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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는 최초의 영화를 선보이지만 결국 사진으로 관심을 돌린다.
파리 카퓌신 대로 그랑 카페 지하의 방은 가득 모인 사람으로 붐볐다. 이들은 어둠 속에 앉아 열 편의 짧은 영화 연속물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들로, 각 영화는 40초 남짓한 길이에 주제는 '담요 위에 뛰어내리기', '아기의 식사', '바다에서 수영하기' 등 일상생활을 직접 관찰하여 가벼운 희극을 섞어 넣은 내용이었다. 상영은 큰 성공이었고 계속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 역사적인 최초 상영회보다 조금 뒤에 촬영한 한 장면은 화면을 거슬러 비스듬하게 달려오는 증기 기관차를 찍은 것으로, 관객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숨기려 들었다.
상영회를 연 것은 리옹의 한 사진사 겸 초상화가의 아들인 30대 초반의 형제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였다. 그들의 아버지는 1894년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형식의 에디슨의 영사기 시연을 보고 영향을 받아 아들들에게 영화 실험을 해보라고 격려했고, 둘은 곧 스프로켓 구멍을 이용해 카메라 안에서 필름을 감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1895년 초에 두 형제는 카메라, 인화 기계, 영사기 역할을 다 하는 작은 기계 '시네마토그래프'의 특허를 냈다. 최초의 영화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퇴근하는 일꾼들을 담은 것으로 1895년 3월 22일 개인적인 자리에서 상영했지만, 최초로 영화 기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영화를 스크린에 비춘 것은 그랑 카페에서였다.
두 형제는 그들이 만든 기계를 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 조수를 고용했고,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극장을 개관했다(그들은 극장을 '시네마'라고 불렀다). 영화 한 편은 1900년 파리 박람회 때 거대한 화면에 투사하기도 했다. 시네마토그래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루이 뤼미에르는 곧 이것이 "미래 없는 발명품"이라 단정 지었고, 결국 형제는 기계에 대한 권리를 팔고 대신 컬러 사진에 집중했다.
"영화는 전 세계를 즐겁게 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일이 있을까…?"
루이 뤼미에르, 영화의 선구자
[네이버 지식백과] 최초의 영화 상영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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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존슨이 최초의 유성영화에서 첫 줄의 대사를 연기하는 영광을 누린다.
미국에서 전국 개봉한 최초의 유성영화-적어도 부분 유성영화-는 브로드웨이의 히트작 「재즈 싱어 The JazzSinger」로 워너 브라더스사(社)는 새로운 비타폰 사운드 프로세스를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장면은 무성이었지만, 음악 시퀀스와 일부 대화 장면은 사운드를 삽입했다.
이 영화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는 시나고그 독창자인 아버지와 감상적이고 세속적인 곡들을 불러 스타가 된 유대인 소년(앨 존슨 분)의 이야기다. 존슨은 당대 최고의 매력적인 무대 연기자였으며, 활기찬 동작과 제스처, 관객과의 대화를 도입하여 비교적 절제된 보드빌 공연을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감의 소유자였으며 브로드웨이의 주요 작품을 공연할 때는 연기를 중단하고 관객에게 다가가서 공연을 마저 다 보고 싶은지 아니면 지금 당장 노래를 듣고 싶은지 묻곤 했다. 관객들은 언제나 후자를 선택했고, 그러면 그는 한 시간 동안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1928년 존슨은 「싱잉 풀 Singing Fool」에서 "Sonny Boy"를 불러 미국 최초로 밀리언셀러 앨범을 기록했다.
"잠깐 기다려요! 아직 아무것도 못들었잖아요! 기다리라니깐요!"
「재즈 싱어」에서 앨 존슨의 첫 번째 유성 대사
[네이버 지식백과] 최초의 유성영화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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