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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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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詩, 詩人, 讀者...
2016년 01월 14일 03시 23분  조회:8809  추천:0  작성자: 죽림

20년대의 시 - 개인적 정서에 민족적 운율을 살린 풍부한 시가 쓰임
- 서구의 여러 문예 사조를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승화시킴
- 주요한의 <불놀이>,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동환의 <국경의 밤>, 변영로의 <논개>, 한용운의 <임의 침묵>
- 현대시조의 부흥 (시조부흥운동) : 이은상, 이병기
- 또 다른 특징은 경향시의 등장이다.
- 사회 모순과 개혁을 위한 진보적인 사상을 담은 참여시가 많이 쓰임
- 언어를 매우 거칠게 사용한 단점이 있는 반면, 시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④ 1930년대의 시 - 언어의 연마와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시의 깊이를 더함.
- 모더니즘 계열의 시 등장
- 정지용의 <고향>, 이상의 <오감도>,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서정주의 <자화상>, 이병기의 <난초>

⑤ 1940년대의 시 - 일제의 전쟁 도발로 인한 사회, 문화적 암흑기로 친일문학이 나오기도 함.
- 한편에서는 자연을 노래한 작품과 저항 문학도 꽃을 피웠다.
- 윤동주의 <참회록>, 이육사의 <절정>, 조지훈의 <승무>, 박두진의 <해>,

  • 1. 이야기가 있는 노래
    국경의 밤(김동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백석) 여승(백석)/ 여우난 곬족(백석)/ 고향(백석)/ 낡은집(이용악)/ 오랑캐꽃(이용악)
    2. 부정적 현실에 대한 체념과 절망의 노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남사당(노천명)/ 추일서정(김광균)/ 와사등(김광균)/ 목마와 숙녀(박인환)/ 바다와 나비(김기림)/ 나비의 여행(정한모)/ 슬픈 구도(신석정)/ 길(김소월)/ 봄은 간다(김억)
    3. 교훈과 설득의 노래
    무등을 보며(서정주)/ 설날 아침에(김종길)/ 해마다 봄이 되면(조병화)/ 산(김광섭)/ 설일(김남조)/ 흥부 부부상(박재삼)/ 안민가(충담사)/ 용비어천가 제 125장(정인지 등)/ 오륜가(주세붕)/훈민가(정철)
    4. 이데올로기의 혼란상을 반영한 작품
    울릉도(유치환)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휴전선(박봉우)/ 초토의 시8-적군묘지 앞에서(구상)/ 학(황순원)/ 광장(최인훈)/ 장마(윤흥길)/ 꽃덤불(신석정)
    5. 박두진의 기타 작품
    - 어서 너는 오너라 / 청산도/ 도봉/ 해
    6. 비장미를 노래한 작품들
    독을 차고(김영랑)/ 교목(이육사)/ 일월(유치환)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한용운)/ 독짓는 늙은이(황순원)
    7.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 꽃(김춘수)/ 능금(김춘수)/ 오렌지(신동집)
    8. 민중의 삶을 노래한 건강성
    풀(김수영)/ 벼(이성부)/ 농무(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9. 운명적 삶에 대한 순응(운명론적 사고)
    목계장터(신경림)/ 자화상(서정주)/ 규원가(허난설헌)/ 속미인곡(정철)/ 역마(김동리)/ 무녀도(김동리)/ 까치소리(김동리)/ 누항사(박인로)/ 청산별곡(작자 미상)
    10.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1-감정의 직서적 표출)
    공무도하가(백수광부의 처)/ 귀촉도(서정주)/ 초혼(김소월)
    11.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2-감정절제)
    은수저(김광균)/ 유리창(정지용)/ 하관(박목월)
    12. 사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3-슬픔의 초극과 종교적 승화)
    눈물(김현승)/ 제망매가(월명사)/이별가(박목월)
    13.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작품들
    황조가(유리왕)/ 가시리(작자 미상)/ 동동(작자 미상)/ 서경별곡(작자 미상)/ 송인(정지상)/ 어져 내 일이야(황진이)/ 아리랑(작자 미상)/ 진달래꽃(김소월)
    14. 안분지족을 노래한 작품들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 무등을 보며(서정주)/ 설날 아침에(김종길)/ 상춘곡(정극인)/ 누항사(박인로)/ 만흥(윤선도)/ 짚방석 내지 마라(한호)/ 어부사시사(윤선도)
    15. 종교적 깨달음과 절대자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작품들
    가을의 기도(김현승)/ 설일(김남조)/ 알 수 없어요(한용운)/ 겨울 바다(김남조)/ 눈길(고은)/ 동천(서정주)/ 승무(조지훈)/ 눈물(김현승)
    16. 유랑(방랑)의 삶을 노래한 작품들
    오랑캐꽃(이용악)/ 기항지1(황동규)/ 길(김소월)
    / 고향(정지용)/ 떠나가는 배(박용철)/ 고향 앞에서(오장환)/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이용악)

