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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으로 보는 낯설음의 미학
2017년 02월 19일 09시 54분  조회:2541  추천:0  작성자: 죽림
 

낯설게 하기와 우리 서정시

- 네 시인의 동명의 시《자화상》을 중심으로

 

서채화

 

반 고흐의 "자화상"

 

 

로씨야 형식주의의 주요용어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로씨야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로씨야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력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령역과 문학연구 령역을 변별시켜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축자적으로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를 의미한다. 쉬클로프스키에 따르면 문학은 일상언어와 습관적인 지각양식을 교란한다. 문학의 목적은 재현의 관습적 코드들로 인해 지각이 무디어지게 놓아두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태를 난해하게 만들고, 지각 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문학/시에서의 이상화(異常化; estrangement)는 리듬, 음성학, 통사법, 플롯 같은 형식상의 기제 즉 “예술적 기법”에 의해 생겨난다. 쉬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의 한 례로 스토리의 내용을 “이상하게 만들기” 위해 말(馬)의 시점으로 구사한 레브 똘스또이의 「콜스토메르」를 들고 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보행과 발레를 비교한다.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의 걸음걸이의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고 구조화한 발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시는 “발성기관의 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발레는 걸음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행은 그렇지 못하다. 문학의 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 생생한 지각과 의미에 접하게 한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언어로는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언어와 우리가 접하는 삼라만상의 인상과 그에 대한 판단이 이미 낡고 관습화되어 있어서 모든 것은 추상화되어 있고 평판화되어 있는데 문학은 여기에서 전혀 새로운 충격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쉬클로프스키는 이를 위하여 낯설게 해야 하며 “해”라고 부르던 사물을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서 전혀 낯선 사물로 새로이 깨닫게 해야 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발견할 것. 

-비일상적 시각을 동원할 것.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할 것. 

-인습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할 것. 

-낯선 대상과 병치함으로써 낯선 인상을 줄 것. 

 

“낯설게 하기”란 이 말은 비록 로씨야에서 나오긴 했지만, 우리 문학에서도 전혀 찾아볼수 없는것은 아니다.《자화상》이란 제목의 시는 여러 시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내면적 자아의 모습을 그린 것일 터이므로 시인의 정서, 사상을 리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필자는 모두《자화상》을 주제로 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시를 통하여 우리 서정시에서 표현된 “낯설게 하기”에 대하여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2

 

 

시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의 여러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의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란 한 대상이 시적임(시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에서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나타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선 윤동주의《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자 화 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또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이  시는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무장 독립 투쟁에 가담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있는 자신을 끝없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성찰의 과정에서 쓰여진 고독과 내면 성찰의 시이다. 1939년에 쓰여진 이 시에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느끼는 젊은 시인의 자기 련민과 미움이 나타나 있다. 화자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행위이다. 

 

화자가 들여다보는 우물속은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곳으로 얼핏 보면 매우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한 사나이” 즉,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려는 화자에게는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던 자신의 미운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돌아간다. 가다 생각하니 그 미운 사나이가  “가엾어” 돌아오게 되고 다시  “미워져”돌아가다가  “그리워”져 다시 돌아오게 된다. 화자는 자신에게 미움을 느끼고 그 미움은 련민으로, 련민은 그리움으로 변하는데 이런 변화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내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일어난 감정이다. 우물 속은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있는 또 다른 세계이고 그 안에는 “추억”이라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화자의 진정한 성찰과 인간적 고뇌 속에 존재 하고 있다. 

   

높은 것일수록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우물물은 동시에 밝은 것을 어둠에 의해서 보여주는 의미론적 역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물속에 비친 하늘은 밤하늘이며, 그 계절 역시 가을로 되어있다.  태양이 있는 대낮의 봄하늘과는 상반된다. 시내물은 주야가 따로없이 쉬임없이 흘러가지만 그런 류동적인 물을 한 곳에 가두어 고이도록 한 것이 바로 우물물이다. 그것처럼 윤동주의 우물속에 비치는 달, 구름, 바람 역시도 그 의미의 공통적인 요소는 다같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지만 한 공간안에 유페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는 분명 《자화상》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면서도 우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나”가 아니라  “한 사나이”라고 낯설게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영상(映像)을 하나의 실체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같다. 윤동주는 마치 그  “사나이”가 우물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파아란 바람”이라고 촉각적이미지를 시각적이미지로 전이시켜 통각적이미지로 표현한것 역시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하면  “바람”은  “파아란 색”을 띨 수가 없다. 

