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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핏줄을 이어가며 건사한다는것은..."
2019년 11월 15일 22시 38분  조회:2697  추천:0  작성자: 죽림
형님전 상서
2019년 11월 14일  작성자: 김인섭
                                                /대련 김인섭 

형님,이번 한가위를 부모님 선산에서 보내며 보고 느낀 바를 적어 올리겠습니다..
 
그날 오전 부모님들께 제사상을 올리면서 작년 이맘때 영생의 길에 오르신 어머니를 아버지 유택에 합장하고 형님과 나란히 엎드렸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나이가 말미암인가요 어쩐지 지난날 굶주리며 헐벗어 배고프며 춥던 시절의 모진 사연들이 자꾸 눈앞에 떠오르며 우울해 지고 있습니다.부모님들이 우리 가족을 이끌고 보릿고개의 엉키고엉킨 가시덤불을 헤가르며 지어낸 만가지 고생담들이 가슴에서 교차되며 퍼그나 먹먹해 지었습니다.하산하는 산길에서 허허로운 벌판에 외홀로 서있다는 심란한 기분을 도저히 삭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날 제일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꼴불견이었다면 주위 선산에 온 제꾼 거의가 60대 혹은 70대인데 벌초객 중 젊은이의 모습은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간혹 로구(老躯)를 이끌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올라오신 존장(尊长)들과 갈 길 바쁘신 로인들이 가을 옷자락을 여미며 조상 영전에 엎드린 모습은 보기에 숙연했습니다.각자가 당신의 예정을 짐작하는 듯 숙배(肃拜)를 올리는 자태에 파란이 많았던 지난 세월의 세례가 슴배었다고 류추해보니 무척 가긍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형님,지금 문중벌초(门中伐草)의 분위기가 옛날과 완연히 달라졌습니다.화장이 법제화 된 현실에서 더 이상의 분묘를 들일 장소가 없다는 사실은 말말고 유구한 나날을 두고 전해오던 장묘의례(葬墓儀禮)가 사라지지 않는가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습니다.제사 흔적이 보이지 않는 묘소가 수두룩하고 가토 벌초를 했다해야 지난 시절과 대비가 안되는데 버려진 묘자리도 숱해였습니다.지난날 이랬다면 곱빼기로 욕을 얻어먹었을 행실이 오늘은 눈앞에 버젓이 펴져서 드러나 있습니다.오래지 않아 고향 산역을 주선하고 산소를 돌볼 후손이 씨가 말라가지 않겠는가 걱정했습니다.물질주의가 팽창하는 오늘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핏줄을 근거로 사회를 전승시키고 조상과 고향을 습득시키기가 쉽지않을 같기만 합니다.뒤이어 들이닥칠 전환의 소용돌이는 우리 몫이 될 것만 같아서 당혹하기만 합니다.사뢰기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멀잖아 성묘의 발길마저 끊어질 고향의 선영들을 도대체 어찌 해야 할가요!?
 
이웃의 젯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옛날 번성하던 민족 촌락의 대부분에는 아기 울음소리에 이어 초등학생마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절반도 남지않은 가옥들엔 로년 어른들 아니면 당신을 숙명에 맏겨버린채 최후 행사만을 기다리는 외짝들이 거의 전부라는 이야기입니다.지난날 우리 시대에는 경조사 행사 때 각지의 피붙이들이 모여앉아 서로 안부를 전해가며 뉴대를 맺아가던 미풍은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생업의 부담으로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혹시 참여한다 해도 그들에겐 강제로 불려나온 부역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입니다.세상살이가 치열해진 탓이라 체면차리기조차 어렵다는 세월의 개탄이기도 합니다만 세태가 그러하니 그들을 나쁘다고 일갈(一喝)할 일만이 결코 아닌 같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산 문제입니다.지금 넘들은 기껏해야 아들 딸 구별없이 하나만 생산하는데 자식이 둘이면 치다꺼리로 되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는 리유입니다.웰빙이라는 시대의 화두 앞에서  물질 풍요를 자기들만 누리면 된다고 오도된 잘살기 폐해입니다.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 행복하거나 없어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다는 이것입니다.이렇게 몇 세대가 내려간다면 어떤 집안은 절손(絶孫)의 화를 면할 수 있을가요.제 핏줄을 이어가며 건사한다는 가장 기본적 본능이 사라지고 있는 엄중한 현실입니다.이제는 친족들의 혈통 관리가 어려워지고 고향 마을도 선산과 함께 사라질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이제는 자식이 어미나 아비의 성에서 골라 달아도 문제시 되지않는 세월이 되었습니다.자식이 제 어미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 합니다.김씨 피붙이가 리씨의 혈육으로 둔갑하고 내 자손이 생면부지 남의 후손으로 매김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어느새 사촌부터 가파로운 망각 곡선을 타는 오늘인데 형제 자매의 성이 이렇게 갈라진다면 사촌끼리 혼인을 한들 하등의 거리낌이 없는 세상이 아니 될가요!
 
형님,이제는 지나간 불효의 변명이나 유아적인 슬픔을 거듭하지 않겠습니다.세태 조류인 양 밀려드는 심란한 과제들이 하나같이 벅찬 탓입니다.불평을 부리기엔 너무도 힘겹고 다급합니다.적지 않은 나이를 먹고 이제 남은 시간마저 길지 않다는 각성 때문입니다.유사이래 전례없는 풍요를 누린다고 너나없이 호언하는데 밀어닥친 시대의 소용돌이가 원망스럽습니다.우리 등 뒤로 겹쳐지는 고향마을의 상실과 문화전통이 퇴락하는 정경이 흡사 시대의 종막인 양 비감스러운 것입니다. 하필 이 비운이 왜 우리 인생에 드리워 질가요?아닌게 아니라 원망스럽습니다.
 
형님,무심코 간지를 짚어 보니 나도 예순갑자를 한 바퀴 돌고도 일곱 고개를 넘었다는 각성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고 쌓여가는 나이 더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시계 시보판처럼 명백한 인생 단계의 확정 앞에서 아연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사실이 이러히 엄연하니 선배들과 부모님들이 지성으로 꾸려온 우리 민족사회가 우리의 손에서 거덜이 나지 않는가는 자책에 민망하고 무색해 지고 있습니다.
 
형님 늘 하던 버릇대로 수다가 도를 넘는 같습니다.이 생각 저 생각이 갈피없이 떠올라 되는대로 적었으니 괘념하지 마십시오.세월이 가는 대로 눈치나 보며 살다 보면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고 민족도 새 정착과 부흥을 이루겠지요.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해도 력사는 그냥 자기 맥을 이어 가겠지요. 남의 뒤를 따르다 보면 새로운 질서야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형님,고향마을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립습니다.그 공동체 속에서 동잇땀을 흘리던 나날의 어느 것이 그립지 않은 것 없습니다.더구나 농사의 계절마다와 설명절이면 동네 남녀로소가 모여 즐기었고 동네의 관혼상제 때면 좌상 어른들의 주선하에 제 풍속과 전통을 정연히 뽐내던 그 때가 바짝 그리워 지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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