    17. 현실 극복 의지를 노래한 작품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김소월)/ 님의 침묵(한용운)
    18. 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
    신부(서정주)/ 귀촉도(서정주)/ 접동새(김소월)/ 정읍사(어느 행상인 아내)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목계정터(신경림)/ 석문(조지훈)/ 간(윤동주)
    19. 부정적 상황에 대한 초극 의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광야(이육사)/ 십자가(윤동주)/ 간(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윤동주)/ 절정(이육사)/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파초(김동명)
    20.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성탄제(김종길)/ 성북동 비둘기(김광섭)/ 새(박남수)/ 나비와 광장(김규동)/ 가을에(정한모)/ 생의 감각(김광섭)/ 종소리(박남수)/ 아침 이미지(박남수)
    그 외;
    * 가을의 이중적 의미와 종교적인 신의 섭리 + 고독: 가을의 기도(김현승)
    * 실현을 통한 삶의 성숙: 국화 옆에서(서정주)
    * 자연과의 조화와 사랑을 노래한 작품: 백구야 말 물어보자(김천택)
    *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다룬 작품: 가을에(정한모)
    *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 작품: 깃발(유치환)
    * 안빈낙도/빈이무원을 노래한 작품: 누항사(박인로)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 향수(정지용)/ 파초(김동명)
    * 전원적, 평화적인 작품: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신석정)
    * 아버지의 사랑 노래들: 가정(박목월),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 수능 출제 현대시 & 예상
    1994년 1차 - 산(김소월) 생명의 서(유치환) 폭포(김수영)
    1994년 2차 - 찬송(한용운) 석문(조지훈) 그의 행복을 기도드리는(신동엽)
    1995년 - 서시(윤동주) 바위(유치환)
    1996년 - 자야곡(이육사) 삼수갑산(김소월) 산(김광섭)
    1997년 - 이별가(박목월) 즐거운 편지(황동규)
    1998년 -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신석정) 별헤는 밤(윤동주)
    1999년 - 진달래꽃(김소월) 이육사(꽃)
    2000년 - 향수(정지용) 외인촌(김광균)
    2001년 - 봄비(이수복) 서시(윤동주) 귀촉도(서정주)
    나그네(박목월) 가지 않은 길(프로스트)
    2002년 - 가난한 사랑노래(신경림) 추억에서(박재삼) 그리움(이용악)
    2003년 -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내 마음을 아실 이(김영랑)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2004년 - 고향(백석) 내가 만난 이중섭(김춘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서정주)
    2005년 - 은행나무(곽재구) 낡은 집(이용악)
    ------------------------------------------------
    * 주의 깊게 봐 둘 시
    천상병 - 귀천 / 행복
    신동엽 - 봄은 / 산에 언덕에/ 껍데기는 가라
    박두진 - 향현 / 청산도 / 어서 너는 오너라.
    김춘수 - 꽃/ 꽃을 위한 서시(신동집- 오렌지)
    조지훈 - 석문(서정주, 신부) / 낙화
    이육사 - 교목 / 김영랑 - 독을 차고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 새봄
    김광규 - 상행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용택 - 섬진강
    김수영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박재삼 - 수정가
    황동규 - 풍장 / 몰운대행/ 기항지

    ////////////////////////////////////////////////////////
    1.민요시의 특징

 

민요시란 한마디로 민요를 지향하면서 씌어진 개인창작시라고 정의될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요시는 구비전승 되는 구비문학이 아니라 활자 매체를 통하여 교류 되는 것입니다.

둘째, 민요가 가사, 시조, 시가의 성격을 모두 띄고 있는 반면 민요시는 개인창작에 의한 시감나으로 성립이 된것입니다.

또, 민요시는 민요의 서민계층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로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현대시적인 특성과 더 나아가 서구적인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2.대표작품

 

1)김억의 민요시

 

버들기지

 

무심타 봄바람에

꽃은 팻다가

 

헛되이 그 바람에

지고 맙니다.

 

서럽지 안을까요

서관아가씨

 

오늘도 능라도다

버들개지는

 

물우를 혼자돌다

을허갑니다..

 

가엽지 안을가요

서관 서관 아가씨

 

2)주요한의 민요시

 

할미꽃

 

강건너 벌판에

할미꽃 핀다

벌건너 재넘어

할미꽃 핀다

볼처쳐 뿌리고간

소업은 우슴피어나

강건너 벌판에

쓴 냄새 퍼지는

할미꽃 사랑꽃

 

3)김소월의 민요시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듸는

끗끗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든 그 사람 이여

하랑하든 그 사람 이여

 

4)김동환의 민요시

 

적성을 손가락질 하며

 

불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오느니

회색하늘 속으로 눈이 퍼부슬때마디

눈속에 파뭇기는 하-면 북조선이 보이느니

 

3.모더니즘의 의미

 

모더니즘이란.

