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美대사, 92세 해병대원 조지 램프먼 소개 / 1949년 주한 대사관 보안요원으로 한국에 첫발 / 대사관 근무하던 한국 여성과 사랑… 1950년 결혼 / 2015년까지 해로… "그런 여성은 또 없을 겁니다"
미국 해병대 창설 기념일(11월10일)을 맞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70년 전에 주한 미국 대사관 보안을 책임졌던 90대 노(老)해병 용사를 한국인들한테 소개했다. 이 노병은 6·25 전란의 와중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60년 넘게 해로한 것으로 전해져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해리스 대사는 10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1775년 11월10일 필라델피아에서 출범한 미 해병대가 창설 224주년을 맞았음을 알리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번에 열린 창설 기념 파티에는 1927년에 출생하고 44년 입대해 49년 미국 대사관의 첫 보안요원이 된 조지 램프먼 준위가 함께했다”면서 램프먼 준위와 찍은 사진도 게재했다.
미국이 외국에 있는 자국 대사관 등 외교공관 보안을 해병대에 맡기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위해 미 해병대는 산하에 ‘대사관경비대(Marine Corps SecurityGroup)’라는 전문 부대를 두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램프먼 예비역 해병 준위와 한국의 깊은 인연이다. 그는 해병대 입대 6년차이던 1949년 신생 대한민국에 갓 설치된 미국 대사관의 보안 업무를 맡아 한국에 처음 입국했다. 램프먼 준위는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던 3살 아래의 한국인 여성 이숙이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듬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다. 현역 해병대원인 램프먼 준위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서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해 9월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대성공으로 미군 등 유엔군과 한국군이 서울을 수복했다. 3개월 여 만에 대사관에 복귀한 램프먼 준위는 오랫동안 마음에 둬 왔던 일을 기어이 실행에 옮겼다. 이숙이씨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참전함으로써 전세가 다시 뒤집히고 말았다. 서울이 도로 적군 수중에 떨어졌고 램프먼 준위 부부는 다른 대사관 식구들을 따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듬해인 1951년 부부는 새 삶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수도 워싱턴 외곽에 정착해 자녀 4명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램프먼 준위에게 2015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모처럼 온가족이 이숙이씨 고향인 서울 여행에 나선 것이다. 램프먼 준위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태어나 자라고 아버지 역시 한때 자국 대사관 보안요원으로 일했던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색다른 감상에 젖었다.
그런데 이숙이씨가 가족이 투숙한 호텔 객실에서 수면 도중 그만 급서하고 말았다. 향년 85세였다.
2년이 지난 2017년 램프먼 준위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을 나와 함께 온몸으로 겪은 여성(부인)을 기리는 조그만 기념물을 서울에 하나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녀가 해준 것처럼 나를 보살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김태훈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미국 해병대 창설 기념일(11월10일)을 맞아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70년 전에 주한 미국 대사관 보안을 책임졌던 90대 노(老)해병 용사를 한국인들한테 소개했다. 이 노병은 6·25 전란의 와중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60년 넘게 해로한 것으로 전해져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해리스 대사는 10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1775년 11월10일 필라델피아에서 출범한 미 해병대가 창설 224주년을 맞았음을 알리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번에 열린 창설 기념 파티에는 1927년에 출생하고 44년 입대해 49년 미국 대사관의 첫 보안요원이 된 조지 램프먼 준위가 함께했다”면서 램프먼 준위와 찍은 사진도 게재했다.
미국이 외국에 있는 자국 대사관 등 외교공관 보안을 해병대에 맡기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위해 미 해병대는 산하에 ‘대사관경비대(Marine Corps SecurityGroup)’라는 전문 부대를 두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램프먼 예비역 해병 준위와 한국의 깊은 인연이다. 그는 해병대 입대 6년차이던 1949년 신생 대한민국에 갓 설치된 미국 대사관의 보안 업무를 맡아 한국에 처음 입국했다. 램프먼 준위는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던 3살 아래의 한국인 여성 이숙이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듬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다. 현역 해병대원인 램프먼 준위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서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해 9월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대성공으로 미군 등 유엔군과 한국군이 서울을 수복했다. 3개월 여 만에 대사관에 복귀한 램프먼 준위는 오랫동안 마음에 둬 왔던 일을 기어이 실행에 옮겼다. 이숙이씨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참전함으로써 전세가 다시 뒤집히고 말았다. 서울이 도로 적군 수중에 떨어졌고 램프먼 준위 부부는 다른 대사관 식구들을 따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듬해인 1951년 부부는 새 삶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수도 워싱턴 외곽에 정착해 자녀 4명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램프먼 준위에게 2015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모처럼 온가족이 이숙이씨 고향인 서울 여행에 나선 것이다. 램프먼 준위의 자녀들은 어머니가 태어나 자라고 아버지 역시 한때 자국 대사관 보안요원으로 일했던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색다른 감상에 젖었다.
그런데 이숙이씨가 가족이 투숙한 호텔 객실에서 수면 도중 그만 급서하고 말았다. 향년 85세였다.
2년이 지난 2017년 램프먼 준위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을 나와 함께 온몸으로 겪은 여성(부인)을 기리는 조그만 기념물을 서울에 하나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녀가 해준 것처럼 나를 보살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김태훈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오른쪽)가 올해 92세인 조지 램프먼 예비역 해병 준위와 함께 찍어 트위터에 올린 사진. 램프먼 준위는 1949년 주한 미국 대사관 보안요원으로 처음 한국에 입국했으며, 6·25 전란의 와중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2015년까지 해로했다. 해리스 대사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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