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땡!~ 무거운 엉덩이를 훔쳐라...
2016년 03월 23일 06시 44분  조회:4606  추천:0  작성자: 죽림

지난 일요일 폐막한 파리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은 대한민국이었다. 올해로 130주년을 맞는 한국-프랑스 수교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서구 열강과 우리나라의 수교는 슬픈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와 역량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침략의 결과인 것이다.

묘하게도 한국과 프랑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책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1866년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하자, 프랑스 극동함대는 하필 조선 왕실의 국가기록물 보관소인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를 침략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문화라면 둘째 간다고 하면 서러워할 사람들 아닌가. 침략자들은 외규장각에 보관된 책들의 높은 가치를 한눈에 파악했다. 그들은 색상이 화려한 책들을 중심으로 340권을 챙김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는 한편, 나머지 5,000여 권의 책을 불태움으로써 자신들이 ‘침략자’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나마 다행히도 340권의 외규장각 도서가 2011년 ‘영구임대’ 방식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프랑스 극동함대가 침략한 지 150년이 지난 2016년에는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이 자발적으로 주요 서적들을 싣고 파리로 날아왔다. 프랑스는 비용을 들여 한국 작가 30명을 초대하여 한국 작가들의 책과 사상을 프랑스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소개하게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조선을 침략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작가들을 초대했을 때도 문화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수요일 저녁 개막식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부스를 직접 찾아왔다. 이날 여러가지 면에서 놀랐다. 우선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기자들과 개막식에 참석한 출판인과 작가들이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올랑드 대통령의 동선을 방해했지만 경호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이 특별히 부탁해서 모여 있던 한국의 작가들 몇 미터 앞까지 왔지만 결국 카메라의 장벽에 막혀 한국 작가들의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올랑드 대통령은 성내지 않았다. 대통령이 성을 내지 않다니!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원래 대통령은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으면 찌릿찌릿한 눈빛으로 겁을 주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대신 올랑드 대통령은 한국관 방명록에 “문화를 향해 같은 열정을 나누는 프랑스와 한국의 독자들에게”라고 글을 남겼고, 오드리 아줄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에서 문화는 심장과 같다, 그 문화의 한가운데에 책이 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과 전시장을 찾은 다양한 분야의 장관들이 ‘경제’를 거론하는 대신 한결 같이 ‘문화’와 ‘책’이라는 한가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랑스의 문화 역량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차리는 데는 충분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책이라고 했지만 더 근원적인 것이 따로 있었다. 파리도서전의 특징은 유달리 많은 강연이 열린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물론 인기 작가의 흥미로운 강연도 있겠지만 청중들의 표정을 보건대 대부분은 평범한 작가들의 지루한 강연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중간에 일어서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은 도서전에서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을 텐데도, 마치 자력이나 중력으로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끝까지 앉아 있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프랑스 사람들의 체형을 상상하려 들지는 마시라. 그들의 체구는 오히려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엉덩이는 정말 무거워서 한번 앉으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책이 좋아서 도서전에 오는 사람들만 엉덩이가 무거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번에 파리에 체류하면서 라빌레트 과학관과 파리 자연사박물관도 틈을 내어 다녀왔다.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눈에 보였다. 우선 전시물의 설명 패널의 글자가 작고 길었다. 그리고 동영상도 길이가 보통 5분이 넘었고 심지어 7분, 11분짜리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작은 글씨로 길게 쓰여진 패널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영상도 3분이 넘으면 보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 긴 설명을 찬찬히 읽는다. 상영 중인 동영상 앞에 온 사람은 우선 중간부터 본 후 동영상을 다시 틀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다. 중간에 일어설 것 같은데 끝까지 본다. 왜? 엉덩이가 무겁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무거운 엉덩이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로 물려받은 것(nature)이 아니다. 양육된 것(nurture)이다. 도서전과 마찬가지로 과학관과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려 온 부모와 조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차분함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가르쳤다. 때로는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주저앉히곤 했다. 이렇게 프랑스 아이들은 엉덩이에 자력과 중력이 더해져서 무거워지나 보다.