 

넓은 범위에서는 기존의 틀에 맞춰진 관습과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문화적 성향을 말하는 겁니다..

 

 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현대의.. 이란 뜻이기 때문에.. 어원적 의미로 이해하셔도 좋을것 같군요..

 

김기림 :  시집 <기상도> <태양의 풍속> 저서 <문학개론> <시의 이해>

 

정지용 : <정지용 시집>  

 

김 광균 : <와사등> <황혼가> <사랑가>

 

오장환 : <성벽>  <헌사>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4. 정지용의 시적 경향

 

1925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감각적인 이미지즘의 시,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 '구성동'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등으로 변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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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노래한다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체의 동일한 운명은 태어난 이상 마땅히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가장 보편적인 소재요 주제입니다. 제게 소설작법을 가르쳐주신 김동리 선생님은 "소설로 쓸 만한 소재가 없어 고민하는 학생은 '죽음'을 갖고 써보게. 우리에게 죽음만큼 친숙한 것은 없으니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텔레비전 뉴스나 조간신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보도하지 않는 날이 있던가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루를 살면서 하루를 죽이는, 즉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작품을 쓰다가 소재나 주제가 고갈되었다고 여겨지면 누군가의 죽음을 갖고 시를 써보십시오. 죽음이 아니면 탄생과 늙음과 질병 가운데 하나를 택해 써보셔도 좋겠습니다.

묘비들 사이로
아이가 달려온다

기억의 저편으로 아득히 건너간 생애들이
몇 줄 글자로 남아
무릎 키 세우고 있는 사이

네 살배기 아이가 무어라 소리치며
저쪽에서 뛰어 온다

Beloved Wife and Mother 1939-1980
이국 땅에서의 크고 작은 기쁨
설레임과 회한의 날들
꿈결같이 아득히 사라지고
조국 하늘 아래 한 여인의 평생은
한 줄 이국 글자 묘비명으로 남았는데

한 명의 딸과 의학박사란 칭호만이
한 남자의 사십 년 생애가 남긴 모든 것이어서
의·학·박·사
이름 위에 새겨놓은 네 글자
살아남은 자의 애달픈 마음
그 옆의 묘비는 전하는데

내가 지상에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풍경처럼
줄지어 선 비석들 넘어
딸아이가 온다
팔랑팔랑
꿈속 나비 같다

―김기중, [공원 묘지에서] 전문 현대시<200년 2월호>


김기중은 외국의 한 공원 묘지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사뭇 처연한 심사에 사로잡혀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시에 나타난 가족사는 이렇습니다. 한 남자가 40년을 살아 지상에 남겨놓은 것은 한 명의 딸과 의학박사란 호칭이 전부였습니다. 즉, 의학박사의 신분으로 외국의 묘지에 묻혔으니 한 남자의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공부가 차지한 세월이 거의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조국의 하늘 아래 남아 있던 아내의 '평생'이 남편의 묘비에 한 줄 이름으로 남게 되었을 뿐이니 그 감회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착잡한 감회가 마지막 연에 담겨 있습니다.
딸아이는 아마도 성묘하러 온, 죽은 이의 자식이겠지요. 줄지어 선 비석들, 즉 수많은 주검을 뛰어넘으며 가장 최근에 죽은 이의 한 점 혈육이 꿈속 나비같이 팔랑팔랑 옵니다. 사서 중 하나인 {장자}에는 장주가 꿈속에서 본 나비의 고사가 나옵니다. 장주가 꿈에서 호랑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호랑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물화(物化)'를 설명하는 고사가 생각납니다. 사람의 생이란 일장춘몽이며 남가일몽이란 말이 거짓이 아닙니다. 생에 아무리 집착한들 저승사자의 방문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것이며,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일 뿐일까요? 예술은, 시는 우리 목숨을 부활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사후에 우리가 써놓은 시를 읽고 누군가 감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는 영원 회귀를 꿈꾸는 것입니다.



