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박인환 - 목마와 숙녀
2016년 05월 01일 18시 59분  조회:4198  추천:0  작성자: 죽림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일러스트=권신아

시냇물 같은 목소리로 낭송했던 가수 박인희의 '목마와 숙녀'를 옮겨 적던 소녀는 이제 중년의 '여류' 시인이 되었다. '등대로(To the lighthouse)'를 쓴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하며'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수려한 외모로 명동 백작, 댄디 보이라 불렸던 박인환(1926~1956) 시인은 모더니즘과 조니 워커와 럭키 스트라이크를 좋아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고 5개월 후 세상을 떴다. 시인 이상을 추모하며 연일 계속했던 과음이 원인이었다. 이 시도 어쩐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로 쓴 듯하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고,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로 요약되는 서사다.

우리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생명수를 달라며 요절했던 박인환의 생애와, 시냇물처럼 흘러가버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이미 죽은 그를 향해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고 쓸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의 애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인 것을, 우리의 시가 조금은 감상적이고 통속적인들 어떠랴. 목마든 문학이든 인생이든 사랑의 진리든,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모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정끝별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43 이승훈 시모음 2015-07-18 0 4377
642 <자본주의> 시모음 2015-07-18 0 4294
641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 2015-07-18 0 4436
640 김소월과 에이츠 2015-07-17 0 4577
639 좋은 시를 쓰는 王道 // 령혼을 노크해주는 글 2015-07-15 0 4554
638 표절과 령혼 2015-07-15 0 4511
637 표절은 작가자신의 령혼을 죽이는 자살행위... 표절은 독자들의 령혼을 죽이는 타살행위... 2015-07-15 0 4216
636 김억과 김소월 2015-07-14 0 5329
635 윤동주와 일본 시인 // 시문학의 흐름 2015-07-12 0 5125
634 한국 최초의 자유시 2015-07-12 0 3817
633 新體詩 시인 - 최남선 / 자유시 선구자 - 주요한 2015-07-12 0 4870
632 하이퍼텍스트 詩 들여다보기/현대시의 흐름/바이런시인 시모음 2015-07-09 0 5231
631 <<死愛>> 2015-07-09 0 4882
630 어둠의 아이들과 햇빛의 아이들이... 2015-07-09 0 5250
629 그 누구나 시의 전파자가 되는 날을 위하여... 2015-07-08 0 4081
628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인 2015-07-06 0 4307
627 우리 민족 문단 최초의 시선집 2015-07-06 0 4120
626 <<풀보다 먼저 눕고 먼저 울고 먼저 일어서는>> -"국민시인" 2015-07-05 0 4797
625 윤동주와 정지용, 리륙사와 로신 // <<향수>>와 <<추억>> 2015-07-04 0 6141
624 두 시인의 마음속 "고향"은...? 2015-07-04 0 4174
623 다시 알아보는 시인 백석 2015-07-04 0 4372
622 <소주> 시모음 / 김소월시인과 담배, 술, 진달래꽃 2015-07-04 0 5202
621 포스트/모더니즘시론의 력사 2015-07-04 0 4364
620 2015년 7월 4일자 한국 중앙일보 윤동주 시한편 등고해설 2015-07-04 0 4426
619 다시 알아보는 시인 조기천 2015-07-03 0 4900
618 전쟁과 화폐살포작전 / 짧은 시 모음 2015-07-03 0 5062
617 항상 취해 있으라... 2015-07-03 0 4419
616 <지렁이> 시모음 2015-07-01 0 4543
615 미친 시문학도와 싸구려 커피 2015-06-30 0 4341
614 체 게바라 시모음 2015-06-28 0 4536
613 파블로 네루다 시모음 2015-06-28 0 4468
612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시모음 2015-06-27 0 4949
611 <夏至> 시모음 2015-06-22 0 4214
610 시를 설사하듯 쓰기와 시를 느린보로 쓰기와 좋은 시 다섯편 남기기 2015-06-22 0 4717
609 연변 작가계렬 취재 1 2015-06-22 0 4482
608 다시 읽는 우리 문학 2 2015-06-22 0 4792
607 다시 읽는 우리 문학 1 2015-06-22 0 4290
606 리임원 시집 출간 2015-06-21 0 4131
605 李仁老 漢詩 2015-06-20 0 6424
604 녀성詩 어디까지 왔나ㅠ... 2015-06-19 0 3834
‹처음  이전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