한국의 과학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내 강의가 자신의 관심사였을 리가 없는 고등학생이 슬그머니 일어서려 하자 힘으로 주저 앉힌 엄마, 기껏해야 초등학교 1, 2학년밖에 안 된 두 아이에게 찰스 다윈의 따개비 연구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를 힘들여 읽어주며 설명하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프랑스 문화 융성의 근원인 것 같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단 3년 만에 구글의 인공지능을 뛰어넘겠다는 호기로운 순발력보다는 지루한 이야기도 한 시간쯤은 끈덕지게 들어줄 수 있는 무거운 엉덩이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닐까. 150년 전 프랑스는 우리에게서 책을 훔쳐갔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훔쳐올 차례다.

/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79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비닐쓰레기전쟁",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28 0 2868
2796 [그것이 알고싶다] - "거북선"을 보고 "거북선"을 그리다... 2019-11-27 0 4736
2795 [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의 화장법?... 2019-11-27 0 3591
2794 [고향사람] - "타향에서도 우리 민족을 빛낼수 있는 일을 하는것" 2019-11-26 0 2937
2793 [별의별] - "이색 수염 겨루기 대회" 2019-11-26 0 2760
2792 [그것이 알고싶다] - "에밀레종" 타종소리... 2019-11-26 0 5671
279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24 0 3156
2790 [이런저런] - "생가문제"... 2019-11-24 0 2751
278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생태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23 0 2965
278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일회용품 사용",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22 0 3100
2787 [그것이 알고싶다] - "난 다 봤어요"... 2019-11-21 0 3182
2786 [그것이 알고싶다] - "살아있는 다리" 2019-11-21 0 3324
278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사음(私蔭)"과 "문화재기증" ... 2019-11-21 0 3258
2784 [별의별] - 碑가 悲哀하다... 2019-11-20 0 3505
2783 [그 사람, 그 세계] - 뻣속까지 악기인... 2019-11-19 0 3485
2782 [그때 그 사람] - 뼛속까지 영화인... 2019-11-19 0 3035
2781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큰 글자 책" 있었으면... 2019-11-18 0 3487
2780 "제 핏줄을 이어가며 건사한다는것은..." 2019-11-15 0 2808
277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장애인 문학",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14 0 3402
2778 [겨레자랑] - "사전동행자" = "사전사나이" 2019-11-13 0 3274
2777 [별의별] - 장춘에 "술문화박물관" 없다?... 있다!... 2019-11-13 0 3192
2776 [그것이 알고싶다] - 할리우드 2019-11-11 0 3558
2775 [세계속에서] - 전쟁속에서 피여난 "순애보" 2019-11-11 0 3993
2774 [그것이 알고싶다] - "안녕하세요, 지구인입니다"... 2019-11-10 0 3266
277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통일",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10 0 3322
2772 [그것이 알고싶다] - 독일 통일의 상징 = 브란덴브르크 문 2019-11-10 0 4904
2771 [그것이 알고싶다] - 력사속에서의 "베를린 장벽"... 2019-11-09 0 3947
277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기후변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09 0 3865
276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기후 비상사태",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1-09 0 3061
2768 [민족의 자랑] - "중국의 주시경" - 최윤갑 2019-11-09 0 2857
2767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청년바람"이 불었으면... 2019-11-08 0 3412
2766 "중국조선족시가절" 고고성 울리다... 2019-11-04 0 3245
2765 "새 래일을 갈망, 아우성 칠 때 새 래일의 주인공이 된다"... 2019-11-01 0 3649
276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온난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0-30 0 3567
2763 [타산지석] - 력사는 다 알고 있다... 세월이 약이다... 2019-10-30 0 2954
276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0-27 0 3532
2761 [그것이 알고싶다] - 세계 최초의 영화... 2019-10-26 0 3802
276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미세먼지제거", 남의 일이 아니다... 2019-10-26 0 3223
2759 [록색평화주의者] - "얘들아, 래일은 전쟁난다. 학교 오지마..." 2019-10-26 0 3528
2758 [이런저런] - 1... 5억... 2019-10-26 0 3305
‹처음  이전 4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