8. 시는 문명비판을 지향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가장 강력한 시적 사조는 모더니즘이었습니다. 모더니즘이 표방하고 있는 정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명비판입니다. 영화는 기술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문명과 친화가 잘 이뤄지는데 문학은 이상하게도 문명하고는 좀처럼 어울리지를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며 오락의 기능을 다하는 컴퓨터를 갖고 쓴 시가 있습니다. 어언 10년 전 일이 되었는데, 러시아의 한 해커가 인터넷을 통해 시티뱅크에 침투해 1천만 달러를 훔쳐간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잘 다루면 복면을 하고 은행털이 강도로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의 10대 해커들이 뉴저지 공군기지의 한 연구소에 침투한 일이 발생, 미국 사회를 경악케 하기도 했고, 1997년 초에는 호주와 에스토니아의 해커들이 3만 통이 넘는 전자 메일을 쏟아 부어 버지니아 랭글리 공군기지의 컴퓨터 네트워크가 마비된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 전달이라는 약과 함께 시스템 파괴라는 병을 주는 것이 컴퓨터입니다. 컴퓨터가 사람의 머리와 손발을 대신하여 정보사회의 중요한 전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계에서는 '테크노 의존증' 혹은 '컴퓨터 중독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문명병이 등장하여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기기 자체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문제이지만 컴퓨터를 너무 오래 사용하는 바람에 시력장애·경근완 질환(목·어깨·팔에 통증이 오는 병)·두통·소화불량 등의 신체장애는 물론 대인기피증·광장공포증·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컴퓨터를 많이 다루는 현대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컴퓨터를 소재로 한 시를 젊은 시인들이 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 대다수는 사실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를 꺼야 잠자리에 들지 않습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이 기억력 나쁜
고물 PC를 새 걸로 바꾸기로 결심.
언젠가 PC 카탈로그에서 보았던
삼성 알라딘을 사리라 마음먹는다
내 글이 안 되는 건 순전히
도구가 용산 조립품 286AT이기 때문이라
밤마다 기도하며 써 보았지만
고매해야 할 내 시들은 언제나 날림 조립식인 걸
알라딘을 사야지!
그의 자판을 요술 램프처럼 살살 만져 주면
나만의 유능한 종이 나타나
내 명령어들을 충실히 실행할 것이다
넘치는 하드 용량,
풍만한 그의 언어는
이 미궁에서 나의 탈출을 도우리라
사실 이 느림보 286AT에도 요정이 있다
언젠가 치약으로 열심히 PC 본체를 닦다가
난 보고 말았다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하품을 켜며 기어 나오는
발이 안 보일 만큼 작은 바퀴벌레 새끼를,
나를 비웃으며 다시 제 집인 양 기어 들어가는
그 자식을 향해 재빨리 플로피 디스크를
몇 번이나 쑤셔 넣었다 뺐다 하며
압살을 노렸지만 디스크만 에러났던 기억.
가끔 모니터 속의 내 글 위로
그 바퀴들이 지나가지는 않을까,
그는 너무 두렵다
내가 잠든 사이 테트리스를 즐기고
어쩌면 이전에 헥사를 지우고,
가끔씩 바이러스를 먹이는 것도
그 요괴임에 난 짙은 혐의를 두었다
베네치아 워드게임에서
'바퀴벌레'란 단어가 내려와 나를 덮칠 때,
난 확신하였다
나의 체제는 이미 위협받고 있었다
놈은 밤마다 용량 작은 하드를 기웃거리며
내 글을 비웃을 거 아닌가?
무슨 시가 이래, 하면서도
내가 방심한 사이 내 연애시를 도용해
행여 또래 암컷들을 사귀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나의 신성한 작업실에서……
온갖 상스런 상상들이 아!
또 잡종의 새끼를 쳐서 손잡고 다니겠지
아, 나의 약한 정신은 이미 도굴되었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김창진, [알라딘을 사야 한다] 전문 <문학예술 1998년 여름호>

컴퓨터는 우리의 친구이자 원수이고 상관이자 부하입니다. 컴퓨터를 소재로 한 이 시를 유심히 읽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유능한 종'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천일야화} 속 유명한 이야기의 그 유능한 종이 알라딘이죠. 이 시에서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신형 컴퓨터의 제품명이 알라딘이므로 알라딘은 중의법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형과 구형의 차이가 아닙니다.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하품을 켜며 기어 나오는/발이 안 보일 만큼 작은 바퀴벌레 새끼들"에 대한 이해가 이 시를 이해하는 요체가 됩니다. 요정·바퀴벌레·요괴는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놈들은 시인이 잠든 사이 테트리스를 즐기고, 가끔씩 바이러스를 먹이고, 내 연애시를 도용해 암컷들을 사귀고, 나의 약한 정신을 도굴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의 바퀴벌레는 인간에게 해악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 발 빠른 곤충인 그 바퀴벌레가 아닙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들어 있는 정보를 파괴하고, 제 마음대로 침입해 남의 정보를 빼 가는 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존재입니다. "또 잡종의 새끼를 쳐서 손잡고 다니겠지"라는 구절로 보아 그들은 증식까지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연후에 시인의 약한 정신은 이미 도굴되었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힘주어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타인을 향해서는 경고를 주고, 스스로는 각성하자고 다짐해본 것입니다.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등장해 암약하는 해커와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저는 이 시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 시는 문명비판시이며 일종의 현실풍자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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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 김남조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김 남 조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손 빈 가슴으로 왔다 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싸락눈이
한 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길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 것도
 
무상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김남조 시집 <정념의 기> 중에서
 
 
 
 
김남조 연보
 
1927년 9월 26일 대구에서 김소도와 최정욱의 장녀로 출생.
 
1940년 대구시 남명초등학교 졸업.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큐슈여고 졸업.
 
