방지하는 조례를 만들고 꼴불견의 빗돌을 철거하는 예산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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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단서 방향 제시해야”



...
...커버스토리 ‘시비에 시비 걸다’. 


지난 두 주간 기자의 휴대폰은 모처럼 ‘진통’을 앓았다. 격려성 전화부터 항의성 전화까지 다양한 반응이 밀어닥쳤다. ‘시비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같다’ ‘특정 시인을 너무 겨냥했다’ ‘시가 안 되면 시비만 세우면 되겠네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우리 시단의 고질적 병폐를 지역 언론에서 시의적절하게 잘 지적했다’ 등이다. 

박해수 시인이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커버스토리 35면 메인 기사 표제에 자신의 이름이 거명됐고, 마치 자신이 시비난립의 장본인인 것처럼 보도됐는데 명예훼손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정 모 시인은 자신도 생존 시인의 시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자신이 마치 문단권력에 서 있고,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항의 e메일을 보내왔다. 

소설가 한승원씨가 자신의 고향인 전남 장흥군에 무려 30기의 시비를 세운 것과 ‘섬진강’이란 시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까지 섬진강변에 10기의 시비를 세운 걸 보고 모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시인은 이와 관련해 “그런 시비는 정식 시비라기보다는 문학적 조형물에 불과한데 그것까지 세우지 말라고 하는 건 뭣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청송 출신의 정 모 시조시인의 시비와 관련해 ‘너무 서둘렀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한 시인은 “한때 진보문학운동을 했던 그의 아들이 적극 부친의 생존 시비 건립을 만류하는 게 올바른 처사였다”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설주 시인의 추모시비와 관련해 모 시인은 “달서구 월광수변공원의 시비까지는 이해해도 최근 금호강변 시비 건립 추진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평화뉴스의 모 기자는 “이젠 고발성 기사만으로는 시인들이 반성을 하지 않으니 차리리 생존시인 시비건립 반대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난 뒤 특정 지역의 유명 생존 시인의 시비 철거 퍼포먼스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현재 지역 시단은 이 문제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특히 도동시비동산은 조형미뿐만 아니라 선정 기준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지역 시단이 적극 나서서 제대로 된 방향제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생각 같아선 희비쌍곡선을 긋는 다양한 시인의 반응을 실명으로 그대로 공개하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시인이 시비에 반감을 갖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구예총·대구문인협회·대구시인협회에선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도동시비동산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역시 관계자의 반응이 없다. 

부디 지역 문단이 시비에 대해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비 건립에 대한 원칙과 기준 제정에 지역 시인들이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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