  

또한 이 시는  “나르시시즘”1)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을 쓴것인데  “거울”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우물”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쌍한 자신에 대한 련민에 빠지게 된다. 시에서 반영된  “나르시시즘”  이 경향도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다음은 서정주가 쓴 《자화상》이다. 

 

자 화 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9년 

   

미당 서정주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우리 시에서 시어사용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의 령역을 확대하여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였다는 데 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대추꽃이 한 주 서있다” “틔워오는 아침” “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등 시어들은 일상언어와는 다른 결합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애비는 종이었다"는 첫 행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가 당시의 독자들에게 준 감동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련상시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침 이마 위에 얹힌 몇 방울 피섞인 이슬” 은 괴로움의 삶 속에서 창조된 열매란 뜻으로 고뇌의 승화를 뜻하고 있다. 구속받고 멸시받으며 현실을 어렵게 사는 화자를 “죄인”, “천치”, “수캐”에 비유하면서 이런 은유로 투영된 언술이 아무래도 시의 멋을 더해주고있는것 같다. 

 

같은 제목으로 쓴 박정웅의《자화상》을 보도록 하자. 

                                 

자 화 상 

        

              그림자처럼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하고 불길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외롭고 지쳐보이는 사람 

 

              마침내 자신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2001년 

  

  이 시에서는 일상언어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강제로 결합시키고 새로운 문법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시의 언어를 낯설게 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넘어선 시적인 의미로 전환시킨다. 시인은 그림자와 “무시당하다” “짓밟히다” “수상하다” “불길하다” “외롭다” “지쳐보이다”를 강제로 결합시킴으로써(그것도 “그림자처럼”이라고 비유) 그림자를 일상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와 이런 표현들사이에는 거의 류사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자의 의도를 우리가 보아낼수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낯설은 표현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거쳐 낯익은 모습-힘없고 외롭고 지친 자신(시인)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또한 마지막련에서의 아예 사람이 그림자로 되어간다는 표현은 그 어떤 역전적인 발견일수도 있는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철심의《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우리들의 자화상 

                                           남철심 

 

       찬물을 많이 마셔 

       도리여 뜨거운 가슴 

 

       물옆에 살아 

       물농사 지으며 

       하얗게 마음을 헹구는 사람 

 

       물 같은 술에 

       풀어보는 한(恨)과 

       술 같은 물에 

       적셔보는 원(怨)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 

                                  

                                            2001년 

   

   이 시는 첫련부터 역설로 시작된다.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응당차가와야 할 가슴을 도리여 뜨겁다고 표현한다. 이와 조응되는 마지막련에서도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눈물은 원래 뜨거운 것이나, 시인의 의도로 보면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눈물도 의례히 차가와 할 터인데 오히려 뜨겁기 때문에, “차가운것”과 “뜨거운 것”의 대조 그것 역시 역설로 보아야 하겠다. 사실 일상에서 그 누구도 찬물을 많이 마시는것과 가슴이나 눈물이 뜨거운것을 련계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역설적인 표현들로 “낯설게 하기”를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시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다음 리듬적으로 볼 때, 이 시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2행, 3행, 4행, 2행의 파격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하지만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시의 3련에서 “풀어보는 한과”에서의 “과”자는 사족으로,  없었으면 오히려 운률조성에 더 맞지 않을가 싶다. 

 

 

 

 

세계의 사물들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존재가 바로 “우리”이다. 이러한 상투적 일상에 감염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가 지닌 사명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시가 지닌 역할이다. 일상을 전복하기, 전도된 일상을 형상화하기가 시인의 숙제이다. 규격화되고 도식화된 세계를 휘저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통이 시인의 숙명이다. 이와 같은 숙제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들에는 세계와 자아에 대한 애정, 섬세하고 차분한 관찰,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일상에 대한 치열한 반칙의식, 평범을 거부하는 비범한 수사학 등이 있다. 시란 결국 권태로운 일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제이므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자화상》은 일상을 거부하는 비범한 의식과 표현이 우리의 각질화된 상상력을 물렁물렁하게 연성화시켜주는 작품들이였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언어를 일상언어와 구별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 내부의 력학(力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 지배적인 문학형식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일상언어처럼 취급되면 종전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던 형식이 전경화되어 그 문학적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문학 발전과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즉 문학에서는 하나의  “낯설게 하기”가 보편화, 표준화되면 새로운  “낯설게 하기”를 창조해야 한다. 

 

참고서(문): 

1.「문학비평방법론」             김호웅    연변대학출판사    2000년 

2.「아이러니와 역설」            이건주 

3.「낯설게 하기와 의미론적 연관」김송배 

4..「낯설게 하기의 시학」        양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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