1947년 서울대학교 문예과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입학.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잔상>,‘서울대 시보’에 <성숙>등 작품 발표.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마산 성지여고 및 마산고 교사.
 
1953년 이화여고 교사. 서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강사. 첫 시집 <목숨> 간행.
 
1955년 제2시집 <나아드의 향유> 간행. 숙명여대 전임강사,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
 
1958년 제3시집 <나무와 바람> 간행. 제1회 자유문인협회상 수상. 숙명여대 조교수.
 
1959년 한국여류시선집 <수정과 장미> 편저.
 
1960년 제4시집 <정념의 기> 간행.
 
1961년 숙명여대 부교수.
 
1962년 박목월과 공동문집 <구원의 연가> 간행.
 
1963년 제5시집 <풍림의 음악> 간행. 제2회 오월문예상 수상.
 
1964년 숙명여대 교수. 첫 수필집 <잠시 그리고 영원히> 간행.
 
1966년 제2수필집 <시간은 은모래> 간행.
 
1967년 제6시집 <겨울바다> 및 제3수필집 <달과 해 사이> 간행.
 
1968년 제4수필집 <그래도 못다한 말> 간행.
 
1971년 제7시집 <설일> 및 제5수필집 <다함없는 빛과 노래> 간행.
 
1972년 <김남조 전작집 전7권(후에 9권까지 증보)>  및 제6수필집 <여럿이서 혼자서> 간행.
 
1974년 제8시집 <사랑초서> 간행. 제7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75년 <김남조 육필시선집> 간행.
 
1976년 제9시집 <동행> 간행.
 
1977년 제7수필집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간행.
 
1979년 제8수필집 <기억하라, 아침의 약속을> 간행.
 
1981년 가톨릭문우회 대표
 
1982년 제10시집 <빛과 고요> 간행.
 
1983년 제11시집 <시로 쓴 김대건 신부>, <김남조시전집>, 제9수필집 <사랑의 말> 간행.
 
198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꽁트 <아름다운 사람들> 간행.
 
1985년 일본어 번역시집 <바람과 나무(일본 화신사)> 간행.
       제40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잠언집 <생각하는 불꽃> 발행.
 
1986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남편 김세중 교수 별세. 잠언집 <생각하는 불꽃> 간행.
 
1987년 방송위원회 위원.
 
1988년 제12시집 <바람세례> 간행.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한국방송공사(KBS) 이사.
 
1990년 제12차 서울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桂冠詩人). 예술원 회원.
 
1991년 서강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제10수필집 <끝나는 고통 끝이 없는 사랑>, <김남조 시전집(증보판 31판)> 간행.
 
1992년 제33회 3․1문화상(예술부문) 수상.
 
1993년 숙명여대 정년퇴임, 명예교수. 국민훈장 <모란장> 받음.
       제11수필집 <예술가의 삶> 및 영역시집 간행.
 
1995년 13시집 <평안을 위하여> 및 일역시집 <바람세례(일본 화신사> 간행.
 
1996년 독일어 번역시집 간행. 제41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98년 <은관문화훈장> 받음.
       제14시집 <희망학습> 및 일역시집 구상, 김광림, 김남조 공저 <韓國三人詩集> 간행.
 
 
1999년 제11수필집 <사랑 후에 남은 사랑> 간행.
 
2000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일본 세계시인제에서 제25회 <지구문학상> 수상
 
2002년 한국대표시인선집 <김남조 시선집> 간행.
 
2003년 스페인어 번역시집 간행.
 
2004년 제15시집 <영혼과 가슴> 간행.
 
2005년 <김남조 시전집> 간행.
 
2007년 제11회 만해대상 수상.
 
2008년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국민원로회의 위원. 한국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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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가난한 이름에게 / 김남조
 
    
 
 
 
 

 
 
 
가난한 이름에게
 
                           김 남 조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에
검은 꽃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료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고독 때문에
어딘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고독 때문에
때로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고독이 아쉬운
당신이 지나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고독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우리 모두
쓸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김남조 시집 <풍림의 음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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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인, 그리고 독자들

                              / 박제천 




시란 무엇인가. 여기 대해서는 역사 이래로 수많은 답이 마련돼 있다. 그 답안을 읽는 일은 어찌 보면 시문학사 전체를 섭렵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인된 자는 거의 누구나 이 질문에 매력을 갖고, 자문자답해 보기 때문이다. 하늘의 성좌도를 바라보듯, 그 답안들은 시인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휘황하게 빛난다.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답안도 있고, 그 답안을 화두 삼아 하염없이 빠져들 만큼 황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그 수많은 답안 중에서도 엘리엇이 말한 ‘시에 대한 정의에는 정답이 없다는 정의’가 가장 고전적인 모범 답안으로 꼽힌다. 
시인들은 누구나 시란 그 무엇이 아닐까 궁리하고, 거기서 얻은 깨우침을 한편의 시로 써나간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평생에 걸쳐 그들이 찾아 헤매고, 꿈꾸며 느끼고 깨우치는 시를 써나간다. 작품 한편 한편이 그 순간 순간 시인이 찾아낸, 시에 대한 최선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에 대한 누군가의 특별한 정의에 시인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엘리엇의 정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들, 시란 무엇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최상의 화두로 남아 있다.
‘시에 대한 정의에는 정답이 없다는 정의’로 요약된 이 모범 답안은 대체로 시인들을 만족시키고 있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아쉽기 그지없는 답안이다. 다시 말해 시에 대한 전문적인 정의이기에 다만 시가 무엇인지 궁금한 일반 독자의 궁금증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시의 정의에 관한 독자용의 해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무엇이고, 시를 읽으면 무엇을 배우거나 즐기는지, 무엇을 얻거나 깨우치는지 알고 싶어하는 단순한 독자들의 궁금증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 문제를 단번에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논리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쩌면 시인들이 자신의 시에 대해 솔직하게 정의를 내린 몇몇 작품들 중에 그 해답이 있을 수는 있다. 실제로 나는 처음 시를 공부할 때 시의 정의에 대한 내 목마름을 해갈시켜준 작품을 만났었다. 뿐만 아니라 40여 년 시를 쓰고 읽으면서 아, 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섬광처럼 지나쳐가는 시의 비의에 황홀해 한 적이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먼 먼 아지랑이 너머
상상의 세계에서
날아와 가슴 속에 내려앉고
이내 하얀 뿌리를 내려
가슴의 진액을 빨아들이며
잎과 꽃을 피우고
나를 허무로 앓게 하고
몸져 눕게 하는
저것
…후략…
―문효치, 「시」

문효치의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시인의 가슴에 날아드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지도 못했던 미지의 생명체는 상상의 세계에서 날아와 시인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시인의 진액을 다 빨아들여 마침내 시인을 몸져 눕게 한다. 시에 시달려본 시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시인의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감질만 내는 작품, 시인이 좇아가면 도망쳐버리고, 시인이 포기하면 다시 달려들기에 시는 많은 시인들에게 ‘시마(詩魔)’라 불리우기도 한다. 시를 쓰고 싶은 열망에 비례해 써나갈수록 깊어지는 상실감과 자괴감에 몸을 망친 시인이 얼마나 많은가. 한 일년 시를 잊어버리면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지고 머리가 시원해지지만, 시를 완전히 잊었는가 싶으면 어느새 다시 찾아와 시름시름 앓게 하는, 마치 무당병처럼 평생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천형(天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시가 이렇듯 시인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어느 누가 시를 쓰겠는가. 

잘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
그대의 이름을 써보네
만년필을 고르면서.
가느다란가 굵다란가
나의 이름을 적어보네
시라고 써보네.

새 만년필로
시 한 편 잘 써서
지갑에 넣네.
―윤제림, 「시인의 사랑」

시는 어느 날 만년필을 고르면서 무심히 써보는 그대의 이름, 새 만년필로 써보는 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연히 샘솟아 오르는 그리움이자 새롭게 설레는 마음이자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는 가슴 속 지갑에 잘 갈무리해두는 사랑이기에 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편의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시인들은 잠에서 깨어나면 문득 육신과 자연의 어둠이 걷혀가는 신새벽을, 그 처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한다.

신새벽, 그 처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벌이 날아드는
그 순간, 꽃의 열림을
새가 날아오르는
그 처음의 날갯짓을
그러나 내게 보이는 건
오로지
상처받고
묶이고
갇힌 사람들뿐
저들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나는 결코
새벽, 새, 벌 따위의 
시를 쓸 수 없다는 걸
―제임스 매슈, 「시」

꽃이 제 몸을 열어보이는 그 순간을, 새들이 비상의 몸짓을 보여주는 그 처음의 날갯짓을, 시인은 기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음의 한쪽에는 사람의 세상에서 상처받고 묶이고 갇힌 사람들이 살아 있기에 시인은 시인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온몸으로 껴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은 때로 그러한 시인을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내칠 때도 많다.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마음과 달리 소통의 손길이 불화의 발길질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사람을 섬으로 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바다로 본다. 지하철 정거장의 군중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얼굴들을 보면서 “검은 가지위의 꽃잎”으로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늙마에 애인이 있느냐고
나는 애인이 수도 없이 많다고 대답하였다

그 비결을 일러 달라기에
마음이 끌리면 주저없이 눈을 맞추고
눈이 맞으면 그 자리에서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비결이 신통치 않았던지
혀를 끌끌 차며 재주가 없어서… 어깨가 축 늘어지더군

그래서 시를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시경 이래로 시인이란 자들은 
하늘의 별님 달님은 물론 풀이나 나무,
하늘 아래 움직이는 것들, 심지어는
바닷속의 물고기까지 이름을 지어주고, 
입 맞추고 껴안고 춤추면서
한 몸 한 마음이 되지 않았던가
백석이 갈매나무와 눈 맞추고 기림이 나비와 입 맞추고
미당이 달과 한 몸 한 마음이 되는 그 방법을 배우라고 하였다

배워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한겨울 눈 내리는 벌판이라도 
껴입은 입성 훨훨 다 벗어던진 맨몸, 맨마음이라면
왜 눈과 눈이 맞지 않겠는가.
―박제천, 「두번째 詩論 ―애인」

사람이 사람과 따듯하게 만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한 몸 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사람은 물론 자연이며 자연의 어느 생명체조차 가슴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라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시란 바로 사람들의 삶이며 사랑이며 추억이며 죽음이며 운명, 헤어짐과 만남, 그리움과 외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기록을 미학적 장치로 바꾸어 줌으로써 독자 또한 시인과 함께 시의 그 비밀한 뜻과 향기를 가슴 가득히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金宗三,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의 평범한 진술은 그 ‘누군가’의 해석조차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뉠 수 있는 상징성을 지님으로써 비범한 의미로 전환된다. “시가 뭐냐고”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시인은 결코 그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시인의 답은 그 누구라도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대답을 찾기 위해서 그는 차라리 시인이기를 거부한다. 그 대답은 오직 빈대떡을 먹는 사람들, 바로 독자의 가슴과 가슴이 닿는 곳에 있었던 것이다.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濟州海女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詩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오?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詩人인것을
―서정주, 「詩論」

결론하자면, 미당 서정주는 시란 “님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바다 속에 남겨 놓은 제일 좋은 전복”이라고 제주 해녀를 빗대어 말한다. 그 좋은 시를 ‘바다 속에 두고서, 바다를 바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다 캐어낼 수‘도 없지만, 아끼고 아끼는 그 마음이 시라는 생각은 공자의 ‘시즉절(詩卽切)’, 쓰고 싶은 것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이 시’라는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시란 무엇이고, 시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그와 상관없이 나는 오늘 또 한편의 시를 무심히 써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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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는 독자 감동을 지향한다

근년에 들어 저는 광고 문구 속에 '고객 감동'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보고 들었습니다. 광고인들도 이제는 광고주가 만든 제품에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어 있으니 쓰던 것을 버리고 우리 제품으로 바꿔 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지요. 향상된 기능으로 당신들을 감동시킬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시가 지향하는 최고의 미덕이야말로 감동이 아니겠습니까. 격렬한 감동이든 잔잔한 감동이든 시를 읽으며 느낀 감동은 우리의 뇌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쇠비름풀 여뀌 바랭이서껀 이런 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 던졌습니다.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아버지, 일흔 중반 넘어서면서 망령드셨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 드는 어머니 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 집사람 못 봤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 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 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문인수, [풀뽑기] 전문 <문학과창작 1997년 10월>


아버지를 따라가 묵정밭을 맸던 어린 날의 추억에서부터 시는 전개됩니다. 쇠비름풀·여뀌·바랭이 같은 잡초들을 수없이 뽑아 던져야 밭뙈기 한 두락이 새로 태어나는데, 아버지는 평생을 바쳐 논 서른 마지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이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고 기진맥진한 아버지는 노을녘에 서서 빈 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슬픈 초상은 빈 들, 즉 당신의 피땀으로 일구었건만 "이미 다 닳아 치우고 없는 농토"가 된 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삶의 비애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버지는 일흔도 중반이 넘어 노인성 치매를 앓는 환자가 되셨는데, 증세가 나날이 심해져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볼 지경에 이릅니다. 망령은 들었어도 아버지는 소몰이며 땅을 일구는 일에 인이 박인 농투성이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논도 없는데 물꼬 보러 간다며 나서고,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리는 망령을 보입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그간 가족의 녹아 내린 애간장이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윤회를 믿는 불가에서는 전생의 원수들이 모여 가족을 이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가 나를 아들로 보아주지 않는 슬픔, 죽음을 목전에 두고 헛소리를 하는 아버지를 마냥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슬픔이 목젖을 차고 오릅니다. 이 슬픔은 은유나 상징 같은 시적 기교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문인수는 그저 뭉툭한 필묵으로(평이한 필체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스케치하고 있을 뿐입니다. 잡초를 수없이 뽑아 던졌던 아버지는 검불같이 남아 있던 당신의 육신을 끝내는 뽑아서 땅에 던집니다.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 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눈물을 감추고 있어 오히려 눈물겨운 마지막 연입니다. 한평생 풀 뽑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마지막으로 땅에서 뽑아 반듯하게 관에 드러누움으로써 생애가 완성되었습니다. 뽑혀진 풀이 흙의 일부가 되듯이 인간의 육신도 흙의 일부가 됩니다. 문인수는 아버지의 초상을 이 시에 그려놓은 것일 테지만, 저는 땅을 파며 한 생을 살다 땅으로 들어가 마감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의 모습을 [풀 뽑기]라는 한 편의 시를 통해서 봅니다. 아버지의 풀 뽑기도 개간을 위한 창조 행위였고, 아들의 [풀 뽑기]도 '시'를 이룬 창조 행위였으니 그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시인은 이 시에서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지만, 뭇 독자의 심금은 그것 때문에 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장미를 미의 하나로 취급해온 것일 테지요.
영화며 컴퓨터 게임 등 재미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진 오늘날 시의 기능, 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기상천외한 실험과 발명 및 파괴로 과학적 언어로밖에 대화할 줄 모르는 우리의 인식지평을 넓혀주는 것이 첫째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부대끼느라 무뎌진 우리의 가슴에 서정의 물살을 와 닿게 해 잠시나마 감동하게 하는 것, 그 기능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서정의 물살이 워낙 약해 비록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더라도, 이 세상에는 감동하거나 감격할 일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감동적인 시는 이렇듯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슬픔의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0. 시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거짓말이다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의 제목은 '정동진역'입니다. 가운뎃부분에 "해안선을 잡아놓고 끓이는 라면집과/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보이는 시입니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놓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장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김영남, [정동진역] 전문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김영남은 등단작의 제목을 그대로 첫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그 첫 시집의 해설을 제가 썼기에 이 시의 생산 과정을 본인한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시계'이던가요, 텔레비전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정동진역은, 1996년까지만 해도 해돋이 관광 명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 경치가 제법 괜찮다는 것 정도가 몇몇 사람에게 알려져 있었지요. 어느 신문기자가 누군가로부터 정동진역 풍광이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갔다와서는 '알려지지 않은 곳, 그러나 가볼 만한 곳'이라며 그곳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김영남은 그 기사를 읽고 일필휘지하여 이 시를 썼습니다. 물론 가본 적이 없었지요. 신문기사 한 쪼가리도 유심히 읽는 관찰력이 그에게 시인이란 타이틀을 붙여주었습니다. {죄와 벌} {테스} {여자의 일생} 등 세계명작 가운데 짧은 신문기사를 읽고, 그것을 갖고 쓴 것이 아주 많습니다. 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관찰하고 기록하기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든 영화든 관찰의 안테나를 세우고 유심히 보면 거기서 시의 제재가 나옵니다. 친구의 이야기든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든 유심히 들으면 거기서 시의 제재가 나옵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생명체가 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는 열려 있는 총체입니다. 시는 그 어떤 인접예술과도 교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되 시적 진실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정동진역에 전혀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이런 시를 썼다고 하여 우리는 시인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저는 시가 시인 자신의 체험의 산물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문기사를 읽은 간접체험에다가 상상력을 보태어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혹은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안 보고도 본 척, 안 겪고도 겪은 척, 모르고도 아는 척하는 사람이 또한 시인입니다. 시인은 신문기사를 보고도, 책을 읽고도, 영화를 보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을 직접 체험한 양 둘러칠 수 있는 능력이 시인됨의 기본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시인의 자격으로 왔으니까 마지막으로 제 시를 한 편 낭송해 드릴까 합니다.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졸시,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전문

솔직히 말씀드려 이 시는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제 아버님은 이날 이때껏 입원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십니다만 올해도 고향에서 밭농사를 짓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은 많은 독자가 대부분 실제상황인 줄 알고 제게 물어왔습니다. 부친을 간병하느라 고생이 많았겠다는 위로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곤혹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는 재미교포 2세인 루이스 최가 쓴 {생명일기}(김유진 옮김, 김영사 간행)라는 간병기를 보고 제 체험인 양 가져와서 쓴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성기 운운하는 대목은 그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 어른을 간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기록되어 있는 그 책을 보고 만약 제 아버지가 저런 상태가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상해보면서 한 편의 시를 썼던 것입니다. 이 시가 시적 진실을 추구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책을 통한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슬쩍 바꿈으로써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인데, 간접체험과 상상력은 그 한계를 무한정 확장해 줍니다.
자, 그럼 이것으로써 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얘기를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열 가지 방법론에 입각하여 전개한 제 얘기가 여러분의 시작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작품 쓰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집으로「사랑의 탐구」(1987),「우리들의 유토피아」(1989),「욥의 슬픔을 아시나요」(1991),「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박수를 찾아서」(1994),「생명에서 물건으로」(1995)가 있으며, 시론집으로「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1997),「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1999),「한국 현대시 비판」(2000),「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2001)가 있다. 이 밖에 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1997)과 시선집「젊은 별에게」(199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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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너를 위하여
 
                      김 남 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김남조 시집 <풍림의 음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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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편지 / 김남조
 
    
 
 
 
 

 
 
 
 
 
편지
 
                               김 남 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시집 <설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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